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351화 (351/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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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 안드로이드 95(1)

7월 5일, 시범서비스를 시작하기 10일 전부터 TG모바일의 스피드010 광고가 텔레비전 전파를 탔다.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채널을 돌리다 보면 스피드010광고를 볼 수 있을 만큼 광고가 쏟아졌다. 심지어 신문광고는 한 달 전부터 시작했다. 그때부터 예약을 받기 시작했기에 지금은 빈자리가 없었다.

한국에서의 이동통신 수요는 이미 폭발해버린 상황이라서 신문광고만으로 엄청난 가입 희망자가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텔레비전 광고를 시작한 것은 스피드010이라는 이동통신 브랜드를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서였다.

신세기통신에 이어 선경그룹까지 참전한 3파전으로 이동통신 서비스가 시작했고, TG 모바일은 이 셋 중에 인지도가 제일 떨어졌다.

포철과 코롱의 연합인 신세기 통신이나 선경그룹은 6, 70년대부터 역사를 시작한 기업인 반면, TG는 80년대부터 시작한 기업이었다. 게다가 다양한 사업 영역을 가졌던 경쟁자들에 비해 TG는 컴퓨터 분야의 외길 인생이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외형과 달리 TG모바일은 매우 탄탄한 회사였다. 모회사인 TG그룹은 IT붐을 제대로 타는 중이었고, 덕분에 컴퓨터 판매량은 매달 최고를 찍는 중이었다. 이런 모기업으로부터 전폭적 지원을 받는 TG모바일은 넘쳐나는 총알이 있었기에 단가가 비싼 텔레비전 광고를 스피드010으로 덮을 수 있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TG모바일이 이동통신 상표로 출원한 것은 ‘스피드’라는 단어였을 뿐이다. 법률 검토 결과 010은 삼사 공통의 이동통신구분 번호였기에, 독점 상표권을 가져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스피드만 출원해 상표권으로 확정을 받았다.

한편에서 스피드라는 단어를 TG모바일이 독점 사용할 수 있느냐는 논란이 살짝 일기도 했지만, 이미 애플이니 안드로이드니 하는 단어에 상표권이 나온 터라 큰 문제로 비화되진 않았다.

“우리 비즈니스도 슬슬 시작해야죠!”

오랜만에 서울 로데오 거리에 있는 ID 테크놀로지 한국 본사에 출근한 유재원도 목소리를 높였다.

유재원이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티파니 폰의 프로모션이었다. 스피드010은 통신사 광고였을 뿐이다. 티파니폰의 광고는 ID 그룹이 자체적으로 수행할 일이었다.

“예, 준비는 끝났습니다.”

이에 최강욱이 든든한 목소리로 답했다.

티파니폰의 프로토타입은 작년부터 나왔고, 이에 맞춰 광고 제작과 각종 프로모션 행사도 준비되었다. 이러한 프로모션 준비 작업은 한국에서 이뤄졌다. 한국이 CDMA방식의 2G 모바일 상용화에 선구자적 위치에 있었다. 반면 다른 나라들은 아직 준비가 덜 된 상태였다. 게다가 작동 방식도 CDMA가 아니라 일명 유럽식이라는 GSM방식의 2세대 이동통신을 준비 중이었다.

GSM방식의 티파니폰을 내는 것도 문제없다. 통신사들과 협의를 해야겠지만, 하드웨어적으로는 주요 부품 몇 가지를 바꾸고, 소프트웨어를 좀 튜닝만 해주면 대부분의 설계를 그대로 재활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여튼 가장 먼저 CDMA 이동통신을 상용화 하는 나라는 한국이었기에, 현재 티파니폰의 광고는 한국을 타겟으로 만들어졌다.

“회장님의 지시대로 광고는 두 가지를 준비했습니다. 그럼 먼저 형사 제1편을 보시겠습니다.”

회의실의 조명이 낮아졌고, 곧 프로젝터로 준비된 광고가 차례로 재생되었다. 가장 먼저 재생된 건 이름만 들어도 아는 한국의 안석기 배우가 나오는 광고였다.

범인을 쫓는 형사라는 콘셉트로, 형사로 분장한 안석기가 산속으로 도망간 범인을 쫓는 것인데, 순간적으로 범인을 놓쳐버렸다. 설상가상으로 무전기도 먹통이었는데, 티파니폰으로 동료들과 연락이 되면서 숨은 범인을 잡는다는 매우 단순한 이야기였다.

-산악지형에 강하다!

광고 막판에 귀에 콕 박히는 한 마디를 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유재원이 박수를 치자, 곧 회의실에 박수 소리로 가득했다. 막 완성된 CF일 텐데도 진한 사골 국물 맛이 느껴질 만큼, 구수한 맛이 느껴지는 영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CF를 제작한 광고회사는 미래그룹 계열사인 금강기획이 만든 것이라 화면의 색감이나 구도 등등의 광고 문법은 90년대의 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기억의 궁전에 접속하지 않았음에도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를 정도다.

그럼에도 완성도는 인정해줄만 했고, 전하고자 하는 내용도 확실히 전달되었다. 또한, 광고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후속으로 나올 CF 역시 형사 스토리를 가진 연속극 형태로서, 그 시작을 잘 해냈다.

무엇보다 산악지형에 강하다는 것이 포인트였는데, 이는 완벽하게 전달되었다. 대신 광고의 주인공인 티파니폰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티파니폰을 일부러 숨긴 것인데, 이유는 바로 알 수 있다.

“다음은 글로벌 제1편입니다.”

곧이어 재생된 광고는 유재원에게 익숙한 21세기 스타일이었다.

티파니폰에 포커스를 맞추고, 속도감 넘치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온갖 기능을 선보였다. 주인공은 오직 하나 티파니폰이었고, 탑재된 기능들이 예술로 승화한 컴퓨터그래픽과 딱 맞춘 목소리에 빠르게 설명되었다.

스마트폰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기능이지만, 현 시대 최고의 모바일 디바이스라는 것을 CF 한 편에 다 담았다.

기본기는 안석기 배우의 CF를 통해 어필하고, 경쟁사의 휴대폰과 차별화된 성능은 스타일리시한 CF로 보여준다는 것이 유재원이 구상한 전략이었다.

다만 천하의 유재원도 두 가지 광고를 동시에 하는 게 대중들에게 어떤 반응을 일으킬 지는 아직 확신할 수가 없었다.

전생에 증명된 성공의 공식을 따라한다더라도 상황이 바뀐 게 한둘이 아니라서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유재원이 퍼트린 기술을 바탕으로 경쟁사들도 전보다 훨씬 앞서 게 되었다. 특히 디자인이 중요하다는 건 한국의 기업들도 다들 인식하게 되었다. 바로 에그 시리즈로 세계의 고성능 PC시장을 단번에 선점한 TG가 이를 증명하는 확실한 케이스였으니 말이다.

PC는 주요 부품만 잘 공급받으면 누구나 만들어낼 수 있는 제품이었다. 예전까지는 싸게 많이 받아와서 가격으로 승부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여기에 디자인이라는 혁명이 더해지면서 TG는 순식간에 고급형 PC의 대명사로 거듭났다.

이와 마찬가지로 휴대폰 디자인에서 티파니폰이 보여준 혁신은 대단했다. 단순한 프로토타입인데도, 살짝 공개가 될 때마다 일성전자는 물론, 미래전자까지도 뒤집어졌다는 풍문이다.

한눈에 봐도 자기들이 준비하던 제품과는 한 차원 높은 다자인이었다. 검은색 플라스틱으로 만든 투박한 모습의 자사 제품과는 확실히 달랐다. 하지만 따라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기술적, 디자인적인 특허는 물론이고 주요 부품들을 ID 그룹이 독점해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티파니폰 전면의 컬러 LCD는 ID 디스플레이에서 나오는 제품으로, 아직 다른 곳에서는 양산하지 못하는 규격이었다. 또한 LCD를 보호하고 뒷면을 덮고 있는 합성수지는 코닝의 고릴라글라스로 ID 그룹이 모바일 분야를 독점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리튬이온 베터리와 고감도 안테네 역시 마찬가지다. 모뎀 칩이야 퀄컴을 통해 다른 회사들도 공급받을 수 있지만, 다른 부품은 자체개발 혹은 급이 떨어지는 걸 써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디자인의 커다란 방향성을 티파니폰이 제시한 것이기에, 방심은 금물이다. 지금은 몇 년 차이가 나는 기술 격차도 눈 깜짝할 사이에 따라잡힐 수 있는 게 IT였고, 디자인의 경우엔 티파니폰이 방향성을 제시했으니 조만간 비슷한 것들이 쏟아져 나올 테니 말이다.

유재원의 경우엔 미래의 로드맵을 다 알고 있으니 경쟁자들을 따돌리는 건 쉽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난이도가 제법 있는 일이었다.

머릿속에 가득 담아온 미래 기술을 당장 구현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다.

단적으로 스마트폰 제조를 위해서는 모뎀과 CPU, GPU는 물론 메모리 컨트롤러까지 통합된 AP가 필요하다. AP없이 독립된 칩으로 해당 기능들을 다 구현하면 베터리가 버텨내지 못하고, 처리 속도도 느리기 때문이다.

적어도 AP라는 이름을 붙여줄 수 있을 만큼의 퍼포먼스를 내는 칩을 만들어 내려면 몇 년은 기다려야 한다. 그때까지 비슷한 성능의 피처폰을 가지고 후발주자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설사 스마트폰 시대에 들어서도 그러한 경향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파운더리 업체를 통해 반도체 생산 공정을 공유하게 되고, 이때문에 하드웨어적인 스펙도 결국 비슷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유재원은 티파니 폰부터 혁신이라는 정체성으로 중무장해서 확실한 지지자들을 만들어놓겠다는 게 유재원의 전략이었다.

“한정판 대상자 선정은 끝났나요?”

유재원이 물어보는 건 선물용 티파니폰을 받을 사람들의 명단이었다. 티파니폰이 정식 출시되는 나라가 한국이니 전체 명단 중 한국인의 지분이 50%이상이다.

“예, 여기 있습니다.”

유재원의 물음에 최강욱이 문서를 한 부 내밀었다.

소위 90년대 중반 잘나가는 연예인들과 사회저명인사들 중에 광고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을 선정해 놓은 리스트였다. 단순히 이름만 표기되어 있는 게 아니라, 사진과 함께 그 사람에 대한 간략한 이력, 앞으로의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에 대해 소개된 문서였다.

문서에 담긴 인물은 모두 30명.

가수와 연기자, 운동선수, 작가 등등의 직업군을 가지고 있었고, 해당 분야에서 인기 절정을 달리는 사람들이었다.

유재원은 명단을 빠르게 넘기며 면면을 확인했다. 그러다가 특정 페이지에 멈춰 별표를 남기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보고서를 다 보는 데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냥 그림만 보고 넘기는 수준이었다.

검토를 마친 유재원은 문서를 최강욱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체크된 분들은 다른 분으로 바꾸면 좋겠어요. 우리 이미지랑은 좀 안 어울리는 느낌이라서요.”

유재원은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체를 지시했다.

이에 돌려받은 문서를 확인한 최강욱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티파니폰과 이미지가 좀 안 맞는다고 하면 나이대가 많다거나, 좀 고지식한 얼굴 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유재원이 돌려준 문서에 표시된 사람들은 딱히 공통점이 없었다.

나이대도 다양했고, 직업군도 다양했다.

사실 유재원이 체크한 사람들은 조만간 물의를 일으킬 사람들이었을 뿐이었다. 도박, 음주운전, 비리 등등 빠르면 몇 달 후, 늦어도 1, 2년 안에 사건이 터질 사람들이기에 미리 걸러내는 것이었다.

회사 입장에서 커다란 광고를 진행할 때, 가장 골치 아픈 일이 광고를 준 연예인이 사고를 터트렸을 때였다.

연예인이 사고를 치면 그 연예인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광고를 하던 회사에도 큰 피해가 오는 게 한국의 일반적인 흐름이었다.

덕분에 광고기획사들이 연예인들의 뒷조사까지 멋대로 하는 일까지 벌어졌고, 그렇게 수집된 정보가 유출이 되어 곤혹스러운 일을 치른 경우도 있었다.

기억의 궁전에 이것저것 담아온 유재원에게는 아주 쉬운 일이었다. 물의를 일으킨 자들의 이름이 있으니 점쟁이처럼 찍어내기만 하면 끝이다.

“알겠습니다!”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던 최강욱은 따져 물어보지 않고 그대로 유재원의 지시를 받았다. 이렇게 유재원이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조치를 하고나서 몇 달 지나다 보면 그 이유가 절로 밝혀졌으니, 이번에도 마찬가지 일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후에도 티파티폰을 알릴 다양 한 방안에 대해 논의가 이어졌다.

대리점에 보내줄 포스터부터, 대리점의 적극적인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인센티브 정책까지. 지금 바로 정식 발매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탄탄한 정책들을 유재원이 직접 검수했고 승인했다.

-산악 지형에 강하다!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기술의 정점!

며칠 후, 유재원에게 보고되었던 티파니폰의 광고들도 텔레비전에 등장했다. 커다란 프로젝터 대신 브라운관을 통해 보니 뭔가 느낌이 색달랐다.

광고의 효과도 확실했다.

ID 플레그쉽스토어에 아직 물건이 들어오지 않았음에도 찾는 사람들이 벌서 수십 명을 넘었다고 한다. 통신사 대리점에서도 미리 물량을 주문 받고 있다는 데, 숫자가 올라가는 기세는 국산 휴대폰들은 물론 모토롤라나 노키아 같은 외산과도 차원을 달리 하는 중이라고 했다.

“음? 그런데 그건 안 나오나?”

유재원은 티파니폰 광고를 직접 확인했음에도 텔레비전 앞을 떠나지 않았다.

“최 비서님이 뉴스 시작하기 전에 나온다고 했었는데? KBS가 아니었나?”

머릴 긁적이며 기억을 더듬어 보던 유재원이 리모콘을 잡고 채널을 바꾸려고 할 때, 느끼한 초콜렛 광고가 끝나면서 화면에 눈보라가 몰아치면서 로고 하나를 만들었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라는 로고였다.

“아, 드디어 나온다!”

곧이어 로고가 사라지고 풀 CG로 만들어진 중세 판타지 세계의 웅장한 성곽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제로스 왕국은 번영하는 인간 왕국이었다.

-스톰윈드의 기사와 북녘골 수도원의 성직자는 널리 돌아다녔으며, 왕의 백성들에게 공평하고 명예롭게 봉사했다. 잘 훈련된 왕의 병사들은 여러 세대 동안 영구적인 평화를 지켜 왔다. 오크 호드의 무리가 오기 전까지…….

클라우드 컴퓨터 1만대를 넘게 동원해 만든 화려한 판타지 세계의 모습과 분위기를 돋우어 주는 웅장한 음악, 거기에 어울리는 성우의 나레이션은 완벽했다.

유재원은 이번 한국 출장의 원인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 김일성의 사망 때문에 메인 스케줄인 토론회가 무작정 미뤄지긴 했지만, 준비했던 다른 조치는 착착 실행되었다.

그 첫 타자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최신작 워크래프트: 인간과 오크의 한국어판 광고가 한국의 공중파를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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