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195화 (195/1,007)

[195] Command & Conquer =========================

“지금 거의 도착했다고 합니다. 5분 거리입니다.”

김대석의 보고는 전명헌 회장과 수행단이 어디까지 도착했는지 알리는 것이었다. 유재원도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있는 곳은 올드 팔로 알토의 집이 아니라 금문교 근처의 ID 그룹 별장이었다.

보통 저택은 특별한 이름이 붙여지기 마련인데, 유재원은 ID 그룹 별장이라고 붙여버렸다. 혼란이 없이 기억하기 편하도록 말이다. 만약 이후에 또 다른 곳에 별장을 구매한다면, 그때부터는 지명도 같이 붙일 예정이다. 그러니 그냥 그룹 별장이라고 한다면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별장을 칭하게 되는 것이다.

ID 그룹 별장은 전명헌 회장과 만나기로 했던 약속장소였기에, 유재원은 며칠 전부터 이곳으로 숙소를 옮겨 놓은 상태였다.

직접 살아보니 확실히 올드 팔로 알토의 집보단 좋긴 했다. 대신 저택이라고 할 만큼 거대해서 휑한 느낌이 심했다. 가뜩이나 블랙엔 화이트에 실버를 사용한 인테리어다 보니 아늑하다는 느낌이 더 적었다.

집을 옮기겠다면 인테리어를 다시 하던가, 아니면 지금처럼 며칠만 지내고 가는 게 최선일 것 같다.

하여튼, 전명헌 왕회장이 다 왔다고 하니 유재원은 입구로 나와서 영접하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현관까지 나가자 여러 대의 CCTV가 눈에 들어왔다.

CCTV는 ID 별장의 입구는 물론 올라오는 길까지 비춰주고 있었다. 이와 같은 화면을 경비실에서도 공유 중이었다. 총기가 허용되는 나라이고, 외진 곳이라서 보안을 철저하게 하는 것이다.

CCTV에서 제일 먼 곳을 비추는 화면에 낯선 자동차 하나가 들어섰다. 자동차는 곧이어 ID 그룹 별장으로 가는 오솔길을 타기 시작했다.

“이 자동차인가 보네요?”

“네, 전명헌 회장님의 취향은 확고하시잖아요.”

유재원의 물음에 김대석이 CCTV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명헌 총회장은 미래 그룹이라는 세계적 기업의 총수였고 수행하는 사람도 10명이 넘는다. 그러면 상식적으로 보았을 때, 이동 중에는 고급 세단들이 줄줄이 이동하는 그림이 그려지는 게 당연했다.

그렇지만 CCTV에 비치는 모습은 고급 자동차는 단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20인승 미니 버스 한 대가 전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전명헌 총회장의 미래 그룹엔 미래 자동차라는 계열사가 있었다.

전명헌 총회장이 직접 설립한 근본 있는 회사였고, 전명헌 회장은 미래 자동차를 통해 자동차를 만들어내기 시작하고부터 다른 회사 차량은 부득이한 경우를 빼고는 절대 이용하지 않았다. 그 부득이한 경우라는 건 국빈 방문한 국가에서 제공한 의전용 차가 외제 차일 때나 미래 그룹에 일감을 주는 회사들을 방문했을 때 같은 경우였다.

일반적인 출장이라면 전명헌이 탈 자동차를 미리 차를 옮겨다 놓는데, 이번엔 순식간에 결정된 출장인지라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면 현지에서 구하는 방법뿐이다. 미국에도 미래 자동차가 수출되고 있긴 한데, 수량이 무척이나 적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미래 자동차를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와 마찬가지였다. 겨우 구한 게 미니 버스였다.

전명헌은 미래 자동차가 생산했다는 것 하나에 승차감이 별로인 자동차에 흔쾌히 올랐다. 수행을 위해 나선 가신도 전명헌 회장이 먼저 차에 오르니 내색 없이 올라탔고, ID 그룹 별장을 향해 곧장 이동했다.

“이봐, 재원이 별장이 저건가?”

“예, 어르신. 대문에 ID 마크가 걸린 걸 보니 확실합니다.”

미니 버스의 맨 앞좌석을 차지한 전명헌의 물음에 통로 바로 건너편 의자에 앉아 있던 최재수 본부장이 얼른 대답했다.

촘촘한 철 창살로 이뤄진 대문 앞에서 미니버스는 정지했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경비가 다가와 방문자의 신분을 물어보는 확인 절차가 이뤄졌다. 전명헌 회장을 비롯해 탑승자들의 신상을 간략하나마 확인했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진행되는 게 없었다. 생각 없는 꼰대라면 이 단계에서 본인을 알아보지 못하느냐고 화를 버럭 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명헌 회장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만족감을 표했다.

“전명헌 회장님과 수행단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경비의 말과 함께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잠깐 멈췄던 미니 버스도 저택 안으로 입성했다.

그러자 주변 환경이 확 달라졌다. 축구장 크기의 유럽식 정원 그리고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는 저택까지. 한눈에 다 담지 못할 만큼 컸다.

전명헌의 수행단 중에 유재원의 성공이 얼마나 거대한 규모인지 감을 잡지 못한 이들이 조금 있었다. 그런데 ID 그룹 별장의 규모를 직접 보니 비로소 실감이 날 정도로 압도적인 규모였다.

“아, 마지막으로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재원이를 나이만 보고 무시하는 바보는 없겠지? 언행이나 행동은 나를 대하는 것처럼 하도록 해. 알겠어?”

정문 앞에 선 유재원의 모습이 노안인 전명헌에게도 보일 때, 마지막으로 한소리를 했다. 본인의 수행원 중에 겉으로만 보고 판단하는 바보들은 진작 잘라버렸지만,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었다.

“예, 어르신! 명심하겠습니다.”

그러자 대답이 합창처럼 나왔다.

수행단에 속한 이들은 다들 미래 그룹에서 최소 사장인 사람들이지만, 전명헌 앞에선 다들 순한 양이었다.

곧이어 미니버스는 저택 대문 앞에 완전히 정차했고, 문이 열렸다. 이번에도 전명헌 회장이 제일 먼저 내렸고, 마중을 나온 유재원과 얼싸안으며 격한 기쁨을 표시했다.

잠시 후.

유재원과 전명헌, 그리고 그의 수행단은 저택의 거실에 다들 모였다.

보통 첫날은 짐을 푼 다음, 긴 비행시간에 쌓인 피로를 푼다고 가볍게 넘기는 게 보통이었다. 유재원도 전명헌 회장이 피로할까 봐 푹 쉴 수 있는 준비를 했다. 그렇지만 전명헌 회장의 열정은 유재원이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정치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그 누구도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지 않았던 전명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재원이 전폭적으로 지지해주니 몸이 달을 수밖에 없었다.

전명헌이 그렇다고 하니, 유재원도 휴식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잠깐의 휴식 시간 후에 곧 자리가 만들어졌다.

장소는 저택의 중앙에 있는 거실이었다.

학교 교실처럼 넓은 공간으로 회의실도 겸하는 자리라서 긴 테이블이 있었다. 전명헌 회장이 이끌고 온 수행단에게 한 자리씩 주고도 상당한 공간이 남았다. 더욱이 오늘 행사의 서빙을 위해 고용한 전문 웨이터들이 있어서 세팅은 금방 끝났다.

기다란 테이블에 수행원들은 반으로 나눠 앉았고, 상석에는 유재원과 전명헌이 나란히 앉았다.

이렇게 자리에 앉은 후에 각자 간단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전명헌의 가신 중 제일 나이가 많은 미래 증권 김익치 사장을 시작으로 최재수, 김윤구 등등이 이어 나갔다.

전명헌 회장이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한 말은 그대로 받아들인 모양인지, 이들이 유재원을 대하는 태도는 무척이나 깍듯했다. 오죽하면 소개를 받는 유재원이 다 어색할 지경이다. 마치 여자 친구 부모님과 단순한 식사 자리라고 생각하고 나간 것인데 그 자리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처가 어르신들까지 계셔서 일일이 소개받는 기분이다.

물론 전생에서 그런 상황을 겪어 본 적이 없으니, 그냥 상상만 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어색한 건 틀림 없었다. 하지만 유재원의 어색한 기분은 인사를 나눌 때까지만이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일에 집중하자 바로 사람이 바뀐 것처럼 완전히 다른 아우라를 뿜어냈다. 특히 일반의 발표와 다르게 유재원은 ID 프레젠테이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모두가 편히 볼 수 있는 방향에 커다란 스크린을 걸어 놓았고, 뉴 에그와 연결된 최신형 프로젝터를 켰다.

“회장님의 창당을 매우 긍정적으로 봅니다. 여당과 야당의 확실한 대결 구도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회장님이 공략할 구석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화면에 띄운 건 한국 지도였다.

한국 지도에서 울산을 중심으로 하는 TK 지역, 여야가 뚜렷하지 않은 강원도, 그리고 충청도 지역이 미래 그룹을 상징하는 녹색으로 물들어 있다.

“이 지역을 적극적으로 공략하신다면 지역구에서 23석 이상, 전국구에서 7명 당선자를 내어서 총 30석을 차지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합니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주장이었다.

원래는 31석이었다. 그야말로 전명헌 회장이 맨땅에 헤딩해서 얻어낸 의석이었고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숫자였다. 덕분에 기존 정치권이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고, 총선 이후 본격적인 견제도 시작했다.

이번에는 본인이 직접 개입할 작정인데, 이로 인해서 총선의 표심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는 유재원도 쉽게 가늠할 수 없었다. 정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여론 조사 분석으로 제대로 예측을 해볼 작정이다.

이 시기기 한국의 여론 조사는 아직 부족한 게 많았다. 정치권에서도 그건 선진국에서나 하는 것이지, 정확한 데이터를 분석으로 선거에 적용해 보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게다가 총선과 같이 선출하는 사람은 많고, 표본도 분리된 선거는 정확성이 더 떨어진다.

“뭐요? 30석? 천재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현실 감각이 좀 부족한 거 아닙니까?”

역시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알았다.

주인공은 제일 말석에 앉아 있던 후덕한 양반이었다. 자기소개할 때 국민당 안보위원장 이건형이라고 했다.

그럴듯한 직책이지만 국회의원 하나 없는 원외의 정당이다. 겨우 울산에 지역 조직만 갖춘 상태인데, 1분 1초가 급한 전명헌 회장은 국민당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신당을 만들 생각이었다.

울산은 그야말로 미래 그룹의 앞마당과 같은 도시였다.

한국 최고의 조선 회사인 미래 중공업도 거기에 있고, 미래 자동차 공장도 울산에 있다. 이와 관련한 수많은 협력사가 울산에 있어서, 미래의 힘이 제일 강한 곳이었다. 오죽하면 전명헌 회장의 아들 중 하나가 여기에서 깃발을 꽂아놓고 매번 국회의원을 연임할 정도였다.

당연히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은 미래 그룹의 영향을 직접 받을 수밖에 없다. 이건형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전명헌이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했을 때 가장 반색한 사람이기도 했다.

전명헌의 영향력이라면 국회의원을 다수 배출하는 건 기본이지 않겠는가. 전국구의 상위 순번 혹은 이제껏 다지기를 했던 울산에 깃발만 꽂으면 여의도 입성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갑자기 유재원이 떡하니 나타난 것이다.

유재원의 존재감이란 이건형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이었다. 다만 멀리서 보는 것과 직접 만나 보는 것의 차이는 극심하기에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 그래서 전명헌의 미국행에 껌딱지처럼 붙어서 이 자리까지 따라올 수 있었다.

이건형이 보았을 때, 전명헌의 힘으로 최대한 당선시킬 수 있는 숫자는 10명 내외였다. 이것도 무척이나 낙관적으로 잡았을 때였고, 최악에는 5, 6명 정도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보고 있었다.

그런데 뭐 어쩌고 어째?

30석?

국회의원 배지가 딱지도 아니고 어떻게 30석이나 낼 수 있단 말인가. 이건형의 상식으로는 완전히 불가능할 숫자였다. 이걸 무턱대고 말하는 유재원으로부터 사짜 냄새가 물씬 풍겼다. 하지만 유재원은 스스로 자수성가해서 여기까지 온 입지적인 녀석이었다.

“어째서요?”

“아니! 상식적으로 30석이 가당키 하냐고! 상식이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최대한 자제했는데,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천진하게 되물어 보는 유재원의 모습에 이건형이 흥분하고 말았다. 목소리도 자연스레 높아졌다.

유재원은 이건형의 반응에 별다른 동요는 없었다. 한국 정치판에서 몇 년을 구르면 다들 저런 모습이 되니 말이다. 대신 프레젠테이션의 페이지를 넘기며 30석 이상을 만들어낼 비책을 설명하려고 했다.

그런데 유재원보다 빠른 사람이 있었다.

“이봐, 건형이. 좀 흥분한 것 같은데 자네는 좀 나가 있게.”

전명헌 회장이었다.

“예?”

“나가 있으라고.”

이 집은 유재원의 것인데, 이 순간만큼은 전명헌 회장의 소유처럼 들렸다. 짧은 축객령에 이건형은 어쩔 줄 몰랐다.

“어, 어…, 저는….”

뭔가 어물거리며 변명을 하려던 이건형은 김익치나 최재수 등의 차가운 시선에 입이 꾹 다물어졌다.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난 이건형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 누구도 이건형을 잡지 않았다.

“에이, 여기까지 왔는데 쫓아내신 건 좀 심하셨네요.”

유재원도 딱히 이건형을 신경 쓰는 건 아니었지만, 예의상 한마디 했다.

“아니다. 여기까지 와서 초를 치는 녀석이면, 이 자리에 있을 필요도 없다.”

역시 카리스마 철철 넘치는 전명헌 총회장이다.

작은 소동 후에 유재원은 프레젠테이션을 계속했다.

“30석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인지도입니다. 그러면 인지도는 무엇으로 나타내는가. 바로 사람이죠. 인지도 있는 사람들을 모으는 게 할아버지가…, 음 회장님이 제일 시급히 해야 할 일이죠.”

“알았다. 그리고 할아버지라고 해라.”

할아버지라는 칭호는 둘 사이에만 있던 것이었다. 지금은 공적인 자리인지라 얼른 회장님으로 바꾸었는데, 전명헌 회장은 더 친근한 호칭을 선택했다. 가신 집단이 있는 자리였으니 시사하는 점은 분명히 있었고, 전명헌 회장도 그걸 충분히 인지했지만, 상관없다는 투였다.

“네, 할아버지. 하여튼 지금 여당 내에 그리고 야당에서도 계파 싸움에 공천 파동이 한창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휘말린 중량급 정치인들이 공천도 받지 못하고 떨어지고 있어요. 이들을 모두 신당으로 모으세요.”

유재원의 말에 전명헌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가신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전명헌 회장도 생각하고 있던 방식이었기에, 충분히 부합했다.

“인지도 높은 연예인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여기서부턴 전명헌 회장도 아직 생각해보지 못한 비책이었다.

연예인의 인지도는 정치인들보다 훨씬 높다. 연예인이 웬 정치냐 하는 소리만 나오지 않게 한다면 승산은 충분하다.

“이렇게 인지도 높은 인물을 모아 공천을 마무리하면, 이제 정책으로 승부를 보셔야 해요. 87년 직선제를 얻어냈지만, 지금 바뀐 게 하나도 없잖아요. 우리의 신당은 파격적인 정책으로 구태의연한 기존 정치세력과 확실한 구분을 지어야 합니다.”

“그렇지! 네 말이 옳다.”

유재원의 말에 전명헌이 박수를 쳤다.

본인이 직접 정치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무엇이던가. 여당이든, 야당이든 기업인을 대하는 태도는 똑같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자신이 직접 정치를 하면 그놈들보다 몇 배는 잘할 자신이 있다.

한국은 80년대까지만 해도 후진국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올림픽도 성공적으로 치러냈고 내년에는 국제 박람회도 개최한다. 국가 경제는 세계 10위권을 바라보는 나라였다. 정치인들이 기업의 돈을 제 것처럼 뜯어가지만 않아도 국가 경제력이 한 단계는 더 올라갈 거라고 확신하는 전명헌이다.

“일단 제가 먹힐만한 정책을 몇 가지 생각해봤습니다. 공세적인 통일정책, 반값 아파트, 여성의 사회 진출 독려.”

고개를 끄덕이며 유재원의 프레젠테이션을 듣던 전명헌 회장이 유재원의 말을 이었다.

“그걸로 되겠느냐? 대학 입학정원 폐지와 졸업시험 도입, 국민학교 중학교 전면 무료급식 정도는 해야지.”

전명헌 총회장의 말에 유재원은 그럴 줄 알았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유재원이 말했던 공약은 사실 전생의 통일국민당에서 냈던 것들이었다. 무척이나 급진적인 것들이었는데, 역시나 전명헌 회장이 직접 발의해서 정해진 모양이다.

“네, 여기에 한강 다리나 시민들이 많이 사용하는 백화점, 문화 공간 등에 대한 전면적인 안전점검도 좋겠네요. 와우 아파트 붕괴를 직접 본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취약한 서울에서도 좋은 점수를 딸 수 있을 거예요”

여기에 유재원은 새로운 정책을 끼워 넣었다. 며칠 동안 고심한 정책이었다.

90년대 초부터 한국에는 초고속 성장의 후폭풍이 닥치기 시작한다. 그중 하나가 부실하게 지은 건물이나 교량의 붕괴였다.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등등 서울의 대표 건축물들이 무너지면서 한국은 사고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다. 이로 인해서 한동안 해외에서 건설 수주도 뚝 끊겨버렸다.

“좋다!”

전명헌 회장은 무릎을 탁 치며 좋아했다. 듣자마자 이거라며 꽂히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저기, 어르신….”

그때 조심스럽게 말문을 여는 사람이 있었다. 미래건설의 김윤구 사장이다. 전명헌 총회장의 차남이 미래건설 회장에 임명되긴 했지만, 아직도 실무는 전명헌의 창업 동지인 김윤구 사장이 하는 중이었다.

“뭔가?”

이건형의 일로 조금 까칠해진 전명헌 회장이 도끼 눈으로 되물었다. 까딱 잘못하면 김윤구 사장도 내칠 기세였다.

“전면적 안전검사는 신중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만에 하나 미래 건설에서 중대한 하자라도 나오면…….”

미래 건설은 한국 최대의 건설 회사였다.

도급순위 1위를 10년이 넘도록 지키며 추격자들을 멀찌감치 앞서 있는 그런 기업이었다. 그만큼 서울을 비롯해 한국 전역에 미래 건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만에 하나 미래 건설이 지은 건물이나 교량에서 하자라도 크게 나오면 오히려 선거에 악재가 될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음, 그건 말이죠.”

“아, 이 답답한 사람아. 머리는 폼으로 있나? 시행하기 전에 미리 점검해 놓으면 될 거 아닌가. 게다가 안전점검단이 뭐 수천 명이나 되나? 그 사람들이 일시에 모든 건물을 점검하진 못할 거 아닌가. 이들의 동선을 적당히 조절하면 될 거 아니야.”

유재원이 설명하려던 것이 전명헌 총회장의 입에서 먼저 나왔다.

전명헌 총회장이 가장 먼저 시작한 사업이 건설 부문이었다. 시멘트와 모래로 밥을 오래 드신 덕에 척하면 딱 하고 최적의 각이 나온다.

“예, 바로 그겁니다. 그리고 TV와 라디오 광고도 돈을 아까지 말아야 하고요. 물론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회장님이 원하시면 제가 TV 광고에 출연해드리겠습니다.”

“고맙구나.”

평소라면 괜찮다는 말이 나왔을 테지만, 총선까지 남은 날이 얼마 되지 않아서 무척이나 촉박한 상태였기에 한 번의 거절도 없었다.

유재원의 프레젠테이션은 좀 더 진행되었다. 또한, 프레젠테이션으로 보여줬던 것보다 훨씬 상세한 보고서가 담긴 디스켓도 전명헌 회장에게 드렸다.

이후 유재원은 샌프란시스코에 오신 김에 좀 쉬고 가시라고 권했다. 하지만 마음이 급한 전명헌 회장은 거절했다. 실리콘밸리 투어는 나중에 하기로 했다.

저녁까지만 함께 먹고, 새벽 비행기로 한국으로 귀국했다.

-미래 그룹, 추징금 전액 납부!

-전명헌 총회장, 사임. 모든 권한 내려놓고 자연인으로 돌아가다.

-미래 그룹, 전명헌씨를 명예 회장으로 임명.

한국으로 돌아간 전명헌 회장은 거침이 없었다.

1,600억 원에 이르는 추징금을 냈고, 총회장이라는 미래 그룹 공식 직책에서도 내려온 것이다.

-전명헌 명예회장, 통일국민당 창당 선언!

모든 것은 총선을 위한 행보였다.

1,600억 원의 막대한 추징금을 한 방에 내버리는 기세에 웬만한 재벌들도 기가 질릴 정도였다. 전명헌 회장의 행보를 우습게만 보던 정치권에서도 그제야 경계를 시작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완전 감사합니다~!!!

자료 조사를 하면서 진짜 통일국민당의 행적을 알아보는데, 파면 팔 수록 재미있는 정당이였네요. 여기서 들고나온 공약만 해도 본문에 언급된 건 물론 재벌 해체까지 있더라고요.

뭐 지킬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 막 질러댄 것 같지만요...

이번에도 생각 없이 막 질렀다가 주인공 보정을 받게 된다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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