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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246화 (246/1,007)

00246  New Experience  =========================================================================

소포의 배달 속도는 물류의 발전 단계를 보여주는 확실한 바로 미터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엔 택배라는 신종 소포 배달 서비스가 생겨났다. 유재원도 33%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유경 식품의 자회사, 유경 택배였다.

유경 택배의 시작은 닭과 식용유 등의 치킨 재료를 전국 가맹점에 빠르게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물류 시스템이 근원이었다.

생닭을 쓰는 게 유경 치킨만의 맛의 비법이었다. 그러니 유경 식품은 별도의 외부 물류망을 쓰는 게 아니라, 자기 상품만 빠르게 배송할 수 있는 광역 배송망을 먼저 만들었다. 만들고 나니 혼자만 쓰기에 아까워졌다.

이런 상태에서 유재원의 가벼운 아이디어인 택배 서비스가 전해졌고, 유경 식품의 사장인 류준식은 아이디어를 받자마자 바로 일을 벌였다. 이를 통해 광역 배송망을 중심으로 인근의 시골 도시까지 뻗어 나가는 모세혈관과 같은 망이 구축되었다.

광역 배송망은 유경 식품이 직접 고용했고, 고객으로부터 물품을 수거 하거나 배달하는 택배원은 박스차가 있는 이들과 사업자 계약을 통해 만들어졌다.

중요한 전산 시스템은 당연히 한국 ID 테크놀로지의 컨설팅을 받아서 구축되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21세기 초반의 택배 시스템과 조금의 품질 차이도 없다.

이를 통해 한국에서는 유경 택배를 선택한다면 빠르면 바로 다음 날에 물품을 받을 수 있다. 다만 도서 산간 지역의 경우 홈 to 홈 서비스는 불가능하고, 시내로 찾으러 와야 했다.

유경 택배의 돌풍을 보고 슬슬 택배업에 뛰어들겠다고 계산기 두드려 보는 대기업이 상당수였다.

한국이 이렇게 유경 택배를 시작으로 물류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면, 미국은 아직도 구식의 체계였다.

USPS라는 국영 우편사업체가 아직도 엄청난 지분을 가지고 있는데, 국영기업인 만큼 광범위한 배송망이 큰 장점이다. 또한, 소포도 우표를 여러 장 사서 붙이는 것으로 얼마든지 배송할 수 있다. 단점은 배달 속도다.

USPS의 로고는 독수리지만, 실제 우편물이나 택배가 도착하는 속도는 거북이나 다름이 없다.

레드먼드에서 집으로 돌아온 유재원에게 온 소포도 발송한 지는 일주일은 된 소포였다. 어제 회사로 날아왔고, 회사에서는 일반적인 우편물처리 절차에 따라 유재원의 집으로 다시 보냈다.

ID 그룹처럼 거대한 조직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서신이나 소포가 무척이나 많았다. 그래서 이를 별도로 처리하는 부서도 따로 만들어 둔 상태다.

당연히 유재원 앞으로 온 우편물은 특별히 관리된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적 인지도를 가진 유재원 앞으로 쏟아지는 우편물은 적어도 수십 통은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 투자를 원하는 사람들의 사업 계획서나 제 딴엔 기똥차다고 생각하는 아이템을 담고 있다. 일부는 팬레터도 있다. 실리콘밸리의 록스타와 같은 위치였기에, 실제로 애정을 담아 편지나 선물을 보내오는 팬들도 상당했다.

이상한 소포도 그렇게 유재원 앞으로 온 팬레터와 사업 계획서에 섞여서 유재원의 집으로 보내졌다.

“대박이네!”

운이 좋았다.

운이 좋다는 말은 비서인 김대석을 향한 말이었다. 유재원이 레드먼드에 출장을 나가는 바람에, 수행 비서인 김대석도 당연히 동행하게 되었다. 만약 출장이 없었더라면, 평소 루틴대로 김대석이 먼저 유재원의 우편물을 개봉했을 것이다.

수행비서의 임무 중 하나가, 유재원에게 온 우편물을 먼저 살펴보고 분류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유재원이 출장을 가버리는 바람에, 유재원에게 온 우편물들이 한 박스에 담겼고 그게 쌓이다 보니 집으로 배송되었다.

레드먼드에서 샌프란시스코에 온 유재원은 신혼의 깨소금이 쏟아지는 김대석을 배려해서 먼저 집으로 보냈다. 평소엔 집까지 따라와서 본인의 일을 다 했겠지만, 신혼이라는 특별한 상황 덕에 김대석은 조기 퇴근을 감행할 수 있었다.

만약 끝까지 따라온 김대석이 평소 했던 것처럼 우편물을 분리한다고 먼저 개봉했고, 의문의 소포까지도 뜯어 봤다면.

“폭발했겠지.”

그렇다.

유재원 앞으로 온 의문의 소포는 폭발물이었다.

사람도 많고, 땅도 넓은 미국은 온갖 범죄도 횡횡한다.

유재원은 샌프란시스코, 그것도 실리콘밸리에 사는 덕에 치안이 문제라는 걸 느끼지 못했지만, 가까운 LA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명씩 총기 사고로 사람이 죽어 나갔다. 단적으로 몇 년 전의 일이긴 하지만 흑인폭동이 일어나기도 했으니 범죄가 심하다는 건 전혀 과장이 아니다.

당연히 높은 범죄율만큼이나 연쇄 살인마도 종종 나타난다. 그리고 오늘 유재원은 오늘 연쇄 살인마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엄청난 존재와 마주치게 된 것이다.

유나바머.

소포로 자작한 폭탄을 보내서 스물두 명의 중경상자와 세 명의 사망자를 만들어낸 폭탄 살인마다.

사망자는 3명이니 적게 죽였네 싶지만, 도구가 소포 폭탄이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무방비 상태로 소포를 뜯어보다가 폭발에 휘말렸다. 폭발물의 완성도도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져서 살아 있더라도 전신 화상은 기본이 손이나 발이 잘려나가고, 실명까지 되는 일은 빈번했다.

살아도 죽는 것보다 못한 상태이다.

“내가 어그로를 너무 많이 끌었나?”

유나바머가 보낸 소포를 알아보고 순식간에 멀찍이 물러난 유재원이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유나바머가 희생자를 물색하는 방법은 사회의 유명인이고, 동시에 산업화나 자동화에 적극적인 사람이었다.

시작은 대학교 교수나 항공사였고, 다음엔 대기업의 중역이나 임협 회장이 그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찬찬히 생각해보니 자신은 유나바머의 취향에 딱 맞는 대상이었다.

그가 증오하는 건 산업화와 자동화를 이끄는 자들이다. 컴퓨터 기술을 고도화하는 ID 그룹은 이러한 분야의 첨병이나 다름이 없었다. 게다가 최근엔 HPC 엑스포 같은 행사로 텔레비전과 같은 매체에 빈번히 나오기도 했다.

만약 유재원이 멋도 모르고 소포를 개봉했다면, 폭발에 휘말려 죽거나 사지절단과 같은 회복할 수 없는 중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상황에서 유재원이 의문의 소포가 유나바머가 보낸 폭탄이라고 알아볼 수 있었던 건 모두 전생에 즐겨 보았던 미국 드라마 덕이었다.

넷플릭스.

전생에 유재원과 평생을 함께한 좋은 친구였다.

매년 이용료가 상승했다는 것만 빼면, 정액으로 넷플릭스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넷플릭스 특유의 색채가 도드라지는 게 흠이자 장점인데, 취향을 제법 타기 때문이다. 스타일에 맞기만 하면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유재원이 바로 그랬다.

대부분 영상이 유재원의 취향을 저격했다. 그중에서도 즐겨 봤던 것은 범죄 수사물이었다. 특히 사이코패스나 연쇄 살인마가 등장하는 걸 즐겨봤다. 보통 한국이라면 각색을 하기 마련이지만, 넷플릭스가 만든 수사물은 그런 것 없었다.

이름부터 본명이었고, 범죄 방식도 실제를 최대한 재현했다. 심지어 배우도 실존 인물과 매우 닮은 사람을 써서, 그냥 보면 실제 상황이라고 착각할 만했다. 그렇게 즐겨 본 범죄물 중에 유나바머를 다룬 것이 있었다.

유나바머를 밀착해서 취재한 것처럼 그의 범죄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보여주었다. 동시에 유나바머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FBI나 테스크포스로 꾸려진 범죄심리분석관의 노력도 비등하게 등장했다.

“신기하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유재원은 이번엔 신기함이 몰려왔다.

전생에 즐겨 보던 드라마의 주인공(?)과 이런 식으로 연결될지 조금도 예상치 못했다. 심지어 마스터플랜을 세울 때도 범죄자는 그다지 고려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실수 같았다.

유나바머만 봐도 그랬다. 이자의 활동 시기는 1985년부터 1987년이 1차였고, 이후 6년간 침묵했다. 그리고 올해 1993년부터 다시 활동에 시작한다. 1996년 4월에 검거되기까지 수십 개의 폭탄을 보냈다.

이렇게 보면 2차 활동을 시작한 유나바머의 표적으로 유재원 본인이 된 것이 크게 보면 나쁜 건 아닌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유재원은 유나바머의 본명은 물론이고, 현재 거주지까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드라마에선 유나바머의 인적사항은 일말의 숨김도 없이 고스란히 공개되었다. 그것들은 떠올리기 위해 기억의 궁전까지 들어가 볼 필요도 없다. 그만큼 유재원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받은 게 있으면 돌려주는 게 인지상정이지!”

폭탄을 받았으니 핵폭탄으로 돌려주는 건 유재원에겐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유재원은 의지뿐만이 아니라 능력도 있었다. 당장 경호팀 소속 대원을 이끌고 유나바머 사냥을 시작해도 무방하다.

한국이라면 어림없는 일이겠지만, 미국은 시민이 총을 가질 권리가 헌법으로 보장된 나라다. 유재원의 경호원 중에는 허가를 통해 기관단총이나 돌격소총을 보유한 이들도 있다. 여기에 방탄조끼, 방탄 방패 등의 안정 장구류만 추가하면 정규군 수준의 1개 소대를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어떻게 하지.”

유재원은 폭탄 소포를 보며 고민에 빠졌다.

본인의 취향은 당연히 경호팀을 이끌고 직접 타격하는 것이다. 하지만 저걸 어떻게 다뤄야 본인에게 최대의 이익이 될지 따져보는 것도 중요했다.

고민이 길어졌다.

일반적 수준의 고민이라면 10분 안에 끝났지만, 이번엔 사안의 중대성이 엄청났기에 그 시간도 길어졌다.

결론은 1시간쯤 후에나 나왔다.

마음에 결심이 선 유재원은 전화기를 들고, 번호를 눌렀다. FBI 유나바머 TF팀의 전화번호였다.

다음 날.

-폭탄마 유나바머, 이번엔 ID 그룹 회장을 노렸다!

-ID 그룹 회장 유재원의 집에 유나바머 폭탄 소포 배달!

-유재원 회장, 신변 이상무! 개봉 전 이상함을 느끼고 FBI에 신고!

아침부터 샌프란시스코의 방송과 신문이 떠들썩해졌다.

폭탄 살인마 유나바머가 6년의 침묵을 깨고 활동한 것도 대단한 뉴스였는데, 그가 찍은 목표가 현재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유명한 경영자이자 학생(?)인 유재원이라는 것에 대해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비단 실리콘밸리뿐만이 아니라,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브레이킹뉴스로 전해질 만큼, 유재원의 영향력은 엄청났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아침에 일어나 첫 뉴스를 보던 사람 중에 기사가 진짜인지 방송국에 확인 전화를 해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비단 방송국뿐만이 아니라 FBI에서도 난리였다. 게다가 유재원이 건 첫 전화를 받았던 FBI TF팀에서는 처음엔 장난전화인 줄 알고 우습게 넘기려고 했다. 유나바머가 활동을 멈춘 지 6년이나 되어서 TF팀도 침체 상태였던 탓이다. 심지어 야간 근무를 서던 이는 팀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런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뒤늦게 유재원의 정체를 알고 화들짝 놀란 이들이 유재원의 집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폭탄 소포를 확인하고 유나바머의 활동 재개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축소되던 TF팀에 바로 인원이 복귀했고, 조사를 시작했다. 물론 그 움직임은 철저히 보안에 붙여졌다.

괜히 유나바머를 자극해서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일이 워낙 부산스럽게 일어나 매스컴에서 눈치를 챘다는 것이다. 덕분에 지금 유재원의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긴급 속보가 끊이지 않고 타전되었다.

덕분에 유재원은 부모님과 지인들에게서 걸려오는 안부 전화 세례를 받았다. 걱정 가득한 그들을 안심시키는 데, 상당한 시간을 쏟아야 했다. 오죽하면 백악관에서도 전화가 올 정도였다.

클린턴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1열에 초대될 만큼 돈독한 사이였기에, 비서관을 시작으로 결국 클린턴 대통령의 안부 전화까지 받았다.

“응! 나는 괜찮아! 약속도 문제없어. 흐흐, 내가 누구야? 딱 보고 유나바머의 소포라는 걸 알아차렸지. 응! 손도 안 대고 신고부터 했어. 폭탄도 잘 회수되었고, 지금은 진술 중이야.”

지금은 티파니의 전화였다.

티파니도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유재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만 다른 일을 하다가 뉴스를 본 거라서 제일 늦게 연결이 되었다.

“회장님. TF팀 팀장이 도착했습니다.”

김대석의 조심스러운 전언에 유재원은 있다가 보자며 통화를 종료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유재원을 향해 똑바로 걸어오는 중년의 남자가 있었다.

김대석이 말한 유나바머 TF팀 팀장인 모양이다.

사실 팀장이 직접 유재원을 찾아올 필요는 없었다. 현장 수사는 현장 요원들이 하는 것이고, 폭탄 소포 분석은 분석실에서 하면 되니 말이다. 한데 유나바머가 6년 만에 활동을 재개해 노린 타겟이 유재원이라는 게 문제였다.

미국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 챙길 만큼 중요한 인물이 폭탄 살인마의 표적이 되었다는 건 그들에게 있어 엄청난 압력이었다.

어라?

팀장이란 사람의 모습에서 유재원은 뭔가 익숙한 느낌이다.

“오랜만입니다.”

그 역시도 마찬가지인 듯, 유재원에게 인사를 건넸다.

“네, 오랜만이네요. 월터 스키너 요원님.”

예전 LA에서 노숙자 연쇄 살인 사건 때, 유재원에게 협조를 요청하러 왔던 FBI의 요원이 유나바머의 TF팀 팀장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살인 용의자는 범죄 행각이 담긴 일기를 키보드워리어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작성했었는데, 여기에 걸린 암호를 FBI의 첨단범죄수사부에서 풀지를 못했다. 덕분에 스키너 요원이 직접 유재원을 찾아와 협조를 요청했었다.

그때를 마지막으로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다. 어제 유나바머의 폭탄이 오지 않았더라면 앞으로도 없었을 것이다.

반갑긴 했는데, 의문이었다.

드라마에서 봤을 때 유나바머 TF팀은 다른 사람이 이끌었던 탓이다. 아무래도 본인과 한 번 얽힌 것이 월터 스키너 요원에게 큰 변수로 작동한 모양이다.

물론 좋은 쪽으로.

유나바머 TF팀 팀장이라면 FBI에서도 상당히 높은 자리였다. 조직 안팎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그렇지만 월터 스키너 요원 표정은 전보다 더 나빠졌다. 그때는 무표정하고 차가운 표정 정도였는데, 지금은 냉기가 풀풀 날렸다.

아무래도 유나바머 수사의 진척이 없다 보니 스트레스만 잔뜩 받는 모양이었다. 물론 이건 유재원의 개인적 짐작일 따름이다. 아침밥도 못 먹고 출동해서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고, 아니면 개인적인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요원, 아니 이젠 팀장이 된 스키너와 유재원은 짧게 악수를 하고 마주 앉았다.

“전처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그럼요, 오후에 약속이 있으니 빨리 끝내주시면 고맙죠.”

유나바머의 소포를 받게 된 경위와 어떻게 개봉하지도 않고 폭탄인지 알고 FBI, 그것도 일반 신고 전화가 아니라 유나바머 TF팀 전화기로 전화를 하게 되었는지 물어보고 유재원은 말해 줄 수 있는 한도에서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평소 연쇄 살인마에 관해 관심이 있었고, 특히 폭탄 소포를 이용한 유나바머는 인상적이어서 잘 기억하고 있었다는 시나리오를 풀었다. 취향이 그렇다는 데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게다가 기억의 궁전으로 한 번 본 건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니 스키너 팀장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사전 조사를 마치고 슬슬 파장 분위가 생겼을 때, 유재원이 한 마디를 더 보탰다.

“혹시 유나바머 수사에 컴퓨터 분석을 동원할 생각이 있으면 연락 주세요. ID 그룹이 총력을 다해 도와드리죠.”

“컴퓨터 분석이라는 게 뭡니까?”

FBI는 프로파일링 기법도 이제 겨우 현장에 접목하는 단계였다. CSI의 수준도 겨우 지문이나 우표, 폭발물 잔해를 뒤지는 수준이다. 데이터베이스 분석과 같은 첨단 기법을 스키너 팀장이 낯설어하는 건 당연했다.

“유나바머가 남긴 모든 단서를 가지고 정부나 공공기관, 대학교 등이 생성한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해 보는 거죠. 이를테면 협박문에 나온 특이한 문장이나 주요 단어들이 있겠죠. 만에 하나 용의자가 비슷한 문체로 쓴 논문이 있다면 이를 통해 검색해서 수사 범위를 크게 좁힐 수 있을 거 아니에요. 이뿐만이 아니라 메타 데이터를 가지고 가공하는 방법도 있고요.”

유재원이 개인적으로 경호팀을 동원하지 않고 FBI에 연락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유나바머의 단서는 유재원이 완벽히 가지고 있다. 컴퓨터 분석을 동원하면서 유재원이 가진 단서를 두드러지게 띄우고, 이를 통해 유나바머를 일찍 잡아들이는 것이다.

이를 통해 FBI에게 디지털 정보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FBI가 구축할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에 ID 그룹이 참여할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결과다.

“흠. 협조 고맙습니다. 생각해보겠습니다.”

스키너 팀장은 그런 유재원을 보며 의례적인 답변을 내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잔뼈 굵은 스키너 팀장은 유재원에게 뭔가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하지만 유나바머 검거 협조를 통해 FBI의 데이터베이스 시스템 구축에도 욕심을 낸다는 걸 집어낼 수는 없었기에 의례적인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스키너 팀장과의 미팅이 끝났다. 새벽부터 떠들썩해졌던 유재원의 집도 그제야 조용해졌다.

김대석도 내보낸 유재원은 곧장 서재의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앞으로 FBI와 협조해서 유나바머 검거에 성공하는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해서다.

“이번 협력에서 가장 핵심은 IT 기술의 유용성을 보여주는 일이겠지.”

하이테크 연구소의 드론 팀에게 IT 기술과의 융합으로 어떤 시너지 효과가 나오는지 보여준 것처럼 수사에도 IT 기술이 중요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걸 코앞에서 보여주면 된다.

스키너 팀장도 드론 팀 안톤 박사가 느꼈던 만큼의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뭐, 고지식한 양반들이 잘 받아들이려나?”

스키너 팀장의 얼굴을 떠올린 유재원은 살짝 걱정되기도 했다.

설사 FBI가 유재원의 도움을 거절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FBI든 CIA든 자료의 전산화와 독자적인 전산망 구축은 피할 수 없는 대세였다. 게다가 그렇게 만들어진 전산망이 과연 넥스트컴캐스트의 기간통신망과 완전히 분리될 수 있을까?

완전폐쇄된 인터넷만 아니라면 유재원이 간접적으로 힘을 쓸 방법은 많았다.

또한, 평소의 FBI가 그랬던 것처럼 입에 넣어주는 것도 못 먹어서 유나바머 검거가 느려진다면 유재원 본인이 움직일 작정이었다.

“감히 날 노려? 죽었다고 복창해라.”

이제 와 생각해보니 오늘 사건은 운이 참 좋았다. 만약 드론 팀에서 이메일이 오지 않았다면? 평소대로 김대석이 소포를 열었을 것이고, 그러면 유재원은 평생을 함께할 동료 하나를 잃어버렸을 것이다.

유재원 개인에게도 큰 손실이었고, 이제 막 결혼한 김대석과 오현지 부부에게도 큰 불행이 되었을 것이다.

FBI가 처리하지 못하면 곧바로 경호팀을 동원해서 그의 아지트를 급습해 쥐도 새도 모르게 유나바머 사냥을 끝내버리면 된다.

유나바머에게 다시 한 번 이를 간 유재원은 키보드를 치는 속도가 한층 빨라졌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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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리플보다 깜짝 놀랐네요,. 유나바머를 예측하신 분이 계시다니!!!

참고로 유나바머가 나오긴 했지만 이 글의 장르는 분명히 회귀물입니다. 범죄나 스릴러 등으로 바뀌는 일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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