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341화 (341/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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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 SPEED 010(2)

-저는 국제수학연맹 회장 장 피에르입니다.

중저음의 신사가 말하는 영어 발음이 너무 좋아서 영국인인 줄 알았는데, 이름을 들어보니 완전 프랑스식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다다음 달, 8월 10일에 스위스 취리히에서 세계수학자대회가 열리는데, 그곳에 회장님을 초청하고자 전화를 드렸습니다.

“영광이네요. 그런데 제가 무슨 역할을 위해 초청된 건가요?”

유재원은 날카로운 직감을 통해 장 피에르 연맹 회장이 전화한 이유에 대해서 짐작은 했지만, 확실히 듣고 싶어서 대놓고 물어 보았다.

-당연히 수상자 자격이지요. 축하합니다,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하신 공로로 1994년 필즈상으로 선정되셨습니다. 세계수학자대회에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시면 큰 영광이겠습니다.

추측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기쁨도 컸고,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유재원이 일필휘지로 써낸 수식들은 비록 21세기 중반에 나온 기술특이점을 넘은 인공지능이 만든 지식이었다. 덕분에 원래의 증명자인 그레고리 페렐만이 사용한 방식과는 상당히 다르다. 하지만 페렐만이 차지할 영광을 먼저 선점했으니 약탈자 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저야 말로 영광이네요. 당연히 가야죠.”

-하하!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한결 편안해지네요. 요즘 회장님이 워낙 바쁘시다고 해서 혹시나 못 온다고 하실까봐 걱정이 많았거든요.

수화기 너머로 안도의 한숨과 함께 톤이 달라진 장 피에르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혹시나 유재원이 안 받겠다고 할까봐, 아니면 바빠서 참가하지 못할 것 같다는 말이 나올까 걱정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유재원은 꼭 참가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바로 병역 면제 때문이다. 작년 통일 국민당 주도로 병역 면제에 대한 조항들이 병역법이 명시 되었다. 사실 이전까지 병역 면제 관련 법적 조항은 대통령이 정한 시행령에 따르는 것이었는데, 그때 병역법의 세부 조항으로 확정이 된 것이다.

기존의 시행령을 법조문으로 만든 것이라 크게 혼란은 없었다. 대신 예체능에 편중되었던 면제 조항이 기술입국이란 명분으로 학계에도 확대되었다. 노벨상을 대표로 이와 비슷한 권위를 가진 다른 저명한 상을 수상한 자에 한해 병역을 면제한다는 내용이었다.

노벨상과 비슷한 권위의 상에 대해서도 명시되어 있는데, 여기에 필즈상이 있었다. 전명헌의 장담대로 확실하게 이뤄졌다.

“아,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뭔가요? 제가 말해드릴 수 있는 거라면 무엇이든 말해드리겠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 말고 다른 수상자들은 누구인지 궁금하네요.”

필즈상은 단독 수상이 없다.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세계수학자 대회였지만, 수상자는 매년 뽑고, 4년마다 시상을 한다는 게 불문율이었으니 말이다.

-아, 유재원 회장님 말고 아직 결정된 사람은 없습니다. 회장님이 제일 먼저 선정되셨고, 연락을 드리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유재원의 목소리에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다. 펠렐만처럼 자신으로 인해 원래 1994년 필즈상을 받아야 할 사람이 또 밀려났을 텐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밀려났다고는 해도 그가 연구한 성과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으니, 다음에 필즈상을 받을 확률이 매우 높지만, 미안한 건 사실이다. 그 미안한 마음에 대해 성의를 표시하는 연구 후원이라도 해드리고 싶어서 물어봤던 것이었다.

페렐만의 경우엔 어마어마한 잠재력이 있던 수학 인재였는데, 그 폐쇄적인 성격에 큰 빛을 못 보고 세상을 떠난 사람이었다. 그의 폐쇄적 성격은 러시아 붕괴로 인한 사회보장장치 붕괴 이후 한층 강화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니 러시아의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페렐만을 모스크바 하이테크 연구소에 자리를 준다거나, 아니면 연구 후원을 해서 이전과 같은 은둔형 연구자가 되지 않도록 해줄 작정이다.

-그래서 말인데, 8월 1일까지 수상자 선정에 대해서 비밀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네, 물론이죠.”

-유 회장님의 업적은 워낙 대단하니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강제할 사항은 아니고, 비밀이 지켜지지 못했다고 해도 취소되는 일은 없습니다. 다만 여러 모로 번거로워지기에 부탁드립니다.

“당연한 말씀이네요. 저도 지금 할일이 태산처럼 쌓인 상태인데, 여기서 귀찮아지는 건 사양이네요.”

-예, 그러면 일정이나 의전에 대해서는 8월 초에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스위스에서 뵙겠습니다.

“네, 그때 뵙겠습니다.”

통화를 끊은 유재원은 수화기를 옆에서 대기 중이던 김대석에게 돌려줬다. 유재원의 목소리도 컸고, 전화기의 음질도 좋아서 옆에 있으면서 통화 내용은 다 들었을 것이다.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한국식 영어공부로 겨우 읽기만 가능했던 김대석이지만, 지금은 사투리가 심한 사람이 아니면 다 알아 들을 정도다.

필즈상 수상 소식도 확실히 알아들었기에 김대석의 얼굴은 잔뜩 상기된 표정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8월 1일까지 엠바고라는 소리도 확실히 들었기 때문이다. 김대석의 무거운 입은 유재원이 잘 알고 있기에, 따로 당부할 이야기는 없었다.

다만 소식을 듣고 제일 좋아하실 부모님께 바로 전해드리지 못한 게 아쉬운 유재원이다. 하지만 두 분 모두 자식 자랑을 삶의 낙으로 삼고 계신 터라, 연락을 드리면 1시간도 되지 않아 동네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다 나고, 그러면 기사화되는 건 시간 문제였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곧 5월의 마지막 주가 되었다.

지쳐가던 차에 장 피에르 연맹 회장의 전화로 활력을 얻은 유재원은 프로그래밍에 한층 탄력을 붙였다.

단순히 느낌만으로 그렇다고 하는 게 아니라, 예상한 일정보다 최소 10일정도 빨라졌다.

이러한 성과는 유재원의 능력이 절대적이었지만. 알파팀을 비롯한 안드로이드 사 개발진들의 헌신과 노력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다들 유재원이 보여준 리더십에 따라 열심히 따라와 주었다.

특히 프로그래밍 문법과 프로세스에 대해서 강하게 가이드라인을 주었는데,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유재원의 방식을 따르기로 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프로그래밍 문법이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제작하는 데 사용하는 C언어를 멋대로 수정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안드로이드 사는 아직 자체적인 개발자 도구를 만들지 않았다. 단지 유재원이 만든 안드로이드용 컴파일러와 라이브러리가 있을 뿐이다. 리본인터페이스, 동적 메모리 관리, 안드로이드 파일 시스템 등등의 안드로이드를 구성하는 핵심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라이브러리도 다 공개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라이브러리나 컴파일러의 수준은 경쟁사들의 것보다는 몇 년은 앞선 수준을 자랑했다. 게다가 컴파일러와 라이브러리의 주인은 안드로이드 사였지만, 개인이나 회사 모두 비영리적이든, 영리적이든, 원본을 수정하지 않는 활용이라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저작권을 설정해 놓은 물건이었다.

덕분에 이를 지원하는 엔터프라이즈급 개발자 도구부터, 단순한 프로그래머용 에디터까지 우후죽순 출시되어 안드로이드의 생태계를 만들 고 있었다.

컴파일러는 완벽하게 표준 C언어를 따르기에, C언어 구문을 배웠다면 따로 익혀야 할 문법은 없다. 그렇지만 표준화된 문법이 있다고, 모든 사람들이 다 이를 따라서 글을 쓰는 게 아니 듯, 프로그래밍도 개발자마다 개성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

ID 그룹에 개발자 직군으로 입사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건, 프로그래밍 규칙을 지키는 것이었다.

함수 이름이나 변수 이름을 설정하는 방법부터, 다양한 괄호를 어떻게 열고, 닫는 지까지도 세세하게 규정했다.

이에 대해서 신입이건 경력이건 예외는 없다.

이를 위해 예제로 활용하는 게 ID 오피스의 소스코드다. 이걸 보고 앞으로 제작하는 모든 소스코드를 똑같은 스타일로 작성하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안드로이드 사의 경우엔 MS로부터 그대로 고용승계된 프로그래머들이 많았다. 덕분에 유재원이 규정한 가이드라인이 잘 지켜지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유재원은 본인의 방식을 안드로이드 사의 개발진에 확실하게 정착시키는 것이다

당연히 약간의 반발은 나왔다.

소스코드 모양이 어떻든, 컴파일 후에 잘만 돌아가면 되지 시시콜콜하게 그런 것까지 따져야 하느냐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주장을 굽히지 않은 이들 몇은 알파팀에서 나와야 했다. 억지로 퇴사를 강요하는 건 아니지만, 알파팀 일반 개발부서로 내려가야 했는데, 이러한 강등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들이 몇 명 있었고, 결국 퇴사 했다.

이렇게까지 유재원이 일체성을 강조한 건, 범용성과 생산성을 위해서였다. 누가 보더라도 소스코드가 의미하는 바를 파악할 수 있어야 했고, 수정도 가능해야 했다. 그리고 한 번 작성된 소스코드가 있으면 몇 번이고 재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나중에 PC건 스마트폰이건, ioT가 탑재된 가전제품이건 똑같은 소스코드로 작동이 되는 가상머신 플랫폼도 내놓을 예정이다. 그러니 범용성이 좋은 소스코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문법 칙을 잘 지키는 게 중요했다.

유재원이 그리는 큰 그림에는 당연히 인공지능이 있다. 궁극적으로 프로그래밍이라는 일자리도 인공지능이 대체할 테지만, 그건 먼 미래의 일이고 초기엔 인공지능이 프로그래머를 도와주는 형식이 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프로그래머를 돕는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엄청나게 많은 학습을 해야 하는데, 당연히 프로그래머가 만든 소스코드를 가지고 학습한다. 그런데 소스코드가 엉망이면 학습 효율도 엄청나게 떨어진다.

전생에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유재원은 아예 처음부터 그런 문제가 나타나지 않도록 강력한 가이드라인을 내린 것이다.

카리스마가 부족한 사람이 내린 지시였다면, 엄청난 반발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재원이 보여준 성과가 대단했기에, 딱 두 명이 퇴사하는 선에서 끝이 났다.

이뿐만이 아니라 프로그래머가 작성한 소스코드를 마스터 코드로 확정하는 프로세스도 약간의 수정을 가했다.

이제까지는 각 팀장들이 확인했고, 그렇게 승인된 코드는 개발자들이 접속할 수 있는 전용 서버에 업로드 되었다.

개발자 서버는 외부의 인터넷과 연결되지 않은 폐쇄된 네트워크였고 접속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도 엄격하게 관리되는 시스템이었다. 대신 개발자들은 회사 안에서 쉽게 접속해서 본인이 맡은 파트의 개발 진척 상황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소스코드에 접속한 사람, 수정한 사람도 시간으로 추적되었기에, 개발 일정을 관리하는 데 있어 편리했다. 안드로이드 사에서 만든 건 아니고, 넥스트컴에서 빌려온 시스템인데, 편리성 덕분에 마일스톤 관리 소프트웨어가 없어도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서버에는 안드로이드 알파부터, 현재 개발 중인 베타5 버전까지 모든 안드로이드 소스코드가 다 들어 있었다.

개발자의 등급별로 접근할 수 있는 소스코드는 제한되어 있긴 한데, 이를 통해 예전 코드를 참조해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다.

물론 팀장이라도 자기가 담당하고 있는 파트, 혹은 그와 연관된 리소스 정도였고,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전체 소스코드를 다 살펴볼 수 있는 권한은 한손에 꼽을 만큼 적은 사람에게만 주어졌다.

유재원도 이 서버에 접속할 수 있는 아이디가 있다.

당연히 소스코드 전체를 볼 수 있는 최고 등급을 가진 것이었고, 이를 통해 유재원은 베타5의 중요 소스코드를 모두 열람해서 현재의 단계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여기에 유재원은 한 단계를 더 추가했다.

팀장이 골든행을 결정짓는 게 아니라, 본인 앞으로 코드를 보내도록 말이다.

안드로이드 사에서 하루 사이에 완성되는 소스코드 분량이 엄청난데, 그걸 다 유재원이 확인하고 골드행이 될지, 아니면 보충할지 결정하겠다고 했다.

이러고 싶진 않았는데, 팀장들의 눈높이와 유재원의 눈높이 사이에 괴리가 커서 어쩔 수가 없었다.

알파팀에선 우려가 컸다. 팀장 검토만 받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는데, 이젠 유재원까지 신경을 써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려했던 일은 없었다.

오히려 개발 속도는 더 빨라졌다. 답답한 유재원이 반쯤 만들어진 걸 몇 시간만에 뚝딱 완성하기도 했고, 쉽게 풀리지 않았던 문제를 슬쩍 보고 해결방법에 대한 코멘트를 달아 놓기도 했기 때문이다.

유재원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에 몇 배로 비례해서 개발 속도가 단축되는 것도 당연했다.

동시에 알파팀이나 안드로이드 사의 프로그래머들의 실력도 쑥쑥 올랐다. 유재원에게 탈탈 털리면서 본인의 잘못을 인식했고,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담긴 소스코드와 코멘트를 보면서 어디에서도 배우지 못하는 값진 경험을 쌓게 되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일은 유재원이 이렇게나 열심히 차기 안드로이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는 소식이 시장에 알려지자 안드로이드 사의 주가가 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오늘은 주당 37.75달러까지 올랐습니다!

덕분에 신이 난 건 케빈 존슨 사장, 그리고 빈센트 그린힐이었다.

안드로이드 상장 후 30달러 중반 대까지 올랐던 안드로이드 사의 주가는 이후 별다른 모멘텀을 찾을 수 없어서 서서히 하락하기 시작해 30달러 벽이 무너지기도 했다.

대기업들의 컴퓨터 출하량은 꾸준히 늘고 있으니, 안드로이드 사의 매출도 늘어나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익숙해진 뉴스라서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는 능력이 사라져버렸다. 오히려 한국이나 중국 등 동아시아 신흥 개발국들의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율이 높고, 그중에서도 제일 많이 복제되는게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라는 발표가 나오면서 주가가 하락 반전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재원이 차기 안드로이드 개발에 전념하기 위해 레드먼드에 왔다는 뉴스가 크게 터지면서 5월 초부터 랠리를 시작하더니 오늘 전고점을 돌파해 최종적으로 37.75 달러로 마무리 했다고 한다.

주가를 관리해야 할 케빈 존슨이나, 시중에 풀린 안드로이드 사의 주식을 대량 매입하도록 지시했던 빈센트 그린힐에게나 너무도 좋은 소식이었다.

-재원아! 7월 15일이다!

좋은 소식은 또 있었다.

이번엔 바다 건너, 한국에서 날아온 소식이었다. 바로 TG 그룹의 이용권 사장이었다.

“예? 뭐가 7월 15일이라는 거예요?”

-PCS 시범 서비스 말이다! 드디어 7월 15일로 잡혔다!

PCS라고 하니 살짝 낯설었지만, 이내 유재원은 그게 한국에서의 2G무선통신의 이름이라는 걸 상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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