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180화 (180/1,007)
  • [180] 열혈 추종자들(Esquires) =========================

    #105

    일성 그룹 최현희 회장의 공식 일정의 시작은 8시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일반 직장인과 같은 9시였지만, 프랑크푸르트에서 이른바 신경영 선언을 한 다음부터 한 시간이 더 빨라졌다.

    이전과는 다른 걸 보여주기 위해서 일찍 출근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룹 전체에 적용한 건 아니었다. 그저 본인이 먼저 솔선수범을 보이면서 변화를 유도하는 중이었다.

    효과는 있었다.

    최현희 회장의 출근이 빨라지면 그를 보좌하는 비서실의 출근도 1시간 빨라졌고, 임원들도 회장의 눈치를 보면서 일찍 대기하기 시작했다. 최현희는 출근 시간은 자율이라고 했지만, 누가 일찍 출근했는지 다 지켜보는 중이다.

    오늘도 아침 8시에 정확히 회장실에 출근을 마친 최현희는 콜롬비아 원두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일간 신문을 보는 것으로 아침 일정을 시작했다. 특정 신문사 하나만 보는 게 아니라 한국 거의 모든 일간지를 짧게 훑어 보았다.

    “좋군.”

    신문의 눈에 딱 띄는 1면 하단이나 맨 뒷면에는 일성 그룹의 광고가 떡하니 들어가 있었다. 최현희가 챙겨 보는 건 머리기사나 사설 따위가 아니라 일성 그룹의 광고가 제대로 들어가 있는지 보는 것이었다.

    신문사의 사설 논조나 기사들은 이미 비서실이나 임원들이 알아서 챙기는 것이기에 최현희 회장이 그것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응?”

    그런데 오늘은 신경을 좀 써야 할 것 같다.

    -김창완, 정병우. 김&정 법무법인으로 제2의 인생 시작.

    -사법부에서 이어가지 못한 정의의 실현 김&정 법무법인에서 이어 갈 것. 첫 시작은 위안부 피해자 소송 지원!

    온겨레 신문이라는 진보 일간지의 사회면에 무려 5단짜리 기사로 박혀 있는 기사였다. 두 사람의 사진이 크게 걸려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인터뷰까지 소상히 실려 있었다.

    기사에는 둘이 밖에 법원과 검찰에서 왜 나오게 되었는지는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그렇지만 기사 제목이나 소제목을 보면 알력에 의해 사표를 쓸 수밖에 없었다는 뉘앙스가 분명히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 최현희 회장의 심기를 거스르는 건 자중하고 있어야 할 둘이 변호사 등록을 마치자마자 나대고 있다는 것이다.

    저 두 사람은 사법부 종사자들에게 명확한 반면교사가 되어야 할 사람이었다.

    일성을 건드린 건 아니지만, 미리 손을 써 놓지 않으면 일성에게도 그 영향이 올 게 명백했다. 그래서 평소엔 신경도 쓰지 않던 부산 그룹 일가를 도와서 저 둘이 축출되는 데 힘을 보탰던 거다.

    둘은 후원도 끊겼고 사법부의 선배나 동료, 후배에게 왕따 신세가 되었다. 그런데 법무법인이라니?

    최현희는 곧 인터폰의 호출 버튼을 눌렀다.

    “회장님! 찾으셨습니까.”

    버튼을 누른 지 불과 10초도 지나지 않아 김혁수 비서실장이 들어왔다.

    “이거, 무슨 일이야?”

    최현희는 온겨레 신문의 지면을 김혁수에게 보여주었다.

    “헉!”

    김혁수는 헉하고 깜짝 놀랐다. 김창완, 정병우의 축출 작업의 실무는 김혁수가 최현희를 대신해서 크게 거들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둘이 사표 쓰고 나오는 것으로 일이 끝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당장 알아봐. 그리고 이 신문도 조치하고.”

    최현희는 김혁수를 질책하지 않았다.

    그저 두 가지의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더구나 두 지시는 조금 수동적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일성이 아니라 항소심을 진행 중인 부산 그룹이었기 때문이다.

    무척이나 두루뭉술한 지시였지만, 최현희와 오랫동안 일을 했던 김혁수는 찰떡처럼 알아들었다.

    김&정 법무법인에 대해 정보팀을 가동해 모든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온겨레 신문의 일간지와 주간지 등등 발행하는 인쇄 매체에 주는 광고의 숫자를 조절하라는 의미였다.

    식은 죽 먹는 것처럼 쉬운 일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혁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미안해, 우리 아들.”

    “괜찮아요.”

    “내년에 꼭 다시 올게.”

    “알겠어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엄마, 아빠 없더라도 씩씩하게 지내야 한다.”

    짧은 신파가 펼쳐지는 이곳은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부모님과 유재원 사이에 일어나는 일상의 대화가 마치 신파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여름이 시작되면서 유재원과 함께 미국으로 오셨던 부모님은 미국 생활에 한계를 느끼셨다. 아들 유재원의 성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좋았는데, 10월 말에 접어들면서 슬슬 한계에 이르셨다.

    말이 통하지도 않고, 음식도 다른 미국이란 나라는 덕천리 출신인 두 분에겐 너무도 낯선 땅이었다. 결국, 향수병까지 나버렸기에 예정보다 일찍 한국으로 복귀하기로 했다.

    “예. 저도 빨리 다녀오겠습니다.”

    수행비서인 김대석도 함께 간다.

    유재원의 부모님을 집에 모셔다드리고, 2주일간 휴가를 받은 것이다. 김대석은 유재원을 곁에서 수행하느라 장기 출장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집에 가서 부모님께 안부도 전하고, 사촌 결혼식 참석도 하고, 오현지와 데이트도 즐길 생각에 잔뜩 들떠 있는 게 보였다.

    “네, 그럼 나중에 봐요.”

    유재원은 돌아가는 길 편안하게 가시라고, 항공권을 모두 일등석으로 끊어주었다. 좀 비싸긴 해도, 비용처리 하면 그만큼 세금이 적게 나가는 것이라서 아무런 부담이 없었다. 게다가 김대석은 2주 후에 다시 미국으로 오고, 부모님 역시 내년 봄에 또 오기로 했으니 무척이나 가벼운 마음으로 배웅하는 유재원이었다.

    “보스, 이제 가시죠.”

    부모님과 김대석이 탄 비행기가 무사히 이륙하고, 하늘 높이 날아가 점이 되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본 유재원은 레밍턴의 말에 몸을 돌렸다.

    “집으로 가시겠습니까?”

    “회사로 가죠. 아직 할 일이 많이 있으니까요.”

    “예! 그럼 모시겠습니다.”

    운전하는 걸 좋아하는 레밍턴인지라 본인이 직접 차를 몰았다. 유재원도 뒷좌석에 앉지 않고 조수석에 앉았다.

    자동차도 파이어버드라는 아메리칸 머슬카였다. 이것만 보면 전 세계적으로 수천 명이나 되는 종업원을 거느린 기업의 회장과 사장이라는 건 전혀 연상되지 않았다. 그래도 유재원이 옆에 앉았다고, 레밍턴은 최강의 방어운전을 시작했다.

    얼마나 방어적이었는지, 회사까지 10분이면 갈 걸 15분이나 걸렸다.

    덕분에 유재원은 전용 기사를 구하겠다는 마음이 확고해졌다. 직접 차를 모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유재원이다.

    그렇지만 스피드를 무서워하는 것도 아니었다. 레밍턴 사장도 할 일이 많은 사람이었다. 김대석도 운전보다는 비서 일을 수행해야 할 사람이니 자동차 운전만 해줄 전용 기사를 이제 구하는 게 늦은 것이었다.

    회사에 도착한 유재원은 곧장 인사책임자를 찾았다.

    앨런이었다. 미국 법인의 법무실장인 앨런이지만, 회사의 인사 역시 같이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ID 테크놀로지 산하의 자회사나 거대 사업부는 제대로 된 조직이 갖춰졌지만, ID 테크놀로지 자체는 아직도 겸임 중인 자리가 많은 것은 상당히 특이한 상황이긴 했다.

    모두 유재원의 느긋함이 원인이었다.

    미리 회사 조직을 만들기보다는 본인이 필요를 느끼면 조직을 만들었던 탓이다. 인사업무 역시 기존 입사자들의 추천을 받거나 본인이 직접 면접을 봐서 뽑았기에, 따로 조직을 구성할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 비정상적인 조직으로 경영해도 회사가 문제없이 돌아가는 것 역시 유재원의 능력이기도 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꾸린 조직을 통해 최대의 효율을 내는 건 전생에서 많이 해왔던 일이었다.

    게다가 ID 테크놀로지 산하 사업부와 자회사는 본사와 달리 매우 탄탄한 조직을 완성했다.

    ID 소프트웨어는 말할 것도 없고, 넥스트컴도 사장이 임명되면서 조직이 완벽하게 꾸려졌다. 가장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건 안드로이드 사업부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수많은 자산과 수천 명에 달하는 인력은 모두 안드로이드 사업부라는 이름으로 통합이 마무리되었다. 안드로이드 사업부는 재무, 경영지원, 마케팅, 생산, 감사 등등의 세부적인 부서도 다 완성된 상태다.

    레드먼드의 안드로이드 사업부 본사 빌딩 앞에는, ID라는 그룹 로고가 크게 세워졌고,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마스코트인 로봇이 기대어 있었다. 전 세계 지사와 대리점 역시 간판과 로고 교체가 마무리되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흔적인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하여튼, 안드로이드 사업부의 조직은 탄탄하게 완성되었고, 유재원을 대리할 사장만 공석인 상태였다.

    최우선 후보는 역시나 케빈 존슨이 유력했다.

    요즘 유재원이 가장 신경 쓰는 일은 러시아의 스카우트 상황인데, 케빈 존슨이 거의 제 일처럼 챙겼다. 여러 가지 막히는 일이 있을 때, 유재원이 아니라 케빈 존슨이 나서면 거짓말처럼 해결되었다.

    무엇보다 안드로이드 1.0 글로벌 런칭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던 것도 케빈 존슨의 공이 컸다.

    안드로이드 1.0 자체를 완성하는 일에서는 유재원의 지분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만큼 지대했다. 미래지향적 운영체제 틀을 설계한 것도 유재원이고, 메모리 관리나 멀티 코어, 멀티 스레드 등의 고급 기능을 넣을 때도 유재원이 거의 다 했다. 호평을 받는 사운드 기능도 혼자서 만들었다.

    반면 완성된 안드로이드 1.0을 소비자와 기업에 알리는 일에 대해서는 말 한마디 하고, 마케팅 비용을 집행해준 게 끝이었다.

    실무는 최강욱이나 레밍턴과 앨런 그리고 케빈 존슨이 맡아서 수행했다. 특히 미국과 한국을 제외하는 나라들은 케빈 존슨의 몫이었는데, 성과는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도스에서 유닉스로 커널의 체계가 완전히 바뀌는 대변혁이 일어난 안드로이드 1.0이었다. 컴퓨터를 제법 아는 사람들은 별 탈 없이 넘어갔지만, 완전히 모르는 초보들은 문제였다. 기존의 도스 프로그램을 쓰려면 재부팅 후 부트로더를 통해 안드로이드 알파로 부팅만 하면 되는 데, 그걸 못하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고객센터 전화기는 한 시도 쉬는 법이 없을 만큼 문의가 쏟아졌는데, 미래 대비하고 있었기에 착실히 대응할 수 있었다.

    “좋아. 조만간 임명해야지.”

    전용기사를 뽑겠다는 생각이 안드로이드 사업부 사장까지 이어진 유재원은 메모를 남겨두고 다음 일을 시작했다.

    미팅 준비였다.

    헤리티지 재단의 에드윈 풀러 이사장과의 약속이 내일모레였다.

    미팅을 요청한 사람은 유재원이었으니, 본인이 직접 에드윈 풀러가 있는 워싱턴 DC까지 날아가야 한다.

    일단 내일 뉴욕까지 가서 ID 인베스트먼트와 맨해튼 플래그쉽 스토어를 돌아본 다음, 워싱턴 DC로 가기로 했다.

    미팅을 잡은 이유는 확실히 실용적이었다.

    러시아에서 데려올 이들의 빠른 비자 발급을 위해 로비를 할만한 사람을 찾아보니 에드윈 풀러가 가장 적당한 사람이었던 거다.

    미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지 몇 년은 된 유재원이지만, 정치인들과는 그다지 친분이 없었다. 그나마 최근에 알아서 찾아온 앨 고어가 전부다. IT분야에 대해서 말도 잘 통하고 호의도 보여줬기에 후원금을 빵빵하게 채워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앨 고어는 민주당 소속인지라 현재 공화당의 부시 정부에는 별다른 힘이 없었다.

    반면 헤리티지 재단의 에드윈 풀러는 공화당의 두뇌와도 같은 사람이었고,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현재 미국의 행정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도 가까워서 부탁하기에 딱 좋은 사람이었다.

    헤리티지 재단에 1백만 달러 정도 기부금 계좌에 입금한 후에, 미팅 요청을 하니 단박에 약속이 잡혔다.

    다음 날.

    유재원 일행을 태운 롤스로이스 자동차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다시 나타났다.

    인원은 모두 다섯이었다. 유재원의 뉴욕 출장을 보조할 이로 앨런이 선정되었고, 이를 수행할 직원들이 두 사람 더 붙었다.

    여기에 레밍턴은 이번에도 드라이버를 자처하며 롤스로이스의 운전대를 잡았다. 사장이 무슨 운전이냐고 사양하려고 했는데, 조만간 운전기사가 뽑히면 자신에게 기회가 없을 거라며 운전석에 앉았다.

    롤스로이스 자동차가 상당히 큰 축에 속한지라 비좁다는 느낌은 없었다. 수행 직원들이 먼저 내리고, 앨런도 내렸다.

    “보스, 잠깐 할 말이 있습니다.”

    유재원도 따라나서려는 데, 레밍턴이 잠깐 붙잡았다. 역시 운전사를 자처한 건 단지 유재원을 안전하게 공항으로 바래다주겠다는 의도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네? 무슨 일인가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러나 싶은 유재원이다.

    무슨 실수라도 하셨나? 그래도 상관없다. 전생에 워낙 큰 도움을 준 사람이니 웬만큼 큰 손실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너그러운 유재원이다.

    “저, 결혼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레밍턴이 꺼낸 이야기는 유재원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예? 결혼이요?”

    결혼?

    전생에 레밍턴의 결혼은 IT 붐이 막 시작되던 때에 이뤄졌다. 햇수를 따지면 97년도였으니 상당히 늦은 나이에 하는 것이었다. 91년도가 이제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고는 해도 무려 6년이나 일찍 결혼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누구랑요?”

    누구라고 물어볼 일은 아니었다.

    레밍턴이 그의 비서인 섀넌과 동거 비슷하게 살고 있었다는 건 실리콘밸리 팀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당연히 섀넌이죠.”

    “혹시 갑자기 다른 사람이 나올까 싶었는데, 다행이네요.”

    “흐흐,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저처럼 일편단심인 사람은 없을 겁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결혼한 사이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레밍턴이 경찰을 그만두고 탐정 사업 시작했었다.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처음 고용한 직원이 섀넌이었다. 그때가 80년대 초반이었으니 10년이 넘는 동안 함께 일했던 사이였던 거다.

    “네! 두 분처럼 잘 어울리는 분은 없죠. 축하해요. 그럼 결혼은 언제 할 거예요?”

    “아,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프러포즈도 안 했거든요. 최대한 빨리할 작정입니다. 섀넌의 배가 점점 불러오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와! 임신한 거예요?”

    “옙! 이건 비밀입니다. 이상하게도 제일 먼저 보스에게 알려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씀을 드립니다.”

    “대박! 진짜 축하해요!”

    유재원의 입에서 작은 감탄이 나왔다. 동시에 찌르르 전기처럼 오는 느낌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생에 레밍턴과 섀넌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다. 그래서 섀넌과 사별했던 레밍턴이 무척이나 힘들어했고, 결국 종교에 귀의하지 않았던가.

    결국엔 한국까지 오게 되어서 유재원과의 인연이 만들어졌고, 이렇게 다시금 이어졌다.

    그때, 레밍턴은 유재원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무척이나 상세히 말해주었다. 그렇기에 결혼하기도 전에 아이가 생기는 일은 분명 전생에는 없었던 일이었다.

    레밍턴을 ID 테크놀로지의 사장에 임명하고, 상당한 보수를 주며 중요한 일도 맡기고 있지만, 이것으로 전생의 은혜를 갚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레밍턴의 결혼 소식과 임신 소식을 들으니 마음의 빚이 그나마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아, 그러면 이 기회에 그룹 차원에서 임산부를 위한 지원정책을 만들어봐야겠네요. 임신과 출산에 대해 전혀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을 만큼 빵빵하게 지원해드릴게요!”

    아직 인사팀도 없는 상태였으니, 임산부 지원정책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한 상황이다. 이번에 ID 그룹 전체에 대한 체계를 잡아 놓는 게 좋을 것 같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저만 너무 특별대우를 받으면 곤란합니다.”

    “헤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언제 회사에서 지인만 특별 대우한 적 있던가요?”

    “없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보스만 믿겠습니다.”

    “네, 레밍턴 사장님은 프러포즈에만 집중하세요.”

    프러포즈에 대해선 유재원이 할만한 조언은 없었다.

    전생에 연애는 조금 해봤지만, 결혼에 이르진 못했다. 프러포즈도 해본 적이 없으니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늦은 오후 뉴욕에 도착한 유재원은 ID 인베스트먼트 빈센트 그린힐 부사장의 열열한 환대를 받았다.

    ID 인베스트먼트는 여전히 맨해튼 플래그쉽 스토어 건물의 2층 일부를 사무실로 사용 중이었는데, 슬슬 비좁은 느낌이 나왔다. 예전엔 이 사무실을 빈센트 그린힐이 혼자 사용했다면, 이제는 총 18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월스트리트 출신이었는데, 평균 연봉이 15만 달러에 이를 만큼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사람들이었다.

    비싼 돈을 받는 만큼, 능력도 좋아서 유재원이 특정 나라의 경제 상황이나, 기업의 상태를 알고 싶다고 하면, 며칠 내로 수준 높은 분석 보고서가 툭툭 올라왔다.

    본인의 개입으로 세상의 흐름이 점차 바뀌면서, 기억의 궁전 속 뉴스 라이브러리 데이터와의 괴리가 점점 커 나가는 지금, ID 인베스트먼트의 분석 보고서는 오차의 수준을 평가하기에 딱 좋은 데이터였다.

    “반가워요. 유재원입니다.”

    빈센트 그린힐이 직원들을 일일이 소개해줬다.

    그들의 눈빛에는 선망이라는 단어가 반짝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 ID 인베스트먼트가 1억 달러의 석유 선물 투자로 88억 달러를 만들었다는 것은 월스트리트를 뜨겁게 달굴 만큼 쇼킹한 뉴스였던 탓이다.

    당연히 ID 인베스트먼트에 대해 알아보기 바빴다. 빈센트 그린힐이라는 이름이 나왔을 때는 고개를 갸웃거렸던 사람들이 유재원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게다가 키워드 데이터 분석이라는 이전까지는 없었던 분석 기법을 두고 말이 많았지만, 실제 연구에 들어가는 투자회사도 많았다.

    IT분야에 이어 월스트리트에서도 단번에 전설이 된 유재원이었으니, 다들 눈빛이 반짝이는 건 당연했다. 선망이나 존경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도발적인 눈빛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눈빛을 받으면서도 유재원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애송이들의 도전은 얼마든지 환영이니 말이다.

    빈센트 그린힐은 직원들과 인사를 마친 유재원을 곧장 회의실로 안내했다.

    유재원은 서론이 긴 걸 싫어한다는 걸 잘 아는 빈센트는 곧장 일본의 투자 상황에 대해 보고를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24,000포인트 수준의 닛케이 지수는 지금 23,000포인트를 밑도는 중입니다. 현재 우리가 잡은 풋 포지션은 24,500포인트를 기준으로 500포인트의 등락에 6억2천만 달러의 이익 혹은 손해가 발생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닛케이 지수 24,500을 기준으로 놓고, 지수가 그 이상으로 올라가면 손해이고, 밑돌면 수익인데, 지수가 500포인트 떨어질 때마다 6억2천만 달러의 수익이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현재 닛케이 지수는 23,000포인트 붕괴를 두고 간당간당한 수준이니 18억6천만 달러의 수익을 보는 중이다.

    “좋습니다. 포지션을 계속 유지하세요.”

    닛케이 지수의 폭락은 이제 시작이다.

    일본의 그 유명한 잃어버린 10년의 시작인데, 23,000은 어깨에 불과하다. 무릎을 지나 바닥까지 떨어지면 꽤 짭짤한 수익이 나올 거다.

    그러나 석유 선물처럼 88배 수준의 초대박이 터지진 않는다.

    유재원의 ID 인베스트먼트뿐만이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 등 많은 투자회사와 은행이 일본의 경제 상황에 대해 비관적이었던 탓이다.

    단지 얼마만큼 떨어질지 모르니 관망 중일 뿐, 주가가 오를 거로 생각하고 신규 투자를 하는 이들이 없으니 원하는 만큼의 레버리지를 얻지 못했던 탓이다. 그래도 투자 원금이 크니 단순 액수로는 석유 선물 때 얻었던 것 보다는 클 거라고 예상한다.

    점점 줄어들던 은행 계좌에 다시금 돈이 차고 있다는 걸 확인한 유재원은 마음이 든든해졌다.

    덕분에, 다음 날 헤리티지 재단 에드윈 풀러를 만나러 가는 길에 불안감은 단 한 점도 없었다. 에드윈 풀러가 유재원의 부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무얼 요구하든 다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보셨나요? 추천 한 방 부탁드립니다!

    리플과 선작도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올림픽 이벤트 집계를 끝냈습니다!

    우리나라의 올림픽 최종 성적은 7위! 금은동 숫자는 5-8-4입니다~!

    눈 크게 뜨고 열심히 훑어 봤는데 아쉽게도 당첨자가 안 나오셨습니다. 우리 독자님들 사이에는 회귀자가 아직 없는 거 같네요~ㅎ.

    이대로 끝내긴 아쉬워서, 딱 한 끗차이로 빗나가신 분께 아차상을 드리겠습니다.

    sodn 님, 시간걷기 님입니다!

    상품은 딱지 100장!!

    두 분은 마이페이지에서 선물함 관리에 들어가 보시면 딱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평창 올림픽도 이렇게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네요.

    앞으로도 빅 이벤트는 얼마든지 있고, 그때마다 이벤트를 열겠으니 많은 관심부탁드립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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