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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197화 (197/1,007)

[197] Command & Conquer =========================

김창완은 요즘 인생의 재미를 듬뿍 느끼는 중이다.

모두 잘나도 너무도 잘난 조카님 덕분이다. 첫째 누나의 아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아이였다.

놀기 좋아하고, 게임 좋아하고, 공부 싫어하는 그런 아이. 누나는 어렸을 때, 자기를 보는 것 같다는 소리를 집에 올 때마다 했다. 그래서 더욱 귀여워해 준 것인지도 모른다. 뭐, 실제로 누나나 매형의 장점만 타고난 조카는 그런 소리가 없었더라도 충분히 귀여웠다.

덕분에 없는 월급 쪼개서 용돈도 챙겨주고, 과자도 주고 그랬었는데 갑자기 얼마 전부터 확 달라진 것이다.

90년 설날, 그날의 낯설음을 똑똑히 기억한다. 89년 추석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침착해진 건 기본이고 눈빛마저 달라졌다. 이모들보다 외삼촌이 제일 좋다면서 달려들지도 않았다. 단지 분위기만 바뀐 게 아니었다. 컴퓨터 경진대회에서 체신부 장관상까지 받았을 정도로 천재가 되었다.

그러다가 그 잘난 조카님이 사업한다고 하더니, 진짜로 대기업에 납품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미국까지 진출했다.

매일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전하는 소식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파급력이 큰 변화였기에 김창완에게도 영향이 있었다.

ID 인베스트먼트라는 투자회사도 만들었으니, 외삼촌도 투자하라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살짝 부담되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창완의 평소 돈에 대한 생각은 식구끼리는 의가 상하지 않게 돈거래를 하지 말자는 주의였다. 돈에 문제가 생기면 아예 받을 생각이 나지 않는 금액까지만 도와주자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조카의 제안을 무시하기도 힘들었다.

누나네 집이나 매형네 집안 살림이 엄청나게 바뀌는 걸 보고 있자니, 조카님의 능력은 진짜였기 때문이다.

열심히 고민한 결과 투자하기로 했고, 그 금액은 무려 300만 원이었다. 결혼 자금으로 쓰려고 2년은 넘게 모은 돈이었다.

김창완의 300만 원은 유재원의 외가 식구들이 투자한 돈 중에 2번째로 많은 돈으로, 제일 많은 돈을 넣었던 외할아버지 1천만 원의 뒤를 이은 것이었다. 이모들은 100만 원, 50만 원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놀랍게도 300만 원은 2억6천4백만 원이 되어 돌아왔다. 석유 선물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상품에 투자해서 88배의 수익률을 터트렸단다. 실제로 되돌려 받은 돈은 2억 원 조금 남짓한 금액이었다.

여기에 세금과 비용을 제외하고 나니 6천만 원이 사라진 것이다. 그래도 김창완이 평생 일해도 만져 볼 수 없는 금액으로 되돌아 왔으니, 하늘을 날 듯 기뻤다.

이 돈이면 김창완이 그렇게도 바라던 시골 탈출도 가능했다.

소똥, 닭똥 냄새로 가득한 덕진리를 떠나 서울에서 살아도 되는 돈이었다. 텔레비전에서 찬란하게만 나오던 그 서울에 당당히 입성하는 것이다. 더구나 부모님은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면서 다 만류했지만, 조카인 재원이는 김창완의 서울행을 지지해줬다.

심지어 도곡동에 들어가라고 위치까지 쿡 찍어 주었다.

유재원은 조만간 ID 그룹 본사 건물을 도곡동에 올릴 작정이었고, 그러면 땅값이나 주변 집값도 자연히 상승할 것을 알았기에 호의를 베풀어준 것이었다.

집안에서 제일 큰 발언권을 가진 유재원의 지지 덕분에 김창완의 서울행에 외할아버지는 더 반대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작년 ID 인베스트먼트가 2차 투자자 모집의 시작을 공지했다. 단맛을 단단히 봤던 김창완은 집을 사고 남은 여유 자금을 모조리 투자했다.

그 돈이 대략 3천만 원은 넘었다.

처음 투자했을 때보다 10배나 커졌다. 집을 사지만 않았다면 1억은 더 투자했을 텐데, 집을 얻은 탓에 확 줄어들었다.

이제 저번처럼 ID 인베스트먼트의 투자만 잘 끝나길 기다리는 일만 남았는데, 92년이 되자마자 ID 그룹의 배당금 기사가 터진 것이다.

배당금이 큰 폭으로 줄어든 것을 보고, ID 인베스트먼트의 투자가 쪽박을 찬 거 아니냐는 기사였다. 김창완도 그 기사를 보긴 했지만, 믿진 않았다. 조카인 유재원이 얼마나 영특한 아이인지 직접 본 사람 중 하나였으니, 신문사가 또 이상한 짓거리를 한다 싶었다. 게다가 ID 인베스트먼트 지사에 전화를 걸어서 본인의 투자계좌 번호와 인증 번호를 불러주면 투자 수익률을 바로 알 수 있었으니, 불안하면 직접 전화해보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갑자기 ID 인베스트먼트에서 직원이라는 사람 둘이 찾아왔다. 투자 상황이 나쁘니 소나기를 피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혹시 조카가 보내서 왔느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했다. 조카가 사람을 보낼 정도였으면, 상황이 최악이구나 싶었다. 그래도 혹시나 몰라 전화기를 들어 ID 인베스트먼트 서울 지점에 전화를 걸었다.

공교롭게도 먹통이었다. 행실은 가벼워도 돈 문제에 있어 꼼꼼한 김창완은 이번엔 ID 테크놀로지로 전화를 돌렸다. 최강욱 비서실장님이라고 조카가 바쁠 때 집안을 챙겨준 분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었기 때문이다.

참 아쉽게도 그곳도 통화 중이었다.

ID 인베스트먼트의 투자 실패 기사가 처음 나왔던 때부터, 투자자들의 문의 전화가 온종일 쏟아지는 상황이 이어지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제야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느낀 김창완이다.

마지막 남은 건 조카에게 직접 전화를 해보는 것인데, 그건 꺼려졌다. 조 단위 돈을 다루는 조카에게 몇천만 원은 푼돈 아니겠는가. 거느린 직원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만큼 회사의 일이 바쁘다는 뜻도 된다. 게다가 직원을 둘이나 보내주었으니 조카는 할 만큼 한 것이다.

이들은 김창완을 비롯한 외가 식구들의 해지를 도와서 빨리 처리해주고, 원금도 보전해주겠다고 했다.

결국, 김창완은 해지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투자증서와 도장, 인증번호를 넘겨 주었고, 다음 날 통장에 돈이 들어왔다. 투자했던 3천만 원에 수익금 1천5백만 원으로 총 4천5백만 원이다.

그걸 보면서 역시 조카구나 하고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김창완이었다.

“엑?! 제가 사람을 보냈다고요?”

-예, 김창완 님은 분명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역시, 회장님 반응을 보니 아니시군요.

“그럼요. 투자 수익률은 잘 나오고 있는데, 왜 해지를 권해요?”

-역시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분명 이상한 일입니다. 임은경 감사팀장도 동의했습니다.

“조사하고 있나요?”

-예, 이틀 전에 감사팀을 보내서 파악 중입니다. 그리고 이번 일은 ID 인베스트먼트 음해 사건으로 명명했습니다.

역시 최강욱은 믿음직하다.

유재원도 ID 인베스트먼트 음해 사건이라는 명명에 100% 동의했다.

딱 보면 견적이 나왔다.

누군가 외삼촌에게 접근해서 일부러 해지를 권했다. 그게 누군지는 아직 알 수는 없지만, 짐작이 가는 곳은 있다.

가장 의심스러운 곳은 일성이었다.

김&정 법무법인 개업식 때 찾아온 최현희 회장과 서로의 입장 차이를 명확히 확인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페어플레이를 권하면서 최현희가 반칙하는 만큼, 유재원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ID 인베스트먼트 음해 사건도 이와 연관된 게 틀림없다.

외부에서 보았을 때 ID 그룹의 가장 확실한 자금원은 ID 인베스트먼트였다. 그러니 돈줄을 끊기 위해서 ID 인베스트먼트의 신화에 타격을 줘야 한다.

91년도 법인세가 좀 줄었다는 것으로 ID 인베스트먼트의 투자가 실패했다고 단정한 기사를 우르르 쏟아낼 때부터 좀 이상했다. 여기에 도덕성으로 타격을 주려고 외삼촌에게 먼저 접근했던 것 같다.

수많은 투자 실패자를 양산해놓고, 자기 식구들 먼저 챙긴다는 정황을 만들기 위해 접근했다는 것이다.

언론사를 뒤져보면 이런 기사를 준비하고 있을 거라는 데 돈을 걸 수 있는 유재원이다. 하지만 그런 기사들이 나오지 못했던 건, 애초에 투자 실패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원금 손실을 각오하고 해지를 했지만, 50%에 달하는 수익이 추가되었다.

그걸 확인한 투자자들의 눈이 돌아갔다.

이들이 해지 러시를 시작한 건 ID 인베스트먼트 지점에 전화했을 때 먹통이었던 탓이다. 뭔가 일이 잘못되면 사무실을 폐쇄하고 줄행랑을 치던 사기꾼은 수도 없이 많았고, ID 인베스트먼트가 그런 줄 알았다.

알고 봤더니, 그냥 문의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아서 통화가 밀렸을 뿐이다. 그러면 직접 영업장에 가서 문의해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겠지만, 그곳은 진작 해지를 신청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영업장에 바람잡이 수백 명을 동원해서 동시다발적으로 해지를 신청한 정황도 있습니다.

역시 그것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그림이었구나.

지점이 마비되니 제대로 된 업무를 볼 수가 없어졌다. 게다가 지점 안에 투자자들이 다들 해지를 하겠다고 하니 군중심리가 만들어져서, 그럴 생각이 없었던 사람들까지 동참하게 하였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니, ID 인베스트먼트에서 수익률은 탄탄하다는 보도 자료를 내도 당일엔 별 효과가 없었다.

“그렇군요.”

최강욱의 보고를 들은 유재원은 통신이 미미하니 이런 일도 다 일어나는구나 싶었다.

21세기였다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HTS를 이용해서 본인의 투자 수익률을 실시간으로 체크할 수 있으니, 허접스러운 기사 따위에 휘둘리는 것이다.

당장 넥스트컴과 연계해서 일반 고객들도 수익률 확인은 물론 투자 상품 구매도 자유롭게 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가 없었다. HTS 시스템 구축을 위해서 정부와 협의 중인데, 관료들의 IT 기술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빠르게 일을 처리하는 게 불가능했다.

“이렇게 큰일을 벌였으면, 분명 꼬리가 잡힐 거예요. 반격은 빠를수록 좋은 거니까 누가 일을 꾸몄는지 빨리 알아봐 주세요.”

유재원은 가장 큰 심증이 가는 ‘일성’이란 이름을 언급하진 않았다.

스스로 몇 번이나 다시 생각해봐도 제일 유력한 범인은 일성이지만, 실무를 진행하는 최강욱이나 임은경 팀장에게 선입견을 주입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진짜 범인을 찾아내 정밀하게 타격을 해줘야 다신 음모 같은 걸 꾸밀 생각을 못 하게 해줄 수 있다.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강욱의 다부진 대답을 들으면서 유재원은 1:1 채팅을 마무리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3월 초가 되었다.

주류 언론에서는 ID 인베스트먼트 이야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모든 이슈는 3월 24일에 있는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였다.

특히 예전엔 없던 삼파전 양상으로 인해서 총선의 열기는 한층 뜨거워졌다. 1987년 여의도 유세만큼은 아니지만 각 당의 총재가 지원 유세를 하면, 구름과 같은 인파가 몰려들어 극심한 혼잡을 자아냈다.

김영삼, 김대중 두 사람의 개인적인 지지도가 어마어마한 것이다. 여기에 김종필이라는 존재감 큰 정치인을 껴서 3김 시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각 당에서 저마다의 확고한 존재감을 발휘했다.

여기에 떠오르는 별도 있으니 전명헌 명예회장이었다. 통일 국민당에서는 어떠한 당직도 맡지 않고 그저 전국구 후보였지만, 존재감만큼은 3김에 뒤지지 않았다.

전명헌 명예회장도 통일 국민당의 지역구 후보자들을 위해 지원에 나가면, 그 자리는 사람들이 발 디들 틈이 없을 만큼 몰려들었다.

유재원이 보았을 때, 참 신기한 일이었다. 돈을 들여 동원한다더라도 도저히 맞출 수 없는 숫자와 열기였다.

일성과 비교하면 더욱 재미있어진다.

미래와 일성을 두고 누가 한국 제일의 재벌이냐 물으면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을 만큼 강력한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고 있었다. 그런데 전명헌 명예회장의 국민적인 인기는 무척이나 높았지만, 일성의 최현희 회장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이 차이도 좀 있고, 전면에 나서 활동한 시간에도 차이가 있으니 대중적 인기도에 차이가 나는 건 당연한 이야기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덕분에 아직 유재원에게 지원 유세를 해달라는 이야기가 없었다.

통일 국민당의 선거대책본부에서야 유재원의 도움을 요청하자는 의견은 당연히 나오는 중이긴 하다. 여론 조사의 추이를 계속 보고 있자면 통일 국민당의 지지세는 완만한 상승을 그리고 있지만, 그 탄력이 점차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투표 당일이 되면 기존 정당으로 획 돌아설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유재원의 지원 유세를 요청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걸 무르고 있는 사람이 전명헌이었다.

전명헌 명예회장은 아직 이르다고 하면서 참모들의 요구를 잠재웠다.

참모들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투표일이 며칠이나 남았다고 때가 아니라니. 덕분에 우려는 더욱 커졌다. 경제 분야에선 더할 나위 없는 전문가인 전명헌 회장이지만, 선거는 이번이 처음이다. 선거판을 잘 모르는 전명헌 회장이 소 힘줄 같은 고집으로 악수(惡手)를 두고 있다는 말이 점점 커졌다.

그렇게 3월 둘째 주가 되었을 때. 통일 국민당의 참모들은 전명헌 회장이 말했던 ‘때’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3월 중순이 되자 유재원의 올드 팔로 알토로 명문대들의 합격증이 날아들어 왔다. 가까운 스탠퍼드를 시작으로 MIT처럼 동부 끝에 있는 학교에서도 정성이 가득한 서류 봉투가 특급 배송을 통해 전달되었다.

지원했던 학교는 다 붙었다.

-천재의 증명!

-ID 그룹, 유재원 회장, 미국 명문대들 싹쓸이 합격!

-아이비리그 8개 학교는 물론, 매사추세츠공과대학, 캘리포니아공과대학, 스탠퍼드 대학교 등등 총 11개 대학교로부터 합격 통보!

덕분에 지금 유재원이 넥스트컴 뉴스 페이지에서 보고 있는 호들갑스러운 기사들이 쏟아지는 중이다.

총선 관련 뉴스 말고 이렇게나 지면을 점유하는 건 유재원이 처음이었다.

전생부터 그렇게나 준비했으니, 불합격을 받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본인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확실히 인식하고 있었기에 유재원은 불안한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이나 친척들은 아니었다.

덕분에 합격증 러시가 시작되자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장난이 아니었다. 한국의 지인뿐만이 아니라 미국 지인들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유재원은 추천서를 써준 분들에게 전화도 열심히 돌리면서 감사의 마음을 표시해야 했다.

추천서를 써주신 분들도 축하를 해주면서 은근히 자기가 써준 학교에 진학하기를 권유했다. MIT용 추천서를 써준 분은 MIT로 가라고 했고, 하버드용 추천서를 써주신 분은 당연히 하버드에 갈 거지? 하면서 물어볼 정도였다.

물론 유재원은 처음부터 스탠퍼드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취재 열기도 뜨거웠다.

유재원이란 이름 석 자는 한국에서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었다. 게다가 한국에서 제일 뜨거운 교육열까지 자극하는 이야기였으니 그냥 있을 언론이 아니다. 그냥 잠자코 있으면 미국까지 날아올 기세였기에, 상세한 내용을 담은 보도 자료를 만들어서 언론에 배포했다.

텍스트로만 된 문서를 뿌리면 심심할 것 같아서, 사진도 하나 첨부했다.

벽난로와 탁자 위에 각 대학 합격증을 펼쳐 놓고 그 가운데 유재원이 들어가 있는 사진이었다. 유재원은 진심으로 그런 사진은 찍고 싶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미국에 오신 부모님의 성화에 어쩔 수가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홍보자료로 뿌린 사진을 쓰지 않은 신문사나 방송국은 없었다. 아무래도 나중에 유재원을 검색하면 빠지지 않을 사진이 된 것 같았다.

-역시 예상대로구나. 홍보 효과는 쏠쏠하지?

전명헌 명예회장의 전화가 온 것도 그때쯤이다.

“예. 덕분에 돈 들이지 않고 글로벌 광고 하나 정도 한 거 같네요. 다 할아버지 덕이네요.”

유재원의 명문대 무더기 합격증 수집 사건은 한국에서만 화제가 된 건 아니었다. 미국의 대입 시스템이 중복 지원을 허용하긴 해도, 이렇게 11개나 되는 명문대에 지원해서 모두 합격증을 받아내는 일은 없었던 탓이다.

-내 덕은 무슨, 네 머리가 좋아서 그런 거지. 그나저나 이제 때가 된 거 같구나.

“저도 다 준비했습니다.”

-그래. 딱 3일만 고생하자. 환영식부터 성대하게 할 테니 마음의 준비는 꼭 해라.

무슨 말인고 하니, 전명헌 명예회장이 드디어 유재원의 지원유세를 요청하신 거다. 유재원이 명문대 합격증을 싹쓸이할 걸 기다리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얼마나 큰일이 될지는 유재원도 짐작되지 않는다. 다만 이 시대의 선거는 무조건 머릿수로 하는 것이니 엄청난 인파가 동원될 것 같다.

“예, 그럼 내일모레 한국에서 봐요.”

전명헌 명예회장과의 통화는 내일모레를 기약하며 끝났다.

유재원은 당장 한국에 갈 수 있지만, 하루의 시간을 더 미룬 건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ID 인베스트먼트의 위기설과 함께 외삼촌에게 접근했던 뒷배를 조사한 결과 보고서를 받는 것이었다.

그날이 오늘이다. 보고를 받은 후에 잠깐 대응책을 생각하고, 실행하기 위해서 잠깐의 여유 시간을 만든 것이다.

잠시 후, ID 톡 알람이 울렸다. 유재원은 곧장 두 사람을 자신의 채팅방으로 초대했다. 최강욱 비서실장과 임은경 감사팀장이었다.

이런저런 인사말을 주고받은 후 바로 유재원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ID 인베스트먼트 음해 사건 조사는 잘 끝났나요?”

-예, 여러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교차 검증을 통해 뒷배를 파악했습니다.

-김혁수입니다.

최강욱과 임은경의 보고가 거의 동시에 이뤄졌다.

김혁수. 최현희 회장의 오른팔. 2000년대 초까지 그야말로 최현희의 분신처럼 한국의 정치와 경제를 주무를 사람이다.

“역시나 그렇군요.”

유재원의 예상 대로였다.

-다만 최현희 회장의 지시인지 아니면 스스로 움직인 것인지 파악은 지금 단계에서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어진 보고에도 유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CCTV도 거의 없는 시절이고, 스마트폰도 없어 통화 녹음이나 사진을 찍는 것도 어려운 날이었다. 이런 조건에서 김혁수가 뒤에 있다는 걸 찾아낸 것은 임은경 팀장의 능력이 상당하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였다.

다만 임은경 팀장은 일성을 법적으로 압박하려면 더욱 확실한 증거를 찾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걸 아쉬워했다.

“무슨 상관인가요. 최현희 회장의 지시든, 충정으로 인한 자발적 행동이든 어차피 일성이잖아요.”

-그렇습니다.

애초에 법정으로 이 문제를 가져갈 생각은 없었다.

“어디 보자.”

유재원은 눈을 감고 일성에게 돌려줄 만 것들을 헤아려 봤다.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빈틈이 너무도 많아서 무얼 먼저 찔러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은 탓이다. 그래도 우유부단과 거리가 먼 유재원은 일성의 최현희와 김혁수가 가장 아파할 케이스 2개를 골랐다.

어째서 2개냐고 하면, 한 대 맞았다고 한 대만 돌려주는 건 유재원의 방식이 아니다. 여기에 100%짜리 이자 하나를 더 쳐주는 것, 그것이 유재원의 기본 셈법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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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 주의 시작이군요~!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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