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193화 (193/1,007)
  • [193] Command & Conquer =========================

    ○ Command & Conquer

    많은 일이 있었던 1991년은 총알처럼 지나갔다.

    연말에 ID 그룹이 한 해 동안 이뤄냈던 총매출액과 순이익 결산해보니 빠른 성장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ID 그룹의 총매출액은 19억 달러에 이른다.

    ID 인베스트먼트의 매출액이 14억 달러가 넘었고, ID 테크놀로지가 5억 달러 조금 모자란다. 체급을 보면 인베스트먼트가 훨씬 큰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순수익으로만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ID 인베스트먼트의 순수익은 아직 미확정이고, ID 테크놀로지는 3억 달러가 넘는다. 이유는 간단했다. 인베스트먼트의 일본 투자는 아직 진행 중이고, ID 테크놀로지는 매출이 나오자마자 순수익이 확정되는 탓이다.

    이로 인해서 순수익에서만 발생하는 법인세의 크기도 매우 작아졌다. 간단히 계산해 봤는데 1억 달러 이하였다.

    유재원이 보았을 때 ID 테크놀로지의 놀라운 성장이 돋보이는 성적이었다. 그런데 단편적인 정보만 알고 있던 이들은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재작년에는 22억 달러가 넘는 세금을 냈었는데, 올해는 1억 달러도 채 되지 않을 거라는 소식이었던 탓이다.

    그러자 미국은 별 반응이 없었는데, 한국에서 난리가 났다.

    뉴스와 신문에서 ID 그룹이 망할 것처럼 말하는 기사들로 도배됐다. 당연히 ID 그룹도 영향을 받았다. 특히 ID 인베스트먼트의 투자 상품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이 영업점으로 몰려들어 해지를 신청했다.

    언론의 퇴행적 관행으로 생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ID 그룹이 부실로 가득 찼다고 기사를 처음 쓴 신문은 역시나 대한 일보였다. 그러자 거의 모든 일간지가 이를 받아썼고, 공중파에서도 언급되었다. 그러는 와중에 한국 지사나 미국에 직접 연락해 취재한 기자는 극히 드물었다.

    1991년 순이익이 1990년과 대비되는 가장 큰 이유는 ID 인베스트먼트의 투자가 현재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1990년에는 석유 선물 투자가 연내에 깔끔하게 마무리되었고, 88억 달러나 되는 수익을 신고할 수 있었다. 반면 지금은 일본의 닛케이 지수를 대상으로 투자가 진행 중이었다.

    석유 선물 투자는 단기에 끝났지만, 닛케이 투자는 1992년 여름까지 잡고 있으니,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다.

    반면 ID 테크놀로지의 매출액만 비교해보면 5, 6배 이상의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1991년을 기점으로 PC 운영체제와 오피스 분야에서 범접할 수 없는 공고한 지위를 획득했고, 그것이 그대로 매출액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최강욱은 신문이 ID 그룹 이야기로 막 도배가 되기 시작할 때 이러한 사실을 언론 보도자료를 통해 알렸다. 하지만 이후로도 며칠 동안은 신문의 논조가 크게 변한 건 아니었다. 분명 누군가 뒤에서 손을 쓴 게 분명하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반전은 밑에서부터 일어났다.

    투자 해지를 신청한 투자자들이었다.

    투자상품을 중간에 해지하면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대폭 줄어드는 건 상식이다. 무엇보다 투자 상품의 수익률이 마이너스 상태라면 원금의 손실이 크게 날 수 있다. 그러니 중간에 해지를 신청한 이들은 그렇게 원금 손실을 보고서라도 돈을 받겠다고 결심한 이들이었다.

    그런데 ID 인베스트먼트는 달랐다.

    닛케이에 투자 중인 ID 인베스트먼트는 유례가 없는 수익을 발생하는 중이었다.

    현재 닛케이의 지수는 21,000인데, ID 인베스트먼트는 24,500을 기준으로 500포인트가 하락할 때마다 6억2천만 달러의 수익이 발생하는 포지션을 계속 유지 중이다. 그러니 현재 43억4천만 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투자 원금이 30억 달러이니 수익률로 143%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수치를 기록 중이었다. 중간에 해지하면 페널티로 인해 수익률을 그대로 정산받진 못한다. 그래도 엄청난 수익금 덕에 원금은 물론 50%가 넘는 수익금을 받았다.

    신문만 보고 원금까지 까먹었구나 싶어 난리를 피웠던 양반들은 정작 정산을 받자 정신이 멍해졌다.

    특히 수억 원씩 투자한 사람들의 동요가 특히나 심했다. 큰돈을 굴리는 만큼 투자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자신들의 섣부른 선택으로 인해 날려버린 돈이 얼마인지 바로 짐작할 수도 있었다.

    그제야 해지를 물러달라고 했지만, 어느 투자회사가 그런 걸 들어주겠나. ID 인베스트먼트도 그런 건 없다. 그냥 신규로 다시 가입하는 방법뿐이다.

    사람의 심리라는 게 참 얄팍했다.

    중간에 해치를 해도 분명 이득을 보았다. 10억 원을 투자한 사람이 귀가 얇아서 기사만 믿고 해지했다 해도 15억 원을 손에 쥐었다. 금리가 무서운 1991년이었지만, 단기에 이만큼의 이익을 보는 상품은 ID 인베스트먼트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게 손에 쥔 50%의 수익 보다, 이대로 만기가 되었을 때 얻게 될 수백 %의 미래 수익이 더 커 보인다. 심지어 그 돈은 이미 자신의 것이라고 인식까지 했다. 그러니 15억을 받았지만, 손해를 본 것 같은 기분이었고, 그에 대한 화풀이는 당연히 얼토당토않은 신문사로 향했다.

    대한 일보나 동하 신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일은 굳건한 지위였던 대한과 동하의 언론 신뢰도에 커다란 타격을 주는 첫 번째 사건이었다.

    이념이니 정치니 하는 것은 신문에서 어떤 식으로 기사를 써도 시민들에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돈이 걸리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법이다. 기사만 믿고 해지를 신청한 사람들의 숫자는 수천 명이 넘었고, 그들이 본 손해는 수천억 원이 이르렀으니 말이다.

    “그러게, 신문 기사를 왜 믿으셨데요?”

    유재원도 올드 팔로 알토의 집에서 한국 ID 인베스트먼트에 일어난 작은 소동에 대해 보고를 받고 반응을 보였다.

    참 안타까운 일은 귀가 얇으신 외갓집 친척들이었다. 어머니의 동생이고 유재원에게는 외삼촌인데, 신문 기사만 보고서 돈을 찾았다고 한다. 저런 엉터리 기사를 믿을 사람이 있나 싶었는데, 피해자가 바로 근처에 있었다.

    -해지 취소는 안 되는 거니?

    “해지 취소요? 에이, 그런 건 안 되죠. 그냥 새로 하나 가입하세요.”

    아무리 외삼촌이라도 특혜를 줄 수는 없는 법이다.

    예외가 생기기 시작하면 너도나도 찾게 되기 마련이다. ID 인베스트먼트의 시스템적으로도 인위적인 조정은 불가능하게 만들어졌다. 롤백 기능 자체가 없는 것이다.

    그나마 닛케이에 대한 투자는 여름까지 계속된다. ID 인베스트먼트의 투자 포지션이 완성되긴 했다. 그래도 상황을 봐서 추가로 투자의 폭을 확대할 수 있으니, 일단 돈을 넣고 있는 게 숟가락을 올릴 가능성이 그나마 커지는 것이다.

    -어휴, 알겠다. 그나저나 미국에서 지내기엔 괜찮니?

    “그럼요. 괜찮아요. 게다가 절 돌봐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리고 밥때 되면 꼭 챙겨 먹어라. 햄버거 같은 건 자제하고, 밥을 먹어.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힘을 내는 법이야.

    “알겠어요.”

    -그래. 그럼 끊는다.

    “네, 들어가세요.”

    어머니와의 통화였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하는 통화였는데, 보통은 안부를 물어보는 정도에서 끝났다. 그런데 오늘은 외삼촌의 팔랑귀가 더 추가되었다.

    한국 ID 인베스트먼트의 해지 러시는 미국 임원들에게서도 화제였다. 닛케이 지수 투자로 엄청난 수익률을 올리고 있는데 어째서 해지를 하느냐 하는 이야기였다. 몇 개 되지 않는 신문사와 방송국 3개만 접수하면 언로를 꽉 잡을 수 있는 한국의 특성을 모르니 나오는 이야기였다.

    인터넷이 등장하면 해결될 일이었기에 유재원은 조바심을 느끼지는 않았다.

    따르릉!

    오늘은 무슨 날인 모양이다. 한국에서 또 전화가 왔다.

    발신자 번호 표시도 되지 않는 전화기인데도 한국에서 전화가 왔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었던 이유는, 유재원의 책상에 있는 전화기가 여러 대였기 때문이다. 여러 대의 전화기 중에서 이번에 울린 전화기의 번호는 부모님과 같이 한국의 지인들에게만 알려준 것이다.

    전에는 전화를 한 대만 썼는데, 일이 점점 많아지면서 용도를 구분해서 여러 대를 놓았다. 통신비가 조금 늘긴 했지만, 부담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여보세요? 유재원입니다.”

    -오, 바로 연결되는구나.

    삼보 컴퓨터의 이용권 사장님이다.

    작년 12월부터 통신이 많아지는 분 중 하나다.

    ID 그룹의 첫 번째 파트너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삼보 컴퓨터였다. 대표적인 아이템이 에그 시리즈인데, 슬슬 차기 버전을 준비해야 할 때가 온다는 게 제일 큰 이슈였다. 다음으로는 삼보 컴퓨터의 여러 가지 현안에 대한 논의였다.

    한국에서 슬슬 일어나고 있는 제2 이동통신 사업에 대한 진출, 그리고 그룹 CI 변경에 대한 문제도 있다.

    당연히 유재원은 이번에도 삼보 컴퓨터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제2 이동통신 사업의 결과는 뻔히 보인다. 대통령이 사돈 기업인 선경을 무조건 밀어주려는 의도는 지금부터 확실히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보 컴퓨터에서도 조금 회의적이었는데, 유재원은 무조건 참여하시라고 권했다.

    지금부터 참여해야, 제3, 제4 이동통신이 개방될 때 하나라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삼보 컴퓨터의 규모는 몇 년 전과 비교하면 수십 배로 성장했다.

    월간 1만 대를 만들 던 것에서, 최소 15만 대 이상의 컴퓨터를 만드는 회사가 되었다. 거래하는 나라도 미국에서 전 세계 선진국들로 확대되었다. 유럽 전역에 현지 지사가 만들어졌고, 촘촘한 유통망도 생성되었다.

    특히 안드로이드 1.0이 컴퓨터를 학습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언어 문제를 해결하고부터, 그렇지 않아도 크게 성장했던 매출은 더더욱 치솟아 올랐다. 그래픽 인터페이스에, 각 나라 자국어 언어 팩까지 지원하면서 컴퓨터 초보들이 훨씬 쉽게 배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 에그 시리즈가 PC의 레퍼런스이자 워너비가 되면서 삼보 컴퓨터의 매출이 다시 한 번 늘어났다.

    -다름이 아니라 CI 교체에 대한 이사회 승인이 났다. 주주총회에서 결정만 되면 이제 삼보 컴퓨터는 TG가 될 거다.

    “오, 드디어 결정하셨네요.”

    삼보 컴퓨터의 이름 교체는 유재원의 건의였다. 작년 가을쯤에 했던 것 같은데, 드디어 TG로 교체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온 것이다. 이사회에서 결정이 났으니, 확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용권 사장을 비롯한 동업자들의 지분이 50% 이상이기 때문이다.

    TG는 TriGem의 약자였다. 삼보라는 게 3개의 보석이고, 그걸 그대로 영어단어로 치환한 이름이었다.

    그렇기에 기존 경영진들은 기왕 영어로 바꾼다면 트라이젬으로 하자고 했는데, 유재원은 그것도 길어서 TG라고 권했다.

    유재원의 TG와 트라이젬 사이에 논박이 심했는데, 결국 TG가 승리한 것이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다. 한국도 나중에 가면 많은 기업이 알파벳 2개로 기업의 이름을 바꾼다. 그것도 소수의 기업이 아니라 우후죽순 유행을 탄 것처럼 한다.

    그만큼 약칭으로 부르는 게 훨씬 기억하기도 쉽고 CI를 통일하기도 쉬웠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런 식으로 이름 짓는 기업이 너무 많아져서 문제가 되기도 할 테지만, 제일 일찍 결정해서 인지도를 쌓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CI 시안이 나오면 보내줄 테니, 피드백 좀 해줄 수 있겠니?

    “그럼요. 당연하죠. 제가 바꾸자고 했으니 끝까지 책임을 져야죠.”

    -고맙다! 재원이 너만 믿는다!

    유재원은 흔쾌히 대답했다.

    미래의 디자인 변화를 잘 꿰고 있는 유재원이다. 21세기가 되어도 촌스러워지지 않을 디자인을 고르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후 유재원은 차기 에그 PC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한 후 통화를 종료했다.

    차기 에그의 특징은 바로 노트북 모델의 런칭이었다. 1991년도까지는 LCD기술이 형편없었는데, 최근엔 그나마 괜찮은 제품이 나왔다. 유재원으로부터 수십 개에 달하는 비판을 조목조목 들었던 샤프가 절치부심해서 단점을 보완한 LCD를 샘플로 보내온 것이다.

    256색에 800*600의 해상도를 가진 SVGA급 LCD였는데, 1년 전의 것과 비교하면 커다란 개선이 있었다. 잔상과 시야각은 여전히 문제이긴 했지만, 아예 사용을 못 할 만큼 처참한 수준은 아니었다.

    덕분에 LCD를 채용한 에그 노트북 제조에 시도할 수 있었다. 배터리가 여전히 문제였고, 인텔이나 AMD에서 모바일 전용 칩을 내지 않고 있다는 것도 노트북 제조를 어렵게 하는 일이었지만, 한 번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유재원 본인부터 노트북 컴퓨터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

    당장 올해 가을부터 대학교에 다녀야 하는데, 노트북의 유무에 따라 효율의 차이가 극심해진다.

    삼보 컴퓨터. 아니 이제는 TG에서 적당한 크기, 적당한 무게의 노트북을 완성할 수 있다면 유재원은 기꺼이 걸어 다니는 광고판 역할을 해줄 용의가 충분하다. 다만 유재원이 설정한 완성도는 꽤 높은 수준이니 TG의 연구원들은 고생길이 훤히 열린 것이나 다름이 없다.

    따르릉!

    오늘은 무슨 날인 모양이다. 이용권 사장과의 통화를 마치고 업무를 보기 위해 컴퓨터 앞으로 가려는데, 또 전화가 울렸다. 이번에도 한국용 전화기에서 울리는 벨 소리였다.

    -나다.

    전화를 받자마자 ‘나다!’하는 소리가 났다.

    유재원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명 있다. 미래 그룹 전명헌 총회장이었다. 유재원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았다. 이용권과 달리 전명헌 왕회장님이 본인에게 전화를 건 이유가 명확하지 않았던 탓이다.

    1월 1일, 새해 인사로 안부 전화를 올린 게 6일 전이었고, 그때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원래 역사대로 있어야 할 일은 다 있었다.

    이를테면 전명헌 회장의 전격적인 정치 참여였다.

    1월 3일 대한 일보의 특종을 시작으로 전명헌 회장이 3월 있을 총선을 겨냥한 창당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오피셜로 떴다.

    원래 역사에서도 있던 이벤트였다.

    하도 정치권에 저금통 취급을 받으니, 홧김에 바로 창당을 해버렸고 예상외의 성적을 거두면서 당당히 여의도 국회에 입성했다.

    그렇지만 1월 1일 안부 전화를 했을 땐, 유재원에게 이런 이야기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던 전명헌이었다. 할아버지라는 호칭을 허락해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혈연관계는 아니었으니 정치 관련해서는 거리를 두려고 하나 보다 싶었다. 그러니 전명헌의 최대 현안인 정치를 빼놓고 보니 다른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 건 당연했다.

    “아, 할아버지. 웬일이세요?”

    -웬일은? 우리 사이에 꼭 일이 있어야 전화를 할 수 있는 것이냐?

    “아하하, 그건 아니죠.”

    -그럼, 그럼. 그러니 평소에도 자주 연락을 하자꾸나.

    “네, 죄송해요. 앞으로 자주 연락 드릴게요.”

    -알겠다. 그나저나 대입 준비는 잘 되고 있느냐?

    “네! 할아버지 말씀대로 일단 최대한 지원해볼 수 있는 데까지는 넣어 봤어요. 토플 점수도 잘 나왔고요.”

    토플 성적은 외국인 지원자 한정해서 첨부해야 하는 것이었다. 외국인이 미국 학교에서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영어에 능통해야 하는데, 그걸 먼저 검증하는 것이었다. 토플 역시나 유재원에겐 큰 장애물은 아니었다.

    이렇게 대답을 하는 유재원은 문뜩, 전명헌 회장이 평소 본인의 성격답지 않게 말을 돌리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전명헌 회장의 화법은 돌직구 그 자체였다. 그러니 통화를 시작하고 나서 인사를 나눈 후에는 바로 본론이 나왔다.

    오늘은 좀 다르다.

    유재원의 대입 준비는 이미 작년에 끝난 일이었다. 이제 3월까지 기다리면 각 대학교의 합격자 발표일에 맞춰 통지서가 속속 날아올 거다.

    슬하의 자식들이나 손자를 미국 명문 대학에 많이 입학시켜봤을 전명헌 총회장이라면 다 알고 있을 이야기였는데, 굳이 물어본다는 건 선뜻 말하기에 어려운 게 있어서 일단 돌리는 것으로 들렸다.

    -음, 다름이 아니라 재원이 너에게 물어볼 게 하나 있어서 그런다.

    “뭔데요? 할아버지 질문이라면 뭐든 성심껏 답해드려야죠.”

    다행히도 전명헌 회장은 오래 망설이는 성격은 아니었다. 말을 돌리는 건 딱 한 번으로 충분했다.

    -내가 창당을 준비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겠지?

    대신 유재원은 일단 제외했던 정치 이슈가 바로 직구로 꽂혔다.

    “그럼요. 작년에도 비슷한 언질을 주셨잖아요.”

    전명헌은 주변의 측근이나 가족들에게도 대놓고 창당을 하겠다고 한 건 아니었다. 대신 정치인에 대한 불만을 간간이 보여주셨다. 그건 유재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할지 말지를 두고 많은 고민을 하신 모양인데, 작년 말 갑자기 떨어진 거액의 추징금이 방아쇠가 되어서 결국 실행으로 옮기게 된 것이다.

    -그래. 네 생각은 어떤가 물어보고 싶다. 혹시 너도 반대하느냐?

    역시나 가족은 물론 측근들까지 다 뜯어말리고 있나 보다.

    하긴, 경제인이 정치에 직접 참여한다는 것은 한국에선 유례가 없는 일이긴 했다. 그렇기에 우려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건 전명헌 회장의 가신 그룹이 제일 컸다. 결과가 좋지 않았을 경우, 금전적 손실은 물론이고 밉보인 정치인들의 보복에 기업과 전명헌 회장 본인은 물론 일가까지 큰 타격이 올 것이기 예상되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성공할 확률은 지극히 낮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었다.

    “음, 바로 대답해야 하나요? 잠깐만 생각해 볼게요.”

    -얼마든지 기다리마.

    약간의 시간을 얻은 유재원은 머릿속이 빠르게 흘렀다.

    사실, 전명헌 회장이나 미래는 유재원의 마스터플랜에는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전생에 마스터플랜을 짤 때, 전명헌 회장과 이렇게나 친해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탓이다.

    덕분에 미래 그룹에 대한 대응은 한국의 재벌들과 비슷한 취급이었다. 마찬가지로 전명헌 회장의 정치 행보 역시 마스터플랜에선 개 닭 보는 수준이었다.

    전명헌 회장의 통일 국민당은 총선에선 큰 성공을 할 거다. 그런데 곧 이어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전명헌 회장은 완전 쪽박을 찬다. 전명헌 회장은 은퇴를 선택했고, 당의 구심점이 사라지자 통일 국민당은 와르르 무너졌다.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무너질 조직이었으니, 유재원의 마스터플랜에서는 공기와 같은 취급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전명헌 회장이 조언을 구한 만큼, 유재원도 이제 그의 정치 행보에 조언해줄 수 있게 되었다. 이번 건은 마스터플랜의 도움 없이 순전히 자신의 판단으로 최대한 긍정적인 결과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유재원의 머릿속에 수많은 상상과 가정이 펼쳐졌다 사라졌다. 그렇게 3분이 지났다.

    “여보세요? 할아버지? 듣고 계세요?

    -그래. 어서 말해보려무나.

    전명헌 회장도 3분 동안 수화기를 떼지 않고 있던 모양인지 바로 응답이 왔다.

    “하세요! 하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유재원은 질렀다.

    -응? 뭐라고? 하라고?!

    유재원의 말에 전명헌 회장이 반색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재원 역시나 부정적인 소리를 할 줄 알았던 탓이다. 그런데도 굳이 유재원에게 전화했던 건, 어쩌면 일반인과는 다른 말을 해줄 거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대치는 복권 당첨확률처럼 작았다.

    “네! 기왕이면 정치권이 깜짝 놀랄 만큼 크고 화려하게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혹시 제 도움이라도 필요하면 언제든 도와드릴게요.”

    그냥 지르는 것이 아니라, 시원하게 질렀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완전 감사합니다~!!

    C&C, 참 재미있던 게임이었는데...

    EA가 인수한 후에 온갖 삽질을 하다가 끝장내버린 대표적인 프렌차이즈였지요.

    요즘 학생 분들은 이런 게임이 있다는 거 아는 분들이 없을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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