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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 안드로이드 95(2)
신문광고면 몰라도, 텔레비전 광고는 하루아침에 준비되는 일이 아니다.
사진과 문구 정도면 끝나는 지면 광고에 비해, 텔레비전은 동영상이 필요했으니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영상물을 텔레비전에 내보내려면 심의를 받아야 했으니,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광고를 내고 싶다고 해서 바로 실행할 수 없는 일이었다.
즉, 이번 광고는 칼을 갈고 만들었다는 뜻이다.
“광고가 잘 빠졌어.”
워크래프트 광고는 게임의 오프닝과 하이라이트 그리고 인게임 화면을 적당히 편집해 만든 광고였다.
성우의 경우 유재원이 직접 목소리를 골랐는데, 최대한 세련된 느낌이 나도록 했다. 영상도 CG동영상뿐만이 아니라, 실제 게임화면도 넣으면서 플레이어들의 기대감을 적당하게 만들었다.
본인을 기억을 돌아보자면 게임화면 없이 동영상으로만 도배한 광고를 보고 인게임 화면과 너무 달라서 실망한 경우가 많았기에, 처음부터 까고 들어가는 것이다.
게임화면 때문에 광고의 효과가 좀 떨어진다고 해도, 어차피 다 알게 될 요소를 가지고 속이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이번 광고에 내포된 의미는 한국에도 워크래프트가 정식발매를 한다는 것이었다.
유재원이 소유한 게임개발사들은 모두 ID 엔터테인먼트 산하 소속이 되었고, 게임의 유통도 안드로이드의 유통망이 담당하는 것이 기본이 되었다. 유재원은 재고관리의 어려움 때문에 기존의 유통사를 걸치려고 했는데, 일렉트로닉아츠와 액티비전에서 먼저 저작권 소송을 걸어주는 바람에 독자 유통으로 굳어져버렸다.
일렉트로닉아츠나 액티비전이 유통할 때에 한국은 상황에 따라 정식 발매가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했었다.
이젠 독자노선을 가기로 했으니, ID 엔터테인먼트에서 나오는 모든 게임은 한국어화가 기본으로 이뤄지면서 정식 발매가 될 것이다.
발매가 코앞으로 온 워크래프트가 시작이고, 퀘이크, 리턴 투 캐슬울펜슈타인 등등이 그 뒤를 따른다.
“게임을 그렇게 비난해놓고 광고는 넙죽 받는단 말이지.”
재미있는 건 게임 광고에 대한 방송국의 태도였다,
뉴스에서 게임에 대한 비난을 사정없이 펼친건 까맣게 잊어버렸는지, 광고 의뢰를 다들 넙죽 받았다.
보도는 보도이고 광고는 광고란 말인지 따지고 싶기도 했지만, 실제 보도국 기자들이랑 광고를 모집하는 부서는 독립된 곳이라서 이해관계가 확연히 다르긴 했다.
유재원도 그 점을 이용했다.
뉴스에서 게임의 문제점이랍시고 제대로 검증된 것도 아닌걸 사실인것처럼 말하는게 문제이긴 한데, 그 뉴스가 시작하기 전, 끝난 후에 게임 광고가 쏟아져 나온다면 보도의 효과는 떨어질 것아니겠는가.
더욱이 게임 광고는 워크래프트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ID 엔터테인먼트의 출시 스케줄에 맞춰서 발매가 다가오면 브라운관을 폭격하듯 광고를 내보낼 작정이었다.
광고주 눈치를 끔찍할 정도로 챙기는 언론들이니 최소한 광고가 나가는 중에는 보도에도 신중을 기할 것이다.
그렇지만 광고를 내는 것만으로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게임을 쥐 잡듯 잡는 경향을 완전히 차단하진 못할 것이다. 게다가 신작 게임이 매달 나오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광고로 나쁜 보도를 막는 건 바람직하지도 않는 일이다.
유재원이 바라는 건 아예 근원부터 이걸 막는 것이었고, 그에 대한 방안도 만들었다.
내일의 스케줄이 그 방안을 실행하는 날이었다.
놀라운 점은 그 방안이 유재원의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니라, 회사의 임원들과 함께 고민해서 만든 것들이란 사실이다.
다음 날.
서울대에서 유재원이 참석하는 제법 큰 규모의 행사가 있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과 ID 엔터테인먼트 연구협력 조인식.
행사장 중앙에 걸린 기다란 배너가 오늘의 행사를 한 줄로 설명해주었다. ID 엔터테인먼트와 서울대 의과대학의 연구협력이라는 거창한 이름이지만, 사실은 연구지원금을 주는 행사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의과대학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지원금이 아닌, 정신의학과를 한정해서 하는 연구지원금이다.
“그러면, 유재원 회장님의 기념사가 있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유재원이 무대 중앙의 단상으로 나갔다. 이에 맞춰 객석에서 서울대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들 그리고 학생들이 박수를 쳤고, 객석 사이사이에 껴 있는 사진기자들이 플래시를 펑펑 터트리며 사진을 찍었다.
눈이 부실 정도였지만, 유재원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눈을 껌벅이다가 굴욕사진이라도 나오면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쓰일 게 분명하기에 아예 원천 차단했다.
몇 초간 미소를 띠며 행사장을 찾은 사진기자들을 둘러 본 유재원은 곧 마이크를 조정한 후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제가 이번에 한국에 온 가장 큰 이유가 끔찍한 패륜 범죄의 원인으로 게임이 지목되었다는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와서 보니 그것이 제대로 조사된 결과물이 아닌, 그저 가해자의 컴퓨터에서 게임이 발견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보도된 것임을 알고 실망이 컸습니다.”
행사장에 있는 기자들 중에는 게임이 문제였다라고 쓴 사람도 분명 자리했음에도 유재원의 말에 움찔해 하는 기자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예나 지금이나 기자로부터 잘못된 보도로 정정이나 사과를 받는 게 지극히 힘든 것이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일은 신문기자들이 먼저 나선게 아니라, 신문기자보다 콧대가 더 높은 공중파 보도부 기자들이 움직인 거라서 저들의 태도가 쉽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일찌감치 시작하고 있던 게임과 범죄성향의 상관관계 분석이나, 게임중독 예방 연구가 하나도 되어있지 않고 있다는 게 충격이기도 했습니다.”
21세기에도 게임을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기사를 쓰는게 한두번이 아니었고, 그걸 직접 겪어본 유재원이니 지금 말하는 것처럼 엄청나게 충격을 받은건 아니다. 하지만 이번 행사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기꺼이 과장을 하는 유재원이다.
“오늘 한국에서 제일 큰 권위와 연구능력을 가진 서울대 의과대학과의 연구협력으로 게임에 대한 다양한 분석, 게임중독 치유 방법에 대한 연구가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진행되었으면 합니다. 또, 이번 보도에 가장 큰 이슈였던 게임중독과 범죄성과의 관계도 규명되길 바라며, 더 이상 문제의 본질은 도외시한 체 때리기 쉬운 게임의 문제라는 식으로 여론이 흘러가는 일이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유재원은 대놓고 본인의 바람을 이야기했다.
어중간하게 말하면, 어중간한 기사가 나올 게 분명했기에, 서울대와의 연구협약의 목적을 정확히 밝혔다.
“게임은 성장가능성이 엄청난 분야이고, 우리나라처럼 천연자원은 없지만, 인적 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도전하기 좋은 사업입니다. 단순한 희망사항을 말하는게 아니라, 제가 직접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ID 그룹의 시작은 키보드 워리어라는 게임에 있었다는 걸 잊으신 분들이 요즘 많은 것 같아서 참 아쉽습니다.”
그러면서 유재원의 성공 신화의 기반이 게임에 있다는걸 다시 한 번 상기했다.
“제가 확신해서 말씀을 드리는데, 게임 시장은 21세기가 되기 전에 전세계 영화시장보다 더 커질 것이고,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화 수출품이 될 것입니다. 근거 하나 없는 예단으로 우리나라 경제와 문화를 우뚝 세울 기둥을 자라기도 전에 자르는 일이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렇게 짧은 발언을 마친 유재원 다음으로 서울대학병원 정신과 학과장이 올라왔다.
학과장은 한국 사회에서 정신과학의 취약한 지원과 정신문제에 대해 쉬쉬하는 성향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번 패륜 사건이 정신문제를 제대로 연구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제대로 된 연구 결과를 내어 그 끔찍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했으면 한다고 했다.
그렇게 서로의 발언을 마친 유재원과 정신과 학과장은 협약서를 교환했다.
협약서의 내용은 간단했다.
정신의학과 교수들이 게임과 범죄성향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등의 과제를 수행하고 ID 그룹이 이를 후원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유재원이 출연한 기금의 액수는 무려 100억 원. 연구 결과에 따라 규모를 확대하거나 축소할 수도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서울대학교 마크와 ID 그룹 마크가 선명한 하드커버로 만들어진 협약서에 사인을 하고, 서로 주고받으며 악수를 나누는 모습이 다시금 사진으로 찍혔다. 오늘 9시 뉴스로 큼지막하게 나갈 것이니, 유재원은 표정관리를 열심히 했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
“잘 될까 모르겠습니다.”
유재원이 자리에 앉자 최강욱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국 정신의학계를 이끌고 있는 서울대에 연구후원을 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일 먼저 낸 사람은 감사팀장인 임은경이었다.
그룹 내에서 각종 물의를 빚거나 비리를 저질렀다가 임은경의 손에 잘려나간 사람들은 벌써 두 자리 숫자 중반 대에 올랐을 정도다. 덕분에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인데, 특정 사안을 보고 딱 맞는 분석을 내놓기로 유명했다.
“잘 될 겁니다.”
최강욱 비서실장의 말에 유재원은 확신으로 대답했다.
임은경의 분석에 의하면 기자들이 게임이 문제라는 식으로 쓰는 기사의 말미를 보면 학계의 권위를 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애초에 한국에서는 게임의 부작용에 대해 제대로 연구가 된게 없으니 가져다 쓸 것도 없고, 외국의 논문을 뒤져보는건 언어 문제도 있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었다. 그러니 간편한 전화 한 통으로 연결이 되는 한국의 정신과 전문의를 찾는 게 보통의 방식이라고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유재원도 무릎을 쳤다.
21세기의 게임 관련 기사들도 대부분 이런 식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게임을 가지고 규제를 못해서 안달인 사람들은 두 축이 있었는데, 하나는 여성부 쪽이고 다른 한쪽은 정신과 전문인 사람들이었다.
임은경의 아이디어는 그런 사람들을 ID 그룹의 영향력 안에 넣자는 것이 핵심 포인트였다.
정신과 전문의들이 한마디 툭툭 던지면 이를 바탕으로 여론으로 형성이 되고 있으니, 이들을 그룹의 영향력 안에 넣으면 자동으로 관리가 될 거라는 의견이었다.
유재원 임은경 팀장의 말에 동의했다.
단순히 동의하는 게 아니라, 강하게 동의했다. 덕분에 연구후원금의 액수를 임은경이 말했던 것에 ‘0’하나를 더 붙였다.
이 정도 액수가 이과쪽으로 갔다면 반도체 분야 공동 연구를 진행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그렇지만 앞으로 형성될 게임 산업의 발전을 막는 요소를 미연에 방지한다면 이 정도 투자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액수였다.
“그러면 저분들의 연구 논문 방향도 우리가 유도합니까?”
“아, 그럴 것 까진 없습니다.”
최강욱의 물음에 유재원은 고개를 저었다.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그쪽으로 논문을 써달라는 건 아니었다. 교수님들이 버튼을 누르면 원하는 논문을 떡하니 내주는 자판기가 아니다. 그저 여론에 맞춰 답을 주는 것을 삼가하고, 이번 기회에 게임에 대한 연구를 제대로 해보자는 뜻으로 기꺼이 돈을 내놓은 것이다.
게임이 문제라는 기사를 쓰더라도 전문가 집단에서 그건 아니라고 해준다면, 지금처럼 게임을 만 악의 근원으로 몰아가는 일은 훨씬 어려워지지 않겠는가.
며칠이 지나 7월의 중순으로 접어들었다.
“우와! 덥다.”
방송국을 나서자마자 유재원의 입에서 덥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도는 방송국 스튜디오는 환기가 잘 안 되어 공기가 탁하긴 해도 덥진 않았다.
특히 오늘은 유재원이 왔다고 평소보다 훨씬 강하게 틀었던 모양인지, 밖으로 나오니 그 차이가 확 느껴졌다. 꿉꿉한 습도와 후끈한 열기가 몰아치면서 땀이 줄줄 나오기 시작했다.
“차로 모시겠습니다. 에어컨을 켜놓고 있었으니 괜찮으실 겁니다.”
로비에서 대기 중이었던 김대석의 말에 유재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이동했다.
방금 기다리던 심야토론도 녹화를 마쳤다..
그렇다고 이번주에 해당 녹화분이 방송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이나믹 코리아답게이번 주에 가장 큰 논란은 조문단에 참가하지 못한 주사파들의 난동인 탓에 방송 일정은 한주 더 미뤄진 것이다. 그래도 녹화를 잘 마쳤으니 아쉬울 건 없다.
무엇보다 이 끈적한 더위도 조만간 안녕이라는 점이 제일 좋았다. 날씨 좋고 기후 좋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살다 보니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도 안 한 무더위임에도 참 버티기 힘들었던 유재원이다. 한국에서의 스케줄도 거진 다 마쳤으니, 조만간 출국이다!
더욱이 심야토론에서 할 말 다 하고 나온 터라 몸은 더워도 마음은 홀가분했다.
토론에서의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상대편 패널로 나온 정신과 전문의의 태도가 예상과 달랐다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게임과 범죄가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을 터인데, 연구후원금의 위력인지 몰라도 이번엔 제대로 된 연구를 해봐야 한다면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덕분에 토론회에서는 그 누구도 게임과 범죄가 상관관계가 없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유재원처럼 제대로 된 연구결과가 나올 때까지 섣불리 판단해 단정하지 말자는 쪽이 다수였다.
PD는 유재원의 상대역으로 정신과 전문의를 데려다 놓은 듯싶었는데, 전문의가 유재원 편이 되니 의견 충돌이 거의 사라져 토론회가 심심해져버렸다.
간이 약해진건 유재원도 아쉬운 일이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선 일단 불꽃 튀는 의견 대립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빠져버렸으니 말이다. 그래도 그 자리에서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말은 다 꺼내놓고 왔기에 한국에 입국한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
그렇게 몇 걸음 걷자 주차된 차가 나왔고, 유재원은 바로 올라탔다.
“아, 살 것 같네요.”
김대석의 말처럼 차 안에 차에 오르니 바로 생기가 올라왔다.
“이제 남은 스케줄은 뭐죠?”
“오늘은 이걸로 끝이고, 내일은 TG모바일 강남 직영대리점에서 오프닝 행사가 있습니다.”
이어진 물음에 김대석은 컴퓨터처럼 바로 대답했다.
“아, 그거요.”
유재원도 익히 알고 있던 행사였다. 강남의 TG모바일 직영 대리점 오픈을 기념하면서 이동통신 제1호 가입자에게 축하와 함께 여러 가지 사은품을 주는 행사였다.
사실 TG모바일에는 이미 수많은 가입자가 있었다. 테스터 명목으로 발급된 휴대폰만 수백대에 이른다. 그렇지만 일반인이 돈을 내고 정식으로 서비스에 가입하는건 이번이 처음이니 이를 기념하는 것도 나쁘지지 않았다.
상품으로 준비된건 출시된지 시간이 좀 지났지만 인기는 조금도 떨어지지 않고 있는 뉴에그2를 준비했다. 프로 버전은 아니지만, 풀세트로 한번에 산다면 300만 원을 훌쩍 넘는 가격의 모델이니 분명 좋아할 것이다.
“그리고 회장님이 녹화 중일때, 안드로이드 사의 케빈 존슨 사장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에? 케빈 사장님이요?”
케빈 존슨의 연락이라는 소리에 유재원은 시계부터 보았다. 지금 시각은 오후 3시 22분. 시애틀과의 시차는 ?17시간이니 거긴 밤 10시 22분이다. 이렇게나 늦은 시간에 연락을 했다는 건 일상적이진 않았다.
“그럼, 지금 바로 연락 해봐요.”
“예!”
유재원의 지시에 김대석은 바로 티파니폰으로 케빈 존슨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