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203화 (203/1,007)
  • [203] Command & Conquer =========================

    미국은 한창 선거 열풍 중이다.

    대선이 시작된 건 아니고, 민주당과 공화당의 후보 선출을 위한 예비 선거가 한창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시골인 아칸소 주의 주지사라는 타이틀 하나뿐이었던 클린턴은 돌풍이 되어 미국 민주당 예비선거를 휩쓰는 중이었다.

    4월 초에는 뉴욕 주의 예비선거가 있는 데, 미국 매스컴들은 여기서도 클린턴의 압승이 예상된다고 했다.

    신선하기 그지없는 젊은 얼굴에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언변, 그리고 힐러리 클린턴이라는 막강한 처가의 지원까지 얻은 클린턴에 비해서, 다른 민주당 후보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낙마하기도 했고, 지지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강점이 얼마 없었다.

    그렇다고 빌 클린턴이 안심하고 있을 단계는 아니다.

    뉴욕에서 최소 50% 이상의 지지도를 얻어야 대세로 확정할 수 있고, 다른 후보들로부터 패배 선언을 받아낼 수 있는데, 아직 그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던 탓이다. 또한, 초반엔 강력한 서포터였던 그의 부인 힐러리 클린턴이 요즘엔 구설에 오르는 게 종종 있었다.

    자신감이 넘치는 건 좋은데, 현직 대통령이자 공화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부시를 서슴없이 비난할 정도로 공격적이었다.

    유재원이 보았을 때, 힐러리의 행동은 다분히 계산적인 것 같았다. 클린턴이 추문으로 공격을 받자 대응한 것이기 때문이다. 제니퍼 플라워즈라고 클린턴의 여자친구라며 실명으로 보도된 사람까지 있을 지경이니, 이대로 두면 클린턴의 대선 행보에 큰 타격으로 될 게 분명했다.

    그야말로 핀치에 몰렸을 때, 힐러리 클린턴이 부시 대통령도 혼외정사를 가졌다고 폭로했다. 부시는 당연히 펄쩍 뛰며 헛소문이라고 했고, 클린턴 역시 똑같은 헛소문이라고 무마하면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유재원이 보았을 때 클린턴의 스캔들은 진짜인 것 같았다.

    지금도 이렇게 스캔들로 그렇게 고생해 놓고, 백악관에 들어가서도 자제하지 못하고 일을 저질렀고, 결국 청문회까지 서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여튼 다음 미국 대통령이 확실한 클린턴이 자신과 빨리 만나보고 싶다는 앨런의 이야기에 유재원은 반갑기보다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뉴욕 예비 선거가 코 앞이라 무척 바쁠 텐데 시간이 난다는 거예요? 지금 거기서 선거 운동일 텐데?”

    “예, 그 점이 문제입니다. 아무래도 보스가 뉴욕까지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면 캘리포니아 주 예비 선거가 있는 6월까지 기다리면 됩니다.”

    하루하루 급변하는 것이 선거판이었다.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빌 클린턴의 주가는 하늘 높이 솟아오른다. 일찍 만나서 크게 지원하는 것이 클린턴의 환심을 살 수 있는 일이었다. 나중에 대세가 되고 나서 지원하는 건 경쟁자가 너무도 많아지니 말이다.

    유재원은 다이어리를 펼쳐 4월 초 스케줄을 살펴보았다.

    역시 별다른 스케줄은 없었다. 신규 사업을 시작한 건 없으니 딱히 바쁜 일이 없었다. 그나마 실리콘밸리에 투자한 벤처 기업을 둘러 보는 일 몇 개 잡혀 있고, 영화사와 미팅이 한 개 있었다.

    “알겠어요. 그럼 제가 이동하는 거로 하죠.”

    간단한 스케줄은 먼저 하던, 뒤로 미루든가 해서 클린턴과 최대한 빨리 보기로 했다.

    “아, 그리고 빌 클린턴에게 얼마나 후원했나요?”

    “ID 테크놀로지의 이름으로 100만 달러입니다.”

    “음, 적네요.”

    100만 달러가 개 이름도 아니고, 적다는 말부터 나오는 유재원이다. 더욱 재미있는 건 맡은 편에 앉은 앨런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은 정치후원금 제도가 무척이나 잘 발달 되었다.

    정치인들이 선거 운동을 해야 할 땅 넓이도 다른 나라들과 차원이 달라서 선거 비용도 한 차원 더 높다. 대통령 선거처럼 미국 전역에서 치러지는 선거라면 수천억의 비용이 든다.

    미국 전역에 나오는 6대 지상파 텔레비전 광고는 물론이고, 지역마다 따로 운영되는 로컬 방송국이나 라디오 방송국도 있고, 인구 밀집 지역에 광고판이나 배너를 내걸어야 하는 데, 이게 다 돈이었다.

    후보들을 수행하는 비서진이나 선거대책 본부의 임직원들까지 다 대동해서 다녀야 하니, 교통비와 숙박비도 무시할 수 없다.

    아무리 부자라도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선거 자금이 필요해진다. 그렇기에 로비가 합법적인 미국은 선거 자금 모집에도 한계를 없앴다. 대신 분명한 구분을 두어서 투명하게 관리하는 데 집중했다.

    커다란 구분이란 하드머니와 소프트머니다.

    하드머니는 후보 개인에게 바로 줄 수 있는 후원금인데, 개인당 1,000달러라는 한도가 있다. 하드머니는 지출할 때도 깐깐해서 200달러가 넘는 지출 항목은 모두 명시해야 한다.

    하드 머니의 반대가 소프트머니다. 보통은 슈퍼 팩이라 불리는데, 후보의 후원회나 정당에 기부하는 자금으로 제한이 없다.

    소프트머니 역시 하드머니와 같이 어디든 쓸 수 있다. 나중에 가서야 정경유착의 위험이 커진다는 이유로 규제 법안이 만들어진다. 그게 2002년의 일이었으니, 지금은 제한이 없다. 소프트머니로 모금한 돈도 얼마든지 후보 본인이 직접 사용할 수 있다.

    “민주당 후원자 리스트를 뽑을 때 제일 먼저 나오게 하려면 얼마나 써야 할까요?”

    유재원의 물음에 앨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본인이 모시는 젊은 회장의 배포가 보통이 아니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정치판에서도 이렇게 지를 줄은 몰랐다.

    민주당이나 공화당 모두 미국의 양대 축으로서 열성적인 지지자들이 있는 정당이었다. 여기엔 전통의 명가나 거대한 기업의 수장 등이 즐비했고, 이들이 내는 후원금도 상당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리스트 최상단에 오르겠다면 상당한 지출이 필요했다.

    앨런의 두뇌 회전이 점차 빨라졌다. 평소엔 그저 가십 취급했던 역대 정당 후원금 랭킹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적정선을 가늠했다.

    “800만 달러 정도일 것 같습니다.”

    앨런의 말에 유재원은 ‘저렴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뻔했다.

    그도 그럴 것이 21세기만 되어도 억 단위 후원금이 수두룩했기 때문이다. 미국이니 당연히 달러 기준으로 억 단위였다.

    최고 기록은 공화당이 갖고 있는데, 석유 재벌인 코크 형제가 4억 달러를 낸 것이 사상 최대의 후원금이었다. 당연히 후원금을 낸 대가는 톡톡히 챙겼다. 코크 형제의 최대 현안은 캐나다에서 텍사스주 휴스턴까지 이어지는 장장 3,200km짜리 원유 송유관 건설 계획이었다.

    일명 키스톤 파이프라인인데, 막대한 후원금을 낸 코크 형제는 이걸 지을 수 있는 허가를 받아냈다.

    이를 통해 코크 형제는 1천억 달러의 잠재 이익을 얻어낼 수 있었다. 250배 남는 장사였다.

    “알겠어요. 클린턴과 미팅 후에 그 정도 후원을 할 테니 준비해주세요.”

    지금은 그렇게 많은 돈을 쓸 필요가 없다. 800만 달러면 유재원이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200만 달러나 적었다.

    “알겠습니다.”

    원래 냈던 100만 달러가 있으니 총 9백만 달러를 클린턴에게 후원하는 것이다. 앨런이 봤을 때 상당히 거대한 액수였지만, 클린턴이 당선되기만 하면 그 이상으로 얻어낼 수 있는 게 많았으니 해볼 만하다고 판단했다.

    며칠 후.

    “난리가 났네.”

    유재원은 모니터를 보며 혀를 찼다.

    모니터 위에 뜬 화면은 언제나처럼 넥스트컴의 뉴스 페이지였다. 유재원이 뉴스 페이지를 즐겨 본다는 걸 아는 헨리 사무엘 넥스트컴 사장은 뉴스 페이지의 기능과 디자인을 끌어올리기 위해 항상 노력했다.

    그 덕분에 뉴스 페이지에 기사를 공급하는 언론사 숫자도 많아졌고, 사용자 편의적인 기능도 대폭 늘어났다.

    최근 업데이트된 기능은 나의 관심 기사 몰아보기였다.

    많이 보고 싶은 주제를 몇 가지 키워드로 입력해 놓으면, 해당 기사를 저절로 스크랩해서 보여주고, 최신 기사가 떴을 때 알람으로 알려주는 것이었다. 게다가 미국에서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한국어 페이지에도 적용되었다.

    완성도가 무척이나 높아서 유재원도 편리하게 사용 중이었다.

    등록한 단어는 민주자유당, 통일 국민당, 김영삼, 전명헌, 최현희와 같이 제법 무게감 있는 사람들과 단독, 특종, 충격 등등 언론이 주로 선 굵은 기사에 사용하는 수식어들이었다.

    지금 유재원의 모니터에 띄워진 건 ‘충격’과 ‘민주자유당’ 두 가지 키워드에 걸린 기사였다.

    -충격, 민주자유당 선거 패배 내분 극심. 책임론 대두.

    저번 총선에서 과반에 실패한 민주자유당은 재빠르게 여당 성향의 무소속 후보들을 긁어모으려고 했다.

    인위적 정계 개편을 노린 것이다. 여당이 국회 과반을 잃었을 때의 무력감은 저번에도 충분히 경험했기에, 무척이나 빠른 행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보다 더 빨리 움직인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명헌 의원이다.

    아직도 통일민주당에서는 직책일 받지 않아서 평범한 의원 신분이지만, 국회든 국민이든 누구도 전명헌을 평범한 초선 의원 취급하지 않았다. 통일민주당에서 전당대회로 선출된 총재나 원내에 입성한 통일국민당 국회의원들 44명이 투표해서 뽑은 원내대표보다 전명헌의 말 한마디가 더 강력했다.

    그런 전명헌이 철석같이 따르는 사람이 바로 유재원이다.

    유재원은 무소속 의원을 노렸고, 전명헌은 적극적으로 따랐다. 영입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민주자유당으로는 가지 못하게 하라고 했고, 결국 성공했다.

    민주자유당이 온갖 이권을 제시하며 무소속 의원 모셔오기 작전을 수행했지만, 결국 145석에 그치고 말았다.

    국회 과반은 149명이니 4명이나 모자란다. 국회에서 그들이 원하는 법안을 입법하려면 민주당이나 통일 국민당과의 협조가 필수적이 된 것이다.

    그렇게 국회 과반 획득에도 실패하자 민주자유당에서는 총선 실패에 대한 책임을 따지는 사람들이 나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기사에는 노 대통령의 계파와 김영삼 후보의 계파가 크게 충돌했고, 당이 쪼개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보수 신문이라 그런가?

    여당의 악재에 엄살이 너무도 심했다.

    “쪼개지긴. 더 큰 판이 하나 있는데.”

    총선에서 지긴 했다지만, 대선을 보면 희망은 분명히 있었다. 총선에서 민주자유당을 찍은 사람들이 대선 투표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면 당선 가능성은 90% 이상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이번 민주자유당의 내분은 일부러 책임론을 크게 부풀리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김영삼 쪽에서는 공천을 개판으로 한 노 대통령 계파를 축출하거나 축소해서 대통령 후보 확정시키고, 동시에 여당 지지 성향의 지지자들에게 위기감을 안겨서 투표 집결시키는 용도로 보인다.

    민주자유당이 망할 것 같다고 방심하면 큰일이다.

    정치판에서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다행히 전명헌 의원은 통일 국민당의 예상 밖 선전에 흥분하지 않고 중심을 잘 잡고 있었다.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했고, 각 상임위 위원장과 위원 선정을 일사천리로 진행 중이다. 통일 국민당은 적어도 법제사법위원회와 기획재정위원회, 건설교통위원회 중에 2개의 위원장을 노리고 있었다. 법제사법위원회는 국회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법률을 심의하는 곳이었고, 그만큼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원래는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이 헌법에 어긋나는 지, 법률적 요건은 충족하고 있는지 검토하는 역할인데, 이를 빌미로 다른 위원회의 권한을 침해하거나, 법률을 마음대로 고치는 등의 행위를 거리낌 없이 저지르기도 했다. 아예 문제가 되는 법률은 심사하지 않고 몇 년씩 썩히다가 임기만료폐기가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기획재정위는 국가의 재정과 경제 정책에 대한 국회의 의사 결정을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부서였다. 연말 예산 철이 되면 매우 중요해지는 부서였기에, 각 당의 경제통들이 활동했고 입김도 강하다.

    건설교통위원회 역시 힘이 국회에서 강력한 위원회였다. 주택, 토지, 건설, 수자원은 물론 철도, 도로, 항공, 물류를 담당하는 부서였기 때문이다. 단어 하나하나 보면 힘과 자금이 철철 넘친다.

    국회의원이 가장 생색내기 좋은 게, 도로를 뚫고 건물을 올리는 등의 도시 개발과 인프라 관련된 모든 사안을 다루다 보니 그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다.

    “잘 될까?”

    알짜 중 알짜 상임위원회 세 곳 중 2개를 가져온다는 건 유재원이 보기엔 무리였다. 차라리 법사위원회와 교문위 같은 걸 노려보면 괜찮을 것 같은데, 전명헌 의원님은 따로 계산이 있는 것 같으니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잘 되면 대박이고, 아니라도 상관없지.”

    한국은 국회의원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권한을 준 나라였다. 그런데 그보다 더 강력한 권력을 집중한 자리도 있으니 대통령이었다. 괜히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온 게 아니다.

    이러한 권한을 잘만 사용하면 나라를 효과적이고도 강력하게 다스리며 진일보시킬 수 있지만, 제 욕심 차리기에 집중하면 나라의 등골을 빼먹기에도 쉽다.

    14대 국회가 정식으로 시작하는 6월까지는 한국의 정치판은 무척이나 시끄러울 것이다. 어쩌면 14대 국회가 개원하더라도 불과 몇 개월 후에는 대선이라서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하여튼, 개원하면 두 가지 법안은 꼭 통과시켜달라고 해야지.”

    안전점검 강화와 상시 점검단 운영, 전환사채·신주인수권부사채 등의 발행에 대한 규제 법안이다. 민주자유당, 혹은 민주당과 적당히 딜을 하면 충분히 국회통과는 가능할 것 같았다.

    “그나저나, 최현희 회장님 반응이 없으니 심심하네.”

    전환사채는 최현희에게는 치명타였다. 여기에 20억 달러를 들여서 일성 그룹의 주요 계열사 주식을 싹쓸이 중이었다.

    유재원의 공격적인 매수 지시가 있어지고 나서, 일성 전자나 일성 건설, 일성 물산 등의 주식은 최소 2배 많게는 3배 가까이 뛰었다. 규모가 좀 작은 제일 섬유는 목표로 했던 전체 지분의 10%를 넘었기에 매수를 중단했고 이후 주가는 하락 중이다.

    대주주의 권리로 전문가들을 동원해서 장부를 열심히 들추고 있다. 여기엔 일반적인 공시로는 공개되지 않는 자료들을 요구해서 보는 것이다. 섬유 회사에서 오랫동안 회계업무를 보았던 전문가들을 동원했으니, 탈탈 털리는 일만 남았다.

    덩치가 큰 일성 전자나 일성 건설은 아직 목표 달성은 못 했지만, 꾸준히 매입 중이었으니 조만간 일이 마무리될 것이다.

    오너라면 당연히 지분의 변동에 민감할 텐데, 아직 반응이 없는 걸 보면 뭔가 다른 일을 또 꾸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유재원은 큰 걱정을 하진 않았다. 하늘 아래에 새로운 것은 없다고, 전생에 그들의 수법에 질리도록 당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어떤 음모라도 다 파괴해줄 자신감이 넘쳤다.

    다른 신문사가 올린 민주자유당 기사를 다 읽은 유재원은 다음 카테고리로 넘어갔다.

    -제2 이동통신 수주 경쟁 본격화!

    -대기업들의 장밋빛 광고전쟁 개시.

    -포항제철, 쌍용, 코오롱 앞다퉈 PR 시작!

    정치판이 총선의 후유증, 대선 준비로 한창 들끓고 있다면 한국의 경제계는 제2 이동통신의 일로 시끄러웠다.

    정부는 8월 안에 사업자 선정을 마무리하겠다고 공고를 내렸기에, 사업을 따내기 위한 기업들의 눈치 보기와 광고전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다.

    정보통신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포항제철까지 나설 정도였으니, 그 열기를 태평양 너머에 있는 유재원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이동통신이 국민 전체의 사업이므로 국민 기업 포철만이 할 수 있다고? 이게 무슨 해괴한 논리야?”

    90년대 초의 오묘한 논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유재원이다.

    “이용권 사장님은 잘 준비하고 계시나 모르겠다.”

    TG의 이용권 사장과는 최근 연락이 뜸해졌다.

    신제품 준비와 제2 이동통신 사업 입찰 준비로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 상태였기 때문이다. 두 가지 일 모두 유재원 본인과 관련이 있는 일이었기에 크게 걱정한다는 건 아니다.

    첫 번째인 신제품은 에그 시리즈의 3번째 제품이자 TG도 처음 도전하는 노트북 제조였다.

    이름은 미정이지만 프로토타입은 이미 나왔고, 양산을 준비 중이다.

    가장 중요한 디자인은 가리비에서 콘셉트를 따 왔다. 첫 번째 에그 PC를 오마주하며 폴리카보네이트를 케이스 소재로 사용했다.

    유재원이 전체적인 디자인을 스케치해주었고, TG 디자인 연구소에서 받아서 엔지니어들을 갈아댔다.

    여기에 486 CPU, 4MB 메모리, 360MB짜리 고용량 하드 디스크를 채용했고 TFT-LCD를 채용해서 화사한 색감을 자랑했다.

    배터리만으로 4시간 연속 컴퓨터를 할 수 있게 최신의 리튬 배터리를 채용했다. 덕분에 가격도 미친 수준이지만, 수요는 분명히 있을 거라고 장담한다. 유재원도 대학교 생활에 대비해서 최상급 모델을 미리 주문해 놓았다.

    제2 이동통신 사업 입찰 역시 유재원의 응원으로 시작하는 사업이었다.

    이용권이 부사장일 때부터 유재원에게 언질을 받은 상태였기에, 칼을 갈고 있었던 이용권이었다.

    물론 짜고 치는 고스톱이나 다름이 없는 이번 제2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사업을 딸 거로 생각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번 사업자 선정을 위한 사업계획서를 만들고, 기술도 실증하면 얻은 경험을 통해 세 번째 혹은 네 번째 사업자 선정 사업을 노리는 것이다.

    이용권 사장은 TG에 이동통신 사업부를 신설했다. 동시에 ID 테크놀로지 한국 지사에 컨설팅을 의뢰했다.

    TG는 의욕만 충만하지 이동통신에 대한 지식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ID 테크놀로지도 이동통신 사업에서 실적은 없긴 했지만, 넥스트컴으로 성공적인 온라인 통신 사업을 진행 중이었기에 다른 업체들보다는 훨씬 앞선 상태임엔 틀림없다. 이용권은 단지 그것만 본 건 아니었다. 이제까지 시기적절하게 이뤄진 유재원이 해준 조언의 적중률까지 생각해서 결정한 의뢰였다.

    유재원은 기쁘게 수락했다. 물론 실무는 컨설팅 사업을 책임지고 있던 김택수의 몫이었다.

    유경 치킨 가맹점 혹은 조그만 슈퍼마켓에 POS 기기 납품 사업을 하던 김택수에겐 규모 면에서 차원이 다른 거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는 중압감이 떨어졌다. 그래도 유재원이 매일 방향도 잡아주고, 어려운 문제도 해결해주었기에 막막하진 않았다.

    ID 테크놀로지의 컨설팅으로 가장 먼저 결정된 건 이동통신 사업부의 이름이다.

    TG 모바일.

    그야말로 간단명료한 이름이다. TG 모바일의 이름을 걸고 언제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날이 다른 통신사들의 제삿날이 될 것이다.

    “자, 이제 세계 최고의 난봉꾼을 만나러 가 볼까?”

    시급한 현안을 모두 처리한 유재원은 가볍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미래의 미국 대통령을 만나러 갈 시간이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완전 감사합니다~!!!

    92년이 선거가 몰려 있는 해다 보니까 정치이야기가 많네요.

    최대한 스피디하게 진행해서 빨리 넘기고 본업으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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