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 New Experience ==============================
“그런데 갑자기 반도체 퍼포먼스에 꽂힌 이유가 뭔가?”
츄쳉 교수의 물음은 조심스러웠다.
유재원이 보통 학생이었다면 평소대로 이야기를 나눴을 텐데, 패스트 트랙을 가뿐하게 통과했을 뿐만이 아니라 이로 인한 후폭풍은 아직도 진행형이었던 탓이다.
단적으로 7대 수학 난제를 풀어버린 그 연구실을 보존해야 하느니 말아야 하느니 말들이 아직도 진행 중이다. 필즈상 수상은 확실한 상태였으니, 기념해야 한다는 의견과 가뜩이나 부족한 연구실을 기념관으로 만들면 연구 능력이 떨어질 거라는 실리적인 의견이 팽배했다.
유재원의 움직임 하나가 그만큼 큰 여파를 만드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아, 그거요. 오늘 넥스트컴케스트의 신규 데이터센터에 가봤는데요. 성능 문제가 많더라고요. 원인을 따져보니 결국 반도체라는 결론이 나오더라고요.”
명색이 전자공학과 교수였으니 유재원의 설명은 좀 낯설긴 해도 알아듣는 데 문제는 없었다. 덕분에 츄쳉 교수는 입이 떡 벌어졌다.
1만2천 대의 최신 PC를 연결한 클라우드 컴퓨터 센터라니.
전자공학부의 컴퓨터실 컴퓨터를 펜티엄급 컴퓨터로 교체하는 작업 중이지만 그 숫자는 몇백 대 수준이었다. 이것만 해도 예산을 관리하는 사무처와 입씨름을 한 달 넘게 해서 받아낸 값진 과실이었다.
그런데 1만2천 대라는 스케일은 역시 상식을 아득히 초월했다.
“1만2천 대라니. 그러면 시스템의 메모리는 48GB나 되고, 스토리지 용량은 6.7TB나 되는구나.”
역시 교수님이라 암산이 참 빨랐다.
클라우드 시스템을 구성하는 컴퓨터의 스펙을 말해주니 유재원은 아직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 전체 주기억장치의 용량과 저장용량이 딱딱 나왔다.
단순한 곱셈이지만, 클라우드 운영체제를 잘 만들면 실제로 사용 가능한 용량이었다. 동시에 전생의 기억도 떠올라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21세기에 초, 그러니까 2020년 정도만 되어도 일반 개인도 얼마든지 구성할 수 있는 스펙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스템의 크기도 PC 한 대로 충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메모리 모듈 하나가 32GB짜리로 나왔으니 2개만 장착하면 64GB이었고, 하드디스크 하나로 16테라바이트의 저장 공간을 자랑했다. 여기에 전체가 플래시메모리로 이뤄진 SSD라는 신개념 저장장치도 있어서 고속의 CPU와 보조를 맞출 수도 있었다.
반면 지금은 어떤가.
하향 평준화라는 게 이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처럼 컴퓨터의 부품들은 모두가 느렸다. 예전보다 IT의 발전 속도를 2년 정도 앞당긴 유재원이지만, 아직 성에 차지 않았다. 성능 향상의 본질은 반도체 공정의 향상이니 이번 기회에 직접 개입하겠다는 의욕이 충만했다.
츄쳉 교수는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그러니까 세계 최대의 클라우드 시스템을 만들었지만, 그래도 성능이 성에 차지 않아서 직접 반도체 성능 향상을 도모하겠다는 말이구나?”
“네! 정확하세요!”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그냥 일반 학부 학생이었다면, 포부가 대단하구나, 응원해주겠다는 정도로 말해주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눈앞의 유재원은 행동력이 있고, 자본도 있고, 두뇌도 있는 존재였다.
어느 누가 비싸디비싼 펜티엄급 컴퓨터 1만2천 대를 연결해서 클라우드 시스템을 만들 수나 있겠는가.
“휘유~! 대단하구나.”
컴퓨터로 스탠퍼드 대학교 인트라넷을 조작하는 츄쳉 교수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동시에 넥스트컴케스트라는 회사 이름도 그의 뇌리에 선명히 박혔다.
“흠, 역시 반도체라는 건 핫아이템이라 그런지 연구 중인 과제도 참 많구나! 대충 봐도 100개가 훌쩍 넘는데? 인트라넷에 등록하지 않고 연구 중인 분들도 계실 테니 이보다 2배는 더 많다고 봐야겠지.”
역시 스탠퍼드다.
유재원의 예상은 츄쳉 교수가 말했던 것의 1/5 정도였다. 교수진 숫자가 많긴 했지만, 반도체 하나만 놓고 그렇게 많은 석학이 집중할 줄은 몰랐다.
연구의 주제와 방식도 다양했다.
CPU의 아키텍처 향상을 위해 인텔과 협동 연구를 진행하는 것도 많았고, 반도체 소재를 연구하는 분들도 많았다. 이와 함께 연관된 것이 초전도체 연구였다. 상온 초전도체가 나온다면 가장 활발하게 쓰일 곳이 반도체 제조였으니 말이다.
“혹시 반도체 소재에서 최적화를 연구하시는 분은 있나요?”
유재원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턱대고 학교를 찾아온 것이 아니다.
현재 92년도 기술로 반도체의 성능을 높일 방법은 몇 가지 없다. 그중에서도 그나마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건 반도체 소재의 변경이었다.
“반도체 소재? 역시 자네도 거기에 관심이 있었군!”
츄쳉 교수가 유재원의 말에 반색했다.
그도 그럴 것이 츄쳉 교수는 반도체 소재 분야에서 상당한 업적을 이룬 사람이었으니, 소재 분야에는 최고의 전문가나 다름이 없었다. 다만 유재원의 관심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으니, 츄쳉 교수는 트랜지스터를 대체할 목적으로 양자 게이트를 만들기 위해 연구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유재원은 반대다. 지금 당장 트랜지스터 기반 반도체를 탈피하는 건 무리라고 보고, 내부 구조를 최적화해서 성능을 끌어올릴 생각이기 때문이다.
“아, 내부 배선.”
덕분에 공통의 관심사가 나왔다고 목소리가 높아졌던 츄쳉 교수가 보통으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츄쳉 교수의 연구가 쓸모없다는 건 아니다. 양자 컴퓨터가 상용화되면서 츄쳉 교수의 업적이 꽃을 피우기도 하는데, 단지 그 날은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은 지난 미래의 일이었을 뿐이다.
“당장 반도체의 성능을 끌어올리는 데 가장 간편하고 확실한 방식은 반도체 회로의 최적화, 그중에서도 배선 소재를 바꾸는 거로 생각해요.”
“음, 그건 동의한다.”
CPU는 대량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된 반도체다. 트랜지스터를 작동시키기 위해선 당연히 전기가 필요하고, 이 전기를 공급하는 배선망을 설계하는 것도 무척이나 중요했다.
인텔이나 AMD의 신제품인 펜티엄급 CPU는 300만 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되었는데, 이를 연결하는 배선은 알루미늄 기반이었다.
속도를 높이면 그만큼 전류의 양도 많아지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저항이 늘어나면서 발열과 누전이 발생한다. 당연히 반도체의 성능도 하락하는 것이다. 여기서 발열을 크게 내는 주범이 바로 알루미늄 배선이다.
당연히 유재원은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다.
반도체 설계는 유재원의 전공은 아니었지만, 마스터플랜을 짤 때 이건 꼭 필요한 기술이구나 싶어서 기억의 궁전에 넣어 왔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공부한 것이라 츄쳉 교수 같은 석학과 대놓고 토론을 시작하면 판판이 깨질 게 뻔하기에 유재원은 최대한 말을 아꼈다.
“어디 보자.”
구체적인 카테고리가 나왔기에 검색하는 손길이 빨라졌다. 동시에 츄쳉 교수도 말이 없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유재원이 설명한 연구 과제를 키워드로 넣어 검색해 봤지만, 관련된 결과가 나오지 않았던 탓이다.
즉, 스탠퍼드에서는 반도체 배선 최적화를 두고 연구하는 팀이나 교수는 없는 것이다. 있더라도 인트라넷에 등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음, 알겠어요. 그럼 외부에서 찾아봐야겠네요.”
유재원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 말에 츄쳉 교수도 너무나 안타까웠다. 유재원이 보유한 능력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츄쳉 교수였다.
“혹시나 인트라넷을 쓰지 않는 분들도 계시니 나도 한 번 알아보겠다.”
그렇기에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여지를 남겨두었다.
“예! 고맙습니다.”
유재원은 꾸뻑 고개를 숙이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아, 그리고 교수님이 연구하시는 것도 관심이 있어요.”
“응? 내 연구?”
“양자 게이트 연구요.”
츄쳉 교수는 감정의 숨김이 없는 분이었다. 유재원이 그의 연구에 관심이 있다고 하니 얼굴이 확 살아났다.
“사실 배선망 최적화는 당장 활용할 수 있어서 관심을 두는 것이지, 트랜지스터 반도체 자체는 성장의 한계가 존재하잖아요. 반면 양자 게이트 CPU라면 성능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무한하게 확장할 수 있고요.”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교수님의 연구에 전폭적인 후원을 해드리고 싶은데요.”
“후원이라고!”
츄쳉 교수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연구를 수행하는 데 있어 언제나 부족한 게 바로 시간과 예산이다. 시간이라면 어찌어찌 짜낼 수 있지만, 없는 돈을 만들어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스탠퍼드에 속해서 장비와 예산을 지원받아 연구를 진행 중이지만, 그래도 부족한 건 늘 있었다.
이러한 연구자의 처지를 잘 알고 있기에, 인트라넷 검색 결과가 나빴어도 여지를 놓지 않았다.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교수가 있었다면, 이번 기회에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당연히 유재원의 모교인 스탠퍼드 소속이 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유재원의 관심에서 벗어났다 싶었던 본인의 평생 연구 주제에 후원하겠다니 놀랄 일이었다.
유재원도 후원은 나쁠 게 없었다.
츄쳉 교수의 업적이 양자 컴퓨터를 완성하는 데 핵심적인 기술은 아니지만, 그 기반을 마련하는 데 틀림없는 이바지를 한 건 맞다. 일종의 기초 기술인데, 다들 알다시피 기초 기술은 돈이 되지 않는다고 기업이나 정부에서 그다지 연구 지원을 하지 않는다.
넘치는 건 돈인 유재원이었기에 후원을 하는 건 막힘이 없었다. 그것도 회사 돈이 아니라 본인의 개인 재산으로 하는 것이니 무리 없이 결정할 수 있었다.
앉은 자리에서 10만 달러짜리 수표를 끊어준 유재원은 필요하면 언제든 말씀하시라고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수 연구동을 나오는 유재원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흠, 그냥 나 혼자 연구했다고 발표해야 하나?”
본인의 자전거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면서 생각이 많아진 탓이다.
사실 기억의 궁전에 담아온 반도체 배선 연구는 너무도 완벽해서 다른 연구팀, 혹은 교수들과 공동 연구를 할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
구리를 이용한 고효율 배선을 만드는 원천 기술부터, 수율 향상을 위한 반도체 공장의 내부 공기의 구성 비율까지 완벽히 가지고 있다. 심지어 반도체 생산 작업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ASML 장비의 세팅 값도 가지고 있다.
인공지능을 개발하면서 하드웨어 팀과도 긴밀한 협력이 있었고, 그렇게 친해진 엔지니어들과 술도 먹고 밥도 먹으면서 많은 걸 주워들었다. 당연히 당시 적용된 최신 기술에 대해선 엔지니어들은 함구했지만, 옛날이야기들은 쉽게 입을 열었다.
옛날엔 그렇게나 구식의 기술을 가지고 어떻게 살았는지 서로 썰을 풀다 보면 주워들을 것들이 제법 있었다.
당시엔 옛날의 구식 기술이라고 하찮게 말했던 것들이지만, 지금 92년도에는 너무나도 최신의 기술이었다.
걱정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이번에도 혼자서 반도체 분야의 지각 변동을 일으킬 기술을 만들어내면 그 후폭풍이 가늠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도체 내부의 배선을 알루미늄에서 구리나 금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퍼포먼스 향상은 기본 200%였다. 현재 출시되는 최신 CPU의 작동속도는 66MHz밖에 되지 않는데, 구리 배선을 사용하면 당장 200MHz로 작동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비단 CPU만 이 기술을 적용받는 게 아니라, 웬만한 반도체는 다 공통으로 적용된다. 메모리의 작동속도도 높여서 대량의 데이터를 빠르게 주고받을 수 있고, 3D 가속 칩의 성능도 향상해 더욱 화려한 그래픽을 볼 수 있다.
이 기술의 더욱 무서운 점은 반도체 생산설비를 완전히 뜯어고칠 필요도 없다는 점이다. 일부 공정만 변경하는 것으로 가공할 성능 향상이 뿜어진다.
구리 배선에 맞게 CPU의 설계도 변경한다면 300, 500까지는 수월하게 올라가고, 미세 공정이 더해지면 1GHz라는 신기록을 달성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만큼 엄청난 기술인지라, 혼자 발표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존에 관련 연구를 하는 교수님이나 연구팀이 있으면 묻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예상과 다른 결과에 유재원은 고민이 컸다.
“너무 이른 기술인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신의 마음이 좀 앞선 건 사실이었다.
CPU나 다른 반도체들이 구리 배선을 사용한 제품을 출시한 건 98년도부터였다. 기술개발에 걸리는 시간을 넉넉히 계산해서 3년이라 치면, 95년부터나 연구를 시작하는 과제다. 92년도가 이제 10일 좀 남았으니 남들보다 2년은 더 앞서 움직이는 것이다.
“뭐, 다른 학교도 조사해보고 없으면 혼자 할 수밖에.”
최선책이 없다더라도 그만둘 생각은 추호도 없다. 먼저 앞서 나가는 것을 가지고 크게 걱정하지 않는 유재원이다.
그걸 어려워해서 시도조차 못 했다면 지금의 유재원은 없었을 것이다. 후폭풍은 알아서들 감당하게 하고 일단 기세 좋게 밀고 나가는 게 중요했다. 파죽지세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3D 가속카드도 예정보다 훨씬 일찍 나온 이때, 컴퓨터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반도체의 성능이 한 차원 더 높아지면 컴퓨터 기술의 발전도 훨씬 빨라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인공지능의 완성도 빨라지며 그만큼 인간의 삶도 윤택해진다.
“하긴, 워낙 느렸어야 말이지.”
유재원이 오늘 데이터센터에 갔던 이유도 인공지능 때문이었다.
클라우드 시스템의 성능이 어느 정도 나온다면, 간단한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띄워 놓고 학습을 시작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연산 능력이 기대 이하인지라 기계학습을 실행해도 유의미한 데이터가 나오지 않기에 설치를 뒤로 미뤘다.
그렇다고 시스템 전체를 다 뒤집을 필요는 없다. CPU의 성능은 최소 기준은 통과했고, 메모리의 대역폭도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단지 컴퓨터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네트워크의 속도가 문제일 따름이다.
네트워크 장비는 쉽게 교체할 수 있는 만큼, 새로운 장비가 나오기 전까지는 웹서버나 이메일서버 잘 이용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유재원은 자전거가 주차된 거치대로 가기 위해 속도를 높였다.
기이잉.
“어?”
그러다가 문뜩 익숙하게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웬 긴 금발을 날리는 사람 하나가 자전거를 타고 자신의 앞을 슥 지나쳐갔다.
순금처럼 진하면서도 긴 금발도 인상적이지만 그녀가 타고 있는 자전거는 너무도 눈에 익었다. 탄소 섬유의 독특한 문양이 그대로 살아 있는 프레임과 선수용 고성능 바퀴, 그리고 전기 자전거의 독특한 구동소리까지.
“내 자전거잖아!”
라이트닝 볼트의 마이클 사장이 손수 만들어준 유재원 본인의 자전거였다.
“자전거 도둑이야!”
더는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유재원은 자전거 도둑을 향해 냅다 뛰었다.
놀랍게도 자전거와의 거리는 점차 좁혀졌다. 하루에 1시간 이상 피트니스를 규칙적으로 했던 유재원의 달리기 속도는 일반인 이상인 반면, 전기 자전거 도둑은 이상하게도 빠른 속도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서!”
심지어 유재원이 거기 서라고 하니 전기 자전거의 속도를 줄이는 게 아닌가. 멈추라고 해서 멈추는 도둑은 생전 처음이다.
뭔가 좀 이상했다.
보스!
게다가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도 났다. 고개를 돌려보니 오늘 유재원의 밀착 경호를 책임진 피셔가 자길 부르면서 허겁지겁 뛰어오고 있었다.
“헉!”
그 모습에 유재원은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유재원에게 빠르게 달려오는 피셔는 전기 자전거를 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둑이라니? 설마 나 보고 하는 소리니?”
심지어 유재원이 잡아 세운 금발의 자전거 주인은 코앞에서 멈춰선 다음 천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제야 유재원의 뇌리에 아침에 보았던 이메일 보고서가 떠올랐다. 모델1 전기 자전거가 4대나 팔렸다는 그 보고서였다.
설마 그렇게 팔린 자전거 중 하나가 스탠퍼드에 굴러다닐 줄은 몰랐고, 본인과 비슷한 나이의 여자가 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찬 바람이 부는 와중이지만 유재원의 이마에 식은땀이 났다. 회귀 후 이렇게나 당황스럽고 민망한 경우는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