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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 울티마 온라인(11)
“그러니까, 혈맹이라는 온라인 RPG게임을 5월 31일 출시한다는 거죠?”
워낙 충격적인 소식인지라 유재원은 다시 한 번 되물었다.
-정식 출시라고 단정하기엔 힘들 것 같습니다. 거, 무슨 오픈 베타라는 행사를 한다고 하는데, 일정 기간 공짜로 게임을 뿌리는 방식이라고 하더라고요.
안종철 팀장이 유재원의 말에 버벅 거리면서 답했다. 아무래도 게임업계 용어가 좀 어색했던 모양이다.
“아, 무슨 말인지 알겠네요.”
정식 출시가 아닌 사전 공개 테스트 단계인 오픈베타를 5월 31일 시작한다는 보고였다. 그렇지만 게임 개발 단계에서 보면 오픈 베타까지 왔다는 건 게임 개발을 거의 끝냈다는 말과 같았다.
“그런데 이 정보는 어떻게 얻으신 거예요?”
김택준이나 혈맹이란 게임에 대해 일단 미뤄 놓고 생각을 하고서, 이런 정보를 어떻게 수집했는지도 따져 볼 일이었다.
-아, 어려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김택준 전 팀장이 여러 게임 유통사와 만나고 다니는 건 비밀도 아니었거든요.
안종철 팀장의 말에 유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택준의 행보에 대해 대충 그림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영업을 시작했다면 진짜로 게임이 완성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건 확실하다.
덕분에 유재원은 여러 모로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김택준이 근무 중에 게임을 만들 만큼 회사를 느슨하게 운영했나 싶기도 했고, 본인이 일으킨 기술가속 경향이 단지 하드웨어 분야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수많은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걸 이제야 확실히 실감했다.
이전의 타임 테이블이란, 여러 사건들이 일어난 시간을 정확하게 정리해 놓은 스케줄표였다. 유재원이 죽기 전까지 직접 눈으로 본 크고 작은 사건들이 다 있었다. 거기엔 한국 게임 역사에 기념비적인 혈맹의 출시일도 확실히 있었다. 원래 혈맹 온라인의 출시일은 98년이니 4년이나 빨라진 것이었다.
“음, 내가 무의식적으로 준 힌트라도 있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런 건 없었다.
혼자 있을 때면 몰라도, 남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본론만 딱 잘라 말했던 것도, 말이 길어지면 무의식중에 나올 수도 있는 미래 정보를 줄이고자 의도적으로 선택한 화법이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둠1부터 인터넷을 이용한 멀티플레이 게임을 선보였으니, 그걸 즐겨하던 사람이라면 대규모 온라인 게임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힌트는 확실히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곧이어 궁금해지는 건 게임의 퀄리티였다.
유재원의 기억 속에 있는 오리지널 버전의 혈맹은 해당 연도와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2D 그래픽이었다. 2D라면 섬세한 맛도 좀 있어야 하는데, 혈맹은 픽셀이 다 보일 정도로 해상도가 떨어졌다.
“그러면 이번 작은 예전의 것보다 퀄리티가 더 떨어질 가능성이 훨씬 높겠네.”
이번 혈맹은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출시되는 것이고, 회사 근무하면서 틈틈이 만든 물건이고, 심지어 김택준을 도왔던 송재경도 합류하지 않고 만든 것이니 아무래도 퀄리티 하락은 불보듯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서게임채널이라는 유통사와 계약을 했다는 건 경계해야 할 일이었다. 현재 한국의 최대 게임 유통사인 동서게임채널이 선택한 것이라면 일정 수준은 넘어섰다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조만간 오픈베타를 한다니 기다리면 직접 플레이 해볼 수 있으니, 제대로 된 평가는 그 때 해보면 된다. 또한, 김택준이 약속대로 혈맹의 서버로 ID 클라우드 서비스를 쓸 것인지 지켜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보다 더 큰 일이 있으니 울티마 온라인이었다.
“이렇게 되면 울티마 온라인이 문제네.”
울티마 온라인의 자랑거리 중 하나가 최초의 상용 온라인 게임이라는 타이틀이었다.
물론 최초의 온라인 게임은 두고두고 논란이 되는 떡밥인지라 쉽게 단정하기에는 애매한 문제였다. PC통신 시절엔 머드게임이라는 텍스트 기반의 온라인 게임이 성행하고 있었고, 그래픽 온라인 게임의 경우엔 바람의 나라 혹은 메리디안59라는 게임이 있었다.
그렇지만 MMORPG라는 개념을 확실히 정립한 것은 울티마 온라인이었다. 그런데 혈맹이 일찍 나오면 중요한 타이틀 하나를 잃는 것이다.
“그렇다고 혈맹이란 게 울티마보다 완성도가 높을 거 같진 않지만.”
기적과 같이 혈맹이 이전에 나왔던 것보다 좋게 나왔다고 해도 울티마를 능가하지 못할 거라고 유재원은 단언할 수 있다. 그렇지만 거만하게 방심하다가 라이벌들에게 장점을 하나둘씩 빼앗기고 나중에 망하는 건 절대 원하지 않았다.
환경이 변하면 그에 따라 대응을 하는 게 가장 확실한 대응법이었다. 혈맹이 움직였으니, 울티마 온라인도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음, 그래도 같이 오픈 베타를 하기에는 부족한데.”
얼마전 오리진 시스템에 가서 리처드 개리엇과 만나서 게임도 해보고 여러 피드백도 주었던 유재원이다. 그때 직접 플레이 해본 유재원은 울티마 온라인이 오픈베타에 들어가기에는 아직 완성도가 부족하다는 걸 확실히 인정했다.
시간이 지나면 게임 업계는 미완의 작품을 내고 유료 확장팩이니 DLC니 하는 것들로 분할 판매하여 게임을 완성하는 게 트렌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유재원은 지금도 앞으로도 그렇게 막장식 운영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유재원이 게이머였던 시절 그런 게임사 정책 때문에 가져다 바친 돈이 얼마였던가. 랜덤박스를 열어 볼 때마다 얼마나 많은 욕을 했는 지 지금도 기억이 선명했다. 그 기억이 선명한데 이제 와서 구태의연한 방법을 따라하는 건 절대 못할 일이다.
“아!”
대응책을 생각해 보던 유재원에게 반짝이는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꼼수라면 꼼수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제일 적합한 방법 하나가 떠올랐다.
다만 유재원 혼자서 독단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고, 오리진 시스템과의 사전 조율이 필요했다.
똑똑!
“회장님, 두 시 10분 전입니다.”
유레카를 외치던 유재원에게 밖에서 김대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차! 바로 나가요.”
그제야 제임스에게 했던 말이 다시 생각난 유재원은 노트북 가방을 챙겨들고 바로 방을 나섰다.
오후 2시.
알파팀 전용으로 만들어진 대형 회의실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알파팀 소속 개발자 50여명이 모두 이 자리에 모인 건 참으로 오랜만 이었다.
다들 복장은 자유분방했다. 청바지에 청자켓으로 청청 패션을 자랑하는 사람부터, 반바지에 박스티로 완전 편안하게 입은 사람도 있었고, 제임스처럼 무난하게 면바지에 셔츠를 입은 사람들도 있었다.
모인 사람들은 어제의 스포츠 결과부터 밤새 즐겼던 게임은 물론이고 어제 저녁부터 나온 남북정상회담 뉴스까지 다양한 주제로 잡담이 이어졌다. 그러한 분위기에 끼어들지 못하는 제임스였다.
2시가 넘었는데도, 유재원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던 탓이다.
언제나 말이 없이 묵묵히 제 할일을 했던 제임스가, ID톡으로 알파팀 전원에게 팀 메시지를 날린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 정작 시간이 되어서도 유재원이 안 나타나고 있으니 좌불안석이 될 수 밖에.
1분, 1초가 지날 때마다 제임스는 괜히 팀원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는 것 같기도 했다. 실제로는 다들 잡담 중이라서 제임스는 안중에도 없었지만, 워낙 소심한 성격이다 보니 자책이 컸다.
“안녕하세요! 오래 기다리셨나요? 죄송합니다. 갑작스러운 일이 하나 생겨서 처리하다 보니 좀 늦었네요.”
다행이 제임스의 자책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전에 유재원이 회의실의 문을 열고 등장했다.
“제가 여러분들을 소집한 건, 베타5까지 사용해 본 피드백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짧은 사과를 마친 유재원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잡담이 많았던 회의실도 순간 조용해졌다. 회사 돌아가는 사정은 ID톡의 사내 게시판을 통해 공유되고 있었고, 덕분에 레드먼드에 있던 알파팀도 최근 유재원이 ID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여러 게임 개발사를 돌면서 중간 평가를 하고 있는 중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유재원이 왔으니 이제 자기들 차례임을 예상하는 건 당연했다.
회의실에 긴장감이 올라갔다. 그러나 배가 아플 정도의 강력한 긴장감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ID 엔터테인먼트 소속 게임 개발사들의 피드백이 불시 점검이었다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경우 베타5까지 지속적으로 유재원에게 보내 끊임없이 의견을 받았기 때문이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제작 총괄은 케빈 존슨 사장이 아니라 유재원이다.
소스코드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유재원의 손이 닿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덕분에 차기 안드로이드 제작이라는 거창한 계획과는 달리 알파팀이 수행했던 작업의 본질은 안드로이드 2.0을 베이스로 놓고 기능을 확장하는 것이었다.
최근 ID 그룹의 규모가 점점 커질 때마다 외부에서 유재원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일이 점차 많아졌다. 회사가 커지고, 인재들이 모이면서 유재원의 존재감도 조금 희석된 감이 있는 것이다.
밖에서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알파팀은 물론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만드는 개발진은 코웃음이 났다. 프로그래밍에 한가락 하는 알파팀의 여러 프로그래머들도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소스코드를 볼 때마다 뻬거나 더할 게 없어 감탄만 나왔을 정도다.
여기에 추가적인 기능을 더하라고 하니 그저 답답할 정도였다. 마치 잘 만들어진 대리석 조각상에 색칠을 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만약 유재원이 알파팀의 대다수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쓴 웃음이 절로 났을 것이다. 현재 안드로이드 버전에서 구현된 기능은 그야말로 기초 중 기초였다. 인공지능은커녕 인터넷에 대한 대응은 시작 단계였다. 그런데도 유재원에게 많은 부분을 기대고 있다는 것이었으니, 실망이 클 수밖에.
“먼저 베타5까지의 총평을 드리자면, 무난하다 정도로 말할 수 있겠네요.”
유재원에게 귀를 기울이던 알파팀 소속 개발자들은 무난하다는 소리에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애매해졌다. 나쁘다는 것도 아니고, 좋다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실망감이 컸다는 것도 아니었으니 뭐라 반응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박수를 치는 사람도 제법 있었다.
그러나 딱 한 사람, 제임스만이 유재원이 만족보다는 실망이라는 걸 확실히 인지했다.
어제 밤부터 아침까지 유재원이 작업한 분량 중에 최소 반은 알파팀이 작업했던 걸 다시 짜는 일이었다. 그걸 직접 본 사람이 제임스였으니,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 유재원이 했던 작업은 멀티쓰레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컴퓨터의 성능을 끌어 올리는 부분이었는데, 알파팀의 결과물은 유재원의 마음에 썩 들지 못했던 것이다.
패키지 형태로 받아서 본인의 컴퓨터에 직접 베타5를 깔아서 사용했을 때는, 성능에 그럭저럭 만족했다. 그런데 소스코드를 보니 최적화를 할 수 있는 부분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유재원의 눈이 높았기에 보이는 것이지, 다른 운영체제들과 비교하면 경쟁력은 충분했다.
하지만 유재원은 인공지능을 통한 기술의 특이점을 경험한 존재였다.
단순히 겪기만 한 게 아니라 기술특이점 발생 후 혼란스러웠던 상황을 한 방에 정리하는 기계 심리학 모듈을 만들어냈던 장본인이기도 했다.
이런 유재원의 눈에는 최적화할 여력이 충분한데 이 정도에서 그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유재원도 이 점에 대해선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다. 자신을 만족할 만큼 고도의 프로그래밍 실력을 갖춘 사람 손에 꼽을 만큼 적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자리에 서서 무난하다고 순화했던 것이다.
“무난하다는 게 나쁜 말은 아닙니다. 운영체제의 본질은 무엇보다도 범용성과 안정성에 있고, 그 점에 대해서는 만족한다는 말이니까요. 하지만 시장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각종 컴퓨터 부품을 만드는 제조사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능을 끌어 올리고 있고, 소비자의 니즈도 차원이 달라지고 있잖아요.”
사람에 대해 너그러운 대신, 소프트웨어 그 자체에 대해선 냉정했다.
베타5를 조금 손봐서 출시하는 걸로는 소비자를 만족할 수 없을 거라고 확실히 말했다.
더욱이 차기 운영체제는 나올 때가 되어서 만드는 게 아니라, ID 그룹의 내년, 내후년 전략을 책임질 첨병과도 같은 물건이다.
특히 조만간 발표할 i웍스의 성패가 여기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드웨어적인 준비는 완벽했다.
실제 제품을 생산할 TG 컴퓨터의 양산 능력은 막강했다. 월 100만대 수준을 한참 전에 넘겼을 정도다. 그만큼 부품 공급사와의 관계도 끈끈했는데, 여기에 ID 테크놀로지의 기술이 더해지면서 강력한 시너지 효과가 나왔다.
덕분에 i웍스처럼 스펙과 설계만 확정되면 몇 주 만에 대량 생산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다.
문제는 i웍스에서 i에 해당하는 기능은 소프트웨어로 구현해야 한다는 점이다. 유재원이 안드로이드 사를 찾은 것도 이 기능들을 만들면서 겸사겸사 차기 안드로이드 버전에도 추가하려고 했던 것이다.
즉, i웍스가 단순한 고성능 작업용 컴퓨터가 될 지, 새로운 감각을 지는 크리에이터의 필수품이 될지 결정짓는 건 차기 운영체제에 있다.
“무난하다는 말은 특색이 없다는 것이고, 그것은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했을 때, 방어하기가 취약하다는 말이죠. 저는 대단한 무난함 대신, 대단한 모험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 모험이 실패로 끝나서 혹평이 돌아와도 후회하지 않도록 말입니다.”곧이어 유재원은 프로젝터와 연결된 본인의 노트북을 조작해 화면을 띄웠다.
“차기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키워드로 ‘인텔리전트’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능을 추려 봤습니다.”
왜 인텔리전트를 선택했냐고 따지는 사람은 없었다.
유재원의 카리스마도 카리스마였지만, 컴퓨터 업계에서 인텔리전트라는 단어는 종종 사용되었기에 어색하지 않았던 탓이다. 게다가 화면에 떠오른 도전 과제를 살펴 보는 데 다들 정신이 팔려서 다들 정신이 없었다.
리부트 시나리오 최소화!
하드웨어 교체와 같은 부득이한 일이 아니면, 리부트를 하지 않는 게 제일 좋다. 개인 사용자라고 해도 귀찮은 건 없으니 말이다. 인텔리전트 시스템 케어라고 이름을 지어 놓으면 딱 아니겠는가.
영상과 음성 코덱의 성능과 품질 강화!
브로드밴드 인터넷으로 동영상 혹은 음원 파일을 접하는 사람들도 크게 늘어났다. 아직은 성인물이 대다수이고, 정식 유통되는 디지털 비디오 CD는 얼마 없지만, 2, 3년 후를 대비해서 지금 고화질 스트리밍이나 고음질 코덱을 만들어 놓는 게 좋다. 안드로이드 2.0에서는 VGA에 맞췄으니, 이번엔 SVGA 혹은 XGA 지원에 압축률을 한층 끌어올리는 것이다. 덤으로 또한 포터블 기기 시장도 조만간 생길 수 있으니 저전력 하드웨어 디코딩까지 고려하면 괜찮을 것 같다.
이러한 차세대 코덱도 i를 붙여서 i코덱이라고 이름 붙인 다음 인텔리전트 마케팅 포인트로 삼으면 정당할 것 같다.
다음은 언어 입력기 개선!
언어 입력기의 경우 ID오피스 때부터 정성을 들여 개발한 만큼 딱히 개선할 점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도전 과제로 오르게 된 이유는 어뷰징 사건 때문이었다.
어뷰징은 대부분 매크로 작업을 동반했는데, 이를 걸러내기 위해 인적 물적 자원을 낭비 중이었다. 유재원은 이러한 작업들을 걸러내기 좋은 방법을 떠올려 보다가 언어 입력기를 포착했다.
컨트롤+C, 컨트롤+V.
복사하기, 붙여넣기의 단축키다. 컴퓨터 사용자 중에 이 기능을 써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단순반복 작업, 특히 어뷰징 작업에는 필수적이었다. 유재원은 여기에서 착안해서 컨트롤+C를 포함한 다양한 단축키까지도 하나의 문자 세트로 다룬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렇게 되면 복사하기, 붙여넣기 작업을 한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니, 모니터링이나 차단하는 작업이 한결 수월해진다.
언어 입력기와 짝을 이루는 것이 운영체제 차원에서 매크로 작업을 지원하는 안드로이드 마법사 기능이다. 그냥 언어 입력기만 변경하면 말이 많이 나올 것 같기도 했고, 개편안이 매크로 작업과 잘 어울리는 방식이라 아예 운영체제 차원으로 넣어버렸다.
이밖에도 텍스트 문서를 읽어주는 TTS기능, 마지막으로 글라이드 X의 쉐이더 구조 도입을 통한 퍼포먼스 강화로서 인텔리전트라는 테마를 적극 어필할 거라는 내용이 스크린에 가득했다.
회의실에 암울한 기운이 몰아쳤다.
하나만 봐도 대단한 기능인데, 그걸 자기들이 직접 만들어야 했으니 말이다.
유재원은 그런 반응을 예상한 것처럼 말을 이었다.
“걱정할 것 하나 없습니다. 여러분은 저만 따라오시면 됩니다. 잠깐의 혼란과 고난이 있겠지만, 그 끝에는 모두가 함께 영광을 공유할 것입니다.”
유재원은 알파팀은 물론, 안드로이드 사의 개발진 모두 인텔리전트 기능을 만드는데 동원할 거다. 하지만 난이도가 가장 높은 핵심 기능 구현은 유재원이 몫이고 다른 개발팀은 이를 보조하는 식으로 맞춰질 것이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이들은 현재 작업 환경과 크게 달라질 일은 없다.
지금은 유재원의 캐리가 필요한 시점이니 말이다. 다른 회사 사장님들처럼 말 한 마디 하는 것으로 편안하게 버스를 타려면 앞으로도 한참이나 시간이 더 필요 할 것 같다.
이렇게 무지막지한 일거리들을 만들어낸 유재원은 쉬지 않고 다음 일을 시작했다.
알파팀 사무실에 있는 본인의 자리로 돌아와서 ID톡을 열었었고, 스크롤 막대가 손가락 두 마디 크기로 작아질 만큼 엄청난 숫자를 자랑하는 친구 목록 중에 하나를 선택했다.
선택 받은 이름은 오리진 시스템의 리처드 개리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