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190화 (190/1,007)
  • [190] 열혈 추종자들(Esquires) =========================

    다음날.

    유재원 일행은 레닌그라드로 이동했다. 소련의 국부 블라디미르 레닌의 이름을 따 레닌의 도시라는 뜻으로 레닌그라드로 불리게 된 도시였지만, 소련이 해체되는 중이었기에 그 의미도 빛이 바랬다.

    이로 인해서 내년부터는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원래의 이름으로 바뀌게 될 것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

    위도상으로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보다 더 낮지만, 습윤 대륙성 기후에 속해서 7월 평균 기온은 18.8도, 2월 평균 기온은 -5.8도에 불과한 것이 특징이다.

    역사가 깊은 도시였기에, 구경할 것도 많았다. 특히 한국에서 살았던 유재원의 눈에는 무척이나 이국적인 것들이 많은 도시였다. 하지만 유재원의 오늘 일정에도 관광이라는 건 없었다. 모스크바보다 경제 사정이 더 나빴고, 치안도 불안정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양인은 무척이나 낯선 존재이기도 했다.

    특히 유재원처럼 젊은 사람이 미국인을 거느리고 다니는 모습은 무척이나 유니크한 상황이었다. 도시를 구경하려다가 되려 구경꾼이 될 것 같았다.

    소련이 러시아가 되고, 어느 정도 개방이 이뤄져서 낯선 이국인이 등장해도 현지인들이 무덤덤한 상태가 되지 않으면 관광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게 레닌그라드 거리를 지나쳐 레닌그라드 국립대학교에 도착했다.

    “환영한다고 합니다.”

    미하일의 통역이 없더라도 그건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제 러시아 인사말 정도는 귀에 쏙쏙 들어오고 말로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지금은 수많은 이들이 대학교 본관 앞에 나와서 열렬히 박수를 치고 있었고, 겨울에 구하기 힘든 생화로 만든 꽃목걸이까지 만들어서 유재원에게 걸어주고 난리다.

    물론 동원된 티가 나기는 났다. 동원된 게 아니라면 러시아 전통의 복장에 한결같은 미소가 나오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본관 중앙의 문에는 ID 그룹의 방문 환영한다는 글귀가 적힌 배너가 크게 걸려 있었다. 러시아의 키릴문자, 그리고 한국어가 병기되어 있었다.

    맨 앞에는 레닌그라드 국립대학 학장이 있었고, 오늘의 주인공 푸틴도 총장 보조를 위해 나와 있었다.

    “환대에 감사합니다.”

    유재원도 총장에게 허릴 숙여 인사했다. 이런 식의 인사는 낯선 모양인지 총장도 얼떨결에 허릴 숙였다.

    러시아는 의료와 교육 등, 모든 사회복지가 무상인 나라였다. 그런데 소련이 붕괴한 다음부터는 모든 게 불투명해졌다. 내려와야 할 돈이 있는데, 그 액수 그대로 내려오는 일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예산이 부족하니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었다. 대학교 건물의 노후화나 연구진을 위한 실험용 장비나 학생들의 실습용 장비 구매도 맥이 끊긴 지 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에 장학기금과 기부금을 내겠다고 외국에서 사람이 찾아 왔다. 그것도 이름도 없는 회사가 아니라, 전 세계에 이름을 날리고 있는 ID 그룹이었고, 거기의 젊은 오너가 직접 찾아왔으니 기대감이 잔뜩 오를 만했다.

    유재원은 총장과 악수를 하고 나서, 푸틴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이분은 누구신가요?”

    “아! 제 비서인 푸틴이라고 합니다.”

    얼떨떨한 표정의 푸틴에게 총장이 뭔가 눈짓으로 지시했다.

    “레닌그라드 국립대학에 방문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보리스 총장을 모시는 비서인 블라디미르 푸틴입니다.”

    눈빛 한 번에 깍듯한 인사가 나왔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그 말이 지금처럼 확실히 느껴지는 일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의 푸틴은 20세기 말부터 함께 러시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세 총리가 되었고, 21세기가 되자 대통령에 올랐다.

    이후 대통령과 총리를 번갈아 가면서 연임하며 러시아의 차르에 등극했다. 정적을 각종 방법으로 숙청했고, 내부 단속도 철저히 하면서 죽을 때까지 그 지위를 잃지 않았다.

    그야말로 카리스마 철철 넘치는 철혈의 독재자였다.

    그런 푸틴이 지금은 힘이 쭉 빠진 상태다. 이미지와 현실의 모습이 완전 미스 매치다. 그렇지만 현재 그의 처지를 생각하면 당연한 모습이었다.

    동독과 서독의 통일에서 시대의 변화를 읽고 KGB에서 나오긴 했지만, 푸틴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했다. 겨우 가족들과 먹고 살만큼의 월급이 나오는 총장 비서 일을 하는 게 전부다. 게다가 총장이 바뀌면 비서 일도 끝나는 것이고, 비서직을 잃으면 마땅히 할 일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미래를 생각할수록 암울할 테니 푸틴의 본성인 폭군의 기질은 1%도 나오지 않는 게 당연했다. 그렇지만 레닌그라드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름이 바뀌고, 새로운 시장 선거가 이뤄지면서 모든 게 달라질 것이다.

    푸틴의 대학교 스승이자 정치적 동지인 아나톨리 소브차크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 선거를 적극 지지하고 도우면서 당당히 당선시켰고, 이를 공로로 부시장 자리를 얻게 된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정치인의 행보는 놀라운 것이었다.

    내년이면 크게 정치인으로 큰 존재감을 발휘할 것이니, 1991년 11월에 방문한 유재원은 그야말로 최적의 적기에 찾아온 것이나 다름이 없다.

    “아, 비서시구나.”

    유재원은 의도적으로 매우 놀란 것처럼 말했다.

    “왜 그러시는지?”

    이유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제가 관상을 좀 볼 줄 알거든요.”

    통역 중이었던 미하일이 순간 말을 더듬었다. 관상이라는 말을 러시아어로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몰랐던 탓이다. 덕분에 유재원은 얼굴의 형태와 눈빛, 기운 같은 걸 보고 미래를 점치는 행위라는 풀이를 다시 해줘야 했다.

    리허설 같은 걸 했다면 매끄러웠겠지만, 본인은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여야 했기에 케빈 존슨이나 앨런에게도 언질은 없었다.

    다행히 서양에서도 점을 치는 건 다양한 방법으로 행해지던 익숙한 행위였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푸틴이라는 분은 여기 있을 분이 아니라고 나와서 좀 놀랐네요. 혹시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으신가요?”

    “그렇습니까?”

    유재원의 물음에 대답한 이는 총장이었다. 정작 질문을 받은 푸틴은 평소에 생각도 못 했던 것이라서 어떻게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제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비밀이 관상을 잘 봐서 그런 것이거든요. 인사가 만사잖아요. 중요한 자리에 적임자를 내정하는 게 얼마나 힘들어요. 대신 적임자를 앉히기만 하면 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회사는 잘 굴러가죠.”

    전생을 통해 얻은 귀중한 정보들이 관상으로 둔갑하는 순간이었다.

    언뜻 듣고 있으면 대충 아무 말이나 막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무척이나 고심해 만든 말이었다.

    푸틴은 유재원이 관리해야 할 초특급 인사 중에 10위 안에는 드는 인물이었다. 이런 사람을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는 전생부터 고민했었다. 면식도 없는 사람을 만나서 네가 성공할 거 같으니 크게 투자할 거라고 하면 누가 믿어주겠는가.

    결국, 유재원이 선택한 건 미스터리한 요소가 가득한 관상이었다.

    “오, 그런 비밀이 있었군요.”

    학장은 눈빛을 반짝였다. 당사자인 푸틴도 유재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표정이었다. 심지어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듣는 앨런이나 캐빈 존슨, 김대석 같은 ID 그룹 식구들마저도 귀를 기울였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을 유재원의 성공에 비밀이 관상이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최첨단의 IT기술을 다루는 ID 그룹의 오너가 이런 소리를 해도 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행히 푸틴까지도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작은 빛줄기 하나를 발견한 듯한 느낌이었다. 표정관리 하는 법도 잘 훈련을 받은 전직 KGB 요원이라서 표정이 달라지진 않았지만, 눈빛만큼은 속이지 못했다.

    “아, 행사를 기다리시는 분이 많지요? 얼른 이동합시다.”

    다들 궁금해하는 표정이지만, 유재원은 쉽게 답을 주지 않았다. 푸틴 역시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총장 비서 일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답을 듣고 싶었는데, 정작 유재원이 딴소리하니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푸틴 씨, 혹시 관심이 있으시면 시간 좀 내주세요. 행사가 끝난 후에 차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해 봅시다.”

    “으음, 저는…….”

    “아이고, 답답한 사람아! 기회가 왔을 때는 잡아야 하는 거야! 내 명령이니 행사가 끝나면 회장님께 가 보게!”

    푸틴보다 학장이 더 적극적이었다. 동시에 유재원과 푸틴에게 무척이나 호의적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푸틴은 이곳 레닌그라드 국립대학 법학부 국제법 전공이었고, 푸틴이 학생이던 시절 학장은 교수였기에 끈끈하게 이어진 사이였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푸틴의 말에 유재원도 한숨 돌렸다. 드디어 큰 고비를 넘긴 것이다.

    장학기금 전달식은 성대하게 꾸려졌다.

    유재원이 레닌그라드 국립대학교에 내놓은 장학금은 무려 100만 달러였기에 성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ID 하이테크 장학기금이란 이름으로 50만 달러, 유재원의 이름으로 학교 자체에 기부하는 돈이 50만 달러. 이렇게 해서 총 100만 달러가 레닌그라드 국립대학교 계좌로 즉각 입금되었다.

    사실 유재원이 봐도 100만 달러는 과한 액수이긴 했다. 최강욱과 레밍턴, 앨런의 임원들도 10만 달러 정도만 해도 굉장한 거라고 말했다. 지당한 말이었다. 유재원도 그냥 보여주기식으로 하면 10만 달러 정도만 냈을 거다.

    그런데 여기에 푸틴이 있다.

    푸틴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 숫자 ‘0’을 하나 더 넣는 건 유재원에게 일도 아니었다. 숫자 ‘0’ 두 개 더 넣어줄 용의도 충분했다. 그만큼 푸틴의 중요성은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다.

    대신 나중에 이걸 두고 미국이나 한국에서 말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 유재원이었다.

    큰 문제는 아니다.

    모교가 될 스탠퍼드 대학교나 한국의 학교들에 레닌그라드 국립대학교에 퍼줬던 돈 이상으로 기부할 계획이었으니 말이다.

    ID 그룹의 제일 큰 활동영역은 바로 미국이었고, 다음이 한국이다. 그러니 해당 나라에 기부와 같은 사회공헌 활동을 크게 하는 건 필수적인 일이다. 게다가 이러한 활동을 통해 세금공제 혜택도 받을 수 있기에 유재원도 적극적으로 할 계획이었다.

    레닌그라드 국립대학 학장과 교수진은 표정 관리를 포기할 만큼 기뻐했다. 원래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지원금에 당분간 학교를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유재원에게 레닌그라드 국립대학교의 명예 졸업장을 주겠다고 할 정도였다. 유재원도 거절하지 않았다.

    차후에 러시아의 정치, 경제 분야에 큰 힘을 발휘할 파벌이 바로 레닌그라드 출신들이기 때문이다. 이는 당연히 학장 바로 곁에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푸틴 때문이다.

    푸틴이 러시아 정치에 헤게모니를 거머쥐면서 그의 측근들을 대거 포진시켰는데, 당연히 학연과 지연, 혈연이 중용되었다.

    레닌그라드라는 푸틴 정부 인사들의 필수요소였다. 그러니 레닌그라드에서 제일 좋은 대학과도 필연적으로 엮이게 되는데, 여기에 명예 학위가 있다면 이들과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러한 요소들을 모두 다 따졌을 때, 100만 달러는 과한 금액이 아니라 헐값이나 다름이 없었다.

    행사를 마친 후.

    레닌그라드 국립대학교의 접객실에서 유재원과 푸틴이 다시 만났다. 약속했던 티타임을 갖기 위함이다.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라고 자리를 만들어준 학장은 먼저 일어났다. ID 그룹 측 임원들도 총장과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한다고 통역인 미하일과 수행비서인 김대석만 남겨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 맛이 좋네요.”

    “입에 맞으시다니 다행이군요. 쿠스미에서 나온 아나스타샤라는 겁니다.”

    차 이름이 여자 이름처럼 들렸다. 알고 봤더니 차를 만드는 회사가 쿠스미였고 아나스타샤는 러시아 공주의 이름에서 따온 상표란다.

    특별한 이름이 붙여질 만큼 맛과 향이 일품인 홍차다.

    홍차는 러시아식으로 나왔다. 진하게 우려낸 홍차를 뜨거운 물에 희석한 다음 설탕이 한 움큼 넣어서 만들어졌다. 푸틴은 아예 딸기잼을 타서 마셨다. 유재원도 따라서 마셔 보니 달달하면서도 씁쓸하고 딸기 향도 살짝 돌아서 좋았다.

    그렇지만 홍차와 푸틴이 만나면 무척이나 위험해지는 터라 유재원은 살짝 머뭇거리기도 했다. 다행히 푸틴은 차가 뜨거워서 바로 마시지 못한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이야기는 곧 본론으로 들어갔다.

    유재원은 곧장 푸틴에게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 말입니까?”

    푸틴이 되물었다.

    처음 만났던 때보다 훨씬 적극적인 태도였다. 의문도 좀 있는 모양이지만, 거부감을 표시하진 않았다. 지금은 그저 국립대학교 총장의 비서였지만, 전직 KGB에서는 제법 고위직에 있기도 했고, 동독에서 근무하면서 생긴 심경의 변화는 곧 정치와도 깊게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유재원이 단번에 정치라고 말하자 진짜 관상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푸틴은 유재원을 다시 보았다.

    KGB를 그만둔 지 좀 되긴 했어도, 눈썰미까지 망가진 수준은 아니었다. 처음엔 돈 귀한 줄 모르는 애송이로만 보였는데, 지금은 그 평가가 완전히 달라졌다. 밑 빠진 독과 같은 대학에 인재 몇 명 영입한다고 100만 달러라는 거금을 투척하는 것도 놀라웠고, 승승장구하는 사업의 비밀로 완전히 비논리적인 점괘가 적용되었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자신이 유재원이 신봉하는 ‘관상’에서 좋은 의미로 적용되는 사람이라는 게 제일 관심을 끄는 대목이었다.

    “네, 푸틴 씨는 타고난 정치인입니다.”

    독재자가 정권을 유지하는 건 밖에서 보기엔 쉬워 보여도 만만찮은 일이었다.

    어디에서나 불만은 있고, 자그마한 틈이 생기면 무섭게 치고 들어온다. 특히 믿었던 이인자나 비서실장에게 당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이런 이전투구의 장에서 푸틴은 죽을 때까지 권력의 정점에 있었다.

    “레닌그라드도 내년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름이 바뀌겠죠?”

    이번엔 유재원의 물음이다.

    “예.”

    푸틴은 매우 짧게 대답했다.

    소련을 탈퇴한 동구권 국가들이 따로 연합을 결성하기 위한 움직임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옐친 대통령은 소련의 붕괴는 어쩔 수 없더라도 러시아는 연방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 중이었다.

    소련이 해체되었기에 레닌그라드라는 이름도 무의미해졌다. 그렇기에 도시의 이름을 원래대로 복원하자는 목소리가 크게 터졌고, 거의 확정된 상태나 마찬가지다.

    푸틴도 붉은 기운 가득한 레닌그라드라는 이름보다 상트페테르부르크가 훨씬 듣기에 좋았다.

    “그리고 시장 선거도 할 거고요.”

    “아. 이해했습니다만, 부담스럽군요. 저는 정치 경험이 하나 없습니다.”

    역시 이번에도 아예 정치에 참여하지 않을 거라는 부정은 않는 푸틴이다.

    “네, 그러니 처음부터 시장 도전은 무리겠죠. 하지만 부시장이라면 어떨까요? 시장이 될만한 분과 함께 러닝메이트로 뛴다면 경험도 얻고 안정적인 자리도 얻겠죠? 여기 있는 미하일 팀장도 푸틴 씨를 적극적으로 도울 거예요. 그리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저에게 연락하세요.”

    그러면서 유재원은 상의 안쪽 주머니에서 명함을 하나 꺼냈다.

    명함 자체에는 압착으로 만들어진 기하학적인 문양이 바탕으로 들어가 있고, 모든 글자는 짙은 은색으로 고급스러웠다.

    특히 ID Group이라는 회사 이름, President라는 압박적인 직위, 그리고 유재원이란 이름이 단 세 줄로 들어가 있는 앞면은 단순하면서도 깔끔했다. 뒷면엔 두 개의 연락처가 있는데 하나는 이메일 주소였고, 다른 하나는 실리콘밸리 사무실의 국제 전화번호였다.

    유재원의 명함을 받은 푸틴은 가만히 있었다.

    뭔가 복잡한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중요한 순간이라는 걸 직감한 유재원은 말없이 지켜만 보았다.

    그렇게 몇십 초가 지났을까.

    “궁금한 게 있습니다. ”

    푸틴은 유재원을 직시하며 말했다.

    “네,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유재원의 목소리가 밝았다. 결정을 앞둔 순간 이렇게 물어오는 사람 중 대다수는 긍정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를 지원해주시겠다고 하는 이유가 정말 관상이 좋다는 것 하나 뿐입니까?”

    역시, 관상 하나만으로는 논리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고 유재원이 진실을 말할 수도 없다. 미래의 지식은 유재원이 보유한 최고의 비밀이었고, 설사 말해준다더라도 본인이 믿지 못할 테니 말이다.

    “네, 제가 선택한 이가 승승장구하는 걸 보는 게 저의 큰 즐거움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많을수록 제 사업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유재원은 관상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푸틴이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댔다. 덕분에 푸틴의 표정은 더 나아졌다. 그렇다고 의구심은 완전히 풀리진 않은 모양이지만, 전직 KGB 요원으로서의 직업병이다.

    무표정으로 돌아온 푸틴은 유재원의 명함을 본인의 지갑 안쪽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유재원은 크게 소리를 치며 환호하고 싶었지만, 진짜로 그러면 산통이 다 깨질 게 분명하기에 마음속으로만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러시아에서의 일정을 마친 유재원은 모스크바로 돌아왔고, ID 하이테크 소속이 된 샤일로프 박사 일행과 함께 미국행 길을 올랐다.

    러시아에서의 성과는 120% 초과 달성이었기에 그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완전 감사합니다~!!!

    푸틴과의 바람직한 인맥이 생성되었네요.

    덕분에 방사능 홍차를 겁낼 일이 없을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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