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330화 (330/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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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티마 온라인

#316

티파니네 외가 모임 이후로 유재원은 정보팀의 운영 방침을 살짝 바꾸었다.

이전까지는 유재원이 알고 싶은 걸 말하면 찾아오는 수동적인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자율적이고 능동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했다.

자율이라는 건 곧 자신이 스스로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일이었다. 레밍턴이 정보팀장인 레빈이 바빠졌다고 하더니 오늘 애플이라는 놀라운 건수를 물어다 온 것이다.

애플이라고 하니 제일 먼저 스티브 잡스가 떠오르는 유재원이다.

예전에 한 번 보자고 미팅 약속이 잡혔다가 일방적으로 취소된 일이 있었다. 혁신가인건 맞는데 되게 이상한 성격이라는 걸 확인한 순간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했다는 뉴스는 없었고, 이전의 기억을 짚어 봐도 지금은 복귀할 시점은 아니었다.

“그러면, 애플의 신제품은 첫 번째 파워맥인가?”

기억의 궁전 속 타임 테이블로 보자면 애플이 발매 예정인 신제품은 파워맥일 가능성이 90% 이상이다. 정보팀장이 보낸 보고서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애플이 파워PC 진영과 납품 계약을 했다고 판단할 수 있는 유력한 증거들이 첨부되어 있었다.

파워PC는 애플이 IBM, 모토로라와 함께 만든 마이크로프로세서다. 베이스는 IBM의 파워 마이크로프로세서인데, 원래는 메인프레임 CPU용도로 개발된 용도였다. 그런데 메인프레임용으로만 쓰기엔 개발비나 성능이 아까워서 다른 용도를 찾아보는 중에 애플과 접촉하게 된다.

이때 애플은 모토로라의 68시리즈 CPU의 성능에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CPU를 찾아보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PC에서는 HPC로 전환되었고, 덕분에서 성능이 100, 200%씩 오르고 있었으니 애플사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궁지에 몰린 상태였다.

그렇다고 애플은 동맹과도 같은 모토로라를 외면하고 인텔이나 AMD CPU를 채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인텔이나 AMD는 유재원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와 끈끈한 수준을 넘어 찰떡과 같은 궁합을 자랑하고 있었다.

업계에선 이를 가리켜 AIA 동맹이라고 할 정도다. 무슨 보험회사 이름 같지만 안드로이드, 인텔, AMD의 머릿글자를 따서 만든 글자였다. 그렇다고 진짜 동맹을 맺은 건 아니지만, 동맹에 비견될 만큼 끈끈한 건 사실이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는 인텔이나 AMD의 신기술을 적극 지원했고, 인텔과 AMD는 안드로이드에 맞춰 최적화를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해도 문제가 없던 건 현재 PC출하량 중에 90%이상이 IBM 호환 시스템이었고, 개인용 운영체제는 95%이상이 안드로이드 체제였기에 가능했다.

애플의 점유율은 한자릿수 아래로 떨어진지 오래였고, 애플이 자랑한 맥OS는 안드로이드를 따라가기에 바빴다. 이런 상황에서 인텔이나 AMD의 CPU를 채용하는 건 애플의 충성도 높은 팬을 배신하는 것과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천만다행히도 IBM의 파워 CPU가 애플의 요구사항을 딱 맞추었다, PC용도에 맞는 기능을 추가해서 만들어진 게 파워PC 6xx 시리즈다.

“이번에 나올 파워PC도 오리지널보다 성능이 크게 오르긴 하겠지?”

구리배선 기술이 있으니 말이다.

구리배선 기술은 돈만 내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IT 대부흥을 위해서 유재원은 과감하게 라이센스를 반도체 생산 기업에 다 풀었다. 일성전자도 구리배선 기술을 사갔을 정도이니 IBM이나 모토로라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어디보자.”

유재원은 추측에서 멈추지 않고, 곧장 법무팀이 보냈던 보고 자료가 쌓인 디렉토리를 열었다. 거기서 HPC 관련 자료를 검색했다. 유재원은 이제껏 받은 보고서를 꼬박꼬박 하드디스크에 저장해놓고 있었기에, 온라인 상태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쉽게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역시 있네.”

라이센스 구매자 목록 중에 IBM과 모토로라의 이름이 떡하니 보였다. 구매 시기도 일성전자보다 훨씬 빨랐다.

“흠, 그런데 성능 향상 폭이 얼마나 되려나 몰라.”

구리 배선 기술이 도깨비 방망이처럼 적용된 반도체의 성능을 몇 배로 끌어 올려주는 것은 아니다.

업그레이드되는 성능의 폭은 반도체 회사의 개발 능력에 전적으로 달렸다. 그래도 전통의 강자인 IBM이라면 경계해야 하는 업체였다.

더욱이 파워PC는 IBM이 자랑하는 메인프레임에 사용되는 CPU기반으로 그만큼 성능도 탁월했다.

명령어가 단순한 RISC 방식이라서 작동 속도도 훨씬 빠르고 하나의 물리 CPU가 무려 8개나 되는 쓰레드를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이전에 애플은 파워맥이 인텔의 최신 CPU를 쓴 PC보다 2, 3배는 빠르다고 자랑했었다.

모든 응용 프로그램에서 그런 성능 차이가 나온 건 아니지만, 특정한 시나리오에서는 분명히 광고한 정도의 성능이 나왔으니, 허위과장 광고는 아니다.

“이번에도 2, 3배란 말을 쓰려나?”

파워PC가 구리배선 기술로 보다 빨라진 만큼, 인텔이나 AMD도 빨라졌다. 그러니 성능의 차이도 예전과 비슷할 것이다.

“음, 그러고 보니 우리도 슬슬 신제품을 낼 때가 되긴 했네.”

유재원의 목소리에 다급함은 그다지 없었다.

파워PC가 상기했던 장점으로만 무장했다면 시장은 단번에 뒤집혔을 테지만, 그만큼 단점도 엄청났기 때문이다.

파워PC의 가장 큰 단점은 무지막지한 개발 난이도이다.

칩의 설계도 어렵지만, 설계된 성능을 완벽하게 뽑아낼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도 어렵다. 작동 속도가 높아서 전기도 많이 먹고 발산되는 열도 어마무시했다.

애플의 파워맥이 대중화되지 못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엄청나게 비싼 가격 때문이었고, 기존의 애플 경영진이 아직도 그대로 자리하고 있다는 점도 큰 단점으로 꼽을 수 있었다.

작년까지 애플의 최고경영자는 존 스컬리였다. 펜실베니아 와튼스쿨 경영학 석사 출신이고, 애플 이전에는 펩시콜라의 사장이었던 사람이다.

마케팅의 귀재로 코카콜라와 펩시의 블라인드 테스트 광고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주인공이기도 했다. 상표를 가린 콜라 두 잔을 마셔보게 하고, 어느 쪽이 좋은지 물어보는 광고였다.

애플사의 경영진은 마케팅에서 PC 진영에 밀린다고 생각하고 존 스컬리를 데려온 것인데, 결국 이 결정이 스티브 잡스가 애플사를 나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기대했던 마케팅을 잘한 것도 아니었고, 이상한 실패작을 잔뜩 만들게 되면서 애플의 몰락을 부추겼다.

“그 양반이 의외로 비전은 있었는데 말이지.”

애플의 팬들에게 존 스컬리는 애플을 말아 먹은 원흉이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예 답이 없는 양반은 아니라는 게 유재원의 생각이었다. 뉴튼이라는 최초의 PDA가 존 스컬리로부터 나왔고 타블렛 개발도 열심이었다. 다만 이상은 높은데 이를 실현할 기술을 만들지 못한 게 문제였다.

현재 애플의 최고경영자는 마이클 스핀들러인데, 이번에 준비된 파워맥이 그가 만드는 첫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게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다.

애플의 성골이었고, 파워맥이라는 굵직한 제품을 만들어냈지만, 애플의 최고 경영자 자리엔 오래 앉아 있진 못했다.

파워맥 역시 판매는 시원찮았고, 스티브 잡스가 왕의 귀환이라는 말에 딱 어울리게 복귀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엔 전문가를 타겟으로 잡아 볼까?”

뉴에그2는 일반 사용자 대상으로 설계된 PC였고 아직도 잘 팔리는 컴퓨터였다.

IBM 호환PC 중에 가장 완성도 있는 하드웨어를 자랑하고 있어서 고급형 모델을 원하는 사람에겐 꾸준한 수요가 있었다. 최고 사양의 뉴에그2라면 앞으로 1, 2년 후라도 현역으로 충분하다.

반면 시간이 곧 돈인 전문가라면 약간의 성능 향상을 위해서 언제나 주머니를 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많았다.

“어디 보자.”

유재원은 쉘북을 뒤적이며 여러 가지 문서를 동시에 띄웠다. 하드디스크 읽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서 옆자리에 있던 김대석이 고개를 돌려 볼 정도였다. SSD 생각이 간절해졌지만, 아직은 요원한 물건이니 그냥 좀 참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요란법석하게 떠오른 문서는 CPU와 램 그리고 다양한 하드웨어 제조사들이 보낸 엔지니어 샘플 리스트와 상세 스펙을 정리한 문서였다.

신제품 하드웨어가 나오더라도 운영체제가 지원하지 못하면 벽돌이나 다름이 없다. 그렇기에 안드로이드 사로 하드웨어 제조사들의 최신 엔지니어 샘플과 출시 예정일이 담긴 상세한 로드맵을 보내주는 건 이제는 당연한 일이 되었다.

“펜티엄3가 올 여름 출시 예정이네?”

덕분에 유재원은 앉은 자리에서 인텔의 최신 제품의 스펙은 물론 아키텍처 구조까지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이름 정도는 연초에 로드맵을 발표할 때 일반인에게도 공개가 되지만, 성능표까지 들어있는 표를 받아보진 못한다.

펜티엄3는 기본 클럭 스피드가 400Mhz로 향상되었고, 최고급형의 경우 600Mhz짜리도 나올 거라고 했다.

단순히 클럭 스피드만 높인 게 아니다. MMX라는 멀티미디어 처리에 최적화된 새로운 명령어를 탑재했고, 여기에 L1, L2캐시 용량도 2배로 늘려 기존 펜티엄2에 비해 커다란 성능 향상을 이뤄냈다고 자랑하고 있다.

단순히 말로만 설명하는 게 아니라, 벤치마크 프로그램이나 게임, 여러 전문가용 프로그램을 돌려 비교한 수치도 첨부되어 있다.

둠2 게임을 놓고 보면 펜티엄 2에 비해 대략 30%의 향상이 있었고, 3D MAX라는 렌더링 프로그램의 경우엔 70%가 넘는 성능을 보였다.

이렇게 큰 성능 향상의 차이를 보이는 건 새롭게 탑재된 MMX 명령어를 얼마나 잘 지원하느냐에 따라 달라진 것이다.

둠2는 MMX 지원 패치가 없었기에 그냥 높아진 클럭 스피드만큼의 성능이 올라갔고, 3D MAX는 MMX 명령어를 적극 사용하도록 인텔이 자체 튜닝한 드라이버를 써서 성능 향상이 훨씬 커졌다.

“MMX를 잘 쓰면 좋지.”

둠2의 경우도 MMX 명령어에 대응하는 패치를 해주면 성능 향상이 더 올라갈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도 최적화를 해주면 지원이 끊겨 새로운 패치가 나오지 않는 응용 프로그램의 성능 향상을 노려볼 수 있다.

“AMD는 애슬론인가?”

원래 대로라면 K7이란 이름으로 나올 물건이었다. 그런데 인텔이 486이후부터는 숫자 마케팅을 끊고 펜티엄이라는 별도의 브랜드로 마케팅을 하면서, AMD도 K시리즈를 놓고 이제는 애슬론이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준비한다고 했다.

AMD는 애슬론의 기본 작동 속도가 500Mhz는 될 것이고, 최고급형의 경우 700Mhz까지 달성할 거라고 자신하고 있었다.

“제대로 칼을 갈았네.”

첨부된 패키지 사진을 보니 쿨러가 크고 우람했다.

인텔은 손바닥만한 방열판 정도였는데, 애슬론에 들어가는 쿨러는 인텔의 것보다 몇 배는 컸고, 소재도 통짜 구리였다. 다만 통짜 구리 쿨러는 최고급형인 700Mhz짜리에만 들어가고 일반형인 500Mhz 모델의 경우엔 알루미늄 베이스에 CPU와 닿는 부분만 구리심이 박힌 쿨러였다.

“이야, 쿨러 연구도 제대로 했나봐.”

유재원이 집까지 찾아온 AMD의 CTO 테리 마이크론에게 선물로 줬던 쿨러에게 큰 감명을 받았던 게 확실했다. 하긴 아키텍처의 개선이나 반도체 소재의 개선과는 너무도 간편한 냉각 방식의 개선만으로 성능의 향상을 크게 이끌 수 있었으니, 새로운 세계를 맛본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특히 AMD는 인텔에 비해 클럭당 처리 속도가 느렸고, 이때문에 작동 속도를 높이는 데 훨씬 공을 들였다. 작동 속도가 높아지면 발열량이 높아졌는데, 이를 압도적인 쿨러로 해결하면서 애슬론의 첫 세대부터 700Mhz라는 인텔보다 빠른 속도를 달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통짜 구리 쿨러를 기본 제공하면서 단가가 상승했고, 그만큼 마진이 줄게 되었지만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기에, AMD는 과감하게 가성비 높은 패키지를 만들었다.

“사이릭스는 없나?”

사이릭스라는 제3의 CPU제조사도 있긴 했는데, 유재원에게 날아온 신제품 스펙 문서에는 그 이름을 찾아 볼 수 없었다.

HPC 시대에 접어들면서 CPU 시장이 인텔과 AMD의 양강 구도로 재편 중인데, 사이릭스가 버티지 못하고 뒤쳐지는 모양이다.

이에 대한 원인 분석을 유재원은 쉽게 했다. 미국의 경제 활황과 함께 소비자들의 주머니 사정도 다들 좋아지면서 염가의 저성능 제품보다는 좀 비싸도 고성능의 모델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고 말이다.

에그 시리즈 컴퓨터의 판매량이나 3D 가속카드의 판매량을 보면 염가형 모델보다는 중급형 제품이 훨씬 많이 팔리고 있었다. 예전엔 수요가 극히 적었던 최고급형 모델도 판매량은 확실히 크게 늘었다.

“음, 아무래도 CPU는 인텔을 써야겠지.”

유재원이 설계하는 컴퓨터는 언제나 최고의 제품만을 쓴다.

앞으로 출시될 애슬론 고급형 모델이 700Mhz나 되는 작동 속도를 자랑했지만, 클럭당 처리 능력을 보면 펜티엄3에보단 부족하다. 덕분에 벤치마크 수치를 보면 펜티엄3 600Mhz 모델이 우위에 있다.

새롭게 추가된 명령어도 인텔이 좀 더 좋았다.

AMD 역시 크로스 라이센드 덕에 인텔의 MMX 명령어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고, 여기에 독자적인 명령어를 더해 3D NOW!라고 명명했다. MMX에 AMD가 더 추가한 명령어가 3D 처리에 특화된 것이라 3D NOW!란다.

문제는 명령어를 처리하는 데 사용하는 레지스터가 MMX 명령어와 같아서 3D NOW와 MMX를 동시에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MMX 기술을 인텔로부터 가져오긴 했는데, 기본 CPU설계에 차이가 있어서 같은 명령어라도 인텔의 성능이 좀 더 좋았다.

결정적으로 쿨링 문제도 있다.

유재원은 뉴에그2를 이을 신제품 PC도 디자인을 매우 중요하게 다룰 예정이었다. 그런데 발열이 높으면 디자인과 안정성에 있어 감점 요소가 된다. 차라리 펜티엄3를 쓰고, 여기에 애슬론 고급형에 들어가는 통짜 구리 쿨러를 쓰는 게 훨씬 좋다.

어차피 유재원이 설계하는 컴퓨터는 가성비를 따지는 건 아니었으니, 일단 최고로 설계하는 게 맞다.

“메모리는 당연히 미래전자의 슈퍼그린 메모리를 써야지.”

슈퍼그린 메모리라고 해서 기존의 D램과 크게 달라진 건 아니다.

미래전자가 일성전자와 구분하기 위해 새롭게 만든 메모리 브랜드였다. 특징은 친환경과 고성능이다.

일성전자에서 나오는 메모리칩은 일명 트레이 제품이다. 개별 포장 없이 100개짜리 트레이에 담겨 있었다. 컴퓨터 제조사에 납품되는 형태인데, 개인 소비자에게 낱개로 팔 때는 여기에 담긴 제품을 그냥 은박지에 싸서 팔았다.

반면 미래전자의 슈퍼그린 메모리는 기업 납품용 트레이 제품뿐만이 아니라 소매시장을 위한 1개짜리, 2개짜리, 4개짜리 포장 제품이 따로 나온다.

겉으로 보면 녹색의 깔끔한 박스에 담겨 있는 게 제일 큰 차이점이지만, 성능도 선별된 것들을 따로 골라내 포장했기에 오버클럭에 아주 좋았다.

HPC 이전 컴퓨터들은 CPU의 작동 속도와 메모리의 작동속도가 1:1로 매칭이 되었다. 그런데 HPC로 CPU가 고속화되고, 주변기기와 1:1로 작동 속도를 매칭 할 수 없게 되면서 둘을 분리했다. 메모리 역시도 CPU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병목현상이 일어나는데, 메모리를 오버클럭해주면 성능향상이 제법 크게 체감된다.

물론 모든 보드에서 다 메모리 오버클럭이 다 되는 건 아니고, 고급형 보드에서 가능하다. 고급형 보드를 사는 이들은 컴퓨터의 성능을 조금이라도 향상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오버클럭이 된 상태로 출시되는 슈퍼그린 메모리는 컴퓨터 마니아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여기에 친환경이라는 키워드도 시대를 관통했다.

90년대 초부터 미국도 환경오염이 심각한 화두로 대두되었다. 특히 반도체 생산에 심각한 환경오염을 유발하고, 사람에게도 암을 유발할 수 있는 나쁜 물질을 사용하는 게 알려지면서 큰 문제가 되었다.

미래전자는 이러한 생산 공정에서 유독성 물질 사용을 최소화했고, 사람이 그러한 물질에 노출되는 것도 설계 단계에서 차단했다. 그만큼 공장을 짓는 데 돈도 많이 들었지만, 친환경이라는 가치를 어필할 수 있게 되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다.

일성전자도 친환경을 강조한다고 부산을 떨기 시작했다는데, 거긴 공장 전체를 고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유재원이 확인한 건 3D 가속카드였다.

2D만 지원되던 옛날의 VGA카드는 이제는 아예 나오지도 않는다. 아무리 저렴한 VGA라도 3D 가속칩은 꼭 달았다. 속도는 처절하더라도 일단 3D를 지원해야 판매가 될 만큼 3D는 대세였다.

덕분에 VGA시장도 커다란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2D 시대에 전통의 강자는 ATI라는 그래픽 카드 회사였는데, 3D 시대에 접어들면서 급속도로 커나가는 회사는 엔비디아와 3DFX라는 신생업체였다.

3DFX와 엔비디아는 강력한 3D 가속 기능이 있는 전용칩만 제작해 VGA제조사에게 파는 방식으로 영업 중이었는데, 덕분에 수많은 VGA 제조사에서 두 회사의 칩을 쓴 3D 가속카드를 찍어냈고, 그만큼 무서운 속도로 팔려나갔다.

유재원은 두 회사가 정식 영업을 시작할 때부터 ID 인베스트먼트를 통해 투자를 마쳤다. 성능을 중시하는 유재원은 올 가을쯤 출시될 엔비디아의 신형 VGA카드인 리바 TNT를 쓰는 걸로 마음을 정했다.

“그런데, 고성능이나 디자인으로도 어필하는 것도 이젠 많이 익숙해진 거 같단 말이지.”

고성능으로 중무장한 컴퓨터를 만드는 건 이제 쉽다. 에그 시리즈가 선사한 센세이션덕에 디자인에 신경을 쓰는 회사들도 이제는 크게 늘어났다.

지금부터는 뭔가 다른 것 하나 즉 플러스 α 더 추가해야만 압도적인 우위를 점유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유재원이다.

본래 이런 전략적인 판단은 그룹에 딸린 연구소나 전문 컨설팅 업체를 통해 받는 게 보통인데, 유재원은 그러지 않았다. 이미 플러스 α에 대한 답도 도출했기 때문이다.

“이제 인텔리전트라는 말을 꺼낼 때가 됐지.”

인텔리전트는 지능이라는 의미였고, 보통 컴퓨터에선 ‘i’라는 접두사로 표시되었다. i는 인터넷의 i도 될 수 있으니 무척이나 매력이 넘치는 알파벳이기도 했다. 다만 에그에 i를 붙이는 건 좀 이상한 느낌이기에 아예 새로운 브랜드로 따로 런칭하는게 좋을 것 같다.

i라는 접두사가 부끄럽지 않을 지능형 기능도 유재원의 머릿속에 무궁한 아이디어가 있었다.

“음, 그러면 출시 시점을 어느 때 잡으면 좋으려나?”

유재원은 쉘북 화면에 94년도 달력을 띄워 놓고 좋은 날을 따져 봤다.

“아무래도, 파워맥이 출시되고 나서 2, 3개월 후가 딱이겠다.”

정보팀장의 보고서에는 대략 5월이나 6월쯤에 나올 것 같다고 한다. 그러니 유재원의 새로운 컴퓨터는 가을인 8월에 출시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출시 시점을 그렇게 잡은 이유는 간단하다.

1세대 파워맥은 시장에서 별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망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1세대 파워맥이 혹평을 치를 때 ID 그룹의 차세대 컴퓨터가 인텔리전트 기능으로 무장하고 출시되면 얼마나 대비가 되겠는가.

관건은 저격용 제품을 그렇게 빨리 준비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지만, ID 그룹이라면 문제 없다. 부품은 이미 다 준비되어 있는 것이고, 그걸 잘 조합만 되면 하드웨어 문제는 끝이다. 대신 인텔리전트라는 말이 어울리는 혁신적인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게 큰일이겠지만, 그것도 유재원이라면 가능하다.

“후후, 이거 딱이네. 그런데 너무 악당 같은가?”

슬며시 웃던 유재원은 살짝 자기반성에 들어갔다. 하지만 애플사가 이전보다 확실하게 다른 혁신을 보여주지 않으면 망하는 건 기정사실이다. 그리고 아예 망할 때 크게 망하는 게 좋다. 그래야 애플의 경영진도 정신을 차리고 스티브 잡스를 다시 데려오는 날도 빨라지지 않겠는가.

유재원은 기왕이라면 제대로 된 상대와 맞붙어 보고 싶었을 뿐이다.

이전과 달라진 IT 환경만큼, 스티브 잡스의 인식과 능력이 업그레이드되어 유재원의 예상을 뛰어넘는 물건을 만들어낼 가능성은 확실히 높다.

그걸 통해 자극을 받아 ID 그룹도 더 나은 물건을 내놓는다면, 이것이야 말로 바람직한 경쟁이이지 않겠는가.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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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인데 태풍이 올라오고 있어요! 독자님은 피해없이 보내길 바랍니다~!

-Vill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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