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97 그레샴의 법칙 =========================================================================
ID 그룹 사장단 고위임원 회의는 금문교 북쪽, 포트베이커 카발로 포인트 롯지라는 고풍스럽고도 유서 깊은 호텔에서 열렸다.
회의 준비는 며칠 전부터 했다고 한다. 물론 호텔 측에서 대부분 준비했고 화상통신과 같이 기술이 필요한 부분은 ID 테크놀로지 기술지원파트에서 수행했다. 모든 준비는 완벽했기에 유재원이 딱히 신경 쓸 일은 없었다.
그저 제 시간에 비즈니스 미팅 룸으로 들어서는 것으로 끝이었다.
“회장님, 입장합니다.”
김대석의 알림과 함께 유재원이 성큼 걸어 제 자리로 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약속 시간 정시에 입장했다.
미리 와서 앉아 있던 사장들과 고위 임원들이 박수로 유재원을 맞이했다. 이런 식의 행사는 처음인지라 유재원은 무척이나 어색했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모두가 우러러 보고 박수까지 우렁차게 쳐주니 기분은 절로 좋았다.
그렇지만 교장 선생님께서 명심하라 하신 말씀은 자만을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항상 명심하고 있는 유재원은 표정관리에 힘쓰면서 제 자리에 앉았다.
앉아 보니 너무 좋았다.
20여명이 긴 탁자에 앉을 수 있는 미팅 룸은 19세기 초 미국식 인테리어로 꾸며졌는데, 편안했고 아늑했다. 커다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좋았다. 금문교와 샌프란시스코 만의 풍경이 그림처럼 걸려 있었다.
“자, 그러면 시작할까요.”
유재원이 착석해 시작하라고 말하는 것으로 ID 그룹 사장단과 고위임원 회의가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식순은 간단했다.
사장단 그리고 별도의 보고가 있는 임원들이 순서대로 일어나 93년도 성과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하면 된다. 이후에 레스토랑으로 가서 밥도 먹고, 사장단, 임원들과 친목을 다지면 된다.
친목!
오늘 사장단과 고위임원의 미팅에서 제일 중요한 포인트였다.
이제까지 이러한 성과 보고는 보통 ID 톡으로 받았고, 연말 결산도 그렇게 끝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번거로운 오프라인 미팅을 만든 건 친목도모를 위해서다.
막 창업했던 때만 해도 누가 무슨 일을 하는 지, 대충은 알고 있었다. 덕분에 독립된 조직이라도 협력해서 당면한 과제를 처리하는 건 기본이었다. 그런데 종업원 숫자가 수천 명에 이르는 지금에는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들어졌다.
각자 맡은 일의 범위가 전과 달리 명확해졌고, 그 일을 하는 데에도 전력을 다 해야 할 때가 많았다. 게다가 그렇게 타부서의 일을 도와준다고 본인에게 딱히 이득이 되는 것도 없었다.
유재원에게 있어 그다지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었다.
물론 조직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제도적인 절차와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타부서의 협력 요청에 응해 보다 나은 결과를 내놓았다면, 여기에 참여한 이들에게 보너스를 주던, 인사 상 혜택을 주는 것이다.
당연히 그러한 제도는 이미 유재원의 지시를 받은 전략기획실에서 열심히 만드는 중이었다. 그런데 지금 ID 그룹은 사장단 사이에도 서먹한 게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ID 그룹의 비전이나 방향성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이번 행사를 통해 ID 그룹에 대한 일체감도 얻고, 조직력도 강화하는 것이 유재원의 생각이었다.
“그러면, ID 테크놀로지 레밍턴 스팅 사장부터 결산 보고를 시작하겠습니다.”
진행을 맡은 김대석의 호명에 레밍턴 사장이 살짝 긴장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에 섰다. 단상에는 프로젝터와 뉴에그2를 연결했고, 스피커 시스템도 좋은 걸 갖춰 놓았다. 발표 자료도 미리 뉴에그2에 옮겨 놓았기에 간편히 발표를 시작할 수 있었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레밍턴이었다.
이런 식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 건 레밍턴에게도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일인 탓이다. 그나마 예전에 컴덱스나 여러 대형 행사를 치르던 유재원을 옆에서 돕기도 했고, 스탠퍼드 EMBA 과정도 치르면서 그나마 좀 나졌다.
왼손엔 마이크, 오른손엔 레이저 포인트를 굳건히 쥔 레밍턴은 인사로 발표를 시작했다.
“보스, 아니 유재원 회장님. 그리고 ID 그룹 사장단과 임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ID 테크놀로지를 맡은 레밍턴 스팅입니다. ID 그룹의 93년도 연말 결산에서 제일 먼저 발표하게 된 게 떨리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는군요. 다만 이런 발표는 처음인지라 실수가 좀 보이더라도 너그러이 보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레밍턴의 인사말은 여지없이 한국식이었다. 인사말을 끝내고 허리를 꾸뻑 숙여 인사하는 것까지 완벽했다.
곧이어 스크린에 레밍턴이 준비한 발표 자료가 떴다.
일단 ID 테크놀로지가 운영 중인 사업부에 대해 아이콘으로 간략화한 것이었다. ID 테크놀로지의 사업 영역은 유재원의 능력만큼이나 방대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게임부문 등등 굵직한 사업부가 별도의 법인으로 독립했음에도 여전히 컸다.
ID 테크놀로지 산하 사업부 아이콘은 종업원 숫자 기준으로 정렬을 한 모양인 듯 했다. 그렇기에 가장 먼저 레밍턴이 언급한 건 ID 디스플레이였다.
“ID 디스플레이의 현황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ID 디스플레이는 총 1,000명 규모의 직원들이 고용되어 있다. 이중에 대전 공장의 생산직으로 고용된 인원이 거의 전부인 900명 정도였고, 나머지 100명은 실리콘밸리에서 LCD 디스플레이 기술을 연구할 R&D부서 소속이다.
수천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사업으로 ID 테크놀로지를 넘어 ID 그룹 전체를 봐도 알아주는 블랙홀이었다.
“현재 공장 건설은 완료되었고, 생산직 직원들의 장비 교육이 일본 샤프사의 엔지니어들의 도움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주요 부품인 편광필름, ITO전극 유리기판도 3M과 코닝 등의 협력사를 통해 순조롭게 준비 중으로 내년 2월부터 시범생산에 들어가고, 수율 안정화 작업을 거쳐서 내년 여름부터는 대량 생산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생산 제품은 SVGA해상도의 14인치 제품부터 휴대폰용 소형 제품까지 다양한 시장의 요구에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레밍턴 사장은 멘트에 맞춰 슬라이드를 척척 넘겼다.
ID 디스플레이 대전 공장부터 실리콘밸리의 R&D 연구소, 시제품의 사진 등등 시각적인 자료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다만 지금껏 돈만 투입되고 실제 수익은 하나도 없는 상태라서 레밍턴의 목소리는 처음보단 좀 작아졌다.
돈은 더 들어도 상관없었다. 유재원은 웬만한 제품은 죄다 OEM이나 라이선스를 줘서 타 회사들이 생산하게 했다. 세상 사람들이 ID 그룹 제품이라고 착각하는 에그 시리즈부터, 최근 열심히 개선 작업 중인 휴대폰까지 대량 생산은 다른 회사들을 이용할 작정이다.
그렇지만 디스플레이 장치는 예외다.
휴대폰부터 모니터, TV까지 화면을 표시하는 장치에서 가장 중요한 건 디스플레이 모듈의 품질이다. 모바일 프로세서와 디스플레이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사업이었다.
ID 디스플레이에 대한 설명을 마친 레밍턴의 슬라이드가 넘어갔다.
“다음은 플래그쉽스토어입니다.”
자그마한 사진들 수십 개를 모자이크처럼 사용해 이미지를 만들었다. 작은 사진 하나하나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플래그쉽스토어 매장을 찍은 사진들로 만든 모자이크였다.
안드로이드 사업부가 독립할 플래그쉽스토어를 두고 작은 논란이 있었다. 안드로이드 사업부가 가져가야 하느냐, 그대로 테크놀로지 소속으로 두는 게 맞느냐 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지금 레밍턴의 발표처럼 ID 테크놀로지 소속이다.
플래그쉽스토는 원래 유재원이 서울, 실리콘밸리, 맨해튼 이렇게 3개만 운영했었다. 그러다가 MS를 흡수하고 나서, MS가 가진 전 세계 대리점 중에 매장이 커다란 건 모두 플래그쉽스토어로 전환해서 지금에 이르렀다.
미국, 영국, 프랑스부터 일본과 러시아까지. 다양한 나라에 ID 그룹의 제품을 공급하는 소중한 유통망으로 성장했다.
다만 공장에서부터 플래그쉽스토어까지 전 세계 물류가 수직 계열화된 건 아니다. 중간 중간 기존의 물류 업체를 이용하는 형태로 구축되었다.
유재원은 끝까지 이런 형태를 고수할 생각은 없었다.
물류가 대표적인 굴뚝산업이긴 했지만, IT와 시너지 효과를 크게 낼 분야이기도 했다. 조만간 플래그쉽스토어 인터넷 판을 조만간 만들 계획이었다. 당연히 ID 그룹의 상품만 파는 게 아니라, 원하는 누구에게나 개방하는 오픈마켓 형태였다.
여기서 중요한 게 배송이다.
빠르고 정확한 배송 시스템이야 말로 인터넷 쇼핑몰의 본질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자면 대형 물류 시스템 구축이 필수이고, 기왕에 물류 시스템을 만든다면 플래그쉽 스토어와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내면 더욱 좋다.
“플래그쉽 스토어의 매출은 전년도 대비 30%정도 상승한 3억 1,200만 달러이고 이중 비용을 다양한 비용을 제하고 남은 순이익은 3,300만 달러입니다. 올해 매출 신장에 기여한 건 뉴에그 2시리즈와 ID 오피스 3.0이었습니다. 게임 소프트웨어 판매도 지속적으로 성장 중입니다.”
다만 수익이 나왔다고 무조건 좋아하는 건 무리다.
플래그쉽 스토어의 수익은 판매되는 상품에 비용으로 전가되는데, 그 상품 대부분이 자사의 제품이니 말이다. 그래도 직원들을 인건비를 떼어먹는 식으로 만든 수익이 아니라 유통 구조의 혁신과 판매 호조로 이뤄낸 성과이니 폄하할 일도 아니었다.
“ID 오피스의 눈부신 성과는 다들 알고 계실 거라 믿습니다.”
ID 오피스는 연초 발표한 3.0의 대박으로 신기록을 갱신 중이었다.
고성능 컴퓨터의 성능을 십분 활용할 수 있게 설계한 덕에 HPC 시대가 되었음에도 조금도 뒤쳐지지 않았다. 경쟁사의 프로그램은 HPC에 대응하지 못해서 성능 향상이 미미했는데, ID 오피스 3.0의 경우엔 컴퓨터의 성능 향상이 있는 만큼, 효율성이 향상되었다. 486이하의 하위 호환은 과감하게 버리고, 586이상 시스템에 최적화시켜 놓은 결과가 빛을 발휘하는 것이다.
덕분에 ID 오피스는 전 세계 사무용 소프트웨어 시장을 통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성장했다.
완제품 컴퓨터에 탑재되는 번들판으로만 4백만 장을 팔아 치웠고, CD와 디스켓판 포함한 리테일 패키지는 80만 장이 넘게 팔렸다. 여기에 최근 독립해 과감한 마케팅을 펼치는 전자 소프트웨어 판매 사이트 ESD.com도 가세한 덕에 잘만 하면 500만 장이란 기록을 세울 수도 있을 것 같다.
몇 년 전만 해도 37만 장 팔았다고 감격이었는데, 이제는 그 10배 이상을 팔아치운 것이다.
레밍턴 사장은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슬라이드를 넘겼다. 억 단위의 커다란 숫자가 떡하니 튀어 나왔다.
“덕분에 ID 오피스 사업부의 93년도 예상 매출액은 총 4억 8천만 달러이고, 이중 순이익은 최소 50% 이상입니다.”
ID 오피스의 풀 패키지 120달러였고, 올해 480만 장이 팔렸으니 단순 계산으로는 5억7천만 달러의 매출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120달러라는 건 소매점에서 파는 커다란 상자 모양의 리테일 패키지 가격이다. 그런데 실제로 가장 많이 팔린 건 컴퓨터 제조사들이 각자 대충 만드는 번들판이었다.
번들판의 경우 디스켓이나 CD같은 저장 매체는 컴퓨터 제조사에서 준비하고, ID 테크놀로지는 그저 활성화키가 담긴 인증서만 발행해주는 방식이었다. 그렇기에 개당 단가가 싸지고, 대량 구매를 할 경우 커다란 할인 혜택도 주어진다.
덕분에 거의 1억 달러 정도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런데 할인이 꼭 나쁜 건 아니어서, 원가로만 받았다면 저렇게 큰 매출 자체가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레밍턴의 발표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그도 그럴 것이 신생 사업부가 많은 ID 그룹에서 억 단위 매출과 수익을 내는 건 손에 꼽을 만 한 일이니 말이다. 그래서 유재원도 기립 박수 행렬에 동참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아쉬운 점이라면 ID 테크놀로지의 최대 자금줄은 ID 오피스가 마지막이었다는 점이다. 94년 말 출시 예정인 ID 오피스 4.0에 대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돈이 나갈 일만 남았다.
그도 그럴 것이 ID 테크놀로지는 돈을 벌어들이는 사업이 아니라 미래 먹거리를 개발하는 데 방점이 찍힌 사업체였던 탓이다.
모바일 프로세서 개발팀을 비롯해 라이트닝 볼트, 디스플레이 기술 연구소는 물론 실리콘밸리의 유망한 벤처기업도 거느리고 있는데, 라이트닝 볼트를 제외하고는 뚜렷한 성과는 나지 않았다.
플래그쉽 스토어의 재고 관리 시스템과 바코드 리더기 등등을 결합한 POS기기 사업도 한국을 제외하면 지지부진했고, 여러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필요한 ERP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SI 사업부문도 미미했다. 그나마 한국에서 유재원의 인맥으로 유의미한 실적이 나오긴 했다. 유경 그룹에 POS기기와 택배 관리 시스템을 납품했고, TG 모바일에 이동통신 시스템과 고객관리 시스템을 넣었다.
그렇다고 장래가 불투명한 건 아니다. TG 모바일이 ID 그룹의 시스템으로 성공 운영만 된다면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번호표 뽑고 기다릴 잠재 고객은 줄을 설 테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뉴욕의 데이터센터 건설 사업이 추가 되었습니다. 인텔의 HPC컴퓨터 1만 대 규모로, 사업비로 약 2천만 달러가 집행되었습니다. 앞으로 우리 그룹의 미 동부 인터넷 사업을 펼치는 데 있어 훌륭한 전진 기지가 될 것입니다.”
마지막 멘트가 나오자 다시 한 번 박수가 터졌다.
ID 테크놀로지가 거느리고 있는 사업이 많은 만큼, 발표 시간도 길었다. 시간을 보니 거의 30분은 된 것 같다. 하지만 지루함은 전혀 없었다.
유재원도 자기가 일을 만들어놓고 잊어버리고 있었던 걸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돈이 여기저기 뿌려지고 있긴 한데, 적자는 아니었다. ID 오피스의 놀라운 판매 신장 덕에 ID 테크놀로지의 93년도 결산은 5천만 달러 정도의 흑자다.
유재원은 플래그쉽 스토어와 ID 오피스로 열심히 돈을 벌어서 2/3은 다시 재투자 된다고 간편히 생각했다. 덕분에 ID 디스플레이도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막대한 수익을 내줄테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음은 ID 인베스먼트의 빈센트 그린힐 사장입니다.”
ID 테크놀로지의 다음이라면 당연히 ID 인베스트먼트다.
테크놀로지와 인베스트먼트는 ID 그룹을 받치는 양대 축과 같았고, 그룹 내의 위상도 대단했다. 다만 수천 명에 이르는 직원 수를 자랑하는 테크놀로지에 비해 인베스트먼트의 직원은 수백 명에 지나자 않았다. 게다가 주요 활동 무대는 동부 맨해튼이었기에, 서부에 대부분의 사업장이 있는 ID 그룹에서 독립구단 취급이었다.
“안녕하세요? ID 인베스트먼트 빈센트 그린힐입니다.”
덕분에 빈센트 그린힐이 단상에 올라 인사를 했는데도 박수의 크기는 레밍턴 사장보단 작았다.
빈센트 그린힐은 개의치 않았다.
자신도 회장인 유재원이나 레밍턴 사장 빼고는 다 낯선 사람들이니, 저들도 본인이 낯설게 느껴질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지금의 발표가 끝나면 반응은 180도 달라질 거라고 확신한다.
“저는 레밍턴 사장님처럼 컴퓨터를 잘 다루진 못합니다. 그래서 이번 발표 준비를 위해서 제 비서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벨포트 군입니다.”
빈센트는 비서인 벨포트도 소개했다.
오늘 행사를 위해서 빈센트 그린힐은 소수의 수행원을과 함께 샌프란시스코까지 날아왔다. 수행원 중 에이스가 바로 벨포트라는 젊은이였다.
어제 밤 도착했다고 하니, 아직 여독이 남아 있을 텐데 둘 다 생기가 넘쳤다.
벨포트야 30대 극초반의 나이였기에 피로는 잠깐 눈만 붙이고 일어나도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던 빈센트 그린힐까지도 나이 대를 무색할 만큼 정정해보였다.
유재원이 빈센트 그린힐을 배려해 장기 임대한 비즈니스 제트기를 보내준 것도 있을 테지만, 제일 큰 이유는 ID 인베스트먼트라는 거대한 투자 은행을 맡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일 것이다.
빈센트 그린힐 본인도 SEC의 중개업자로 한평생을 살다가 은퇴를 했는데, 이렇게 다시 부활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더구나 손대는 것마다 대박이 터지니 하루하루가 너무도 즐거웠다.
“현재 ID 인베스트먼트는 총 68억 달러의 투자금을 IT기업과 천연 자원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투자 중입니다.”
유재원과 함께 오래하다 보니 이제는 스타일도 유재원을 닮아가는 빈센트 그린힐이었다. 바로 처음부터 본론으로 들어갔다.
미팅 룸에 약간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그도 그럴 것이 ID 인베스트먼트가 무려 68억 달러를 운용 중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이들이 제법 되었던 탓이다.
작년부터 시작된 제3차 투자로 명명된 투자는 유재원이 일본에서 대박을 터트린 후, 컴캐스트 인수나 여러 사업에 투자하고 남은 개인 재산 40억 달러와 한국에서 투자자를 모집한 20억 달러를 더해, 총 60억 달러로 시작했었다.
투자된 섹터는 빈센트 그린힐이 발표한 것처럼 IT와 자원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분야였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한 지급준비금으로 10억 달러를 남겨두고, 나머지 50억 달러를 모두 투자 중이었는데 주식 시장의 호조 덕에 벌써 수익금이 10%를 훌쩍 넘었다.
ID 인베스트먼트의 첫 투자였던 유가나 두 번째 투자인 닛케이지수와 비교하면 수익률은 낮지만 수익금액만 보면 무시할 수는 없다. 더구나 투자금액이 커질수록 큰 수익을 내는 게 어려워지는데도 ID 인베스트먼트는 순항을 넘어 쾌속 행진 중이다.
재미있는 건 한국보다 월스트리트에서의 평가가 더 좋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원금의 몇 배다 나오는 대박 수익률을 터트린 게 두 번이나 있어서, 이번에도 그만큼 기댓값이 올라간 상태인데, 겨우 20% 정도의 수익률이니 너무 낮아 보였던 탓이다.
반면 웬만한 투자 상품은 다 개발이 끝나버린 월스트리트에서는 단기에 20%나 올린 ID 인베스트먼트의 수익률은 그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수치였다.
IBM부터 시스코, 오라클과 같은 IT 대형주가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버크셔 해서웨이, 가이코, 엑손, 모빌과 같은 자원이나 보험, 투자 회사에도 적잖은 투자를 했다.
종목만 보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잡탕인데도 수익률이 대단했다.
이렇게 시작부터 한 방에 커다란 임팩트를 주니 빈센트 그린힐에 대한 집중도가 확 올라갔다.
“다음은 신일본투자은행의 현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분위기에 만족한 빈센트 그린힐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이에 맞춰 벨포트가 컴퓨터를 조작해 슬라이드를 넘겼다. 그러자 일본 지도를 배경으로 온갖 기업들의 로고가 숭숭 떠올랐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과 후원 쿠폰도 감사합니다~!!!
오늘은 참으로 고마운 광복절이네요.
이날이 오기까지 신명을 다하신 순국선열께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
휴일 잘 보내시고, 목요일 자정에 다시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