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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티마 온라인
#315
“유재원 회장님, 방문을 환영합니다!”
젊은 리처드 개리엇이 오리진 시스템즈의 입구에서 유재원을 격하게 환영했다. 오늘 처음 만나는 것임에도 십년지기 친구처럼 반가운 얼굴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해체될 뻔한 오리진 시스템즈를 살려준 은인이 유재원이었으니, 생면부지라도 반가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80년대에는 울티마 시리즈로, 90년대에는 윙 커맨더 시리즈로 황금기를 구가하던 오리진 시스템즈였지만 거대 투자금이 투입된 울티마 8과 윙 커맨더 3의 연속 부진에 회사가 위태로워졌고, 매수자도 없어서 회생 가능성이 희박한 상태에서 유재원이 흑기사처럼 나타나준 것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ID 엔터테인먼트에 편입되면서 단순히 자금줄만 풀린 게 아니라 시스템적인 지원도 있게 되면서 회사가 한층 탄탄해졌다. 안정적인 월급도 나왔고, 개발자를 위한 환경도 확 달라졌다.
전원 뉴에그2 시스템이 주어졌고, 필요하다면 클라우드 컴퓨터를 렌더링 머신으로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개발 환경은 더더욱 좋아졌다.
개발 외적으로 신경 쓸 일이 모두 사라지니, 리처드 개리엇은 의욕적으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열심히 이끌고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리처드도 상상만 해봤던 일을, 대규모 자본과 최첨단의 기술로 현실화 하는 것이기도 했기에, 그 어느 때보다 즐겁게 일하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유재원이 방문한다하니 한달음에 달려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리처드 씨, 반가워요.”
리처드와 악수를 하는 유재원도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살아있는 전설을 보는 건 역시나 재미있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유재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이미지와는 살짝 괴리감이 있긴 했다.
유재원의 기억 속 이미지는 백발에 이마가 훤히 드러나있고 호리호리한 체격의 남자였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는 짙은 금발이었고, 머리카락도 가득했다. 달라지지 않은 건 수염인데, 덥수룩하지 않고 깔끔한 게 매일 관리하는 모양이었다.
옷차림도 이제껏 봤던 개발자들 중에 제일 좋았다. 워싱 청자켓에 크롬 목걸이를 하고 있는데 세련된 모습이었다. 가장 무난한 정장 차림의 유재원과는 확실히 다른 스타일의 남자였다.
다만 유재원의 뇌리에 남은 우주 먹튀라는 이미지는 워낙 강렬해서 현재의 리처드와 쉽게 매칭이 되지 않았다..
울티마 시리즈는 완전 서양풍 RPG라서 유재원은 플레이를 해본 적이 없었다. 유재원이 리처드의 이름을 들어본 것은 2000년대 초 엔지 소프트에 스카우트 되었을 때였다.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고 싶다면서 사표를 내던진 김택준이 설립하는 게임 개발사가 바로 엔지 소프트였다.
여기서 리처드가 유명세를 얻은 건, 그가 엔지 소프트에 스카우트되어 만들던 초대작 MMORPG가 이름값도 못해보고 망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프로젝트가 망했지만, 리처드는 계약 때 받았던 스톡옵션까지 알뜰하게 행사해서 백억 원이 넘는 수익도 보았고, 이 돈으로 우주여행이나 다녀왔다고 비난이 컸다.
이때 나온 별명이 우주 먹튀였다.
하라는 게임 개발은 안 하고 우주비행사가 됐다고 말이다.
심지어 한국 뿐만아니라 미국이나 다른 나라의 커뮤니티까지도 들썩 거릴 정도였다. 울티마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던 유재원도 그때 리처드 개리엇의 이름과 이미지를 접하였다.
그런데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 있었다.
엔지 소프트에 온 리처드 개리엇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해 의욕적으로 게임 개발에 착수했는데, 사사건건 딴죽을 건 것이 엔지 소프트였던 것이다.
엔지 소프트 특유의 개발 방침과 게임에 대한 이해가 달라 생긴 일이었다. 엔지 소프트는 수익성이 우선이었고, 리처드 개리엇은 독창성과 게임성이 우선이었으니 말이다. 이게 점점 심해지면서 따돌리고 무시하는 분위기까지 조성됐다고 한다.
게다가 리처드가 우주여행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그의 아버지가 나사의 우주비행사였기 때문이다. 우주비행사인 아버지를 보고 자랐으니 자연스럽게 우주여행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유재원은 오리진 시스템즈와 리처드 개리엇이 ID 엔터테인먼트에 편입된 지금은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행보를 걸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리처드는 같이 서 있던 오리진 시스템즈의 핵심 개발자들을 유재원에게 소개해주었다.
폴 아이작과 아론 마틴, 마이크 맥세프리, 워렌 스펙터 등등. 게임의 역사에 제법 커다란 발자국을 남긴 사람들이 줄줄이 나왔다.
“그러면 회사도 소개시켜드릴까요? 회장님 덕에 개발환경도 획기적으로 달라졌거든요.”
리처드의 제안에 유재원은 두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
“음, 그건 됐고, 저는 그게 제일 먼저 보고 싶은데 말이죠. 제가 게임에 있어선 인내심이 상당히 약해지는 타입이라서요.”
“후훗, 그러시군요. 저희도 회장님의 반응이 너무도 궁금하던 차였습니다. 자, 가시죠!”
유재원의 요청에 리처드 개리엇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앞장섰다. 유재원도 부푼 기대감을 안고 리처드의 뒤를 빠르게 따랐다.
리처드가 안내한 곳은 본인의 사무실이었다.
사무실은 여타 다른 개발사들과는 좀 달랐다. 진열장이 벽 2면을 장식하고 있었는데, 한쪽에는 오리진 시스템즈가 수상했던 상장과 자사의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 피규어들이 가득했고, 다른 한쪽으로는 게임개발 관한 서적들로 꽉 차 있었다.
장식용이 아닌 듯 낡은 책과 손때가 묻은 책도 가득했고, 최근에 책장에 들어온 듯한 새것 느낌의 책도 많았다. 그중에 눈에 들어오는 건 ‘글라이드 X3 마스터하기’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프로그래밍 가이드’같은 책이었다.
새책인데도 자세히 보면 많이 본 티가 났다.
리처드 개리엇 역시 이미 프로그래밍에서도 상당한 경지에 오른 사람이었다. 이젠 게임개발에서 모든 작업을 책임지는 크리에티브 디렉터를 역임하고 있으니 직접적인 코딩을 할 일은 없다. 그럼에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 걸 보면, 대단한 사람인 건 확실했다.
“자, 여기 앉으세요!”
리처드는 자신의 자리를 유재원에게 거침없이 내어주었다. 유재원이 온다고 정리한 건지, 아니면 본래 깔끔한 성격인 건지는 몰라도, 책상 정리도 깔끔했다. 게다가 책상 위에 놓인 뉴에그2에 어울리는 메탈 소재의 악세서리를 잘 세팅해두어서 보기에도 좋았다.
컴퓨터는 곧 전원이 켜졌고,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바탕화면이 유재원을 반겼다.
바탕화면도 리처드 개리엇의 취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필수적인 아이콘만 있고 나머지는 다 숨겨져 있었다.
“3.0버전이네요. 그것도 베타4버전?”
유재원은 바탕화면만 보고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버전을 알아봤다.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바탕화면에 베타버전이라는 문구가 뜨지도 않았으니, 리처드가 신기하게 봤다. 그렇다고 유재원이 컴퓨터와 직통으로 소통하는 건 아니다.
“여기 내 컴퓨터 아이콘 보면, 컴퓨터 모니터 속에 4라고 되어 있잖아요. 이게 베타4 버전이라는 뜻이죠. 쉬프트키를 누르면서 여기 4라는 글자를 클릭하면, 버전이 딱 뜨죠.”
유재원은 직접 시범을 보여줬다. 그러자 조그만 메시지박스가 뜨면서 안드로이드 버전과 등록된 사용자 이름이 딱 떠올랐다.
게임 최적화를 위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따로 공부하고 있던 리처드도 그럼그렇지 하는 표정이다.
리처드는 유재원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공부 중에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윙 커맨더 3와 울티마 8의 처절한 실패 중 가장 큰 요소로 꼽힌 게 최적화 실패였기 때문이다.
너무도 고사양 게임이라서 웬만한 컴퓨터로는 돌리기 버거웠다. 요즘이야 HPC로 가볍게 돌리는 게임이지만, 그 당시에는 펜티엄급 컴퓨터의 보급이 막 시작되던 참이었고, 486이 대세이던 때였다.
리처드의 명성을 보고 큰 기대하며 구매했던 게이머들은 무지막지한 하드웨어 요구 사양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는데, 리처드는 그런 부류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열심히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분석하며 최적화를 위한 아이디어를 짜내는 중인데, 기본적인 버전 확인법도 몰랐나 싶어서 살짝 놀랐던 것이다.
“이걸 실행하시면 됩니다.”
장난기 가득한 이스터에그였음을 확인한 리처드는 바탕화면에 떠 있던 몇 안 되는 아이콘 중 하나를 집어줬다.
아이콘의 형태는 U라는 알파벳을 고딕체로 찍은 모양이었고, 그 아래엔 UO라는 짧은 제목이 달린 것이었다. 유재원은 거침없이 아이콘을 더블클릭했다.
그러자 그륵그륵 거리는 하드디스크 읽는 소리가 거칠게 났고, 몇 초 후 심플한 바탕화면이 검게 변했다. 곧이어 웅장한 음악과 함께 오리진 시스템즈의 로고가 바로 떠올랐고, 게임사 고로가 사라지고 나서 아름다운 선율의 클래식한 음악과 함께 타이틀 로고가 나타났다.
울티마 온라인이다.
“와아.”
인피니티드리머라는 아이디를 만들어 접속한 유재원은 플레이를 시작한 지 30분이 지날 동안 여러 번 탄성을 자아냈다.
오리진 시스템즈를 과감하게 인수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리처드 개리엇의 역작인 울티마 온라인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게임은 본래 97년에나 정식 출시될 게임이었다.
인수했던 당시엔 온라인용 RPG게임을 만들어 보겠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없었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리처드에게 대규모 온라인게임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직접 했다. 그게 작년 가을쯤이었다.
제안을 듣고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고 해도, 그 시간은 반년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울티마 온라인에 실제 구현된 기능들은 유재원이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시작부터 대단했다.
울티마 온라인의 세계인 샤드에 진입할 때부터 기대 이상의 결과물이 유재원을 반겼다. 바로 아바타 생성이다.
다양한 복장과 무기, 방어구로 아바타를 꾸미는 방법이 무궁무진했다. 보통은 기본 장비만 주고 진입하는데, 개발자 버전이라 그런지 게임상에서 구현할 수 있는 장비와 복식을 모두 입혀 놓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픽은 투박한 2D였지만, 착용한 아이템이 바뀔 때마다 그래픽적으로 확실히 차이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접속한 게임도 확실히 기대 이상의 퀄리티였다.
물리 공격을 이용한 기본적인 사냥부터, 활과 같은 원거리 공격, 마법을 이용한 공격까지 잘 구현되어 있었다. 오픈된 사냥터뿐만이 아니라 보다 강한 몬스터가 나오는 던전도 잘 구현되어 있었다.
다만 타격감이나 사운드를 좀 손봐야 할 것 같은데, 한창 개발 중인 걸 고려하면 엄청나게 괜찮은 수준이다.
“울티마 8의 리소스를 재활용했습니다.”
리처드의 설명엔 약간의 멋쩍음이 담겨 있었다.
유재원으로부터 대규모 온라인 RPG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 이거다 하는 느낌이 바로 들었다. 리처드 개리엇의 손끝에서 창조된 울티마의 세계관은 여러 편의 후속작들이 대히트를 치며 수많은 게이머를 감동시켰다.
그만큼 울티마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게이머들이 많았다.
이들이 모두 하나의 시스템 위에 접속해 각자의 룰대로 동시에 플레이를 한다면 재미는 저절로 보장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리처드 개리엇은 자신이 할 일이 플레이어들이 익숙한 세계를 만들고,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네트워크 시스템을 만드는 것임을 바로 인지했다.
덕분에 생각보다 일은 쉬웠다. 다중 접속 네트워크를 위한 서버와 클라이언트 제작 기술은 ID 테크놀로지가 제공했고, 서버도 안정적인 클라우드서버를 사용할 수 있었다. 게다가 울티마 8이 망하긴 했어도, 이걸 개발하면서 만들어진 리소스가 한가득 남아 있었다.
이를 조합해서 게임을 만드니 그 속도가 무척이나 빨랐고, 퀄리티도 좋았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3D 게임이 대세인 지금 2D 게임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래도 울티마를 즐겨했던 게이머들에게 익숙한 그래픽이었으니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다. 넥스트컴의 게이머 게시판이나 2CH.com의 울티마 게시판에 가보면 오리진 시스템즈에서 차세대 온라인 게임을 만든다는 소식이 퍼져 있는데, 기대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게이머들의 기대감을 충족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지금 상태를 보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알파 버전 수준도 아닌 이제 겨우 개발 단계에 있음에도, 21세기 온라인 게임을 즐긴 유재원도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온라인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동시 접속 기능도 제법 괜찮았다. 한 화면에 30명 정도의 플레이어가 모여 북적거려도 20프레임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처음의 부드러운 느낌이 좀 사라지긴 했어도 게임을 하는데는 지장이 없었다.
김택준이 과연 얼마나 뛰어난 온라인 게임을 만들지 모르겠지만, 완성도나 시점 모두 울티마 온라인을 앞서진 못할 것이다.
이날 유재원은 늦은 밤까지 울티마 온라인을 플레이했다.
리처드는 물론 다른 개발직 직원들까지 모두 접속해서 온갖 것을 다 해봤다. 울티마 온라인의 단점은 메인 시나리오가 없다는 것이고, 반대로 최대 장점은 무한의 자유도라고 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서 마피아 게임부터 술래잡기, 거지와 왕자 등등. 룰을 공유하는 사람이라면 함께 할 수 있는 게임은 다 해본 것 같았다.
이중 백미는 GM 레이드였다. 리처드가 GM을 맡았고, 유재원이 공대장을 맡았다. 결과는 유재원의 패배였다.
울티마 온라인에는 GM이라도 무적이라는 건 없었지만, 강력한 체력회복능력에 사기적인 공격스킬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체력회복능력은 자동으로 발동되는 패시브 능력이었다. 그러니 일반 플레이어들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GM을 쓰러뜨리는 건 불가능하다.
대신 네트워크 시스템의 한계에서 나오는 버그성 플레이로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공격했다.
패시브로 자동 회복스킬이 사용되면 서버로 그 명령이 전해지고, 체력이 회복되는데 네트워크 대역폭이 크게 몰리는 상황에 발생하면 렉이 발생하면 즉각 회복되지 않는 것이다.
유재원은 타이밍을 보고 있다가 틈을 노려 딜러들과 함께 무지막지한 데미지를 밀어 넣었다. 그러자 리처드 개리엇의 GM 캐릭터는 체력 막대가 바닥까지 떨어졌다.
조금만 더 밀어 넣으면 0을 찍었을 텐데, 간발의 차이로 렉이 풀리면서 리처드가 승기를 잡았던 것이다.
2D 그래픽이었고, 특수효과도 미비했지만 플레이어들만으로도 이렇게나 재미있는 플레이를 할 수 있었다.
이후 유재원은 오리진 시스템즈 직원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 피드백은 물론, 적당한 액수가 담긴 금일봉도 두둑히 나눠주고는 다음 일정을 시작했다.
다음 날, 유재원의 전용기는 서쪽으로 머리를 틀었다.
행선지는 캘리포니아 어바인 시티에 있는 실리콘 시냅스였기 때문이다. 최근 유재원이 받았던 베타버전 게임 중에서 가장 수준이 높았던 워크래프트를 만든 바로 그 게임회사다.
ID 소프트웨어나 오리진 시스템즈처럼 따로 시간을 내서 피드백을 줘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실리콘 시냅스의 개발 환경이 어떤지 직접 가서 살펴보고, 경영진과 의논할 일도 몇 가지 있었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 유재원은 본인의 쉘북에 업무거리를 잔뜩 담아 놓았다.
이렇게 먼저 갈무리를 해서 받아 놓은 다음, 오프라인 모드로 업무를 보는 건 이제 유재원에겐 익숙해진 방식이었다.
결재를 기다리는 임직원들도 이런 방식에 익숙해져서 유재원이 비행기에 타는 스케줄이 있다고 하면, 제일 중요한 보고 사항을 이때 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ID 그룹 법무팀장 엘런과 정보팀장 레빈 윌리스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응? 우리가 이겼네.”
엘런이 보낸 보고서의 내용은 ID 그룹이 당한 집단 소송의 1심 판결이었다.
갑자기 이겼다고 하니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보고서를 자세히 읽어보자 기억이 났다. 넥스트컴캐스트의 광대역 인터넷이 불법복제를 유통하고 방관한다고 수많은 게임개발사들이 고소한 일이 있었다. 집단소송의 대표는 무려 일렉트로닉아츠였고, 배상금으로 천문학적인 금액을 걸었던 소송이다.
얼토당토 않는 소송이라 생각해서 엘런에게 완벽히 위임하고는 이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역시 상식이 승리했다.
아직 확정판결이 난 것은 아니지만, 연방대법원까지 가서도 결과는 뒤집힐 일은 없을 것이다.
“어라?”
정보팀장인 레빈이 보낸 보고서는 이제껏 보냈던 것과는 좀 달랐다.
정보팀은 보통 유재원이 알고 싶어 하는 정보를 찾아와 주는 게 주 업무였다. 그런데 이번엔 경쟁 회사의 정보를 먼저 찾아서 보내준 것이다.
-애플사가 조만간 엄청난 신제품을 발표할 거라는 확실한 증거들을 포착했습니다.
그것도 다른 회사가 아닌 애플사의 최신 정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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