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 아메리칸 드림 =========================
#102
인터넷이란 단어는 단지 WWW 서비스만 말하는 건 아니었다.
고전적인 파일 전송 서비스인 FTP도 있고, 최근에는 고퍼라는 문서 검색 서비스도 나왔다. 요즘은 WWW로 빠르게 통일되고 있지만, 다른 서비스들도 활발히 개발 중이었다. 요즘에는 유즈넷이란 서비스가 새롭게 뜨는 중이었다.
유저 네트워크의 준말인데, 주로 텍스트 형태의 기사들을 전 세계의 사용자들이 공개된 공간에서 주고받아 토론할 수 있게 고안된 분산 네트워크이다. 간단히 말해 접속하는 서버는 달라도 게시판 자체는 하나로 통합된 세계구급 수준의 게시판이다.
이러한 유즈넷 컴퓨터 운영체제 게시판에 며칠 전 짧은 글 하나가 올라왔다. 컴퓨터 운영체제 게시판은 당연히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가 중심이었는데, 이를 제치고 단숨에 핫이슈가 되었다.
-새로운 운영체제를 만들고 있다. 소스코드를 공개했으니, 관심 있는 사람은 와서 보고 소감이나 의견을 말해줬으면 고맙겠다.
글을 올린 사람의 이름은 리누스 토르발즈. 오픈소스 운영체제로 유명한 리눅스의 시작이었다.
유재원도 지금 그 글을 보는 중이었다.
글이 올라왔던 날짜는 8월 25일이었는데, 2주일이 지난 지금 확인해보니 반응이 괜찮았다. 운영체제의 소스 코드를 직접 보고, 본인이 수정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열광하는 것이다.
“역사가 크게 뒤틀리진 않았네.”
전생에서는 수많은 개발자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발전한 리눅스였다. 여기에 유재원과도 연관이 있는 리처드 스톨먼이 이끄는 GNU까지 참전했다. 덕분에 대학교 2학년생이 만든 어설펐던 운영체제는 완성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고, 리눅스라는 이름까지 얻게 되었다.
리눅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들과 맞서서 모바일과 서버 시장을 당당히 차지했고, 나중엔 인공지능까지 아우르기에 이르렀다.
“이번엔 어떻게 흘러가려나?”
지금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없어졌고, 대신 유재원 본인이 만든 안드로이드 체제로 급속히 전환 중이었다. 불안정했던 도스를 빼버리고 유닉스 호환 체제로 바꿔버리면서 혼란도 크게 일어나긴 했지만, 변화는 순조로웠다.
덕분에 구도는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ID 그룹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자리를 대신했고, 리눅스는 원래의 모습 그대로 등장했으니 말이다. 리눅스가 과연 전생의 역사처럼 크게 성장할지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유재원도 예상할 수 없었다.
안드로이드 1.0의 안정성은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았다. 응용 프로그램의 오류로 컴퓨터가 멈추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컴퓨터 자체가 뻗는 경우는 없었다. 프로그램 관리자가 등장해 오류가 발생한 프로그램만 죽인 다음 바탕화면으로 가뿐하게 복귀했다.
응용 프로그램만 탄탄히 만들었다면, 컴퓨터에 막대한 과부하가 걸리더라도 다운되지 않는다. 도스나 윈도우에서 작업하다 데이터를 날려 먹는 건 이젠 옛날의 추억이 된 것이다. 게다가 안드로이드의 가격 경쟁력은 무시무시했다. 애드웨어라는 약간의 귀찮음만 감수하면 무료, 그것도 싫다면 10달러짜리 정품을 사면 그만이다.
그러니 리눅스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진 상태였다. 그렇지만 같은 유닉스 계열이니, 안드로이드 1.0 용 응용 프로그램의 소스코드만 조금 손봐주면 리눅스에서도 실행할 수 있다.
앞으로 리눅스가 어떻게 흘러갈지 지켜보는 것도 유재원에겐 소소한 즐거움이 될 것 같다.
“그러면, 이젠 국내 소식으로 넘어가 볼까?”
리눅스의 탄생에 축하 댓글을 달아주고 나온 유재원은 오랜만에 한국 넥스트컴으로 접속했다. 제일 먼저 가본 곳은 당연히 뉴스 페이지였다.
뉴스 페이지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넥스트컴 사장으로 스카우트된 헨리 사무엘이 의욕적으로 움직이면서 일궈낸 성과였다. 뉴스 페이지에서도 당장 그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넥스트컴 PC 통신의 게시판과 WWW 게시판을 연동해서 상호 간에 올린 글을 볼 수 있게 만든 게 제일 큰 변화였다. 또한, WWW 뉴스 페이지 레이아웃을 대폭 바꿔서 가독성을 높였다.
누가 말해주지 않았지만, 섹션을 나누었고, 중요한 뉴스의 경우 제목 글자 크기를 2배로 키웠고 면적도 크게 늘렸다. 마치 신문 지면을 WWW로 옮겨온 것 같았다.
한국의 뉴스 페이지도 같은 방식으로 바뀌었다. 덕분에 뉴스 페이지에 접속하자마자 제일 뜨거운 이슈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부산그룹 전 회장, 징역 3년 선고!
-부산양조 회장 비자금 조성, 뇌물 공여로 징역 5년 선고!
기사가 업로드된 시점을 보니 어제 올라왔던 기사였다.
한국을 떠들썩하게 뒤집었던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 관련해서 1심 재판의 선고가 있었는데, 형량이 파격적이었다.
“집행유예 5년은?”
재벌들이라면 기본 옵션으로 따라다닐 집행유예가 보이지 않는다. 흑백이지만 함께 첨부된 사진을 보니 포승줄에 묶여 교도소로 가는 차에 오르는 부산그룹의 오너가 형제 모습이 들려 있었다.
항소심에서 감형이 이뤄질 수도 있겠지만, 재판이 있을 때까지 몇 개월 동안은 옥살이해야 한다.
“이야. 대단하네.”
재벌들의 금력보다 대통령의 한 마디가 강하다는 게 확연히 느껴지는 기사였다.
21세기는 이렇지 않았다. 국민이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는 중이었음에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법칙은 어김없이 발동되었다.
90년대 초까지 이처럼 정치권력이 때릴 땐 얻어맞고, 돈을 뜯어갈 땐 뜯길 수밖에 없었던 재벌들이 이후엔 이를 갈고 있었던 모양이다.
-제2 이동통신을 잡아라!
-2000년대 2조 원의 황금시장이 될 제2 이동통신!
-국내 8개 대기업 군침, 참여 경쟁 불꽃!
기사를 보다 보니 슬슬 무르익고 있는 제2 이동통신 사업에 대한 이야기도 보였다.
“흐흐,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 대접으로 퍼마시고 있네.”
2000년대 2조 원 정도가 아니었다.
그보다 5배 정도는 더 큰 10조 원 대 시장이다. 2010년이면 100조 원을 가뿐히 넘어가고, 2040년쯤 되면 500조 원 규모의 사업이 된다. 세계 규모로 보면 숫자 0은 하나씩 더 붙어도 무리는 아니다.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 정도가 아니라, 그런 거위들을 수백, 수천 마리씩 키우는 농장이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사업자 선정에 있어 공정한 평가를 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별 볼 일 없는 사돈 기업인 선경을 확실하게 밀어줄 거다.
“대통령 권력이 무시무시 하구만.”
순간 한국 대통령 자리에 솔깃해지는 유재원이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대통령은 딱 5년짜리 권력이었다. 자리에 있는 동안 뭐든 해 처먹을 수 있지만, 내려오고 나서는 무시무시한 후폭풍을 감당해야 한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 중에 퇴임 후가 좋은 사람을 찾는 건 손에 꼽을 만큼 적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반면 ID 그룹의 회장 자리는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끝까지 가는 거다.
아직 부족한 게 많지만, 대통령을 능가하는 자리로 열심히 만들면 된다.
다음 날.
9월 6일,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가 러시아로부터 정식 독립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유재원도 러시아 사람과 드디어 통화를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모스크바 대리점의 1대 대표였던 미하일 이바노프입니다.
전화기 너머로 어색한 영어가 흘러나왔다. 음질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 연결된 미하일 이바노프는 미국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한창 혼란스러운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었으니 말이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ID 그룹 회장 유재원입니다. 발음하기 힘드실 테니까 ‘제이’라고 부르세요.”
-예, 제이 회장님. 저도 미하일로 불러주십시오.
러시아 말투가 그대로 살아 있는 영어라서 무척이나 독특하게 들렸다. 말할 때도 천천히 말하고 대답을 듣는 것도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ID 톡을 사용한다면 빠르게 연결할 수 있을 텐데, 러시아는 아직 인터넷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불가능했다. 무려 한 나라의 수도인데도 이런 상태였다.
-케빈 존슨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유능한 사람들 포섭 잘하는 전문가를 찾고 계시다고.
케빈 존슨이 미하일에게 어떻게 설명했는지 짐작을 할 수 없다.
“포섭이 아니라 스카우트입니다만.”
순간 깜짝 놀란 유재원이 얼른 정정했다.
포섭이라니. 마치 나쁜 일에 동참하라고 꼬시는 듯한 뉘앙스이지 않은가.
-아, 스카우트. 바로 그겁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계획하시는 건지 알고 싶습니다.
미하일의 목소리는 뭔가 다급함이 담겨 있었다.
아무래도 나라가 어지럽고, 경제 사정이 급속도로 나빠지는 걸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지 않나 싶다. 게다가 오늘에는 라트비아를 비롯한 세 나라가 정식으로 독립을 선포하지 않았던가. 혹시나 하고 기대를 하던 사람들도 역시나 하며 체념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특히 미하일의 경우 마이크로소프트의 대리점도 하고, 컴퓨터 본체나 부품도 파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IT분야는 경기에 민감한 사업이었으니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강렬한 체감을 하고 있을 거다.
“말 그대로입니다. 제가 원하는 전문가들을 찾아서 ID 그룹으로 스카우트하겠습니다. 본인이 원한다면 미국으로 정착하는 것도 돕겠…….”
-예?! 미국이요?
갑자기 미하일이 치고 들어와서 말을 제대로 맺지 못했다.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미하일의 목소리가 2배는 커졌다. 음, 미국이란 나라에 거부감을 가진 걸까?
-세상에! 진짜 미국에 갈 수 있습니까?
아, 반대인 모양이다.
마치 서울에 사는 걸 동경하던 이가 서울 가자는 말을 들은 것처럼 반색하는 거다. 러시아 말투가 낯설어서 잠깐 착각했다.
“네, 그런데 미국 근무는 미국 이민국 심사를 거쳐야 해서 확언은 어렵네요. 만약 입국이 거부된다면, 유럽이나 한국 근무를 하셔야 합니다.”
-아, 그렇군요.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다행히 미하일은 나라를 떠나야 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다. 하지만 유재원이 원하는 사람은 미하일이 아니라 러시아의 연구소나 대학, 기업에 근무하는 인재들이었다.
“제가 최근에 ID 하이테크 연구소라는 조직을 만들고 있거든요. 스카우트 되는 분들은 이곳에 속할 겁니다. 대우는 미국의 연구원 수준으로 해드릴 거예요. 급여는 월 5천 달러부터 시작하고, 보너스도 있습니다. 그리고 연구 성과에 따라 소정의 로열티도 줄 거고요.”
-헉! 5천 달러? 루블이 아닙니까? 연봉도 아니고요?
“미국에서 근무하실 텐데, 급여도 미국 달러로 드려야죠. 물론 월급입니다.”
유재원이 알아본 바에 따르면 러시아의 연구원들이라도 급여 수준이 그다지 높은 건 아니었다. 도시의 평범한 노동자들이 월 250루블이었다면, 연구원은 500루블 정도의 수준이었다. 현재 러시아 루블의 미국 1달러당 환율은 0.545였다. 그러니 500루블은 미국 돈으로 272달러라는 이야기다.
한 달 내내 일해서 272달러를 받아서 어떻게 사나 싶을 정도다. 그나마 계획 경제 체제였던 러시아였으니 물가가 무척이나 저렴했고, 덕분에 80년대 초까지는 풍족하게 살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소련이 붕괴하면서 경제도 파탄이 났고, 이제는 이 돈으로 먹을 걸 구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러시아 사람에겐 5천 달러는 정말 무지막지하게 큰돈이었다. 모스크바에서 큰 사업을 했던 미하엘도 혹할 만큼 큰돈이었다. 하지만 이건 러시아 안에서 한 이야기지, 미국으로 오면 좀 달라진다.
생필품 가격이나 집세 등등. 러시아보다 월등히 높은 상태였으니, 월 5천 달러의 월급은 어마어마하게 큰돈은 아니다. 그렇다고 적은 돈도 아니어서 4인 가족이 먹을 것 먹고, 입을 거 사고도 남을 돈은 된다.
“올 사람이 많을까요?”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5천 달러가 아니라 5백 달러만 준다고 해도, 미국에 가겠다는 사람은 트럭으로 차고 넘칠 겁니다.
“러시아 정부가 인력을 빼가는 것에 불쾌함을 느껴진 않을까요?”
-천만에요! 인력 감축이 한창인데, 데려가 주면 고마워하겠죠.
설마 그러겠나 싶다.
그만큼 미하일의 러시아 당국에 대한 불만이 크다는 정도로만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미하일 씨도 ID 그룹의 정식 스카우터를 맡기겠습니다. 급여는 1만 달러로 책정하겠습니다. 많은 인재를 저에게 안겨 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미하일에게는 파산을 걱정해야 할 만큼 어려웠던 상황에 내려온 황금 동아줄이었다.
-저기, 회장님. 그런데 말입니다. 러시아에서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몇 가지 일이 있습니다.
일이라니.
상납 같은 걸 말하는 건가 싶은 유재원이다.
러시아 공무원의 부패 지수는 건 세계적으로도 유명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급행료의 명목으로 돈을 쥐여주지 않으면 뭔가 제대로 되는 게 없다. 심지어 마피아도 크게 성행해서 어떤 지역은 행정력보다 마피아의 힘이 더 큰 곳도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미하일의 대답은 유재원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저기. 그러니까 제가 제대로 된 스카우트 활동을 하려면 그만한 명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제 명성이 그만큼은 아닙니다.
역시 케빈 존슨이 제대로 된 사람을 추천해줬다.
만약 의욕만 넘친 사람이었다면, 무조건 자기가 다 하겠다고 했을 텐데, 미하일은 제 능력을 객관적으로 보고서 모자란 부분을 잘 집어냈다.
하긴,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나타나 큰돈을 제안하면서 미국 가자고 하면 의심부터 할 것 같다. 그러면 스카우트는커녕 경계심만 살 것이다.
미하일은 이를 지적하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미하일 씨를 조만간 미국으로 초청하겠습니다. 정식 직위도 드리죠.”
보통은 여기에서 끝이다. 미국으로 와서 임원들과 함께 사진도 찍고 기사도 몇 개 나면 미하일 이바노프는 공인을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말이다.
유재원은 이번에도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음, 그리고 첫 번째 스카우트가 성사되면 제가 직접 러시아에 가서 그분을 모셔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러면 제가 활동하는 데 누구도 방해를 못 할 겁니다.
ID 그룹과 유재원의 명성은 얼어붙은 땅, 러시아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
처음은 ID 오피스 시큐리티 챌린지였다. 1천만 달러의 상금이 걸려 있었기에 러시아에서도 많은 이들이 도전장을 던졌다. 이후 ID 그룹의 소식은 러시아에서도 간간이 다뤄졌다. 그러다가 안드로이드 1.0 글로벌 런칭과 함께 대대적인 마케팅이 이뤄지면서 ID 그룹의 인지도는 한껏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유재원이 직접 러시아에 방문하면 대단한 사건이 될 것이다.
“아참, 스카우트 대상에 대해선 미하일 씨의 안목을 우선순위에 놓고 고려하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룹 정보팀이 찾아낸 사람도 있으니, 이름을 보내면 스카우트 제안을 해주세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통화를 막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어색함이 가득했다. 지금은 미하일의 목소리에 공손함이 자동으로 깔렸었다. 아직 고용 계약서에 사인하진 않았지만, 유재원을 본인의 상사로 확실히 인정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먼저 추려 놓은 사람도 있어요. 안드레 사하로프, 블라디미르 벡셀레드, 유진 카스퍼스키. 이 세 분 먼저 접촉해보세요.”
-안드레이 사하로프, 블라디미르 벡셀레드, 유진 카스퍼스키. 맞습니까?
“네! 정확해요. 그런데 어디 거주하는지는 잘 몰라요.”
90년대 러시아는 너무도 혼란스러웠다.
인터넷 기록은 물론이고, 신문 라이브러리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마스터플랜을 짤 때 최대한 많은 정보를 넣으려고 했지만, 무엇 하나 걸리는 게 없어서 현재 시점에서 구체적 행적을 찾진 못했다. 이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건 1996년 후인데, 아직 한참 남았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안드레이 사하로프는 제가 아는 그 사람 맞습니까? 러시아 연방 원자력센터 소장 안드레이 박사 말입니다.
역시 현지인이라 그런지 이름만 들어도 바로 답이 나오나 보다.
“맞아요!”
미하일의 말처럼 안드레이 사하로프는 러시아의 저명한 핵물리학자다. 원자력발전은 물론이고 핵폭탄 제조에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미하일에겐 IT 그룹의 오너인 유재원이 갑자기 핵물리학자를 스카우트하려는 게 의문일 거다. 하지만 이것 역시 유재원의 큰 그림이다.
안드레이 사하로프는 러시아가 붕괴한 다음 선택한 행선지는 바로 북한이었다.
북한의 핵 개발 프로그램이 본격적인 가동을 시작한 건 러시아의 경제 붕괴 후 쏟아져 나온 핵물리학자들을 영입한 이후였다.
특히 안드레이 사하로프가 주도적이었는데, 북한의 수준으로는 돌파할 수 없는 난관도 그의 노하우를 통히 쉽게 넘어갈 수 있었다.
블라디미르 벡셀레드도 마찬가지다. 본래 인공위성 발사체 전문가였는데, 북한으로 넘어간 후에는 탄도 미사일 개발에 크게 공헌했다.
나머지 유진 카스퍼스키는 핵물리학자도 아니고, 미사일 전문가도 아니다. 컴퓨터 보안 전문가로서, 그나마 ID 그룹의 카테고리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미래의 청정에너지가 원자력이잖아요. 미리 준비하려는 거죠. 우주 산업도 중요하고요.”
청정에너지는 개뿔.
원자력 발전소를 운영할 때는 저렴해 보이긴 하는데, 발전이 끝난 후 나온 핵폐기물을 처리하는 데 들어간 비용은 천문학적이었다.
무지막지한 폐기 비용은 물론이고 심각한 자연파괴까지 유발한다. 이러한 핵폐기물 처리 비용까지 추가하면 수많은 발전 체계 중 제일 비싼 값을 자랑한다. 그런데도 현재 사람들의 의식 수준은 청정에너지였다.
-알겠습니다. 회장님이나 그룹이 결정 하면 기꺼이 따르겠으니, 무슨 지시든 내려주세요.
미하일은 그냥 자신이 아는 이름이 유재원에게서 나왔던 게 신기했던 모양이다. 어째서 핵물리학자를 스카우트하려는지, 이유에 관해선 물어보지도 않았다.
미하일 이바노프와의 통화를 시작으로 유재원의 러시아 인재 사냥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 넓은 러시아를 미하일 이바노프 혼자서 담당할 수 없었기에, 케빈 존슨이 추천하는 인사들 둘을 더 고용해서 스카우트 팀을 만들었다.
고용도 유재원이 약속한 것처럼 정식으로 이뤄졌다.
먼저 케빈 존슨이 러시아로 가서 이들의 이력서를 받고, 고용 계약서도 만들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다 함께 미국으로 와서 유재원과 함께 사진도 찍고 ID 그룹 투어도 돌았다. 숙소도 5성급 호텔의 좋은 방을 잡아 줬다.
미하일을 비롯한 세 명의 스카우터들은 감동했다. 러시아가 몰락하기 전엔 다들 목에 힘을 주던 사람이었지만, 사정이 나빠지고 나서는 삶의 수준이 무척이나 떨어진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ID 그룹이 제대로 대우를 해주니 충성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유재원은 이들이 열심히 활동해서 러시아의 인재들을 깡그리 긁어 오길 바랐다. ID 그룹에도 보탬이 되는 일일 뿐만이 아니라, 북한과 같은 불량 국가가 예측하지 못한 난동을 피우는 것도 예방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서 유재원도 주머니를 아낌없이 열었다.
월급도 두둑이 챙겨줬을 뿐만이 아니라, 스카우트 활동을 위해서 기본으로 갖춰야 할 장비도 장착시켜줬다.
아르마니 양복, 독일산 최고급 자동차, 좋은 시계, 품위 유지비 등등. 이들이 러시아에서 ID 그룹의 얼굴마담이 된다고 생각하고 지급했다. 물론 명의는 ID 그룹의 재산으로 잡아놓았다.
생각도 못했던 극진한 대접을 받은 스카우트 팀의 마음 속에 ID 그룹의 소속감이 한가득 담겼다. 이후 러시아로 돌아간 미하일의 스카우트팀은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했다.
얼어붙은 땅 러시아에 아메리칸 드림의 열풍이 서서히 불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완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