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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그룹에서 하이테크는 태생부터 조금은 특별한 조직이었다.
원래 하이테크의 목적은 러시아의 경제 위기 상황에서 핵 전문가들이 북한으로 유출되어 핵 개발에 동원되는 걸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목적이 뭔가 불순하니(?) 하이테크의 활동도 보통의 기업 집단과는 많이 달랐다.
일반적인 기업 산하의 연구기관이라면 해당 기업의 차세대 먹거리를 위한 분야에 연구 인력을 집중하고, 빠른 성과를 내기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하이테크는 기업의 먹거리보다는 소속 연구원들이 해보고 싶은 연구가 먼저였다.
러시아 학자들을 데려올 때 약속한 것이 바로 러시아에 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자유와 연구 지원이었고, 유재원은 그 약속을 철저히 지켰다.
ID 그룹의 전체 순이익 중 3% 이상을 하이테크의 순수한 연구 자금으로 지원했다. 그렇다고 뭔가 결과를 내놓으라고 닦달하지도 않았다.
덕분에 일부 임원들 사이에서는 하이테크를 두고 황금의 블랙홀이라는 말이 나왔다. 상당한 지원이 있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으니 돈을 먹어 치우는 블랙홀이라는 것이다.
유재원은 그런 임원들의 우려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예산을 줄이진 않았다. 대신 특이점에 도달하게 되면 엄청난 성과를 터트릴 테니 기대하고 있으라는 말만 했다. 대신 임원들의 일부 의견을 받아들여 지원된 예산이 횡령되거나 낭비되지 않도록 조처를 하긴 했다.
처음엔 유재원의 전폭적인 지원과 믿음이 낯설어하던 하이테크 소속 연구원과 석학들도 이제는 완전히 적응되었다.
이와 함께 하이테크의 인기는 러시아에서도 날로 높아졌다. 이제는 모스크바 하이테크의 미하일 이바노프가 스카우트하기 위에 발에 땀이 나도록 돌아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이젠 학자들이 먼저 하이테크의 문을 두드리는 실정이다.
러시아의 경제 상황은 날로 악화했지만, ID 그룹의 존재감은 몇 년 전과는 차원이 달라진 덕이었다.
그만큼 훨씬 좋은 인재들이 몰려들었고, 엄격한 심사를 통해 능력이 뛰어난 이들을 모스크바 하이테크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거기에서 다시 한 번 평가해서 최고만이 미국 레드먼드 하이테크로 올 수 있었다.
이렇게 능력 좋은 사람들을 모아놓았으니 분명 성과를 내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게 이렇게나 빨리 나올 줄은 몰랐다.
“안 되겠다. 직접 가봐야겠다.”
유재원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김대석을 찾았다.
갑자기 웬 레드먼드행이냐고 물어볼 법도 하지만, 김대석은 그런 것 없이 바로 이동을 준비했다.
“당일 스케줄입니까?”
“흠, 글쎄요. 일단 오늘은 자고 와야죠.”
시간이 애매했다. 오후인지라 지금 레드먼드로 가서, 오늘 되돌아오기엔 시간이 너무 빠듯하다. 게다가 드론의 수준에 따라서 며칠 더 묵을 수도 있다.
이에 김대석은 비행기 표와 호텔도 예약했다.
1년 전이라면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야 했을 테지만, 지금은 간단히 컴퓨터에 앉아서 처리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IT의 첨단을 달리는 곳이 실리콘밸리다. 그렇기에 항공권부터 렌터카까지 앉은 자리에서 컴퓨터 하나로 해결할 수준에 이르렀다.
물론 마법처럼 모든 것이 다 되는 건 아니다.
항공권이나 호텔, 렌터카 업체 등등은 온라인 업체와 협력하거나 온라인 시스템을 도입한 회사의 것만 가능했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김대석의 말에 유재원은 간단하게 싼 자그마한 여행용 가방 하나를 끌고 집을 나섰다. 그렇지만 드론에 대한 기대치는 최대한 낮췄다. 괜히 기대를 크게 가졌다가 막상 도착해서 실망한 모습을 보이면 하이테크 연구원들이 얼마나 실망하겠는가.
동시에 전용기에 대한 마음도 생겨났다.
앞으로 돌아다닐 일도 많은데, 표를 구한다고 온라인 예약 사이트 뒤지다가 때를 놓칠 일이 생기지 않겠는가.
혼자만 돌아다니면 여행 예약 사이트로도 충분하겠지만, 이미 딸린 식구가 많은 유재원이다. 지금도 수행비서인 김대석은 물론이고, 경호원 둘도 함께 이동 중이었다. 커다란 비즈니스의 경우엔 임원들도 함께 움직여야 하니, 그 많은 표를 바로 구하는 게 힘들 수도 있다.
“비즈니스용 비행기에 대한 견적을 한 번 내주세요. 우선순위는 안정성과 항속거리, 탑승 인원 순이고, 가격은 따지지 마세요.”
생각을 정리한 유재원이 지시를 내렸다.
유재원 일행이 워싱턴 주 레드먼드에 도착한 건 대략 3시간 후였다.
비행은 1시간 4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공항에서 비행기가 뜰 때까지 쓸데없이 낭비된 시간이 많아져서 그렇게 늦어졌다.
당일 예약했던 호텔로 가서 짐을 간단히 풀고는 바로 하이테크 연구소로 이동했다.
“회장님, 방문을 환영합니다!”
연구소 입구에 안드레 샤일로프 소장이 유재원을 영접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그의 표정에서 데자뷔가 보였다. 바로 코요테 시에 만들었던 데이터 센터를 기습 방문했을 때, 조셉 윌슨 소장이 보여줬던 긴장과 당황이 적당히 섞인 그 얼굴이다.
그도 그럴 것이 드론을 완성했다고 짧은 동영상 파일을 첨부한 보고서를 이메일로 보낸 지, 겨우 4시간 남짓 지났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회사에서 가장 높으신 양반이 떡하니 나타났다.
러시아에 있을 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높으신 양반이 현장지도를 한다고 나오면, 최소 3일 전부터는 난리가 나는 것이다. 만에 하나 국가 지도자급이 온다고 하면 한 달 전부터 영접할 준비를 했다. 심지어 그 기간도 부족했다. 책잡히는 거 하나 없도록 준비도 해야 했고, 지도자 동지에게 보여줄 자료와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 시간이 많이 필요했던 탓이다.
이메일을 전송할 때, 설마 하는 생각을 조금 하긴 했다. 하지만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며칠의 여유 시간은 있었다. 안드레 샤일로프 소장이 생각하기에 ID 그룹의 회장이라면 매일매일의 스케줄이 빡빡하게 짜여 있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이렇게 당일치기로 바로 찾아오는 건 그의 예상을 단번에 깨버리는 일이었다.
“안녕하세요, 안드레 소장님! 오랜만이죠?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네요!”
유재원은 넉살이 좋게 다가가 악수했다.
“보내주신 영상을 보고 실물이 너무도 궁금해서 참지 못하겠더라고요. 번잡한 보고 같은 건 필요 없으니 바로 현장으로 가시죠!”
전생에 군대는 물론 커다란 사업도 해본 유재원이었기에, 높은 직급의 사람이 갑자기 방문하는 게 큰 부담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처음부터 드론만 보고 갈 거라고 못을 박아 놓고 시작했다.
“예! 모시겠습니다. 그런데 조금 이동을 해야 합니다.”
“네, 괜찮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장을 풀지 않은 안드레 샤일로프 소장은 곧장 유재원을 실험실로 안내했다.
안드레 소장의 말대로 드론 팀의 실험실은 하이테크 연구동에서 제법 멀리 있는 곳에 있었다.
레드먼드 하이테크 연구소 본관에서 동쪽으로 10km만 가도 사람들의 숫자가 확 줄어든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시는 해안가에 조성되어 있었고, 동쪽은 골프장이었다. 골프장 너머로 조금만 더 들어가면 산림이 우거진 미개발지역이 있다.
드론 팀의 실험실은 그곳에 있었다.
유재원은 이동하면서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안을 기하기 위해선 실험실 안에서 날려보는 게 좋았다. 게다가 개발 초기인 지금 안정성도 떨어질 테니 바람의 영향을 조금이라도 덜 받기 위해서는 실내에서 실험하는 게 훨씬 좋았다. 그런데 이렇게 넓은 숲 속이라니.
“여깁니다.”
아, 숲 속이라는 말은 취소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숲이었는데 안으로 들어가 보니 축구장 3개 넓이의 넓은 공간이 나왔다. 심지어 밟으면 기분이 좋아질 만큼 자라난 잔디가 끝까지 깔린 곳이었다. 반면 드론 팀의 연구실은 컨테이너식 임시 건물이었다.
그나마 컨테이너 하나짜리는 아니었고, 여러 개를 쌓아서 제법 크기는 컸다. 그리고 건물 앞에는 미리 연락을 받았는지, 8명의 사람이 앞에 나와 있었다.
“드론 팀 팀장 안톤 쉬파토브 박사입니다.”
안드레 소장이 일일이 팀장과 팀원들을 유재원에게 소개해주었다. 8명 중에 러시아인은 팀장 포함 4명이었고, 나머지 반은 미국인이었다. 그렇다고 다들 백인은 아니었고 인도와 일본 등 동양계가 3명, 진짜 백인은 한 명뿐이었다.
국적이나 혈통이 완전히 제각각이지만, 팀워크는 좋은 모양이다. 연구를 시작한 지 아직 1년도 되지 않았는데, 하늘에 띄울 만큼 시제품을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반가워요. 안톤 팀장님. 팀장님 덕분에 참지 못하고 직접 오게 됐네요.”
“아, 아닙니다. 회장님 아이디어가 워낙 좋아서 쉽게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다른 연구원들도 열심히 연구 중이지요.”
안톤 팀장의 말처럼 쿼드콥터 아이디어는 유재원이 제공했다.
심지어 드론뿐만이 아니라, 미래에 큰 시장이 생겨날 아이템에 대해 아이디어 자료라고 해서 하나로 묶어 안드레 소장에게 보냈다. 그때가 하이테크 연구소가 막 가동을 시작했던 때였다. 하지만 안톤 팀장의 말처럼 엄청나게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담은 건 아니다.
아이템마다 몇 줄 안 되는 설명이 전부였다. 그냥 메모라고 해도 될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유재원의 마스터플랜에서는 상용화는 ID 테크놀로지 산하의 기업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반면 하이테크 연구소는 태생부터 조금 불순했다.
바로 북한의 핵 개발 견제였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이것은 유재원 본인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대외적으로는 돈은 되지 않지만, 꼭 해야 하는 기초 분야 연구와 첨단기술 연구였다.
쉽게 이야기하면 갑자기 스마트폰이니 드론이니 하는 걸 만들어 보이면 사람들아 다들 유재원 본인을 도깨비방망이를 가진 사람으로 볼 테니, 하이테크 연구소를 통해서 미리 기초기술부터 연구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두 가지 역할은 훌륭하게 수행 중이었다.
하이테크 연구소의 등장으로 러시아의 우수한 두뇌들의 북한행은 거의 완벽한 수준으로 차단되었고, 덕분에 북한의 핵 개발 능력은 무척이나 떨어진 상태다.
원래대로라면 지금 북한에서 열심히 핵 개발을 했을 텐데, 지금은 전문가가 없어 전정 끙끙하는 상태라고 한다.
90년대 들어 북한이 열심히 조성하고 있는 남북화해 무드는 핵 개발 난관에 봉착한 북한의 플랜 B이다.
이것도 모르고 김영삼의 문민정부는 한층 부드러워진 북한의 태도를 자신들의 치적이라고 열심히 추켜세우고 있었다. 사건의 전모를 아는 유재원은 실소를 금할 수 없을 정도다. 그래도 지금은 애교로 봐 줄 만했다.
시작부터 강도 높은 개혁을 공헌했던 문민정부는 그 말을 착착 지켜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 청산 작업의 하나로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를 결정했고, 국립중앙박물관 이전도 결정했다. 당연히 한국 국민의 열화와 같은 성원이 이어졌고, 일본에서는 다급히 총독부 건물을 자기들이 일본으로 이전해가겠다고 연락을 하기도 했다. 물론 김영삼 대통령에겐 조금도 먹히지 않는 이야기였다.
이러한 기세를 타고 최근에는 5.18 정신계승 및 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담화를 발표하며 12·12사태를 '쿠데타'로 규정하였다. 역사 청산과 동시에 군부 출신 두 대통령에게 칼을 들기 위한 사전정지작업의 일환이었다.
여기에 더해 숙군 작업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노 대통령이 임명했던 육군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을 전격 해임하고, 군부 내 사조직과 관련이 없는 이들을 전격 발탁했다. 곧이어 별들이 우수수 떨어졌는데, 그 숫자가 50개가 넘었다. 유재원이 알기에 원래는 40개 정도였는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였는지 몰라도 4명의 목이 더 날아가면서 50개를 넘겨버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별 50개 정도로는 하나회를 청산할 수 없다. 워낙 뿌리가 깊고 방대한 조직인만큼 구성원의 숫자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나회 숙청도 2차로 진행되었는데, 괜히 이번에 많이 잘랐다고 2차는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유재원은 이후의 숙군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모니터링을 해보고 있다가 시원찮으면 바로 압력을 넣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회장님?”
“아! 괜찮아요,”
김대석의 말에 유재원은 샛길로 빠져나갔던 정신을 부여잡았다. 기억의 궁전? 아니면 회귀의 부작용인지 몰라도 생각이 깊어지면 주체할 수가 없는 유재원이다. 하여 하이테크 연구소는 기대 이상으로 잘 해주고 있다.
잠시 후.
“오!”
유재원은 조그만 영상으로만 봤던 드론의 실물을 직접 볼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어째서 필드테스트 장소를 이곳에 마련했는지도 깨달았다.
이메일에 첨부된 영상에서 크기에 대한 감을 잡을 만한 것이 없었다. 그냥 바닥에 놓였던 드론이 하늘에 떠올라 호버링하는 것만 찍은 10초 분량의 동영상에는 사람도 사물도 없었다. 크기는 상대적이니 나무라도 있었으면 감을 잡았을 텐데 그런 게 하나 없었고, 덕분에 유재원은 21세기에 흔히 보았던 드론을 떠올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네요!”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건 프로펠러 하나가 50cm 정도는 나갈법한 크기였다. 쿼드콥터이니 그런 프로펠러가 4개가 묶여 있고, 프레임과 본체도 있으니 전체 크기는 1m를 쉽게 넘었다.
“헉! 이게 큰 겁니까?”
유재원의 말에 안톤 쉬파토프 박사가 헛바람을 삼키며 빠르게 되물었다.
“엄청 큰데요?”
안톤 박사는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유재원에게 공개한 시제품 1호기의 비행 성공으로 한층 자신감을 받은 그는 시제품 2호기 설계를 시작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시제품 2호기는 1호기보다 2배는 컸다. 프로펠러 하나가 1m에 이르는 크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안톤 박사는 본인이 만들고 있던 물건에 사람이 탈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탄다는 건 100kg 이상을 들어 올릴 강력한 부양력을 발휘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프로펠러의 날이 커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유재원은 반대로 작아야 한다고 하니 동공에 지진이 일어나는 건 당연했다.
아이디어를 줄 때 너무도 간소하게 줘서 일어난 사고였다. 쿼드콥터라는 단어 대신 드론이란 말을 썼다면 무인기라고 바로 인지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드론이라고 적어 줬더라도 분명 삽질은 있었을 것이다. 무인기에도 많은 종류가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이건 작동하는 거죠? 한 번 띄워 볼 수 있나요?”
유재원의 말에 안톤 박사가 바로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엔 동공의 지진 대신 이마에 굵은 땀이 나기 시작했다. 여름이 되려면 아직 두 달은 남았으니, 더위 탓은 절대 아니다.
“물론입니다. 그런데 안전을 위해서 적어도 30m쯤 뒤로 물러서야 합니다.”
30m나?
일단 유재원은 시키는 대로 따랐다.
이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을 때라서 지체했다간 사방이 깜깜해져서 비행이고 뭐고 할 수도 없게 되는 탓이다.
그렇게 거리를 띄우자 드론 팀의 연구원 넷이 움직였다. 유재원에게 보여줬던 드론을 나눠 들고 공터 가운데 놓았고, 본체의 엔진에 걸린 줄을 잡아당겨 시동을 켰다.
시동?
소리를 들어보니 전기가 아니라 초경량 휘발유 엔진을 달아 놓은 모양이다. 프로펠러 4개가 도는 것을 확인한 팀원들도 모두 안전지대까지 왔고, 안톤 박사가 RC 조종기와 같은 컨트롤러를 잡고 조종을 시작했다.
털털털 소리를 내며 돌던 엔진의 출력이 높아지면서 부웅하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강해지자 드론도 들썩거리기 시작했는데, 아직 하늘에 뜬 건 아니었다.
“으음!”
급기야 안톤 박사의 입에서 힘든 탄성이 나왔다. 그러면서 컨트롤러를 잡은 손가락을 부산히 놀리는 데, 그럴 때마다 드론이 좌우로 크게 요동쳤다.
안톤 박사가 일부러 요동치게 하는 게 아니라, 드론이 멋대로 요동을 치는 걸 컨트롤러로 제어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렇게 1분쯤 지났을까.
흔들리던 드론이 점차 안정되더니 이내 허공으로 떠올랐다. 지상으로부터 10m쯤 뜬 대형 드론은 영상에서 보았던 것처럼 허공에 잠시 부유하기 시작했다.
와아!
유재원을 제외하고 모두 탄성을 냈다. 신기록이라는 말도 나왔다. 유재원이 보기에 바닥에서 1분을 넘게 씨름하다 겨우 떠올랐는데, 그게 신기록이란다.
알고 봤더니 유재원에게 보낸 10초짜리 짧은 동영상은 일부러 그렇게 짧게 찍은 게 아니라 이제까지의 최고 기록이었단다.
이런 상황에서 유재원이 지켜보고 있다는 이유로,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한 안톤 박사의 컨트롤 덕에 비행 기록이 2배나 올라간 것이다. 게다가 비행은 아직 계속 진행 중이었으니 기록 경신이 어디까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단하네요!”
유재원도 뒤늦게 박수를 치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안톤 박사를 치켜세워주었다.
깜빡했다. 지금은 21세기가 아니라 1993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걸 빼먹으면 조금 전 비행은 너무나 시시하지만, 1993년이라는 것을 상기한다며 정말 대단한 일이다.
단적으로 저 시제품에는 비행 안전장치가 없다.
21세기 드론의 경우 사용자의 입력과는 상관없이 일단 공중에 떠서 안정성을 유지하는데, 이는 드론이 스스로 주변 환경의 변화를 감지하면서 프로펠러의 출력을 가변적으로 조절하기 때문이다.
반면 지금 나온 시제품은 4개 모터의 출력을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조절해야 한다. 마치 1차 대전 때 뛰었던 프로펠러 비행기처럼 사람이 직접 엔진의 출력을 조절하고 승강타와 방향타를 조절해야 한다.
쿠웅!
잘 날고 있던 드론이 확 뒤집히면서 잔디 바닥으로 훅 떨어졌다. 컨트롤러 조절이 조금만 삐끗해도 균형을 잃고 훅 떨어지는 것이다.
곳곳에서 탄식이 터졌다.
회장이 보는 앞에서 시제품의 결정적 결함이 드러났으니 분위기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안 되겠네요.”
급기야 유재원이 입을 열자 긴장감이 확 올랐다.
“사실 저는 드론 실물만 보고 가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요. 저도 개선 작업에 직접 참여하겠습니다!”
유재원이 생각한 드론과 많이 다른 시제품이지만, 개선의 여지는 충분했다. 물론 21세기 드론 기술 전부를 풀겠다는 건 아니다. 현재 존재하는 기술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개선을 하겠다는 이야기다.
기계식이 장치에 IT 기술이 융합되면 얼마나 무서워지는지 똑똑히 보여줘서, 드론도 일찍 만들고 하이테크 구성원들도 개안을 시켜주면 그야말로 일석이조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