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04 정의의 가격(Price of Justice) =========================================================================
며칠 후,
-ID 그룹은 대한민국의 법 위에 있는 기업인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넥스트컴, 폐쇄했다지만 미국 서버를 동원해 멀쩡히 영업!
-가장 문제가 된 현대철학동호회도 문제없이 접속!
대한일보의 최대 장점은 왜곡 기사를 정상적인 기사인 것처럼 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주로 동원하는 건 엉뚱한 프레임을 뒤집어씌우는 것이었다.
넥스트컴의 한국 서버는 경찰의 조치에 따라 폐쇄했다. 대신 미국에 있는 백업 서버가 가동되면서 정상 운영이 가능했다.
ADSL의 보급으로 인터넷 서비스에 동영상과 고화질 이미지가 점차 많아지고 있긴 했는데, 그동안은 작은 크기의 이미지에 텍스트 문서가 주류였다. 덕분에 미국에 백업 서버가 있지만 문제없이 운영이 가능했다.
법률적으로도 걸릴 건 하나도 없다.
대한 일보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기사 전문을 보아도 미국을 탓하는 기사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면서 마치 유재원이 미국에 쥐구멍을 파놓고 영업을 하는 것처럼 썼다.
“이렇게 쓰는 기사는 누구 좋으라고 쓰는 건지 모르겠네.”
유재원은 모니터를 보며 중얼거렸다.
넥스트컴 한국 서버는 정지 상태였지만, 모든 기능은 정상 작동 중이다. 매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기사 서비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료 서비스인 스캔본 열람도 문제없이 가능했다.
지금 띄워진 대한일보 기사도 유료 스캔본이었고, 최신판을 문제없이 볼 수 있었다.
참고로 대한 일보는 일반 뉴스 페이지에 올라가는 무료 서비스 기사는 거부했다. 기사에 대한 고료는 넥스트컴이 주는 것이니 실제로는 유료 공급인데도, 네티즌이 공짜로 보는 건 못 참겠다는 것이었다.
대신 종이 신문과 똑같은 가격의 1부당 300원씩 내고 봐야 하는 유료 스캔본 서비스에는 동의했다.
제 딴엔 자존심을 부린 것인데, 유재원이 보기엔 시대의 변화를 읽을 줄도 모르는 한심스러운 작태였다.
오늘자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기사들도 따지고 보면 구태의연했다.
국가보안법으로 큰 재미를 보았던 선례에 따라 이번에도 넥스트컴에 한 방 먹여줬다 생각했는데, 국경을 초월한 인터넷으로 허무하게 무력화된 걸 보고 데스크나 기자들이 좀 열이 삐친 모양이다.
나이 지긋한 분들이라면 유재원이 얌체처럼 법망 피해 불온 게시물이 가득한 현대철학동호회를 계속 서비스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동시에 국가보안법 따위보다 훨씬 더 중요한 헌법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도 조금의 고민도 없을 것이다.
“뭐, 상관없지.”
아직까지도 한국의 언론 환경은 지극히 보수적이라 그러한 가치가 논의되려면 적어도 21세기엔 진입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재원이 상관없다고 말하는 건 대한일보의 징징거리는 기사는 한국에선 그다지 중요하게 다뤄지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보다 훨씬 크고 자극적인 뉴스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태산 칼럼: 역사를 일제에 팔았던 조선사편수회 위원 강용식을 기억하자!
-단독 특종! 조선사편수회 의원 강용식, 넥스트컴에 초강경 폐쇄조치 내린 강임석 검사의 조부였다.
-강임석 검사, 넥스트컴 폐쇄 조치는 법과 원칙에 따라 했을 뿐,
-조부의 친일 행적에 대한 질문에는 사과도 없이 노코멘트로 일관.
넥스트컴 폐쇄 조치를 결정한 강임석 검사의 집안 내력이 줄줄 까발려 지는 중이었다.
기세 좋게 칼을 빼들었는데, 정작 넥스트컴은 아무런 데미지도 없었고 본인만 죽어나고 있는 중이다.
부장검사 중에서도 짬밥이 제법 쌓였던 강임석이었다. 몇 년 만 더 있으면 검사장 승진 고려 대상자였을 정도다. 심지어 이번 일만 잘 처리하면 검사장 자리까지 기본이라는 소리에 호기롭게 나섰다가 무차별 폭격이 무엇인지 톡톡히 맛보는 중이었다.
종이신문뿐만이 아니라, 텔레비전 그것도 KBS 9시뉴스에서도 다뤘기에 강임석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였다.
이만큼 현재 ID 그룹의 언론 장악력은 그야말로 최고조였다. 물론 그게 다 돈으로부터 나오는 힘이었지만, 그래서 응집력은 훨씬 강력했다.
유재원이 찾아낸 기사를 최강욱에게 줬고, 최강욱은 가장 아프게 때려줄 수 있는 매스컴을 골라서 전해줬다. 정보팀은 아예 물증까지 찾아내서 첨부했다. 역사를 팔아먹은 조선사편수회의 한국인 위원들끼리 찍은 기념사진이었다.
지방대학교의 조그만 박물관 창고에서 잠자고 있다는 단서를 유재원이 기억의 궁전에서 찾아냈고, 정보팀이 직접 움직여 찾아낸 성과였다.
물증까지 있으니 이보다 더 아프게 때릴 수 없을 만큼 휘몰아쳤다.
그렇지 않아도 사회지도층에 숨어있는 친일부역의 역사는 이번 사태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이슈였다.
넥스트컴을 공격한 검사의 조부가 친일파 중에서도 최상급 등급이었다는 게 증명이 되면서 조금은 식어가던 이슈가 다시금 뜨겁게 달아오르는 중이었다.
강임석 검사는 아무리 미국에 있는 서버라고 해도 넥스트컴 서비스 자체에 대한 폐쇄 조치니 이는 불법이라 하며 마지막 발악을 했다. 특히나 문제가 된 현대철학동호회까지도 정상 접속할 수 있게 한 건 사법부에 대한 도전이며 대한민국의 법치를 무시하는 거라고 항변했지만, 그 말에 귀담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관망 중이던 청와대가 움직였는지, 자중하라는 말이 내려왔다. 청와대가 움직이니 검찰총장도 불려갔고, 자연스럽게 서울지검장까지도 위로 불려가 대판 깨지고 돌아왔다.
당연히 강임석도 상관에게 불려가 수사를 이렇게 망칠 수가 있느냐면서 조인트를 까였다. 그날 이후로 강임석 검사는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았다.
안에서도 눈치가 보이는데, 여기에 출근할 때마다 뻗치기를 하고 있는 기자들이 몰려들어와 넥스트컴의 일은 물론이고 그의 조부에 대한 코멘트를 따려는 기자들까지도 문제였던 탓이다.
이로 인해 출근할 때마다 난장판이 벌어지니 결국 검찰청엔 병가를 냈다. 그러자 기자들은 집까지 따라왔고, 지금은 아예 집에서 나와서 잠적 중이었다.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지.”
공안통으로 잘나갔던 그의 검사 커리어도 큰 상처를 입었고, 대중에 친일파라는 낙인까지 확실히 찍혔으니, 그의 야망이었던 정치권 진출은 좌절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유재원은 순식간에 몰락해버린 강임석에게 조금의 안타까움도 느끼지 못했다.
조부가 나라는 물론 나라의 역사까지 팔아서 모은 돈으로 호의호식하고 좋은 교육을 받았으면 반성도 좀 할 줄 알아야 할 거 아니겠는가. 그런데 법과 정의를 다뤄야 할 검사가 되고서도 공안통이 되어서 생사람 여럿 잡고, 사법 거래로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법칙을 몸소 실현하고 다녔으니, 저런 취급을 당해도 싸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강임석에게서 넥스트컴 폐쇄 조치를 하도록 자극한 놈에 대한 정보는 얻지 못했다는 점이다.
유재원 쪽 사람들 중에는 강임석과는 친한 사람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도 없었던 탓이다.
이전 생에서는 현대철학동호회 사건은 천리안이라는 PC통신 업체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넥스트컴이 진작 한국의 대표 포털사이트가 되었고, ISDN과 ADSL의 빠른 보급으로 PC통신은 대중화가 되기도 전에 사양 산업이 된 덕에 천리안이라는 기업은 등장도 못했다.
대신 동호회 문화는 넥스트컴이 선도하는 중이었고, 가수들 팬클럽부터 낚시나 등산과 같은 어르신들이 주로 활동하는 동호회까지 모두 흡수했다. 운동권 대학생들이 주축인 현대철학동호회가 넥스트컴에 만들어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이전에 발생한 현대철학동호회 사건은 동호회만 차단되었고, 그것도 곧 사회적 논란이 되면서 문제가 된 몇 개의 글을 삭제하고 다시 차단이 풀렸었다.
원래는 이렇게 간단히 끝나는 일이, 한국 넥스트컴 전체를 임시 폐쇄하는 걸로 커졌던 것은 분명 누군가의 사주가 있었다.
그 누군가는 일제강점기 피해자 소송을 패소로 바꿔버린 외부의 영향력과 분명 같은 세력이라고 추측하는 건 지나친 비약은 아닐 거다.
그렇지만 강임석에게 무리하게 접근하면 다른 방향으로 사건이 튈 수도 있고, 마당발인 김창환, 정병우 변호사가 법원 쪽 사람들과 은밀히 접촉하면서 윗선을 알아보고 있으니 유재원은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물론 기다리는 동안 놀겠다는 건 아니었다.
유재원은 ID 그룹의 회장이었고, 그룹 내에서 가장 뛰어난 능력의 개발자이기도 했다. 차기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부터 휴대폰까지 시급히 완성해야 할 과제가 산적했다.
미리 해놓지 않으면 나중에 일에 치어 죽을 수도 있기에 유재원은 일단 넥스트컴이 띄워진 웹브라우저를 닫고 코딩 프로그램을 띄웠다.
그 시간, 한국에서는 또 다른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는 중이지만, 유재원은 명상을 하듯 빠르게 코딩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12월의 중순에 들었고, 밤새 함박눈이 내려 세상이 하얗게 뒤덮인 날에, 미국의 매스컴으로부터 초특급 속보가 전해지면서 한국을 한바탕 뒤집어 놓기 시작했다.
-안드로이드 사, 기업 공개 순항 중, 투자은행들 서로 주관사 되기 위에 물밑 경쟁 치열!
일제강점기 피해자 소송과는 완전히 관련이 없는 그저 ID 그룹의 소식이었다.
골드만삭스, JP모건 등등. 세계적 투자 은행들이 안드로이드 사의 기업공개 주관사가 되기 위해 열심이라는 기사가 먼저 전해졌다.
기업 공개에 주관사가 되면 수수료도 수수료이지만, 주식 시장에 공개되는 주식을 어떤 식으로 나눌 지도 관여할 수 있기에 엄청난 이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였다. 덕분에 수백 수천 억 달러의 투자금을 운용하는 거대 투자은행들도 체면불구하고 경쟁 중이라는 소식이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 안드로이드 사 가치 250억 달러 이상으로 평가.
-월스트리트 저널, 안드로이드 사 상장을 시작으로 IT테마주 랠리 시작 가능성 높아.
-월 스트리트의 수천 억 유동 자금, 안드로이드 사의 상장만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한국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건 그저 입이 떡 벌어지는 뉴스였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미국에 뭔가 사업을 한다는 건 일부 재벌 기업들의 이야기였다. 미국서 몇 백만 달러의 공사를 수주만 해도 뉴스 첫 꼭지, 신문 1면에 실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유재원은 미국서 사업을 했고, 그게 엄청나게 성공해서 나스닥 상장을 앞두고 있다고 하니, 일반인보다 훨씬 많은 배경지식을 지닌 경제 전문가들이라도 놀랄 노자였다.
-유재원, 아메리칸 드림 성공하다.
-안드로이드 사의 주가총액, 20조 원 가볍게 능가. 국가 예산의 1/2 규모!
-더욱 놀랄 일은 안드로이드 사는 ID 그룹의 전체 계열사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
한국 사람들에게 사업의 규모를 설명하는 데 있어 돈만큼 확실히 와 닿는 건 없었다.
20조 원이라고 하니 다들 입이 떡 벌어졌다. 그것도 ID 그룹의 전체가 아니라 계열사 하나의 상장이라는 게 더 무서웠다.
저번 유재원에게 제대로 당했던 일성그룹의 최현희를 비롯해 돈의 힘을 아는 사람들에겐 그저 모골이 송연해지는 뉴스였다. 그래도 완전히 투지를 잃은 건 아니었다. 기업공개를 앞두고 기업 가치를 조금이라도 더 끌어올리고자 바람잡이 기사를 쏟아내는 건 이쪽 사람들에겐 기본적인 스킬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한국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잡지는 물론 애널리스트까지도 다 동원하는 데 반해서 안드로이드 사는 월스트리트 저널, 포브스처럼 엄청난 명성을 가진 언론사라는 게 위기감을 자아내게 했다.
거기도 광고에 영향을 받는 매스컴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엉터리 기사를 마구 써 올리는 엉터리 저널리즘이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유재원을 경계하고, 적으로 삼았던 이들에겐 매우 큰 경계심을 불러일으킬 기사였지만, 이번 뉴스에 힘을 크게 받는 사람들도 있었다.
유재원을 순수한 마음으로 응원해주는 덕진리의 지인과 친구들이었다. 20조 원이 얼마나 큰돈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저 좋았다. 그리고 유재원의 존재감을 등에 업고 법원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정병우였다.
마지막으로 전명헌 총리와 통일국민당의 대다수 국회의원들이다. 이들은 유재원의 성공이 자기 집안의 일인 것처럼 괜히 어깨가 우쭐거렸다. 단지 어깨만 으쓱이고 만 것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바로 일제강점기 피해자 재판에 부당한 압력 행사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를 전명헌과 의견 조율을 마친 통일 국민당이 정식으로 제기했다.
여의도의 국회의원들 저마다 가지고 있던 각자의 계산기가 요란스럽게 두드려지기 시작했다.
-회장님, 국회에서 일제강점기 피해자 배상소송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한창 코딩 작업 중 걸려온 최강욱 비서실장의 보고였다.
한국 국회는 국정조사를 해야 하느니, 말아야 하느니 하며 국회에서는 논란이 한창이라는 이야기다.
보수 세력 쪽에선 당연히 기겁했다.
일단 표면적으로는 예산안 처리도 못했는데, 무슨 국정조사냐 하는 반발이 컸다. 그도 그럴 것이 12월 초에 끝났어야 할 94년도 예산안은 아직도 국회 심사 중이었다. 정부 측에서 올린 94년도 국가 예산은 45조 6천억 원 규모로 전년도 대비 30% 이상 증액된 액수였다.
ID그룹을 비롯한 대기업들의 규모가 커지고, 국민들의 평균 소득도 늘면서 세수가 늘어나긴 했는데, 전년도 대비 30%씩 오른 건 아니다. 그러니 세수로 채우지 못한 부족분은 빚을 내야 하는데, 부채가 늘어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자기 지역구 예산을 또 알뜰히 챙겨야 하니, 예산안 심사가 제대로 돌아갈 일은 없었다.
민정당 쪽 사람들은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다른 민생 법안은 물론 국정조사 논의도 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정부가 마비될 수도 있으니 여당으로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재판부에 행해진 부당한 압력이라는 건 평소 이들이 즐겨 사용했던 것이라는 게 문제다.
즉, 여당 측 국회의원들에겐 사법부에 형성된 기득권과 권력 구조가 본인들에게 이익이었기에, 어떻게 해서든 이번 사태를 최소화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여기서 통일 국민당이 민주당 그리고 무소속 의원들과 손을 잡으면 과반이 이뤄지니 국정조사를 밀어 붙이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민자당과의 연정도 깨지고 전명헌도 총리 자리가 위태로울 수 있다.
물론 여당도 그렇게 연정을 깨면 과반이 무너지는 것이라서 쉬운 선택은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다 좋은데, 2% 부족한 게 있어요.”
유재원이 그리는 그림에서 국정조사는 키포인트였다.
최종 목표는 재판을 방해하고 엉터리 결론이 나오도록 손을 쓴 재판관들을 모조리 탄핵하는 것이지만, 탄핵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하고 싶다고 그냥 막 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국정조사나 정식 수사를 해서 재판에 손을 쓴 사람들을 찾아내고, 이들의 변명을 들어본 다음 탄핵하는 순서가 온당하다.
그런데 검찰이 수사를 하면 어디로 튈 줄 아무도 모르니, 유재원은 국회에서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걸 선택한 것이다.
문제는 윗선들이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점이다.
그나마 직접 판결을 내린 주심 재판관 그리고 배석판사들은 이름을 숨길 수 없으니 이들을 통해 조사를 시작해 볼 수는 있다. 그런데 이 셋이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답이 없는 것이다.
이제껏 국회에서 많은 국정조사가 있었고, 이후에도 끊이지 않을 테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본 적은 극히 드물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재원은 적어도 윗선이 누군지는 알고 시작하고 싶었다. 그래야 화력을 집중시켜서 본때를 확실히 보여줄 것 아니겠는가.
-회장님이 우려하시는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자세한 이야기는 정병우 변호사가 보고해드릴 겁니다. 전화를 바꿔드리겠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잠깐 부산스러운 소리가 났다.
지금 한국에 최강욱과 정병우가 같은 자리에 있는 모양이다.
-회장님! 정병우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예 회장님, 회장님 덕분에 신바람 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드로이드 상장을 축하드립니다! 그야말로 약관의 나이가 되기도 전에 우주의 역사에 길이 남을 신기원을 기록하신 겁니다. 너무도 자랑스럽습니다!
정병우는 통화를 하자마자 장황한 축하의 말을 늘어놓았다.
아직 상장이 되기도 전이었는데, 이미 된 것처럼 말하면서 우주까지 끌어들였다. 이전 생에 뉴스에서만 접했을 때는 완전 과묵해 보이는 느낌이었는데, 역시 겉으로만 봐서는 사람 속은 모르는 법임을 다시 깨달았다.
-회장님의 넘보지 못할 업적 덕에 결심을 못하고 미적거렸던 후배 녀석이 드디어 마음을 굳혔습니다.
“예? 마음을 굳히다니요?”
-그렇습니다. 누구로부터 압력을 받은 것인지 실토했습니다.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 마태식이랍니다.
“아! 마태식이요?”
설마 했는데, 진짜 이름이 튀어 나왔다. 심지어 마태식이란 자는 유재원도 익히 알고 있던 인물이다.
이름을 듣자마자 바로 그 느끼한 얼굴이 떠오를 정도다.
대한민국 사법계에는 흑역사가 매우 많았다. 그런 흑역사에 대부분 관여해 흑역사 그랜드슬램을 이룩한 인물이 바로 마태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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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잘 보내시고, 월요일에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