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 New Experience =========================
1993년 1월 20일.
빌 클린턴의 취임식이 워싱턴 DC 국회의사당에서 열렸다. -3도까지 떨어진 추운 날씨였지만, 대통령 취임식을 직접 보겠다고 몰려든 사람들은 엄청난 숫자였다. 대충 집계된 숫자만 80만 명이라고 하니 워싱턴 DC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국회의사당 광장에 모였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취임식 행사에서 유재원의 자리는 특별했다.
“대통령 취임식 VIP라니,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취임식 참석을 위해 이동 중인 차 안에서 레밍턴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비서실장인 최강욱은 인수인계를 마치고 한국으로 휴가를 떠났고, 수행 비서인 김대석도 휴가를 줬다. 그래서 이번 일정은 레밍턴이 함께 하게 된 것이다.
“뭐, 그냥 간단히 보면 1천만 달러짜리 티켓일 뿐이죠.”
유재원은 약간은 투덜거리면서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빌 클린턴에게 쏟아진 정치후원금(슈퍼팩) 중에 가장 큰 금액을 찍은 게 ID 그룹이었다. 단독으로 1천만 달러를 해버렸으니, 2위와도 몇 배가 차이가 났다.
덕분에 유재원의 자리는 빌 클린턴 대통령이 서는 국회의사당 단상 위였고, 심지어 가장 앞줄이었다.
“어휴, 그래도 돈만 많이 있다고 설 수 있는 자리는 절대 아닙니다.”
당연한 말이었다.
대통령과 함께 서는 단상에 자리가 있다는 건 대통령과 최측근이거나, 저명한 명성을 가진 명사들, 미국의 동맹국에서 축하 사절로 파견한 고위 외교 관료들 정도였다.
당연히 한국에서 온 축하 사절단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감은 미국의 최우선동맹에 밀리고 밀렸고, 실제 자리 배정 역시나 뒷전이었다.
유재원도 명성이 떨어졌다면, 몇 줄 뒤로 밀렸을 것이다. 레밍턴의 말처럼 후원금만 많이 낸다고 앞줄을 배정하진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번 행사를 통해 미국 정부에서 유재원의 존재감이 어떤 수준인지 확실히 인증을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실제로도 유재원은 미국사람들에 어마어마한 인기와 인지도를 자랑했다. 게다가 인지도가 올라갈수록 예전에 없던 악평도 상승하기 마련인데, 유재원의 경우 특별한 관계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컴퓨터를 쓰기 위해선 그 허접한 도스 하나를 100달러가 넘는 가격을 주고 사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도스와 비견도 되지 않는 고품질의 운영체제를 헐값에 가깝게 공급 중이었다.
직접 만들거나 인수한 기업들의 사회적 활동도 뛰어났다. 샌프란시스코나 LA에서 우등생 소리 듣는 학생 중에 ID 그룹 장학금을 받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여기에 수학 7대 난제를 해결함으로써 그 명성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유재원의 후원금이 원래의 반이었다고 해도 맨 앞줄에 배정될 확률은 높았다.
어느덧 자동차는 행사장 한편에 마련된 귀빈용 보안검색대에 도착했다.
“그럼 건투를 빕니다.”
여기서 레밍턴과 유재원은 잠깐 헤어져야 했다.
아쉽게도 초청받은 건 유재원 혼자였기에, 레밍턴은 차에 남았다. 그렇다고 차 안에서 심심하게 기다리는 건 아니다. 취임식에 참석하러 온 다른 기업인들과 두루 만나면서 인맥을 다질 예정이었다.
그렇게 유재원이 참석한 빌 클린턴 대통령의 취임식 장면이 전 세계를 탔다.
공교롭게도 유재원의 자리는 대통령 선서를 하는 클린턴을 찍는 메인 카메라와 일직선 상에 자리했던 탓이다. 취임 선서 중 어떤 장면을 선택하더라도 유재원의 모습이 빠지지 않았다.
정작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유재원은 추위와 지루함 속에서 표정 관리를 하느라고 정말 힘들었다.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 국가의 운전대를 잡게 된 빌 클린턴이나 영부인 힐러리는 그야말로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일 테지만, 유재원에겐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이벤트였던 탓이다.
심지어 가장 기대했던 빌 클린턴 대통령의 취임사도 유재원이 기억의 궁전에 담아온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겨우 IT와 정보고속도로로 경제를 활성화하겠다고 한마디 나온 게 전부였다.
유재원 본인이 이미 많은 것을 바꿔 놓았으니, 적어도 정보 통신이나 인터넷을 한 번이라도 언급은 해줄 걸 기대했는데, 다른 게 하나 없으니 실망이 컸다.
그나마 취임행사 이후 열린 연회에 참석하면서 마음이 풀렸다. 앨 고어 부통령 덕이다.
대통령 부부가 입장하기 전에는 부통령인 앨 고어까지 유재원을 살뜰히 챙겨주었다. 애초에 유재원에게 호감이 있었던 앨 고어였고, 유재원도 이에 부응해서 정보 통신에 대한 비전은 물론 가장 큰 후원금까지 냈다.
덕분에 유재원은 앨 고어의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백악관 연회에 참가한 VIP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외교가의 거물들은 물론이고, 친 민주당 성향의 기업인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당연히 유재원은 모두에게 환영을 받았다.
비즈니스적으로도 좋은 파트너가 될 가능성이 크고, 그 독특한 존재감과 명성 덕에 알고 있으면 손해 볼 것 하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팬이라고 하는 분까지 여럿 있었고, 덕분에 사인도 좀 해드려야 했다.
그렇게 연회장을 휘저으며 친분을 다지고 있을 무렵.
-미합중국 대통령 빌 클린턴과 힐러리 여사께서 입장하십니다.
턱시도와 이브닝드레스로 갈아입은 클린턴 대통령 부부가 입장했다.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이제 취임 1일, 무지막지한 존재감을 뽐내는 시절이다. 게다가 백악관 연회는 민주당과 클린턴에게 우호적인 사람들로만 초청된 터라, 반응이 무척이나 좋았다.
그들은 앨 고어와 제일 먼저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각국의 대사들과 VIP들의 차례였다. 한국에는 자유롭다고 소문난 미국이지만, 격식과 의전을 차리는 건 유럽 왕실 저리 가라 하는 수준이었다.
덕분에 유재원은 기업인들 순서가 되어서야 클린턴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오, 유 회장! 참석해줘서 고맙네.”
“제가 더 영광입니다. 대통령님.”
유재원의 꼬박꼬박 말끝마다 대통령님이라 불러줬다. 기분 좋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당연히 대통령이란 소리가 나올 때마다 클린턴은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컴캐스트로 30억 달러나 투자한다지?”
“아이, 참. 넥스트컴캐스트라고 바뀐 지가 언젠데요?”
“아, 그래. 넥스트컴캐스트.”
클린턴의 오류를 힐러리가 바로 잡아 주었다. 확실히 짧은 대화 하나로 클린턴이 힐러리에게 기를 펴지 못하는 게 딱 보였다.
역시 이런 요소 때문에 스캔들이 끊이지 않은 것 같다. 마음 같아선 백악관에 입성했으니 아랫도리 간수 잘하라고 따끔한 조언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말을 한다고 먹힐 것도 아니고, 괜히 바른 소리 했다가 감정만 쌓일 것이니 그냥 입을 다물었다.
“하여튼 자네의 대대적인 투자 덕에 우리 정보통신 정책도 적극적으로 펼칠 수 있을 것이야. 한국도 했던 정보고속도로사업을 미국이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더구나 정보 통신에 강화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번 워싱턴 출장은 성공이나 다름이 없었다.
“다만 자네가 그렇게 노력했는데, 보수 정권이 또 연장되는 게 안타깝더군. ”
정보 통신만 말하고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정치가 도마 위에 올려졌다.
클린턴은 제 딴엔 위로의 말을 한다는 것이지만, 정곡을 맞은 유재원은 무척이나 아팠다. 그나마 통일 국민당이 깨지지 않고, 전명헌이 총리가 된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대통령이 된 것에 비하면 큰 성과도 아니었다.
“네, 정말 안타깝네요. 하지만 국민의 선택이니 어쩔 수 없지요. 그래도 김영삼 당선인이라면 한미 공조가 깨지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렇길 바라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고.”
본인이 각오를 다지는 게 아니라, 김영삼 당선인이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라고 하는 클린턴이었다.
국력, 그리고 국제 사회의 영향력을 보았을 때 한국이 미국에 맞춰가는 게 상식이긴 했다. 하지만 괜히 마음이 꼬이는 유재원은 그다지 곱게 들리지만은 않았다.
덕분에 유재원의 각오가 다시 새겨졌다.
한국의 행보에 미국이 보조를 맞추는 날을 만들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본인 하기에 따라 그런 날이 오는 날짜를 앞당길 수 있기에, 유재원은 다시 힘을 냈다.
며칠 후.
유재원은 오랜만에 학교에 가는 길이다.
반도체 사업부 출범에 대해 츄쳉 지도교수님께 말씀을 드리고, 차세대 반도체 공정에 대해서 산학합동 연구를 의뢰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기술 대부분은 유재원의 머릿속에서 나올 예정이라, 말이 산학협동 연구지 실제로는 대학원생들에게 현장에서 일해볼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었다.
당연히 공짜로 고급 인력을 쓰겠다는 것도 아니다. 정규직처럼은 아니지만 적잖은 임금이 제공될 것이다.
리사 슈의 제안으로 이뤄진 일이었다. 원래 유재원은 딱히 생각이 없었다. 잡다한 일을 할 사람이 필요하면 그냥 일반 직원을 고용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던 탓이다. 하지만 리사 슈는 기왕 직원을 고용한다면,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쓰는 게 낫다고 제안했다.
유재원도 동의했다.
경력자라는 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존재가 아니었다. 누구라도 초보의 단계부터 시작해서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덕분에 유재원은 오랜만에 자신의 전기자전거를 타고 스탠퍼드 대학교로 갔다.
“헤이, 빅보스! 안녕!”
막 교문을 지나서 전자공학과 건물로 가는데, 뒤에서 상큼한 목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려보니 티파니가 유재원을 향해 환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녀는 예전과 똑같았다.
이번에도 티파니는 유재원과 똑같은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겨울이라고 두꺼운 옷을 입었지만, 보석처럼 반짝이는 활력을 다 숨길 수 없어 사방으로 뿜어지고 있었다. 비단 유재원 뿐만이 아니라 강의실을 찾아 이동 중 중이던 사람들도 모두 티파니에게 시선이 몰린 것이다.
유재원은 자전거 속도를 줄였고, 곧이어 티파니가 유재원 옆에 붙었다.
“안녕하세요!”
“응!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요?”
“그럼! 얼마나 신나게 놀았는데. 아! 취임식 잘 봤어! 내가 아는 사람이 거기 딱 앉아 있으니 얼마나 신기했는지 몰라.”
취임식은 당연히 빌 클린턴의 취임식이었다.
“사실 아빠도 거기에 가셨거든, 근데 아빠는 아무리 찾아봐도 안 보이고 너만 실컷 봤지 뭐야. 엄마랑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 게다가 아빠가 돌아와서는 너랑 악수도 했다고 자랑하더라고.”
티파니의 말에 유재원의 고개가 갸웃했다.
아니, 티파니 아버지가 거기에 계셨다니. 그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러면 백악관 연회에서도 만났을 수도 있었다.
“아! 나는 저쪽으로 가야 돼. 다음에 보자!”
유재원은 뭔가 더 물어보고 싶었는데, 갈림길이 나오면서 말이 끊겨버렸다. 티파니는 미련 없이 핸들을 틀었고, 손을 흔들었다.
궁금함이 해소되진 않았지만, 유재원도 다음을 기약하면서 속도를 올렸다. 무표정했던 유재원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확 번졌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스탠퍼드 전자공학과에 제안한 ID 그룹과의 산학협동 연구는 뜨거운 반응이 몰아쳤다.
특히 연구와 개발활동 시간이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로 고정된 것과 일반적인 인턴보다 더 많은 보수가 나오는 것에 열열한 환영을 받았다. 대학원생 과정에서 받은 어마어마한 연구 과제 교수들의 시달림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어필 요소였다.
8명을 뽑는 데 수백 명이 몰려서 경쟁률이 어마어마했다. 너무도 큰 반응에 정원을 좀 늘려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반도체 사업부의 연구실은 하나뿐이었다. 그것도 소규모인지라 당장은 곤란했다.
하지만 반도체 사업부의 활동이 구리 배선 공정 하나만 완성하고 끝날 사업은 아니었다. 당장은 규모가 작아도 나중엔 훨씬 규모가 커질 수 있으니 다음을 기약하는 게 좋다.
이렇게 해서 1월 말에 이르러 ID 테크놀로지 반도체 사업부가 완벽히 조성되었다.
리사 슈 박사를 정점으로 실리콘밸리에서 스카우트한 반도체 전문가 넷, 그리고 여기에 산학협동사업으로 스탠퍼드 전자공학부 교수님 그리고 대학원생 8명, 마지막으로 유재원까지 포함되었으며 반도체 연구를 위한 장비도 완벽히 갖춰졌다.
당연히 이 사업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비밀엄수서약서도 받았고 계약서도 꼼꼼히 체결했다. 특히 중점을 둔 건 연구 성과에 대한 분배였다.
보편적인 고용계약서는 보통 연구 성과에 대한 모든 소유는 회사가 가져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ID 그룹이 사용하는 고용 계약서에는 핵심적인 아이디어 제공자에 대한 특별한 우대가 담겨있다.
실제 매출 신장으로 이어지는 엄청난 발견이나 성과라면 단순 포상금을 넘어 순익 일부를 공유하는 로열티 제도도 담겨있다.
고휘도 청색 발광 다이오드와 같이 어마어마한 업적을 일궈놓고도 겨우 몇백만 엔의 보상비로 퉁치는 일은 ID 그룹에는 없을 것이다.
단기적으론 회사에 손해가 되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ID 그룹이 천재들의 블랙홀이 되는 데 가장 큰 무기가 되어줄 것이다. 기술의 특이점이 오기 전까지는 세상을 바꿔 놓을 기술은 사람의 손에서 만들어진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데 확실한 보상책만 한 건 없다.
그렇기 시간이 지났다.
추운 겨울이 다 지나고, 파릇한 새싹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는 봄이 찾아왔다.
한국이 내놓는 자랑거리 중 하나가 사계절이 뚜렸다는 이야기는 귀 딱지가 생길 만큼 많이 들었는데, 실제 체감은 여름과 겨울뿐이었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에 살아 보니 차라리 연평균 20도 내외인 해양성 기후도 나쁘지 않은 유재원이다.
겨울엔 그다지 춥지 않았고, 여름에도 그리 무덥지 않아서 계절의 특색이 희미하다는 말이긴 해도,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에는 훨씬 도움이 된다.
태평양이 바로 옆에 있는 샌프란시스코인지라 안개도 많고 비가 잦은 게 흠이지만, 집이나 사무실 그리고 최근엔 연구실에서만 사는 유재원에겐 큰 문제 거리는 아니었다.
하여튼 기후의 도움 덕분에 유재원의 최근 컨디션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레밍턴이나 최강욱 등의 회사 고위 임원들의 우려 속에서 시작한 반도체 사업부였지만, 목표를 향해 달리는 속도는 그야말로 폭주 기관차다웠다.
구리 배선 공정의 상용화, 그것도 반도체 업체들이 가진 장비를 크게 교체하지 않는 선에서 기술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달리는 중인데, 어렵다는 난관은 척척 돌파 중이었다.
당연히 최고의 플레이어는 유재원이었다.
스탠퍼드와의 산학협력사업을 통해 포스트닥터 그러니까 전자공학부 전공 교수를 노리는 인재들도 팀에 들어온 상태인데, 이들도 유재원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전공자인 자신들보다 어떻게 더 반도체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적절한 해법을 찾는 속도는 직접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할 수준이었다. 오죽하면 10년 넘게 한 과목을 파고 있던 이들이 헛살았다고 푸념할 정도였다.
그만큼 유재원과 리사 슈의 반도체 사업부는 쾌속 순항이었다. 그렇다고 반도체 사업부만 잘나가는 건 아니다.
ID 테크놀로지의 신제품 출시 일정은 연기 없이 순조롭게 이뤄지는 중이었다.
작년 가을부터 엄청나게 바람을 잡았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차기작 2.0이 정식 출시했다. 컴퓨터 업체들은 안드로이드 2.0을 가지고 새로운 구매 포인트로 삼을 생각이었는지, 사전 주문량만 100만 카피를 훌쩍 뛰어넘었다.
당연히 일반인을 위한 AD웨어 버전도 동시에 나왔다. 이로 인해서 ID 플래그쉽 스토어 그리고 ID 그룹의 제품을 유통하는 소매점은 증정용 버전을 받아가기 위해 전날부터 줄을 서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증정품은 전 세계 기준으로 딱 100만 장만 찍었는데, 수량이 떨어지면 추가 생산 없이 단종이다. 이후엔 복사만 받아갈 수 있다. 덕분에 증정본에 한정판이란 가치가 더해지면서 중고 가격이 치솟는 기현상도 벌어졌다.
반응도 좋았다.
486 컴퓨터에서도 느리지 않게 구동되었고, 586에서는 컴퓨터의 성능을 100% 발휘해서 쾌적한 작업 환경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호평만 있는 건 아니었다.
게이밍 에디션과 엔터프라이즈 에디션의 기능 차이가 너무나 컸고, 엔터프라이즈 에디션의 가격도 조금은 상승했기 때문이다.
100%를 만족할 제품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아는 유재원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대신 유재원의 이목을 끈 건 리눅스였다.
리처드 스톨먼 등에게 리눅스를 권했던 게 꽤 오래전의 일이었다. 그 뒤로 잊고 있었는데, 안드로이드 2.0가 출시한 지 며칠 뒤에 리눅스 1.0 버전이 공개되었다.
당연히 유재원은 받아서 설치해봤는데, 안드로이드와 비교하면 부족한 게 많았다. 하지만 소스코드가 100% 공개되었고, 리본 인터페이스와 비슷하면서도 저작권에는 걸리지 않도록 여러 곳을 손을 본 그래픽 인터페이스도 탑재되어 있었다.
원래 유재원이 알던 리눅스 1.0보다는 훨씬 발전된 형태였다. 다만 설치 과정이 텍스트로만 이뤄져 있었고, 대단히 불친절했다. 유닉스에 대한 사전 지식이 어느 정도 필요하기에 초보가 접근하는 건 어려웠다.
과연 리눅스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두고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될 것 같다.
이 밖에도 몇 가지 이벤트가 있었다.
한국에서 김영삼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고, 김대중 후보는 영국 유학을 선택했다. 곧이어 취임과 함께 내각이 구성되었는데, 약속대로 전명헌의 총리 지명이 있었다. 여당인 민자당과 통일 국민당의 연합을 통해 국회 과반이 확보되어서 국회 인준도 즉각 이뤄져서 총리로 임명되었다.
그날 유재원은 즉각 축하전화도 드렸다.
그러면서 조언도 하나 해주었는데, 대통령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라는 것이었다. 취임 초 김영삼의 국정 운영은 100점 만점에 90점을 줘도 모자라지 않았다. 개혁과 청산 모두 시원시원했기에 임기 초의 지지율은 하늘을 찌를 듯 높았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전명헌도 김영삼의 인기에 업혀갈 수 있도록 뒤에서 힘을 보태는 걸 주문했다.
이미 유재원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믿는 전명헌이었기에 알겠다고 대답했다. 이와 함께 전명헌이 총리실로 가면서 생긴 후폭풍 하나가 유재원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김대석 옆에 전명헌의 비서였던 오현지와 함께 미국으로 와서 인사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둘은 수줍은 손으로 청첩장을 내밀었다.
알고 봤더니 양가 부모님과 상견례도 마쳤고 날짜만 정하면 된다고 한다. 사실 이것도 좀 늦은 것이라 한다. 전명헌이 미래 그룹에서 은퇴하면서 일자리가 없어진 오현지도 일자리가 사라졌고, 그때 결혼을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늦어진 것이다.
유재원은 당연히 축하해주었다.
애초에 둘이 교제를 시작한 것은 유재원 본인이 다리를 놓아줬기 때문이 아닌가. 그때는 사실 장난기도 조금 없잖아 있었는데, 이렇게 잘 된 걸 보고 뿌듯해졌다.
유재원은 뭐 도와줄 건 없나 봤지만, 둘의 결혼 준비는 이미 완벽했다.
현실의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나 결혼자금인데, 둘 다 직장인 평균을 훌쩍 넘는 월급을 받으면서 돈을 모은 덕에 미국 실리콘밸리에 신혼집을 마련하는 것도 충분했다. 오현지는 김대석이 유재원의 수행비서 일에 전념하도록 내조에 힘쓰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지 말고, 공부를 더 해보세요.’
유재원은 그럴 것까지 있나 싶었다.
어차피 스탠퍼드 재학 중에는 샌프란시스코를 떠나진 않을 거다. 그러니 김대석이 유재원의 스케줄을 조절할 일도, 힘든 수발을 들 일도 없다. 매일 원정 경기를 뛰는 메이저리거도 아니고 내조에 힘쓸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반면 오현지는 대단한 인재였다. 세계를 누비던 전명헌의 비서로서 외국어에도 능통했고, 서류 작업도 탁월했다. 결혼한다고 경력을 단절하면 사회적으로나 기업 측면에서도 손해라는 생각이다.
갑작스러운 제안인 탓에 바로 수락은 못 했지만, 오현지는 솔깃한 표정이었다. 김대석이야 신혼생활만 즐길 수 있으면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었으니, 결국 결론은 유재원의 제안대로 이뤄질 것 같다.
시간은 다시금 훌쩍 흘렀다.
바람에 훈훈한 기운이 물씬 담긴 4월의 중순의 어느 날, 유재원은 서재에서 전화기를 들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렸고, 곧 상대와 연결이 되었다.
-여보세요? 티파니입니다.
“티파니? 나야!”
-아! 재원이구나!
유재원은 티파니의 활기찬 목소리에 적잖이 안도했다. 이번이 첫 전화는 아니었지만, 가장 최근에 했던 게 거의 한 달은 전이었으니 말이다.
-오랜만에 연락이네. 무슨 일이야?
“다름이 아니라, 다음 주 토요일에 시간이 있는지 물어보려고. 다음 주 토요일 괜찮으면 나랑 어디 좀 갈래?”
-우와! 우와! 진짜? 다음 주 토요일이라면 시간은 얼마든지 있지!
뭐지?
유재원은 티파니의 격한 반응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행이네. 전에 말했던 그 쇼케이스 날짜가 드디어 4월 24일로 잡혔거든. 정중히 초대할게.”
쇼케이스는 바로 작년 크리스마스 때, AMD의 제리 사장에게 장담했던 그 기술발표 행사였다.
원래 유재원의 예상은 여름이었지만, 리사 슈를 비롯한 실력 있는 전문가들의 참전 덕에 구리 배선 기술을 완성하는 시간이 훨씬 빨라졌다.
덕분에 4월 24일을 쇼케이스 날짜로 잡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유재원이 메인으로서는 쇼케이스였기에 ID 그룹이 총력으로 준비를 시작했다.
“티파니?”
뭐지?
초대를 받은 티파니의 반응이 없다. 이전 통화를 했을 때, 쇼케이스 이야기가 당연히 언급 되었다. 그때 티파니도 제법 관심을 보여 주기에, 잘 기억하고 있다가 일정이 정해졌다는 보고에 제일 먼저 초청해주는 건데, 반응이 좀 예상 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