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52 테크노피아 1993 =========================
다양한 각도에서 스케치를 다 그린 유재원은 이번엔 내부 설계까지 시작했다.
내부 설계는 대강 할 수 없었으니 오토데스크 사의 캐드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마우스의 섬세한 터치가 중요한 일반 그래픽 프로그램과는 달리 유재원처럼 재능이 없는 사람도 일단 설계도는 만들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도구였다.
“가격만 좀 저렴하면 더 고마운데 말이지.”
유재원의 투덜거림처럼 가격은 무척이나 비쌌다. 최근 안드로이드용으로 출시된 캐드 R13의 가격은 1,230달러였다.
ID 테크놀로지가 출시한 소프트웨어 중 제일 비싼 ID 오피스보다 숫자 0이 하나 더 붙어 있는 가격이었다. 다만 무작정 높은 가격을 붙인 건 아니었다. 개발 비용이 상당했지만, 잠재적 구매자 숫자는 건물이나 플랜트 설계자로 한정된 소프트웨어다. 반면 캐드 프로그램을 이용한 설계로 올릴 부가가치는 상당했으니 높은 가격을 매긴 건 상식적인 결론이었다.
대신 대학교나 학생, 학원에는 0이 하나 빠진 가격으로 싸게 공급한다.
학교 때부터 오토데스크 캐드를 사용하게 만들면 취직을 해서도 오토데스크를 사용할 테니, 가장 확실한 잠재적 고객 확보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건 우리 노하우인데.”
재미있는 건 ID 테크놀로지가 ID 오피스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학교에 무상 공급 혹은 초염가 시작하니 다들 따라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토데스크라는 회사도 마찬가지로 ID 테크놀로지의 공격적인 아카데미 마케팅을 시작하자 보고 배웠다.
그런데도 유재원도 10달러의 할인도 없이 원가 그대로 1,230달러를 주고 구매해서 설치해야 했다.
상업적 용도로 사용하는 자들에겐 10달러의 할인도 없기 때문이다. 유재원은 스탠퍼드 대학생이긴 했지만, ID 그룹 회장이란 직책이 더 먼저였던 탓이다.
물론 유재원의 주머니에서 나간 건 아니고, 회삿돈으로 사긴 했다. 그래 봐야 왼쪽 주머니에 있는 돈이나 오른쪽 주머니에 있는 돈이나 다 자기 돈인지라 속이 쓰린 건 사실이었다.
“우리도 캐드 프로그램을 확 만들어 버려?”
유재원의 기준에서 봤을 때 캐드 R13의 수준은 개선할 여지가 어마어마하게 많은 상태다. 수백 명에 달하는 우수한 프로그래머를 보유한 ID 그룹이니 캐드 R13보다 더 좋은 설계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게다가 3D 라이브러리 개발도 주도하고 있으니, 캐드 프로그램과 결합하면 시너지 효과도 장난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벌여 놓은 일이 많아서 당장 신규 프로젝트를 수행하기엔 여력이 살짝 모자라는 점이다. 100일마다 한 번씩 내는 안드로이드 패치 만드는 일은 항상 현재 진행형이었고, 동영상편집 프로그램에 3D 게임엔진 제작도 막바지에 이르러서 가용 인력이 바닥난 상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이거 설계부터 먼저 하자.”
ID 테크놀로지가 캐드 시장까지 진출하면 다 해 먹는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프로그램의 수준이 유재원의 기준선까지 올라오는 데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필요하면 본인이 만든다는 생각은 여전히 강한 유재원이니 신규 인력을 고용해서라도 최대한 이른 시간에 차세대 캐드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하고, 태블릿 PC의 설계에 집중했다.
그렇게 3일이 지났다.
연필로 그리는 스케치는 금방 끝났지만, 컴퓨터로 설계 도면을 그리는 일은 만만찮은 작업이었다. 물론 아예 백지상태에서 시작했다면 3일이 아닌 몇 달이 걸릴 수도 있는 작업이었다. 머릿속에 설계도부터 실물의 이미지까지 확실히 자리하고 있는 유재원이었기에 3일 만에 설계를 끝낼 수 있었다.
“음, 설계도만 봐도 상당한 괴작이네.”
문제는 두께였다.
쉘 북용 메인 보드를 사용했고, 스피커처럼 필요 없는 부품은 과감하게 제거해버렸다. 그럼에도 가장 두꺼운 중심 부분의 두께가 3cm를 넘었다. 그나마 엣지 부분은 최대한 얇게 해서 1.5cm 정도로 만들 수 있었다.
대각선 길이는 12인치였고, 예상 무게는 2.5kg이다. 이렇게 무거운 걸 태블릿 PC라고 하면 21세기 사람들은 모두 포복절도를 할 것 같다. 더구나 이건 컴퓨터 안에서 만들어진 설계도인데, 실제 만들어 보면 뜯어고쳐야 할 부분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하드웨어는 일단 되는대로 만들어 봐야지.”
중요한 건 소프트웨어 아니겠는가.
그나마 컴퓨터의 성능이 대폭 상향되었기에 유재원이 원하는 인터페이스나 비주얼은 금방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유재원은 PC용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모바일용 그리고 터치 스크린 인터페이스로 개조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하는 터라, 완성된 설계도는 바로 라이트닝 볼트 사의 마이클 볼트 사장에게 전송했다.
메일 하나만 달랑 보낸 건 아니고, 유재원이 생각하는 디자인 콘셉트부터 설계도까지 태블릿 PC의 모든 것을 담은 문서도 동봉했다.
라이트닝 볼트는 ID 테크놀로지가 거느린 벤처 기업 중 하나로 전기자전거를 만드는 곳이었지만, 수작업으로 뭐든 만들 수 있는 공작소 역할도 하는 곳이기도 했다. 최근엔 모델1을 단종했고, 지금은 모델2를 설계 중인데, 전기자전거 제작이 시급한 과제는 아니었기에 편한 마음으로 일을 맡길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유재원은 김대석에게도 똑같은 메일을 보냈다.
김대석이 할 일은 태블릿 PC 제작에 필요한 부품을 조달해서 라이트닝 볼트 사에 보내주는 역할이다.
아무리 손재주가 좋은 마이클 볼트 사장이지만, 무에서 유를 만들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니 LCD 패널, 터치스크린, 메인보드, 리튬배터리 등등의 주요 부품은 김대석이 조달해주는 것이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해당 부품은 대부분 ID 테크놀로지 산하에 있는 기업들이 만들고 있는 제품들이니 전화 한 통이면 미국까지 배달시킬 수 있다.
꼬르륵.
무지막지한 집중력도 체력이 받쳐줘야 지속할 수 있는 일인가보다. 이메일을 보낸 직후부터 한창 모니터에 집중하던 유재원은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에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고개를 돌려 보니 서쪽 하늘에 짙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해가 길어진 초여름이니, 저녁 6시쯤 된 모양이다.
“회장님, 저녁 드실 시간입니다.”
때마침 김대석이 서재의 문을 두드렸다.
일단 작업하던 걸 모두 저장한 다음, 식당으로 나가보니 얼큰한 소갈비 찜을 메인으로 소고기뭇국을 비롯한 한정식이 한 상 차려져 있었다.
밥그릇은 3개다.
유재원과 김대석 그리고 오현지의 몫이다. 웬 오현지냐 싶지만, 이 상을 차린 사람이 바로 오현지였기 때문이다.
오현지가 미국에 오기 전까지는 보통 외식이었다. 가까운 호텔로 가서 양식 코스를 먹거나 한식이 생각날 땐, 한국 식당으로 갔다. 나가기 귀찮을 땐 우유에 시리얼을 넣어서 먹었다.
억만장자의 식단치고는 완전히 엉망이다.
유재원의 식성이 그다지 까다롭지 않았고, 식탐이나 미식의 기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배고프면 챙겨 먹을 뿐이다. 따로 챙겨 먹는 건 딱 하나 단백질 보충제였다. 여전히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은 헬스를 하는 중이었는데, 슈트핏이 잘 나오는 자잘한 근육을 단련하는 데 보충제는 필수였던 탓이다.
이러한 유재원의 패턴이 달라진 건 오현지가 미국에 오고 나서부터다.
김대석은 종종 저녁까지도 유재원과 함께 먹고 퇴근했는데, 혼자 저녁을 먹을 오현지가 안돼 보여서 함께 먹었다. 그러다가 한식을 먹으러 갔을 때 오현지가 먼저 자기가 밥을 하겠다고 했다.
방문했던 한식당은 미국에서 오래 지냈던 재미교포 1세가 하던 곳이었는데, 미국식과 많이 섞여서 맛이 좀 이상했던 탓이다. 한인이 많이 있는 LA라면 대안으로 삼을 한국 식당을 쉽게 찾을 수 있겠지만, 실리콘밸리에선 어려웠다.
본인의 의지도 강하기도 했고, 이상한 한식에 질린 유재원은 혹시나 하는 심정에 오현지에게 맡겨 봤는데, 놀랍게도 어머니 손맛과 상당히 일치하는 맛이 나왔다.
이후로 한식을 먹는 수요일과 금요일은 오현지가 밥을 준비하는 것으로 되었다. 당연히 식재료값도 모두 유재원이 부담했고, 오현지의 일당도 일류 호텔 수석 쉐프의 출장 서비스에 비견될 만큼 챙겨주었다.
한국식 사고방식이 강한 오현지였던 탓에 처음엔 출장비를 받는 걸 거부했지만, 그러면 나가서 먹겠다고 하는 유재원의 말에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그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달곰하면서도 매콤한 육즙과 쫄깃한 식감의 갈비찜은 순식간에 뼈만 남기고 유재원의 뱃속으로 사라졌고, 다른 밑반찬도 훌륭했다.
특히 혼자 먹는 저녁이 아니라서 밥맛이 더욱 좋았다. 그렇게 즐거운 저녁 식사를 마치고 뒷정리도 함께 한 후에, 김대석과 오현지는 퇴근했다.
“뉴스는 봐야지.”
혼자가 된 유재원은 바로 서재로 갈까 하다가 거실로 나와서 텔레비전을 켰다.
속도만 따진다면 넥스트컴에서 뉴스 페이지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정보의 양까지 고려한다면 영상이 함께 나오는 텔레비전이 전해주는 게 훨씬 풍부했다.
텔레비전을 켜자 바로 나오는 건 폭스뉴스였다.
보수적인 폭스뉴스의 논조는 유재원의 취향은 아니었지만, 재미로 따지면 CNN보다 폭스뉴스가 월등했다.
“아직도 유나바머 타령인가?”
서서히 밝아진 텔레비전 화면에는 유나바머의 심볼이라 할 수 있는 보잉 선글라스를 착용한 몽타주가 걸려 있었다.
국제적인 이슈로는 미국과 북한이 핵 문제 관련해 뉴욕에서 고위급 회담이 진행 중이었다. 현재는 원래의 역사 그대로 4차까지 진행되었는데, 미국인들이 보기에 북한 문제는 먼 나라의 이야기에 불과했다.
게다가 유재원이 미리 초를 친 덕에 북한이 핵으로 국제사회에서 어그로를 예전만큼 끌지 못한 탓에 살짝 맥이 빠지기도 했다. 반면 미국 내에서는 유나바머만큼의 자극적인 이슈는 아직 없었다.
검거할 때부터 브레이킹 뉴스를 전하던 매스컴들은 이제 유나바머의 일생은 물론 수학과 교수까지 했던 자가 어째서 폭탄 테러리스트가 되었는지 팠다. 그것도 이제 약발이 다 떨어진 상태였는데, 무슨 할 말이 더 남았는지 궁금해졌다.
-그러면 여기서 의문 한가지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노란색 콧수염이 인상적인 아나운서가 때마침 비장의 카드를 꺼낸다는 식으로 무겁게 말을 시작했다.
-6년째 제자리 상태였던 유나바머의 TF팀이였습니다. 그런데 침묵에서 깨어난 유나바머가 다시 소포 폭탄을 보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급습했지요. 이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요? 무능했던 그 친구들에게 형사 콜롬보의 영혼이라도 빙의가 됐던 것일까요?
-이제부터 폭스뉴스 단독보도입니다! 채널 고정하세요.
잔뜩 변죽을 올리던 아나운서의 채널 고정이라는 멘트와 함께 광고가 쏟아졌다.
볼만 하면 광고가 터지는 건 여전했다. 평소 같으면 바로 CNN으로 채널을 돌렸을 유재원이지만 이번엔 참고 기다렸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말이다.
-폭스뉴스입니다. 믿을만한 제보에 따르면 이번 유나바머 사건의 결정적 단서를 찾아낸 FBI TF팀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텔레비전에 귀를 기울이던 유재원의 표정이 묘해졌다.
-유재원! ID 그룹을 창업해 MS까지 잡아먹으며 PC 운영체제 시장을 평정해버린 최연소 억만장자이자 수학계 7대 난제 중 하나인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으로 만들어버린 그 희대의 천재가 유나바머 검거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합니다.
유재원은 두 눈을 껌벅였다.
유나바머의 소포 폭탄이 유재원에게 배달된 건 비밀은 아니었다. 실리콘 밸리를 떠들썩하게 만든 빅뉴스였고, 덕분에 사방팔방에서 안부 전화가 왔다. 당연히 직접 유재원을 찾아와 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오죽하면 관심받으려고 자작극을 펼쳤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반면 유나바머 TF팀에 수사 협조 제의를 했던 건 비밀이었다. 유나바머 TF팀이나 유재원이나 이게 밖으로 알려져서 좋을 건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FBI의 상급 부서로의 보고는 정상적으로 이뤄졌다고 알고 있었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지만, 이건 너무 빠르네.”
유재원이 유나바머 TF팀과 협조해 범인을 잡았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ID 그룹 안에서는 레밍턴, 앨런, 최강욱과 김대석 그리고 데이터센터 소장 정도만 알았고, 나머지는 유나바머 TF팀 중에 문서 분석팀과 스키너 팀장이 전부다.
이들 중에 입이 무척이나 싼 사람이 있는 게 분명했다. 당연히 ID 그룹 사람들이 아닌 유나바머 TF팀 쪽 사람들에게 심증이 쏠렸다.
레밍턴부터 데이터센터 소장까지는 이해관계가 매우 단순하고 충성심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식구들이지만, 유나바머 TF팀은 모래알처럼 중구난방이었다. 이들 중에 방송사와 꿍짝이 맞아 유재원의 이름을 밝힌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따로 있습니다! 유재원 회장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죠? 컴퓨터! 그렇습니다. 유재원 회장이 유나바머의 결정적 단서를 찾은 건 바로 컴퓨터를 통한 데이터 분석이라고 합니다.
-컴퓨터 데이터 분석이라. 대단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겠군요. 동시에 걱정이기도 합니다. 지금이야 유나바머를 찾았지만, 나중엔 그걸로 무얼 찾을 수 있을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혹시나 하는 말이지만, 운영체제 속에 백도어라도 설치되어 있는 지 누가 알겠습니까? 이번 유나바머 검거도 그 백도어를 이용해 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두 아나운서의 대담이 계속될수록 가관이었다.
유재원이 마치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모아다가 불법적으로 사용할 거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폭스뉴스 특성이 보수적 바탕 위에 자극적이기만 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사실 확인도 없이 묻지마식 비약을 심하게 펼쳤다.
“보도하기 전에 문의나 해보고 하던가.”
폭스뉴스의 ID 그룹 취재가 있었으면 분명 유재원에게 통지가 왔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까지도 유재원의 이메일이나 ID 톡에는 관련 보고가 단 한 건도 없었다. 오히려 폭스뉴스의 보도를 본 당직자들이 관련 내용을 스크랩한 게시물이 올라오는 게 보였다.
“흠, 어쩌지?”
폭스뉴스가 엉터리이긴 해도 전국구 방송이었다. 그러니 당장 내일부터 이와 관련된 이야기로 한바탕 떠들썩해질 것은 자명했다.
마음 같아선 본인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단언하고 싶었다.
실상은 폭스뉴스와는 정반대였으니 말이다. ID 테크놀로지가 내는 제품만큼 개인정보 보호에 앞장서는 곳이 없다. 넥스트컴 회원 가입을 할 때도 최소한의 정보만 받는다. 이름과 주소, 이메일이 전부다.
이름과 주소를 받는 건 사용자가 넥스트컴의 유료 서비스를 이용했을 때, 사용료를 받아내기 위한 지로 용지 발송을 위해서였다. 무료 가입자라면 이메일 인증 하나로 충분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역시 자기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ID와 비밀번호만 생성하면 끝이다.
유나바머의 결정적 단서를 포착해낸 빅데이터에서도 불법적으로 수집된 것은 없었다. 애초에 논문이라는 게 남들 보라고 공개적으로 쓰는 학술적 출판물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나설 것도 아니네.”
유재원은 생각해볼수록 자신이 적극적으로 나설 일은 아니라는 것에 확신이 들었다.
빅데이터 분석에 대해선 유나바머 TF팀에서 알아서 해명할 일이었고, ID 그룹이나 유재원에 그런 시스템이 존재하냐고 문의가 들어온다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또한, 이번 폭스뉴스와 같이 묻지 마 보도에 간해선 그룹 법무실이 나서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는데 따르릉 하고 벨 소리가 울렸다.
“아, 앨런 실장님.”
전화를 받아 보니 유재원의 생각을 읽은 듯 법무실장인 앨런의 전화였다. 당연히 용무는 조금 전 보도된 폭스뉴스였다.
-당장 폭스뉴스에 소송을 걸겠습니다! 전미를 공포로 떨게 한 폭탄 테러범을 잡아 줬더니, 이제는 회장님을 파렴치한 스토커로 몰고 있는 건 절대 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앨런은 평소 유재원이 들어본 적 없는 뜨거운 분노를 토해냈다.
“알겠어요. 그러면 앨런 실장님이 이번 건은 처리해주세요.”
언론과의 소송전이라니, 살짝 망설여지긴 했지만 이쯤 해서 한 번은 존재감을 드러내 주는 게 맞는 것 같았다.
며칠 후.
폭스뉴스 보도를 시작으로 개인정보에 관한 논란이 심해지면서 ID 테크놀로지는 그 이슈 중심에 섰다.
ID 그룹의 대응은 정석적이었다. 고객 대응부서는 문의 전화에 친절히 응대하면서 불안해하는 사용자들을 안심시켰고, 법무팀에선 허위 보도를 했던 폭스티비에 정정 보도를 요청하면서 일전을 예고했다. 정정 보도를 하지 않으면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했고, 폭스뉴스에선 얼마든지 해보라는 투였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재원은 엄중한 경호를 받으며 집을 나섰다. 이젠 경호 단계를 낮춰도 될 것 같은데, 레밍턴은 아직도 요지부동이었다.
하여튼, 원래의 일정은 터치 인터페이스 제작과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모바일용 튜닝 작업이었다. 여기에 USB 확장포트의 설계 작업도 빼먹을 수 없다. 칩의 설계부터 포트의 모양까지 모두 유재원이 할 일이었으니 일에만 집중하려고 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스케줄이 하나 생겼다.
웬만한 건 그냥 무시하려고 했고 충분히 할 수 있는 유재원이지만, 상대는 CIA였다. 그것도 CIA에서 서열 6위인 과학기술본부장이 직접 실리콘밸리로 날아왔다고 했으니 유재원도 움직여주기로 했다.
CIA 과학기술본부장의 용무는 당연히 빅데이터 분석기 도입 건이었다.
원래 빅데이터 분석기 사업은 레밍턴 사장이 주관하고 있었다. 협상은 몇 가지 문제를 제외하고는 순조로웠다.
그런데 며칠전 폭스뉴스로 인해서 변수가 발생한 모양이고, 덕분에 엉덩이 무거운 CIA 과학기술본부장이 실리콘밸리까지 행차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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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드디어 빅이벤트가 있는 날이네요.
하루 종일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제발 한반도가 새로운 도약을 시작할 변곡점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