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86 인터넷 전쟁 =========================================================================
서울 본사에서 보고를 모두 들은 유재원은 곧장 테헤란로의 TG 빌딩으로 옮겼다.
역시나 입구에서부터 환대가 있었고, 곧장 최상층에 있는 이용권 사장의 집무실로 안내 되었다.
“볼 때마다 젊어지시는 거 같아요.”
푹신한 소파에 마주앉은 유재원은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작은 칭찬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사실이기도 했다. 온라인으로는 자주 이야기를 하는 사이였지만, 실제 보는 건 거의 1년만이다. 그 정도면 살짝 주름 하나가 늘어날 만도 한데, 이용권의 얼굴은 탱탱했다.
유재원의 말에 이용권은 손거울을 들어 제 얼굴을 살폈다.
“진짜? 내가 보기에 그대론데 말이지. 너까지 그러는 거 보면 좀 달라지긴 했나보다. 사실 요즘처럼 살맛나는 날은 또 없었거든.”
TG 컴퓨터는 프리미엄급 컴퓨터 시장을 휩쓰는 중이었고, TG 모바일은 조만간 시범 서비스를 시작해도 될 만큼 빠르게 구축 중이었다. 컴퓨터는 돈을 긁어모으는 중이었고, 모바일은 그렇게 긁어모은 돈을 물 쓰듯 쓰고 있지만, 이용권은 걱정이 하나도 없었다.
이동통신 서비스를 준비하면서 알게 된 건데, 서비스가 시작만 되길 기다리는 잠재적 소비자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나왔다.
5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설비 투자자금을 회수하고, 이익을 볼 수 있을 거라는 무시무시한 시장조사 보고서도 여러 개가 올라왔다.
심지어 서울에 투자한 부동산 가격도 매일 상승 중이었다. 테헤란로의 TG 빌딩은 물론 여기저기 사놓은 땅과 건물의 시세는 불과 몇 년 사이에 두 배 가까이 올랐다.
“네가 보내준 휴대폰도 엄청나더라.”
이용권으로부터 유재원이 만든 휴대폰의 칭찬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테스트를 한다고 모두 실무진에게 보낸 상태였지만, 며칠간 직접 사용해 보기도 했다.
ID 그룹의 일반적인 제품들처럼 디자인부터 성능까지 다른 전자회사들의 물건과는 확실히 한 차원 더 높았다.
“특히 조그만 다이얼패드로 한글 입력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을 줄은 몰랐네.”
“대신 속도가 좀 느리죠.”
“느려도 배우기 쉬우니 IT기기가 낯선 어르신들에겐 기존의 것보다 훨씬 낫더구나.”
2바이트 언어 입력기 부분에서 ID 그룹은 세계를 평정했다.
한글은 물론 일본과 중국 그리고 독자적인 2바이트 문자를 사용하는 지역은 컴퓨터에 자국어를 사용할 때, ID 오피스 언어 입력기가 표준이 되었다. 모바일 분야에서도 입력기의 통일은 노리는 유재원은 처음부터 끝판왕급 입력기를 만들었다.
이른바 세종코드다.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휴대폰용 언어 입력기는 휴대폰 제조사마다 모두 달랐다. 때로는 이걸 가지고 커다란 특허 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덕분에 유재원은 마스터 플랜을 준비하면서 휴대폰 언어입력기 부분도 공을 들였다.
쓸데없이 언어 입력기로 시간과 인력이 낭비되지 않도록 아예 끝판왕급을 만들고 공개해서 낭비를 줄이기 위함이다.
당연히 특허를 등록했지만, 일성전자 같은 경쟁 기업에도 사용을 허가할 생각이다. 전생에 들인 노력이 아깝지 않은 건 아니지만, 크게 보면 공개가 이익이다.
자판이 통일되면 사용자들이 기기 변경하는 데 망설임이 줄어든다. 그러면 유재원이 만드는 휴대폰을 선택할 이들도 그만큼 늘어나는 것이다. 처음엔 타사 기기를 선택한 사람이 다음번 기기변경을 할 때 자신이 만든 폰을 최우선적으로 선택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오만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유재원은 자신 있다. 길가는 누군가를 잡고 휴대폰하면 물어보면 곧 자신의 작품이 떠오르게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그나저나 요금제는 윤곽이 나왔나요?”
유재원이 TG를 찾은 건 소떼 방북을 위한 스페셜한 선물을 수령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TG 모바일 출범에 앞서 가장 중요한 요금제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음, 아직 확정한 건 아니다. 대신 용역조사 결과 보고서는 나왔다.”
이용권은 미리 준비하고 있던 책자 형태로 제본된 보고서 한 부를 유재원에게 전해줬다.
“잡다한 데이터는 너에게는 의미가 없을 테니, 맨 마지막 부분을 보면 된다.”
이용권의 말에 유재원은 보고서를 맨 뒤부터 봤다.
결론 부분에서 요금제의 구체적인 내용이 나왔다. 사용량이 0이더라도 기본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고, 그 액수는 1만 원이 넘었다. 그리고 통화료는 10초 단위로 책정하는 게 바람직하고, 10초당 20원 수준의 요금이 적당하다고 되어 있다. 데이터 사용료의 경우에도 1KB당 10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요금을 제안했다.
또한, 이용자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 무료 음성 통화 시간을 제공하는 별도의 요금제도 제안해놓긴 했는데, 당연히 기본료보다 비싼 금액을 책정했다.
한국에 PCS가 첫 출시되었을 때의 요금제와 비슷한 수준이었고, 데이터 통신에 대한 몰이해도 심각했다.
“엄청 비싸네요.”
“그, 그러냐?”
이용권은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덕분에 비싸다는 유재원의 한 마디에 얼굴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동통신 사업은 독과점이었다. 현재 시점에서 TG 모바일과 신세기통신 둘만이 있었고, 비슷한 수준의 요금을 책정하자는 암묵적인 논의도 마련된 상태였다. 그러니 통신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용역조사의 결과가 나오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음성 통화료도 좀 비싼 거 같긴 한데, 기본 제공되는 분량이 있으니 적당하다고 봐요. 그런데 데이터 요금이 너무 비싸요.”
“데이터 요금?”
“네, 우리 ID 그룹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잖아요.
유재원의 설명에 이용권은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꺼내들고 데이터 요금제 부분을 살피기 시작했다.
TG 모바일의 경영권은 이용권에게 있지만, 유재원도 49%의 지분을 가진 만큼 무시할 수 없었다. 게다가 TG는 ID 그룹과 긴밀한 관계를 넘어 거의 동맹과도 같은 수준이었다. 만에 하나 TG 그룹이 ID와 척을 진다면 당장 내년 매출은 반의 반 토막이 날 수도 있다.
TG의 훌륭한 캐시카우가 되어 주는 컴퓨터 분야가 다 날아가 버리니 결코 엄살이 아니다.
“모바일 데이터 통신은 ID 그룹의 다음 먹거리거든요. 그런데 1KB당 10원씩 책정하면 비싸서 누가 사용이나 하겠어요?”
한국의 인터넷 인프라는 세계 최고다.
현재도 그 업적은 유지되고 있다. 비록 속으론 딴 마음을 먹고 시작한 일이지만, 세계 최초로 정보고속도로 사업을 시작했고, 지금은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서울부터 부산까지, 그리고 주요 대도시에 광케이블이 깔렸고, 태평양 해저 광케이블과도 연결을 마쳤다. 광케이블과 연결된 라우터가 업그레이드만 되면 언제든 메가, 기가 단위로 대역폭을 확장할 수 있다.
이렇게 끝내주는 유선 인프라가 무선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전적으로 이동통신사의 잘못이다.
이동통신 초기의 극악한 데이터 통신을 유재원은 떠올리기도 싫었다. 각 통신사가 운영하는 포털 사이트가 있고, 단말기에는 거기에 바로 접속할 수 있는 단축버튼이 떡하니 박혀 있는데, 그걸 잘못 누르면 데이터통신비 폭탄이 떨어진다.
1KB에 10원이란 말도 안 되는 요금제 때문이다. 이런 요금제라면 천하의 유재원이라도 모바일 인터넷을 쓰기에 껄끄럽다. 이메일 하나만 봐도 100원은 순식간에 날아가고, ID 톡으로 이미지 파일이나 문서 파일을 받으면 몇 백, 몇 천 원이 사라진다.
만에 하나 동영상 스트리밍이 저도 모르게 재생된다면, 그 날은 집안 기둥뿌리 하나 날아가는 날이다.
“그, 그래도 보고서에 따르면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할 사람이 없다고 한다. 재원이 네가 만든 휴대폰은 LCD도 큼직해서 전자 우편이나 메신저 사용이 가능할 테지만, 다른 회사들 제품은 LCD 창이 없는 것도 많다. 소수의 사용자를 위해 특별한 서비스를 해주려면 그만큼 비용도 높아지고, 요금도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게 자연스러운 이치 아니겠니?”
“아닌데요.”
포털 단축버튼 누르기 무서워지고, 그런 인식이 사용자 대다수에게 깔리게 되면 유재원은 매우 곤란해진다.
“인터넷이 특별해지면 안 됩니다. 그냥 통화를 하는 것처럼 인터넷도 쉽게 접속해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차피 장비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은 고정적이잖아요.”
무선 통신 중계기의 운영비는 저렴하다. 안정적인 전원을 공급하는 게 제일 중요할 뿐이다. 단지 통신 중계기에 사용할 무선 주파수 사용료, 중계기를 설치하는 땅값 그리고 정부의 허가를 얻는 데 얻는 비용이 어마어마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준비 비용은 이미 지출된 상태였고, 유재원도 TG 모바일에 출자금을 대면서 그 부담을 함께 나눠서 졌다.
“기간망 사용료가 부담이라면 경감해드릴 수 있어요.”
무엇보다 유재원은 기간망을 가진 데이콤에도 경영에 참가할 수 있으니, TG 모바일에 부담을 더욱 낮춰줄 수 있다.
“음성 통화처럼 기본요금에 무료로 제공되는 데이터를 주고, 그 데이터를 다 사용하면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매기면 될 거예요.”
현재 시점에서는 1KB에 1원 정도면 적당할 것 같다.
현재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쓸 수 있는 건 이메일을 사용한다거나, 넥스트컴에서 뉴스를 본다거나, 게시판을 열람하는 정도였다. 모두 텍스트 기반이니 1KB에 1원이라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나중에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나 대용량 모바일 게임 등이 대중화되는 때가 오면 요금 조정을 해야겠지만, 지금은 1KB에 1원 정도면 괜찮을 거 같네요.”
유재원의 말에 이용권은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앞에 앉은 사람이 유재원이 아니었다면 그건 너무 헐값이라는 소리가 나왔을 거다. 1원이면 공짜나 다름이 없는 가격이니 말이다. 보통 이러면 땅 파서 장사할 거냐고 몰아붙였을 텐데 유재원에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냐? 알겠다. 최대한 참고하마.”
결국 이용권은 별다른 항변도 못하고 항복하고 말았다. 음성통화요금을 10초당 1원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겠지만, 당장은 사용자가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데이터 요금이라면 그다지 큰 타격은 아니었다.
“그러면, 이제 스페셜 에디션을 만들러 가야지. 보드는 잘 가져왔니?”
진땀을 뺀 이용권은 살짝 틈이 보이자 화제 전환을 시도했다. 계속 이동통신을 주제로 이야기했다간 곳간이 다 털릴 것만 같았던 탓이다.
“네, 제가 누군가요? 특별하게 만들어 왔습니다!”
유재원은 이용권의 과장된 몸짓에서 그 의도가 뻔히 보였지만 짐짓 넘어가 줬다. 데이터 요금제를 이전과 다르게 바꾼 것만 해도 충분한 진전이었다. 게다가 뉴에그2 스페셜 에디션도 요금제만큼 중요한 것이기에 유재원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다고 TG의 공장에 까지 갈 건 아니었다.
TG 빌딩 1층으로 내려가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이용권은 유재원의 열성 지지자였고, 추종자였다. 그렇기에 유재원의 방식을 최대한 따르려고 했는데, 그것이 1층에 플래그쉽 스토어를 차리는 것이었다. 예전에도 직영점이 있긴 했다. 그런데 매장을 꾸며 놓는 건 삼보 시절 대리점과 비슷했다. 그걸 세련된 감각의 ID 플래그쉽 스토어 스타일로 바꾼 것이다.
크게 보면 인테리어 하나를 바꾼 것인데도, 반응은 매우 좋았다. 매출이 크게 느는 것은 물론이고, 구매력 넘치는 유동인구가 많아지면서 주변의 상권까지도 발전하는 시너지 효과가 일어났을 정도다.
하여튼 1층 스토어 매장 안쪽에 조립시설이 있었고, 거기에 소떼 방북 기념 스페셜 에디션을 위한 부품들이 다 준비된 상태였다.
유재원은 김대석에게 신호를 줬고, 김대석은 처음부터 보물처럼 들고 다녔던 007가방 선반 위에 놓고 잠금을 풀었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열린 007가방에는 메인보드가 담겨 있어 있었다.
“그게 특별판 보드니? 딱히 달라진 건 없어 보이네?”
“컴퓨터 부품이 다 거기서 거기죠.”
이용권은 스페셜 에디션이라고 보드도 스페셜한 뭔가를 기대했던 모양이다. 다른 액세서리라면 금과 보석으로 치장해서 스페셜 판이라고 낼 수도 있을 거다. 그렇지만 컴퓨터는 그런 게 통용되진 않는다.
억지로 한다면 케이스 같은 외장 부품에 금을 바르거나 보석을 박을 수도 있지만, 그래봐야 컴퓨터일 뿐이다.
“대신 최상급으로 도배를 했어요. 안정성도 검증했고요. 총리 님 선물인데, 사용 중에 다운이라도 되면 얼마나 망신이에요.”
“하긴, 김일성이 컴퓨터를 하다가 멈추면 분위기 살벌하겠다. 그런데 반도체 칩이라면 다 똑같은 거 아니니?”
이용권은 북한의 독재자인 김일성을 이름만 불렀다.
주석이라는 공식 명칭이 있긴 했는데 텔레비전이나 뉴스에서도 제대로 붙여 주는 경우는 드물었고, 이용권에서 보듯 일반인들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일부 진보 계열 신문에선 직책이 붙여 나오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좋게 봐주는 사람들도 드물었다. 유재원에겐 좀 낯선 일이었지만, 시대상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아이고, 차이가 좀 있어요. 컴퓨터 회사 사장님이 이걸 모르시면 안 되는데.”
하나의 설계도, 하나의 웨이퍼에서 똑같이 양산된 칩이지만, 성능은 미묘하게 다르다. 그것은 반도체의 회로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화학적 성질을 이용하기에 칩마다 회로의 질이 제각각 다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수율이라는 게 생겨났다.
인텔을 비롯한 여러 반도체 회사에서 수율의 의미는 웨이퍼 하나에서 얼마나 많은 정상 동작하는 칩이 나오는 지 따지는 것이었다. 일정 성능만 나오면 다 합격이다. 반면 유재원과 같이 사용자의 입장에선 제조사가 정상 작동을 보증하는 칩 안에서도 수율이 갈린다고 말한다.
그것은 성능에 기준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어떤 칩은 제조사가 인정한 클록에서만 칼 같이 동작하는 반면, 어떤 건 보다 높은 클록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한다. 지금이야 오버클록이 활성화되지 않아서 이런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드물지만, 나중엔 오버클록이 잘 된다는 것도 판매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될 정도다.
하여튼 유재원은 스페셜 에디션의 메인보드에 들어갈 CPU부터 메모리나 DPS칩, 랜카드 등을 설치할 때 공들여 선별했다.
CPU의 경우엔 인텔의 최상급 모델이었고, 1천 개 패키지 중에 제일 성능이 좋은 걸 뽑았다. 랜카드 역시 저가형 1Mbps짜리가 아닌 연구소에서나 쓰는 최신형 100Mbps짜리를 달았다. 물론 가장 중요한 랜카드의 펌웨어에 정교한 루트킷을 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유재원의 준비는 이뿐만이 아니다.
김대석이 메인보드를 넘겨주자 대기하고 있던 TG의 엔지니어들이 조립을 시작했다. 밥만 먹고 컴퓨터만 조립하는 사람들이라 정확하고도 빠르게 조립을 끝냈다.
디자인이 훌륭하면 분해나 조립은 불편해진다는 건 만고의 진리였다. 뉴에그2 역시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분해도 쉽지 않고, 조립도 어려운 편인데 이들은 쉽게 끝냈다.
모든 준비를 끝낸 유재원은 전원을 켰다.
익숙한 안드로이드 로봇 로고가 나왔고, 곧 바탕화면이 나타났다. 그러더니 처음 안드로이드를 설치한 PC에서만 볼 수 있는 웰컴 페이지로 전환되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튜토리얼 같은 것으로 간단한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몇 가지 설정을 해주는 화면이다.
“응? 북한말이네?”
화면을 유심히 보던 이용권이 말했다.
맞다. 안드로이드의 장점은 컴퓨터를 자기 나라 말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사람은 일본어로, 중국 사람은 한자를 선택할 수 있다.
북한도 예외일 수가 없다.
북한의 표준어는 문화어라고 하는데, 유재원은 안드로이드의 문화어 작업을 하고 설치해놓았다. 완벽한 건 아니다. 웰컴 페이지를 비롯해 바탕화면과 주로 사용하는 파일 관리자, 인터넷 웹 브라우저의 메뉴 항목 정도만 바꾸어 놓았다.
미국에서 북한말 전문가를 찾아보려 했는데, 도저히 나오지 않아서 기억의 저장소에 있는 최신판 조선말대사전을 더듬어 가며 문화어 작업을 손수 했던 탓이다.
시간이 많이 드는 지루한 작업이었다. 루트킷을 만드는 시간보다 문화어 작업을 하는 시간이 길었을 정도다.
한 사람을 위해 이런 작업을 해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더구나 이걸로 호감을 사면 좋을 텐데, 김 씨 일가들이 선물 받은 뉴에그2를 직접 사용할 건지 확인할 수 없다. 켜보지도 않으면 무용지물 아니겠는가.
루트킷도 비슷했다.
유재원은 루트킷을 만들긴 했지만 큰 기대는 않는다. 핵폭탄 활성화 암호라던가, 북한군의 동향, 김 씨 일가의 재산 목록 같은 중요한 정보를 선물 받은 PC에 저장한다는 건 비상식적이니 말이다.
대신 기대하는 건 김 씨 일가의 속사정을 알 수 있는 일기라던가 검색어 같은 개인 정보였다. 특히 검색어에 대한 기대가 컸다. 여론조작범들 말고는 검색사이트에 거짓 검색어를 넣는 사람은 없을 거 아니겠는가.
한 나라의 지도자 심리 상태나 취향을 알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정보였다. 더욱이 북한은 1인 독재 나라이니 초특급 정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됐다.”
완성된 뉴에그2 스페셜 에디션은 부수기재와 함께 즉각 포장이 되었다. 상자 디자인이 바뀌진 않았다. 대신 93 방북 기념이라는 문구와 제작번호 01/01이라는 매우 심플한 시리얼번호가 부여되었다. 전명헌이 요구했던 유재원의 사인도 넣었다. 그렇다고 컴퓨터 본체에 사인을 한 건 아니고, 스페셜판 인증서에 적당한 선물용 문구와 함께 사인을 넣었다.
“바로 갈 거지?”
“네, 시간이 없어서요.”
“그래. 출국 전에 한 번 더 보자꾸나.”
“네, 고맙습니다.”
간단한 작별 인사를 마친 유재원은 곧장 총리 공관으로 출동했다.
안타깝게도 그곳에서 전명헌을 만나진 못했다. 방북이 코앞으로 오면서 준비해야 할 것들이 어마어마했다. 청와대에서 김 대통령과 수시로 대화도 했고, 통일부와 안기부로부터 브리핑도 열심히 들으셔야 했다.
유재원은 스페셜 에디션만 넘기고 돌아와야 했는데, 그날 저녁 전명헌으로부터 고맙다는 짧은 전화 덕에 안심이 되었다.
시간은 흘렀다.
11월 5일이 되었고, 전명헌의 역사적인 소떼 방북이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 생중계 되었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기대가 컸던 태풍 종달이가 우리나라 근처도 못 와보고 쓸려 가버렸네요.
태풍이 올라와서 열돔도 깨뜨려 주고, 시원한 비와 바람도 뿌려 줄거라고 기대가 컸는데 실망입니다.
얼른 가을이 되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