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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 SPEED 010(3)
시범 서비스라는 소리에 막 설레는 유재원이다.
테스트 단계인 지금도 휴대폰 하나로 무척이나 편리해진 상태였다. 전화기를 쓰려고 유선 전화가 있는 곳까지 갈 것도 없고,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면 누구를 바꿔 달라고 할 필요도 없었다.
또한, 인터넷이 들어오지 않는 곳이라도, 휴대폰의 안테나가 뜨는 곳이라면 쉽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 덕분에 유재원은 테스트용 통신망이 있는 샌프란시스코와 다른 지역을 다닐 때의 기술적 체감의 차이를 너무도 확실히 느끼는 중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으면 21세기 초의 생활을 영위하다가, 다른 지역으로 가면 90년대를 사는 기분이다.
지금 있는 레드먼드에서 그걸 확실히 체감 중이다. 이동통신망이 없는 레드먼드에 있으니 티파니폰은 무용지물이었고, 덕분에 유재원은 한층 답답해졌다. 컴퓨터 앞에 있으면 ID톡을 할 수 있으니 그나마 좀 낫지만, 아무래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기엔 휴대폰이 딱 좋았다.
ID톡에도 음성채팅 기능이 있긴 한데, 다른 직원들 다 있는 사무실 안에서 그런 대화를 하기엔 무리였다. 이 때문에 티파니의 목소리를 들어본지는 좀 된 거 같다. ID톡으로 문자대화는 해도 음성채팅은 못했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결책은 간단했다.
미국이 전면적으로 2G 이동통신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CDMA방식을 쓸지, GSM 방식을 쓸지 아직도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자국에서 만들어진 CDMA가 상용화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미국이 결정을 하는 건 대규모 테스트가 이뤄진 다음인데, 그게 바로 한국의 케이스였다.
세계 최초로 한국이 CDMA 방식의 이동통신을 상용화하면, 미국도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ID 그룹도 본격적인 모바일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다.
“우와, 반가운 소식이네요. 그러면 시범 서비스는 서울에서만 하나요?”
-그래! 원래는 경기도권 전체를 시범 서비스 지역으로 삼으려고 했는데, 신세기 쪽에서 준비가 미비하다고, 서울로만 하자고 하잖아.
“아, 그래요? 하긴, 서울만 해도 인구가 천만 명이 넘으니 여기만 해도 테스트는 충분하겠네요.”
1994년 서울의 인구는 1,100만 명이라는 무시무시한 숫자를 자랑했다. 지형적으로도 이동통신을 테스트하기에 좋았다. 도심지는 빌딩숲으로 빽빽하기도 하고, 조금만 밖으로 나가면 남산이나 북한산이 있다.
-에잉, 그러게 우리처럼 돈을 팍팍 써서 기지국을 많이 세웠어야지. 돈은 안 쓰고 돈만 벌려고 한다니까.
이용권 사장은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신세기 통신을 비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세기 통신 측에서 시범서비스 지역 축소를 강하게 요구했던 건 값비싼 중계기를 들여오는 속도가 TG 모바일보다 한참이나 느렸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포철과 코오롱이라는 두 회사의 합작이다 보니 의사결정 속도가 무척이나 느렸다.
-요즘 정부가 돌아가는 낌새가 이상해.
“예? 거기 분위기가 어떤데요?”
-아무래도 통신회사 하나가 더 생길 것 같다.
이용권 사장의 말에 유재원은 짐작 가는 게 있었다.
“한국이동통신이 민간에 매각될 거 같다는 분위기라는 거죠? 유력한 매수자는 아무래도 선경이 될 거고요.”
-헉! 어떻게 알았니? 내가 그거 알아내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역시 정권 실세답구나!
이용권이 크게 오해했다.
비선실세라니! 무척이나 거북한 소리였다. 그나마 있는 선은 전명헌 총리와의 친분 하나였고, 김 대통령의 문민정부와는 이어지는 건 하나도 없다. 김 대통령 그리고 김 대통령의 아들인 김영철과 대화 몇 번 했는데, 그걸로 비선실세 소리를 듣는 거라면 수백 명은 나올 것이다.
당연하게도 유재원이 한국이동통신 매각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는 건, 기억의 궁전 덕이다. 노 전 대통령 시절, 어렵사리 이동통신 사업권을 따낸 선경그룹이었는데, 특혜 시비로 울며 겨자 먹기로 반납했다.
그러나 이동통신 사업에 대해선 절대 포기하지 않았고, 그 노력이 한국이동통신의 민영화와 전격적인 인수로 나타난다.
나중에는 이동 통신 사업부를 떼어 준 한국통신이 2G 통신회사인 KTF를 또 따로 차려서 4파전이 펼쳐진다.
물론 선경그룹은 이런 상황도 충분히 억울할 것이다.
원래 2G 통신서비스 사업을 따낸 건 자신들이었는데, 괜한 특혜시비로 토해 내야 했고, 한국이동통신이라는 1세대 무선통신 사업체를 인수해 진출하는 것으로 돌아가야 했으니 말이다. 한국이동통신이라는 건 아날로그 무선통신 업체인지라, 활용할 수 있는 건 주파수 하나였고, 모든 통신 설비는 새롭게 설치해야 했다.
“음영지역 커버는 확실히 하셨죠?”
-그럼! 빌딩 숲에서도, 산에서도 빵빵 터진다!
“지하철은요?”
-지하? 음, 거긴 아직 무리지……. 중계기 덩치가 커서 지하에 놓을만한 게 없더라.
중계기 덩치가 문제가 아니라, 돈이 문제다.
서울의 지하철역은 수십 개나 되고, 거기에 죄다 중계기를 까는 건 어려운 일이었으니 말이다. 이와 비슷한 문제가 터널이다. 터널 안에 들어가면 통화권 이탈로 통신이 두절되는 건 기본이었다.
그나마 통화권이 이탈되었다고 통화가 끊기는 건 소프트웨어적으로 방지해 놓았다. 상대방이 전화를 끊지만 않으면 수신률이 복귀되자마자 통신이 재개된다. 예전엔 아예 통화가 끊어져서 다시 전화를 걸어야 했는데, 그걸 방지한 것만으로도 불편함이 상당히 해소되었다.
여하튼, TG 모바일은 돈이 철철 넘치는 사업체였고, 기술적으로도 제일 앞서 있는 기업이었다. 또한, 유재원의 날카로운 조언까지 주어졌기에, 헛발질 자체를 하지 않았다.
단말기도 소비자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다양한 형태로 준비했고, 한국의 특징인 산악지형에 강하다는 말을 쓰기 위해서 커버리지 확장에도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식별번호는 꼭 통합을 해야 하는 거냐?
다만 이용권 사장이 유재원의 조언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건 아니고, 지금처럼 본인이 이해하지 못한 것은 몇 번이고 다시 물어봤다.
유재원은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아무리 옳은 의견이었다고 해도 무조건적인 수용은 결국 탈을 부른다. 지금이야 유재원의 방안이 찰떡처럼 딱 붙는 것들이지만, 조금만 시간이 더 지나면 어떻게 될 지는 유재원도 모른다.
함께 고민해보기 위해선 질문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 답을 찾기 위해서라도 유재원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그렇게 생각이 쌓일 수록 실수가 적어진다.
“음, 저는 의견을 드리는 것뿐이에요. 결정은 사장님이 하셔야죠.”
이용권이 전화를 건 용무도 시범서비스 시작일을 알려주는 것도 있겠지만, 식별번호에 대해 다시 물어보기 위함이 더 큰 모양이다.
유재원은 휴대폰 식별 번호를 처음부터 010 하나로 통합하는 걸로 하자고 했다. 이용권은 식별번호에 대해 딱히 생각은 없었던 것 같은데, TG 모바일의 다른 임원들이나 연구소의 의견은 독자적인 식별부호로 다른 통신회사와 차별화를 두는 게 좋을 거 같다는 의견이 높은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TG 모바일은 조금 전 이용권 사장이 자신한 것처럼 폭넓은 커버리지를 준비했다. 당장 경기도권을 커버할 수 있고, 조금만 더 있으면 부산, 광주, 대전 등의 주요 대도시도 서비스 가능 했다.
TG 모바일의 로드맵에 따르면 행정구역 중 ‘시’이상의 도시를 완전히 커버할 수 있는 시점을 95년 말, 늦어도 96년 초로 잡았으니, 다른 통신회사들보다 몇 배는 더 빠른 속도였다. 이를 위해 중계기도 엄청나게 주문해 놓았고, 중계기를 설치할 땅도 촘촘하게 사놓았다.
중계기를 설치할 땅을 사면서 목 좋고, 발전 가능성이 있는 땅도 겸사겸사 매입하면서 TG 모바일의 자산 중에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확 늘었다. 물론 발전 가능성이 있는 땅이란 수도권 위주였다.
어쨋든, TG 모바일의 마케팅 부서는 식별번호 자체를 브랜드화 시키려는 모양이다.
유재원은 그게 바람직해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통합한다고 큰 혼란이 일어났던 걸 생각하면, 그냥 처음부터 010이라는 번호 하나로 시작하는 게 낫다.
“식별 변호를 브랜드화 시키면 편하죠. 숫자 하나로 완벽하게 구분되니까요. 그런데 그게 위험해요.”
-응? 뭐가 위험하다는 거니?
“식별번호나 주파수나 다 임대해서 쓰는 거잖아요. 그말인 즉, 정부는 쉽게 회수해갈 수 있다는 이야기죠.”
-설마, 그러기야 하겠니? 지금이 군사독재 시대도 아니지 않느냐?
“흐흐, 설마가 사람 잡는 법이죠.”
010 통합이 이뤄진 이유는 귀한 식별번호가 통신사들에게 부여되면서 활용할 수 있는 번호들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또한, 프리미엄 번호라고 인식되는 특정 번호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다른 업체들의 반발이 심해졌다.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라면 통신사를 쉽게 변경할 수 있어야 하는데, 식별 번호가 특정 회사에 묶여 있으면 사용자의 전화번호를 교체해야 하는 불편함까지 감수해야 한다. 앞자리 번호가 싹 바뀌니 본인의 전화번호가 등록된 모든 걸 사용자가 일일이 교체해야 했다.
010 통합 번호를 사용하면 그런 불편함 없이 손쉽게 번호 이동을 할 수 있다.
-음, 임대라. 확실히 주파수나 번호는 임대 형식이긴 한데……. 그래도 사용자들에게 풀리기 시작하면 회수하는 건 어렵지 않겠니?
011이라는 번호가 보통 좋은 건 아니니 이용권은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뭐, 2G 규격을 쓸 때는 그렇죠. 그런데 통신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거든요. 나중에 3G도 나오고 4G도 나올 텐데, 그때 정부에서 3G는 무조건 010 번호로만 개통시키라고 하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게다가 2G이후의 통신 규격은 사용하는 주파수도 달라요. 주파수 임대를 무기로 강제하면 회사들은 따를 수 밖에 없죠.”
-3G? 4G? 아, 그렇구나!
유재원의 지적에 이용권은 비로소 이해했다.
800MHz대역은 낙찰도 받고 사용료도 내고 있어서 TG 모바일이 걸릴 건 없다. 현재 체신부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인식조차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미래를 따져 보니 유재원의 말에 설득이 되는 이용권이었다.
다만 통합 식별번호는 아직 업계에서는 논의되지 않은 사안이었다. 하지만 이용권이 생각해 봤을 때, 다른 회사들이 거부하진 않을 거 같았다. TG 모바일이 이동통신사업을 준비하면서 쓴 돈은 수천억 원에 이를 정도로 컸다. 덕분에 커버리지 면적에서 다른 업체들과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TG 모바일이 먼저 통합 번호를 주장하면 다들 웬 떡이냐 하고 받을 것이다. 만에 하나 거부하는 회사가 있다면 거긴 머리를 굴리지 못하는 회사라고 봐도 무방하다.
“마케팅 문제는 그냥 숫자 앞에 TG 모바일만의 느낌을 부여하는 단어를 결합하는 걸로 충분할 거예요.”
이동통신회사들의 마케팅이란 그야말로 요란스러웠다.
본질은 휴대전화 서비스였고, 부가서비스로 문자나 데이터 통신을 제공하는 정도였다. 물론 그러한 통신 서비스가 인터넷과 만나면서 어마어마한 화학작용을 일으켜 다양한 분야에서 온갖 혁명적 변화를 일으켰지만, 본질은 휴대전화였다.
-음, 감각적인 단어라.
“휴대전화의 최고 덕목은 반응 속도잖아요. 어디에서나 전화를 받고, 전화를 걸고 싶을 때 어디서든 걸고. 빌딩숲이나 산속이나 거는 건 부수적인 일이지요.
이용권 사장이 아직 감을 잡지 못한 것 같아서 유재원은 부연 설명을 이어줬다.
-그렇지. 그러면 언제 어디서나 010으로?
이용권 사장님이 카피라이터는 아니다 보니, 엄청난 힌트를 주었음에도 본질 자체를 확 뚫는 단어를 잡아내지 못했다.
“스피드요, 스피드.”
반응 속도, 전송 속도 등등.
이동통신 분야에서 무슨 속도든 빠르면 좋다. 그러한 속도가 곧 TG 모바일의 최대 강점이라는 걸 인지만 시키면 2G 마케팅은 끝나는 것이다. 이렇게 확실히 시장을 선점한 후에, 멤버쉽 마케팅이라든지, 부가 서비스 마케팅을 시작하면 된다.
-스피드 010?
“네, 바로 그거죠!”
돌아가는 것 없이 대놓고 말해주니 이용권 사장도 바로 이해했다. 그리곤 스피드 010을 몇 번 되내이는데, 점점 목소리가 커졌다. 이용권 사장은 TG그룹에 생소한 이동통신 사업을 시작하면서 크고 작은 여러 어려움을 돌파하면서 난제를 해결하며 전문가 수준에 이르렀다. 덕분에 스피드 010이라는 의미나 어감에 담긴 매력도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식별번호 논의는 이걸로 끝이었다.
TG 모바일은 고유의 식별번호 대신 이동통신사 통합인 010을 주장하기로 했고, 스피드 010이라는 이름의 마케팅 작업도 준비하기로 했다.
“아참, 티파니폰은 몇 대나 준비할까요?”
-잠깐만!
마지막 남은 건 티파니 폰이었다.
뭐니뭐니해도 시장을 선점하는 것처럼 좋은 마케팅 방법은 없다. 불모지라면 모 아니면 도의 결과가 나오겠지만, 이동통신처럼 성공이 확실한 분야라면 시범 서비스 단계부터 대대적인 마케팅을 하는 게 좋았다.
-음, 1천 대면 어떻겠니?
잠깐 말이 없었던 이용권 사장은 1천 대를 불렀다.
“1천대요?”
유재원은 반문이 절로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예상했던 숫자와는 너무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단위 자체가 달랐다. 유재원은 만 단위였는데, 이용권은 천 단위다. 게다가 천 단위 중에서도 제일 작은 1을 불렀으니, 유재원이 당황했다.
-아아, 티파티 폰을 딱 1천 대만 산다는 게 아니라, 이번 시범 서비스 한정으로 1천 대면 충분할 것 같다는 소리다.
이동통신 가입 희망자 숫자는 많았다.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6% 후반대라는 무시무시한 숫자를 꾸준히 달성 중이었다.
건설쪽은 언제나 파란불을 켜며 눈 깜짝할 사이에 도시 하나를 뚝딱 만들어냈고, 그렇게 생긴 신도시에 입주민들이 순식간에 들어와 상권을 형성했다.
제조업 분야에서도 매출 성장률은 최고치를 그리고 있었다.
전통적인 철강 분야나 시멘트부터, 대규모 산업에 영향력을 끼치는 자동차 분야도 고공 행진 중이었다. 미래 자동차는 생산량을 갱신 중이었고, 부산에 짓고 있는 일성 자동차 공장도 빠르게 완공 중이었다.
일성의 경우 아직 자동차 생산도 안했는데, 예약된 숫자만 수천 대를 넘었다고 했다.
미래나 대호 등의 국내 자동차 생산 업체의 탄탄한 점유율을 뚫기 위해 과감한 프로모션을 진행 중이었는데, PK지역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자동차 공장을 작년 가을쯤에 올리기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예약이라니. 일성자동차 초기에는 부품을 죄다 일본에서 가져와 조립만 했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이런 속도가 가능할 줄은 몰랐다.
이처럼 가파른 경제 성장만큼, 비즈니스의 규모도 커졌고 그만큼 이동통신 서비스에 대한 수요도 많아졌다.
-시범서비스는 통신사마다 대충 5천명 정도씩만 할당을 줄 거라고 해서 말이다.
역시나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정부는 이동통신 사용자 숫자를 한정한다음 면밀한 환경평가를 진행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존 시스템과의 문제도 따져 보는 일도 병행할 것이라고 한다. 수많은 무선기기들 사이에 혼선이나 장애가 발생하지 않는지, 군사용 통신망과 문제는 없는지 보려는 목적도 있었기에 가입자 숫자를 한정했다고 한다.
TG 모바일의 자체 조사 결과 전체 5천 명 중에 20% 정도는 티파니 폰을 선택할 거라는 데이터가 있어서 이를 기반으로 1천 대를 주문하겠다고 말한 이용권 사장이다.
“음.”
유재원은 짧게 생각에 잠겼다.
1천대면 공장 한 번 돌릴 분량이었다. 모뎀 칩, LCD 패널, 다이얼패드 등의 주요 부품은 제조사로부터 1천개 단위로 주문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유재원의 마음에 내키진 않았다.
처음부터 강렬한 임팩트를 선사 해줘야한다. 당연히 티파니 폰은 이제 막 제품이 나오는 2G용 휴대폰들 중에 최고의 성능, 최고의 디자인을 자랑한다. 그리고 그만큼 비싸다.
최종적으로 결정된 1대당 공급가격은 한국 돈으로 50만 원, 미국 달러로는 650달러로 책정했다. 액정화면 없이 통화 기능만 있는 기본형 PCS폰이 10만원 중반 대이고, 문자나 주소록 정도만 확인하고, 게임은 전혀 못할 커다란 픽셀의 흑백 LCD가 달린 모델은 20만원 초반이다.
가격만으로는 경쟁사를 능가할 수는 없고, 뛰어난 기술이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이를 통해 프리미엄 폰 자리를 확실히 차지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대중의 인식이 필요하고, 그러자면 많이 보여줘야 한다.
“그러면 시범 서비스 기간 한정해서 원가에 드릴 테니, 대신 5천 명 전부를 티파니폰으로 공급하시지요?”
계산기를 두드려 본 유재원은 과감한 배팅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