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191화 (191/1,007)

[191] 열혈 추종자들(Esquires) =========================

1991년 11월 18일.

유재원이 ID 하이테크 연구소 소속이 된 샤일로프 박사를 비롯한 6명의 연구원을 이끌고 미국에 입성한 날이었다.

독일에서 뉴욕으로, 뉴욕에서 레드먼드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할 만큼 장시간 비행을 해야 했다. 다들 비즈니스석 이상의 자리로 배정했고, 샤일로프 박사와 6명의 연구원에겐 특별히 일등석을 배정했다.

그렇지만 이처럼 장기간 비행은 처음이라서 다들 무척이나 힘들어했다. 게다가 미지의 미국땅을 처음 밟은 것에 대한 불안감도 제법 컸다. 미국의 입국수속은 악명 높기로 소문이 자자했는데, 그게 러시아까지도 퍼졌던 모양이다.

다행히 우려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깐깐하다는 입국 심사 인터뷰도 몇 가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영어를 못하는 박사들 중간에 통역이 껴서 러시아 말로 주고받았음에도 쉽게 통과했다.

마치 사전에 유재원이 데려오는 사람들은 쉽게 통과시키라는 명령이라도 받은 것처럼 친절했다.

그렇게 공항을 나선 유재원은 곧바로 샤일로프 박사를 ID 하이테크 연구소 본관으로 안내했다.

안드로이드 사업부 본부 근처에 있는 하이테크 사무실은 최첨단 인텔리전트 기술이 도입된 빌딩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알파 랩을 알파 연구소로 강화하고 최신 IT 기술을 연구하기 위해 만들었던 건물이기 때문이다.

오오!

입구에서부터 느낌이 확 달랐다.

건물 전체가 유리로 덮인 유리 궁전 스타일의 빌딩이었고, 본관 입구부터 인텔리전트 기술을 접할 수 있다. 바로 지문 인식 출입 시스템이다. 등록된 지문이 있어야 문이 열리는데, 샤일로프 박사 일행의 지문은 이미 등록시켜놨다.

지문은 위조 방지를 위해서 다섯 손가락 전부를 읽는 형태였는데,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장치가 눈앞에 있으니, 다들 신기해했다. 게다가 연구원 아니랄까 봐 뜯어보고 싶다는 눈빛이 강렬했다.

실리콘밸리의 벤처 기업이 만든 것이고, 일일이 손으로 제작한 수제 제품이라서 값이 비싸다.

“슈퍼컴퓨터부터 보실래요?”

유재원은 곧장 관심을 돌리면서 빌딩 입구에서 웅성거리던 이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샤일로프 박사 일행도 컴퓨터라는 소리에 즉각 반응했다.

슈퍼컴퓨터는 안전한 지하실에 설치되어 있었기에 안내는 지하부터 차근차근 위로 올라가는 방식이었다.

지하는 데이터 센터였고, 층마다 다양한 연구 시설들이 들어가 있었다. 일반 연구소에서는 볼 수 없는 고해상도 전자 현미경도 있었고, 소규모로 반도체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장비도 갖춰져 있었다.

수많은 연구 장비들은 미국이 외국으로 수출을 금지한 품목이었기에, 샤일로프 박사 일행은 하나하나 공개될 때마다 껌뻑 죽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최상층이었다.

“호텔 같군요.”

“호텔이 아니라 숙소입니다.”

최상층은 연구시설이 아니라 잠을 자고,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집처럼 꾸몄다. 게다가 인테리어의 수준은 호텔 디럭스 룸 이상으로 잘 갖추었다. 특히 몇몇 방의 경우 스위트 룸 수준이다.

덕분에 숙소라고 하기엔 시설이 아주 좋았다. 샤일로프 박사의 말처럼 호텔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여기가 박사님들의 숙소입니다.”

유재원은 회사 안에서 의식주를 모두 해결하는 스타일은 싫어했다.

전생에 사업을 시작하고서 그렇게 10년을 넘게 살아서 진저리가 났다. 먹고, 자고, 일하고를 매일 반복했다.

덕분에 생활의 패턴이 일반인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회사 사람들 말고 만나는 사람도 없어서 연애 한 번 제대로 못 했다.

결혼은 두말할 것도 없다. 나중에는 외롭다 못해 고독하기까지 했다. 그나마 홀몸이었기에 회귀를 걸고 했던 거래를 부담 없이 지를 수 있었다. 만에 하나 아내도 있었고 떡두꺼비 같은 자식들도 있었더라면 회귀를 하는 것에 미련이 남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덕분에 이번 생에서는 회사의 지박령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실제로 그 다짐은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 것이, 유재원은 본인이 만든 회사에서 밤새 근무를 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출시일이 촉박해져서 컴퓨터 작업을 오래 하게 되었을 때도 집에 가서 했다.

당연히 이 생각은 직원들에게도 적용하려고 했는데, 강력히 강제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실리콘밸리 팀이나, 로데오 팀, 레드먼드 팀 소속 개발자들은 아직도 회사에서 사는 사람들이 좀 있다.

다만 연장근무나 회사에서 숙식하면 근무 평점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공지를 했고, 실제 평가 역시 점수가 나쁘다. 오히려 맡은 일을 평소 근무시간 안에 처리하는 게 인사 고과에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

인사 점수는 곧 연말 보너스 정산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라서, ID 그룹에선 야근이나 밤샘 근무 문화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그렇지만 ID 하이테크에는 이런 방침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샤일로프 박사를 비롯해 이번에 들어온 연구 수뇌부는 모두 러시아 사람들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러시아 쪽 두뇌들이 들어올 예정인데, 이들이 레드먼드 시내에 숙소를 잡으면 위험한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았다.

레드먼드가 있는 워싱턴 주가 진보 성향이긴 해도, 극성인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비밀스러운 기술을 다루는 사람들인데, 이를 노린 조직이나 기업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ID 하이테크 만큼은 숙소를 이곳처럼 안전한 곳에 마련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본관 최상층이 선택되었다.

“엄청난 시설이군요.”

건물 전체를 둘러본 샤일로프 박사의 평가였다.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얼마든 이야기하세요. 바로 구해다 드릴게요.”

“아닙니다. 장비며 예산이며 너무나 풍부해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를 정도입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샤일로프 박사의 눈빛은 고마움이 가득했다.

유재원은 그걸로 만족하지 않았다. 고마운 정도가 아니라 이곳에서 뼈를 묻겠다는 마음이 절로 생겨날 만큼 전폭적으로 도울 거다.

그렇게 해서 샤일로프 박사와 인적 네트워크가 있는 사람들까지 모조리 다 끌어와서 세계 최고의 에너지 연구소로 키울 것이다.

이후, 유재원은 레드먼드에서 며칠을 더 보냈다.

연구소에는 단지 연구원만 필요한 게 아니라, 이들을 보조할 행정직도 필요했고 청소나 빨래, 음식 등을 할 일반 직급 직원들도 필요했다.

이미 고용은 완료된 상태인데, 정식 근무를 시작하지 않아서 혼란이 조금 있었다. 체계가 잡힐 동안 유재원이 현장에서 중요한 결재를 모두 처리했다. 덕분에 며칠 만에 ID 하이테크 연구소는 정상 가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여긴 여전하네.”

오랜만에 실리콘밸리의 올드 팔로 알토로 돌아온 유재원은 집안을 체크했다.

온기는 없었지만, 관리는 잘 되어 있었다. 3일에 한 번 집에 와서 청소를 해주는 서비스에도 가입해 놓았고, 집 안팎으로 걸려 있는 보안 시스템도 설치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순찰해주는 경비 서비스도 가입해 놓은 덕이다.

이런 서비스가 없더라도 미국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치안이 좋은 지역이니 별 탈 없을 테지만, 유비무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집에 불도 켜고, 보일러도 켜 놓으니 곧 아늑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부모님이 열심히 인테리어를 해놓으셔서 혼자지만 외롭다는 느낌은 없었다.

거실에 텔레비전을 크게 틀어놓고 유재원은 서재로 가서 컴퓨터를 켰다.

익숙한 안드로이드 로봇 마스코트가 나와서 부팅 작업을 시작했고, 몇 초 만에 로그인 화면이 나타났다. 제법 긴 암호를 집어넣자 잠금화면이 풀리면서 이내 익숙한 바탕화면이 짜잔 하는 효과음과 함께 떠올랐다.

유재원의 손은 자연스럽게 ID 웹 브라우저를 실행했다.

집에 오면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하는 건 전생의 습관인데, 회귀 후에도 여전했다. 그렇지만 한국과 러시아 출장을 다녀오면서 최신의 뉴스를 받아보지 못했던 유재원에게 인터넷만큼 좋은 매체는 없었다.

“오, 사이트가 많이 늘어났네.”

유재원이 제일 먼저 확인한 건 넥스트컴이 관리하는 DNS 서버에 신규로 등록된 인터넷 사이트 주소를 살피는 것이었다.

가장 최근에 확인했던 때가 10월 말이었는데, 11월 중순인 오늘 보니 숫자가 30%나 늘어난 상태였다. 인터넷이란 미지의 영토가 매우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특히 많이 늘어난 건 호텔과 여행사 그리고 항공회사였다.

인터넷과 PC 통신으로 예약을 받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보이는 중이었다. 유재원이 봤을 땐 어설픈 게 많았다. 제일 잘 만들었다는 호텔의 홈페이지에 접속해 봐도 빈틈이 많이 보였던 탓이다.

온라인 결제가 가능한 사이트는 없었고, 기능적으로도 모자란 게 많았다. 그래도 전화로 예약을 받았던 때보단 진일보한 것이었다.

또한, 인터넷 웹사이트가 많아지면서 이를 정리하고 손쉽게 원하는 사이트를 검색할 수 있는 검색 엔진에 대한 요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미래 먹거리가 속속 생겨나고 있네.”

이렇게 슥 둘러본 것에 불과한데도 유재원에겐 수많은 비즈니스 모델이 떠올랐다. 가장 먹음직스러운 건 검색 엔진이었다.

지금도 검색 사이트가 없는 건 아니었다. AOL이라는 미국 최대의 PC 통신 회사이자 미디어 기업이 운영 중인 사이트가 있었다.

그런데 검색 엔진이라고는 하기엔 좀 부족하다. 검색용 봇이 알아서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일일이 사이트를 방문해 인덱스로 정리한 걸 검색하는 방식이다.

이는 컴퓨서브의 온라인 사이트 역시 마찬가지다. 유재원이 미국에서 첫 번째로 터트렸던 타자 연습기 키보드 워리어를 띄웠던 바로 그 PC 통신 서비스였다.

컴퓨서브의 온라인 사이트 역시나 AOL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정리한 인덱스를 바탕으로 검색 서비스를 제공했다. AOL과 다른 점이라면 컴퓨서브는 인덱스를 정리할 때 사용자의 의견도 받아서 적용한다는 것이다.

위키피디아처럼 누구나 자유롭게 추가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컴퓨서브를 오래 사용한 사람들에게 개방된 것이지만, 덕분에 늦게 시작했음에도 AOL의 인덱스 분량을 따라잡았다.

넥스트컴은 이들과는 다른 방식이다.

DNS 서버를 운영하고 있었기에 인터넷 서버를 운영하고자 하는 이들이 알아서 등록했다. 다만 사이트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 카테고리를 나눠서 분류하진 않기에, DNS에 등록된 WWW 주소의 이름만 가지고 추측을 해야 한다.

이는 헨리 사무엘 사장이 선택한 방식이다. 유재원은 아직 때가 무르익진 않았다는 판단에 본인이 보유한 뛰어난 자동 검색용 로봇 알고리즘이나, 사이트 순위 랭크 방식 등의 신기술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아직도 때는 아니지.”

지금도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본인이 만든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덕에 예정보다 일찍 인터넷 시대가 개막했지만, 대부분 영역은 아직도 불모지였다. 운영 중인 사이트 대부분은 수익을 전혀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수익을 보는 쪽도 막대한 유료 가입자를 보유한 AOL, 컴퓨서브 그리고 유재원의 넥스트컴과 같이 구식 PC 통신을 바탕으로 하는 기업들이다.

검색 엔진이 나중엔 정말 큰돈을 벌어다 줄 확실한 무기이긴 해도, 지금 당장은 효용이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예약 시스템이라면 좀 다르겠지?”

온라인 예약은 전화보다 훨씬 더 유용하다.

컴퓨터 화면을 통해 본인이 묵을 방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고, 요금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는 여행사들도 마찬가지로 본인들의 여행 상품을 잠재적 구매자에게 훨씬 자세히 알릴 수 있다.

“이쪽은 당장 시작할 수 있지.”

ID 테크놀로지가 새롭게 시작한 사업 영역이 IT 컨설팅이지 않은가.

이미 한국의 유경 식품과 유경 치킨에 POS를 납품했고, 수경이네 아버지나 유경 치킨 가맹점주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중이다.

가맹본부의 입장에서는 실시간으로 전국의 매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어서 좋았고, 이를 통해 재고도 깔끔하게 맞출 수 있었다. 이러한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유통망까지 새롭게 설계해서 많은 돈을 아낄 수 있었다.

당연히 POS의 원래 목적이었던 가맹점주들의 관리도 편해졌다. 이젠 싸구려 시장 닭을 사다가 유경 치킨 상자에 넣어서 파는 일은 없어졌다.

가맹점주의 입장에서도 하루 매출도 쉽게 파악할 수 있고, 재고가 떨어졌을 때의 주문도 쉬워졌다.

또한, 유경 치킨 본부에서 할인 행사 같은 걸 하면 차별 없이 적용받으니 이익도 늘어났다. 예전엔 가맹본부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경기도와 서울에서만 진행했다. 할인해주는 가격으로 닭과 자료를 가져가고도 정상 가격을 받고 파는 점주들이 많았던 탓이다. 이제는 POS를 통해 통제되기에 행사 진행도 수월했다.

호텔이나 여행사 등의 예약 시스템도 ID 테크놀로지 기술이면 21세기 수준으로 만들 수 있다. 이미 넥스트컴에선 온라인 결제를 통해 게임과 오피스를 팔고 있다. 호텔이나 여행사들은 각자 가진 서버가 있으니 결제 관련 보안 시스템을 따로 만들어줘야겠지만, 한 번 만들어 봤으니 어려운 일은 아니다.

특히 온라인 결제 보안 관련해서 최고의 전문가인 유진 카스퍼스키를 데려오지 않았던가. 이미 카스퍼스키는 본인의 이름을 딴 백신으로 러시아와 유럽에서는 유명한 인물이었다. ID 오피스 시큐리티 챌린지에도 참가해서 수만 달러에 달하는 보너스를 타갈 정도이니, 회귀를 통한 정보가 없더라도 이미 검증된 인재나 다름이 없다.

“아! 서버 장사도 할 수 있겠다.”

하나를 파고드니 또 새로운 것이 나오는 유재원이다.

지금이야 이용하는 사람이 적어서 PC로 서버를 만들어도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그런데 온라인 예약과 결제 시스템도 잘 만들어놓고,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폭발적으로 늘어나면, 당연히 서버의 처리 능력이 문제가 된다.

서버가 커지면 관리해야 할 것도 많아지고, 일도 복잡해진다. 그래서 나온 게 데이터센터다. 센터 안에 든 서버들은 회사들의 소유지만 관리는 전문가들이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불편한 게 많아서 아예 거대한 기업이 서버는 물론 관리까지 한 방에 해주는 서비스가 나왔다. 대표적인 것이 AWS와 같은 서비스다.

ID 테크놀로지라고 그걸 못할 이유는 없다. 다만 하드웨어 기술이 조금 문제다. 현재 사용 중인 486으로는 효율적인 서버를 꾸릴 수가 없다. 적어도 486 다음으로 나올 펜티엄 혹은 AMD 5x86과 같은 CPU가 필요하다.

“네트워크 기술은 미리 준비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대신 수많은 PC를 연결해 강력한 성능을 낼 수 있게 하는 네트워킹 기술을 만들어 놓는 건 가능해 보였다.

“시스코라면 최고의 파트너지.”

직접 할 필요도 없다.

네트워크 장비에 있어 최고의 기업은 시스코였다. 게다가 유재원은 ID 인베스트먼트를 통해 시스코의 지분을 10% 이상 취득했고, 앞으로도 쭉 늘려나갈 예정이었다. 인터넷을 설치하는 데 필수인 라우터와 네트워크 스위치 등에서 경쟁사와 확실한 우위를 지닌 시스코는 IT 버블이 터진 후에도 승승장구하는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였다.

하드웨어 부분은 시스코에 맡기고, ID 테크놀로지에서 소프트웨어적으로 연결하는 기술을 만들면 환상의 팀플레이를 펼치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다.

“그러면 이제 회사 일 좀 봐 볼까?”

이제까지 생각한 것을 모두 메모장에 옮겨 적은 유재원은 마우스를 움직여 ID 톡을 실행했다.

띵띵띵띵!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며 접속을 마치자 수많은 알람 소리가 연속으로 났다. 회사 업무 리포트를 비롯해 여러 가지 보고가 이메일과 쪽지 등으로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급한 케이스는 없었다.

유재원은 임원들에게 전권을 보장해 주면서 본인의 일을 최대한 줄이는 식으로 경영했기 때문이다. 신규 사업에 대한 기획안만 승인하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임원들이 책임을 지고 수행한다.

대다수 경영자는 머리로는 알아도 실행하기엔 망설여지는 정책이지만, 유재원은 거칠 게 없었다.

ID 톡으로 날아온 보고서를 차근차근 확인한 유재원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요소요소에 적절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을 꽂아 넣었기에 ID 그룹이 진행 중인 프로젝트 대부분은 쾌속 순항 중이었다.

“오, 벌써 결과가 나온 것도 있네.”

발신인은 ID 인베스트먼트의 빈센트 그린힐 부사장이었다. 보고서의 내용은 할리우드 투자에 대한 최종 선택이었다.

얼마 전 유재원은 빈센트 부사장에게 ID 인베스트먼트의 투자 분야를 크게 확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음악이나 할리우드 영화를 조사해 달라고 했는데, 벌써 결과가 나온 모양이다.

투자 가능한 영화 목록을 첨부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영화 제목들이 있었다. 언뜻 봐도 50개도 넘는다.

이렇게나 영화 투자가 손쉬운 건, 상품의 특성 때문이다. 대박이 나면 크게 나는데, 실패할 때도 손실이 어마어마하다.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투입한 영화가 쫄딱 망하면 투자자는 물론 영화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할 정도다.

그렇기에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로 적극적인 투자 유치를 받아서 손실을 분산하는 것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어떤 영화가 대박을 칠지 모르니, 복권을 산다는 느낌으로 다양한 영화에 투자하는 게 보통이다.

리스트를 보내 당장 내년 봄에 개봉할 영화부터 한창 제작 중이라서 아무리 빨라도 93년도에나 개봉할 수 있는 영화도 많았다.

여기에 영화마다 제작사는 물론 주요 투자자, 배급사도 함께 적혀 있었고, 몇 줄로 요약된 간단한 시나리오와 함께 현재까지의 제작 상황에 대한 내용도 첨부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영화마다 다들 좋은 말만 쓰여 있다는 점이다.

ID 인베스트먼트 직원들이 직접 발로 뛰며 찾은 정보가 아니라 영화 제작자들이 돌린 투자 자료를 그냥 정리만 한 모양이다.

유재원은 너그러이 이해했다. ID 그룹에서 제일 많은 인력 부족을 호소하는 회사가 바로 ID 인베스트먼트였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큰돈을 다루는 부서이니만큼, 횡령이나 배임 등의 사고가 터지면 피해 금액도 천문학적이기 때문이다.

바로 어제까지 골드만삭스나, JP모건과 같은 세계 최고의 투자회사에 근무한 사람이라도 정보팀의 철저한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면 입사는 무기한 연기다.

당분간 인력 부족 상태가 계속될 테니, 투자 가능한 리스트가 일찍 정리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칭찬해줄 일이다.

“오, 보디가드가 있네!”

리스트를 보던 유재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기억의 궁전에 들어갈 것도 없이 보디가드 하면 꽤나 큰 히트를 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주인공은 최고 인기 가수인 휘트니 휴스턴이고 남자 주인공인 케빈 코스트너도 한창 주가를 올리는 중이었다.

평론가들의 평가는 그다지 좋진 않아도, 흥행은 대박이었다. 배우진이 좋으니 투자금이 다 모였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오픈 상태라니 의외였다.

“흐르는 강물처럼도 체크…….”

보디가드와는 반대로 평가는 좋았는데, 흥행에는 좋지 않은 작품이다. 하지만 비디오테이프나 DVD 같은 2차 매체에서는 꽤 선전했다. 잔잔한 내용에 영상미도 있어서 가족과 함께 보기에 좋았기 때문이다.

“헉! 쥐라기 공원!”

리스트 맨 끝에 있는 것은 90년대 할리우드의 메가 히트작인 쥐라기 공원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는 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의 대표작이었다. 영화는 무조건 대박이다. 그러니 투자 금액도 제작사가 받아주는 최대 금액을 한 방에 꽂는 게 최고다. 덤으로 커다란 투자자가 되면 스티븐 스필버그와 직접 만나서 인맥을 쌓을 수도 있다.

“좋았어.”

유재원은 정리된 메모를 해당 담당자들에게 보냈다.

ID 테크놀로지 관련 아이템은 앨런에게, 투자 관련해서는 빈센트에게, 네트워크는 레드먼드의 케빈 존슨에게 보내면 유재원의 할 일은 끝이다.

“이제 남은 건 레밍턴 할아버지의 결혼식이구나. 아, 지금은 할아버지가 아니시지.”

전생의 기억은 여전했다.

덕분에 레밍턴 사장을 그냥 부를 때마다 참 어색하기도 했다. 그런 레밍턴이 아기라는 최고의 혼수까지 챙기면서 결혼을 한다니 감개무량이다.

“결혼 선물은 잘 준비되고 있으려나?”

레밍턴이 결혼하는데, 선물을 빼면 섭섭하다.

유재원은 레밍턴이 결혼 소식을 전해준 날부터 무얼 선물로 할까 고민했다. 오래 걸리진 않았다. 결정을 내리자마자 주문을 해놨는데, 잘 진행이 되고 있나 궁금해졌다.

“궁금해서 안 되겠다. 내일 직접 가서 확인해 봐야지.”

레밍턴을 비롯한 회사의 고위 임원들에는 유재원의 행보는 보고가 된다. 그러니 내일 선물(?)이 잘 준비되는지 보러 가면 레밍턴에게도 보고가 될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덩치가 워낙 큰 거라서 깜짝 선물로 줄 방법이 없다. 유재원이 준비한 선물은 바로 신혼집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집은 아니다.

유재원의 드넓은 배포를 그대로 담은 집으로 저택 혹은 궁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큰 규모를 자랑한다.

샌프란시스코 북서쪽 언덕에 지어진 저택으로, 옆으로는 태평양 바다가 넓게 보이고 위로는 금문교가 보이는 최고의 초호화 하우스였다. 그만큼 비싼 값을 자랑하지만, 전생에 받은 은혜를 갚기엔 턱없이 부족할 뿐이다.

“어서 빨리 28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선물을 받은 레밍턴과 섀넌이 기뻐하는 모습도 보고 싶었고,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수많은 곳에서 올 손님들과의 즐거운 만남도 너무도 기대되었다.

유재원은 레밍턴의 결혼식 날이 너무도 기다려졌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완전 감사합니다~!!!

이번 편으로 챕터를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한 편 더 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평창 패럴림픽 개막식이 굉장하더군요. 감동도 대단했습니다. 대회도 무사히 잘 끝났으면 좋겠네요.

주말 즐겁게 보내시고, 다음 주에 다시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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