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178화 (178/1,007)

[178] 열혈 추종자들(Esquires) =========================

#104

개가 사람을 물어 죽인다면 어떻게 될까?

모두 도살처분 된다.

개를 기르는 이유는 사람의 목숨을 지키고, 덤으로 재산도 지키기 위해서였다. 반려견으로 기르는 개라도 사람을 잘 따르니 밥도 주고 재워주는 것이다. 그런 개가 사람을 물어 죽이면 죽이는 건 당연했다.

이번에 사표를 낸 검사와 판사도 이와 같은 이치였다.

사회적 위상은 높은데 실질적인 수입은 적은 대표적인 직군이 바로 판검사였다. 게다가 검사의 경우 수사 활동을 위해서 돈이 드는데 그 돈이 국가에서 원하는 만큼 나오는 일은 없었다. 후배 검사들을 챙기는 것도 다 간부들 본인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판사 역시 마찬가지다. 매일 수십 건의 사건이 쏟아지는 살인적인 업무량을 자랑하지만, 벌이는 시원찮다.

그런데도 검사와 판사가 가지고 있는 권한은 엄청났다. 사건 당사자들에겐 본인의 생사여탈을 쥐고 있는 염라대왕과 같은 존재였다.

이 취약점을 파고든 이들이 바로 재벌들이다.

막말로 검사와 판사의 가장 큰 스폰서는 바로 재벌이라고 해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 검사의 이번 수사는 재벌들에게 있어 공포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일이었다.

기르던 개에 물린 정도가 아니라, 사람 한 명 정도 죽었다는 수준의 충격이었다. 검사들이 제대로 재벌을 털면 감옥에 가지 않을 사람은 한 명도 없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제대로 된 판사까지 만나 버렸으니 영락없이 실형이 떨어졌다.

본을 보일 필요가 생겼다.

당연히 올라갈 항소심과 대법원 상고심에서도 이런 식이라면 재벌들도 개털들처럼 처벌을 받는 판례가 생겨버린다.

이는 부산그룹의 오너 일가에도 나쁜 일일 뿐만이 아니라, 재벌들에게도 매우 나쁜 징조였다. 그러니 바람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재기 되었다.

덕분에 재벌들은 오랜만에 한마음으로 뭉쳤다. 주인을 물어 죽인 개 두 마리를 축출하기 위해 온갖 압력을 동원한 것이다. 만약 검찰 수뇌부와 대법원 그리고 법무부가 제대로 중심을 잡고 있었다면 재벌들의 압력은 그저 쓸데없는 헛수고로 끝났을 거다.

그렇지만 검찰 수뇌부에는 재벌들의 머슴을 자처하는 이들이 상당했고, 대법원도 마찬가지였다. 검찰 고위직, 법원 고위직들이 퇴임 후 들어가는 자리는 대부분 대기업이 만들어주는 곳이었다. 변호사가 된다더라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변호사가 맡을 수 있는 커다란 건수는 역시 대기업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재벌들은 정병우 검사와 김창환 판사를 조직에서 축출함으로써 일선 판검사들에게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띄웠다.

자신들을 건들면 죽는다고 말이다.

“흠, 아직 상상일 뿐이지.”

이는 유재원의 추리였다.

그렇지만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한국의 재벌들과 직접 충돌했던 전생의 경험을 통해 그들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유재원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확인을 해봐야 한다.

“한국은 지금 몇 시지?”

유재원은 컴퓨터를 열어 한국시각을 확인했다. 다행히도 아침 10시가 되기 직전이었다. 유재원은 전화기를 들고 곧장 전화번호를 넣었다.

제대로 입력이 된 모양인지, 곧 따르릉 하는 벨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누구냐?

벨 소리가 3번쯤 반복되었을 때,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헤헤! 할아버지, 그간 안녕하셨어요? 저 유재원이에요.”

-아아, 재원이구나. 오랜만이다.

연결된 주인공은 바로 미래 그룹 총회장 전명헌이다. 한국의 재벌 중 유일하게 유재원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사실 전명헌 회장과의 관계가 이렇게 깊어질 줄은 유재원도 몰랐다. 원래 가지고 있던 마스터플랜에서도 미래 그룹과 가까워진다는 건 없었던 탓이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사업을 일찍 시작했고, 청와대 초청까지 받게 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고, 이를 통해 변수가 발생해 오늘날에 이르렀다.

“할아버지, 잠깐 통화 가능한가요?”

-응? 갑자기 웬일이냐? 뭐, 잡다한 일이 있다만, 재원이랑 통화가 우선이지. 우리 미래전자의 대주주님 아니냐.

오랜만에 전화통화를 한 것임에도 전명헌 회장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호의적이었다. 그이 말마따나 유재원은 미래전자의 대주주였다.

유재원이 보유한 미래전자 지분은 무려 31%. 미래전자는 지분을 주고 얻은 투자금으로 제2 반도체 공장 건설을 열심히 하였고, 제1 공장의 시설 첨단화와 친환경화에도 매진하는 중이었다.

대전의 제2 공장 자리는 터파기 공사는 끝났고 지반을 다지는 중이었다. 반도체 생산 설비는 진동에 민감해서 특수한 공법으로 열심히 작업 중이었다.

상대가 워낙 특별한 사람이다 보니, 유재원은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에 들어가진 못하고 전명헌 회장과 짧은 근황 이야기를 나눴다.

유재원은 잘 나가는 미래 그룹의 사업에 대해 감탄과 응원을 보내주었고, 전명헌 회장은 유재원이 SAT 만점을 받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이를 칭찬했다.

-응? 딸랑 스탠퍼드 하나에만 지원할 거라고? 아이비리그라는 데 다 하면 안 되느냐?

역시 전명헌 회장의 사고 구조는 보통과 달랐다.

유재원은 스탠퍼드 한 곳에만 지원할 생각이었다. 떨어질 염려도 없었고, 애초부터 그곳으로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니 다른 학교는 생각도 안 해봤다. 심지어 전생에 계획을 짤 때부터 그랬다.

-설마 조기지원을 한 건 아니겠지?

“아, 네. 정시로 지원할건데요.”

미국에도 조기지원이라는 정책이 있는데, 일찍 원서를 받아서 합격 통지도 일찍 받을 수 있는 제도였다. 우리나라의 수시와 비슷한 것인데, 고등학교 성적 같은 게 없는 유재원이었으니 그냥 정시로 지원하는 게 제일 편했다.

-다행이다. 생각해 봐라. 우리나라에 많은 영재가 있다지만, 아이비리그 8개에 동시 합격한 애는 없었단다. 네가 그걸 달성하면 대단한 위업이지. 한국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떠들썩할걸? 그게 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홍보 아니겠냐?

역시 대단한 분이다.

대학교 입학까지도 다 돈으로 연결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살짝 팩트가 어긋난 부분도 있었다. 스탠퍼드 대학교는 애초에 아이비리그에 속하지 않은 학교라는 거다. MIT나 캘리포니아 공과대학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비리그라는 게 생긴 유례가 사립대학들의 스포츠리그였기 때문이다. 무려 1930년도에 시작된 것이었으니 이후 생긴 신생 대학교들은 들어가지 못했다. 게다가 스탠퍼드나 MIT,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이 아이비리그에 속한 학교보다 떨어진다고 할 수는 없다.

미국에서의 인식도 마찬가지다. 아이비리그에 속한 학교나 그렇지 않은 명문대나 대우의 차이는 없었다. 단지 한국이나 일본에서만 뭔가 특별하다고 해주는 것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전명헌 회장의 말이 틀렸다는 것도 아니다.

원서를 여러 개 쓰고, 추천장도 좀 더 받는 약간의 수고만으로 커다란 이미지 상승을 노릴 수 있었다. 회장님 말대로 아이비리그 전부와 스탠퍼드에 합격증을 받는 건 유례가 없는 사건이었으니까.

“알겠어요. 한 번 해볼게요. 결과가 나빠도 실망하진 마세요.”

-그래! 잘 생각했다.

작은 소득이었다. 이렇게 챙길 건 다 챙긴 유재원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궁금한 게 있거든요. 혹시 정병우, 김창환이라는 이름 들어보신 적 있나요?”

-정병우? 김창환?

유재원의 물음에 전명헌 회장이 되물었다.

“부산그룹 수사 맡았던 검사랑 1심 판사예요.”

-아아, 그 판검사 말이구나. 네 설명 들으니 기억이 나는구나. 왜 그러느냐?

“이분들이 사직한 이유가 저 때문에 그런 것 같아서요. 진짜로 그런 거라면 마음이 아프잖아요.”

-응? 그게 왜 너 때문이라는 거냐?

전명헌 회장의 말투는 다 알면서도 되물어보는 듯했다.

“제가 대통령께 처벌을 확실히 해달라고 했잖아요. 결과도 그렇게 나온 거 같은데, 정작 실무를 수행했던 두 분이 사표를 던지고 나왔잖아요.”

-아하, 그거 말이구나. 부산그룹 애들이 난리를 피웠다더라. 여기에 동조하는 녀석들도 몇 있었고, 일부는 아주 적극적으로 참여했다지.

“일성이요?”

-아, 재원이도 알고 있었느냐? 그래. 그쪽 집안 분위기가 관리를 좀 빡빡하게 하는 게 있지. 이번 일을 이용해서 사법부의 튀는 녀석들 명단을 짜고 있을걸.

“회장님은요?”

-응? 나? 나는 뭐 구경만 하고 있지. 다 네 녀석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이번엔 회장이냐? 처음엔 할아버지라더니?

“헤헤, 처음엔 사적인 대화였지만, 지금은 공적인 거잖아요. 하여튼 잘 알겠습니다.”

전명헌 회장은 전생과 달리 약간 달라진 게 보인다. 이런 일에 빠지진 않았던 분이었는데 말이다.

이후 통화는 다시 잡담으로 돌아갔고, 또 연락하겠다는 말로 마무리되었다.

“역시, 그 양반이구만.”

확인은 끝났다.

역시나 범인은 거기였다.

사법부를 자신의 수족처럼 부리며, 나중에는 한국이란 나라의 이름을 일성 공화국이라고 칭해지게 하는 위업을 선보인 양반이다.

그런 위업이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건 아니다. 오래전부터 꾸준히 작업해야 하는데, 이들은 성공한 것이다.

“흠, 어떻게 할까?”

아마도 사법부의 판검사들은 이번 일로 크게 위축된 상태일 거다.

원래부터 친기업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이라면 당연한 일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반대 성향이거나 딱히 성향이 없는 중도층의 인사들은 수사할 때나 판결을 내릴 때 이번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을 거다.

“대응책을 생각해 봐야겠네.”

한국의 기득권이 깨지는 게 더 큰 이득인 유재원에겐 이번 일은 절대 그냥 넘길 수는 없는 사건이었다.

========== 작품 후기 ==========

아슬아슬하게 연참 성공이네요.

다음 편으로 가기 전 추천 한 방 부탁드립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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