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18 어뷰징 대란 =========================================================================
#304 어뷰징 대란(11)
“폭스 뉴스의 오라일리 팩터, 빌 오라일리입니다. 오늘은 미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화제의 주인공이자 인터넷의 젊은 황제를 스튜디오로 직접 모셨습니다. 바로 유재원 ID 그룹 회장입니다. 광고 후 바로 인터뷰를 시작할 테니 폭스 뉴스에 채널 고정하십시오!”
카메라를 보면서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내는 빌 오라일리였다. 그 모습을 유재원은 약간은 신기한 눈빛으로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빌 오라일리라는 사람은 폭스 뉴스의 간판 캐스터로 90년대 초부터 2017년까지 장수한 ‘논평가’였기 때문이다.
정식 앵커는 아니지만, 인기와 인터뷰 실력이 너무 좋아서 벌써 폭스 뉴스에 개인 코너인 오라일리 팩터(The O'Reilly Factor)라는 코너까지 생겼다. 그리고 오늘 유재원이 인터뷰하는 코너이기도 했다.
이 사람의 특징이라면 바로 무지막지한 ‘어그로’라는 점이었다. 폭스 뉴스 자체가 오른쪽으로 쏠려 있는 성향이긴 했지만, 앵커나 기자는 그래도 정도라는 걸 지키는데, 이 사람은 ‘논평가’라는 타이틀답게 정도가 없었다.
오라일리 팩터라는 코너 이름에서 팩터라는 단어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어그로답게 언변도 화려하고 사람들을 잡아끄는 특유의 목소리가 있어서 폭스 뉴스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인기가 만점이었다.
-5초 후 시작합니다. 5, 4, 3…….
잠깐 딴생각을 했던 유재원은 PD의 알람에 현실로 돌아왔다.
곧이어 카메라에 빨긴 불이 들어왔고,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빌 오라일리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유재원에게 먼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유 회장님. 그동안 참 보기 힘들었는데, 오늘에서야 이렇게 직접 마주보게 되서 기쁘군요.”
빌 오라일리는 진심인 듯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 북미를 강타하는 최대 뉴스는 북핵도 아니고, 며칠 전 시작한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도 아닌, 1억 달러 스캔들이었다. 인터넷이란 새로운 매체의 부작용이 제대로 드러났고, 유재원의 여자 친구까지도 엮인 사안이니 그야말로 본인의 특기인 어그로를 잔뜩 끌어낼 수 있는 사안이었다.
“네, 언제고 폭스 뉴스와도 인터뷰를 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오늘이 되었네요.”
“그렇습니까? 이번 사안에 대해 다른 방송국에서도 많은 인터뷰 요청이 있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우리 폭스 뉴스를 선택하신 이유가 따로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네, 폭스뿐만이 아니라 ABC부터 NBC, TBS 심지어 CNN까지 웬만한 공중파 채널에선 다 요청하셨죠. 인터뷰가 끝나면 분명 터너 씨로부터 항의 전화가 올 거예요. 하필 폭스를 선택했다고 말이죠.”
테드 터너를 언급하니 빌 오라일리도 살짝 표정이 바뀌었다.
장차 어그로 수집가가 될 빌 오라일리지만, 아직은 일을 시작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신참이었다. 이미 방송과 영화계의 거물인 테드 터너와 비교하면 쳐지는 게 많았다.
“제가 폭스 TV를 선택한 이유는, 폭스 TV가 저와 인터넷을 비판하는 데 제일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죠. 단순 비판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할 수도 있지만, 지나친 비약에 논리도 엉망이라서 제가 직접 나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먹고 어그로를 끌겠다 하면 유재원도 빌 오라일리 못지않았다.
더구나 우격다짐과 무논리로 끄는 어그로보다 팩트로 후려치는 게 훨씬 아프다는 걸 이 자리에서 확실히 알려줄 작정이었다.
“하하하! 이번 사안이 불편한 분에겐 우리의 뉴스가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요.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까요!”
빌 오라일리는 내심 당황했지만, 방송국 밥을 먹고 산지 좀 됐다고 부드럽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한국의 일반적인 TV인터뷰 사전에 질문지를 주고받은 건 아니었기에, 유재원도 집중력을 끌어 올렸다.
“일단 모든 사건의 시발점인 1억 달러 난치병 어린이 기부행사부터 시작하죠. 기부라면 재단을 통하는 게 보통입니다. 난치병 어린이를 후원하는 전문 재단도 많지요. 그런데 유 회장은 2CH.com이라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네티즌 재보를 통해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CH.com은 유재원 회장이 소유한 넥스트컴캐스트의 산하 사이트죠. 대규모 이벤트로 회원가입을 유도하려고 하신 건 아닌가요? 게다가 사연은 잔뜩 올라오는 데, 실재 집행된 케이스는 200건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좋지않은 난치병 가정인데 이번 일로 인해 마음이 더욱 심란하실 거 같습니다.”
역시 빌 오라일리의 클래스는 어디 가지 않는다.
2CH.com을 키우기 위해 1억 달러 이벤트를 벌인 거고, 처음부터 그런 흑심이 있으니 이번 사건을 초래한 거 아니냐고 물어보는 빌 오라일리였다. 여기에 난치병 가정까지 끌어 들였다.
“2CH.com을 띄울 거였으면, 처음부터 신규가입 회원들에게 파격적인 사은품 행사를 했을 겁니다. 1억 달러 기부는 이전 시큐리티 챌린지에 걸렸던 상금을 처리했던 방식의 연장이죠. 저는 인터넷이 단지 현실과 격리된 사이버공간이 아니라 현실과도 이어진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통로라는 걸 알아주면 하는 마음에서 이번 기부행사를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의도는 이번 사태가 나기 전까지는 참 좋았습니다.”
“그러면 잘못한 걸 인정하신다는 건가요?”
“아뇨. 이러한 일에 대비해 마련한 보안책이 ID 파운데이션의 검증 절차입니다. 가짜 제보가 있을 경우를 대비해서 ID 파운데이션의 직원들이 현장에 나가 조사했고, 기부금도 난치병 가정이 아닌 병원에 직접 주는 형식이었죠. VFC라는 유저는 훨씬 지능적으로 빈틈을 파고들었습니다. 그 빈틈을 미리 예측하지 못한 건 저희 실수이지만, 이제 알았으니 보완하면 됩니다. 다만 우려되는 건 이번 일로 인터넷의 능력과 가능성이 매도되는 겁니다.”
빌 오라일리는 어떻게 해서든 ID 그룹과 인터넷의 잘못으로 몰아가려고 했고, 유재원은 여유롭게 빠져나갔다.
“보완이라는 건 법적인 조치인가요?”
“예, 어뷰징에 대한 철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뷰징? 이 자리에서 사회를 본 지 좀 됐다고 생각하지만,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단어인데요? 무슨 뜻입니까?”
“인터넷에서 나온 신조어입니다. 어원은 Abuse에서 나왔죠. 정확한 뜻은 조작을 통해 부당한 이득을 챙기는 행위죠. 금전적 이득이든 단순한 랭킹의 상승이든 간에 부정한 행위를 해서 이익을 챙기면 어뷰징입니다.”
“그래서 이 어뷰징을 하면 벌금이든 징역이든 줘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흠, 제가 알기에 인터넷은 자유로움과 익명성이 생명이라 들었는데, 그건 또 아닌 모양이군요.”
“적어도 어뷰징을 통해 금전적 이득을 챙기는 것 정도는 법률로서 철퇴를 가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흠, 그렇군요. 차라리 1억 달러 기부 같은 중요한 일은 전통적으로 검증된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더 간편한 방법이 아닐까요? 회장님이 제안하신 방법은 표현의 자유라는 우리의 헌법적 가치를 제약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회장님께서는 남한 출신이시라 억압에 대해 좀 무감각할 수도 있겠지만, 미국에서는 매우 중요한 사안입니다.”
역시 이럴 줄 알았다.
인터뷰 초반엔 얌전한 빌 오라일리는 본색을 드러냈다.
“당연히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죠. 그 점에 대해선 항상 누리고 사셨던 빌 오라일리씨보다, 부족하게 살았던 제가 더 확실히 체감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자신의 자유를 누리면서 타인의 자유를 헤쳐선 안 되는 거잖아요. 어뷰징은 그 점을 확실히 침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재원에겐 빌 오라일리의 공격도 먹히지 않았다.
혈기왕성한 보통의 17살이었다면, 지역 드립에 바로 흥분을 거다. 반백년 넘게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을 하며 경험치를 쌓은 유재원에겐 약간의 데미지도 없었다. 오히려 나의 자유를 누린다고 타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는 반론에 빌 오라일리가 말문이 막혔다.
“더구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누구나 동등합니다. 이번 난치병 어린이 기부 행사를 보더라도 저나 제 여자 친구도 추천 하나에 불과합니다. 제가 추천 버튼을 누른다고 몇 백 개씩 올라가지 않는다는 말이죠. 지인에게 추천을 부탁했다는 걸 문제 삼을 수도 없습니다. 충분히 허용되는 규칙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돈을 받고 조작을 하는 건 차원이 다른 사안입니다.”
말을 마친 유재원은 빌 오라일리 포함 세트장 밖의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고개를 끄덕인 사람도 일부 있긴 했지만, 빌 오라일리를 포함해 대다수 사람들은 아직도 시큰둥한 상태였다.
그러면 이쯤해서 폭탄을 터트리기로 마음먹은 유재원은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도 제 우려를 이해하시 못하신 거 같으니,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를 들어 보도록 하죠.”
“아, 그러시죠.”
“그러면 먼저 사회자님은 댓글이라는 짧은 소감 같은 글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사회자님도 제법 유명하시니 언급된 기사에도 댓글이 달린 걸 보셨을 거 아닌가요?”
“글쎄요.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게다가 제 기사에는 욕이 더 많았거든요. 아시다시피 제가 욕을 많이 수집하는 타입 아닙니까?”
“역시 그러시군요. 큰 의미 부여는 없겠죠? 그러면 몇 가지 정해진 댓글 다는 아르바이트가 있다고 한다면 일당은 얼마가 적당할까요?”
“정해진 댓글 몇 개를 전문적으로 다는 일이요? 흠,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일이니 되게 쉽겠습니다. 하루 종일 해봐야 30달러 이상 주기는 어렵겠네요.”
“그렇죠. 역시 저렴하다 하시겠죠? 그런데 그러한 댓글이 모이면 여론이 흔들립니다. 즉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는 거죠. 여론을 조작하게 되면 큰 일이 일어납니다. 즉 인터넷 여론을 저렴하게 조작 수 있다는 이야기죠. 이걸 보시죠.”
유재원은 아예 쉘북을 펼쳐놓고 구체적인 예를 들었다. 제이크 팀장이 찾은 케이스들이었다.
인터넷에는 활발하게 신규 사이트가 생겨났고,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중에는 각종 신상품을 먼저 사용해보고 소감을 올리는 사이트도 있었다.
토마스 하드웨어처럼 컴퓨터 부품을 전문으로 리뷰 하는 사이트도 생겨났고, 유명 음식점에 대한 품평을 하는 사이트도 생겼다.
“이런 사이트에서 좋게 평가된 리뷰가 사실은 제조사로부터 돈을 받고 작성된 광고라면 어떨까요? 여기 음식점에 대한 나쁜 평이 있는데, 사실은 경쟁 관계의 식당에서 의뢰한 글이라면 어떨까요?”
인터넷이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고, WWW 기반의 웹사이트가 생겨난 것도 불과 몇 년 전이지만, 현재 진행 중인 여러 가지 논란과 문제점은 이미 상당히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덕분에 우기기도 잘 하는 빌 오라일리는 평소대로 할 수도 없었다.
“개인적 영역에서 사소한 일 크기라면 무시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어뷰징으로 얻을 이익의 크기는 대중의 평가가 중요한 분야일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커져요. 그리고 우리는 그런 일을 몇 년마다 한 번씩 겪지요.”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였다.
“선거에서 대규모 댓글 알바를 동원해 여론을 조작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것도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말이죠.”
유재원의 물음에 빌 오라일리는 헉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을 가지고 거기까지 상상해보진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유재원에겐 상상이 아니었다. 전생에서는 직접 겪어본 일이기도 했기에 그 표정은 무척이나 단호했다. 반면 빌 오라일리는 어떻게 해서든 이런 식의 전개는 막아야 했다.
인터넷은 단지 신기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놀이터나 게임용으로 두고, 이번 사태는 유재원의 잘못으로 돌려야 했다.
“댓글 좀 단다고 여론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사용자 숫자도 그다지 많진 않은데요.”
“VoteForChild 때문에 제가 이 자리에 나온 건데요?”
유재원의 한심하단 대답에 빌 오라일리는 아차 싶었다.
“인터넷 사용자의 숫자는 매달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어요. 우리 넥스트컴캐스트는 이미 북미횡단 정보고속도로를 완성했고, 이와 가까운 도시부터 ADSL이라는 초고속 브로드밴드 인터넷을 공급 중이죠. 아직은 대도시 위주이지만 늦어도 96년도에는 미국의 제일 깊은 도시에서도 초고속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할 겁니다. 그러면 사용자 숫자가 수천만 단위가 되는 건 금방입니다.”
적지에 와서 자기 회사 PR까지도 알뜰하게 챙기는 유재원이다.
“몇 표 차이로 당략이 결정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게 선거잖아요. 그리고 선거만큼이나 여론의 향방이 중요한 것도 없어요. 어뷰징을 해서 이득을 챙길 수 있는 가장 큰 시장이 이 선거판이 될 거라고 저는 단언할 수 있어요.”
“세상에.”
유재원의 쐐기에 빌 오라일리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말 잘하는 정치인들까지도 몰아 세웠던 빌 오라일리였지만, 유재원만큼은 상대할 수가 없었다.
유재원은 빌 오라일리와는 상대도 안 될 만큼 전문성도 한참 앞서 있었고, 미래를 보는 눈도 탁월했다. 여기에 근거도 확실하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일이 터지고서 막기는 힘들지만, 미리 대비하면 간편하게 막을 수 있어요. 돈을 받고 어뷰징을 하면 처벌한다. 광고는 그 형태가 무엇이든 소비자가 광고라는 걸 인지하도록 해야 한다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걸로 충분하겠습니까? 처벌 조항이 생겨도 밝혀내기 어려우면 문제 아닌가요?”
이제는 빌 오라일리가 유재원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지지하는 공화당 계열들은 인터넷에 대해 다들 무지했다. 유재원의 예측대로 인터넷이 선거에 영향을 준다면 공화당 소속 정치인에게 너무도 불리하게 작용하게 될 거라고 생각이 이어지면서 얼굴에 다급함이 떠올랐다.
“물론 그렇죠. 그러나 다 방법이 있습니다.”
알바를 잡아내는 방법은 매우 단순하다.
VFC의 예를 보면 딱 보인다. 본인들에게 유리한 여론 조장을 위해서 거의 비슷한 내용의 글을 대량으로 올리고, 댓글도 같이 작업한다. 그러면 서버 측에선 당연히 감지가 된다. 보통 유저와는 확실히 다른 사용 패턴이니 이를 골라서 수사 의뢰하면 끝이다.
매크로나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써도 마찬가지다.
결국은 이들이 작성한 글이 일반 사용자에게 전달이 되어야 하기에, 아무리 은밀하게 해도 다 걸러진다.
다만 이제까지는 처벌 근거가 없어서 VFC 녀석들은 민사로 간 것이고, 형법 조항이 생기면 바로 형사 고소를 할 수 있었다. 그러면 경찰이나 검찰이 영장을 받아 수사를 하면 다 잡혔다.
“그래도 잘 잡히지 않으면 특단의 방법을 쓰면 됩니다. 신고 포상금을 크게 거는 거죠. 10만 달러를 쓴 댓글 알바 작업이라면, 100만 달러를 포상금으로 걸면 됩니다.”
이전 생에 은밀히 작업했던 댓글 작업을 제대로 잡아낸 방식이 바로 포상금이었다.
돈 받고 일하는 사람에게는 신념이 없다. 받은 것보다 훨씬 큰돈이 걸리고, 안전도 담보할 수 있다는 확신만 있으면 바로 등을 돌릴 사람들은 널리고 널렸다.
“만약 선거철에 인터넷에서 의심할 여지없는 대규모 여론 조작이 감지되면, 저는 바로 파격적인 금액의 신고 포상금을 걸겠습니다. 저, 한다면 하는 성격인 거 아시죠?”
유재원의 말에 빌 오라일리도 결국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파란의 인터뷰는 마무리 되었다. 반응도 빨랐다.
북미 전역에 동시 송출되는 공중파 프로그램이었고, 프라임 타임 시간이었다. 게다가 ID 그룹에 항상 비판적이었던 폭스 TV에 유재원이 직접 출연한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텔레비전에 집중했다.
덕분에 유재원에게 집중되던 프레임은 확 달라졌다.
인터넷의 부작용 그리고 소년 재벌의 1억 달러짜리 기행에 난치병 어린이들이 휘둘렸다는 식의 보도는 확 줄어들었다. 대신 유재원이 제대로 지적한 어뷰징 사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당연히 별 다른 반응이 없었던 미국 정치권에도 큰 돌이 떨어졌다. 인터넷 여론 조작이라는 이슈는 선거를 앞둔 그들에겐 그야말로 생사가 걸린 일이었으니 말이다.
-와하하! 자네가 폭스TV에 나간다고 해서 처음에는 짜증이 엄청났었지. 상식 이하의 것들만 가득한 폭스 TV에 뭐 하러 나가나 싶었단 말이지. 그런데 제대로 뒤집어 놓은 걸 보니 속이 다 시원하더군. 그래! 내 방송국에는 언제 나올 건가? 엉덩이 무거운 의원 나리들을 움직이려면 한두 번 방송만 해선 안 된다고! 될 때까지 밀어 붙여야 하는 걸세!
테드 터너의 전화였다.
다만 방송이 끝나자마 온 건 아니었고, 다음 날 저녁 즈음에나 걸려왔다. 바쁜 일이 있어서 생방송으론 못 보고 녹화를 해서 봤다고 한다.
“그럼요. 당연히 다음 인터뷰는 TBS조.”
유재원도 폭스TV와의 인터뷰 한 번으로 프레임이 완벽히 바뀔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다. 방송국 순회 인터뷰는 물론이고, 한국에서처럼 우호적인 여론을 결집 시켜서 입법부가 움직이게 하는 게 유재원의 목표였다.
목표를 향한 프로세스는 착착 진행 중이었다.
필터링 활성화 이후, 한 차례 정화가 된 ID 그룹 산하의 인터넷 커뮤니티는 모든 여론이 국회의원들을 성토에 집중되었다. 필터링을 하는 것 자체에 불만이 있는 유저도 꽤 많긴 했지만, 대다수는 환영이었다.
여기에 유재원의 방송국 순회 인터뷰로 오프라인 여론도 크게 형성되자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워싱턴 DC의 의원들도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난치병 어린이를 위한 1억 달러짜리 기부 행사로부터 촉발된 어뷰징 대란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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