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 Command & Conquer =========================
92년 4월 5일.
한국은 식목일 행사로 나무 심기에 열심일 때, 유재원은 뉴욕의 한 호텔에서 클린턴과 만날 수 있었다.
장소는 뉴욕의 호텔 스위트룸이었다.
이름이 있는 A급 호텔은 아니었지만, 스위트룸이라고 장소가 특정되었을 때, 유재원은 뭔가 은밀한 만남을 상상했다. 그런데 정작 도착해보니 은밀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선거운동 때문에 좀 번잡할 겁니다.”
로비로 내려와 유재원을 데리러 온 클린턴 측근이 미리 양해를 구할 때도 그런가 보다 했는데, 스위트 룸에 올라가 보니 시장통이 따로 없었다.
클린턴과 함께 움직이는 선거운동원들이 뉴욕 예비 선거를 위한 유세 전략과 동선, 공약 등을 만들면서 쏟아내는 말로 시장 한복판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사람들 숫자도 많아서 유재원과 클린턴이 마주 앉은 거실에도 사람들이 오고 갈 정도다.
“미안합니다. 선거 사무실에 도둑이 들어서 급하게 옮겨야 하는데, 좋은 자리가 안 나서 임시로 이 꼴이 됐습니다.”
선거 사무실에 도둑이 들었다는 말을 하면서도 클린턴은 아무 일 아닌 것처럼 넉살 좋게 이야기했다.
도둑이라니?
전생의 기억에는 이런 사건은 없었다. 게다가 도둑이라고 해서 쉽게 넘어갈 일도 아니다. 클린턴은 미국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제일 유력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도둑질은 위장이고 실제로는 중요한 자료를 빼가거나 도청기를 심어 놓을 수도 있다.
클린턴도 이걸 다 짐작했으니 임시 사무실을 호텔로 옮기는 과감한 선택을 했을 것이다.
“괜찮습니다. 유력한 대선후보 사무실이면 이렇게 활기차게 돌아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죠.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유재원도 클린턴의 말에 공치사부터 했다. 곧이어 커피가 나왔고, 간단한 이야기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대화는 살짝 겉돌았다.
유재원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클린턴은 유려한 언변으로 이야기를 살짝 돌렸기 때문이다.
그때, 호텔 문이 다시금 열리면서 화통한 목소리가 터졌다.
“와! 둘 다 벌써 와 있었군. 늦어서 미안해. 차가 밀릴 걸 고려했어야 했는데.”
유재원도 익히 아는 목소리였다.
클린턴의 러닝메이트인 앨 고어였다.
앨 고어는 성큼 거실로 들어왔다. 클린턴과 먼저 포옹을 했고, 악수하려고 손을 내밀었던 유재원도 끌어안으며 친밀감을 표시했다. 악수는 몰라도 남자끼리 포옹을 하는 건 미국에서 오해할만한 행동이라고 배웠었는데, 앨 고어를 보니 딱히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클린턴은 앨 고어를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다.
앨 고어가 한쪽에 자리하자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진짜 실세 힐러리 클린턴도 옆에 있었으면 좋았는데, 그녀는 개인적인 일로 하루 늦게 뉴욕에 입성할 예정이라고 한다.
“IT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군. 역시 자네 말대로 실리콘밸리의 핫아이콘에게 직접 들어보니 이해가 잘 되네.”
클린턴은 좋은 청중이었다.
유재원의 말에 다양한 반응을 보이면서 호응해줘서 훨씬 편안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대화의 주제는 IT 산업이었다. 클린턴이 물어보면 유재원이 답하는 형식이었다. 물음은 대부분 저번 앨 고어가 실리콘밸리에 찾아왔을 때 나누었던 이야기였다.
정보통신 분야의 잠재력과 활용 가능성 등등.
“거봐, 직접 들어봐야 감을 잡을 수 있다니까.”
클린턴에게 정보통신 바람을 넣은 사람은 앨 고어였던 모양이다.
자기 말이 맞았다면서 몇 번이고 클린턴에게 확인을 받았다. 단지 기분이 좋아서가 아니라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IT 산업에 투자를 위한 정책을 확대하려고 그런 모양이다.
“알았네. 알았어. 정보고속도로는 꼭 추진하도록 하지. 대신 효과가 없으면 자네 책임이라고.”
“그럼, 효과는 확실하다니까. 아니 확실한 정도가 아니라 이미 우리는 한발 뒤처졌다고. 망할 공화당 때문에!”
앨 고어가 살짝 흥분했는지 목소리가 높아졌다. 유재원도 공감하는 내용인지라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런데 불똥이 유재원에게도 튀었다.
“여기 선견지명이 있는 유재원 회장 덕에 한국은 벌써 정보고속도로를 깔고 있다니까. 그 효과는 직접 물어보라고.”
앨 고어의 말에 클린턴이 다시 유재원을 돌아보았다.
난감해진 건 유재원이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한국 역시 정보고속도로로 뭔가 성과를 낸 건 없었기 때문이다.
IT 혁명이 일어나려면 광대역 통신망만 깔려서 될 게 아니라, 컴퓨터의 보급률도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은 아직도 286이 대세인 나라였고 온라인으로 연결된 컴퓨터 숫자는 더욱 적었다. 정보고속도로는 준비되었으니, 한국의 경제가 크게 성장해서 집집이 컴퓨터가 보급되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미미했다.
넥스트컴 서버로 삼기 위해 비싸게 들어온 메인프레임은 아직도 제 성능을 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 사용자들은 아직도 100만은커녕 50만 명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네, 일단 원하는 정보를 빠르게 찾아볼 수 있고, 사람과의 통신이 자유로워지면서 업무의 효율도 대폭 증가했습니다. 전에는 단순한 음성 통신만 가능했지만, 지금은 메시지는 물론이고 서류나 이미지 같은 파일도 직접 주고받을 수 있게 됐거든요.”
일단 유재원은 정보통신혁명이 일으킨 경제 효과보다는, 달라진 삶의 양상에 관해 설명했다. 미국 대통령 후보를 앞에 두고 거짓말은 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나중엔 고화질의 동영상까지 전송할 수 있을 거예요. 원하는 뉴스나 영상, 심지어 개인이 올린 짧은 클립도 공유되겠죠? 정보의 교류가 광범위해지고 빨라질수록 사회의 발전은 가속화되고 경제도 성장할 겁니다.”
유재원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 유재원이 쐐기를 박았다.
“IT 혁명이든, 다른 무엇이든 결국 본질은 더욱 나은 삶을 위해서입니다. 문제는 경제인데 바보들은 그걸 모르죠.”
말을 마친 유재원은 살짝 클린턴의 기색을 살폈다.
그를 대통령으로 이끌어준 결정적 한 마디를 담았는데, 과연 잘 받아먹었을까 하는 걱정이 살짝 들었다.
“음! 문제는 경제! 바보들은 그걸 모르지.”
클린턴의 말에 유재원은 속으로 짧게 한숨을 돌렸다.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 (It's the economy, stupid!)’는 미국 유권자들의 마음을 한 번에 사로잡은 문제였다.
걸프 전쟁을 승리로 장식한 부시지만, 경제에선 꽝이었다. 미국 역사에서도 찬란히 빛나는 80년대의 황금기를 시원하게 말아 먹은 부시는 경기를 연착륙시킨다면서 대대적인 감세 정책을 펼쳤다.
국고는 크게 줄기 시작하는데, 기업들의 신규 투자는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세금이 줄어든 만큼 회사에 쌓이는 이익은 어디론가 다 사라지고 말았다. 이로 인해서 실업자 숫자가 많이 늘어났고, 파산하는 가구도 생겨났다.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에 클린턴은 경제를 이슈로 가져갔고, 해법으로 IT를 선택했다.
IT 붐으로 90년대 중반부터 다시 한 번 상승한 미국의 경제는 다시금 찬란히 빛났다. 백악관에서 지저분한 스캔들로 청문회까지 섰던 클린턴이지만, 미국인이 좋아하는 대통령 리스트 상위권에 늘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다 경제적 성과 덕이었다.
“오! 좋은데!”
옆에서 듣고 있던 앨 고어까지도 화들짝 놀라면서 말했다.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반응이 너무나 좋아서 유재원도 만족했다. 이 정도면 자신의 존재감을 클린턴에게 충분히 어필했다고 자부해도 될 것 같았다.
“사실, 자네에 대한 의구심은 조금 있었어.”
한결 친해졌다고 생각한 클린턴은 본인의 속내를 말하기까지 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유재원을 한국의 정권이 비자금 창구로 쓰고 있는 거 아니냐는 의심이란다. 어이가 없어서 무슨 이야기인지 좀 자세히 말해 달라고 하니, 예전 석유 선물 이야기를 언급했다.
그러니까 유재원이 노 대통령의 비자금 창구라고 의심했다고 한다. 하긴, 유재원의 나이만 보면 지금의 성과를 절대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 테니 이해한다. 그래도 너무하긴 했다. 하필 노 대통령의 비자금 창구라니.
그렇지만 현직 대통령도 아니고, 클린턴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한정적이었으니 청와대에 자주 가고, 노 대통령과도 자주 어울렸던 기사만 보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너무하시네요. 사업 때문에 만난 거지, 하수인은 아니거든요.”
유재원이 발끈했다.
“미안하네.”
클린턴도 곧장 웃으며 사과했다.
의도적으로 발끈하긴 했지만, 클린턴의 빠른 사과에 분위기는 더욱 좋아졌다. 덕분에 사전 약속된 1시간을 훌쩍 넘어서 거의 2시간에 가까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유익한 시간이었네.”
그러고도 모자라서 클린턴은 돌아가려는 유재원에게 아쉬움을 표시할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유재원은 대화를 나누던 중에 클린턴 취향의 좋은 정책들을 하나둘 언급했기에 때문이다. 대화하면 할수록 뭔가 남는다는 느낌이었으니 헤어지는 게 싫은 것이 당연했다.
“저도 좋았습니다. 특히 클린턴 후보님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어서 유익했습니다. 덕분에 앞으로의 예측도 훨씬 수월했고요.”
“오, 그런가? 젊은 천재가 보는 전망은 어떤 것인지 말해 줄 수 있겠나?”
“못할 것도 없죠. 민주당 대선후보에 무난히 오르실 것이고, 약간의 위기도 있겠지만, 백악관에 확실히 입성할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될 것 같다는 소리에 클린턴의 표정이 밝아졌다. 2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보았던 가장 밝은 표정이다. 그런데 뒤에 이어진 약간의 위기라는 소리에 한껏 올라갔던 표정이 곧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위기라니?”
“본인도 잘 알고 계시는 문제 말입니다. 스캔들이죠.”
“아, 그건 언론에도 이야기했지만, 루머일세.”
“네네, 루머라고 해도 후보님의 가장 약한 포인트라는 건 틀림 없죠. 상대는 그 점을 집요하게 노릴 것이고요. 본선에서는 지금보다 더 확실한 대비를 하셔야 할 겁니다.”
“알겠네, 당연히 그래야지.”
유재원의 말에 클린턴이 심각해졌다.
“하여튼, 후보님의 진면목을 봤으니 저도 투자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후원용 계좌 번호 좀 주시겠어요?”
심각한 이야기도 여기까지.
후원 이야기가 나오자 표정을 바로 회복하는 클린턴이다. 앨 고어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민주당의 유력 후보라고 해도, 아직 선출된 건 아니었고 본선에서는 또 어떨지 확신을 할 단계는 아니었기에 후원금 모금이 많이 부족했다.
반면 유세 활동은 전국을 다 돌아야 하니, 돈이 쓰일 곳은 너무도 많았다. 지금 호텔 스위트 룸에 들어온 것도 부담돼서 딱 하루만 묵기로 했을 정도다.
ID 테크놀로지의 대박에 석유 선물 투자까지 이어지면서 유재원은 미국에서도 알아주는 부자로 인정을 받았다.
클린턴은 곧장 본인의 명함에 직접 후원 계좌 번호를 적어서 유재원에게 줬다. 그러면서 덕분에 얼마나 입금할지 잔뜩 기대하는 모습이지만, 그걸 또 대놓고 물어볼 수 없으니 답답한 표정이었다.
다만 만나기도 전에 먼저 100만 달러를 민주당에 후원했던 ID 그룹이었으니, 서로 호감과 친분을 다진 이후, 입금할 돈은 이보다는 클 거라고 기대했다.
“그럼 다음에 봐요.”
호텔 로비까지 배웅을 나온 둘에게 손을 흔들어준 유재원은 가벼운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숙소로 가는 길, 카폰을 이용해서 대기하고 있던 엘런에게 입금을 지시했다.
-1천만 달러, 입금 완료했습니다.
원래는 800만 달러였다.
여기에 유재원은 200만 달러를 더 더해서 1천만 달러를 보내기로 했다. 민주당 후원금 리스트에서 보면 엘런이 잡은 800만 달러면 최고였지만, 공화당을 보면 그렇진 않았다. 집권당 프리미엄에 민주당보다 훨씬 더 열성적이고 돈도 많은 지지자를 가지고 있어서 모집된 후원금 규모가 훨씬 컸다.
조금 더 돈을 쓴다고 유독 튀는 것도 아니었기에 1천만 달러를 맞췄다.
입금을 확인한 클린턴과 앨 고어가 깜짝 놀랐음은 당연했다. 후원 계좌를 열고 나서 이렇게 큰 뭉칫돈을 받아 본 적은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나중에 소식을 들은 힐러리 클린턴도 유재원을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할 정도였다.
유재원의 이름 석 자가 그들의 뇌리에 깊게 새겨졌다. 나중에 연락이 와서 캘리포니아 유세를 할 때 다시 한 번 만나기로 했다.
그야말로 성공적인 미팅이었다.
시간은 슬슬 흘러 벌써 5월이 되었다.
클린턴은 예전처럼 마침표를 찍진 못했다. 유재원이 경고했던 스켄들이 터지면서 50%의 지지도 달성에 실패한 것이다. 그래도 40% 이상은 달성했기에, 대세는 클린턴에게 기울었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한국에서도 대선 준비는 한창이었다.
저번 달만 하더라도 내분에 휩싸였던 민주자유당은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을 하기로 하면서 빠르게 수습되었다. 이제까지 대통령 후보는 각 당의 총재가 나서는 게 보통이었고, 당원이나 대의원들은 들러리였다. 그런데 민주자유당에서 최초로 경선으로 선출하기로 하면서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언론에서도 호들갑이었는데, 사실 민주자유당에서 제일 강력한 후보는 김영삼이었고 차기 대통령 당선에도 유력했기에, 절차적 민주주의의 요건만 맞춘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렇지만 예전보다 진일보한 것은 틀림없었다.
민주자유당이 먼저 치고 나간 덕분에 민주당이나 통일 국민당에서도 경선을 시행하기로 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한 번 진일보하면 후퇴하기는 불가능하다. 앞으로 대통령 후보 선출은 다들 경선이 대세다.
덤으로 경선 결과에 불복하고 새로운 당을 만들어 뛰쳐나오는 사람들도 여럿 나오면서 재미를 더해줄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전명헌 의원님은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애초에 선거판에 나온 이유가 대통령이었으니, 밥이 되든 죽이 되든 직진하는 게 전명헌의 방식이었다.
이처럼 한국이나 미국이나 대선을 준비한다고 바쁠 때, 유재원도 개인적인 일과 사업을 병행하느라고 바빴다.
가장 먼저 확정된 것은 스탠퍼드 진학이다.
5월 중순까지 진학할 대학을 확정해서 통보해주는 게 미국의 입시 방법이었고, 이에 따라 유재원도 스탠퍼드를 선택했다. 대학교 바로 앞에 집을 산 걸 보고도 혹시나 하며 마음을 졸이던 스탠퍼드 대학교도 유재원의 선택에 환호하며 다음 절차로 들어갔다.
그렇지만 유재원은 특별한 합격생인지라 학교에서 딱히 할 건 없었다. 보통의 외국인 합격자의 경우 비자 발급이나 숙소, 부모님의 수입에 따른 학비 공제 등의 편의를 봐주는 데, 유재원은 비자와 숙소도 완벽했고 수입도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는 그냥 가을에 학기가 시작되면 수업에 참석하면 그만이다.
이전에도, 앞으로도 자신처럼 완벽히 준비된 입학생은 또 없을 거라고 스스로 자랑하는 유재원이었다.
다만, 대학생활이 다른 학생처럼 원만히 흘러갈 거라고는 장담할 수는 없다.
이미 전생에 다 해본 것들이기도 하고, 회사 일이 바쁘면 수업을 빼먹을 확률이 무척이나 높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교수들과 협상으로 몹시도 어려운 과제를 풀면 출석일에 상관없이 학점을 주는 방식으로 거래해볼 심산이다.
교수도 해결 못 한 문제를 풀면 출석이나 시험은 의미가 없는 것 아니겠는가.
학교 일은 그렇게 결정한 유재원은 준비물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유재원은 실리콘밸리로 출동했다.
학용품을 사려면 문구점에 가는 게 정석이지만, 유재원이 챙길 물건은 문구점에서 파는 것들은 아니었다.
라이트닝 볼트.
뭔가 RPG 게임에 나오는 기술 이름 같다. 실제로는 오늘 유재원이 방문한 실리콘밸리 회사의 이름이다.
이름은 거창한데, 정작 사무실은 픽업트럭 한 대 들어가면 꽉 차 보일 만큼 작은 곳이다. 덕분에 유재원은 단돈 30만 달러에 이 회사를 인수할 수 있었다. 물론 수억 다루는 유재원의 입장에서 헐값이지, 제대로 된 평가는 회사의 가치를 따져야 한다. 1달러짜리 회사를 30만 달러에 샀다면, 돈을 쓰레기통에 버린 것보다 못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30만 달러가 적정한 투자인지, 돈 지랄이었는지 판단하기엔 아직 모호했다.
라이트닝 볼트는 이제 막 시작한 스타트업 기업이었기에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지켜봐야 한다.
유재원은 긍정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라이트닝 볼트가 다루는 아이템은 바로 전기 자전거였기 때문이다.
“이건가요?”
라이트닝 볼트 사무실 겸, 작업소에 방문하니 유재원을 기다리고 있던 자전거가 있었다. 마름모꼴의 프레임에서 탈피한 매끈한 유선형의 자전거다. 미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당연하다.
유재원은 라이트닝 볼트를 인수하면서, 돈만 준 게 아니라 자전거의 디자인 콘셉트까지 함께 잡아줬기 때문이다. 여기에 라이트닝 볼트의 개발자들이 가진 전기 자전거 기술이 합해지면서 지금 눈앞에 보이는 최신의 모델이 탄생했다.
“예, 사장님!”
콧수염이 인상적인 30대 중반의 남자가 유재원의 물음에 바로 대답했다. 라이트닝 볼트의 창업자 마이클 볼트 씨다.
“카본 프레임을 채용해 무게를 대폭 줄였습니다. 여기에 보내주신 리튬 배터리를 쓰니 한 번 충전해 다닐 수 있는 주행 거리가 50마일을 훌쩍 넘었습니다.”
"50마일이요?"
미터법이 익숙한 유재원은 쉽게 가늠되지 않는 거리였다.
"80.46킬로미터입니다!"
암산 능력도 좋은 지 바로 미터 법으로 바꿔 말해주는 마이클 볼트다.
"또한, 교환식 배터리 구조를 채용했기에, 여분의 배터리로 바로 교체할 수도 있습니다. 기어 고단으로 바꾸면 시속 30마일, 아! 50km까지 나오죠!"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프로토타입에 대한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GM에서 전기모터 엔지니어로 근무하다가 퇴사 후, 전기 자전거 사업에 뛰어든 실력자였다. 프레임은 탄소 섬유를 다루는 다른 스타트업 기업에 외주를 줘서 만들었고, 마이클 볼트 씨는 모터와 배터리를 담당했다.
한 번 충전으로 80km 이상이라.
1992년 도에 이보다 더 나은 스펙의 전기 자전거는 없을 거라고 자부하는 유재원이다. 이 정도면 아침에 충전 한 번 해서 온종일 학교 캠퍼스를 누비는 데 불편함은 전혀 없을 것이다.
“한 번 타 볼까요?”
“예! 문제 없습니다! 충전도 미리 다 끝내놨습니다.”
마이클 볼트 씨는 바로 프로토타입의 운전대를 바로 유재원에게 넘겼다. 자전거를 넘겨받은 유재원은 신나게 달려보려는 데 막는 사람이 있었다.
“회장님, 안 됩니다.”
경호원 그렉 와일러였다. 프로토타입은 안정성이 입증되지 않았으니, 자신이 대신 운전해보겠다는 것이다. 유재원은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그렉 와일러는 조금도 물러나지 않았다. 틀린 소리도 아니어서 유재원은 운전대를 순순히 넘겨 주었다.
그렉 와일러가 볼트 사장에게 전기 자전거의 조작법을 숙지하고 사무실 앞 주차장을 돌기 시작했다. 몸무게가 100kg이 넘는 거구인 그렉 와일러였음에도 가속도 매끈하게 이루어졌다.
따르릉!
그렉이 자전거를 타는 걸 지켜보는 데, 익숙한 전화벨 소리가 났다. 주차장 한쪽에 세워둔 유재원의 자동차의 카폰에서 나는 소리였다.
“여보세요?”
얼른 달려가 전화를 받으니 반가운 목소리가 전해졌다.
-ID 인베스트먼트, 빈센트 그린힐입니다. 회장님 계신가요?
“네, 저에요.”
-아! 회장님이 바로 받으셨군요. 다행입니다. 닛케이 투자 건으로 전화했습니다. 조금 전 목표 수익률을 달성했습니다.
“에? 벌써요?”
빈센트 그린힐의 말에 유재원이 깜짝 놀랐다. 목표 달성이라니? 계획대로라면 7월에나 들려올 소식이었다. 예정보다 2개월이나 일찍 목표가 달성했다는 보고라니.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완전 감사합니다~!!!!
주인공의 캠퍼스 라이프가 이제 멀지 않았군요.
참고 자료로 빅뱅 이론을 봐야 할지, 논스톱을 봐야할지 모르겠습니다~ㅋ
둘 중에 독자님의 취향은 어떠신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