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177화 (177/1,007)
  • [177] 열혈 추종자들(Esquires) =========================

    -안드레 사하로프 박사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습니다!

    “사하로프 박사요?”

    처음부터 대박이었다.

    -네, 소련 당국이…. 아니 러시아 정부가 내년도 연구 센터 예산을 크게 깎은 것뿐만이 아니라, 연구원 숫자도 크게 감축하기로 하면서 사하로프 박사의 실의가 무척이나 컸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제시한 조건이 너무 좋아서 믿지 않으시더군요. 사진과 뉴스도 보여드리니 드디어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몇 가지 행정적인 절차만 해결되면 이직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와우! 좋은 소식이네요. 도장을 찍을 때까지 방심하지 말고 섬세한 관리 부탁해요. 다른 분들도 놓치지 마시고요.”

    사하로프 박사가 ID 하이테크 소속이 된다면 북한의 핵 개발 프로그램 가동에 중대한 차질을 줄 것이다. 물론 이 사람이 없다고 해서 북한의 핵 개발 의지가 꺼지진 않겠지만, 이보다 저렴하고 확실한 견제는 없을 거다.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미하일 이바노프와 기분 좋은 대화를 마친 유재원은 이번에도 넥스트컴에 접속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살폈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역사의 흐름이 달라지는 걸 주의 깊게 챙기지 않으면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건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에, 넥스트컴은 물론 신문과 텔레비전을 늘 달고 사는 유재원이다.

    “흠, 오늘은 괜찮군.”

    미국은 별다른 뉴스가 없었다. 유럽도 마찬가지였다. 뉴스가 없는 게 유재원에겐 좋은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살펴본 건 한국의 소식이었다.

    “응?

    미국이나 유럽처럼 별일 없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한국은 아니었다. 헤드라인부터 차근차근 페이지를 넘기던 유재원의 눈에 딱 띄는 기사 하나가 있었다.

    -정병우 검사 사직.

    메인 뉴스는 아니었다. 검찰청의 검사 하나가 사표를 내고 나왔다는 소식을 전하는 단신이었다. 유재원도 집중해서 읽지 않았다면, 그냥 넘겨버렸을 만큼 작은 크기였다. 신문을 만든 회사에선 이게 사회적으로 큰 의미는 없을 거로 생각했던 모양인지 이렇게 기사를 낸 모양이다.

    하지만 정병우라는 이름을 유재원이 기억하고 있었다.

    유재원이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건 그만큼 존재감이 있던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정병우도 예외는 아니다. 이 사람이 바로 몇 주 전 1심에서 실형을 받은 부산그룹 오너가의 비자금 수사를 맡았던 검사다.

    “뭐지?”

    열심히 수사해서 유죄를 받아냈으니 검사로서 제 할 일을 충분히 했다. 진급하면 했지, 갑자기 관두는 일은 드물었다. 게다가 이번 사건은 보통의 사건도 아니고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으로부터 파생된 일이었다.

    심지어 대통령이 철저한 수사를 당부하는 지시도 있었다. 이른바 하명 수사나 다름이 없었다. 대통령의 의지를 잘 따라갔으니 황금 동아줄을 잡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사직이라니.

    “이유도 없네?”

    검사처럼 누구나 선망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 웬만해서 사표를 내지 않는다. 심지어 뇌물을 상납받거나, 비리를 저지른 게 적발이 되어도 감봉 정도의 처벌을 받고 끝이다. 법원에 사건을 올리는 기소권이 검사에게 있으니 같은 동료 검사가 큰 잘못을 해도 열심히 감싸줄 수 있다.

    어쩌다 사표가 나오게 되는 경우는, 조직에 적응하지 못한 일부 사람들이나 몸에 병이 생겨서 요양해야 하는 사람 정도였다.

    정병우 검사는 두 가지 모두 해당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기사 어디를 봐도 병환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그저 일신상의 이유로 사표를 냈고, 수리되었다고 한다.

    “응? 벌써 수리해?”

    보면 볼수록 수상하다.

    유재원은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곧바로 전문가를 찾았다. 이런 일을 제일 잘해줄 사람은 바로 최강욱이었다. 전직 법조인 출신이니 유재원의 궁금증을 잘 풀어줄 것이다. 마침 ID 톡에 최강욱이 접속했다.

    시계를 보니 유재원이 있는 샌프란시스코는 오후 4시였고, 한국은 이제 업무를 시작하는 아침 9시였다.

    유재원은 부담 없이 대화창을 열었다.

    2주가 지났다.

    벌써 10월의 중순이 되었다. 가을에 접어들면서 주변의 환경도 많이 달라진 게 눈에 보였다. 녹색의 나무들이 노랗고 빨간 색색의 물이 들기 시작했고, 아침저녁으로 살짝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래도 한겨울이 되어도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샌프란시스코였기에 두꺼운 옷을 입을 일은 없었다.

    2주라는 시간 동안 ID 그룹에서도 중요한 일 몇 가지가 있었다.

    ID 인베스트먼트의 투자금 30억 달러가 일본으로 건너간 일이 제일 큰 건일 거다. 일주일간 나눠서 송금하고, 환전도 진행했는데, 뭉칫돈의 규모가 워낙 커서 엔화 환율이 일시적으로 크게 출렁거릴 정도였다.

    다음으론 안드로이드의 차기 버전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일이 있다. 차기 버전에서 강조하는 건 멀티코어 시스템과 다양한 하드웨어의 안정적인 지원, 그리고 인터넷 서버 기능이었다.

    VGA 제조 업체들까지 아우르는 3D 기술 개발 컨소시엄의 출범도 있었다. 존 카멕이 이끄는 3D 가속 컨소시엄이었는데, 업체와 개발자의 반응이 기대 이상이었다. 다들 열성적으로 참여하면서 3D 라이브러리의 표준이 빠르게 정립 중이었다.

    AMD에서는 새로운 CPU를 개발했다면서 보내주기도 했다. 그 유명한 DX4-100이라는 모델인데 이름에서 볼 수 있듯 작동속도가 무려 100㎒에 달하는 고성능 CPU였다.

    인텔의 호환칩만 만들면서 만년 이인자였던 AMD가 갈고닦은 신제품이다. 성능도 인텔의 DX2-66을 가뿐하게 뛰어넘으면서 가격에선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다. 게다가 CPU를 장착하는 소켓도 인텔과 호환되었기에 바로 CPU만 사면 사용할 수 있었다.

    AMD에서는 발매 전에 ID 테크놀로지에 보내서 호환성을 확인받고 싶었다. 덕분에 달랑 한 개를 보내주고 만 것이 아니라, 100개에 달하는 분량을 보내왔다. 또한, 앞으로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최적화 작업을 하는 데 있어 힘껏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CPU 시장을 평정하고 나서 뭔가 좀 움직임이 둔해진 것 같은 인텔과는 확실히 다른 행보였다.

    유재원에게도 나쁠 게 없는 일이었다.

    사용자들이 무슨 하드웨어를 사용하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사용하면 최고의 성능을 끌어낼 수 있게 만드는 게 유재원이 할 일이었다.

    그렇기에 AMD의 신제품 DX4-100을 위한 최적화를 그날 즉시 결정했다. 안드로이드 1.0의 첫 번째 패치 버전을 발표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개발 일정이 빡빡하긴 해도, 인적 자원은 풍부한 상태였기에 큰 문제는 아니었다.

    유재원을 더욱 기쁘게 하는 건 안드로이드 애드웨어에 들어갈 광고 단가의 상승이었다.

    알파 때만 하더라도 20개였던 광고 슬롯은 1.0이 되면서 4개가 더 추가되어 총 24개의 광고를 받는 상태였다. 숫자가 늘어났으니 조금 단가가 내려올 수도 있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이미 안드로이드의 광고 효과는 데이터로 입증된 상태였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를 인수하면서 도스는 도태되고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싹쓸이가 시작되면서 애드웨어는 더욱 힘을 받았다.

    덕분에 광고 단가는 슬롯당 30만 달러를 넘어 50만 달러를 바라보는 수준에 이르렀다. 광고에 들어오는 기업들의 면면도 확 달라졌다.

    예전엔 컴퓨터 분야의 기업들이 많았다. 영세했던 주변기기 업체도 있었고, 하드디스크나 VGA 업체도 있었다. 지금은 미국의 대기업들도 상당수 참여했다. 자동차 광고나 보험 광고까지 들어 오는 수준이었다.

    이제는 100일마다 최소 1,200만 달러 이상의 광고 수익이 확보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여기에 대형 컴퓨터 제조사에서도 매달 수백만 카피의 안드로이드 1.0의 라이센스를 받아갔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매출만으로 1억 달러 돌파는 확실해 보였다.

    컴퓨터 시장의 규모가 훨씬 더 커질 92년도 매출은 그 어느 때보다 긍정적인 전망을 그릴 수 있었다.

    -회장님,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최강욱의 연락이 온 것은 10월 중순의 마지막 주였다.

    정병우 검사의 사정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고 나서 10일이나 지난 후였다.

    “괜찮아요.”

    늦어진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다. 설마 최강욱 비서실장이 농땡이를 피우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그만큼 검찰 내부 사정이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정 검사가 수사를 너무나 잘했나 봅니다.

    이게 무슨 말이야? 수사를 너무 잘했다고? 그럼 표창을 해줘야지 왜 검찰청에서 나와야 했단 말일까?

    최강욱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걸 듣고 있으니 어이가 점점 없었다.

    정병우 검사는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재벌들에게 대한 강도 높은 수사를 하긴 했는데, 검찰청 내부 분위기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느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고 한다.

    이른바 좋게좋게 가자는 것이다.

    높으신 양반들의 의중이란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 나올 정도의 수준으로 수사해야 했는데, 정병우 검사는 앞뒤 재지 않고 곧장 부산 그룹을 헤집었다고 한다. 이 시대의 재벌 중에 털면 먼지가 나지 않는 기업은 없으니 꼼짝없이 징역 5년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정병우 검사가 대통령의 눈에 들겠다는 공명심만 가지고 재벌과의 끈끈했던 관례를 깨버리는 짓을 저질렀으니, 검찰청의 높으신 양반들의 눈 밖에 나게 된 거다.

    조직이 이렇게 되면 대통령이 나서서 한 마디 해줘야 할 텐데, 그런 것도 없었다. 제2 이동통신 사업을 준비한다, 정보고속도로 사업을 한다고 다른 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였다.

    그렇게 끈 떨어진 신세가 된 정병우 검사는 조직의 알력을 버티지 못하고 타의로 나오게 된 것이다.

    “그렇군요.”

    최강욱 비서실장의 설명은 개연성이 충분했다. 게다가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근무하는 선후배 검사들과 만나서 직접 속사정을 들은 것이니 정확하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도 유재원은 께름칙한 느낌이 풀리지 않았다. 최강욱 비서실장의 보고는 제법 정확했지만 이게 다가 아닐 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유재원이 예감이 적중했다는 건 2주가 더 지난, 10월 말쯤 최강욱 비서실장의 전화를 통해 확인되었다.

    -회장님, 김창환 부장판사가 사표를 냈습니다.

    김창환 부장판사.

    이 사람은 부산그룹 전 회장의 1심 재판을 담당했던 판사였다. 그러니까 부산그룹 수사와 재판을 주도했던 검사와 판사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사표를 쓰게 된 것이다. 게다가 부장판사의 사직은 제법 큰일이었음에도 기사도 나오지 않았다.

    “역시, 그분들이 그냥 있을 분이 아니지.”

    유재원은 김창완 판사의 사직까지 확인하자 견적이 딱 나왔다.

    본보기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완전 감사합니다~!!!

    으, 메달 좀 많이 딸 것 같았는데, 폭망이었네요. 그래도 남은 경기가 있으니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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