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242화 (242/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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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 슈의 발표는 성공적이었다.

유재원 같은 스타일은 아니었다. 가벼운 분위기에 위트도 있고, 각종 실물 시범으로 구경거리도 풍부했던 유재원 스타일과는 정반대로 논문에 가져다 써도 될 만큼 정확한 데이터와 사진 자료로 가득했던 발표였다.

이곳 HPC 엑스포 행사장에 자발적으로 온 사람들에겐 좀 어려울 수도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유재원이 직접 리스트를 만든 VIP를 비롯해 IT 업계 관계자라면 모두 코퍼마인 공정에 대에 단박에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자료였다.

덕분에 유재원은 VIP 자리에 있는 몇몇이 몸이 들썩이는 게 보일 정도였다.

AMD의 제리 사장이나 사이릭스의 경영진 같이 인텔 호환 CPU를 만드는 제조사 임원들이 바로 주인공이었다.

당연히 CPU 업계의 절대 강자인 인텔에서도 사람이 나왔고, 비슷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사장이나 고위 임원은 아니고 개발 책임자 정도라서 급은 떨어졌다.

그렇지만 급이 떨어진다고 전략적 판단을 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이들은 모두 코퍼마인 공정이 CPU에 적용될 때, 그 파급력에 대해 예상할 수 있었다.

코퍼마인 공정을 도입한 회사와 그렇지 못한 회사의 제품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성능 차이가 벌어질 것이고, 그로 인해 시장 점유율도 완전히 뒤집힐 거라는 예상이다. 현재 절대 강자 위치를 차지한 인텔이라도 뒤처질 수밖에 없을 만큼 대단한 기술이다.

“보이시나요? 코퍼마인 공정이 적용된 미래 전자 메모리칩의 작동속도가?”

리사 슈는 이런 업계 사람들의 마음에 쐐기를 박았다.

단적으로 리사 슈가 스크린에 띄운 HPC 클래스 인증을 받은 메모리의 비약적인 성능 향상만 보면 딱 답이 나온다.

현재 펜티엄급 컴퓨터에 사용되는 메모리 규격은 72핀 메모리였다. 전송 폭은 32bit이었고, 작동속도는 80나노초다. 나노초 단위로 하니 뭔가 무척 빨라 보이는데, 익숙한 헤르츠 단위로 바꾸면 고개가 절래 흔들린다.

80나노초는 12.5MHz이라는 형편없는 속도였던 탓이다.

이런 72핀 메모리칩이 코퍼마인 공정을 통해 HPC 인증이 박히면 놀라운 변화가 생긴다. 작동속도가 기본 50MHz였고, 오버드라이브 모드라는 오버클록이 이뤄지면 66MHz까지 상승한다.

별다른 아키텍처의 변화 없이 코퍼마인 공정만 도입해도 비약적 성능 향상이 있을 거라는 유재원의 장담이 그대로 들어 맞았다. 덕분에 미래 전자 반도체 사업부 개발팀은 경악하다 못해 뒤로 넘어갔다.

메모리칩의 고밀도화, 고속화는 개발팀의 숙원과도 다름이 없었다. 그 작업을 몇 년이나 수행했지만, 그다지 성과는 없었다. 그런데 반도체 사업에 진출한 지 겨우 4개월밖에 지나지 않는 ID 테크놀로지가 이만큼 성과를 낸 것은 그들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유재원은 아직 만족한 건 아니다.

코퍼마인 공정의 잠재력은 어마어마했다. 21세기 초중반이 되어 은 공정이 나올 때까진 무적이었다. 나노 단위 미세 공정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면 작동속도가 5GHz까지는 쉽게 올라간다.

CPU뿐만이 아니라 GPU나 메모리칩에도 공통으로 적용되는 속도였기에, 비약적인 성능 향상이 있을 것이다. 이런 미래를 직접 체감한 유재원은 겨우 66MHz로는 성에 차지도 않는다.

“경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리사 슈는 시크한 표정으로 프레젠테이션을 마무리했다.

처음엔 유재원의 부탁으로 박수를 쳐주었던 객석이지만, 이번엔 유재원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객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 박수를 쳐주었다.

코퍼마인 공정 발표는 이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행사가 끝난 건 아니었다.

-다음 행사는 둠 2 마스터즈 챌린지입니다. 60분 후에 시작합니다.

일반인 대상으로 HPC의 성능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에 게임만 한 게 없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초청한 둠 2 랭커들을 가지고 작은 대회를 개최한 것이다.

랭커들을 위한 무대는 당연히 메인 스테이지에 만들어진다.

진행 요원과 ID 테크놀로지의 엔지니어들이 바로 무대 위로 올라와서 랭커를 위한 부스를 빠르게 만들었다.

정식으로 하자면 눈맵, 귀맵 차단을 위해서 완전 방음 부스를 만들어야 할 테지만, 아직 그럴 필요는 없다. 이번 대회는 1등을 뽑는 게 목적이 아니라 HPC의 성능을 제대로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기에, 그저 멀티플레이만 잘 되면 된다.

그렇다고 책상에 컴퓨터를 올려놓고 게임을 시키는 건 아니다. 최대한 21세기 프로게이머 부스를 본떠서 그럴듯한 무대를 만들었다. 1시간 안에 해내는 게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완전 일체형 PC인 뉴 에그 2를 이용했기에 시간은 충분했다.

책상과 의자를 놓고 뉴 에그 2를 설치한 다음 전원과 랜 선을 연결하는 것으로 세팅이 끝났으니 말이다.

덕분에 세팅은 빠르게 끝났다.

레밍턴에게 언제 완벽주의자 성향이 추가되었는지 몰라도, 사전 연습을 몇 차례나 반복해서 했던 덕이다. 모든 뉴 에그 2는 완벽히 작동했고, 대회용 서버도 바로 무대 뒤에 따로 만들어둔 덕에 핑 상태도 3~5ms로 나왔다.

랭커들도 바로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시스템을 점검했다.

대부분 빈손으로 올라왔지만, 일부는 자신만의 키보드와 마우스를 챙긴 사람도 있었다. 게이머 의식이 남다른 사람이었다.

‘닉네임이 페이탈리스트였나?’

목에 걸린 명찰을 보니 유재원의 짐작이 맞았다.

전 세계 랭킹 1등, 일명 둠가이라는 영광의 닉네임을 차지하기 위해 유재원과 경쟁을 했던 아이디였다. 안타깝게도 유재원은 경쟁 레이스 초반에 탈락했다. 다들 밥만 먹고 게임을 돌리는데, 유재원은 코퍼마인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랭킹전을 돌릴 짬이 사라져버린 탓이다.

아직 둠가이 타이틀을 얻은 플레이어는 없다.

랭크 1위를 했다고 타이틀을 주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1등도 하면서 동시에 킬데스 비율도 좋아야 하고, 절대적 킬 수치가 1만을 넘겨야 하는 히든 수치도 다 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저 페이탈리스트가 둠가이 타이틀에 제일 가까운 건 사실이었다.

그런 페이탈리스트는 프로 의식도 투철한지, 자신의 장비를 직접 챙겨왔다. 하긴 걸린 상금을 생각하면 그럴 만도 했다.

유재원은 이번 행사에 초청된 랭커들에게 비행기 비용을 치르고도 상당히 남을 만큼의 섭외료를 주었다.

당연히 우승 상금은 별도였다. 개인전 1위는 10만 달러, 단체전 1위는 30만 달러라는 파격적인 상금이 책정되었다.

한 번 우승으로 전문직 1년 연봉에 달하는 돈을 벌 수 있다. 심지어 2등부터 꼴등까지도 상금이 있다. 1위 만큼 파격적인 숫자는 아니어도 한 달 용돈으로 쓰기에 충분한 금액이다.

다만 변수는 수천 명의 사람 앞에서 경기하는 건 처음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랭커들에게 크나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동시에 기회이기도 했다. 여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엄청난 팬을 확보할 기회이기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실력자들인데 동기부여까지 완벽하니 랭커들의 눈에 투지가 이글거리는 건 당연했다.

“그러면 이게 최초의 E 스포츠라고 등록될 수도 있겠네?”

생각해보니 이번 대회가 E 스포츠의 태동인 것 같았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만으로도 생업이 해결된다면, 그게 바로 프로가 아니겠는가. 다만 지금은 게임도 스포츠가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지금 경기를 준비하는 랭커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먼 훗날 E 스포츠가 생겨나고 역사를 정리하다 보면 HPC 엑스포가 첫 번째로 기록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런데 참 안타까운 점은 유재원은 역사적인 첫 번째 E 스포츠 경기를 느긋하게 구경할 틈이 없다는 점이다.

랭커들의 경기가 벌어지는 동안 유재원은 할 일이 있다.

“회장님, 비즈니스 관으로 가셔야 할 시간입니다.”

김대석이 조심스럽게 다음 스케줄 알렸다.

비즈니스 관에서 기다리는 여러 반도체 업체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판의 비즈니스를 해야 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가죠.”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에게 영리 활동은 뗄 수 없는 본질과도 같은 것이었다.

앞으로 ID 그룹의 이름으로 E 스포츠를 얼마든지 이끌어갈 수 있다. 다만 돈이 있어야 좋아하는 것도 할 수 있고, 지금은 돈 벌려 가야 할 타이밍이었다.

“안녕하세요!”

유재원이 비즈니스 관에 들어서 인사를 하자 모든 이들의 시선이 확 쏠렸다.

그중에도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건 역시나 AMD의 제리 샌더스 사장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유재원에게 먼저 달려가야 하나, 원래 자리에서 기다려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제리 사장은 바로 유재원에게 달려들었다.

“발표 잘 봤습니다! 정말 놀랍더군요!”

악수를 청하면서, 온갖 칭찬을 들어 놓는 제리 사장이었다. 그러자 다른 회사의 임원들도 앞다퉈 유재원 앞으로 달려왔다.

다들 그런 건 아니었다.

이미 일찌감치 파트너 회사로 등극한 미래 전자나 ATi, 크레이티브 테크놀로지 3사는 느긋한 걸음이었다.

“작년 크리스마스이브 때, 만남이 기억나는군요! 유 회장이라면 분명 해낼 줄 알았습니다.”

제리 사장은 노련하게도 선수를 놓지 않았다.

그때 기억은 유재원도 선명했다. 본인의 장담이 현실성이 없다고 느꼈는지 형식적인 리액션을 했던 게 선명했다. 하지만 이 좋은 날 굳이 상대의 허물을 지적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코퍼마인 기술을 비싼 값에 사주실 고객이지 않은가.

“혹시 코퍼마인 기술에 대해 아직도 의구심이 있는 분 계신지요?”

“없네, 없어!”

유재원의 물음에 다들 손사래를 쳤다.

비즈니스 관에는 리사 슈가 선보였던 각종 샘플과 기술 스펙에 대한 보다 정교한 자료들이 한가득하였다.

HPC 클래스를 받은 부품으로 구성된 뉴 에그 2와 평범한 부품으로 만든 조립식 컴퓨터도 여러 대 놓여 있어서 앉은 자리에서 성능의 차이를 직접 느껴볼 수도 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코퍼마인 기술 제공은 어떤 식으로 할 건가? 설마 독점은 아니겠지?”

역시 제리 사장의 성격은 스트레이트 그 자체였다.

앞으로 IT 시장의 향배는 코퍼마인 기술의 보유 여부로 확 나뉠 것이 자명했다. 그렇기에 컴퓨터의 각 부품 회사별로 독점적 사용권을 주면 나머지는 망하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물론 ID 테크놀로지 반도체 사업부가 특허를 낸 코퍼마인 방식 말고 다른 방식으로 구리 배선 공정을 만들어낸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겠지만, 시간이라는 게 문제다.

유재원이야 4개월 만에 뚝딱 만들었지만, 다른 회사들은 몇 년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코퍼마인 특허를 내면서 유사한 특허가 발생하지 않도록 길목 요소요소를 차단하기까지 했으니 ID의 특허를 피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아니죠.”

유재원은 여러 반도체 업계를 말려 죽이려고 코퍼마인을 개발한 건 아니었다.

현재의 반도체 성능이 너무도 느려서 참을 수가 없으니 본인이 나서서 해결하겠다고 몇 년 뒤에 나올 기술을 먼저 완성한 것이다.

유재원의 바람은 반도체의 성능 향상이고, 이것이 전 세계의 수많은 소비자에게 저렴한 가격에 성능 좋은 컴퓨터가 널리 보급되는 것이다. 그래야 유재원 본인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인터넷 세상이 빨리 도래할 것이 아닌가.

독점권을 줘서 그 회사 하나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모두 망하는 건 오히려 유재원이 앞장서서 막아야 할 일이었다.

“코퍼마인 라이센스는 원하는 모든 회사에 보급할 예정입니다.”

제리 사장의 표정이 좋다가도 좋지 않았다.

만약 독점이었다면 인텔이나 사이릭스 같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업계 1위로 당당히 올라설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를 위해서라면 빚이라도 내서 라이센스를 살 생각이었다. 하지만 돈 싸움에서 져서 인텔 같은 데에 독점권이 갔다면 그건 악몽이나 다름이 없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돈은 돈대로 쓰면서도, 경쟁은 경쟁대로 해야 하니 지금 상황과 크게 달라질 건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리 사장이 독점이 없다는 것에 대해 아쉬운 소리를 했다.

“달라질 게 없다니요? 저렴한 가격에 고성능의 PC가 널리 보급되면 그만큼 PC의 수요도 폭발할 겁니다. 지금이야 한 달에 수십만 대 수준이지만, 몇 년만 지나면 매달 수백만 대가 팔리는 건 일도 아니죠. 게다가 인터넷이 보급될수록, 기업의 서버 수요도 늘어납니다. 서버는 보드 하나에 CPU 하나만 들어가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잖아요. 아마 소매시장보다 서버 시장이 훨씬 더 거대해질 거예요.”

유재원은 제리 사장의 우는 소리를 바로 반박했다.

비단 서버 시장뿐일까. 나중에 가면 인공지능을 돌린다고 어마어마한 연산력이 필요했다. 개인용 데스크톱 출하량은 줄어들지만, 인공지능 분야의 새로운 수요 폭발로 인해서 전체 CPU와 GPU의 출하량은 대폭 늘어난다.

VR 시장도 빼놓을 수 없다.

VR 기술의 표준을 놓고 수많은 싸움이 있었지만, 캡슐형으로 완성되고 나서는 수요가 폭발했다. AMD든 인텔이든 제조라인을 쉬지 않고 돌려도 몇 년 동안이나 물량 부족에 시달려야 했을 정도다.

“오, 그렇습니까?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유 회장의 장담이라면 철석같이 믿을 수 있지요. ”

이번에도 제리 사장은 폭풍 칭찬이 터졌다.

다른 점이라면 크리스마스이브에 만났을 때는 립서비스 느낌이 강하게 났지만, 이번에는 본심이 제대로 느껴진다는 이야기였다.

“저기, 잠깐만 시간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인텔의 개발팀장이었다.

메인 스테이지의 발표를 봤을 때부터 그의 표정은 완전히 넋이 나간 상태였다.

이번 발표가 얼마나 큰 기술적 진보인지 말로는 다 전할 수가 없을 정도였던 탓이다.

구리 이온을 이용해 배선을 만들면 알루미늄보다 훨씬 성능이 좋아질 거라는 건 상식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열성도 좋고, 저항도 훨씬 낮으니 말이다. 하지만 유재원이 들고나오기 전까지 성공하지 못했던 건, 구리 이온의 적정한 농도를 찾는 것, 리소그라피 공정이 끝난 반도체 패턴을 손상하지 않고 배선을 그리는 방법, 배선 작업이 끝난 후 안전하게 세척하기 위한 화학물질 찾는 등등. 수많은 난제가 있었던 탓이다.

더구나 이러한 문제가 독립적이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하나를 풀면 다른 게 꼬이는 일이 빈번히 발생한다.

인텔의 개발팀장은 웨이퍼 실물이나 완성된 반도체의 성능을 두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다면 절대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그는 발을 동동 굴렀다.

코퍼마인 기술은 진짜다. 그러니 바로 이 자리에서 라이센스를 얻지 못하면 인텔은 영원히 뒤처지게 될 거라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문제는 그를 이곳으로 보낸 상사의 반응이었다. 당장 달려와도 모자랄 판에 작동속도가 좀 빨라진 것 가지고 웬 호들갑이냐고 하니 너무도 답답했다.

그렇다고 자신이 라이센스를 살 권리도 없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이 자리에서 계약서를 쓰자는 건 아니니까요.”

유재원이 김대석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김대석은 준비한 007가방을 유재원에게 열어 보였다. 거기엔 코퍼마인 기술의 스펙을 비롯해 기존 생산라인에 기술을 적용할 경우 소요하게 될 개조 비용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문서였다.

중요한 건 뒤에 있다.

기술을 도입하고자 할 때 드는 비용에 대한 계산법도 있었다.

라이센스 비용은 당연히 종량제였다.

코퍼마인으로 생산하는 웨이퍼 숫자와 생산하는 제품에 집적된 트랜지스터의 개수로 라이센스 비용이 결정된다.

계산이 쉬운 건 당연히 정액제였다. 독점권을 주지 않더라도 업체마다 별도의 계약을 통해 라이센스 비용을 결정하고 한 방에 받으면 계산은 간단하다. 하지만 그건 유재원이 원하는 컴퓨터의 대량 보급이라는 원칙에 어긋난다.

시장에는 무한경쟁이 필수인데, 이런 식으로 계약하면 1등은 계속 1등이고, 2등은 끝까지 2등인 상황이 유지될 것이 아닌가.

업체 간 경쟁을 심화시키기 위해 유재원이 고심한 방식이 바로 생산량과 반도체 수준에 따라 라이센스 비용이 달라지는 종량제 방식이었다.

인텔과 AMD 두 업체만 놓고 봐도 효과는 확실해진다.

트랜지스터가 대량으로 집적되고, 웨이퍼도 많이 쓰는 만큼 인텔이 내야 할 비용은 많아진다. 반면 트랜지스터 숫자가 인텔에 비해 적고, 웨이퍼 숫자도 적은 AMD는 라이센스 비용이 저렴해진다.

이를 통해 AMD 제품들의 가격 경쟁력도 달라질 것이고 1위인 인텔을 넘보기도 쉬워질 것이다. 하지만 AMD의 출하량이 인텔을 넘어서는 순간이 되면 라이센스 비용도 역전될 것이고 그러면 인텔이 추격자가 되어 경쟁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다.

이러한 생산량 기반의 가변적인 가격 정책은 크레이티브 테크놀로지와 같은 소규모 업체에도 큰 도움이 된다. 기술 사용료의 부담이 적으니 공격적인 마케팅이 강해질 것이고, 그만큼 소비자들도 고음질의 사운드와 동영상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다들 카탈로그를 받고는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그려 보느라 정신이 없다. 그 와중에도 먼저 나선 이가 있었다.

“지금 바로 계약합시다!”

제리 샌더스 AMD 사장이었다.

라이센스 정책을 훑어보고는 인텔보다 자사의 포지션이 훨씬 유리하다는 걸 깨닫자마자 바로 계약을 결정했다.

이를 시작으로 여러 업체가 너도나도 계약하겠다고 아우성이었다. 답이 너무도 뻔한 상황인데 괜히 계산기 두드려 본다고 시간만 끌면 손해였다.

덕분에 유재원은 앉은 자리에서만 계약금으로 큰돈을 벌어들였다. 반도체 사업의 덩치가 거대한 만큼 계약금만 받아도 수백만 달러는 물론이고 천만 단위도 쉽게 넘어버렸다.

미소가 절로 나오는 순간이다.

그렇지만 돈을 많이 벌었다고 나오는 미소는 아니었다. 쌓이는 계약서만큼 코퍼마인 기술도 빠르게 보급된다는 의미였고, 그만큼 고성능의 제품들이 쏟아질 것이기에 절로 미소가 나왔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주말이네요.

어제 오늘 북한과 미국 때문에 마음이 심란한 분도 많이 계실테지만, 걱정 마세요. 잘 풀릴 거 같아요. 근거요? 음, 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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