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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205화 (205/1,007)
  • [205] Command & Conquer =========================

    일본에 큰 변수가 발생한 게 틀림없다.

    천만다행으로 유재원에게는 이로운 방향으로 발생한 모양이다. 예정보다 2개월이나 일찍 목표를 달성했다면, 닛케이 지수는 예전보다 훨씬 가파른 낙폭으로 떨어졌다는 이야기니 말이다. 그래서 예정보다 2개월이나 일찍 14,000선을 찍었다는 이야기다.

    -어떻게 할까요?

    지침을 바라는 빈센트 그린힐의 물음에 유재원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닛케이 지수 선물 투자의 목표 금액은 160억 달러였다. 무려 400%가 넘는 수익률이다. 월가의 투자자들이 알면 입이 떡 벌어질 이야기였다. 이건 투자가 아니라 투기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닛케이 지수의 변동을 알고 있는 유재원에게는 욕심을 적당히 갈무리한 적정 투자였다.

    엄청나게 공격적으로, 무모하다고 할 만큼 투자했다면 400%가 아니라 500, 600%의 이익도 노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거기에서 유재원은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ID 인베스트먼트가 투기적 헤지펀드로 역사에 기억되게 하고 싶진 않았다. 남들이 복기했을 때, 비록 닥터 둠 소리를 듣겠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합리적 수준에서 투자가 이뤄진 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청산하세요.”

    생각을 정리한 유재원은 단호히 말했다.

    조금 더 포지션을 유지하면서 수익의 극대화를 노릴 수도 있지만, 큰 변수가 발생했으니 닛케이가 어떻게 튈지 아무도 모른다. 이미 얻은 160억 달러의 수익도 절대 무시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청산한 다음 모두 송금하진 말고 30억 달러 정도는 남겨두세요.”

    그렇다고 더 큰 기회가 올지도 모르는 걸 넋 놓고 볼 생각은 없는 유재원이다.

    투자 원금은 그대로 두고 수익금만 빼기로 했다. 그래도 130억 달러나 되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현재 환율 780원으로 계산한다면 10조 원이나 되는 엄청난 금액이다.

    넥스트컴 사장인 헨리 사무엘이 그렇게도 바라던 캘리포니아 지역 케이블 회사 정도만 사는 게 아니라, 미국 전역을 담당하는 컴캐스트를 인수하는 것도 가능하다. 심지어 메이저 영화사 중에 콜롬비아 픽처스, 파라마운트 정도는 인수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전부 다 한꺼번에 사는 건 무리고, 하나만 선택할 수 있지만, 그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바로 수행하겠습니다.

    마음이 바쁜 빈센트 그린힐을 바로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아참! 청산이 완료되면 투자 매니저들의 거래 이력을 모두 보내주세요. 그리고 닛케이 선물의 거래 대금 변동 현황도요.”

    -분량이 무척이나 많을 텐데요.

    “괜찮아요. 인사 평가와 보너스 계산에 쓸 거니까 로우데이터 그대로 보내주세요.”

    -알겠습니다.

    인사 평가와 보너스라는 소리에 빈센트 그린힐은 바로 알아들었다.

    물론 그 목적에 데이터를 쓰겠지만, 진짜 목적은 닛케이 지수에 큰 변동이 일어난 점에 대해 알아보려는 것이다.

    로우데이터가 좀 크더라도 유재원에겐 문제없다. 본인이 만든 스프레드시트의 여러 통계 분석용 함수를 이용하면 눈에 잘 보이는 도표로 바꿔낼 수 있으니 말이다. 오히려 로우 데이터가 클수록 더 정확한 분석을 할 수 있으니, 환영이다.

    “테스트가 잘 끝났어요?”

    통화를 마치고 차 밖으로 나와 보니 마이클 볼트와 그렉이 유재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예! 승차감이나 기동성도 좋습니다. 균형도 잘 맞고, 브레이크도 안정적입니다.”

    유재원의 물음에 그렉이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올리면서 칭찬이 자자했다. 마이클 볼튼 사장도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당연한 결과였다.

    거의 2달이 넘는 시간 동안 마이클 볼튼 사장은 직원 둘과 함께 프로토타입 하나만 만드는 데 온 정성을 기울였다. 프레임에 바퀴를 달고, 모터를 단 후에 수도 없이 타보면서 테스트를 했을 것이다.

    마이클 볼트 사장의 덩치도 그렉과 비슷했으니, 결과가 나쁘다는 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저도 타도되죠?”

    “옙!”

    이번엔 순순히 유재원에게 자전거 운전대를 넘겨주는 그렉이었다.

    운전대를 넘겨받은 유재원은 곧장 페달을 밟으려고 했는데, 볼트 사장은 참으로 깐깐한 사람이었다.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 방향 지시등 작동법 등의 조작법을 설명 듣고서야 운전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것도 그렉에게 해줬던 것보다 훨씬 더 상세하게 설명했다. 여기에 안전모와 무릎 보호대를 착용해야 했다.

    유일한 물주이다 보니 안전에 특별히 챙겨주는 것이었다. 한국에선 오토바이를 탈 때도 헬멧 같은 건 선택이었는데, 미국은 교통법이 깐깐해서 절대 안 된다고 한다.

    캐주얼한 정장이긴 해도 안전 헬멧, 무릎 보호대까지 착용하니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래도 자전거를 타고 액셀러레이터를 당기니 약간의 짜증은 훌훌 털어졌다. 토크와 가속력이 좋은 전기 모터답게 당기는 족족 속도가 올라갔다. 공터가 좁아서 무작정 속도는 올리지 못했지만, 달리는 성능 그 자체로는 21세기의 전기 자전거에 못지않았다.

    균형도 잘 맞아서 브레이크를 잡을 때도 불안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완벽하네요! 이대로 출시해도 될 거 같아요.”

    시승을 마친 유재원도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보였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그만큼 만족했다는 이야기다. 시간과 자금을 엔지니어에게 아낌없이 투자하니 이렇게나 좋은 결과로 보답을 받는다.

    “예, 품질은 자부합니다. 문제는 가격이죠. 어느 누가 10만 달러가 훌쩍 넘는 전기 자전거를 사겠습니까? 회장님 같은 분이 아니면 어림없지요.”

    역시 문제는 경제성이다.

    탄소섬유 프레임에 일본산 기어박스, 선수용 바퀴와 브레이크. 여기에 실험실에서나 겨우 만든 리튬 배터리까지. 부품 가격이 엄청나게 비쌌다. 게다가 이게 다가 아니다. 리튬 배터리 충전을 위한 기기가 따로 있는데, 덩치가 80년대 가정용 변압기처럼 컸다.

    충전기 덩치는 무척이나 큰데, 덩칫값은 못했다. 완전히 방전된 배터리를 다시 충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8시간 정도로 무척이나 길었다. 리튬 배터리는 이제 겨우 기능 실증을 하는 단계라서 고속 충전에 대한 노하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충전 문제도 있고, 가격도 엄청나니 대중화는 무리다. 그렇지만 모든 기술이 그렇듯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이거 받으세요.”

    프로토타입에 만족한 유재원은 그렉에게 차에 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렉이 전기 자전거를 번쩍 들어 자동차 트렁크에 넣으러 가는 동안, 유재원은 상의 주머니 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볼트 사장에게 내밀었다.

    “이건?”

    봉투를 받으면서도 갸우뚱하는 볼트 사장이다.

    “보너스에요. 사장님 것, 직원들 것 분류해서 넣었으니 사장님도 챙기시고, 직원들에게도 나눠 주세요.”

    “고맙습니다!”

    보너스라는 말에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볼트 사장이다.

    30만 달러에 유재원이 그의 회사를 사들였다. 반대로 볼트 사장은 30만 달러를 한 번에 벌었다는 이야기도 된다. 그런데 무모한 전기 자전거 사업을 한다고 빌린 돈이 많아서 그 많은 돈은 순식간에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다행히 ID 테크놀로지에서 GM에서 받은 월급보다 더 많은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고 있으니 완전히 무일푼이 된 건 아니다. 봉급 생활자에게 예상치 못한 보너스만큼 좋은 건 없었으니 볼트 사장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리고 개발비를 더 보내드릴 테니까 차기작도 계속 만들어 보세요. 이번에 만든 것도 좋긴 한데, 개선할 점도 많이 있잖아요.”

    “예! 가격과 성능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모델을 기필코 완성하겠습니다!”

    유재원에게 본인의 첫 번째 작품을 납품한 다음, 이걸로 됐다고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었던 볼트 사장이었다. 유재원은 그런 마음을 읽은 것처럼 후속 제품 개발까지 지시하면서 불안감을 말끔히 날려버렸다.

    그건 볼트 사장이 유재원을 잘 몰랐기에 생긴 불안감이었다.

    유재원은 라이트닝 볼트 사를 단지 본인의 취미로 인수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모두 수제로 만든 부품이지만, 대량 양산으로 단가가 내려가고 배터리 가격과 충전 속도도 개선되면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21세기 실리콘밸리의 많은 사람은 자전거 혹은 전기 자전거를 타고 출근했고, 가격만 합리적이라면 일반인에게 보급하기에도 충분하다.

    무엇보다 라이트닝 볼트에 대한 유재원의 비전은 단지 전기 자전거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전기 자동차!

    유재원의 눈에는 라이트닝 볼트의 번개 마크를 달고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들의 모습이 선했다. 전기 자전거와 전기 자동차는 같은 산업이라고 취급해도 무방하다. 프레임이 좀 더 복잡하고, 편의장치도 더 많이 들어가게 되지만, 구동계 핵심 장치는 배터리와 모터였다.

    전기 자전거로 시작한 라이트닝 볼트 사가 전기 자동차 산업까지 진출하는 건, 기존의 자동차 회사가 전기 자동차를 개발하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이다.

    환호하는 볼트 사장을 뒤로하고 유재원은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온 유재원은 현관에 전기 자전거 거치대부터 만들었다.

    물론 그렉이 옆에서 도와주었다.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유재원보다 먼저 시승을 해볼 땐 참 터프했는데, 지금은 무슨 도자기를 다루는 듯했다. 볼트 사장으로부터 몸값을 들은 다음부터 그랬다.

    차에 실을 때도 그렇게나 조심스러울 수가 없다. 하긴 10만 이상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이면 그럴 수밖에 없다.

    벤츠 자동차보다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자전거라니. 만약 유재원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차라리 자동차를 타고 다니라는 말이 절로 나왔을 것이다.

    하여튼, 그렉의 조심스러운 손길 때문에 일이 길어졌다.

    마트에서 사 온 조립식 거치대에 충전기를 고정하고 콘센트와 연결하는 간단한 일로 대충 하면 3분에 끝날 일이었는데, 10분이나 걸렸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만큼 꼼꼼하다고 볼 수도 있으니, 유재원은 그저 감사한 마음이다.

    완전히 방전된 건 아니지만 일단 충전기와 연결해 놓고 유재원은 익숙하기 그지없는 본인의 집무실에 앉았다.

    컴퓨터를 켜고 ID 톡을 실행하니, 이메일이 왔다는 알림이 떴다. 빈센트 그린힐이 보낸 로우 데이터였다.

    모두 11개나 되는데, 하나는 빈센트 그린힐의 것이고 나머지 10개는 투자매니저가 했던 거래 데이터였다.

    ID 스프레드시트로 만들어진 데이터였고, 11개의 형식은 모두 같았다.

    표준화를 잘하는 유재원답게 ID 인베스트먼트의 보고서 형식이나 로우데이터 포맷도 진작 정해놨기에 갑작스러운 요청에도 큰 혼란이 없었다.

    “어디 보자. 용량이 좀 크네.”

    전체 용량을 보니 10MB나 된다. ADSL이 아니었으면 모뎀으로 전송하기엔 너무도 버거운 용량이다.

    ID 그룹은 다르다! 넥스트컴 헨리 사무엘 사장 덕에 내부 전산망은 ADSL로 업그레이드해놨다.

    전송속도는 무려 1Mbps! 이론적으로 초당 128킬로바이트를 전송한다. 그렇지만 여러 장애나 통신 불량 등으로 실제 속도는 70~100킬로바이트 정도 된다. 그래도 ISDN보다 20배는 빠른 속도라서 10MB짜리 압축 파일도 몇 분 만에 전송할 수 있다.

    유재원은 압축을 해제하고 파일을 열었다.

    “빠르네!”

    펜티엄 CPU라 그런지 486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빠르게 문서가 열렸다.

    인텔은 5월 말 발매 예정이고, 거대 컴퓨터 업체들로부터 선주문을 받는 중인데, 이걸로 조금 논쟁이 벌어지는 중이다.

    가격이 문제였다.

    발매되는 모델은 펜티엄 60MHz와 66MHz 두 개인데, 66MHz 모델의 가격은 999달러, 60MHz 모델은 898달러로 책정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단품 가격이 아니라 100개 단위 패키지를 구매할 때의 가격이다. 그러니 소매점에서 소비자들이 개별 구매할 때는 1,200달러 정도를 줘야 손에 넣을 수 있다.

    거대 컴퓨터 제조사들도 비싼 가격에 난색이다. CPU만큼 메인보드 가격도 비싸서 완제품을 만들면 최소 6천 달러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성능이 좋다지만 게임만 하는 소비자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여기엔 유재원도 한 몫 했다.

    ID 소프트웨어의 존 카멕이 주도해서 만든 3D 라이브러리 글라이드 X2와 이를 하드웨어적으로 가속하는 3D 카드 때문이다.

    3D 가속 칩이 설계될 때 기본으로 삼은 건 486이었다. 그렇기에 486에서 가장 적절한 가속 성능이 나온다. 물론 제조사마다 제작 노하우가 다르니 성능의 차이가 있긴 하다. 그래도 가장 저렴한 모델을 사용하더라도 초당 30만 개의 폴리곤을 계산해 낼 수 있다. 여기에 3D용 텍스처 메모리가 4MB나 되고 이미지 보간법까지도 가속한다.

    이러한 기술을 통해 확실히 다른 비주얼의 충격을 선보였다.

    안드로이드 1.0이 발표될 때 함께 공개된 버추얼 복싱은 3D 가속카드 발매와 함께 업그레이드되었다.

    예전엔 목각인형처럼 각이 진 복서들이 3D 가속카드의 힘을 받으면 사람다운 모습으로 거듭난다. 움직임도 한층 더 부드러워지고, 사실적으로 변했다. 그렇지 않아도 충격적이었던 그래픽이 다시 한 번 진일보한 것이다.

    덕분에 제일 저렴한 3D 가속카드라도 300달러가 넘는 가격을 자랑하지만,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중이다.

    이와 함께 많은 게임 제조사들은 2D 게임에서 3D 게임으로 급격한 기술 전환을 진행 중이었다. 3D 모델링이나 프로그래밍이 낯선 환경이긴 해도 한 번 리소스를 만들면 두고두고 사용할 수 있었기에 개발 효율성도 좋았다.

    물론 제일 큰 기대작은 완벽한 3D 환경으로 만들어진 둠 2였다.

    3D 카드 홍보를 위해서 첫판만 플레이할 수 있는 데모 버전을 공개했는데, 엄청난 용량임에도 받아가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당연히 호평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발매 예정일은 12월, 혹은 내년 1월 중이었는데, 몸이 단 유통사들이 모두 찾아와서 ID 소프트웨어가 한바탕 난리가 난 적도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일렉트로닉아츠였다. 유재원과의 계약으로 엄청난 대박은 연달아 터트리면서 몸집을 불린 일렉트로닉아츠다. 그런데 둠 이후엔 별다른 히트작이 없으면서 사업의 규모가 급속도로 축소 중이었다.

    미식축구나 메이저리그 야구 라이센스를 따서 만든 스포츠 게임이 아니었다면, 업계 2위로 추락하고 말았을 정도다.

    몸이 단 일렉트로닉아츠의 호킨스 사장은 어마어마한 계약금을 불렀다. 이뿐만이 아니라 둠 2의 차기작까지도 미리 계약을 하자며 난리였다. 유재원은 당장 급할 게 없으니, 계약을 미루면서 몸값을 올리는 작전을 펼치는 중이다.

    92년도 2분기부터는 3D 카드가 대세다.

    중요한 점은 현재 출시되는 3D 카드를 펜티엄 PC에 장착하더라도 486에 비해 큰 성능의 향상은 없다. 펜티엄의 처리 능력에 맞게 성능을 더 키운 카드가 나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어쩌다 여기로 왔지?”

    파일을 열다가 잠깐 딴생각에 빠졌던 유재원은 머릴 절래 흔들면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곤 날카로운 눈으로 모니터에 집중하면서 스프레드시트의 고급 함수를 다루면서 로우데이터 가공을 시작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역시! 따라쟁이들이 문제였네.”

    모니터에 뜬 그래프를 보며 유재원은 결론을 확정했다. 사실 빈센트 그린힐에게서 카폰으로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짐작은 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유재원의 ID 인베스트먼트가 일본에 투자했다는 건 유명한 일이었다. 게다가 투자회사들이나 금융전문가들은 어떤 형태로 투자했는지 추측도 해볼 수 있었다.

    닛케이에서 매일 실시간으로 공개되는 여러 데이터를 보면 딱 각이 나오니 말이다. 게다가 유재원은 의도를 숨기지도 않았다. 닛케이에 입성해서 보란 듯이 선물과 옵션을 동원해 지수 하락에 배팅했다.

    이유를 물었을 때도 명쾌하게 답했다.

    일본의 부동산 시장 붕괴가 시작되었고, 이로 인한 은행의 줄도산이 실물 경기에 영향을 크게 줘서 일본 경제가 침체할 것이라고 말이다.

    긴가민가했던 투자자들이나 펀드들은 정말 유재원의 말대로 지수가 곤두박질치기 시작하자 감탄을 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큰돈이 오가는 국제적 투자 시장에서 확실한 정보가 있을 때 가만히 있을 사람이나 조직은 없다.

    소규모 업체들이 먼저 뒤를 이었고, 큰손들이 뒤따랐다.

    그런 움직임이 점차 거대한 흐름이 되었고, 급기야 파생상품 시장의 흐름이 주식 시장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투자 시장에서 제일 큰 지분은 역시나 역사와 전통을 가진 주식이었다. 그런데 선물과 옵션 같은 파생상품으로 인한 수익이 몇 배로 커지고 단기에 얻을 수 있으면서 존재감이 역전된 것이다.

    데이터를 보면 몇몇 큰손들은 닛케이 지수에 등록된 주식 종목 중 덩치가 큰 몇 개를 공매도까지 하면서 주가를 떨어뜨렸다. 이를 통해 지수의 낙폭을 보다 확대해 본인들이 들고 있는 파생상품의 수익을 극대화한 것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구나.”

    유재원이 보았을 때, 현재 시점에서 닛케이 지수는 낙폭과대였다. 큰손들이 지속해서 지수를 떨어뜨리니, 이제 개미들이 공포에 질려 내다 파는 지경이다.

    이로 인한 일본 경제의 피해는 막대했다.

    금리가 치솟아 금융 비용이 증가했을 뿐만이 아니라, 자금 조달도 힘들어지면서 회사가 건실한데 자금 경색으로 망하는 회사들이 줄을 이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게 마음이 별로 쓰이지 않네?”

    본인의 개입으로 인해 닛케이 지수의 낙폭은 훨씬 더 가팔라졌고, 실물 경기에 대한 파급도 강력했다.

    미안함이 좀 느껴져야 하건만, 유재원은 양심이 없는 사람처럼 그런 마음이 조금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전생에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하도 많이 봐서 이 정도로는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지 않게 된 것 같다.

    대신 어떻게 하면 이 상황 이용해 본인과 ID 그룹의 이익을 극대화할 방안이 수도 없이 떠올랐다.

    하도 많아서 적당한 방법을 고르기도 힘들었다.

    덕분에 유재원은 투자 데이터를 들춰보면서 가장 적절한 방법을 고르는 작업을 한 시간이나 더 해야 했다.

    “좋아, 이걸로 정했다.”

    도출된 유재원의 대응법은 두 가지였다.

    너무도 과도하게 폭락했지만, 독자 기술을 가진 건실한 기업의 주식은 매입하는 것 하나! 그리고 닛케이 지수선물에 더욱더 강력한 하락 포지션을 설정하는 것이다.

    재테크 초보들이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가 떨어지는 칼날을 잡는 거다. 무슨 말인고 하니 지켜보고 있던 금융상품이나 주식의 가격이 하락하는 걸 보고 매수에 들어가는 사람이 참 많다. 초보가 보기엔 충분히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곧 반등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는 것이지만, 대부분 더욱 큰 하락이 일어나며 물려버린다.

    지금의 닛케이 지수가 그렇다.

    투자를 시작할 때 설정한 선에 닿긴 했는데, 그 속도와 낙폭은 전생의 케이스와 차원이 다르다. 게다가 유재원을 따라 일본으로 들어온 투기 자금의 규모도 상당했다. 여기서 유재원이 다시 한 번 압박하면 수렁에 빠지고 있는 일본 경제는 다시 한 번 휘청일 것이다.

    이후 휘파람을 불며 값진 전리품을 챙겨오면 마무리하면 완벽하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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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빅뱅이론 지지가 더 크네요. 확실히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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