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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 울티마 온라인(9)
유재원의 이전 출장과 달리 안드로이드 사 본사가 있는 레드먼드 행은 조용하게 이뤄졌다.
이전의 활동들은 단순히 경영만이 아니라 대외에 ID 그룹의 행보를 알리는 성격도 있어서 취재진도 제법 있었지만, 이번엔 100% 개발만을 위해 움직인 것이기에 레드먼드까지 가는 건 비밀스러운 작전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은밀했다.
“회장님, 레드먼드 방문을 환영합니다.”
당연히 레드몬드에 도착해서도 떠들썩한 행사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안드로이드 사 사장인 케빈 존슨의 사무실에 방문해서 짧게 현황에 대해 보고 받는 정도가 전부였다.
“제가 방문한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는 들으셨지요?”
“물론입니다. 베타5버전까지도 회장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질책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케빈 사장님의 경영에는 매우 만족하고 있어요. 다만 베타판을 쓰면서 생각난 좋은 아이디어들을 썩히기가 좀 아깝더라고요. 회사에는 이제 여유 개발자가 없으니 제일 한가한 제가 각 잡고 만들어 보려고 온 거에요.”
유재원의 말에도 케빈 존슨 사장의 얼굴은 살짝 풀어지는 데 그쳤다.
케빈 존슨은 본인의 사장 취임 이후 본격적으로 개발이 시작된 안드로이드의 차기 버전에 큰 책임을 느끼는 중이었다.
개발팀을 적당히 나눠 팀을 꾸리고, 그 팀마다 최고의 결과물을 낼 수 있게 임무를 분배하고 전체적인 개발 일정을 조율하는 등의 일은 모두 케빈 존슨의 몫이었다.
어쨌든 결과물이 유재원이 보기에는 별로라는 뜻에는 변함이 없으니 케빈 존슨의 부담감은 그다지 희석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유재원은 케빈 존슨의 안드로이드 사 운영 방침에는 매우 만족 중이었다. 차기작 안드로이드도 잘 만드는 중이었고, 기존 안드로이드 2.0의 100일 단위로 업데이트를 해주는 정책도 잘 지키고 있었다.
미국이나 한국은 물론 전세계 사용자를 상대하는 QA 부서 역시 무난하게 운영 중이었고, 하드웨어 부문도 괜찮았다.
“제 자리는 어디인가요?”
케빈 존슨은 좀 더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앞으로 시간은 충분했다. 차기 안드로이드 개발이 유재원의 눈에 찰 때까지 레드먼드에서 지낼 예정이니 케빈 존슨과 이야기할 기회도 많을 것이다.
“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케빈 존슨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유재원이 뒤를 따랐다.
규모가 상당히 큰 레드먼드 본사였기에, 유재원은 케빈 존슨의 뒤를 따라 상당히 걸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은 알파팀이 있는 곳이었다. MS 때에는 알파랩이 있던 곳이었는데, 유재원이 인수하면서 알파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글자 하나 바뀐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대대적인 해체 후 재편이 있었다. 여기에 덤으로 시스템의 교체와 인적인 변화도 있었다. 개발자용 컴퓨터들은 모두 뉴에그2로 바뀌었고, 알파팀에 들어갈 개발자들도 사내 시험을 통해 새롭게 뽑혔다.
유재원이 레드먼드에서 지낼 자리도 여기 알파팀에 만들어졌다.
“여깁니다.”
케빈 존슨과 유재원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알파팀에 들어서자 작은 박수가 나왔다.
알파팀 소속 개발자들은 유재원이 당분간 함께 지내면서 개발을 한다니 무척이나 부담스러웠지만, 한편으로 세계 최고의 개발자인 유재원의 실력을 옆에서 볼 기회라고 생각하며 큰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도 많았다.
그렇지만 그 호기심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알파팀의 사무실은 각 인원마다 개인 공간으로 3평 정도로 넓게 주어졌고, 파티션 구분도 확실했다. 그렇기에 자리에 앉자 유재원의 존재감은 싹 사라졌다.
이렇게 독립적인 공간을 주면 괜히 쓸데없는 일을 하는 게 쉬워져서 효율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알파팀원들은 모두 프로였다.
외부로 데이터가 전달되는 건 엄격히 금지 중이었지만, 그렇다고 인터넷을 막아 놓은 건 아니었다. 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해도 된다. 대신 각자에게 주어진 분량을 확실하게 만들어 놓기만 하면 뭘 하든 상관없다.
덕분에 알파팀의 사무실 분위기는 조금 분주한 카페와 비슷했다.
오늘부터는 유재원이 함께 하게 되었지만, 그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개발 스케줄에 오차가 없고, 완성된 프로그램의 퀄리티만 꾸준히 유지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시장통분위기라도 상관 없는 유재원이었다.
“훌륭하네.”
유재원도 본인의 자리에 앉아서 시스템을 체크하는 것으로 알파팀의 분위기에 녹아들었다.
본인이 주도적으로 개발 중인 i웍스에 비해 사양은 좀 처지긴 해도, 뉴에그2의 최신 사양에 개발에 필요한 소프트웨어와 회사 업무 처리에 필요한 ID톡도 설치되어 있었다. 키보드도 타이핑 느낌이 경쾌한 기계식이었고, 의자는 유재원이 얼마 전 모두 교체를 지시했던 에어론 체어였다.
“그럼, 시작하자!”
손가락을 푼 유재원은 곧장 일을 시작했다.
“일단, 마일스톤부터 볼까?”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코딩부터 시작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몇 백 라인 크기의 작은 크기의 프로그램 정도면 누구나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고 코딩을 할 수 있겠지만, 수백만 라인 단위의 거대한 용량을 자랑하고 수많은 개발자들이 공동으로 만드는 프로그램이면 사전에 준비해야 할 게 무척이나 많다.
다행히 안드로이드 사는 유재원이 내린 지침에 따라 최적화가 되어 있는 상태였고, 유재원도 개발 중인 베타5판을 꾸준히 사용하면서 현재 개발이 어디까지 이뤄졌는지 확실히 인지한 상태였다.
이 상태에서 유재원은 개발 목표에 대해 확인했고, 현재 개발팀의 작업 현황도 살피고자 유재원은 마일스톤부터 열었다.
나중에는 마일스톤을 관리하는 전문 프로그램이 나올 테지만, 지금은 그냥 ID 스프레드시트의 도형 기능으로 만들어 놓은 도표에 불과했다.
그래도 각 개발팀을 맡은 팀장들이 매일 갱신하고 있어서, 파일 하나만 열어 보면 현재 안드로이드 베타5의 개발 상황을 한 눈에 체크할 수 있었다.
“역시 커널 개발이 제일 느리네.”
운영체제의 심장과 같은 커널과, 커널 위에서 실행되는 여러 응용프로그램으로 구분되고 있다.
커널은 CPU와 램, 하드디스크 등의 하드웨어를 관리하고, 응용 프로그램의 요청에 따라 분배하고, 응용 프로그램의 요구에 따라 하드웨어를 제어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커널의 완성도가 곧 운영체제의 완성도와 직결되기에 허투루 다룰 수 없었고 안드로이드 사의 케빈 존슨 사장도 회사의 S급 인재만 뽑아다가 만든 알파팀에 커널 개발 임무를 준 상태인데, 그럼에도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유재원은 차기 안드로이드가 달성해야 목표를 제시했는데, 매우 구체적인 것들이 가득했다. 두루뭉실한 지시 보다는 구체적일 수록 좋은 게 사실인데, 이번에 유재원이 내려준 것들은 난이도가 상당한 과제라서 알파팀도 애를 먹고 있었다.
“이대로 하면, 연내 출시가 어려울 수도 있겠네?”
기존의 과제는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유재원은 일감을 한보따리를 싸들고 왔다.
그걸 다 처리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시간인데, 적어도 소스코드를 완성하는 데만 3, 4달은 걸릴 것이다.
그러면 늦가을쯤에 완성된다는 이야기인데, 유재원이 내년을 이야기하는 건 개발 완료 후 바로 배포하는 게 아니라, 테스트를 거치는 기간까지도 고려한 것이다.
바로 호환성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 사용자들이 가진 컴퓨터 시스템의 종류는 너무도 다양하다. 브랜드 PC라면 스펙이 일정할 테지만, 각종 주변기기가 사용자의 필요나 개성에 맞게 조립되어 있는데, 다른 PC에선 잘 작동하는 것이, 한쪽에서는 문제가 터질 수도 있다.
아무리 프로그래밍을 잘하는 유재원이라도 모든 문제에 대해 대비할 수는 없었기에, 적어도 3달 정도의 테스트 기간을 두고 호환성 문제를 모니터링해야 한다.
그러면 빨라도 올 겨울, 늦으면 내년 초에 출시될 수 밖에 없다.
“음, 그러면 올해 출시할 수 있다면3.0이라 하고 내년으로 미뤄지면 95라고 할까?”
유재원이 말하는 숫자는 바로 차세대 안드로이드의 명칭에 관한 것이었다.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버전은 보통 소수점 한자리까지 표시한다. 그냥 숫자가 올라갔다면 대규모 업데이트를 의미했고, 소수점 이하의 숫자가 올라가면 작은 규모의 업데이트가 있었다는 의미로 통용되었다.
나중에는 점을 2개 이상으로 찍어서 그 의미를 확장하는 트렌드가 생기기도 하지만, 큰 틀에서 변함은 없다.
이러한 버전 라벨링이 크게 바뀌는 건 95년부터였다. MS가 윈도우 운영체제를 내고, 윈도우 95라는 네이밍을 시작하면서 트렌드가 바뀌었다. 일반적인 버전을 버리고 연도를 가져다 쓰는 게 유행이 되면서 95가 붙은 소프트웨어들이 많이 나왔다.
유재원도 3.0이라는 평범한 버전보다는 95라는 숫자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뭔가 한세대가 달라지는 듯한 느낌을 확실히 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일부러 늦게 출시한다고 시간을 끌 필요는 없지만.”
안드로이드 사는 이제 유재원만의 회사는 아니었다.
유재원의 지분은 딱 51%였고, 나머지 49%는 수많은 주주들에게 나누어진 상태다. 상장으로 안드로이드 사에는 이사회도 생겼고, 사외 이사도 여럿 고용이 되었다. 주주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IT에 대해 미심적은 눈으로 보는 수많은 투자자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최대한 빨리 차기작을 출시하는 게 좋다.
“아, 나도 일해야지.”
유재원도 딴 생각은 그만 접고, 다시 본업으로 돌아와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다음 날.
뽑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티가 확 나는 BMW 한 대가 안드로이드 사 본관 주차장에 들어섰다. 아침 7시가 막 지난 시간으로 이른 시간이기에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고, BMW는 사원용 자리 중에 본관과 제일 가까운 자리에 멈춰섰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제임스 어거스틴으로 과거 MS시절 알파랩 팀장이었고, 지금은 안드로이드 사에서 글라이드 X를 맡고 있었다.
어제까지 휴가였던 제임스는 일상으로 빠르게 복귀하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출근했던 것이다.
무척 이른 시간인데, 평소에도 남들보다 빨리 출근했던 제임스였기에 큰 문제는 아니었다.
일찍 출근하는 건 언제부터인가 제임스의 습관이 되었다.
ID 테크놀로지가 그룹 체제로 바뀔 때부터 생긴 것 같다. ID 그룹이라는 체계가 잡힌 뒤로 퇴근 시간에 강제성이 생겼다. 대신 일찍 나오는 건 뭐라 하는 사람이 없어서 제임스는 일찍 나오기 시작했다.
정식 근무 시간 내에 맡은 일을 끝마칠 자신감이 없어서가 아니라, 회사에 있는 게 더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이는 몇 년 전만 해도 절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출근하는 게 즐겁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고 무슨 헛소리인가 싶었는데, 요즘 자신이 그러고 있는 걸 보면 제임스 스스로 생각해도 참 신기한 일이었다.
예전에 MS소속이었던 때를 생각하면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다. 다만 그렇게 큰 스트레스를 받은 덕에 눈이 확 돌아버려 게이츠 회장을 들이 받았고, 덕분에 ID 그룹과의 인연이 생긴 것이니 참 아이러니하기도 했다.
그때 눈이 돌아가지 않았으면, 게이츠 회장의 부정을 폭로할 일도 없었고, 그러면 MS도 건재했을 테니 말이다.
이후 제임스는 ID 테크놀로지 소속이 되었고, 이후 ID 소프트웨어가 있는 델러스에서 일하다가 레드먼드의 조직 개편이 끝나고서 다시 이곳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안드로이드 사로 독립을 하면서 알파팀에 지원했고, 당연히 합격했다.
덕분에 제임스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바뀐 건 참 많았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바로 통장 잔고였다. MS의 알파랩 소속일 때도 연봉은 12만 달러 정도 되긴 했다.
상당한 고소득이긴 했는데, 학자금 대출과 모기지 대출을 갚고, 취미 생활인 오디오에 돈을 좀 쓰고 나면 남는 건 얼마 없다. 그런데 안드로이드 사 소속이 되고나서, 확 달라졌다. 연봉은 MS때보다 3만 달러가 더 올라서 15만 달러였는데, 생각지도 못한 상장 기념 보너스가 나오면서 제임스의 잔고가 확 늘었다.
안드로이드 사 상장 보너스의 분배 방식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개발에 얼마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는가를 따지는 것이었다.
제임스의 경우 글라이드 X를 초기부터 담당했기에, 완벽한 핵심 개발자였다. 덕분에 제임스의 몫으로 나온 보너스는 500만 달러에 이르렀다.
보너스가 나온다고 살짝 기대하긴 했는데, 이건 기대 이상이었다. 다만 실제 통장에 꽂힌 금액과 상당한 차이가 나서 당황한 것도 덤이었다. 40만 달러 이상의 소득에 대한 미국의 소득세율은 39.6%라서 실제 통장에 들어온 금액은 300만 달러 정도였던 탓이다.
앉은 자리에서 200만 달러를 도둑 맞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정부가 세금으로 인프라를 깔고, 교육도 시켜서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덕에 IT 생태계가 조성되어 본인의 소득도 이렇게 늘어날 수 있었다고 자위했다.
그렇게 세금을 제하고 남은 300만 달러도 엄청난 돈이었다. 평소 받던 연봉으로 이 돈을 모은다고 하면, 필수 생활비를 제하고 남은 돈은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30년 이상을 꾸준히 모아야 하는 돈이었으니 말이다.
부모님 집을 큰것으로 바꿔드리고, 본인의 모기지 융자도 당장 갚고, 오랜 꿈이었던 BMW도 사고, 오디오 업계의 끝판왕급 앰프와 스피커를 사고도 돈이 넉넉하게 남았다.
이렇게 주머니가 넉넉해지니, 마음도 자연스럽게 풍성해져서 평소엔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기부도 했다. 어디 이상한 재단에 하면 필요한 곳에 잘 쓰이지 않을 것 같아서 ID 파운데이션의 난치병 어린이 기부행사에 참가했을 정도다.
마지막으로 달라진 건 다시 불타오르는 열정이었다.
제임스가 프로그래머의 길을 걷게 된 건 당연하게도 게임이었다. 게임에 편견이 없으셨던 제임스의 부모님은 소심하고, 운동도 싫어하는 제임스에게 아타리라는 게임을 사주었다. 게임에 깊게 빠지면 만들어 보고 싶기도 하고, 거기에서 재능을 발견한 제임스는 프로그래머의 길을 걷게 되었다.
능력을 인정받아서 MS에 스카우트되었고, 알파랩이라는 최고의 팀에도 들어간 것까진 좋았는데, 거긴 밖에서 상상과 다른 곳이었다. 운영체제를 만드는 일만 했으면 모르겠지만, 불법적인 지시를 직접 수행해야 했고, 열심히 일하는 데도 험한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재판이라는 큰 사건 이후, 안드로이드 사에 오고 나서 말랐던 열정이 다시 채워지기 시작했다.
자신도 한 손 크게 보탠 글라이드 X라는 라이브러리가 모든 게임에 통용되면서, 시중에 출시되는 게임의 퀄리티가 눈에 확 보일 만큼 달라졌다.
몇 년 전만 해도 컴퓨터 게임보다 비디오 게임기용 게임이 훨씬 그래픽이 좋았고, 게임의 질도 높았는데, 이제는 반대가 되었다.
3D와 인터넷이 대세가 되면서 혼자서 하는 비디오게임의 인기는 빠르게 떨어졌고,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하는 멀티 플레이어 게임이 대세였다.
오죽하면 비디오 게임 마니아였던 제임스도, 일본의 소니에서 여름 시즌을 겨냥해 완벽한 32비트 비디오 게임기를 출시한다는데, 별다른 관심이 없을 정도다. 예전 같으면 게임 잡지를 보고 따로 스크랩을 해놓고 출시일을 하루하루 기다렸을 터인데, 지금은 그저 그랬다.
마찬가지로 아케이드 게임장도 찬바람이라고 한다.
아케이드 게임장에 있는 게임들보다 컴퓨터 게임의 퀄리티가 월등해졌고, 컴퓨터의 보급도 빠르게 늘면서 게임장을 찾는 아이들이 확 줄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인이 맡은 글라이드 X가 게임업계의 큰 변화를 주도하고 있으니, 신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주차장에서 바로 본관으로 들어온 제임스는 매일 보는 시큐리티 직원에게 사원증을 제시했다. 시큐리티 직원과는 눈인사가 전부다. 시큐리티 직원과 사원 사이에 사적인 대화는 금지라는 정책 때문이다.
시큐리티 직원은 사원증에 인쇄된 바코드를 리더기로 찍었다. 그러자 모니터 위로 제임스의 증명사진과 함께 인사정보가 표시되었다. 얼굴이 같은 걸 확인한 후에야 문이 열렸다. 제임스는 알파팀 사무실로 가는 길에 비슷한 절차를 두 번이나 더 치러야 했다. 나갈 때는 소지품 검사까지 한다.
MS때보다 훨씬 강화된 보안체계라서 제임스는 지날 때마다 살짝 기분이 이상하기도 했다. 지금의 근무환경에선 보안은 좀 귀찮은 요소에 불과했지만, 만에 하나 안드로이드 사의 정책이 싹 바뀌어 MS처럼 운영되기라도 하면, 사원들을 옥죄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도 있었다.
제임스가 매일 회사에 제일 먼저 나오는 것도, 자기 본분을 열심히 수행해 안드로이드 사가 변질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의 발로였다. 본래 있었던 MS의 기업문화도 처음엔 그렇게 엉망인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자, 오늘도 열심히 달려볼까? 응?”
사무실 앞에 도착한 제임스는 당황했다.
알파팀 사무실의 문이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도둑? 순간 엉뚱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럴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바로 깨달았다. 여기까지 오는 데 3단계나 되는 보안 단계를 통과해야 할 만큼 삼엄한 곳이지 않은가.
제임스는 용기를 갖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불이 다 꺼져 있는 사무실이었지만, 맨 안쪽 한 자리에는 스탠드와 모니터가 환하게 켜져 있었고, 한 사람이 앉아서 컴퓨터로 열심히 작업 중이지 않은가.
놀랍게도 그 사람은 유재원이었다.
“흐흐, 이렇게 해서……, 저렇게 하면……. 짜잔! 완성!”
유재원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타이핑을 하더니, 곧장 컴파일을 거는 모습이 생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