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172화 (172/1,007)

[172] 아메리칸 드림 =========================

#100-1

“알겠어요. 그러니까 제가 왜 ID 그룹을 상장하지 않고 있는지 알고 싶은 거죠?”

유재원의 물음에 루이스 프레스턴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여기에 덤으로 혹여 상장할 마음이 있다면 주관사로 JP모건을 강력히 어필하겠다는 의도도 있었다.

물론 셈이 밝은 유재원은 루이스 프레스턴의 의도는 훤히 꿰뚫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JP모건의 CEO가 실리콘밸리까지 날아올 이유는 없을 테니 말이다. 다만 유재원은 JP모건처럼 수천억 달러에 이르는 거대한 자본을 운용하는 투자 회사가 ID 그룹과 같은 신생 회사에 CEO까지 달라붙나 하는 의문까지 해소된 건 아니다.

ID 인베스트먼트가 석유 선물에서 얻은 수십억 달러의 투자금을 가지고 실리콘밸리에 투자하면서 엔젤로 불리고 있다지만, JP모건에 비교하면 하늘과 땅의 차이였다. JP모건의 현재 자산은 1천억 달러의 규모로 미국 전체에서 씨티은행과 뱅크오브아메리카, 체이스맨해튼에 이어 4위였다.

참고로 1위 씨티은행의 자산규모는 2천1백억 달러였고,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자산규모 차이는 1천1백억 달러이니 둘의 차이는 1천억 달러에 이른다. 그런데 체이스맨해튼과 JP모건의 차이는 겨우 50억 달러 정도의 차이밖에 없다.

압도적 1위를 두고 도토리 키재기를 하는 상황에서 JP모건과 체이스맨해튼은 몇 년 후 합병을 통해 단번에 큰 차이가 나지 않는 2위에 오르는 신수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습니다. 답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흠, 어렵지 않죠. 아주 간단한 문제거든요. 대신 제가 답을 말씀드리기 전에, 루이스 CEO께서 먼저 제 물음에 답을 주시면 더 쉽게 풀릴 거예요.”

유재원의 말에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는 루이스 프레스턴이다.

대답은 쉽게 하면서 본인의 질문에 답은 하지 않고, 빙빙 돌리는 느낌을 받았던 탓이다. 하지만 노회한 만큼 많은 경험이 있었기에, 그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여기까지 오셨다면 분명 ID 그룹이 상장했을 때의 주가 총액을 계산해 보셨겠죠? 얼마인가요?”

루이스 프레스턴은 유재원의 물음에 살짝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다. 그는 JP모건의 유능한 직원들을 통해 ID 그룹의 상장 실사를 꽤 정교하게 해보았다. 큰손들의 부탁도 있기도 했고, 루이스 본인 역시 궁금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루이스가 이 자리에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무척이나 긍정적인 숫자였다. 그렇지만 그걸 그대로 말해주기가 좀 그랬다.

듣기에 따라 단순한 숫자일 수도 있지만, 이는 JP모건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다양한 근거를 가진 예측을 통해 나온 정교한 숫자였기에, 제대로 된 브리핑을 통해 JP모건의 존재감을 드러내야 하고, 이를 통해 JP모건이 ID 그룹 상장 주관사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브리핑을 하기엔 무리였다.

유재원의 말을 들어보면 JP모건의 계산과 본인의 계산이 큰 차이가 날 거라는 걸 확신하고 있다는 투였기 때문이다. 루이스 본인이 알고 싶은 건 그 값의 차이였고, 어떻게 계산해야 그런 숫자가 나온 것인지였다.

비싼 돈 들여 전용기까지 타고 왔으니, 이대로 물러설 수도 없었다. 게다가 이번 ID 그룹의 건만이 아니더라도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IT 기업을 상대할 때 참고할 팁을 얻을 수 있으니 일단 대답을 해주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음, 일단 우리 JP모건이 시중의 그 어떤 투자사보다 ID 그룹에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는 걸 꼭 말씀드리지요.”

역시 결심은 했지만, 사설이 긴 루이스였다.

이걸 듣고 있던 유재원은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았다. 회사 일을 할 때도 이런저런 사설은 다 치우고 본론부터 들어가던 유재원이었으니, 너무도 불편했다. 호텔 카페의 푹신한 의자도 왠지 까끌까끌한 느낌이다.

그래서 얼마냐고요? 라는 물음이 막 나오려던 찰나.

“120억 달러. JP 모건을 통해 ID 그룹의 기업 공개를 추진하신다면 최소 120억 달러 이상을 보장해드리겠습니다.”

답이 나왔다.

역시나 짰다. 너무도 낮아서 코웃음이 나오려던 걸 억지로 참았다.

120억 달러?

이걸 누구 코에 붙인단 말인가. 심지어 ID 테크놀로지도 아니고 ID 그룹 전체에 대한 평가 금액이 120억 달러라는 것이다.

ID 인베스트먼트가 여기저기 투자를 많이 했다지만, 남아있는 현금도 상당했다. 게다가 투자한 목록을 보면 미래에 중요하게 사용될 것들이었다.

심지어 ID 인베스트먼트는 조만간 일본에도 진출할 것이고, 미국에서도 다양한 투자 활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실리콘밸리에 대한 투자뿐만이 아니라 게임과 영화, 음악 등등 엔터테인먼트 분야에도 과감한 투자를 할 거다.

당장 ID 인베스트먼트는 석유 선물에서 전무후무한 투자수익률을 찍었다. 이후 투자활동에서도 실패 없이 승승장구한다면 주가는 하늘을 뚫고 올라가기 마련이다. 지금이야 석유 선물투자 한 건뿐이니 평가절하될 수 있다. 그래도 이건 너무했다. 유재원의 이름값이 높고 한창 투자은행 열기가 높은 한국이라면 ID 인베스트먼트 혼자서 120억 달러를 찍을 거다.

“제 회사가 일단은 두 개잖아요. 인베스트먼트와 테크놀로지. 각각 얼마로 평가하신 거예요?

제대로 따지기 전에 각각의 주가총액부터 정확히 알자는 마음에 유재원이 질문을 추가로 던졌다.

“인베스트먼트 90억, 테크놀로지 30억입니다.”

“흐음!”

역시 생각대로다.

따로 나눠서 들으니 신사적인 루이스 프레스턴이 날강도처럼 보이는 착각이 일어난다. ID 테크놀로지가 겨우 30억 달러? 이 정도면 헐값 수준을 넘어 강탈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시 우리 ID 테크놀로지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인수했다는 소식은 못 들으셨나요? 12억5천만 달러를 주고 샀는데.”

“알고 있습니다.”

루이스 프레스턴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유재원의 말투가 공손하긴 해도 그 안에는 강력한 비꼼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맨해튼의 월스트리트는 미국의 정보부와 함께 세상의 모든 정보가 모이는 곳이었다.

주식이란 기본적으로 미래 가치에 투자하는 사업이다. 짧게는 3개월이고, 길다면 몇 년 후를 보기도 한다. 그렇기에 미국 정보부서들과 함께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집단이기도 했다.

어떤 경우에는 월스트리트에서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하는데, 뉴스는 한가로운 것들만 나오고 있다. 그러다가 몇십 분 후에 전쟁이 터졌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한다.

당연히 12억5천만 달러에 유재원이 마이크로소프트를 인수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였다. 유재원의 물음은 ID 테크놀로지의 주가총액 예상에서 이걸 고려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이다. 동시에 불과 1년 전 마이크로소프트의 주가총액은 60억 달러 후반대였으니, 그 자리를 계승한 ID 테크놀로지도 최소한 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뜻도 숨겨져 있었다.

루이스도 얼른 입을 열었다.

“ID 테크놀로지가 출시한 안드로이드 1.0이 전 세계적인 돌풍이 됐다는 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제품의 완성도도 좋고, 공격적인 마케팅 덕이기도 하죠. 문제는 가격입니다. 박리다매라지만, 이번에도 10달러러니. 적수도 없는데, 너무 공격적인 가격이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전성기와 비교해서 예상 수익률도 1/12로 떨어지는 것도 당연하지요.”

JP모건의 계산법은 직관적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마지막 작품인 도스 4.0의 정가를 120달러로 정했다. 물론 정가를 다 주고 사는 법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상당히 비싼 가격이었다. 반면 안드로이드 1.0은 개인은 무료, 기업과 관공서 등에는 10달러라는 가격을 고수했다.

단순 계산으로 매출액이 1/10로 떨어졌으니 그만큼 수익도 떨어졌고, 자동으로 주가총액도 푹 내려앉은 거라는 루이스 프레스턴의 설명이다.

“보수적인 계산으로는 6억 달러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컴퓨터 시장의 확대와 애드웨어라는 지속적인 수익이 창출되는 광고 시스템, 그리고 ID 오피스의 시장 지배적인 점유율을 통해서 30억 달러라는 숫자를 도출하게 된 겁니다.”

루이스는 그러면서 보수적인 투자은행이라면 120억도 어림없을 거라고 했다. 과감한 투자를 많이 했던 JP모건만이 보여줄 수 있다고 자신했다.

유재원에겐 턱도 없는 소리였다.

“제이 회장은 얼마를 생각하고 계신 겁니까?”

루이스 프레스턴의 질문에 유재원은 생각이 복잡해졌다.

유재원이 생각하는 숫자를 그대로 말했다간 나이 많은 루이스 프레스턴이 정신적인 충격을 받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유재원의 숫자는 숫자 ‘0’이 하나 더 붙어야 했다.

1,200억 달러.

현재 원화 환율이 700원대이니 이걸로 계산하자면 84조 원 정도이다.

현재 JP모건이 가진 자산보다 200억 달러는 더 많은 돈이었으니, 루이스 프레스턴은 절대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아니,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수준이 아니라 미쳤다고 여길 게 분명했다. 하지만 유재원은 1,200억 달러도 절대 과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단적으로 1990년대 말 미국의 IT 버블이 최절정기에 달했던 시절 마이크로소프트의 주가는 6천억 달러를 가뿐히 넘었었다.

이번에도 IT 버블은 찾아올 거다. 그때가 되면 ID 그룹의 위상이 마이크로소프트보다 덜하다고 할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마스터플랜은 착오 없이 착착 진행 중이었고, 이를 통해 ID 그룹의 존재감은 마이크로소프트 때보다 몇 배는 커질 것이다.

이런 알짜 주식을 120억에 팔라고?

단적으로 99년도에 ID 그룹 지분 10%를 내놓는다면 최소 6백억 달러지만, 지금은 겨우 12억 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마치 비트코인 1만 개로 피자 두 판을 사 먹은 사람이 땅을 치고 후회했던 것과 같은 돈 낭비일 거다. 심지어 인플레이션을 조금 고려한다더라도 그 차이는 줄어들지 않는다.

자본 조달에 주식시장이 좋다고는 하는데, 유재원에겐 너무도 큰 페널티였다.

사업을 하는 데 돈이 좀 궁하다고 한다면 차라리 시중 은행의 대출금리와 비슷한 이자를 주고 회사채를 발행하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다.

“음.”

유재원의 고심이 길어졌다.

이처럼 큰 차이가 나는 계산법을 루이스 프레스턴에게 그대로 말해준다는 건, 앞으로의 청사진을 알려준다는 것과 같았다.

문제는 루이스가 유재원의 청사진을 들어보고 깨닫는 게 있다면 이로 인해 큰 변수가 발생할 거라는 이야기다.

JP모건이 IT 투자를 확대하는 게 제일 큰 문제다. 만약 같은 기술이나 기업을 두고 JP모건과 유재원이 경쟁하게 된다면 큰일이다. 천하의 유재원이라도 JP모건의 무지막지한 자금동원력은 이길 수 없으니 말이다.

이해 못 하더라도, 그가 거느리고 있는 투자전문 집단을 운용하는 방식에 변화가 있을 수 있었다. 루이스 프레스턴이 본인 입으로 그러지 않았던가, 유재원은 분명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터이니 가서 물어보라고 했던 사람이 있다고.

그런 미지의 사람들이 무섭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천재들은 대비할 수 있지만, 숨겨진 이들은 그야말로 미지수 자체였다. 이들은 작은 각성이나 계기만 있으면 유재원이 상상했던 범위를 벗어나는 변수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말해주지 않으면 그만이다. 대신 지금보다 훨씬 귀찮아질 거다. 지금도 수많은 은행에서 투자를 받아가라는 연락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유재원의 ID 그룹이 잘 나가면 잘나갈수록 심해질 것이다.

‘얼마면 될까?’

유재원은 이들이 생각하는 최대의 한계선에 맞추면서도, 웬만한 놈들은 접근을 금지하는 가격을 헤아려 보기 시작했다. 일종의 접근금지 라인이다.

계산은 곧 끝났다.

“120억 달러면 될 거 같네요.”

순간 루이스 프레스턴의 얼굴에 강한 의문이 들었다. 120억? 그건 본인이 말한 숫자이지 않던가. 설마 늙은이를 놀리는 건 아닐 테고, 뒷말이 더 있을 것으로 예상한 루이스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끝까지 기다렸다.

“안드로이드 한정해서 120억이요.”

“헉!”

루이스 프레스턴의 반응도 즉각적이었다. 그나마 ‘논리적’이라는 단어가 나온 걸 보니 미친놈 취급은 안 받은 모양이다.

“120억이라니. 그것도 안드로이드 제품 하나로 한정해서 말이죠. 이 금액은 저희 논리로는 절대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설명을 부탁합니다.”

“길게는 못 해드려요.”

“괜찮습니다.”

어설픈 설명 때문에 루이스 프레스턴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유재원은 문제가 될 건 없다.

“저와 JP모건 사이에 가장 큰 차이점은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이해인 것 같아요.”

JP모건이 ID 테크놀로지만 30억으로 계산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안드로이드라는 운영체제를 파는 수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굴뚝 기업들처럼 제품을 팔고 나온 마진을 가지고 수익만 생각한다.

유재원은 다르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는 그냥 무료로 풀어도 상관없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 탑재된 애플리케이션과 라이브러리 그리고 애드웨어 시스템을 통해 막대한 수익이 나올 테니 말이다. 여기에 화룡점정이 인터넷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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