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192화 (192/1,007)

[192] 열혈 추종자들(Esquires) =========================

다음날.

유재원은 점심때까지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안드로이드 1.0의 차기 패치를 위한 작업을 총괄했다.

안드로이드 1.0도 100일마다 패치를 해준다는 정책이 유지 중이다.

패치는 운영체제의 버그도 고치고, 새로운 기능도 넣기 위함도 있지만, 가장 큰 목적은 광고의 갱신이었다. 안드로이드 1.0이라고 해도 원래의 의도에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1.0이 발표되고 딱 100일째인 11월 22일이 첫 번째 패치의 배포 날이었고, 불과 하루를 남기고 있다. 그렇기에 첫 번째 패치는 이미 완성이 된 상태로 배포 준비 중이었다. 전 세계 소매상에 온라인으로 패치용 파일을 보내는 작업만 남은 것이다.

24개의 광고 슬롯도 국제적 기업에 높은 가격으로 다 팔려 나갔고, 안드로이드 1.0을 보다 완벽하게 만들어줄 기능도 탄탄하게 탑재했다.

첫 번째 패치를 설치하게 되면 파일관리자의 기능도 강화했고, 다양한 멀티미디어 포맷도 지원하고, 보안성도 좀 더 높아진다. 특히 광고 기능도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예전엔 1시간 마다 오른쪽 아래 귀퉁이에서 스르륵 올라왔다가 사라졌다. 마우스로 클릭하면 커다란 광고 이미지를 보여주거나, 광고주 회사에서 만든 문서파일을 띄워 주는 수준이었다. 이미지를 잘 만든 회사도 있었던 반면, 글자만 가득한 문서가 나오는 회사도 있었다.

이번 패치를 설치하면 많이 달라진다.

바로 HTML을 사용하는 광고가 담기기 때문이다. 이번 패치를 설치한 컴퓨터에서 귀퉁이에 나오는 광고를 클릭하면 웹 브라우저가 실행되면서 해당 회사가 만든 HTML 문서가 열리게 된다.

단편적인 이미지나, 글자가 가득한 문서에서 둘이 하나로 합쳐진 하이퍼 텍스트로 바뀌는 것이다. 만약 인터넷과 연결된 컴퓨터라면 광고주 회사가 만든 페이지에도 가볼 수 있다.

이전의 이미지나 문서와 HTML을 비교하면 정보의 양이나 접근성은 차원을 달리한다. 광고주들도 그걸 알아보고 높은 가격에 광고 슬롯을 샀다. 안드로이드 1.0이 막 출시했던 때엔 슬롯 하나당 50만 달러였다.

이번 패치에 담긴 광고들은 최소 60만 달러 이상이었다. 슬롯은 24개가 있으니 이번 패치의 총 매출은 1,440만 달러로 엄청난 거금이 들어왔다.

이로 인해서 올해 안드로이드 1.0의 광고 매출은 2,600만 달러를 찍었다. 1991년도 광고 매출만으로 이만큼 수익을 창출한 IT 회사는 ID 테크놀로지가 유일할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 온라인 광고 시장은 무섭게 확대될 것이니 ‘만’이란 단위가 ‘억’이란 단위로 바뀌는 것도 순간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정품 판매 수익이 광고 수익보다는 컸다. 현재까지 완제품 컴퓨터에 탑재된 안드로이드 1.0의 숫자는 전 세계 모두 합쳐 500만 장을 넘었다. 개당 10달러라는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는 중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팔리는 컴퓨터 숫자가 엄청나게 많다 보니 5천만 달러의 매출액이 만들어졌다.

안드로이드 1.0만으로 1991년 매출액은 7,600만 달러를 찍은 것이다.

유재원은 충분히 만족스러운 숫자였는데, 정작 임원이나 간부들이 아쉬워하는 이들이 좀 있었다. 앉으면 눕고 싶은 것처럼 1억 달러라는 상징적 숫자가 코 앞이었던 탓이다. 그래서 내년에는 메이저 컴퓨터 업체에 안드로이드 1.0의 공급 가격을 높이자는 의견도 커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안드로이드 1.0과는 비교하기도 민망한 수준의 운영체제였던 MS-DOS의 가격은 최대한의 할인을 받아도 60달러 이상이었다. 정가는 120달러였으니 엄청난 가격 정책이었다.

그런데도 컴퓨터 업체들은 기꺼이 MS-DOS를 채용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운영체제의 가격도 소비자에게 전가했기에 본인들은 부담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ID 테크놀로지의 임원들이 지적하는 것도 이것이다. 지금은 마이크로소프트 때보다 1/12의 가격으로 공급하고 있다. 그러니 컴퓨터 가격도 100달러 정도는 내려와야 한다. 하지만 컴퓨터 가격은 여전히 비쌌다.

똑같은 모델에서 운영체제가 달라졌는데 가격은 이전과 똑같은 제품이 수도 없이 많았다. 운영체제 공급 비용이 저렴해진 만큼 가격하락을 시킨 게 아니라, 그 차이를 제조사가 맛있게 먹는 중이었다.

유재원도 고심 중인 문제였다.

당연히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가격을 끝까지 10달러로 고정할 생각은 아니었다. 물가 상승률에 맞춰 가격을 책정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임원들의 분석을 들어보니 물가상승률보다 높게 잡아도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문제는 상승 비율이지만, 지금 당장 생각할 문제는 아니었다. 지금 당장 유재원을 고심하게 하는 건 따로 있다.

“인터넷 서버 기능도 패치로 넣어 줘야 하나?”

92년은 분명 인터넷의 해가 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유재원의 개입으로 인해서 인터넷 보급 속도가 원래의 역사보다 1년은 더 가속화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미국도 그렇고 한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인터넷만 한정해 놓고 보면 한국이 더 빠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은 넥스트컴과 한국통신을 통해 ADSL 시범 서비스를 내년부터 시작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헨리 사무엘이 만든 ADSL 모뎀과 이를 뒷받침할 DSLAM 장비도 한국의 중소기업을 통해 생산 중이다. 당연히 ADSL 기술의 권리를 보유한 벨코어에서 ADSL과 관련 기술 전체를 구매해 와서 OEM 방식으로 생산하는 것이다.

미국은 미정이다.

캘리포니아 지역만이라도 커버하는 케이블 방송 회사를 구매하려고 타진 중이었는데, 마땅한 매물이 나오지 않고 있었던 탓이다.

하여튼 인터넷은 91년 시작한 인터넷은 92년에는 폭발적으로 성장할 분야였다. 당연히 인터넷 서버를 운영하고 싶은 회사나 개인들도 많아지는데, 이에 대비해서 레드먼드 안드로이드 사업부는 서버용 프로그램을 열심히 만드는 중이었다.

가칭 안드로이드 웹 서비스라는 프로그램인데, 이걸 설치하면 PC에서도 간단히 WWW나 FTP 같은 서버를 열 수 있다.

문제는 패치에 담기엔 프로그램이 너무 전문적이었고, 용량도 크다는 점이다. 게다가 신기술도 많이 들어간다. 단적으로 2개 이상의 CPU를 지원하고, 대용량의 메모리와 데이터베이스도 관리할 수 있다.

“결정적으로 용량도 크지.”

패치의 경우 3.5인치 디스켓 한두 장으로 끝나는 작은 크기인데, 안드로이드 웹 서비스는 그 자체로 3.5인치 디스켓 3장이나 된다.

이것저것 신기술을 모두 담다 보니 그렇게 됐는데, 용량을 줄이자고 무엇 하나 빼기에도 문제였다. 게다가 ID 테크놀로지의 전략은 초반부터 엄청난 완성도로 경쟁 회사들이 따라올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에 있었다.

그렇기에 리테일 제품을 프로토타입보다 떨어뜨리는 건 절대 할 수 없다.

“뭐, 그럼 답은 간단하지.”

유재원 결정은 새로운 제품 출시다. 웹 서버를 만들고 싶은 사람만 사서 쓰라는 것이다. 인터넷 보급을 위해서라면 그냥 푸는 것도 좋겠지만, 그러면 회사의 재정에 그다지 좋은 건 아니었다.

보급도 인터넷이 돈이 된다는 걸 보여주기만 하면, 자발적으로 참여할 사람도 많이 늘어날 것이니 문제는 아니다. 다만 가격이 높으면 경쟁사들 나타나 비슷한 제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내놓을 수 있다.

그렇지만 유재원의 전략은 엄청난 완성도로 경쟁사를 압도하는 것이니, 제대로 된 서버 프로그램을 원하는 기업이라면 당연히 ID 테크놀로지를 선택할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면 한 팩에 120달러 정도 받고, CPU 숫자만큼 50%씩 가산하면 되겠다.”

현재 PC는 메인보드에 하나의 CPU가 들어간다.

서버 컴퓨터는 다르다. 2개 이상의 CPU가 들어가는데, CPU의 숫자만큼 소프트웨어 가격이 올라가는 건 이전부터 존재하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가격정책이었다.

대표적인 회사가 바로 IBM이었다.

넥스트컴 서비스를 위해 도입한 메인프레임만 봐도 CPU는 물리적으로 8개가 들어가 있다. IBM은 CPU 숫자만큼 메인프레임 운영체제의 가격을 높이 불렀다. 그렇지 않아도 메인프레임 운영체제는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데, CPU 숫자만큼 더 가격이 올라가니 웬만한 스포츠카 가격보다 비쌌다. IBM에 비하면 유재원은 매우 양심적이다.

“그러면 내년 3월 1일 패치에는 멀티코어 지원하고 글라이드 X2만 넣으면 되겠네. 아! 동영상 코덱하고 차세대 이미지 포맷도.”

안드로이드 웹 서비스를 별도의 제품으로 내기로 하면서, 차기 패치의 방향이 확정되었다. 하나하나가 굵직한 것들이다. 안드로이드 웹 서비스처럼 돈을 받고 팔아도 될 만큼 커다란 제품이지만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서 아낌없이 풀어주는 유재원이다.

“회장님! 이동하실 시간입니다.”

컴퓨터 앞에 집중하고 있던 유재원에게 김대석이 다가와 다음 스케줄을 알렸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오후 1시가 코앞까지 왔다.

어쩐지 좀 출출하다 싶었다. 회사 일에 집중하다 보니, 뭘 먹어야 한다는 것도 깜빡해버린 것이다.

“점심 드셨어요?”

“아, 네! 잘 챙겨 먹었습니다. 설마 회장님, 점심을 못 드셨습니까?”

김대석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밥 한 끼 건너 뛰면 사람이 죽는 줄 아는 것처럼 호들갑이다.

“어제 사놨던 채소빵 먹었어요. 가는 길에 햄버거나 하나 먹고 가죠.”

“아이고, 그러다 탈이 나십니다. 신선한 재료로 만든 제대로 된 음식을 드셔야 합니다.”

잔소리가 심해지는 김대석이다.

휴가를 갔다 오면서 유재원의 부모님께 특별한 당부라도 듣고 온 모양이다. 최대한 건강히 오래 살기 위해서는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하니 유재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맥도날드 대신 레스토랑에서 영양학적으로도 균형이 잡힌 식사를 마친 유재원은 진짜 다음 스케줄을 시작했다.

레밍턴의 결혼 선물인 저택의 준비 상황을 점검해 보는 일이었다.

유재원은 일이 많아서 직접 가 본 적은 없고, 김대석이 대신해 다녀왔다. 김대석의 의견, 부동산 회사의 팸플릿 그리고 기억의 궁전 속 데이터와 비교해서 제일 좋은 걸 골랐다.

인테리어는 전문 회사를 골라 진행 중이었는데, 레밍턴과 섀넌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물론 둘에게 직접 취향을 물어본 건 아니었다. 물어보지 않아도 유재원에겐 둘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있었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여깁니다.”

유재원의 집에서 저택까지는 자동차를 타고 20분이 못 걸렸다.

“오, 좋네요.”

저택의 실물은 기대 이상이었다. 자동으로 열리는 대문을 통해 차를 탄 상태로 그대로 들어가서 본관 앞에 섰다. 본관 앞에는 깔끔한 유럽식 정원이 만들어져 있었다. 지금은 겨울이라 화려하진 않았다. 봄이 되어 파릇한 새싹과 잎이 자라나면 무척이나 화려할 것 같다.

유재원은 김대석과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꼼꼼하게 둘러 보았다.

유럽 왕족들의 궁전만큼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할리우드의 톱스타들의 빌라처럼 규모도 크고 화려했다. 전체 2층이고 침대가 들어가는 방은 4개에 화장실은 5개, 주방과 식당이 각각 2개에 영화 감상실과 음악 감상실, 서재가 있다. 그리고 야외에 테니스장과 수영장이 있는 집이다. 또한, 차고도 크게 하나 있는데 10대의 대형 자동차를 넣을 수 있다.

부자들 많은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커다란 저택인데, 비교적 저렴한 600만 달러에 구매했다. 구매에 들어간 자금은 당연히 회삿돈이 아니라 유재원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방마다 명확한 목적이 있기에, 이에 필요한 전자제품이나 가구들도 바르게 놓여야 한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제품들 모두 최상급으로 준비했다.

마지막으로 항상 바쁜 둘이 이 거대한 집을 관리하진 못할 게 분명했다. 그래서 저택 관리사들도 따로 고용했다. 집사까지 골라주고 싶었는데, 그건 너무 참견하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대략 1천만 달러 정도를 쓴 것 같다.

달러로 생각하니 무척이나 큰돈인 것 같았는데, 한국 돈으로 따지면 대략 71억 원 수준이다. 이것도 제법 묵직한 금액이긴 해도, 21세기 서울에서 최대 부촌인 성북동의 저택 하나를 사서 리모델링 한 것과 비슷한 액수였다.

ID 그룹의 가장 핵심 사업체인 테크놀로지 사업부 사장이라면 충분히 누릴만한 호사였기에 유재원은 무리한다는 느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이제 타이밍을 잘 봐서 열쇠만 넘겨주면 되겠네.”

과연 레밍턴과 섀넌이 무슨 반응을 보여줄지 무척이나 기대되는 유재원이다.

며칠 후.

유재원은 선물을 줄 날짜를 정했다.

11월 27일. 레밍턴의 결혼식을 딱 하루 남겨둔 날이었다.

유재원은 최대한 일찍 주고 싶었는데, 22일에는 안드로이드 1.0의 첫 번째 패치를 배포하고부터 며칠간 정신이 없었다.

복사 받아오거나, 온라인에서 내려받은 걸 실행만 하면 되는데, 이 간단한 작업에서 생각지도 못한 에러를 뽑아내는 기상천외한 사용자들이 많았다. 패치는 총 3장인데 한 장만 받아와서 안 된다고 징징거리는 건 애교 수준이었다. 하드디스크 용량이 부족해서 패치가 안 되는 것도 모르고 항의를 하는 숫자도 상당했다.

분명 에러 메시지에 하드 디스크 용량이 부족하다는 게 뜨는 데도, 그걸 못 보고 지나쳐서 바로 고객 센터에 전화하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패치 후 새롭게 생긴 호환성 문제도 있었다. 표준 규격을 따르지 않고 만들어진 프로그램의 경우엔 언제든 문제가 발생할 여지는 충분한데, 그건 그 프로그램을 만든 회사에 따질 일인데, 안드로이드 사업부로 따지는 것이다.

유재원을 더 정신없게 만드는 것은 패치뿐만이 아니다.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의 개발권을 확보했습니다!

빈센트 그린힐로부터 생각지도 못했던 보고를 받았다.

유재원이 빈센트 그린힐에게 우유니 사막의 리튬 광산에 대한 언급을 분명히 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획득하라고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진 않았다. 현재 2차 전지의 주요 소재는 니켈-카드뮴이었고, 리튬을 사용하는 2차 전지는 한창 연구 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2차 전지를 사용하는 모바일 제품들은 21세기나 되어야 쓸만해 지기에 당장 급한 건 아니었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리튬과 같은 지하자원에 대한 투자는 기술이 성숙하고, 모바일 기기들의 부흥이 시작할 때에 맞추려고 했다.

빈센트 그린힐은 유재원에게 받은 과제는 꼭 수행해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었다. 지나가는 말이라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받아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 수행했다.

이번 볼리비아 건이 대표적이었다.

유재원은 빈센트 그린힐이나 ID 인베스트먼트 소속 투자분석가들이 볼리비아에 출장을 나간다는 보고는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거기에 가 보지도 않고 어떻게 개발권을 따냈나 봤더니, 현지 대행사와 로비스트를 활용했다.

볼리비아의 작은 광산 업체가 ID 인베스트먼트의 대리가 되었고, 현직 볼리비아 대통령과 가까운 이가 로비스트가 되었다. 투입된 비용도 60만 달러를 채 넘지 않았다. 게다가 우유니 사막의 개발권은 독점이었고, 가격도 불과 500만 달러밖에 하지 않았다.

단서 조항으로 개발에 성공한 다음, 리튬이 나오면 볼리비아에 일부 수익을 나눠줘야 한다는 것이 달려 있긴 했다. 그렇지만 이걸 포함해서도 너무나 저렴한 가격이다.

역시 투자는 아무도 찾지 않을 때 선점하는 게 최고라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유재원이었다.

유재원은 당연히 승인했다. 리튬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가장 대표적인 제품인 배터리는 물론이고, 고품질 유리에도 쓰인다. 조만간 브라운관을 대체할 LCD 제조에 리튬은 필수적이다.

불안한 점은 딱 하나다.

볼리비아의 정치적 불안정성.

볼리비아는 쿠데타가 수도 없이 일어나는 나라였다. 1825년 독립한 때부터 21세기까지 200여 차례가 일어났다. 민간 정부의 통치 기간은 불과 40년이지만, 나머지 기간 전체가 군사정권 통치 기간이었다.

그나마 지금은 하이메 파스 사모라 대통령의 집권 중으로 민간 정부였다. 온건한 중도좌파 대통령으로 실용주의 노선을 선택하고 있었다. 덕분에 ID 인베스트먼트가 우유니 사막의 리튬 광산 개발권을 따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마약 거래에는 관대해서 코카 잎 재배 근절에도 주저하고, 마약 조직 타파에도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은 게 흠이었다.

경제력이 약한 볼리비아에서 마약과 관련된 일들이 국가 산업 수준이었으니, 마약 산업에 눈을 좀 감아주겠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큰 실수하는 거다. 공권력보다 더 강력한 마약 카르텔이 나타나서 볼리비아를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테니 말이다.

마약 카르텔 덕분에 현지에 회사를 차리고 ID 그룹의 인력을 투입하는 건 무척이나 꺼려진다. 이에 대한 대안은 빈센트가 했던 것처럼 현지의 광산 업체를 인수해서, 경영진부터 인부까지 모두 현지인으로 진행하는 것이고, 유재원의 마스터플랜에도 이와 같은 방식이 담겨 있다.

유재원은 MOU같이 언제든 파투낼 수 있는 단계는 다 생략하고 정권이 바뀌더라도 소유권을 확실히 보장받을 계약을 체결하라고 지시했다. 체결되면 곧바로 광산 개발을 진행해서 아무도 우유니 광산에 숟가락 올리는 일은 없도록 할 작정이다.

이렇게 정신없이 11월 말을 보내는 사이에 28일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유재원은 곧바로 레밍턴 부부와 약속을 잡았다. 그것이 내일이었다. 내일모레가 결혼식이라 둘 다 바쁜 몸이었지만, 회장인 유재원의 부탁에 잠깐이나마 짬을 내어주었다.

다음 날.

유재원은 곧장 샌프란시스코 북쪽으로 둘을 데리고 가서 저택을 소개했다.

“두 분의 결혼 선물이에요!”

레밍턴과 그의 비서이자 신부인 섀넌은 처음에 유재원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커다란 저택 본관 앞에 내리자마자 선물이라고 하니 주변을 둘러 봤는데, 그 어디에도 선물 상자 같은 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집이 선물이에요.”

눈치가 빠른 유재원이 부연 설명했다. 그제야 둘은 거대한 저택을 보고 ‘선물’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거대하고도 우아한 자태에 말을 잃어버렸다. 마치 두 사람의 취향을 그대로 읽은 것처럼 외부는 단단한 화강암으로 마감되었고, 내부는 블랙과 화이트 그리고 은색으로 통일된 톤이었다. 그러면서도 요소요소에 포인트가 멋들어졌다.

본관, 정문을 열고 들어가면 보이는 거실은 2층까지 탁 트인 형태였는데, 화려한 샹들리에가 아름다운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섀넌보다 레밍턴이 한 발 먼저 현실로 돌아왔다.

“보스, 제가 목숨을 구해드린 적이 있습니까?”

현재의 유재원은 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싶고, 그랬다고 말하고 싶어도 그건 전생의 일이었던 탓이다.

결국, 유재원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보스, 우리가 일을 함께한 게 1988년부터였죠? 혹시나 저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이벤트가 있었나 싶었습니다.”

레밍턴의 말에 유재원은 바로 거절을 직감했다.

회귀 후 레밍턴에게 처음 전화를 걸었을 때, 대차게 까인 기억이 생생히 떠올랐다. 목소리와 통화 음질만으로 귀신같이 유재원의 신상을 유추했었다.

“그때부터 늘 고마운 마음입니다. 동시에 매일 기적도 경험하고 있지요. 소꿉장난처럼 시작했던 우리가 마이크로소프트까지 인수하고, PC 운영체제와 오피스 프로그램까지 통일해버릴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게다가 기적을 이룰 때마다 수백만 달러의 보상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차고가 여럿 딸린 집도 샀고, 섀넌과의 결혼도 일찍 할 수 있게 되었죠. 즉, 이미 보상은 충분하다는 말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이처럼 호화로운 저택은 과분합니다.”

“네!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보스! 이런 집은 며칠 묶기엔 좋아도 평생 살기엔 너무 부담스러워요.”

레밍턴의 말에 섀넌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선물을 준비할 때, 뭔가 좀 빠진 게 있던 느낌이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인테리어도 준비했었는데, 지금 보니 선물을 받을 레밍턴과 섀넌에 대한 배려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보스가 우리 부부를 생각하는 마음을 알겠습니다. 섀넌 때문에 임산부 지원정책을 만들 때부터 알아보긴 했는데, 이 저택 덕분에 확실히 도장까지 찍은 느낌입니다. 덕분에 회사에 뼈를 묻을 각오로 불타오르는군요!”

레밍턴의 말에 유재원은 할 말이 없어졌다.

임산부 정책을 만들 때, 특정 대상을 향해 특별 대우를 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던 말이 기억이 났다.

했던 말은 주워담을 수도 없지만, 이미 인테리어까지 끝난 저택을 또 무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억지로 레밍턴 부부에게 강제로 줄 수도 없으니 이래저래 난감한 유재원이었다.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비록 보석함까지 주문해 포장한 저택 열쇠를 넘겨주지 못했지만, 레밍턴의 대답에는 감동이었던 탓이다. 눈빛만 보아도 이글거리는 진심으로 가득했다.

유재원은 둘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해주었고, 신혼여행의 추억이 깊이 새겨지도록 2주나 되는 휴가를 주었다. 저택은 받지 않았던 레밍턴도 휴가는 기쁘게 받았다.

유재원은 나중에 1991년을 돌아보았을 때, ID 그룹의 열성 추종자들을 양산한 해로 기억했다. 크게는 안드로이드 1.0과 뉴 에그 PC를 통해 수많은 컴퓨터 사용자들을 단숨에 사로잡았고, 범위를 작게 줄인다면 그 어떤 일에도 유재원을 향한 지지가 흔들리지 않을 이들이 한국과 미국에서 조직된 중요한 해였기 때문이다.

물론 수많은 유재원의 추종자 중에 가장 큰 거목은 레밍턴 스팅이라는 건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완전 감사합니다~!!!

정말 죄송스럽게도 열성 추종자를 양산한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는데, 실패인가봅니다.

그래도 러시아에서 대려온 개발자, 푸틴, 한국의 김&정 그리고 레밍턴까지. 여기에 본문에 언급은 되지 않았지만 안드로이드와 뉴에그 팬보이들까지. 추종자들은 확실히 많이 만들었습니다!

하여튼 이번 편으로 챕터는 마무리하고, 다음 챕터는 시간을 살짝 뛰어서 1992년부터 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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