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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229화 (229/1,007)
  • [229] 왕좌의 게임 ==============================

    12월 7일.

    약속한 9일까지의 스퍼트가 딱 이틀 남았다.

    유재원의 계획에 따라 5일까지는 기존의 계획대로 유세를 진행한 후에 6일부터는 전명헌을 비롯한 전국구 의원들은 부산으로 집결해서 집중 유세에 들어갔다.

    다만 유재원은 여의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비상대책위원장에 오를 때, 기자들에게 장담한 것처럼 본인은 전면에 나서지 않겠다는 말을 지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전명헌은 섭섭한 티를 조금 냈고, 전명헌의 가신 집단과 통일 국민당 의원들의 경우엔 아쉬움이 더 컸다.

    현재가 비상 상황이라면 유재원도 직접 나서서 유세를 돕는 게 더 효과적일 텐데 자기는 편안한 여의도 사무실에 앉아서 지시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놓고 표시를 내지도 못했다. 가신이나 의원들 모두 강한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소인이었고, 유재원은 이미 전명헌 이상 가는 존재감이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유재원도 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는 중이었다.

    말이 좋아서 스퍼트라고 했지, 하루하루가 피를 말리는 일이었다. 통일 국민당과 외부 지원 조직이 유재원의 의도에 100% 맞게 움직여 줘도 결과가 미지수였는데,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마치 전략 게임에서 이리로 가라고 하면 엉뚱한 데로 가버리는 엉터리 유닛들을 가지고 레이드를 하는 기분이다. 그런 엉터리 중 하나가 지금 유재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불만을 토로하는 중이었다.

    전재준의 전화였다. 아버지가 부산에 내려왔으니 자신도 부산으로 가서 유세를 도와야 하는 거 아니냐는 것이다.

    설명은 얌전하게 했지만, 전재준의 말투는 매우 불손했다. 유재원보다 나은 건 나이뿐이지만, 그거 하나로 말도 놓았고, 말 한마디 할 때마다 가시가 가득했다.

    “아오! 이 트롤 자식!”

    수화기의 송신기를 막고 트롤 타령을 한바탕 뿜어냈던 유재원은 심호흡했다.

    탁한 서울 공기에다 밀폐된 공간인지라 기분이 풀리진 않았다. 그래도 흥분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진정되었기에 말을 이어갈 수 있었다.

    “후보님이 계속 부산에 계실 건 아니라고 했잖아요. 10일부터는 상경을 시작할 거고, 울산도 들릴 테니, 조금만 더 노력해주세요.”

    -후, 알겠다. 하지만 많이는 못 기다린다!

    많이 못 기다리면?

    멋대로 전명헌에게로 가서 유세를 지원할 건가? 전명헌 앞에 서면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 하는 양반이 엄포는 잘 놓는다.

    “네, 제가 후보님께 아드님이 필사적으로 뛰고 계시다고 잘 말씀드릴게요.”

    -알겠다. 그럼 너만 믿는다.

    믿는다는 말과 함께 전재준이 먼저 전화를 끊었고, 유재원도 수화기를 거의 던지듯 내려놓았다.

    “입에 침이라도 바르고 거짓말을 해야지, 퍽이나 믿겠다.”

    전형적인 재벌 2세의 모습을 보여주는 전재준 덕에 유재원은 전생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났다. 저런 부류의 특징은 잘 되면 자기 덕, 안 되면 남 탓은 아주 기본적인 마음가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어휴, 저것들도 자원이니 잘 구슬려 써야겠지.”

    ID 그룹이었다면 당장 조치를 했을 거다. 당연히 해고다. 그렇지만 전명헌의 아들이라는 타이틀 하나 때문에 마음 내키는 데로 다루긴 힘들었다. 게다가 통일 국민당이었다. 전명헌이라는 큰 돈줄이 있어 열악한 수준은 아니지만, 조직된 지 1년도 안 된 정당인지라 지역 조직은 부실하기 이를 데 없었다. 울산과 경남에선 전재준이 가진 조직이 제일 단단했으니, 이렇게라도 달래면서 선거 운동을 해야 했다.

    푸념을 늘어놓은 유재원은 컴퓨터 앞으로 가서 통일 국민당 모임에 접속했다.

    지역 조직과 인터넷으로 연결해 놓은 게시판과 실시간 채팅방이다. 처음엔 다들 낯설어했지만, 지금은 그 효용성에 대해 십분 공감하면서 열심히 사용 중이었다.

    그곳에서 부·울·경 소모임으로 들어간 유재원은 새로운 글을 남겼다.

    비상대책위원회와 후보님은 전재준 의원과 울산지역 당원 동지의 노고에 큰 용기를 받았고, 기억할 것이라는 식의 이야기다. 그렇게 짧은 글을 남긴 유재원은 곧이어 스페셜 팀에게도 쪽지를 보냈다.

    조바심이 잔뜩 쌓인 전재준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그와 그의 사조직의 모니터링 수준을 최대로 높이라는 지시였다.

    12월 9일.

    5일 부산에 내려갔던 전명헌이 서울로 올라왔다.

    부산 집중 유세는 성공적이었다. 자체 평가가 아니라 언론에서도 차마 왜곡할 수 없을 만큼, 전명헌은 엄청난 인파를 동원했다. 부산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라면 남포동과 서면을 꼽을 수 있는데, 전명헌의 유세를 보기 위해 몰린 사람들로 그 넓은 곳이 가득했다.

    부산 사람들의 현안을 제대로 긁어주는 공약이 제대로 먹혔다. 여기에 미래 그룹의 기반이 부·울·경에 있음을 넌지시 알리면서, 본인이 대통령이 되면 부산을 명실상부한 제2의 수도로 만들겠다는 공수표까지도 큰 호응을 얻었다.

    전명헌이 지금은 미래 그룹의 모든 직책을 다 버린 상태라지만, 대통령이 되면 당연히 미래 그룹에 우호적인 정책을 쓸 것이고, 그 수혜를 부·울·경이 제대로 받을 거라는 기대감을 은근히 자극했다.

    따로 조사해본 바에 따르면 대놓고 고속전철과 지하철, 국제공항을 언급한 것보다 미래 그룹 이야기가 더 먹히는 것 같기도 했다.

    경남과 울산도 부산과 비슷했다. 8일 오전에 부산 외곽 지역을 돌면서 경남과 울산도 돌았고, 제법 높은 호응도 끌어냈다. 전재준도 이날엔 전명헌의 옆에 딱 붙어서 유세를 도왔다.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몰라도 유재원은 본적 없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전명헌을 연호하는 모습이 딱 텔레비전에 나왔다.

    이러한 집중 유세 덕일까.

    전명헌의 유세는 주관적으로도 객관적으로도 대성공이었다.

    오죽하면 부산 바로 아래인 거제시 출신의 김영삼 후보의 유세보다 전명헌의 유세 규모가 더 커 보일 정도였다. 그림이 딱 나와버렸으니 언론도 더는 눈을 감지 못했다. 텔레비전 뉴스와 신문에도 전명헌이 어마어마한 인파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현장의 사진이 실렸다.

    “어떠냐? 이쯤 되면 부산이 디비졌겠지?”

    이러한 호응 덕분에 저녁 즈음에 여의도 당사에 도착한 전명헌은 그야말로 28 청춘 못지않은 활기가 가득했다. 게다가 어디서 ‘디비졌다’는 표현을 배우신 건지 몰라도 그 물음에는 자신감이 물씬 묻어났다.

    “저도 텔레비전으로 봤는데, 후보님이 그렇게나 잘 해주실지 몰랐네요. 게다가 부산 시민들의 호응도 기대 이상이었고요.”

    전명헌은 디비졌냐고 물었지만, 즉답은 피하면서 칭찬을 늘어놓는 유재원이었다.

    후보는 유세 현장의 분위기에 취할 수 있어도, 선거판 전체를 보는 유재원은 그럴 수 없었다. 대선에서 전국 지지율이 20% 이상 나오는 후보들이 유세를 다니다 보면 누구나 구름과 같은 지지자를 몰고 다닐 수 있다.

    그 안에 있으면 세상이 마치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지고, 선거에서도 당연히 승리할 거라고 취하게 된다. 하지만 유세장에 나오는 유권자는 전체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지지자 혹은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주로 나오는 것이지, 지지하지 않는 이들은 그보다 훨씬 많다.

    괜히 그걸 언급해서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진 전명헌에게 찬물을 끼얹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식사는 하셨어요?”

    “그럼! 휴게소에서 가락국수 한 사발 먹었다.”

    “에이, 그걸로 식사가 돼요? 제대로 드셔야죠.”

    “아니다. 오늘이 그 날 아니냐? 여론 조사 결과를 생각하면 두근거려서 밥도 잘 안 넘어가더구나.”

    전명헌이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했다.

    역시 이유는 오늘 9일이 디데이라는 걸 잊지 않고 있었다. 하긴, 당연한 일이었다. 유재원은 선거운동 시작 전부터 9일 여론 조사의 결과로 계속 밀고 나갈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단단히 말을 해놓았다.

    전명헌 본인의 일생에 가장 큰 이벤트인 대선에서 가장 큰 변곡점이 생길 사건이었으니,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 결과가 나왔느냐?”

    극심한 긴장 때문에 목이 좀 타신 모양인지 마른침을 삼키며 물어보는 전명헌이었다.

    “음, 아직 안 왔어요.”

    조심스레 대답한 유재원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재원도 설명이 좀 부족했다는 걸 이제야 인지했던 탓이다. 9일 자 여론 조사는 이번 선거의 향배가 달린 만큼 기존의 일간 조사와 함께, 추가적인 보강 조사도 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보강 조사는 샘플링 숫자를 대폭 늘렸다. 일간 1천 명씩, 총 5일을 하는 조사로 전체 샘플링 숫자가 무려 5천 명이나 된다.

    유재원은 두 개의 조사 결과가 완전히 같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대신 오차만큼은 최대한 적길 바랐다. 그래야 결과를 믿고 과감한 결단을 해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뭐야? 그럼 오늘 결과가 안 나오는 다는 게냐?”

    “예, 그러니 푹 쉬고 내일 오세요.”

    유재원의 답변에 허탈하기 그지없는 전명헌이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오는 길에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 얼마나 심란했는지 모른다. 좋게 나왔을 때, 나쁘게 나왔을 때의 상황을 상상할 때마다 그의 감정도 요동쳤다. 마치 조울증에 걸린 게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을 정도다.

    그나마 서울에 진입하면서 진정이 되었고, 제대로 씻지 못해서 머리카락과 얼굴에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유재원의 모습을 보니 어떤 결과든 받아들일 것만 같았다. 그런데 결과는 내일 나온다니.

    허탈감에 힘이 쭉 빠졌다. 힘이 빠지니 몸도 무겁게 느껴졌다. 부산에서 온 열정을 다 쏟아부은 후폭풍이 이제야 체감되는 것이다.

    여론 조사를 진행하는 회사가 전명헌의 영향력 안에 있는 곳이었다면, 당장 전화를 걸어 결과를 내놓으라고 닦달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ID 휴먼 리서치라는 회사는 ID 그룹의 소속이었다. 게다가 전화번호도 모른다.

    전명헌은 아직도 낯설기 그지없는 인터넷으로만 연락하기에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러면 너는 왜 여기 있던 것이냐?”

    “선거가 끝날 때까지는 여기가 제 자리 지키고 있어야죠. 게다가 후보님도 오신다고 했고요.”

    전생에서 정신 차렸던 유재원은 AI 개발 작업을 할 때, 야간작업은 기본이고 밤샘은 시시때때로 있는 일이었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는 일주일, 아니 한 달 동안 집에 들어가 본 적도 없었던 때가 있었다.

    며칠 야근하고, 새벽에 출근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에휴, 나 때문에 너도 참 고생이 많구나.”

    이런 유재원의 모습이 자신 때문인 것 같아 자책의 말이 나왔다. 그렇지만 쉬엄쉬엄하라는 말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입 밖으로 나오진 못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그렇게나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 중차대한 상황에서 쉬면서 하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뭐, 저뿐이겠어요. 다들 한뜻으로 후보님의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걸요. 후보님도 열심히 뛰셨고요. 그에 비해 저는 뭐 따듯한 사무실에서 지시만 하고 있어서 미안해요.”

    “그래, 그렇게 생각해주니 참 고맙다.”

    전명헌은 제법 감동한 듯 보였다.

    그 모습에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는 유재원이었다.

    그중에 가장 크게 다가오는 건 내일 나오는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른 후폭풍이었다. 만에 하나 결과나 나쁘다면 지금처럼 인자한 표정이 나올까 싶었다. 그리고 이어진 건 부산의 초원 복국집 사건이었다.

    원래의 역사에서는 11일에 터지는 일이었다.

    그러니 이틀의 시간적 여유가 있긴 했다. 하지만 유재원 본인이 대선에 본격적으로 참가하면서 여당의 조바심과 경각심은 최고치를 달리는 중이었다.

    개밥에 도토리 취급이었던 전명헌은 이제 그 누구도 대선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그들도 자체적으로 돌리는 여론 조사를 통해서 전명헌의 존재감이 양 김에 뒤지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으니 말이다.

    이제는 민주당의 김대중 후보를 따돌리고 민자당 김영삼 후보를 바싹 뒤를 쫓는 결과도 속속 나오고 있으니, 쫓기는 자가 된 민자당은 조바심이 크게 일어났을 것이다.

    그렇기에 예전보다 훨씬 일찍 터질 수도 있고, 아니면 전명헌에 선을 대야 한다면서 내부에 자중지란이 일어나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D데이 날짜를 여유롭게 잡았다.

    유재원인 현장에 다녀온 다음 마음도 정했다.

    사건이 터진다면 이용할 수 있으면 이용하고, 어렵다면 여당의 프레임 전환에 말려들지 않게 묻어버릴 작정이다.

    “가자!”

    전명헌이 뜬금없이 가자고 외쳤다.

    “예? 어딜 가요?”

    “뜨신 밥 먹으러 가자.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밥을 대충 때우면 쓰나? 당직자도 다 불러라.”

    역시 전명헌은 전명헌이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선거의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는 지금 다른 사람은커녕 본인을 챙기는 것도 못했을 텐데, 바로 밥 먹으러 가자고 했다. 게다가 유재원은 물론이고 아니라 당직자들까지도 챙기니 거부하기도 힘들었다.

    “예!”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을 잠깐 접은 유재원은 짧게 대답하면서 전명헌을 따라나섰다.

    다음 날.

    수많은 변수와 가능성으로 뭉친 운명의 날이 찾아왔다.

    철두철미한 유재원은 가장 먼저 사무실에 출근해서 간밤에 별일은 없었는지부터 살폈다. 작은 충격에도 떨어지는 샤프심을 문의 손잡이, 캐비닛 모서리 등에 놔두었는데 간단하긴 해도 효과적인 검증 방법이었다.

    다행히 샤프심들은 제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보통은 안심하고 본 업무를 시작했을 텐데,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기에 더욱 꼼꼼히 점검했다.

    유재원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켄과 그렉 두 경호원에게 부탁해 도청 장치를 찾는 장비를 운영했다. 안기부에도 보급되지 않는 최신의 장비로 미국에서 거금을 들여 도입한 물건이었다. 도청 장치가 발산하는 전자파를 포착하는 방식인데, 탐지율은 확실히 높았다.

    이걸로 선거를 막 시작했던 때 선물로 들어온 난초에 숨겨진 도청기 하나를 발견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상 없습니다.”

    이상 무라는 대답을 들은 유재원은 그제야 안심하고 업무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역시 컴퓨터를 켜는 일이었다.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책상 안쪽에 놓인 컴퓨터 본체의 전원 버튼을 발가락으로 눌러 켜는 게 유재원의 버릇이었다. 일을 시작했던 초기엔 셸 북을 많이 썼는데, 모니터도 작았고 잔상도 심해서 데스크톱으로 돌아온 상태다.

    곧이어 커다란 브라운관 모니터에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떠올랐다.

    기존에 발표된 것과 뭔가 많이 달랐다.

    글자가 훨씬 매끄러워졌고, 사용자의 키보드 입력을 받는 텍스트 박스도 입체적이었다. 색감도 무척이나 화려해져서 확 달라 보였다.

    지금 유재원의 컴퓨터에 띄워진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는 바로 조만간 선보일 2.0의 베타 버전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신기술이 듬뿍 들어간 2.0은 펜티엄급 PC의 성능을 100% 발휘할 수 있게 만드는 중이다.

    핵심 소스코드의 50% 이상을 완전히 뜯어서 새로 만들었다. 또한, 인터페이스의 비주얼도 대폭 향상해서 요즘 대세라고 할 수 있는 3D 효과를 듬뿍 넣었다.

    덕분에 486에서는 좀 버거울 수 있겠지만, 펜티엄급 CPU라면 차원이 다른 컴퓨팅을 경험할 수 있다.

    아이디와 암호를 경쾌하게 입력한 유재원은 엔터키를 딱 눌렀다. 그러자 화면이 접히면서 깔끔한 바탕화면이 순간 나타났다.

    바탕화면 등장과 함께 시작프로그램으로 설정해둔 프로그램들이 자동으로 실행되었다. ID 웹 브라우저와 ID 톡이었다.

    띵띵!

    두 프로그램이 실행을 마치자마자 알람이 쏟아졌다. 밤새 올라온 글도 많았고, 이메일도 상당했다. 죄다 ‘긴급’이니 ‘중요’니 하는 머리말이 달린 게 상당했지만, 유재원은 그보다 먼저 ID 톡을 클릭했다.

    중앙당이 움직여야 할 만큼 급한 것이나 중요한 것만 그렇게 머리말을 달라고 지침을 내렸지만, 이제껏 유재원의 기준을 넘는 진짜는 없었기에 마우스를 움직이는 유재원의 손놀림엔 망설임은 없었다.

    ID 톡을 열어 보니 ID 휴먼 리서치에서 보낸 IDS 파일 두 개가 딱 보였다.

    하나는 일간 조사, 다른 하나는 샘플링 숫자와 조사 기간을 대폭 늘린 보강 조사 결과였다. 두 개를 모두 내려받은 유재원은 동시에 두 개를 모두 열었다.

    역시나 바로 열리진 않았다. ID 오피스가 자랑하는 최고 수준의 암호화된 상태이니 정확한 암호를 넣으라는 창이 떴다.

    “음. 결과가 좋아야 할 텐데….”

    유재원은 신중하게 암호를 입력했다. 그리곤 잠깐 멈칫하다가 엔터키를 눌렀다. 암호는 틀리지 않았고, 곧이어 로딩 상태를 보여주는 막대 그래프가 나타났고, 빠르게 차올랐다.

    “나왔다!”

    예전엔 스크롤을 한참 하고서야 결과가 나왔다. 이젠 스크롤도 귀찮아진 유재원은 문서 첫 페이지에 결과를 요약해 올리라고 지시한 덕에 문서를 밑으로 내릴 필요도 없었다.

    유재원의 눈이 큼지막하게 적힌 숫자를 빠르게 읽었다.

    그렇게 몇 초가 지났을까.

    “아.”

    저도 모르게 작은 탄식이 나오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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