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303화 (303/1,007)

00303  정의의 가격(Price of Justice)  =========================================================================

다만 국가보안법이란 소리에 살짝 덜컥하는 마음이 들긴 했다.

잡으라는 간첩 대신 생사람만 잔뜩 잡았던 국가보안법이 아니던가. 정권에 쓴 소리 하는 사람 때려잡았고, 정권에 위기가 있을 때마다 평범한 국민을 간첩으로 몰아서 탈출했다. 거기에서 요긴하게 썼던 게 국가보안법이었다.

“설마 우리 사원이 국가보안법으로 고소되진 않았지요?”

-동호회 회장이나 거기 게시판에 글을 올린 사람이 조사 대상이긴 한데, 우리 직원들은 아닙니다. 혹시 사이트 폐쇄를 거부하고 강제로 운영할 경우엔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예? 강제로 운영이라니. 무슨 말씀을. 법은 지켜야죠.”

최강욱은 여론전의 전초 기지로서 훌륭히 활용 중인 한국 넥스트컴 뉴스 페이지였으니 경찰의 폐쇄 명령을 무시할 작정이었나 보다. 하긴 경찰의 폐쇄 명령은 무리가 있긴 했다.

경찰은 경찰일 뿐이다. 자기들이 법원도 아닌데, 무슨 권한으로 폐쇄를 명령한단 말인가. 따지고 들어가 보면 분명 위법적인 조치였다. 그런데 지금은 93년도다. 빨갱이라는 단어가 그대로 통용되는 시절이었다.

사법부와 정부를 친일을 빌미로 핀치에 몰아넣고 있는 중이지만, 여기에서 빨갱이 문제가 터지면 여론은 순식간에 반전될 가능성도 높았다.

-헉, 그러면 폐쇄 명령을 따르시겠다는 겁니까?

“예!”

-그러면 여론전 수행 능력이 떨어지게 될 겁니다. 차라리 당당하게 임하는 것이 오해를 피할 수 있습니다. 문제가 된 동호회만 차단하면 됐지, 사이트 전체를 폐쇄하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습니다.

“괜찮아요. 우리 직원들에게 엄한 불똥이 튀는 건 막아야죠. 그리고 일단 서버를 중단 시켜 보면 제가 왜 괜찮다고 했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전생에는 이번 사건을 두고 현대철학동호회 사건이라고 명명되었다.

신문 기사에 남을 만큼 큰일이었다. 유재원이 마스터 플랜을 짜려고 열심히 자료 수집을 할 때, 당연히 걸려들었다.

“그나저나, 최 비서실장님 말대로 동호회 하나 차단하면 될 일을 사이트 전체 폐쇄로 키운 작자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 작자가 누구인지 좀 알아봐주세요.”

-이미 파악했습니다. 서울지검 특수4부 첨단범죄수사 1팀의 이한진 수사관입니다. 그런데 수사관 하나가 독단으로 일을 벌이진 못했으니, 그 윗선인 강임석 부장검사일 공산이 큽니다.

유재원의 지시에 최강욱은 한 발 앞서 있었다.

이런 보고를 하면 유재원이 당연히 누가 지시했는지 물어볼 줄 알고 미리 다 파악을 해놓았다. 명령이 나온 수사관은 물론 문제의 수사관을 거느리고 있는 부장검사까지 말이다.

그나저나 강임석이라고?

유재원은 약간의 기시감을 느꼈다.

기시감이 느껴진다는 건, 유재원에게 이름이 박혀 있을 만큼 네임드라는 소리이기도 했다. 한 번 기억의 궁전에 들어가서 이름을 뒤져볼 필요가 있다.

“알겠습니다. 하여튼 폐쇄 명령이 나오면 일단은 따르세요. 이후 상황을 보고 추가 지시를 드리겠습니다.”

-네, 회장님.

유재원과 최강욱의 통화는 중지되었다.

비슷한 시각.

청와대에서는 국가안전기획부의 김덕 부장과 김 대통령의 독대가 이뤄지고 있는 중이었다.

김 대통령은 국가안전기획부와의 악연은 따로 말할 필요는 없을 정도다. 민주화운동을 할 때부터 안기부의 감시는 늘 따라다녔으니 말이다.

야당의 당수였던 김대중만큼은 아니었지만, 김영삼도 안기부의 사찰과 위협은 일상이었다. 계엄령이 내려졌을 때엔 총칼로 국회 등원이 저지되기도 했고, 아예 가택연금까지 당하기도 했었다.

그런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안기부도 대대적인 개편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상징이 바로 지금 김 대통령 맞은편에 공손한 자세로 앉아 있는 김덕 안기부장이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였던 김덕이 안기부장이 된 것 자체가 안기부에는 충격이었다.

김덕 안기부장의 취임 일성 역시 김 대통령의 의지를 그대로 반영했다. 국민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준 정치사찰 기능은 과감히 폐지하겠다고 했고, 동시에 해외정보와 분단국가라는 현실에 맞는 대북정보 수집업무에 역점을 두겠다고 했다.

일단은 그 말이 지켜지는 듯 했다.

정치인들의 동향파악 보고는 일단 중단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른 분야의 국내 정보 수집 기능은 여전히 가동 중이었다.

유재원이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여론전을 시작했다는 보고는 며칠 전에 시작했다. 그렇게 집중 관찰 대상이 되어 보고 된 게 벌써 3번째다.

“유재원 회장이 이번 일에 단단히 칼을 갈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여론 형성도 단기간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일제강점기 피해자를 위한 모금 행사도 날이 지날수록 참여자가 늘고 있습니다.”

“그래요? 얼마나 모였소?”

“공식적으로 벌써 10억 원이 넘은 걸로 파악됩니다.”

김 대통령은 살짝 놀란 표정이다.

“그럼 일단 20억은 찍었다는 소리구만. 유 회장이 민간에서 모은 만큼의 액수를 추가로 낸다고 했으니 말이오.”

“예, 일부러 유 회장이 김&정 법무법인의 두 변호사를 가지고 6억을 냈으니, 바람잡이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지요.”

“바람잡이라니. 김 부장, 시야를 좀 더 키워야겠어.”

안기부장의 보고를 다양한 반응을 보이며 듣던 김 대통령은 이 대목에서 혀를 찼다.

“무슨 말씀이신지?”

“민간에서 몇 억을 모아도 결과적으로 유 회장이 제일 큰돈을 낸단 말이지요. 그러면 유 회장이 이 돈으로 뭔가 큰 사업을 할 생각이라는 건 나도 할 수 있겠소. 다만 그 일이 국민적 참여와 지지가 있어야 하는 일 아니겠소? 거기에 일제 강점기와도 관련이 있을 테고.”

김 대통령의 말에 김덕 부장은 송구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저렇게 기초적인 것도 파악 못하고 단지 숫자만 보고한 건 분명 본인의 실책이었다. 동시에 한국 사람으로서는 크게 문제가 될 사안은 아니었지만, 국제적으로 보면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요즘 한국 언론에서 일제강점기를 자꾸 들추니 일본의 심기가 매우 불편해졌다.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일본 쪽에서 자꾸 압력이 들어온다는 게 문제다.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 자본 중에 일본의 것이 상당한데, 이게 줄어들면 경제 성장이 대폭적으로 이뤄질 시기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다른 건 없습니까?”

김 대통령의 물음에 김덕 안기부장은 바로 다음 보고를 시작했다.

“그리고 법원 주변에 유 회장의 사람들이 열심히 활동하면서 1심 판결에 외력을 행사한 자를 찾기 위해 열심 뛰고 있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안기부에선 윗선을 파악했소?”

“송구스럽게도 아직 파악 중입니다.”

군사정권이 안기부를 쓰는 식으로 김 대통령도 했다면 벌써 재판에 압력을 행사한 자를 찾아내고도 남았다. 하지만 달라진 안기부를 보여주겠다고 공언했고, 실제로 안기부에서 행했던 불법적인 도·감청을 금지하면서 첩보 수집 능력이 많이 떨어졌다.

“좀 더 노력해보시오. 유 회장보다 내가 먼저 알아야 면이 서지 않겠소?”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 대통령은 점잖게 말했지만, 김덕 안기부장에게는 커다란 압력으로 다가왔다. 적어도 다음 독대 전까지는 그 망할 놈의 판사의 이름은 기필코 알아보겠다는 각오가 서렸다.

“아직 할 말이 있소?”

이쯤하면 된 거 같은데, 아직 제 자리에 앉은 김덕 안기부장의 모습에 김 대통령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마지막입니다. 넥스트컴에 임시 폐쇄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서울지검 특수4부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나온 조치입니다.”

“국보법?”

김 대통령은 껄끄러운 표정이다. 국보법 때문에 시달린 기억이 다시 살아났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대통령이 되면 당장 국보법부터 때려잡겠다고 이를 갈았었는데, 3당 합당으로 옛 군부정권의 여당이었던 민정당에 들어온 터라 이를 밀어 붙이기가 힘들게 되었다.

대통령이 되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거 같았고, 실제로 하나회 해체 같은 무지막지한 일도 해냈던 김 대통령이지만, 국보법 폐지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내년에 있을 남북정상회담에서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개선의 여지는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바로 개입을 하시겠습니까?

김덕 안기부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김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유재원을 강하게 견제했다. 대권가도에 커다란 장애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직접 대면한 다음부터는 조금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게다가 최근 있는 사법부와 함께 청와대까지 싸잡아 비난 받는 건 껄끄러웠지만, 역사 청산 작업은 김 대통령의 생각과도 부합하는 일이었다.

“잠깐 두고 봅시다.”

김덕 안기부장은 김 대통령의 말에 의문부호가 얼굴에 떴다.

당연히 김 대통령은 유재원에게 호의적인 대응을 지시할 줄 알았던 모양이다.

“곤란함을 좀 느껴봐야 도움을 받는 게 고마운 것인지도 알 수 있는 것 아니겠소?”

김덕 안기부장은 이어진 김 대통령의 말을 단번에 이해했다.

그것으로 유재원에 대한 동향 보고는 끝이었고, 독대도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유재원의 대응은 김 대통령과 김덕 안기부장의 예상을 한참이나 뛰어 넘었다.

다음 날.

한국의 뉴스는 오랜만에 ID 그룹에 포커스가 맞춰졌다.

-넥스트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임시 폐쇄 조치!

-ID 그룹, 부당한 조치임은 분명하지만, 경찰 조치 일단 따를 것.

-가처분신청도 즉각 조치.

폭풍처럼 쏟아지고 있는 일제 강점기의 강제징용, 위안부 뉴스 그리고 전범 기업의 무대응이나 일본 정치인들의 헛소리도 조금은 질려갈 때 넥스트컴이 국가보안법에 걸렸다는 뉴스가 대한일보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대한민국 최고의 발행 부스를 자랑하는 대한일보였고, 그만큼 취재력도 강력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정치나 사법부에 널린 자발적 빨대들이 널려 있어서 내부에서만 아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할 경우, 대한일보에 제일 먼저 제보했다.

덕분에 넥스트컴이 국가보안법에 걸려 임시 폐쇄 조치를 당했다는 소식도 제일 먼저 보도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ID 그룹이 시작한 일제강점기 피해자 논란에 대해 껄끄럽게 여기고 있던 대한일보였다.

여기서 무너지면 본인들이 구축해 놓은 기득권의 한축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는 위기감도 강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한일보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친일의 행적이 고스란히 도출되었기 때문이다.

-ID 그룹의 일제강점기 피해자 지원, 친북 성향 가리기 위해서였나?

반전의 실마리를 잡았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대한일보는 특기인 왜곡 기사를 써 올렸다. 위안부 소송은 2년 전쯤에 시작한 일이었고, 현대철학동호회 사건은 어제 터진 일이었다. 그런데 대한일보는 마치 현대철학동호회 사건을 가리기 위해 일제강점기 피해자 이슈를 띄운 것처럼 왜곡했다.

-청와대, 당혹함 감추지 못해. 현재 면밀히 파악 중.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게 청와대 소식을 전하는 기사였다.

일명 상도동의 출장 기자들로부터 나온 기사였다. 김 대통령의 기자 관리는 예전부터 알아주는 수준이었다. 회식이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기자들에게 지갑 째 내주는 건 김 대통령의 시그니처일 정도였다.

덕분에 기자들도 김 대통령을 좋아했고, 우호적인 기사를 써주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비판을 할 때에는 반대로 날카로움이 무뎌지는 것도 당연했다. 오죽하면 3당 합당 사건이 터졌을 때도, 며칠만 떠들썩했지 이후엔 전폭적인 지지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에도 김 대통령이 몰고 다녔던 기자들은 상도동 사무실로 출근했고, 거기서 청와대의 동향을 파악하고 기사를 썼다.

그런 기자들을 상도동의 언론장학생이라 불렀는데, 이들은 이번 넥스트컴의 국보법 사태를 두고 청와대가 국보법이라는 사안 때문에 껄끄러워 하는 것 같으니 자기들이 가려운 곳을 긁어주겠다고 나서고 있는 중이다.

일반 대중이 보기에 ID 그룹이 난데없는 국가보안법으로 기세가 꺾인 것처럼 보였다. 일부 급진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경찰의 조치를 순순히 받겠다는 소리에 ID 그룹이 한발 물러서는 것처럼 보여 실망감을 강하게 표출했다.

온겨레 신문처럼 초강력 진보성향의 신문에서는 아예 이번에 국보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기사를 띄우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대다수였던 일반 네티즌은 아무런 문제없이 넥스트컴 서비스를 이용 중이었다.

한국 넥스트컴의 서버는 경찰의 집행에 의해 서비스가 중단 되었지만, 미국에 있는 백업 서버가 자동으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전화기 너머로 놀라움이 가득한 최강욱 비서실장의 목소리가 유재원에게로 전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최강욱 비서실장은 사안의 심각성 때문에, 경찰의 임시 폐쇄 조치를 직접 참관했다. 서울 로데오 빌딩 지하에 있는 한국 넥스트컴의 메인서버의 전원을 내리는 작업을 직접 참관했던 것이다.

한국 넥스트컴의 메인 서버는 몇 년 전 IBM에서 비싼 값에 도입한 메인프레임이었기에 전원을 내리는 것도 일이었다. 데이터가 안전하게 저장이 되었는지 확인하고, 백업도 시킨 후에 전원을 내렸는데, 거의 30분 가까이 걸렸다.

전원이 내려졌으니 접속 불만이 폭주하겠다 싶었다. 이에 대비해서 고객센터에 인력을 보강하고 대기 중이었는데, 몇 십 분이 지나도 고객센터는 평온했다.

알고 봤더니 넥스트컴의 서비스는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다.

“리다이렉트라는 기술이에요.”

인터넷 서비스를 하면서 백업 서버를 두지 않는 건 사업 초기라던가, 규모가 작은 서비스에 한했다. 나중엔 개인 단위에서도 다루는 데이터의 크기가 커지면서 백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다.

당연하게도 ID 그룹은 가장 먼저 데이터 센터를 만든 만큼, 백업도 철저하게 이뤄졌다. 그리고 이렇게 백업을 해놓은 데이터를 활용하는 방법 중 하나가 서버에 장애가 생길 경우 임시 서버로 운영하는 방식이었다.

DNS에 등록된 URL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아이피만 바꿔주면 사용자 입장에서는 간단하게 기존의 서비스를 계속 사용할 수가 있다.

-그러면 현대철학동호회도 그대로 접속되는 겁니까?

“네! 백업 서버는 미국이잖아요. 그리고 백업 서버 관리는 넥스트컴 미국 법인이 관리하고 있고요. 미국은 매우 자유로운 나라죠.”

유재원은 간단 명확하게 답했다.

미국에서도 한때 매카시즘이 불긴 했지만, 7, 80년대를 지나며 냉전에 승리한 후에 레드컴플렉스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 사회주의를 다루는 건 이젠 문제도 아니다.

“한국 서버는 확실히 닫았으니 문제없죠?”

-그, 그렇습니다.

유재원의 물음에 대답한 최강욱은 온라인 서비스의 국적 문제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광대역 광케이블로 연결된 상태라서 서버가 미국에 있어도 접속 지연이나 전송속도 하락과 같은 문제도 없었다.

반면 한국의 법으로 미국에 있는 서버를 제어할 수가 없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악명을 떨치는 무시무시한 국보법이 바다 건너에서는 종이호랑이만도 못했다.

과연 한국이 미국에 있는 넥스트컴에 국보법 위반이니 당장 서비스를 중단하라고 명령한다거나, 임직원을 소환할 수 있을까?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다.

“그나저나 이번 일을 주도한 사람이 강임석 검사라고 했죠?”

-그렇습니다.

“알아보니 좀 문제가 있는 분이더군요.”

기억의 궁전 속에서 유재원은 강임석의 이름 석 자를 검색하고 역시나 싶었다. 그의 조부가 보여준 친일매국의 경력이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조선총독부가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려고 만든 조선사편수회의 위원이었으니 반론의 여지도 없었다.

강임석 검사 역시 정치욕심이 있는 야심가였다. 예전의 흐름 대로였다면 정치권에 스카우트되어 국회의원을 3번이나 하는 사람이다. 당연히 소속 정당은 보수적 기치를 자랑하는 당이었다.

“되로 받았으니 말로 돌려드리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예, 지당한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친일 경력을 숨긴 작자들에 대한 관심이 폭발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강임석의 조부 이야기가 대대적으로 보도된다면, 국민들의 반응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강임석 검사에 대한 처분은 이걸로 되었다 싶은 유재원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안드로이드 사의 상장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 중인 거 아시죠?”

한국은 일제강점기가 이슈라면 미국에선 PC 운영체제 시장을 평정해버린 안드로이드 사의 기업 공개였다.

기업공개 소식을 들은 미국 금융계를 비롯해 큰돈을 가진 슈퍼리치들은 유재원의 예상을 뛰어넘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기업 공개 작업의 주관사가 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강점을 홍보했다. 만약 유재원이 허락만 했으면 JP모건이든 골드만삭스든 담당자들이 샌프란시스코까지 와서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했을 기세다.

아직은 생각이 없다.

케빈 존슨 사장은 상장에 대한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안드로이드 사의 상장 준비를 자체적으로 할 수 있었고, 현재는 SEC와 나스닥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중이었다. 심사룰 통과한 후에 증권신고서 작성이나 공모주 발행 정도의 단계에서 선정하면 그만이다.

당연히 심사 결과에 흠결은 전혀 없었다. 사업의 규모, 재정 건전성, 현금 흐름과 회계의 투명성까지. 안드로이드 사는 작은 스타트업부터 시작했다고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견실했다.

이러한 사실을 각자의 소식통을 통해 전해들은 슈퍼리치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기업공개까지 갈 것 없이, 안드로이드 사의 지분을 블록 딜로 사고 싶다는 의향을 보냈다. 현재 호가는 5%에 8억 2천만 달러가 나왔고, 통 크게 10%를 한 번에 사겠다는 사람은 15억 달러를 부르기도 했다.

“이런 소식이 조만간 포브스나 월스트리트 저널 등의 금융 전문 언론을 통해 공개될 거예요.”

-이 좋은 소식을 한국에서도 대대적으로 홍보하면 회장님이 하시려는 일에 큰 도움이 되겠군요.

유재원이 하려던 말이 바로 그거다.

힘을 숨겨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아니다. 아직도 유재원을 과소평가 하는 사람들에게 본인의 실체와 ID 그룹의 위용을 제대로 보여줘야 빠르게 끝낼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에 안드로이드 사의 상장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것이었다.

역시나 상대의 반응은 유재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기다리던 태풍이었는데, 막상 오니 너무 세서 피해가 클까봐 걱정이네요. 다들 무사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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