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306화 (306/1,007)

00306  정의의 가격(Price of Justice)  =========================================================================

-증인 선서!

-국회에서의 증언 제 7조, 8조에 따라 양심에 따라 사실대로 말하고, 만일 진술이나 서면에 대한 답변에 거짓이 있을 경우 위증의 벌을 받을 것을 맹세합니다.

한국 시간으로 오전 10시. 샌프란시스코 시간으로 오후 6시, 국정조사가 증인 선서로 시작되었다.

유재원은 컴퓨터 앞에서 KBS의 실시간 인터넷 중계로 그 장면을 빠지지 않고 눈에 담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유재원이 보는 실시간 방송은 KBS의 정식 인터넷 생중계 서비스는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각 기업들이 이제 겨우 각자의 웹 사이트를 만드는 단계였다. KBS도 홈페이지를 만들긴 했는데, 뉴스나 시청자 게시판 정도를 만드는 수준이지, VOD나 실시간 중계는 아직 요원했다.

유재원이 보는 영상은 한국 넥스트컴의 시범 서비스로 극히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테스트 중인 기능이었다.

화질은 VCD보다 더 떨어지는 수준으로 320*200의 해상도였다. 그래도 유재원은 불만이 없었다. 방송 환경 자체가 아날로그 SD시대인지라 오리지널 소스도 그다지 화질은 좋지 않았다. 게다가 국정조사라는 것도 재미있는 화면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대신 음성은 카세트테이프 수준으로 들어줄만 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지구 반대편 한국에 있는 텔레비전 방송을 93년 말에 라이브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긴 한데, 다른 사람들이 보았다면 만족감을 자아낼 수준은 아니다.

“흠, 차기 안드로이드에서는 멀티미디어 기능을 좀 더 손 봐야겠네.”

가칭 안드로이드 3.0에 대한 개발은 이미 돌입한 상태다.

2.0이 93년 초에 성공적으로 출시되어 보급 중에 있지만, 개발자이면서 동시에 경영자인 유재원은 항상 미래를 대비해야 했다. 안드로이드 3.0의 출시 시점을 늦어도 95년 초로 잡았으니 지금부터 열심히 개발을 해야 그 스케줄에 맞출 수 있다.

“버전 이름을 3.0 대신 아예 다른 이름을 붙일까? NT나 NX 같은 것도 괜찮은 거 같은데.”

2.0에서 3.0으로 가는 게 소프트웨어 업계의 일반적인 방식이긴 하다. 그런데 계속 숫자로 구분하면 일반인 사이에는 혼란이 올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마케팅적으로 숫자 하나 달라지는 거라서 제품을 알리는 데 애로사항이 많아진다.

아예 숫자 대신 NX니 NT니 하는 약자를 붙여주면 구분도 확실히 되고, 장사할 수 있는 요소도 많아진다.

“HPC에 맞춰 멀티미디어 성능이나 게임 성능을 강화시켜 기존에 보여주지 못한 경험을 하게 만들어줬으니 새로운 경험(New eXperience)이나 새로운 기술 (New Technology)라고 해도 괜찮을 거 같네.”

컴퓨터에 국정조사 라이브 방송을 띄워 놓은 유재원의 딴 생각이 길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증인 선서를 시작했음에도 아직 유재원의 시선을 확 잡아 끌만한 장면은 나오지 않은 탓이다.

증인에 대한 질의응답 순서는 국회 의석 순이었는데, 첫 타자는 여당 민자당의 의원이었다. 더군다나 그 의원은 민주정의당 출신으로 이번 국정조사를 매우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그 의원의 질의는 대부분 재판부의 판결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주어진 시간을 다 소비했다. 당연히 잘못된 걸 억지로 변호하려고 하다 보니 무엇 하나 이치에 맞는 말도 하나도 없었고,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짜증만 불러일으키는 켰다.

이번 국정조사가 열리게 된 가장 기본적인 이유인 상부의 외압에 대한 질문은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분명 한국의 대다수 국민들이 텔레비전으로 국정조사를 보고 있었을 텐데, 저 작자 때문에 다들 스트레스가 쌓이고 계실 거다. 어쩌면 이번 국정조사도 이전의 것과 다를 바 하나 없다는 실망감을 느끼고 계시는 분들도 상당한 숫자일 거라고 확신한다.

유재원도 마찬가지인지라 아예 사운드 소거를 눌러 놨다.

“저런 사람들은 하루빨리 사라지는 게 나라에 도움인데 말이지.”

그건 천하의 유재원도 당장 실행하기엔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역구에서 워낙 탄탄한 지지를 받고 있으니 깃발만 꽂으면 무조건 당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간은 꾸역꾸역 흘렀다.

민주정의당 출신 의원에게 할당된 시간이 다 흘렀고, 마이크가 다른 의원에게 넘어갔다. 다음 타자는 민주당 국회의원이다.

그제야 유재원도 사운드 소거를 풀었다.

-증인께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문제의 재판을 진행하는 중에 외부 혹은 상부의 외압이 있었습니까?

역시 민주당이라 질문부터 달랐다.

카메라 워크도 예술이었다. 민주당 의원을 화면을 가득 잡던 중, 질문이 끝나자 바로 주심판사의 바스트 샷으로 바로 전환되었다.

질문을 받은 주심판사는 긴장으로 마른 침을 삼켰다. 그것으로도 타는 입을 적시기엔 부족했던 모양인지 컵에 담긴 물을 벌컥 마셨다. 그리곤 매우 어려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예.

매우 느리게 나온 단답형 대답이었지만,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오죽하면 증인석에 대기 중이던 배석 판사들 그리고 법원행정처에서 나온 사람들까지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심지어 질문을 한 의원도 그렇게 쉽게 긍정의 답이 나올 줄은 예상치 못한 모양인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예라고 한 것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의원님.

-그 한심한 작자가 누굽니까? 그 작자는 헌법도 모르는 사람입니까? 판사 한명 한명은 개별적인 헌법 기관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인가요?

역시 민주당 의원은 쇼맨십을 아는 사람이었다. 불과 같은 화를 내며 집중적으로 캐묻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법원행정처에 있는 분이시니 헌법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주심판사는 기다렸다는 듯 술술 불었다.

이 자리에서 양심선언을 해버릴 작정으로 단단히 마음을 먹고 나왔다는 것이 몇 마디 발언으로 충분했다.

-법원행정처에 계시는 분이니 말입니다.

-법원행정처? 그 사람의 이름이 뭡니까?

-윤리감사관 마태식입니다.

드디어 마태식이란 이름 석 자가 공론화의 장에서 언급되었다.

그러자 뒤에 대기 중이던 법원행정처 사람들의 얼굴은 그야말로 사색이 되었다. 국정조사가 시작하기 직전 대기 중일 때만 하더라도 이들은 근엄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국정조사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주심판사가 양심선언을 할 줄은 조금도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국정조사가 논의되기 시작할 때부터 서로 입을 맞추고, 주심판사와 배석판사들에게도 이를 강요했었다. 주심판사도 그들의 장단에 맞춰 주면서 안심을 시켰다.

민주정의당 출신 여당 의원의 질문이 있을 때만 해도 그렇게 잘 만든 각본에 따라 넘어가는 듯싶었다. 그런데 민주당 의원의 질의와 함께 그 굳건했던 카르텔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증인, 증인의 발언에 일체의 거짓이 없습니까?

-예. 한순간의 압력에 굴복해 판결한 것에 대한 후회로 가득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나마 양심의 소리에 따라 진실을 말하는 것으로 저의 과업을 완수하고 용서를 빌고 싶습니다.

순간 국정조사장이 숙연해졌다.

“와, 판사 양반이라 그런지 말 잘하네?”

다만 조악한 화면으로 생방송을 보는 유재원까지 감동을 받은 건 아니었다. 저 주심판사의 진면목을 잘 알고 있는 유재원에겐 그저 준비를 열심히 했구나 싶은 정도였다.

-증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증언 또한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이를 증명할 증거가 없다면 논란은 훨씬 더 커질 수 있습니다.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충격적인 답변을 듣고 빠르게 정신을 수습해서 정확한 맥을 짚는 질문을 하는 민주당 국회의원이 대단해 보였다.

국회의원이 싸잡아 비난받기 좋은 직업이었지만, 개별로 놓고 하나하나 따져보면 개인의 능력치는 훌륭한 사람들이 많았다. 다만 한데 모아놓으면 개인의 개별 의견보다는 당의 의견을 따라야 하고, 조직 논리에 휩싸여 행동하다 그렇게 보는 것 같았다.

누군가 봤더니 아주 예전에 5공 청문회를 할 때 전 명패를 시원하게 내던졌던 그 양반이었다.

-음, 증거도 있습니다. 지금 가방에 가져 왔습니다. 허락해주시면 원본 제출하겠습니다.

증인대에 섰던 주심판사는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이의 있습니다!

-위조나 변조의 가능성은 물론 증인이 자의적으로 해석한 물증이기에 증거로 삼기 전 제대로 된 게 맞는 지 확인해봐야 합니다! 확인 없이 공개해서 국민께 큰 혼란을 드릴 수 있습니다!

동시에 증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당 일부 의원들이 극렬 반발했다.

어떻게 해서든 이번 국정조사는 유야무야 넘겨야 하는 게 이들의 임무였다. 그런데 국정조사를 시작한 지 몇 분이나 지났다고 벌써 몸통의 이름이 언급되었고, 이제는 증거까지 나오려고 한다.

무조건 막아야 했다.

-좋습니다. 증인이 발표하면 법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겠지요. 저에게 주시면 제가 직접 발표하겠습니다.

역시 민주당 국회의원은 머리가 좋았다.

국회의원의 강력한 권한 중 하나가 바로 불체포 특권, 면책 특권이 있다. 특히 지금과 같이 국회 업무를 진행하는 중에 나오는 모든 발언과 행동에 대해서는 완벽히 면책된다.

직접 증인석으로 가서 가방을 받아왔다. 그리고는 카메라가 잘 보이는 방향으로 가방을 열어 보였다.

그 안에는 서류 뭉치와 1만원 현금 뭉치 하나가 있었다.

쇼맨십을 잘 아는 국회의원은 현금 뭉치부터 책상에 펼쳐 놓았다. 한국은행 관봉 마크가 선명한 1천만 원 묶음이었다.

관봉이라는 건 한국은행이 시중 은행에게 돈을 보낼 때 포장하는 방식이다. 특별한 봉인인 만큼 시중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형식이었고, 구분기호와 표장번호로 언제 누구에게 보내진 것인지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서류도 치명타였다. 하나 빼들자마자 서명 란에 마태식이라는 이름이 선명히 보였다. 서류의 이름도 일제강점기 피해자 배상 소송에 대한 프레임 변경 지침이라는 것으로 딱 봐도 의심스러워 보인다.

“오늘 국정조사는 끝났네.”

유재원은 가볍게 박수를 쳤다.

증거가 있었으면 좋다고 했더니, 그야말로 빼도 박도 못한 증거를 가지고 나왔다.

오늘 국정조사는 여기까지만 하고 파토가 난다고 해도 목표의 120%를 달성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정도 임팩트라면 마태식이란 이름은 국민의 뇌리에 확실히 꽂혔을 테니 말이다.

여기까지 집중해서 보았던 유재원도 국정조사 방송을 계속 볼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에, 컴퓨터에서 라이브 방송을 닫았다.

대신 앞으로의 흐름에 대해 대충이나마 헤아려 보았다.

“그러면, 마태식도 국정조자 대상이 되서 증인 신청이 될 거고, 대법원 쪽에선 엄청나게 반발할 테지.”

명분은 대법원은 헌법기관으로서 독립을 보장받고 있는 다는 걸 들 것이다. 21세기에 크게 터졌던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도 그런 흐름이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대법원이 앞으로 취할 자세도 확실히 예측해 볼 수 있다. 인민재판 말고 정식으로 검찰이 수사해서 엄정한 재판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고 항변할 거다.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지.”

그냥 들어보면 맞는 거 같기도 한데, 사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잘못을 저지른 게 판사다. 마태식이 법원행정처의 윤리감사관이라고 하니 무슨 공무원 느낌인데, 법원행정처에 있는 사람들도 죄다 판사다. 그것도 엄청나게 높은 직급의 판사들이다.

자기 잘못을 자기들이 따져서 처벌하겠다는 이야기나 같다. 대다수 조직이 그렇듯 제살 도려내는 걸 성공하는 조직은 없다.

특히나 학연, 지연 그리고 기수로 묶인 사법부는 특히나 더 그렇다.

“사실 안 나와도 상관없지.”

마태식이란 이름이 나온 만큼, 언론에서 알아서 조질 거다.

이미 언론은 유재원의 세팅대로 움직이는 중이었고, 발 빠르게 움직이는 기자들은 마태식에 대한 집중 취재에 들어갔을 테니 말이다. 기사가 나오는 게 좀 부족하다 싶으면 유재원이 알고 있는 고급 정보를 익명의 제보라는 형식으로 매스컴에 보내주기만 하면 강임석을 골로 보냈던 것처럼 마태식도 보낼 수 있다.

더구나 이번 국정조사는 재판을 하자는 게 아니다.

재판에 들어가면 엉터리 판결이 나올 게 뻔했기에, 유재원은 처음부터 탄핵이라는 방식을 선택한 거다.

검찰 수사는 탄핵으로 법관의 자적 그리고 변호사 자격까지 날려 버린 다음 민간인의 신분으로 받으면 된다.

“어서 빨리 그 날이 왔으면 좋겠네.”

남들보다 빠른 생체 시계를 가진 유재원은 93년도의 속도감은 너무도 느렸다.

어서 빨리 그날이 되어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탄핵된 재판관 마태식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다이내믹한 한국은 작년 93년 12월도 국정조사를 시작으로 온갖 사건사고가 가득했었다. 시작부터 충격적인 양심선언이 이어졌고, 뒤이어 이에 영향을 받은 관련자들의 증언이나 법원 내부 문건을 통한 폭로가 이어지면서 대한민국 최후의 보루라는 대법원의 가식적인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나중에 가서는 민주정의당 출신 의원들도 방어를 포기할 만큼 막장인 것이 많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마태식은 끝까지 국정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시민들의 실망과 분노가 컸다. 국정조사라고 하면 재벌들도 불러와 심문할 수 있었으니, 마태식도 불러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게 불발된 걸 보고서야 한국에 법 위에 있는 특권층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심지어 판사들 몇몇이 증인 선서를 거부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은 사람도 많았다.

국회의원들도 국정조사법에 허술한 점이 너무도 많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고, 보안책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물론 여당 대부분은 극렬 반대 중이지만 통일국민당과 민주당이 뜻을 모았고, 여당 의원 중에서도 동의하는 사람도 있으니 무난히 국정조사법 개정은 통과될 것으로 보았다.

그렇게 마무리된 국정조사는 일제강점기 피해자 배상 소송에 부당한 외압을 행사한 마태식을 비롯한 법관 8명에 대한 탄핵과 고소 그리고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결정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날은 1994년 1월 24일이었다.

보통 1월에는 임시 국회도 열리지 않는다. 12월까지 예산안을 가지고 열심히 다투었으니 잠깐 휴식기를 갖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사법농단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터지면서 임시 국회가 소집되었다.

-전체 299명의 의원 중 일신상의 사유 등으로 자리하지 못한 의원 25명을 제외한 274명이 출석을 완료했습니다. 의결 정족수를 넘었으므로 지금부터 마태식 외 7명에 대한 판사 탄핵안 투표를 시작하겠습니다.

국회의장의 선언과 함께 투표가 시작되었다.

“아, 드디어 끝이네.”

저번과 같이 인터넷 생중계로 방송을 보는 유재원은 살짝 목이 탔다.

표계산, 표단속도 확실히 했지만, 혹시나 하는 긴장감이 떨쳐지진 않았던 탓이다. 일반 법률의 찬반을 묻는 거라면 그냥 국회의원 책상에 설치된 버튼을 누르면 전광판에 바로 집계가 되는데, 인사에 투표면 비밀 투표인지라 투표함을 열어 보기까지는 모르는 법이다.

본인에게 돈을 실컷 받아 놓고 정작 투표장으로 가서는 부(不)를 써넣고 나올 신의 없는 작자들이 제법 있을 것이다.

통일국민당 의원들이야 받은 대로 찍을 사람들이니 믿을 수 있지만, 민주자유당이나 민주당에서 이탈 표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민정당 출신이야 반대표를 날린다고 해도 상관없지만 나머지는 절대 아니다.

“장난치기만 하면 가만 안 둔다.”

아직 결과가 나오기도 전인데 유재원은 주먹부터 불끈 쥐었다. 그만큼 지금이 마지막 화룡점정의 순간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표결을 완료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개표 총 투표 274표 중 가 203표, 부 71표로 마태식 외 7명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국회의장은 개표 결과 발표와 함께 의사봉을 세 번 두드렸다.

“후아! 좋았어!”

숨을 쉬는 것도 잊고 모니터에 집중하던 유재원은 스피커를 타고 들린 국회의장의 선언에 쾌재를 올렸다.

200표가 넘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마태식과 그의 수족 7명의 탄핵이 되었고, 현 시간부로 헌법이 준 모든 특권이 사라지며 민간인이 되었다.

안타까운 건 아직 완전히 사건이 끝난 건 아니라는 점이다.

마태식과 7명의 판사들은 국회의 탄핵이 부당하다면서 만약 가결된다면 즉각 헌법소원을 낼 거라고 진즉 떠들고 다녔다. 그러니 마지막은 결국 헌법재판소에서 판가름된다.

그나마 헌재는 적어도 민심을 읽을 줄 아는 기관이라는 점이었다. 이미 사회에서는 마태식 일당에 대한 사형선고가 떨어졌다. 이들을 복권시켜 모든 지탄이 헌법재판소에 쏠리는 걸 바라는 헌법재판관은 아무도 없었다.

더구나 검찰 조사도 즉각 시작되었다.

국정조사 중 밝혀진 마태식의 재판관여 혐의는 물론이고 그가 천문학적으로 쌓은 부당한 재산에 대한 조사와, 이제까지 그가 처리했던 수많은 재판에 대한 의혹까지 모두 수사대상이 되었다.

검찰도 진작부터 수사 준비를 해놓고 탄핵이 되기만 기다리는 중이었다.

“휴, 다행히 헛돈 날리진 않았네.”

유재원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속보로 이어지는 KBS 인터넷 방송을 종료했다.

곧이어 컴퓨터의 바탕화면에 새로운 문서 하나를 띄웠다. 한국 ID 그룹이 관리하는 여러 은행 계좌의 잔고 상황을 보여주는 보고서였다.

이중에 유재원이 집중한 건 정의의 가격이란 항목이었다.

거기엔 대략 139억2천만이란 숫자가 들어 있었다. 정의를 사기 위해 지출된 다양한 항목의 총합이 139억 원이란 의미가 아니다. 시작은 유재원이 홧김에 1억 달러를 송금한 것에서부터였다.

미국 달러는 즉각 한국 원화로 환전되었고, 그 금액은 대략 802억 원이었다. 거기에서부터 온갖 지출이 생겼고, 남은 잔고가 139억 원이라는 의미였다.

그러면 남은 139억 원이 모두 유재원에게 돌아오느냐? 그건 아니다. 아직 계산을 해야 할 게 많았다. 일제강점기 피해자를 위한 모금 운동이 진행 중이었고, 유재원은 전체 모금액만큼 자기가 또 내겠다고 장담한 것도 아직 남았다.

국정조사와 맞물리면서 모금 운동은 그야말로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것처럼 활활 타올랐고, 그만큼 유재원이 내야 할 돈도 많아졌다.

“생각보다 저렴하네?”

그렇게 다 따져 봐도 유재원은 생각보다 저렴하다는 느낌이었다. 정의의 가격이 매번 이 정도라면 10번이고 기꺼이 사겠다는 유재원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이번만큼 싸게(?) 살 수는 없으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단지 경제에만 적용되는 힘이 아니니 말이다.

사회의 규모와 복잡성은 날로 커진다. 그만큼 세상도 혼탁해질 것이고 자연히 정의의 가격도 크게 오를 게 분명했다. 동시에 이번 사건을 주의 깊게 본 누군가는 돈으로 정의도 살 수 있다는 걸 배웠을 거다.

유재원이야 누구나 동의할 정의를 위해 돈을 썼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수도 있다.

“그래도 답은 간단하네.”

다른 자들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게 ID 그룹이 커지면 된다.

유재원도 그 답을 알고 있었기에, 예정보다 며칠 빠른 뉴욕 출장을 선택했다. 바로 안드로이드 사의 나스닥 상장 행사를 위한 출장이었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드디어 정의구현을 이뤄냈습니다.

숫자만 따지면 적긴한데, 뒷이야기도 남았고, 후폭풍도 이제부터 시작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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