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 로열로드 (王道) =========================
유재원의 손놀림은 거침이 없었다.
분필이 움직일 때마다 예술적인 수식이 녹색 칠판에 남겨졌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그 어려운 문제가 깔끔하기 정리되었다. 이쯤이 되자 교수들의 얼굴에 경악이 서리는 건 당연했다.
교수들의 반응도 각가지였다.
응용 수학과 코너 교수는 입이 분필 가루가 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떡 벌어졌고, 그보다 먼저 정신을 차린 다이엘 캐먼 교수는 혹시나 증명을 풀어낼 공간이 모자랄 거 같아서 미리 칠판을 지워나갔다.
“사진! 사진기!”
누군가는 사진기를 찾았다.
역사적인 순간을 남기는 데 사진기는 필수인 시대였다. 다행히 실험을 위해 다양한 장비가 준비된 곳이라서 여분의 필름이 남아 있는 사진기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질 좋은 렌즈가 달린 카메라가 아니라 일회용 사진기라는 게 문제였다.
보고서에 첨부할 간단한 사진을 찍기 위한 거라서 렌즈 교환식 카메라보다는 일회용 사진기를 많이 쓰는 곳이었다.
일단 찍어 놓는 게 중요했기에 교수는 열심히 판서 중인 유재원을 중심에 놓고 미어캣처럼 칠판에 집중하는 교수들이 많이 나오도록 구도를 잡고 셔터를 눌렀다.
역사적 순간의 한 장면이 볼품없는 일회용 사진기에 담기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해서, 그 공간은 구체로 변형될 수 있습니다.”
교수님들의 다양한 반응 속에서도 유재원은 차근차근 수식을 남겨가며 증명을 마쳤다. 분필을 탁 던지며 기분을 내고 싶었지만, 수식을 음미하고 있는 교수님들 때문에 그러진 못했다.
박수나 환호 같은 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 있는 교수님들은 모두 이과의 정점에 서신 분들이다. 7대 난제 중 하나가 풀렸다는 상징성이나 의미를 모르는 분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그 중요성을 알기에 유재원이 제대로 풀었는지 검증을 해보느라 정신이 없는 것이다.
다만 검증이 한순간에 딱 끝나는 건 아니다.
단순한 나눗셈 검산이라면 거꾸로 돌려보면 그만이지만, 유재원의 풀이는 고등한 수학적 풀이가 압축된 상태인지라 컴퓨터를 가지고 여러 번 계산해도 몇 주는 걸릴 일이었다.
푸앵카레의 증명에 대한 검산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상당하다. 여기엔 21세기 수학계가 도달한 지식의 정수와 어마어마한 규모의 인공지능이 결합해 만든 새로운 차원의 기법이 켜켜이 쌓여 있으니 말이다.
반의반만 얻을 수 있더라도 현재의 수학계는 몇 차원 더 진일보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하는 유재원이다.
그렇기에 너무 나간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살짝 드는 유재원이다. 하지만 후회까지는 아니었다. 푸앵카레 증명이 현실에 적용되는 건 인류의 유인 우주 탐사가 태양계를 벗어나는 수준에 이르렀을 때였다. 우주 탐사용 항법장치의 안정성을 검증해 탑승자의 안전을 책임져주는 이론의 토대가 바로 푸앵카레 증명이다.
그만큼 수학계 진일보는 일반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체감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대신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어마어마한 변동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위대한 증명을 끝낸 유재원은 찬밥신세였다.
누구는 사진을 찍고, 누구는 칠판에 써진 수식을 옮겨 적고, 누구는 암산하는지 멍하니 천장을 보는 등등.
교수님 모두 각자의 개성적인 방법으로 유재원이 남긴 증명법을 곱씹느라 정작 유재원에겐 관심이 1도 없었다.
“어, 음. 저는 이만 가볼게요. 오류나 의문이 생기면 이 전화번호로 연락 주세요. 이동전화니까 언제든 받을 수 있어요.”
유재원은 누구를 보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가까이 있는 코너 교수에게 대고 크게 말했다. 손을 휘젓는 걸 보니 알아들으신 모양이다. 유재원은 꾸뻑 인사를 하곤 자리를 뜨려고 했다.
“잠깐! 다 함께 모여서 사진 한 장만 찍읍시다!”
일회용 사진기를 들고 있던 교수였다.
사진기를 든 교수의 말에 칠판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교수들은 한 번 뒤를 보고는 다시 집중했다. 그렇다고 다 무시하는 건 아니었다. 기록의 중요성을 잘 아는 일부 교수는 카메라 앞으로 모였다.
밥 먹으러 가려던 유재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일단의 사람들이 모이니 나머지 교수도 개인행동을 계속할 수가 없게 됐다.
그렇게 다 함께 모인 후 사진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스탠퍼드 공대는 그때부터 바쁘게 돌기 시작했다.
유재원의 증명이 남겨진 전자공학과의 실험실은 마치 공과대학 교수들의 성지 순례지처럼 변했다.
서류로 정리된 걸 보거나 사진으로 찍힌 걸 봐도 무방한데 직접 찾아와서 유재원이 남긴 수식을 직접 옮겨 적는다. A4 3장 분량이라 사진을 찍는 것보다 옮겨 적기가 수월했던 게 컸다. 교수가 움직이니 당연히 대학원생도 뒤를 따랐다.
그 모습이 마치 성지 순례 같았다.
수많은 수학자가 도전했고, 그 거대한 벽에 막혀 있던 난제였다. 열심히 푼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그것을 난제에 적용할 능력이 필요했다. 어려서부터 수학의 천재라고 칭송을 받았고, 놀라운 성과를 냈던 내로라하는 존재들도 7대 난제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쓴맛을 보고야 말았다.
그걸 유재원이 단 한 방에 풀어버렸으니, 스탠퍼드 대학교가 난리가 나는 건 당연했다.
푸앵카레 추측의 증명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
칠판에 적혀 있던 증명이 IDW 파일로 정리되어 스탠퍼드 대학교 인트라넷과 인터넷 게시판에 업로드되었고, 인터넷을 타고 빠르게 확산했다.
제목을 본 이들의 반응은 대부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ID 워드프로세서는 아직 복잡한 수식 지원에 완벽하지 못해서 말로 풀어쓴 부분도 상당했는데, 이 때문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다.
덕분에 스탠퍼드와 비교적 가까운, 그리고 경쟁 관계에 있던 다른 학교의 교수들이 성지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UCLA, 버클리 대학교 등등.
이름만 들어도 명문대 느낌이 팍팍 나는 학교의 저명한 교수님들이 스탠퍼드 대학교를 찾아왔다.
시간이 지날 때마다 그런 분들이 점점 많아졌다.
급기야 스탠퍼드에서 대규모 수학 학회가 열린 것처럼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다. 그리고 이분들 모두 성지 순례를 하는 것처럼 연구실에 방문해서 칠판에 적힌 증명을 직접 두 눈으로 보았다.
그들의 반응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과묵한 분들이 많았지만, A4 3장 분량밖에 되지 않는 증명에 혀를 내둘렀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취재진도 상당했다. 그래서 더욱 표정관리에 힘을 썼지만, 본능은 막을 수 없었다. 예술적인 증명에 그저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이걸 풀어낸 사람이 누구라고요?”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이가 물었다.
“유재원이라는 학생입니다.”
다이엘 캐먼 교수가 정중히 대답했다. 캐먼 교수의 눈빛에는 질문을 던진 이에 대한 존경심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질문을 던진 이는 수학계의 전설이었던 존 내쉬다. 1950년 박사학위 논문으로 냈던 비협력 게임 이론을 발표했고, 지금에는 게임 이론으로 불리며 사회 과학 특히 경제학에서 전반적으로 활용되는 이론을 냈던 희대의 천재였다.
동시에 비운의 천재이기도 했다.
그 역시 7대 난제에 대한 도전자였고, 거기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7대 난제에는 다양한 문제가 있었고, 그중에서 제일 유명한 것은 역시나 리만 가설이었다.
리만 가설은 인류가 도달한 수학 지식의 맨 끝을 막고 있는 거대한 장벽과도 같은 존재감으로 수많은 도전자를 받아냈고, 그 모두를 실패자로 만들었다.
존 내쉬도 그런 실패자 중의 하나였다.
아니다!
가장 유명한 실패자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존 내쉬는 게임 이론을 창시할 만큼 수학계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권위자였다. 그런 그가 리만 가설을 풀기 위해 너무도 몰두한 나머지 급기야 조현병이 발병했다.
무려 30년째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강인한 정신력으로 망상적 생각과 이성적 사고를 분리해 내어서 정상 상태로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유재원. 언제 들어본 것 같은 느낌이군요.”
“예. 입학하기도 전에 유명한 사람이었죠. 안드로이드라는 운영체제를 만들어 마이크로소프트를 인수하며 PC 운영체제를 통일한 ID 그룹의 회장입니다.”
요양 중이었지만, 존 내쉬도 유재원의 이름을 신문에서 본 기억이 났다. 그렇지만 뇌리에 떠오르는 건 이름뿐, 구체적인 정보는 없었다.
“혹시 검증이 끝나기 전에 제가 그 주인공과 만나 볼 수 있겠습니까?”
존 내쉬의 호기심이 동하는 건 당연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예, 최대한 빨리 자리를 주선해보겠습니다.”
다이엘 캐먼 교수는 유재원의 휴대전화 번호를 떠올리며 정중히 답했다.
동시에 어떻게 해서든 그 자리에 끼어들 궁리도 했다. 희대의 천재가 만나는 자리다. 아무 일도 없을 수도 있지만, 어마어마한 것들이 쏟아질 수도 있으니 꼭 옆에 있고 싶은 다이얼 캐먼 교수다.
존 내쉬는 이름만으로 미국 전역을 들썩이게 만들 존재였다.
은둔했던 존 내쉬가 스탠퍼드 대학교에 방문했다는 것 자체로 큰 뉴스였는데, 그 이유가 수학계 7대 난제의 해결이라니, 세상이 깜짝 놀랄 소식이었다.
샌프란시스코를 시작으로 캘리포니아 정도에서만 화제였던 소식은 곧장 공중파 뉴스를 타고 미국 전역에 소개되었다. 미국에서의 특종은 전 세계 특종이나 다름이 없었기에, 미국에서 유럽으로, 아시아로 순식간에 확산했다.
-충격! 7대 난제 중 하나인 푸앵카레 추측, 완전 증명!
-대충격! 7대 난제 해결한 주인공은 16살 스탠퍼드 신입생!
-대충격! 16살 스탠퍼드 신입생 알고 보니 ID 그룹 회장님!
자극적인 제목의 속보들이 쏟아지는 것도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그냥 충격도 아니고, 대 충격이란다.
덕분에 유재원은 오랜만에 집에서 날아온 호들갑스러운 전화도 받았다. 부모님께 적당히 설명해 드리려 했는데, 이젠 이력이 붙으신 부모님은 진작 어떤 일인지 다 알고 계셨다.
주변에 능력 좋은 직원이 다 붙어 있으니 유재원이 따로 설명해줄 일이 줄었다. 대신 노벨상을 받는 거 아니냐고 김칫국을 한 사발이나 마시고 계셔서 진정을 시켜드렸다.
7대 난제 해결은 분명 대단한 업적이다. 하지만 노벨상에 수학상 부문은 없어서 어떻게 해도 받을 수는 없었다. 대신 수학계에는 노벨상에 비견되는 필즈상이라는 게 있는데, 매우 높은 확률로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다시금 유재원의 이름값이 하늘 높게 치솟았다.
어려운 푸앵카레 추측에 대한 건 간단히 설명하고 넘어갔고, 단지 유재원과 7대 난제 해결, 노벨상에 비견되는 필즈상 같은 걸 집중해서 다뤘다.
다만 그렇지 않아도 ID 그룹을 통해 이름을 널리 알린 유재원이었기에, 보통 사람들은 이번에도 좀 대단한 일을 했지, 그 대단한 일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확실히 이해하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그렇다고 일상에 변화가 없는 건 아니었다.
“보스, 오늘도 1급 경계태세입니다.”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렉의 말에 유재원은 끌고 나왔던 전기 자전거를 도로 집안에 두고 나왔다.
1급이라는 건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의 행사 같은 상황을 뜻한다. 즉, 대학교로 가는 길에 취재진이 가득하다는 이야기다.
어떻게 해서든 한 마디라도 따고 싶어서 무턱대고 돌진하는 무대포 기자들은 미국이 훨씬 많았다. 다행히도 유재원의 경호팀은 그러한 취재 경쟁을 일찌감치 예상했고, 충분히 대비했다. 전기 자전거도 당분간은 사용하지 않았고, 경호원들의 숫자도 몇 배로 보강했다.
안전을 확보하는 데 돈은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었기에, 전생과 같은 불미스러운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유재원이 탄 자동차의 앞과 뒤, 심지어 좌우까지 경호원이 탄 차가 가드를 해서 파파라치가 가까이 다가오는 걸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었다.
교수님이나 동기들이 보기에 유난스럽다고 할지 모르겠다고 걱정을 했는데, 다들 충분히 이해해줬다.
“재원이다!”
“진짜? 펜이랑 종이 어디 있지?”
“유재원! 사인 좀 해줘!”
당연히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일부 동기들이 갑자기 파파라치로 돌변한 것은 아니지만, 록스타의 팬처럼 변해버렸다. 그게 며칠 전이었는데, 지금도 여전했다.
미국인들은 제스처도 크고, 반응도 화끈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니 며칠 동안 주변이 시끄러울 거라고는 예상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소란스러움의 강도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이미 사인은 100장이 넘게 해준 것 같았는데, 매일 등교할 때마다 어디서 또 종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쓰던 글씨 또 쓰는 건 매우 지겨운 일이었지만, 유재원은 여유가 있으면 웃으면서 이름을 남겨줬다.
“어허! 어디 감히 미천한 천민이 스탠퍼드 공대의 희망! ID 그룹의 회장이자 7대 난제의 해결사인 유재원 님 앞을 가로막는 것이냐! 훠이훠이! 물렀거라.”
더욱이 유재원이 학생들에게 시달리기 시작하면 어떻게 알고 조너선이 찾아와서 물리쳐 주었다. 제발 희망이라느니, 회장님이라니 하는 소리만 안 했으면 좋겠지만, 우람한 덩치로 손을 휘저으니 싹 떨어졌다.
“고마워요!”
“흐흐, 샌님들 물리치는 건 일도 아니지.”
조너선은 고개를 치켜들며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난 듯 유재원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3시 이후에 시간이 되니?”
3시?
그 이후로 수업 잡아 놓은 건 없다. 사실 있어도 상관없다. 패스트트랙을 뚫어낸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출석 일수가 졸업에 발목을 잡을 일은 사라졌으니 말이다. 다만 아직 ‘다름이 없다’는 것은 아직 검증 작업이 진행 중인 탓이다.
7대 난제가 무척이나 어려운 문제인 만큼, 검증 작업도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그럼요!”
하여튼, 조너선이라면 혹시 미팅이라도 주선해줄까 싶은 기대도 있는 유재원이었다.
“잘됐네. 캐먼 교수님이 코호(COHO)에서 좀 보자신다.”
역시 유재원이 김칫국 마신 것이었다.
코호는 스탠퍼드 대학교 내의 식당이자 카페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간단히 챙겨 먹을 음식과 커피, 음료가 매우 싸게 나오는 곳이어서 학생이나 교직원들의 주요 약속 장소이기도 했다.
학과장님이 소개팅이나 시켜준다고 코호에서 부르겠는가. 보나 마나 푸앵카레 증명에 관한 일로 부르신 게 틀림없다.
“안녕하신가? 존 내쉬라고 하네.”
유재원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코호에서 유재원을 기다리고 있던 캐먼 교수 옆에는 전설의 레전드 존 내쉬도 함께 있었다.
“아, 네! 유재원입니다!”
존 내쉬의 명성은 유재원도 익히 알고 있던 바였다.
리만 가설 증명에 너무도 몰입한 나머지 조현병에 걸렸고, 초인적 정신력으로 이를 극복하고 학계에 복귀했다가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대략적인 일대기가 바로 떠오르는 정도였다.
IT 기술만큼 열심히 배운 건 아니었지만, 존 내쉬의 게임이론도 몇 주간 공들여 공부하던 때도 있었다.
곧이어 주문한 커피가 나왔고 대화가 이어졌다. 이를 통해 이 자리는 캐먼 교수가 아닌 존 내쉬가 요청해서 만들어진 자리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진지하게 물어볼 질문이 하나 있기 때문이란다.
전설의 질문이라니.
유재원은 잔뜩 긴장했다. 혹시나 판서로 옮겨다 놓은 수식에 오류라도 있었던 것일까?
“음, 다음에 도전할 건 무엇인가?”
정작 존 내쉬의 물음은 유재원의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아직 검증도 되지 않았는데요?”
“물론. 그렇지만 자네는 이미 증명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을 텐데? 나 역시나 저렇게나 아름다운 수식에 오류가 있을 거라는 느낌은 조금도 들지 않더군.”
역시 존 내쉬다.
그렇기에 유재원도 본인의 마음을 포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혹시 제가 다른 7대 난제에 도전하길 바라시나요? 아쉽겠지만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어요.”
7대 난제를 또 푸는 건 유재원에겐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푸앵카레 추측과 달리 다른 것들은 기억의 궁전에 들어가서 보고 와야 하는 것들이다. 귀찮기도 하고, 연달아 난제를 해결하면 문제가 될 소지가 크다는 판단이 나온다.
의외인 것은 존 내쉬의 반응이다.
수학자인 존 내쉬였으니 유재원이 다른 7대 난제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하면 실망할 텐데, 오히려 미소를 띠었다.
“역시 괜한 기우였어.”
기우?
“자네와 같은 천재를 많이 보았네. 나 역시 남들과는 다르다고 자부하는 하고 있고. 그렇기에 자네가 리만 가설에 도전한다고 할까 걱정이 컸네. 자네와 같이 샛별처럼 빛나는 존재가 끝이 보이지 않는 문제를 잡고 시간을 낭비한다면 그 얼마나 손해인가. 만에 하나 나처럼 마음에 병이라도 생기면 그건 자네 혼자만의 슬픔이 아니라 전 인류의 비극이 될 것 아니겠나.”
이어진 존 내쉬의 말에 유재원은 비로소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정답이다!
세기의 문제라고 7대 난제라는 이름이 붙은 문제들이지만, 7가지 문제도 난이도 차이는 분명히 있었다.
당연하게도 7대 난제의 끝판왕은 리만 가설이다. 그거 풀려다가 큰코다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눈앞에 있는 존 내쉬 역시 산 증인이다.
“신경을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리만 가설에도 흥미가 있긴 한데, 그건 사람이 풀 문제가 아닌 거 같더라고요. 게다가 난제를 푼 건 패스트트랙 패스를 받기 위해서거든요. 저는 수학엔 그다지 흥미는 없고, 반도체 설계 쪽에 관심이 커요.”
사람의 머리론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였기에 어마어마한 성능의 인공지능까지 참전했다. 그러고도 답을 얻진 못했다. 리만 가설을 위해 인공지능을 돌린 곳의 동태를 보았을 때, 분명 뭔가 소득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대중에 공개하진 않았기에 결국 유재원도 백지 상태였다.
언젠가 리만 가설에 도전하긴 할 테지만, 본인이 직접 할 마음은 없고, 거대한 인터넷 회사가 했던 것처럼 인공지능에 맡길 생각이었다.
“그래. 동감하네. 그런데 수학에는 흥미가 없다고?”
너무 솔직했나 보다.
하긴 며칠 전에 푸앵카레 추측을 예술적으로 증명해놓은 자가 수학에 흥미가 없다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그렇지만 유재원의 말은 가감 없는 진실이었다. 전자공학과를 선택한 건 반도체 설계와 소재에 힘을 써서 전생보다 빠른 IT 기술 발전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그러지 말고 수학에도 관심을 두는 건 어떻겠나? 7대 난제를 하나 해결한 것만으로도 그 업적은 길이 빛날 것일세. 그만큼 자네의 앞길도 탄탄할 것이고.”
“죄송합니다.”
유재원은 딱 잘라 거절했다. 그러자 존 내쉬의 얼굴에 아쉬움이 진하게 올라왔다. 수학계에 초신성이 될 존재가 엄한 분야에 빠졌다고 말이다.
존 내쉬의 제안이 고맙긴 해도 아닌 것은 아니다.
이미 유재원은 존 내쉬가 제안한 것보다 훨씬 탄탄하고 빛나는 길을 걷는 중이었다. 역사상 그 누구도 걷지 못한 전인미답의 길이자, 황금의 로열로드였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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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가 마무리되었네요.
콤팩트하게 쓰려고 했는데, 이번에도 예정보다 한 편이 더 늘어났습니다.
내일 새로운 챕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