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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 울티마 온라인(12)
-네, 회장님, 리처드입니다!
근무 시간이라 그런지 쪽지를 보내니 바로 응답이 왔다.
“잘 지내셨어요?”
유재원도 반갑게 안부부터 물었다.
-그럼요! 회장님이 다녀가신 후로 다들 목적의식이 확실히 생겨서 눈에 불을 켜고 있지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성대화가 아닌 문자 채팅으로 이뤄지는 대화였지만, 리처드의 쾌활한 목소리가 그대로 전해지는 듯 했다.
유재원은 자신의 돈이 어떻게 쓰이고 있고, 게임은 얼마나 잘 만들어지고 있는지 직접 가서 확인한 것인데, 리처드 개리엇이나 그의 개발진은 유재원의 방문을 훨씬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유재원이 내준 피드백에 대해 적극 수용하고 구현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리처드의 어필이었다.
덕분에 유재원도 용건을 꺼내기 쉬워졌다.
“다름이 아니라 울티마 온라인 개발에 있어서 적절한 아이디어 하나가 생각이 나서 말이지요. 한 번 들어 보실래요?”
-당연히 경청해야죠!
“억지로 강요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회장님이 보여주신 게 있으니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하하, 그렇게 말씀하시니 부담이 커지네요. 얼리 액세스라는 정책을 울티마 온라인에 적용해 드리고 싶어서요.”
얼리 액세스.
지하철 공사장에서 어쩌다 보이는 선개통 후완공과 같은 개념을 게임에 적용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베타테스트보다 더 일찍 게이머들에게 게임을 공개해서, 피드백을 빠르게 받는 정책을 의미한다. 베타테스트의 경우엔 말이 베타테스트이지 게임의 전체 개발과정에서 놓고 보면 거의 완성이 된 상태였다.
게임이 다 만들어진 상태이니 이 단계에서 들어오는 피드백은 즉각 적용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얼리 액세스라는 건 그보다 훨씬 빠른, 알파 단계에서 게임을 공개해서 게임에 즉각 적용할 수 있는 피드백을 얻는 것이다.
게임을 막 만드는 단계였으니, 피드백이 오면 즉각 게임 개발에 적용할 수 있다.
-오! 괜찮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리처드 개리엇도 바로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개발자 입장에서는 나쁠 게 하나도 없는 정책이니 말이다. 또한 얼리 액세스 권한은 공짜로 뿌리는 게 아니고, 정가보다는 저렴하긴 해도 돈을 받고 권한을 주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미완의 게임을 사서, 피드백까지 열심히 주려는 사람이 많을까요?
다만 리처드 개리엇은 얼리 엑세스 정책을 긍정한 것과는 별개로 약한 소리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울티파 8이 쫄딱 망하면서 하늘을 찌르던 리처드의 자신감도 금이 갔던 탓이다.
울티파8을 개발할 때는 정말 100% 성공할 거라고 확신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판매량은 전작의 반의 반토막으로 줄었다. 반면 개발비는 7에 비해 2, 3배는 늘어났으니 잘 나가던 오리진 시스템이 순식간에 기울어졌을 정도다.
“그럼요! 울티마 시리즈에 대한 충성도 높은 게이머들이 많잖아요. 그 분들은 분명 온라인판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일 겁니다. 게다가 얼리 엑세스 티켓 숫자를 한정해서 푼다면 더욱 격한 반응을 보이겠지요?”
-숫자를 한정한다고요?
TJ소프트의 이른 등장, 게다가 상상 이상으로 빠른 혈맹 게임의 발매 속도에 유재원이 얼리 액세스를 꺼내든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울티마 온라인의 완성도는 베타테스터를 하기엔 무리였다. 고레벨 사냥터와 마법 시스템, 소환 시스템이 미비하고 메인 퀘스트 개발도 반 밖에 안 된 상태이지만, 여러 사람들이 접속해서 롤플레이를 하는 정도는 충분했다.
여기에 숫자를 한정하는 건 희귀함을 높여 네티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함이다.
울티마8이 쫄딱 망하긴 했어도, 울티마 시리즈의 팬층은 무척이나 두터웠다. 더욱이 애플이 개인용 컴퓨터를 출시할 때부터 시작한 장구한 역사를 가진 시리즈물이었기에, 울티마의 연령층은 일반 게이머보다 높았다.
“그리고 게임의 결제 방식은 월 결제로 하시죠?”
-매달 접속료를 받으라는 말씀이십니까?
“네! 24달러 정도면 적당할까요? 얼리 액세스 단계에선 반값으로 해드리죠.”
평균 연령이 높다는 건 그만큼 구매력이 있다는 말이었다. 매달 접속비를 내야 하는 방식은 보통의 게이머들에게 낯선 방식이겠지만, 머드 게임을 즐긴 PC통신 사용자라면 매우 익숙한 방식이었다.
24달러라는 요금도 분당 30원씩이나 했던 머드게임에 비하면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이었다. 더욱이 얼리 액세스는 반값으로 해주니, 반응이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한 상황이다.
“언제 시작할 수 있을까요?”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바로 실무진을 불러 확인하겠습니다.
유재원의 물음에 리처드 개리엇이 바로 움직였다. 답변이 온 건 그로부터 대략 5분이 지난 후였다.
-아, 회장님. 안타깝게도 당장 시작할 수는 없겠습니다.
매우 곤란한 느낌의 대답이 날아왔다.
이유를 알아보니 단순했다. 본 게임을 만드는 데 바빠서 사용자를 관리하는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과 결제 시스템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그거라면 제가 해결해드릴 수 있죠. 넥스트컴에 원클릭 결제 시스템이 있잖아요.”
-어라? 그건 쇼핑몰에만 되는 게 아니었나요?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모든 결제를 다 지원합니다. 덤으로 파워풀한 회원 관리 시스템도 있지요.”
넥스트컴캐스트의 사업 영역은 생각 이상으로 방대했다.
넥스트컴이라는 포털과 유선 케이블, ADSL과 인터넷 전용선 같은 광대역 인터넷 통신 사업이 대표적이지만, 세부적으로 따져 보면 엄청나게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있다. 이중에 원클릭 결제 시스템이나 회원 관리 시스템은 넥스트컴이 하는 대표적인 B2B사업이었다.
-어? 그러면 저희도 돈을 주고 해당 서비스를 써야 합니까?
이야기가 잘 진행되던 리처드 개리엇은 이 대목에 이르러 조금 당황했다.
같은 ID 그룹 소속이니 원클릭 결제 시스템이나 회원 관리 시스템은 조건 없이 사용할 수 있었던 걸로 생각한 모양이다.
“공짜로 제공하고 싶어도,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거든요. 소송 같은 거 걸리면 복잡하잖아요.”
하나의 회사였다면 이런 고민은 필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룹 체제가 되고 그 크기가 거대해지면서 그룹 내의 기업들 사이의 내부 거래를 명확히 정의할 필요가 있었다. 예전엔 그냥 무료로 해줬던 내부거래를 지금은 모두 실제 돈이 오고가도록 만들었다.
내부 거래는 적정가 이상을 책정하면 통행료 문제로 비화되고, 염가 이하로 책정하면 밀어주기 문제가 되니 그냥 시장 가격 그대로 이뤄지도록 했다.
“시간이 없어요. 일단 써보시고, 계속 넥스트컴의 서비스를 사용할지, 아니면 자체 개발을 할지 결정하면 되요. 첫 3개월 동안은 염가로 제공해드릴 수 있거든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없다니,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요?
염가라는 소리에 리처드 개리엇은 수긍했다. 그런데 시간이 없다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기에 설명을 부탁했다. 유재원은 어쩔 수 없이 김택준의 TJ소프트와 혈맹 온라인에 대해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유재원도 많은 정보가 있는 건 아니었다.
점심시간에 받은 안종철 팀장의 보고가 전부였다. 조금 더 기다리면 안종철 팀장이 후속 보고를 해올 테니, 유재원이 먼저 나서서 열심히 찾아볼 필요는 없었다. 더구나 혈맹 온라인의 수준은 대충 짐작이 되었다.
김택준 팀장은 퇴근 후에 틈틈이 만들었던 모양인데, 정식으로 개발팀을 꾸려서 만든 건 아니니 그 품질은 울티마 온라인을 절대 넘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대규모 RPG 온라인 게임이 나오는 건 처음이니 둠이 막 세상에 등장한 것 같은 센세이션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세상에. 우리만 혁신적인 생각을 하는 건 아니군요!
유재원의 설명에 리처드 개리엇도 마음이 급해졌다. 뭐, 김택준도 얼마 전까진 ID 그룹 소속이었으니 엄밀히 따지면 혁신은 아직 ID 그룹의 독점이긴 했지만, 그것까지 자세히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시간만 있으면 자제척으로 개발할 수 있는 기능을 돈을 주고 써야 한다는 게 탐탁치 않았던 리처드 개리엇인데, 경쟁자가 있다는 소리에 여유를 부릴 시간이 아니라는 걸 바로 이해했다.
비록 바다 건너의 조그만 나라 한국에서 발매되는 것이지만, 인터넷이란 세계에는 공간적 제약이 없었다. 더욱이 미국에서 유재원이 보인 역대급 활약으로 인해 한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도 한 차원 높아진 덕에 리처드 개리엇의 경계심도 높아졌다.
“넥스트컴에도 잘 말해 놓을게요. 준비가 끝나면 바로 연락주세요.”
-예 회장님!
리처드 개리엇과 얼리 액세스에 대해 이야기를 잘 끝낸 유재원은 다시 본업인 안드로이드 개발 일로 돌아왔다.
마일스톤을 열어서 본인이 했던 작업물을 업데이트했고, 알파팀 소속 개발진들에게 적당한 일감을 새롭게 배당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일은 마치 특수부대의 지옥 훈련처럼 퇴근 시간까지도 쉬지 않았다. 죽어보자는 본인의 말을 충실히 수행하는 유재원이었다.
-남북 정상, 공동선언문 채택!
-503 공동선언문, 남북 평화통일 확인!
-경제 협력도 적극 추진키로 명시!
-김일성 서울 답방 확약!
-북미정상회담 추진!
-금강산 관광 자원 개발에 미래그룹 적극 나서기로!
-신의주, 라선, 개성 경제개발 특구 지정!
다음 날, 숙소에서 자고 일어난 유재원을 기다리는 속보들이었다.
“음, 합의문은 평범한데, 실행 방안은 기대했던 것보다는 구체적이네.”
선언문을 본 유재원의 감상은 평범하다는 것이었다.
A4 한 장짜리 문서였고, 그것도 큼지막한 글씨로 작성된 문서였다. 즉, 합의문 자체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것이었다. 김일성의 서울 답방도 원래 나왔던 6·15공동선언문 안에 있었던 것이었다.
한국의 언론들이야 이 합의문을 가지고 남북관계의 기초부터 달라질 거라고 열심히 떠들고 있다. 잔뜩 상기된 얼굴로 언론 인터뷰에 응한 시민들도 분위기에 취해서인지 20년 안에 통일이 될 거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주식 시장의 반응도 화끈했다.
미래그룹 계열사들은 대부분 상한가를 쳤다. 시가총액이 조 단위인 거대한 기업이고 그만큼 시중에 풀린 주식이 많았음에도, 매물로 나오는 건 거의 없고 사자는 사람만 많았다. 이뿐만이 아니라 북한에 진출할 수 있을 거라고 소문만 돌면 해당 주식은 바로 빨간색으로 돌변했다.
사실 주식 시장에서 대북 관련 주식의 상승은 한 달 전부터 시작이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에 IT붐이 일고 있다면, 한국은 대북 테마 광풍이었다.
보통 이런 바람이 불면, 이벤트가 이뤄진 순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사그러지는 게 정상이었다. 이른바 상승 모멘텀의 소멸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고 공동선언문이 나왔으니, 대북주도 꺾여야 하는데, 계속 상승 중이다.
“처음이라 그런가?”
경색 국면이었던 남북관계가 이렇게 잘 뚫린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니 개미투자자들은 물론이고, 기관이나 큰손들이 어디까지 달려야 할 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봐야 이전과 크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지.”
반면 유재원은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거라는 냉정한 분석을 내렸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다뤘어야 할 중대한 요소가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북핵이다.
남북정상회담의 직접적인 원인은 전명헌의 소떼 방북이긴 했다.
1만 마리나 되는 소떼 덕에 올해 북한은 봄철 농사가 잘 됐다는 소리가 나올 만큼 효과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쌀농사나 밭작물을 기르기 위해 땅을 갈 때 한국은 트랙터 같은 현대적 농기구로 한 방에 끝냈지만, 북한은 기계와 기름이 없어 모두 사람 손으로 해결했다. 그런데 이제는 전명헌이 보낸 소를 이용해 보다 효율적인 농사일이 가능했다.
그 넓은 북한 땅을 소 1만 마리로 다 담당할 수는 없어도, 평양평야에 집중함으로서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이런 소떼 방북은 대단히 인상적인 이벤트이긴 했지만, 보다 실질적인 원인은 북핵 개발에 있었다. 영변의 원자로 가동 의혹과 IAEA사찰 문제, 비핵화 약속 등은 전혀 접근조차 못했던 모양이다.
“하긴, 3세대 하이브리드형 독재자가 나타나기 전까진 북한에게 핵은 철저히 미국용이긴 했지.”
덕분에 그나마 기대를 걸어볼만 한 건 북미정상회담 추진이라는 후속보도였다.
단독정상회담 중에 김일성 주석은 김영삼 대통령에게 북미정상회담의 의지를 표명했고, 김 대통령은 미국에 한 번 말이나 해보겠다고 했던 것이다.
“북미정상회담도 되면 좋겠지만…….”
유재원은 말 끝을 흐렸다.
괜히 끝까지 말해서 말이 씨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이 절로 들 만큼 텔레비전에 나온 김일성의 모습은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중병 환자처럼 보였다. 텔레비전용 화장을 짙게 했을 것이 분명할 텐데, 병세를 숨기는게 불가능했다. 가뜩이나 김정일 주석과 같이 선 김영삼 대통령은 매일 조깅을 해서 건강을 지킨 덕에 원래의 나이보다 젊어 보여 더욱 대비가 되었다.
“안색을 보아 하니, 원래대로 7월 초에 갈 것 같네.”
북미정상회담이 초고속으로 이뤄진다하더라도 7월 이전에는 절대 불가능이었으니, 이후에는 김정일에게 달렸다.
“그러면 조문 파문은 이제 없으려나?”
전생의 경우 김일성 사망 소식이 전해졌을 때, 조문을 가야 한다는 사람들과 무시해야 한다는 사람들로 팽팽한 대립이 일어났었다. 당연히 전자의 주장은 진보 쪽에서 나왔고, 후자는 보수 세력의 주장이었다. 이 때문에 남남 갈등이 크게 일어나서 사회적인 문제가 될 정도였다.
그런데 이젠 좀 이야기가 다르다.
김 대통령이 굴러들어온 돌이긴 해도, 보수 세력의 정점에 있는 존재였다.
직접 김일성을 만나서 악수까지 하고 왔으니, 김일성이 사망하면 조문을 가지고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시키진 않을 거라고 기대할 수 있었다.
북미정상회담의 경우에도 약간은 긍정적이었다.
클린턴은 북한 문제에 있어 매우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던 사람이었다. 이번 남북정상이 없었더라도 북한에 직접 가보려고 마음도 먹고 있었다. 특히 이 이야기는 클린턴의 회고록을 보면 잘 나와 있었는데, 아라파트의 요구 때문에 방북 결정을 미뤘다고 적혀 있었다.
물론 회고록에 무조건 사실만 담겨 있는 건 아니다. 그러니 진짜 그 이유 때문인지, 아니면 북미 관계가 어그러진 책임을 피하기 위해 핑계를 대는 것인지는 정확히 따져봐야 할 문제였다.
여하튼, 남북정상회담은 북핵 문제를 제외하면 잘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유재원도 이후 남북의 상황을 봐가면서 전명헌의 말대로 통신 인프라 시장에 진출 가능성을 따져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남은 건 경제개혁법인데.”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빅 이벤트가 끝난 만큼, 이제 뒤로 미뤄졌던 정치적 논란거리가 수면 위로 올라올 것이다.
바로 경제개혁 법안들이다. 말이 좀 거창해서 그렇지 실제는 노동법 개정을 비롯해 유재원이 제시한 OECD 가입 전 처리 할 법안들을 묶어 말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건 정치권의 구도가 유재원의 예상과는 다르게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단 노동계는 경제개악법이라면서 토론회도 불참할 만큼 격한 반응을 보였다. 논의만 거부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남북정상회담 때문에 약식으로 했던 노동절 총파업 행사를 전국에서 대대적으로 시행하겠다고 결의까지 했다. 여기에 김 대통령의 인기에 존재감을 잃어가던 민주당이 노동계에 가세하면서 타는 불꽃에 기름을 끼얹었다.
통일국민당의 경우 이번 사안은 당론이 없이 의원 개개인의 생각에 맡긴다고 했다. 물론 말은 그렇게 하면서 실제로는 유재원의 안건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헌데, 노동계가 워낙 세게 반응하니 소나기를 피하는 심정으로 개인플레이를 하는 중이었을 뿐이다.
이런 구도 속에서 제1당인 민자당이 노동법 개정에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다른 경제 개혁 법안은 시큰둥했지만, 노동법의 경우 동감한다는 의원들이 점차 많아졌다.
최강욱이 이유를 알아보니 노동계가 격렬하게 반대하는 거? 그러면 기업에겐 좋은 거! 라는 매우 단순한 논리의 작용이라고 한다.
유재원도 처음 보고받았을 때는 논리적의 흐름이 너무 단순한 거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시민들까지도 노동계의 반발하는 모습을 보고 생각이 바뀐 사람이 많다고 하니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경제개혁법 관련해서는 전적으로 최강욱에게 맡긴 일이었기에 유재원은 딱 여기까지만 생각했다. 만에 하나 이번에 입법과 개정이 실패하더라도, 국회는 언제든 열리는 것이니 후회할 필요도 없다.
며칠이 지났다.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는 중에, 오리진 시스템의 리처드 개리엇이 얼리 액세스를 시작할 준비를 끝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유재원은 그날부터 넥스트컴을 비롯한 온라인 매체는 물론 종이 잡지까지 총동원한 울티마 온라인 광고전을 시작했다.
울티마 온라인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접해볼 수 있는 사람, 3천 명을 모집한다는 광고였다. 선착순으로 1천명을 뽑고, 나머지 2천 명은 추첨을 하겠다고 했고, 월 12달러의 유료라는 것도 확실히 명시했다.
그렇게 대대적으로 뿌려진 광고에 명시된 얼리 액서스 시작일은 5월 31일. TJ소프트의 혈맹 온라인과 제대로 맞불을 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