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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울티마 온라인(7)
띵!
맑은 비프음과 함께 깜깜했던 모니터에도 불이 들어오면서 반가운 바이오스 화면이 떴다. 곧이어 바이오스는 CPU체크를 시작했고, 메모리 테스트 단계를 거쳐 정상적인 부팅을 시작했다.
컴퓨터를 조립할 때 마주하는 가장 큰 고비를 무사히 넘긴 것이다. 전원도 켜지지 않아서 무슨 문제인지 모를 상황에 직면하면 하루 종일 원인을 찾기 위해 조립과 해체를 반복해야 할 때처럼 답답한 일은 없었다.
다행히 이번에 모인 부품은 각 제조사들이 고르고 고른 골든 샘플에 사전 테스트도 완벽했다. 배송도 과하다 싶을 만큼 안전하게 포장해서 보낸 물건들이다.
유재원이 손수 했던 조립 과정도 완벽했다.
혼자 했다면 마음이 급해져서 연결해야 할 걸 깜빡한다던가, 결착이 헐겁게 되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티파니 덕에 그런 문제도 없었다. 애인에게 의젓하고 전문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급한 마음과 달리 차근차근 꼼꼼하게 조립했다.
“우와! 예쁘다!”
덕분에 조립 시간은 평소보다 훨씬 오래 걸렸지만, 티파니의 순수한 감탄사 한 방에 만족감과 뿌듯함이 물밀듯이 찾아왔다.
확실히 유재원의 눈에도 전원이 켜진 i웍스 프로토 타입의 모양새는 확실히 괜찮았다. 알루미늄 케이스, 내부가 훤히 보이는 강화유리 창문, 녹색의 은은한 LED불빛이 세련된 조합의 미를 자랑했다.
옥의 티가 있다면, 내부의 선 정리였다.
파워 서플라이에서 나오는 각종 케이블이 메인보드와 각종 주변기기를 종횡무진으로 연결하고 있는데, 흡사 작은 동물의 내장처럼 보일 정도이다.
선 정리를 잘 해놓으면 그나마 괜찮을 텐데 지금 당장은 우선 제대로 작동하는지부터 보는 것이 먼저였다. 게다가 유재원은 선 정리에 대해서는 따로 생각해 놓은 방법이 있었다. 바로 i웍스 전용 제품이다.
파워 서플라이의 선정리가 어려운 건 전원 케이블의 길이가 보편적인 PC 환경에 맞춰져서 있거나, 인심을 팍팍 써서 넉넉한 길이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시대의 케이스는 선 정리에 대한 편의 기능은 전혀 없었다.
유재원은 컴퓨터용 파워 서플라이 전용 제조사에 i웍스 전용으로 고성능의 파워를 주문하고, 덤으로 케이블의 길이도 딱 맞출 예정이었다. 게다가 케이스를 2중으로 설계해서 거치적거리는 케이블은 뒷면으로 다 넘겨버릴 예정이다.
다만 이러한 계획은 지금 단계에서 구현되지 않은 것이라서, 당장은 선 정리 없이 쓰는 수밖에 없다.
더구나 지금은 선 정리를 할 시간도 없었다.
조립이 끝났다고 다 된 게 아니라, 운영체제를 설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재원이 준비한 운영체제는 차기 안드로이드의 최신 개발자 버전인 베타5였다. 엔터프라이즈 버전으로 멀티코어와 고용량 메모리를 지원하는 버전이다.
“그게 뭐야? CD는 안 꺼내?”
유재원이 운영체제를 설치한다며 검지 크기의 뭔가를 꺼내자, 티파니가 바로 질문을 던졌다.
“USB 메모리라는 거야.”
유재원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CD롬 시대가 열리면서 컴퓨터 프로그램의 용량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중이지만, CD롬의 전송속도는 컴퓨터의 일반적인 처리 속도보다 한참 느렸다. 저번 주에 출시된 최고 8배속짜리 CD롬 드라이브의 전송속도는 1.2MB/s였다. 이것도 꾸준히 유지되는 게 아니라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운영체제를 설치할 때 30분씩 걸리는 것인데, 유재원에겐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바로 USB 메모리였다.
“이게 저장장치라고?”
유재원의 설명에 티파니가 깜짝 놀랐다.
플래시 메모리칩을 가지고 저장장치를 만든다는 생각은 아직은 누구도 하지 못했던 발상이었던 탓이다. 예전엔 용도를 몰랐고, 지금은 휴대폰에나 들어가는 작은 크기의 저장장치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것도 컴퓨터 관련 전문가들이나 그렇지, 일반인에겐 플래시 메모리는 딱히 인지도가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이거 하나 용량이 얼마나 될 거 같아?”
“응?, 음음, 16메가?”
티파니에게 선물로 준 휴대폰의 저장장치가 16메가였다. 미래전자에서 나오는 플래시 메모리칩중에 제일 용량이 큰 걸 넣은 특제품이었다. 그걸 상기하고 16메가라고 말하는 티파니였다. 나름 머리를 굴렸지만, 유재원의 스케일은 그보다 훨씬 컸다.
“256메가. 이렇게 작아도 내부에 플래시 메모리칩이 16개나 박혀 있어. 여기에 메모리칩을 제어하는 컨트롤러도 있지.”
자랑하듯 말하고서는 유재원은 살짝 민망해졌다.
USB메모리를 만든 건 미래전자의 연구소였다. USB 메모리나 SSD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해준 건 유재원이지만, 그걸 실물로 만들어낸 건 미래전자 사람들이니 말이다. 결과물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전송속도도 초당 8MB에 이르렀고, 탐색 속도나 랜덤 읽기, 쓰기도 CD롬보다 훨씬 빨랐다. 대신 단가가 무시무시했다. 플래시 메모리라는 게 원체 비싼 물건인데, 그걸 16개나 썼고, 컨트롤러 칩도 소량 생산한 물건인 탓이다.
“그래서 얼만데?”
“1만 달러.”
“세상에!”
공장도 가격이 1만 달러다.
상상 그 이상의 가격에 티파니도 깜짝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유재원도 마찬가지다. 21세기 중반만 되면 이보다 1천배는 더 커진 용량의 USB메모리를 몇 만원이면 사는데, 지금은 거의 100배나 비싼 가격으로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이런 게 IT기술의 특징이다.
초기엔 눈이 튀어나올 만큼 비싸지만, 몇 년 만 지나면 괜찮은 가격으로 내려오고, 다시 몇 년이 지나면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으로 떨어진다.
소비자의 입장에선 참 좋지만, 사업가에겐 한 번 뒤쳐지면 답이 없이 몰락해버리는 무서운 분야이기도 했다.
전생에 유재원도 겪은 일이기도 했다.
유재원이 개발했던 인공지능 기술인 기계 심리학 알고리즘도 처음 등장할 땐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그런데 과실은 엉뚱한 녀석들이 다 따먹어버렸고, 몇 년 후엔 보다 더 나은 기술이 나오면서 과거가 되었다.
덕분에 회귀를 준비하면서 가장 열심히 했던 건, 미래 기술 확보였다.
모르는 분야도 열심히 찾아서 논문이나 특허도 열심히 저장해 놓았다. 가끔 잠을 자기 전 기억의 궁전에 들어가서 저장된 자료들을 보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동시에 어쩌다가 마스터플랜이 끝난 다음을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해지기도 했다.
특히 최근 자신이 유발한 기술 가속의 후폭풍이 생각보다 훨씬 크게 일어나면서 사회의 발전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졌다.
즉, 기억의 궁전에 담아 놓은 밑천들이 예상보다 훨씬 일찍 바닥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그걸 상기하니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하지만 이미 회귀는 했고, 더 가져올 밑천도 없다. 그때가 되면 그저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고, 지금은 쓸데없는 걱정은 접어 두고 당장 눈앞에 닥친 일부터 처리하는 게 먼저다.
1만 달러짜리 USB메모리에 대해 매우 미심쩍은 눈빛을 보내는 티파니를 바꿔 놓는 일이다.
“봐봐. 이게 얼마나 간편한데. 앞으로 새로운 보조 기억장치가 될 거야.”
유재원은 곧바로 포트에 USB메모리를 꽂고 안드로이드 베타 버전 설치에 들어갔다.
비슷한 시각.
코요테 시티의 ID 그룹 데이터센터의 관제 센터가 분주해졌다. 오후 6시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당직자만 남고 다들 퇴근을 준비하는 것이다.
“자네들은 오늘도 야근인가? 어제는 우리랑 같이 퇴근한다고 하지 않았나?”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퇴근을 준비했던 데이터센터의 조셉 소장은 남다르게 아직도 본인의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뭔가를 열심히 작업하는 청년들에게 물었다.
“오늘도 일복이 터진거죠.. ”
“그러게요. 오늘이면 일이 끝날 줄 알았는데, 에러가 계속 뿜어지네요. 우리가 뭐, 그렇죠.”
비루먹은 망아지처럼 힘없이 대답하는 둘은 작년 스탠포드에서 초대박을 터트린 제리와 데이비드였다. 바로 검색엔진 야후의 창업자들이다.
검색로봇이라는 자동색인 프로그램을 통해 매일매일 새롭게 오픈하는 수많은 사이트들을 정리해서 검색 결과의 품질을 좌우하는 데이터베이스의 볼륨을 효과적으로 늘릴 수 있었고, 덕분에 네티즌들의 호평을 한몸에 받았다.
대신 학생의 신분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서버의 압박에 시달렸고, 유재원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둘이 만든 검색엔진을 넥스트컴이 독점으로 사용하는 대가로 1년 4백만 달러라는 엄청난 대박을 터트렸다.
“하루 늦는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어차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또 뜰 텐데 말이야.”
“ID 그룹이야 항상 햇빛이 들겠지만, 저희처럼 조그만 집은 햇빛을 받으려면 쉬지 않고 달리는 수 밖에 없습니다.”
축 늘어진 상태임에도 한마디도 지지 않는 제리였다.
“400만 달러 잭팟을 터트린 자네들이 조그만 집이면, 나는 쥐구멍이겠구만. 하여튼, 자네들이 내 부하 직원이었다면, 당장 퇴근하라고 엉덩이를 차줬을 거야.”
조셉 소장은 안타까워서 하는 소리였다.
제리와 데이비드는 넥스트컴의 메인 검색창에 야후가 탑재된 후로 이곳 코요테 시티의 데이터센터로 출근을 시작했다. 야후의 검색엔진이 올라간 곳이 바로 여기에 있는 클라우드 서버였기에, 관제실에서 직접 클라우드 서버에 접속해서 야후의 안정화 기능 개선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었다.
데이터센터의 중요성이 커지고, ID 클라우드 서버에 입주하는 사이트도 많아지면서 썰렁했던 관제실도 사람들로 가득해졌다.
평소에는 제리와 데이비드는 다른 직원들 사이에 놓여 잘 보이지 않았다가 퇴근 시간이 되면 이렇게 딱 드러난다.
24시간 돌아가는 데이터센터지만, 하루 8시간 근무라는 ID 그룹의 기본 노동정책을 확실히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 체계가 잡히지 않았을 때엔 초과 근무를 하는 것도 종종 있었지만, 그룹 체제로 거듭난 다음부터는 불필요한 오버타임 근무는 철저히 배척 중이다.
덕분에 퇴근 시간이 되면 소수 당직자만 남고 다 자리를 뜨는데, 제리와 데이비드는 거의 매일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니 말이다.
조셉 소장의 말도 이때문에 나왔다.
부하 직원이라면 강제로 퇴근 시킬 수 있었지만, 제리와 데이비드는 ID 그룹과는 별개의 사업체인 야후의 창업자였다.
몇 시간 후.
“으아, 이제 겨우 제대로 작동하는 거 같다.”
제리의 입에서 다 했다는 소리가 나온 건, 남들 다 퇴근하고서도 한참이 더 지난 한밤중이었다. 달이 뜨고, 밤하늘에 별이 촘촘했을 때가 되어서야 둘은 모니터에서 얼굴을 떼고 기지개를 켤 수 있었다.
“근데, 버그가 터졌던 원인은 모르겠네.”
“헉! 그러면 더 큰 문제 아냐?”
제리의 말에 잘 했다고 말하려던 데이비드가 깜짝 놀랐다.
본인도 모르게 생겼던 버그가 본인도 모르게 사라졌다는 건, 소드 코드 안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들어 있다는 의미였다. 정식 운영 중에 시한폭탄이 터지면 그 여파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니 좋아하기 보다는 걱정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 데이비드의 반응에 제리는 피식 웃고는 다 하지 못했던 말을 이었다.
“카운팅용 코드는 싹 다 뜯어 고쳤으니 괜찮을 거야.”
“헉? 진짜?”
제리의 덤덤한 말에 데이비드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코드를 싹 뜯어 고쳤다는 건, 쉽게 하지 못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에 하는 일은 간단한 기능을 추가하는 것도 아니었다.
앞으로 야후의 운영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는 기능이었다. 그만큼 복잡한 기능이라 혼자서는 못하고 둘이서 힘을 보태 며칠을 작업하는 중이다. 그걸 혼자서 다시 다 뜯어고쳤다고 하니 놀라는 건 당연했다.
이렇게나 열심히기능은 검색엔진 운영 중에 생성되는 데이터를 재가공해서 부가가치를 더 만들어 보기 위한 시도였다.
둘은 이것을 사이트 랭킹 시스템이라 명명했다. 이름 그대로 각 사이트를 일단 특정 카테고리로 나눈 다음 해당 분야의 사이트들을 묶어 줄세우기를 하려는 것이었다.
순위라는 건 곧 사이트의 인기도를 의미했다.
네티즌들이 입력하는 키워드 횟수, 해당 키워드를 입력한 네티즌이 제일 먼저 방문하는 사이트나, 해당 사이트의 체류 시간 등을 따져 랭킹화 한다는 것은 곧 광고 수입과 직결된다. 광고의 효과를 눈에 보이는 수치화해서 광고주들에게 어필할 수 있고, 이러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야후는 중계 수수료를 받는다는 게 제리와 데이비드의 생각이었다.
본래 제리나 데이비드는 이런 쪽에 큰 관심은 없었다.
검색엔진의 본질인 사용자가 원하는 결과를 보다 정확하고 빠르게 찾고,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효율적으로 다루는 일에 더 적성이 맞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수익 모델에 집중하게 된 건 몇 주 전 유재원이 발표한 ID 그룹 사내 벤처 육성정책을 듣고서였다.
특히나 자극을 받은 건 노 페이, 노 게인이라는 짧은 문장이었다.
너무 자극적이라 처음엔 좀 거부감이 들었다. 네티즌 입장에서도 무척이나 거부감이 느껴지는 말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발언이 외부로 알려지고 나서 2CH.com이나 넥스트컴의 자유 게시판에는 유재원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폭증했다. 그나마 넥스트컴은 욕을 걸러내는 필터링 시스템이 가동되어 직설적인 욕은 없었지만, 무척이나 자유분방한 2CH.com에서는 아주 살벌했다.
그런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말이 매우 맞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고, 뭔가 이득을 제공했다면 대가를 받아야 하는 게 정답이다. 당장 야후의 검색서비스도 ID 테크노롤지의 클라우드 서버가 아니면 수백만에 달하는 네티즌의 접속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제리와 데이비드는 유재원의 말이 있기 전까지 대단한 수익을 내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넥스트컴에서 매년 400만 달러씩 받기로 한 계약서가 있고, 이미 1년치 대금은 깔끔하게 받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계약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생각해 보니, 전망은 어두웠다. 게다가 계약서의 몇 가지 조항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불편했다. 바로 사용자들이 입력한 데이터는 넥스트컴의 소유라는 조항이었다.
검색 엔진을 강화하고, 여러 부가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가장 많이 활용되는 게 바로 검색어였는데, 그 소유가 넥스트컴이니 야후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범위가 극히 줄어들었다.
그제야 위기감을 느낀 제리와 데이비드는 넥스트컴이나 ID 그룹과 관계가 없는 수익 모델을 만들기로 머리를 모았고, 그 결과 페이지 랭킹 시스템이란 아이디어가 나온 것이다.
“흐흐, 제리 너도 이제 코딩에 있어서 유 회장님 급은 되는 거 아니냐?”
“실없는 소리 마라. 내가 무슨 유 회장급? 그분은 앉은 자리에서 운영체제를 뚝딱 만드는 능력자고, 나는 겨우 함수 하나 짜는 수준이지.”
제리의 말에 데이비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없는 자리에선 대통령 욕도 한다는 데, 둘은 유재원에 대한 욕은커녕 ‘그분’이라고 특별히 호칭했다.
“게다가 우리 케이스만 봐도 검색어 소유권 같은 가치를 미리 알아봤다는 거 아니겠냐?”
페이지 랭크 시스템을 만들 때 가장 간편한 방식이 그 검색어를 기본 데이터를 삼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검색어의 소유권이 넥스트컴에 있기에, 제리와 데이비드는 가치 있는 데이터를 두고 우회로를 열심히 찾아야 했다.
그나마 입력된 검색어가 야후의 검색엔진에 입력되면서 생성된 메타데이터는 공유할 수 있어서 페이지 랭크 시스템을 꾸릴 수 있었다. 여기에 덤으로 우회로를 찾는 과정에서 웹사이트를 평가하는 여러 가지 지표나 공식을 만드는 성과를 올릴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검색어에 대해선 참 아쉬웠다.
“그나저나, 결정은 했어?”
이어진 데이비드의 물음에 제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네 말 대로 독립은 필수인 거 같아. 페이지 랭크 시스템을 만들면서 사용자들의 검색어만큼 중요한 건 없다는 걸 확실히 알았어.”
결정이라는 건 바로 야후의 독립이었다.
데이비드는 야후의 꾸준한 성장을 위해서라면 넥스트컴과의 결별을 해야 한다는 쪽이었고, 제리는 결정을 유보한 상태였다. 그러다가 검색어의 중요성을 이번에 확실히 체감하게 되면서 마음을 결정했다.
“그래도 당장은 무리야. 찢어질 땐 찢어지더라도 우리가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건 최대한 얻어서 가자고.”
대신 한 가지 단서를 붙였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이지.”
말만 들으면 마치 음흉한 음모라도 꾸미는 것 같지만, 넥스트컴의 파트너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이야기였다. 파트너 관계를 오래 유지할수록 독립했을 때 가져가 쓸 총알도 늘어나기에 제리와 데이비드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아, 나왔다.”
모니터에 잠깐 구동했던 페이지 랭크 시스템의 결과가 떴고, 둘의 잡담은 거기까지였다. 다시금 날카로운 눈빛으로 돌아온 둘은 야후와 자신을 위해 업무에 집중했다.
며칠이 지났다.
i웍스 프로토타입 가동에 성공한 유재원은 각 부품의 제조사들, 그리고 OEM생산을 맡을 TG컴퓨터와 긴밀한 연락을 주고받으며 하드웨어의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에 돌입했다. 그렇지만 하드웨어가 완성이 된다하더라도 새로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가 없다면 반쪽짜리 시스템이었다.
새로운 컴퓨터는 새로운 운영체제와 함께 공급하는 게 제일 이상적이지 않겠는가.
이러한 결론에 도달한 유재원은 안드로이드 완성에 집중하기 위해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주변을 깔끔하게 치워 놓아야 작업에 집중도를 유지할 수 있으니 말이다. 주변 정리 중에 제일 먼저 찾은 건 한국 그리고 미국에서 진행 중인 입법 과정이었다.
-워싱턴은 순조롭습니다. 민주나 공화 모두 회장님의 경고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관련한 공감대는 확실히 형성했습니다. 다만 양측에 정도의 차이가 있어서 실제 법률안이 나오기까지는 약간의 시일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미국의 상황을 ID 테크놀로지 레밍턴 사장이 보고했다.
개인정보 보호부터 어뷰징 처벌까지 유재원이 의도한 대로 법률안이 만들어지는 중이라고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유재원보다 더 깐깐한 사람이 레밍턴이었으니 유재원은 안심했다.
-죄송합니다.
한국의 최강욱에게 연락을 했을 땐, 죄송하다는 말이 먼저 나왔다. 순조로운 미국과 달리 한국은 사안 하나하나가 모두 진통이었던 탓이다.
더욱이 한국은 인터넷 관련법뿐만이 아니라, OECD가입에 대비하는 법률까지 준비해야 했다.
징벌적배상제도, 집단소송제, 각종 관리감독 기구 신설이나 권환 강화 등의 법률은 물론이고 노동법 개정에도 손을 써야 했다.
-징벌적배상제나 집단소송제의 경우엔 기업들이 결사항전의 기세로 반대 중에 있습니다.
“그 분들은 그럴 줄 알았죠.”
-예, 예상했던 바였습니다. 문제는 노동법입니다.
“노동법이요?”
-예, 기업보다 노동계의 반발이 훨씬 더 큽니다. 조만간 기사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유재원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떴다.
이번에 유재원이 제시한 노동법은 전생의 것보다 차원이 달랐다. 당연히 노동자 친화적인 법률을 잔뜩 밀어 넣은 것이 유재원이 제시한 방안이었다. 그런데 기업보다 노동계가 더 반발한다니.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