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313화 (313/1,007)

00313  어뷰징 대란  =========================================================================

#299 어뷰징 대란(7)

다음날.

대부분 매스컴은 설 연휴를 가졌다.

신문의 경우엔 발행을 중단하지만, 텔레비전은 쉴 수가 없으니 일부 당직자들이 남아 짧은 뉴스만 진행하는 중이었다.

덕분에 유재원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작은 고비 하나를 넘겼다.

ID 그룹의 대규모 제주도 개발 계획이 일부 언론에 흘려졌기 때문이다. 정식으로 발표가 난 건 아닌데, 믿을만한 소식통에 의해 ID 인베스트먼트 한국지사 사장이 제주도 땅을 알아보고 다닌다는 제보가 있었다.

유재원의 지시로 터트린 제보는 아니었다. 황재홍도 최대한의 보안을 유지하면서 제주도에 다녀오긴 했다. 그런데 매각 의사를 타전해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 결국 이야기가 흘러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IT로 세계를 호령하는 ID 그룹이 땅 투기라니!

ID 그룹에 비판적인 언론사들, 특히 대한 일보에게는 이보다 좋은 기사거리가 없었지만, 기자들이 다 명절 휴가를 떠나버린 상황에서 제대로 된 기사를 쓸 수가 없었다. 게다가 며칠 전부터 세팅된 기사들은 ID 그룹에 칭찬 일색인 기사들이 설날 첫 날부터 쏟아진 터라 땅 투기 기사는 묻혀버렸다.

지금은 그저 ID 그룹의 설 명절 보너스가 안드로이드 상장 보너스와 맞물려 역대 최대 금액이라느니, 여주 시에는 강아지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느니, ID 그룹의 청소부 아주머니 월급이 서울 대기업 부장보다 많았다는 기사들이 주류였다.

여기에 어제의 기자회견에서 유재원이 쏟아낸 발언들도 기사화되었다. 유재원의 발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기사들은 당연히 ID 그룹에 호의적인 내용이었다. 아니 호의적이다 못해 유재원 본인이 읽어보면 낯 뜨거워 질 만큼 잔뜩 치켜세우는 기사들이 대부분이었다.

한국 매스컴 전체 중 대한일보와 몇몇 신문사를 뺀 나머지는 ID 그룹에 완전히 친화적인 상태였던 탓이다.

바람직한 건 아닌데, 보내주신 광고를 지면으로 보답하겠다는 마인드를 가진 신문사도 상당한 상태였다.

유재원도 언론사 일부가 급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모르진 않았다.

집에서 부모님 그리고 집안 어르신들과 설날 연휴를 보내다가 정보팀의 보고도 받았고, 지금은 황재홍으로부터 전화 통화를 하는 중이었다.

-다행히 급한 불은 끈 거 같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황재홍의 목소리는 비교적 담담했다.

제주도 투자를 결정하면서 끝까지 보안이 지켜질 거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없었다. 일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정식으로 발표를 할 예정이었다. 다만 우려하는 건 유재원이 제주도에 투자한다는 소리에 여유 자금이 아니라 진짜 필요한 돈까지 빼내서 투자하는 사람들이다.

큰손들이야 수익실현이 한참 뒤로 늦춰지더라도 버틸 체력이 있지만, 당장 급한 사람들에겐 아니었다. 그런 사람들이 괜한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도록 언론을 제어하는 것도 중요했다.

조심히 다뤄야 할 사람들은 또 있다.

“제주도에 가셔서 땅 주인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잘 다독여주세요.”

아직 ID 그룹의 제주도 투자에 대한 청사진이 제대로 발표된 것도 아닌데,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다른 동네 땅주인까지 들썩거리면 괜히 일만 복잡해진다.

“아! 지금 직접 내려가시라는 건 아니고, 명절 끝나면 가세요.”

-회장님, 죄송한데 이미 공항입니다.

황재홍은 유재원보다 한 발 앞섰다.

벌써 제주도행 비행기 표를 끊어 놓고 공항에 가서 유재원에게 전화를 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설날 안 쉬세요? 제주도 분들도 설날은 쉴 텐데.”

-당연히 제주 어르신들께는 설날 세배 드리러 간다고 연락도 다 드렸습니다. 제가 현장 매니저 출신 아닙니까. 현장을 다지는 일은 아직 감 안 죽었습니다. 게다가 집에 있어봐야 할 일도 없습니다.

황재홍의 말에 유재원은 납득했다.

안타까운 일이긴 한데, 부모님을 일찍 여읜 황재홍은 설날에 내려갈 고향이 없었다. 반대로 세배 하러 올 조카들도 없었다. 결혼을 앞둔 여자 친구도 황재홍이 하는 일에 대한 특수성에 대해서도 잘 이해해주는 사람이었다.

“알겠어요. 무사히 잘 다녀오세요.”

-예, 회장님! 다녀와서 좋은 소식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참!”

전화를 끊으려던 유재원은 순간 좋은 생각이 났다.

-네네, 회장님. 듣고 있습니다.

다행히 황재홍도 바로 전화를 끊은 것이 아니었다. 유재원이 먼저 전화를 끊기 전에 절대 먼저 끊는 법이 없었기 망정이지,

“정 땅을 팔기 싫다는 분이 계시면 협동조합 형식으로도 개발할 수 있다고 하세요.”

-협동조합이요?

일종의 동업이다. 땅주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땅은 지금처럼 본인의 소유로 그대로 두고 땅을 이용할 권리를 유재원에게 주는 것이다. 나중에 관광지, 혹은 리조트 등으로 개발이 이뤄지면 땅의 가치만큼 해당 시설의 지분을 얻어서 수익을 배당받을 수 있다.

한국에선 낯선 모델이긴 한데, 일찌감치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이 연구되었던 유럽에서는 협동조합이 활성화되었다. 다만 유럽의 협동조합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형성했다면, 지금의 경우엔 ID 그룹이 이끌어가는 형식이다.

-아!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했습니다. 일단 가서 어르신들의 의향을 살펴본 후 보고 드리겠습니다.

부동산에 관련해서 이해력이 좋은 황재홍은 유재원의 설명을 단번에 알아들었다. 덕분에 추가 설명할 것 없이 통화를 마칠 수 있었다.

“누구 전화였니? 티파니?”

어머니의 물음이었다.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알려드리던 참에 전화가 왔던 터라 바로 티파니냐는 물음이 이어졌다.

“황재홍 사장님이요.”

“아! 황 사장님. 그분 참 성실한 분이더라.”

황재홍 사장이 ID 그룹에서 현장 매니저 타이틀로 입사를 했을 때, 처음 수행한 일이 어머니의 수행이었다. 서울 로데오 팀의 사무실이나 ID 인베스트먼트 한국 지사 건물도 다 어머니와 황재홍이 함께 다니면서 직접 살펴본 후에 매입한 건물이었다.

황재홍이 사장으로 승진한 지금은 그 일을 다른 직원이 수행 중이었다. 하지만 유재원의 어머니는 황재홍이 수행했을 때처럼 활발하게 돌아다니시진 않는다. 부동산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셨기 때문이다.

요즘 보는 건 뜸해지긴 했지만, 그때의 좋은 모습은 그대로 남았으니 바로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시는 모양이다.

“티파니 이야기 좀 더 해봐라.”

이야기는 다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도 제주도 투자 보다는 티파니 이야기에 훨씬 관심이 가는 모양이다. 예전에 부모님이 미국에 다시 오셨을 때, 잠깐 보긴 했는데, 그 당시에는 놀라기 바빠서 많은 걸 물어보지도 못했다. 궁금증을 끙끙 앓다가 유재원이 돌아온 지금에서야 질문 보따리를 본격적으로 푸시는 중이다.

어쩔 수 없이 유재원은 티파니와 만나게 된 경위부터 사귀기까지의 여정을 쭉 이야기했다. 전에도 한 번 이야기 했는데,  지금은 훨씬 자세한 이야기를 풀었다. 유재원의 말솜씨는 제법인 터라 두 분 부모님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경청하셨다. 하지만 몇몇 대목에서는 그 좋은 말발이 살짝 멈춰졌다.

“티파니네 부모님은 무얼 하시는 분이니?”

“티파니는 공부 잘 하느냐?”

“티파니랑 결혼까지 할 거니?”

“티파니는 한국 음식 잘 먹느냐?”

“티파니는 한국말이 좀 늘었니?”

유재원의 말문을 턱 막히게 만드는 부모님의 질문이었다.

결혼을 생각하기엔 아직 사귄 기간은 너무 짧다. 다만 티파니의 개인 성향이나 집안에 대해 유재원은 아직 아는 게 그다지 많지 않다는 걸 비로소 인지했다.

만나면 그동안 있었던 일이나 앞으로의 일, 그것도 아니면 재미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부모님이 궁금해 하시는 주제에 대해서는 딱히 언급하지 않았던 탓이다. 사실 유재원은 티파니가 부자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평생을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에 들면 결혼까지 가는 것이고, 아니라면 결국 트러블이 생겨나서 헤어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아, 2월 말에 티파니의 외가 쪽에 모임이 있대요. 거기에 초대 받았는데, 가서 잘 물어보고 올게요.”

“가족 모임? 어려운 자리 아니니?”

“우리 재원이가 어디 가서 꿀릴 아이는 아니잖소. 가서 잘하고 오너라.”

유재원은 일단 2월 모임을 언급하면서 급한 불을 껐다.

“아! 티파니랑 찍은 최근 사진 보여드릴까요?”

부모님의 관심을 돌릴 콤보 기술도 들어갔다.

사귄다면서 아는 게 뭐 하나도 없느냐는 말을 듣기 전에, 부모님의 관심을 일단 돌리기 위해 꺼내든 카드다.

“그래? 한 번 보자꾸나.”

역시 반응은 바로 왔다.

아무리 말을 해봐야 사진만큼 강력한 건 없으니 말이다. 유재원은 곧장 쉘북을 펼쳐놓고 티파니의 사진을 띄웠다. 디즈니랜드에 가서 찍은 것부터 최근 찍었던 파티 사진을 부모님께 보여드렸다.

부모님은 사진들을 한장 한장 유심히 보셨다. 유재원에게 쏟아지던 질문도 뚝 끊겼다.

“전에도 그랬지만, 생각보다 잘 어울리네요.”

“그러게 말이오.”

유재원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두 분이서 나란히 사진 감상 시간이 되었다. 쉘북을 잠깐 빼앗겼지만, 집에 컴퓨터는 또 있으니 아무래도 괜찮았다.

다음 날.

까치설날이 지나고, 진짜 설날이 되자 유재원의 고향집은 평소의 명절 모습 그대로 친척들이 다 몰려 오셨다.

몇 년 전만 해도 유재원이 큰집부터 세배 순례를 해야 했는데, 언제부턴가 이렇게 바뀌었다. 이렇게 집으로 친척들이 오면 바빠지는 건 어머니였다. 하지만 그것도 옛말이었고, 지금은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다.

친척들이 오실 때마다 뭘 한 가득 싸들고 오시는 통에 따로 음식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유재원의 집안은 개신교라서 제사를 따로 지내지도 않기에 번거롭게 음식 장만을 할 필요도 없었다.

설날의 하이라이트인 세배도 빠지지 않았다.

유재원이 먼저 부모님께 한 후에, 큰아버지를 비롯한 친척 어르신들께 세배를 하면서 세뱃돈을 받았다. 그러면 친척들과 함께 온 꼬맹이들이 유재원에게 세배를 하고 다시 돈을 받아간다.

꼬맹이들 숫자가 훨씬 많아서 덧셈 뺄셈을 해보면 늘 마이너스였지만, 재미있으니 됐다. 그 이후 유재원의 컴퓨터들은 게임기로 거듭난다. 게임 개발사를 잔뜩 거느리고 있는 만큼 유재원의 집엔 게임이 항상 넘쳐났다.

그렇다고 어린 아이들에게 둠과 같은 성인용 게임을 시켜주는 건 아니다.

1월에는 넥스트컴에서 게임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여기에는 퍼즐이나 보드게임, 카드게임 등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게임이 가득했다.

온라인 기반으로 다른 플레이어와 협동도 하고, 대결도 해서 재미가 배가 되었으니 다들 푹 빠졌다.

가장 인기가 좋은 건 테트리스였다.

소련 시절 만들어진 테트리스는 단순한 규칙이지만 마스터하긴 어려운 게임으로 세계적 명작 반열에 든 게임이었다.

이러한 테트리스를 그래픽을 대폭 강화한 다음 온라인 버전으로 만들고 경쟁과 협동 시스템도 넣은 것이 넥스트컴의 온라인 테트리스였다.

게임을 만드는 건 쉬웠는데,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기엔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것은 복잡하게 꼬인 저작권 분쟁 때문이었다.

테트리스 게임을 만든 사람은 알렉세이 파지노프였다. 이름 그대로 소련 출신이었고, 이게 문제였다. 소련 시절에는 개인이 저작권을 거래를 할 수 없었다. 대신 국가가 저작권을 거래를 대행하는 기관이 따로 있었는데, 이를 대외 무역부라고 칭했다.

담당 부서는 있지만 전문성은 매우 떨어졌다. 대외무역부에서 만든 테트리스 계약서는 대단히 허술했고,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도 않았다. 80년대부터 요즘까지 나온 수많은 테트리스 게임 중에 정식 라이선스를 받아 만들었다고 표시해도 되는 건 닌텐도에서 나온 것일 정도다.

유재원은 이렇게 복잡하게 꼬여 있는 테트리스의 라이선스를 우회했다. 컴퓨터나 비디오게임기 같이 시스템 기준이 아니라 게임의 형식을 기준으로 잡아서 온라인용 라이선스를 따로 체결하도록 지시했다.

ID 엔터테인먼트가 계약의 주체였지만 실제 라이선스 작업을 발로 뛰며 진행한 건 모스크바 하이테그 연구소의 직원들 그리고 푸틴이었다.

러시아의 일은 러시아인에게 맡기는 게 최고였기 때문이다. 특히 푸틴처럼 유력한 정치인이면 복잡하게 꼬인 일도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푸틴은 겨우 게임 하나 사는 일에 자신이 움직여야 하는 지 납득하진 못했다. 그렇지만 거래 성공 이후, 중개 커미션으로 100만 달러 정도가 전해지니 불만은 쑥 사라졌다. 오히려 정치자금을 전해주는 방식으로 테트리스 라이선스 거래를 이용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당연히 푸틴에게 전해진 자금은 단순한 수수료가 아닌 후원금 명목도 있다. 하지만 테트리스의 가치도 푸틴의 상상 이상이었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이제 앞으로 20년 동안 테트리스 게임을 온라인으로 서비스 할 수 있는 게임 회사는 ID 엔터테인먼트가 유일했으니, 창출될 부가가치는 100만 달러 이상일 테니 말이다.

“한 판 더해요!”

“얼마든지! 그래봐야, 또 질 거니깐.”

한 판 더를 외치는 친척 꼬맹이들은 자신들이 즐기는 테트리스에 이렇게나 복잡한 이야기가 담겼다는 건 꿈에도 모를 거다.

어차피 게임이란 재미있으면 그만이다.

유재원도 게임에 집중하면서 즐거운 명절을 보냈다.

그렇게 실컷 놀고 난 다음 날.

유재원은 아침부터 일을 시작했다. 어제와 달리 한적해진 집에서 제일 먼저 일어난 유재원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제일 먼저 확인한 건 2CH.com의 관리팀장 제이크가 보낸 난치병 어린이 기부 프로젝트의 검사 보고서였다.

-VoteForChild의 금전적 이득을 취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문서의 첫 문장부터 강렬했다.

이어서 결론이 도출된 이유에 대해 자세히 서술되어 있었다.

기부 게시판에서 어뷰징을 조장했던 VoteForChild라는 녀석을 제이크가 추적한 방식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IP추적이니 경찰 조사 같은 것도 없이 훨씬 빠르고 간편하게 유재원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바로 VoteForChild가 인위적으로 띄워 기부를 받게 된 케이스의 부모와 면담을 하는 것이었다. 늦여름부터 시작했기에 총 기부 케이스는 300건 정도인데, VoteForChild가 밀어서 선정된 건 대략 20여 건이었다.

20개의 케이스 중에 가까운 곳에 있는 케이스를 ID 파운데이션 직원들과 함께 방문해서 면접 형식으로 조사했다.

ID 파운데이션 직원이 있으니 아이의 부모님은 순순히 실토했다.

기부금의 10%를 나중에 주면 기부 케이스에 당첨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먼저 접근했다고 한다. 제이크 팀장이 만나러 간 아이의 경우 어린이 심장병이었는데, 수술비가 수십만 달러에 이르렀다.

수술비용 마련을 위해 적금을 든 상태였는데, VoteForChild의 도움으로 기부 대상자가 되었고, ID 파운데이션에서 진짜 병원비를 대납해주자 그 적금을 깨서 VoteForChild에 송금했다고 한다.

제 아이를 살리고픈 마음에 응하긴 했고, 실제 수술도 잘 끝났다고 한다.

그냥 아무 일 없었다고 했으면 제이크도 답이 없었을 터인데, 그 사실을 그대로 실토한 건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다고 한다.

유재원은 바로 ID톡을 켜고 제이크 팀장을 소환했다.

“보고서 잘 봤어요. 첫 번째이지만 제가 원했던 내용이 다 담겨 있더군요.”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어뷰징의 증거가 나왔으니 VoteForChild의 계정은 정지하고, 관련 내용을 공지하세요. 그리고 고소도 즉시 진행하시고요. 그리고 VoteForChild의 힘을 빌려 선정된 당첨자는 모두 자격 박탈입니다.”

맺고 끊는 게 확실한 유재원이다.

-아, 알겠습니다.

반면 제이크 팀장의 대답도 한 박자 늦게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기부 대상자들의 가게 사정은 대부분 무척이나 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재원에겐 아니다. 어뷰징으로 얻은 이득은 분명 불법이었다. 처음부터 단호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나중엔 수습도 못할 지경이 된다.

그렇다고 무참하게 돈을 빼앗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당장 돈을 주기 어려우면 나눠서 내는 방법도 제시할 생각이다. 10년 혹은 20년짜리 장기대출처럼 차근차근 갚으라는 것이다. 갚을 의지만 있다면 일자리도 소개시켜 줄 의향이 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이트 담당 팀장끼리 이야기를 해봤는데, 이번 케이스와 비슷한 상황이 제법 많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이크는 유능했다.

시키지도 않은 일을 먼저 찾아서 했다. ESD.com이나 넥스트컴의 대형 게시판 담당은 물론이고 경쟁 사이트까지 조사했다.

유재원의 지시를 받은 정보팀에서 하는 작업이었는데, 제이크가 먼저 조사를 했고 산더미 같은 자료에서 유의미한 정보를 추출한 것이다.

-정보글인척 하는 광고, 특정 소프트웨어나 제품에 대한 나쁜 댓글 세례, 조회수나 추천수 조작 등의 사례를 제법 확인했습니다.

제이크의 보고에 유재원은 열이 확 났다.

본인는 인터넷 세계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하고, 확장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퍼부으며 인프라를 조성 중이었다. 자신의 호의로 헐값에 인터넷을 쓰면 고맙게 생각하며 적당히 사용할 것이지, 벌써부터 인터넷을 진흙탕으로 만들고 있는 작자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누구는 못해서 안 하는 줄 아나?

어뷰징도 마케팅 기법이라 친다면 누구보다 인터넷을 활용하는 마케팅에 전문인 사람이 바로 유재원이다.

그렇지만 이런 기법을 실행할 생각조차 않는 건 부작용이 너무도 심한 탓이다. 어뷰징과 주작 등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판을 치게 되면 신뢰도가 사리지고, 인터넷의 영향력과 결집력은 급감하게 될 게 뻔하다.

만성화가 되기 전인 지금, 확실하게 뿌리 뽑을 방법은 없을 지, 유재원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론을 내진 못했다. 막 깊은 생각에 들어가려는 찰나 휴대폰 벨이 울렸기 때문이다.

전명헌의 전화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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