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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343화 (343/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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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 SPEED 010(4)

-원가라니?

이용권 사장이 바로 반응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티파니 폰이 좋다는 건 이용권 사장도 잘 알고 있었다.

본인이 TG 모바일의 사장이기도 했기에 지금까지 출시되는 CDMA 방식의 휴대폰은 모두 사용 중이었다. 그 중에서 제일 손이 많이 가는 건 역시나 티파니 폰이었다.

다른 휴대폰들은 무슨 군용 무전기를 보는 것 같았다. 미래전자나 일성전자가 내놓는 국산 휴대폰이나 노키아나 모토롤라 같은 외국 회사들이 만든 CDMA폰 모두 비슷한 모양이다. 그나마 마이크 부분을 열고 닫을 수 있는 플립 형태로 만들고 배터리를 교체할 수 있게 한 휴대폰이 최신형이었다.

하나의 무게는 최소 300g이 넘는 묵직함을 자랑했는데, 그런 모델의 소비자 가격은 30만 원 정도 했다.

반면 티파니폰은 이런 투박한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무게도 200g이하로 가볍고, 질감도 플라스틱이 아닌 유리인지라 손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대단히 좋았다. 색상도 금속 재질 느낌으로 골드, 실버, 핑크, 블랙으로 다양했고, 배터리도 일체형과 슬림한 금속형 다이얼패드로 디자인적인 완성도가 대단히 좋았다.

일체형 배터리라고 해서 사용 시간이나 충전 시간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경쟁사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긴 대기 시간과 통화 시간을 자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2차 배터리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산요 배터리로부터 리튬이온 배터리를 독점 공급 받았기에, 다른 방식의 2차 배터리를 쓰는 모델과는 충전시간부터 이용시간까지 그 어떤 면에서도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다.

당연히 기능적으로도 티파니폰을 능가하는 건 없다. 큼직한 컬러 LCD화면에, 16화음 FM신디자이저 음원, CCD카메라까지 달려 있으니, 게임은 물론이고 사진까지 찍을 수 있었다.

유일한 단점은 가격으로 다른 회사들의 최고급 제품보다 2배는 비쌌다.

소비자 가격이 50만원이나 했다. 현재 대졸 신입 직장인의 한 달 월급이 120만 원 정도라는 걸 감안하면, 상당히 비싼 가격이다.

이용권 사장이 보았을 때, 일반인은 쉽게 쓰지 못하고 전화기를 많이 쓰는 영업직이나 사장님들이 주요 구매층이 될 것 같았다. 가격이 저렴해지면 더 많은 사람들이 찾을 것 같은데, 상대가 상대이니 만큼 내려달라는 소리는 할 수가 없었다.

다른 국내 업체라면 가격 협상력에서 TG 모바일도 한 소리 할 수 있었을텐데, 유재원은 TG 그룹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인지라, 티파니 폰 공급 건에 대해서는 가격의 ‘가’자도 꺼내지 못했을 정도다.

그런데 유재원이 먼저 저렴하게 준다고 하니 이게 웬 떡인가 싶은 이용권 사장이었다.

“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써봐야 진짜 좋다는 걸 알게 되잖아요.”

-그, 그렇지!

“이번 시범 서비스에 참가할 5천 명이 입소문을 퍼트릴만한 메신저로 만들고 싶어요. 그런데 5천 명을 모집하는 방법은 정해졌어요?”

-선착순이긴 한데, 이미 내정된 숫자도 많단다.

이용권의 대답에 유재원은 예상했던 범위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착순이라고 하면, 휴대전화가 꼭 필요한 사람들일 것이고, 주머니도 좀 두둑하긴 할 것 같다. 하지만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공급하는 걸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음, 5천대 모두 티파니 폰으로 하신다면 대당 28만원에 공급해드릴게요.”

거의 반절 가격이다. 그렇지만 유재원이 손해는 아니었다. 진짜 생산 원가는 20만 원 정도였으니 말이다.

-OK! 좋다! 그러면 견적서에 28만 원이라고 쓰면 되는 거니?

“에이, 그건 아니지요.”

역시나 서울 깍쟁이인 이용권 사장이다. 가격을 깎아주는 것과 그냥 28만원으로 공급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은근슬쩍 파고 들었지만, 원천에서 차단하는 유재원이다.

“시범서비스 시작 기념 할인으로 22만 원을 돌려드리는 형식으로 해드릴게요?”

-알았다.

유재원이 확실히 못을 박자 이용권도 다른 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티파니 폰이 많이 풀리면 TG 모바일에도 좋다.

티파니 폰은 당분간 TG 모바일에 독점 공급하기로 했기에, 티파니 폰을 쓰는 사람이 많을수록 TG모바일 가입자도 된다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티파니 폰의 생산은 역시나 이번에도 TG 그룹에서 담당하기로 했다. 나사나 커넥터, 필름 케이블 등등 사소한 부품은 TG로부터 공급 받으니 생산량이 많으면 떨어지는 것도 많았다.

“역시 시원하시네요. 시범 서비스 시작일이 7월 15일라고 하셨죠?”

-그래. 그런데 그건 왜 물어 보니?

“디데이에 맞춰 대대적인 광고전을 시작할 거니까요. 기대하셔도 좋을 거예요.”

-오! 재원이 네가 만드는 광고라면 확실하지!

이용권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광고에 있어 ID 그룹은 남다른 클래스를 자랑했다. 글로벌 광고 회사를 끼지 않고, 신인 CF 감독을 통해 만들었음에도, 그 감각은 언제나 남다른 수준을 자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광고 중에 넥스트컴의 시리즈 광고는 아직도 유명했고, ID 오피스나 안드로이드 광고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유재원이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한다면, 진짜로 기대해 볼 만 했다.

다음 날.

오늘 유재원은 회사로 출근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맞는 주말이라서 오늘은 하루 종일 숙소인 호텔에서만 있을 생각이었다.

평소라면 절대 빼먹지 않을 아침 운동도 과감하게 넘기면서까지 늦잠을 자고, 늦게 일어나 토스트나 먹으면서 컴퓨터나 할 작정이었다. 요즘 유재원에게 컴퓨터를 한다는 건 회사 일을 보는 것과 동의어가 되버렸기에, 오늘 만큼은 컴퓨터로 게임이나 인터넷만 하면서 여가를 즐길 생각이었다.

값비싼 i웍스를 만들어 놓고 워드나 소스코드 에디터만 만지작거리는 건 컴퓨터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적어도 CPU쿨러와 VGA쿨러가 굉음을 내며 돌 만큼 무거운 프로그램인 3D 게임을 실행해줘야 제 맛 아니겠는가.

어제도 일이 많았던 유재원인지라, 게임 준비는 김대석에게 리스트를 주고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유재원의 i웍스에 설치된 게임들은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과 니드 포 스피드, 디센트 같은 AAA급 게임들이 가득했다.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은 로메로가 유재원의 피드백을 수용해 대대적으로 뜯어 고친 버전이었고, 니드 포 스피드나 디센트라는 게임은 일렉트로닉아츠에서 출시한 최신 3D 게임이었다.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은 ID 그룹 내부망에 올라온 다운로드 버전이었고, 나머지 게임들은 번듯한 패키지가 있는 CD버전이었다. 확실히 컴퓨터 옆에 패키지 박스를 줄 세워놓으니 보기에도 좋고, 수집 욕구도 한층 자극되었다.

“오늘 최소 3개는 막판까지 가봐야지.”

기운을 차린 유재원은 패키지 박스를 보며 각오를 다졌다.

그러면서 제일 먼저 뭘 해볼까 하는 고민과 함께 바탕화면에 깔린 아이콘들을 훑었다. 모두다 이전에도 게임성을 인정받았던 명작이라서 무얼 먼저 해야 할지, 순간적으로 선택에 장애가 올 정도였다.

“첫 타자는 너로 정했다!”

그러다가 유재원이 선택한 건 니드 포 스피드였다.

일렉트로닉아츠에서 몇 달 전부터 대대적으로 광고 했던 게임이 바로 니드 포 스피드인데, 슈퍼카들을 직접 운전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몰아볼 수 있다면서, 엄청나게 바람을 잡았었다.

레이싱 장르는 마이너였다.

FPS나 롤플레잉에 밀려 즐기는 사람들은 소수였다. 하지만 컴퓨터 그래픽의 발전 수준을 체크하는 데 있어 레이싱 장르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레이싱 게임의 재미는 빠른 속도감과 함께 훌륭한 그래픽이 좌우했다. 여기에 덤으로 경쟁자들의 AI도 있다. 또한, 현실성을 높일지 아니면 완전히 아케이드 성향으로 갈지에 따라 시뮬레이션도 다뤄봐야한다.

이걸 조화롭게 만들어야 명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니드 포 스피드라는 게임은 그래픽 좋은 아케이드 레이싱 게임의 시작을 알리는 게임이었다.

유재원은 결정 하자마자 바탕화면의 아이콘을 더블클릭했다.

하드디스크가 그르륵 거리는 소리를 내며 작동하더니, 모니터가 검게 변했다가 밝아지면서 일렉트로닉 아츠의 로고 화면이 나타났다.

“어? 뭐지?”

보통이면 바로 게임의 타이틀 화면, 아니면 오프닝 타이틀이 뜨는데, 니드 포 스피드는 한가지 로고 화면이 더 나왔다. 노란색 화염 폭풍이 몰아치더니, 3DFX로고가 화려하게 등장했다. 일렉트로닉아츠의 로고보다 훨씬 선명했고, 역동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일렉트로닉아츠의 로고는 저화질의 동영상 화면이라 깍뚜기가 심했는데, 3DFX의 로고는 실시간 3D 가속으로 만든 폭발신과 글자라서 화질의 차이가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 있는 수준이었다.

여기서 갑자기 드는 의문은 왜 3DFX의 로고가 튀어나왔느냐 하는 것이었다. 유재원이 알기에 3DFX의 로고가 뜨는 건 그들의 전용 라이브러리가 활성화되었을 때만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i웍스에 채용된 그래픽카드는 엔비디아의 리바 TNT카드였다. 글라이드X3를 100%지원하는 그래픽 카드 중에 제일 빠른 제품이었고, 일본의 캐노퍼스라는 영상전문 업체에 튜닝을 맡겨 화질을 한차원 더 끌어 올린 모델이다.

덕분에 카드 하나 당 20만 원 정도의 지출이 더 생겼는데, 엔비디아의 컬러 다루는 기술이 워낙 떨어져서 어쩔 수 없었다. 명색이 콘텐츠 제작자용 워크스테이션인데, 색이 엉망이면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오겠는가.

하여튼 부두 그래픽카드는 설치조차 하지 않았는데, 전용 로고가 게임에 등장한 건 무척이나 특이한 일이었다.

“음, 일렉트로닉아츠와 3DFX가 단순한 협력관계 수준이 아닌 건가?”

ID 그룹의 성장에 제법 보탬이 많이 되었던 일렉트로닉아츠와의 협력이 어느 순간 틀어졌다. 아무래도 둠2의 유통을 액티비전에 맡긴 다음부터 그렇게 된 것 같다. 유재원이야 시장 논리로 높은 값을 부른 액티비전에게 유통하도록 한 것인데, 일렉트로닉아츠는 배신감을 크게 느낀 것 같다.

이후 일렉트로닉아츠는 독자 행보를 시작했는데, 그것이 인터넷 저작권 소송이었다. 질게 뻔한 소송을 왜 했나 싶었는데, 이제 보니 이들이 생각하는 큰 그림이 조금씩 보이는 느낌이다.

인터넷 저작권 소송에 참여한 회사들이 3DFX의 하이옥탄 라이브러리를 구심점으로 모여 안티 ID 그룹 모임을 만든 것이다.

“설마.”

유재원은 게임 타이틀이 나왔지만, 알트+탭 키를 눌러 바탕화면으로 나와 인터넷을 켰다. 그리곤 인터넷 저작권 소송에 참여한 게임사들의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개발중이거나 발매한 게임들의 상세한 정보를 검색했다.

역시나 생각대로였다.

대부분 게임들이 3DFX의 하이옥탄 라이브러리를 지원했다. 놀라운 사실이지만, 이를 확인한 유재원의 표정 변화는 없었다.

“흠,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나?”

3DFX의 하이옥탄 라이브러리로 뭉친다고 ID 그룹에 위협이 될 요소는 없었다. 어차피 PC용 게임이라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 맞춰야 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하이옥탄 라이브러리 전용 게임은 하나도 없었다. 글라이드 X를 지원하면서 하이옥탄도 지원하는 형식이었다.

“콘솔게임기라도 만들면 좀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나마 유재원에게 위협이 될 만한 일은 3DFX가 전용 비디오 게임기를 만들고 게임도 게임기 독점으로 발표하는 일이었다. 그러면 PC시장이 좀 위축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전용게임기를 낸다고 해도 보급률이 문제다.

PC의 보급률은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그게 다 게임용은 아니어도, 가정에 공급된 PC의 숫자는 수천만대 수준이다. 물론 그와 함께 불법복제가 심각하긴 해도, 신규로 비디오 게임기를 만들고, 전용 소프트로 발매하는 것보다는 많이 팔린다.

“그러고 보니 플레이스테이션은 잘 되고 있으려나?”

게임기 하니 자연스럽게 플레이스테이션이 연상되는 유재원이다.

쿠타라니 켄이 직접 유재원을 찾아왔던 일이나, 같이 게임을 했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특히 유재원이 보여준 라이브 포스피드백 기능이 있는 조이스틱을 보고 깜짝 놀랐던 쿠타라니 켄의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개발자용 플레이스테이션을 보내와서 잠깐 만져보고는 ID 엔터테인먼트의 조그만 스튜디오로 보낸 이후로 딱히 갱신된 소식은 없었다.

유재원이 직접 사용하지 않고 스튜디오로 보낸 건 ID 엔터테인먼트의 게임 중 몇 가지를 플레이스테이션용으로 포팅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플레이스테이션의 정식 발매와 동시에 발표되도록 타이밍을 맞추고 있는데, 초 인기작인 둠을 플레이스테이션용으로 바꾸는 중이다.

물론 둠은 워낙 많은 사람들이 즐긴 게임이라, 다들 마지막 스테이지까지 돌파했으니, 그대로 발매하면 많이 팔리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 둠과 둠2 사이의 이야기를 담은 확장판 개념이다.

둠2까지 나온 마당에 왜 둠이냐 한다면, 플레이스테이션의 성능이 PC에 비해 너무도 모자랐던 탓이다.

그럼에도 전생에 등장했던 것보다는 훨씬 좋은 스펙이었으니,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제작에 대한 노하우가 많이 쌓으면, 둠2도 PC의 노멀 옵션 수준으로 이식할 수 있을 것 같다.

“앗! 천금과 같은 시간에, 나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얼른 게임해야지!”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에 직업병이 도졌던 유재원은 고개를 절레 흔들고는 바로 웹 브라우저를 닫았다.

뭐 하나만 보면 분석에 들어가고, 그걸 또 자신의 사업과 연관시키는 건 이제 직업병이 다 됐다.

일상은 바쁘더라도 여유를 잃지 말아야 할 주말에도 이러고 있으니 큰일이라고 자각한 유재원은 다시 알트 탭을 눌러 게임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멋지게 만들어진 니드 포 스피드의 타이틀 화면이 다시금 모니터에 떴고, 경쾌한 음악이 흘러 나왔다.

“아참!”

게임 화면을 보던 유재원은 뭔가 하나 깜빡 잊고 있던 걸 상기했다. 바로 방해 금지 팻말이었다. 벌떡 일어난 유재원은 빠르게 뛰어 나가 팻말을 걸고는 제 자리로 돌아왔고, 그제야 게임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황금 같은 시간이었다.

다음 날인 일요일에도 유재원은 어제와 같은 스타일로 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강력한 존재의 등장으로 차질이 생겨났다.

“세상에! 자기 얼굴이 반쪽이 됐네?”

자신의 홀쭉해진 뺨을 두 손으로 잡고 쓰다듬는 티파니의 모습에 유재원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발을 동동 구르면서 걱정을 하는데, 사랑스럽고 고맙기도 했다. 다만 여기엔 약간의 오해가 있었다.

회사 일에 집중하느라고 얼굴이 좀 푸석해진 건 사실이다. 다만 겨우 몇 주 집중했다고 이렇게 얼굴이 반쪽이 된 건 아니다. 객관적으로 따진다면 어제 늦은 아침부터 시작해 밤새 게임을 했던 것이 더 큰 요인이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폐인 본능이 발동되어서 최근 출시된 여러 게임들을 모조리 다 해봤다.

니드 포 스피드부터 시작한 게임투어는 리턴 투 울펜슈타인을 거쳐 워크래프트를 지나서 최종적으로 울티마 온라인에 다다랐다.

확실히 싱글 플레이 게임보다는 온라인 게임의 몰입도가 상상 이상이었다. 최근 울티마 온라인에 추가된 콘텐츠는 레이드였다. 엄청나게 강한 몬스터를 팀을 이뤄 잡아내는 건데,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최신의 울티마 온라인이라도 유재원의 눈높이에 그래픽이나 게임 시스템의 수준은 완전 기초적인 것이지만, 사람들이 모여 게임을 하니 스토리가 절로 만들어졌다. 특히 이번에 나온 레이드는 최소 10명 이상 팀을 이뤄야 했고, 팀워크를 발휘해야 공략할 수 있는 탓에 그 재미가 배가되었다.

“주말에는 잠깐 쉬어도 괜찮잖아.”

이렇게 열심히 쉬었는데, 티파니는 쉬는 날에도 일한 걸로 착각까지 했다.

“그럼 괜찮지! 나도 푹 쉬고 있었다고. 그런데 여긴 어떻게 올 생각을 다 했어? 곧 시험기간 아니야?”

괜히 미안해진 유재원은 말을 돌렸다.

“응! 뭐, 괜찮아. 시험 망한다고 인생이 망하겠어?”

몇 달 지나면, 이제 4학년이 된다고 배짱을 부리는 티파니였다. 게다가 그녀의 배경을 생각하면 틀린 소리도 아니었다. 아무리 막 나가도 절대 망할 수가 없는게 티파니네 집이었다.

“그 말이 정답이네. 그런데 이 짐들은 다 뭐야?”

유재원이 가리킨 건 티파니와 함께 배달(?)된 꾸러미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호텔의 직원이 카트에 실어 따로 가져올 만큼 짐이 많았다.

“이거 다 자기거야. 김비서님에게 들어 보니 요즘 입이 짧아졌다면서?”

티파니는 바로 꾸러미들을 유재원에게 내밀었다. 뭔가 봤더니 웬 음식들이 가득했다. 평소 티파니네 집에서 자주 보내줬던 익숙한 음식들은 물론이고 한국의 밑반찬들도 있었다.

“세상에! 그래서 이걸 직접 만들어 온 거야?”

보온도 잘 해놨고, 비행기를 타고 와서 그런지 그릇에 온기가 남아 있었다.

“당연하지! 라고 하고 싶지만, 엄마가 반 이상은 했지.”

“고마워! 잘 먹을게.”

포장이 잘 되어 있는 것들은 냉장고에 넣고 아직 온기가 남은 건 조금 후에 점심으로 먹기로 했다. 그런데 아직 풀리지 않은 짐은 더 있었다.

“이건 뭐야?”

“그건 자기 앞으로 온 거야. 내가 오늘 오는 김에 김 비서님한테 들려서 받아왔어.”

유재원 앞으로 오는 짐들은 김대석이 처리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주말에는 김대석에게도 가급적 휴식을 보장했기에, 금요일 저녁이나 주말에 도착한 건 월요일에 받아보는게 보통이다. 센스 있는 티파니는 기왕 오면서 김대석에게 연락해서 같이 가져온 모양이다.

유나바머 사건 때문에 연루되기도 했던 유재원인지라, 소포 확인에는 신중했다. 그렇기에 김대석이 먼저 확인했다고 해도, 유재원 스스로도 다시 한 번 확인한 후에 개봉을 시작한다.

“어디 보자.”

제일 먼저 보는 건, 발신인으로 누가 보냈는지 확실하다면 의심은 반으로 줄어든다. 이 박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박스의 발신 국가는 일본, 보낸 사람은 쿠타라니 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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