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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182화 (182/1,007)

[182] 열혈 추종자들(Esquires) =========================

“아, 그러니까 어디서 이야기를 드려야 할지. 일단 ADSL이라는 기술에 대해 설명해 드려야 하는데, 그러자면 벨코어에 다니는 친구와 술자리를 빼놓을 수 없겠네요.”

벨코어라는 단어에 유재원의 머릿속에 각종 정보가 술술 올라왔다.

예전 20세기 초에는 AT&T라는 거대한 공룡 통신기업이 있었다. 미국 전역에 전보와 전화를 공급하던 회사였다.

이런 AT&T가 독점적 지위를 달성한 후 여러 가지 폐단을 만들기 시작하자 미국 정부는 특별한 조처를 내렸다.

바로 기업의 강제 분할이었다.

공룡이었던 AT&T는 7개의 회사로 분할시켰는데, 벨코어는 AT&T로부터 떨어져 나온 연구 개발 회사였다. 정식 명칭은 벨 커뮤니케이션 리서치 회사인데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듯, 여러 통신 기술을 개발하고, 이미 완성된 통신 기술 특허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회사였다.

ADSL도 벨코어에서 만든 기술이었다.

무려 1988년에 완성되었는데, 원래의 목적은 주문형 비디오(VOD)의 상용화 서비스를 위해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혀 VOD의 상용화는 쉽게 진척되지 않았다.

VOD 서비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전송속도가 아니라, 잠재적 사용자들을 유혹할만한 강력한 필름 라이브러리가 있어야 했는데, 그걸 완벽히 갖춘 영화 회사들은 ADSL을 도입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던 탓이다.

헨리 사무엘은 벨코어에 다니던 친구와 술자리를 갖다가 친구의 푸념을 듣게 된 것이다. 본인과 팀원들이 ADSL을 열심히 만들었는데 아무 데도 쓸 데가 없어서 폐기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였다.

오죽하면 정보통신 관련 학부를 나왔고, PC 통신과 인터넷을 서비스하는 넥스트컴 사장이 된 헨리 사무엘도 ADSL에 대해서는 그때 처음 인지했을 정도이니, 벨코어의 ADSL VOD 사업이

쫄딱 망한 건 확실했다.

그렇게 친구의 푸념을 들어주던 헨리 사무엘은 ADSL에 대한 새로운 발상을 떠올렸다.

ADSL은 VOD용 파일을 안정적으로 전송할 만큼 대역폭이 컸다. 게다가 전화선을 이용해서 설치할 만큼 설치도 쉬웠다. 전화기와 ADSL 장치의 혼선을 피하려고 필터를 설치해줘야 하긴 했는데, 크게 복잡한 일도 아니었다. 단점은 ADSL 단말기와 서버를 이어주는 DSLAM이라는 장치 사이의 거리가 반경 5Km라는 것인데, 일반적인 도시의 크기를 생각해보면 심각한 문제도 아니다.

헨리 사무엘의 생각은 이런 ADSL을 가지고 VOD를 전송할 게 아니라, 인터넷 전용선으로 보급하자는 것이었다.

인터넷에 대한 수요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지 않는 대학교는 이제 거의 없을 정도였고, 그래픽 작업용 프로그램이나 디지털카메라도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면서 인터넷에 올라오는 게시물이 문자로만 되어 있던 것에서 탈피하는 중이었다.

넥스트컴도 이에 발을 맞춰 이미지 파일 업로드도 쉽게 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이미지와 글자를 함께 웹상에서 편집할 수 있는 편집기도 완성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사용자들이 올릴 게시물의 크기도 넉넉하게 배정할 수 있도록 메인프레임에 추가 저장공간을 설치하고, 보조용 서버를 증설하는 등의 조치를 이었다.

물주인 유재원의 주머니는 누구보다 광활했기에, 서버를 증설하는 일에 아무런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기술개발을 한다고 A4용지 서너 장 분량의 계획서만 제출하면 수십만 달러의 개발비가 툭 떨어졌다.

그렇지만 사용자들의 불만은 늘 있었다.

역시나 가장 큰 불만은 전송속도였다. 넥스트컴의 사용자 중 아직도 반수 이상은 모뎀으로 접속하는 사람들이었고, ISDN 사용자들은 반의반도 되지 않았다. 심지어 ISDN 사용자들도 속도가 느리다는 불평을 터트리고 있다.

그렇다고 월 사용료가 수천 달러나 되는 데이터 전용선을 쓰는 것도 일반 사용자 입장에서는 엄두를 내지 못할 일이다.

“전송 속도 문제는 넥스트컴의 문제가 아니라, 사용자들이 사용하는 통신회선의 문제 아닙니까?”

“예, 회장님. 그런데 전화국에 백날 컴플레인을 걸어봤자 해결해주는 걸 못 봤습니다. 덕분에 불만이 쌓인 사용자들이 넥스트컴 게시판에서 폭발하는 거고요.”

유재원의 질문에 헨리 사무엘이 간단히 답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한국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90년대 말, 인터넷 통신 장애가 발생했을 때, 제때 수리를 받아본 기억은 없었다.

“통신기술 포럼에 들어가 보면 넥스트컴이 직접 전용 통신선을 보급하면 월 100달러라도 쓰겠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기술팀을 이끌고 직접 ADSL 기술을 이용한 고속 데이터 전용 모뎀을 만들어 봤습니다.”

역시 실리콘밸리의 전사다운 발상과 행동이었다.

아니 월 100달러라도 쓰겠다는 글을 믿었다는 것부터가 일반인과 달랐다. 유재원이 직접 그 글을 본 건 아니지만, 풍기는 뉘앙스만 해도 기존의 통신사들이 얼마나 최악인지 표현하기 위해 쓴 문장이지, 진짜 100달러를 주고 쓰겠다는 건 아니라는 게 딱 느껴졌다. 그런데 헨리 사무엘은 진짜로 믿고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그러면서 헨리 사무엘은 유재원의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 가지고 있던 쇼핑백을 유재원에게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이 근처에 있는 전자기기 쇼핑몰인 베스트바이 로고가 선명한 쇼핑백이었기에, 유재원은 거기에서 뭐 새로운 제품이라도 샀나 보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쇼핑백 안에는 길쭉한 모양의 플라스틱 상자가 들어 있었다. 가로 20cm 세로 4cm 길이는 25cm 되는 길쭉한 사각형 모양의 상자였다. 앞면에는 녹색과 빨간색 발광 다이오드가 몇 개 박혀 있었고, 뒷면에는 전화기에 꽂는 단자와 이더넷 단자 12v 짜리 어댑터 단자 이렇게 3개의 구멍이 있었다.

“고속 데이터 전용 모뎀 프로토타입입니다.”

헨리 사무엘은 신나게 제품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ADSL 기술을 이용해서 IP 패킷을 전송하도록 개조했다고 했고, 최대 5km밖에 있는 컴퓨터에 초당 250킬로바이트를 전송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거리가 가까워지면 전송 속도도 상승하는데 최대 1메가바이트를 1초에 전송하기도 했단다.

유재원의 입이 떡 벌어져서 다물어질 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유재원이 빠르다고 쓰고 있는 ISDN 듀얼 채널의 전송속도는 초당 12킬로바이트였다.

헨리 사무엘이 만든 프로토타입 ADSL 모뎀은 이보다 20배는 빠르다고 하니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반경 5km라는 제약이 있었지만, 전화선만 있으면 어디든 설치할 수 있다는 게 ADSL의 장점이었다.

“다만 업로드 속도는 그다지 좋진 않습니다. 보통 다운로드 속도의 1/8정도로 세팅했습니다.”

그래도 그게 어디냐.

지금은 사용자들끼리 활발하게 데이터를 주고받는 시대는 아니었고, 주로 서버를 운영하는 이들이 자료를 공급하는 시대였다.

사용자 간 데이터 공유는 크게 두 가지 자료로 분류할 수 있다.

음악과 야동이다. 그런데 지금은 MP3 코덱도 없고 동영상 압축 코덱도 없어서 공유할 자료도 없었다. 기껏해야 크랙된 게임, 이미지 정도를 주고받는 중인데, 그건 지금도 어둠의 루트를 타고 활발히 진행 중이었다.

“벨코어에 ADSL 라이센스를 받았어요?”

정신을 차린 유재원이 핵심 질문을 했다.

“아직입니다.”

아직이라는 소리에 유재원이 다급해졌다. ADSL은 광케이블이 집까지 들어오게 되면서 사장되었다. 하지만 10년 이상을 풍미한 강력한 기술이기도 했다. 인터넷이라는 산업의 초석을 다진 기술이다.

당연히 ADSL도 유재원의 계획에 있었다. 그런데 그 시기는 지금이 아니라 3년 후인 94년 겨울쯤에나 시작하는 사업이었다. 컴퓨터의 성능과 보급, 그리고 소프트웨어 기술이 그때쯤 다다라야 가능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헨리 사무엘이 기초적인 수준이긴 해도 ADSL 모뎀을 완성했다면 뒤로 미룰 일이 아니었다.

“벨코어의 친구에게 물어보니 라이센스가 아니라 기술 자체를 매각할 의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개발에 들어간 비용만 보존 받으면 경영진도 만족할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요?”

이거야말로 좋은 소식이었다.

유재원은 곧장 법무팀장 앨런에게 ID 톡을 보내서 벨코어에 ADSL 기술의 인수 협상을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헨리 사무엘이 프로토타입 ADSL 모뎀을 만들면서 작성한 기술 설명서도 첨부했다.

“그런데 케이블 TV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구리선 두 가닥으로 영상을 전송하는 거나 IP 패킷을 전송하는 거나 똑같습니다. 여기에 케이블 TV의 셋톱박스 기능도 탑재할 수 있거든요. 사실 지금 인터넷 수요보다 케이블 TV 수요가 더 많으니, 케이블 TV 인터넷도 공급하는 게 좋은 전략 같아서 말입니다.”

들어보니 틀린 소리도 아니었다.

케이블 TV 사업도 미래에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할 시장이었다. 인터넷 회선 공급과도 궁합이 잘 맞는 사업인데, 그만큼 초기 자본이 무척이나 많이 들어간다. 가정마다 일일이 케이블을 깔아주는 게 죄다 인건비였기 때문이다. 낡은 회선을 제때 업그레이드해주는 것도 비용이다. 게다가 좋은 콘텐츠를 공급해주려면 방송국까지 차려야 할 판이다. 게다가 메이저리그, 프리미어리그 등의 중계권을 따내려면 방송국을 차릴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내야 할 거다.

간단히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초기 비용만 수천억 원이 들어갈 것 같고, 장기적으론 조 단위 금액이 투자해야 한다.

괜찮은데?

유재원은 겁을 먹는 것 대신, 혹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런 사업은 초기에 시작할수록 이익이다. 프리미어리그 중계권이나 메이저리그 NFL, NBA 등의 중계권료는 21세기와 비교하면 지금은 헐값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따지면 넥스트컴도 나중에 포털 사업부, 검색엔진 사업부, 케이블 사업부 등으로 분할 해야 할 만큼 거대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이것저것 따져보니 가장 저렴하게 ISP 사업을 시작할 곳이 한국이더군요.”

갑자기 헨리 사무엘은 한국을 언급했다.

“회장님이 한국의 데이콤이란 회사 지분도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고 보니 강매로 사게 된 데이콤 지분이 있다.

물론 형식은 강매였지만, 유재원은 속으로 웃으며 샀다. 인터넷 기업인 ID 그룹에게 데이콤이 설치하고 있는 광케이블은 천금과도 같은 귀한 자산이었으니 말이다.

ID 인베스트먼트에 있던 데이콤 지분은 관련된 사업체인 넥스트컴으로 옮겼는데, 그걸 헨리 사무엘이 잘 보고 용도를 떠올린 것이다.

“참 부럽게도 한국은 정보의 고속도로사업을 진행하면서 전국에 광케이블을 설치하고 있지 않습니까. 광케이블을 이용하면 서버 사이의 대역폭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습니다. DSLAM과 사용자를 연결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고요. 게다가 한국의 인구밀도를 살펴보니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으니 ADSL 기술을 적용하는 데 최적의 나라입니다.”

정답이다.

인터넷 초기에 한국의 인터넷 접속속도가 세계 최고를 달릴 수 있었던 건 국토의 특수성 때문이다. 국토의 반 이상이 산악인지라, 사람들은 도시에 몰려 살았다. 특히 수도권에 과밀화한 인구 밀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DSLAM과 모뎀 사이의 거리가 중요한 ADSL이 최고의 성능을 발휘할 환경이었다.

“알겠어요. 그러면 넥스트컴에 케이블 사업부를 신설하고 진출해 봅시다. 한국, 그리고 캘리포니아에서 시작하는 거로 하죠.”

“탁월하신 결정입니다!”

헨리 사무엘이 활짝 웃었다.

몇 개월 공들여 만든 신제품을 인정받았을 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사업부 신설까지 그 자리에서 이뤄졌다. 게다가 한국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캘리포니아에서도 바로 시작하기로 했으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소득을 얻은 것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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