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 아메리칸 드림 =========================
#98-2
이제 ID 플래그쉽 센터로 바뀐 전 마이크로소프트의 지사와 ID 그룹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는 소매점을 통해 복사해주는 것이다. 12장이나 되는 분량 때문에 일반 컴퓨터로는 복사가 좀 오래 걸리니, 복사를 전문적으로 해주는 장비를 보급하는 중이다.
디스크의 자성 상태를 통으로 복사하는 장치를 개발해 이지스 쉴드를 깨버린 회사가 있는데, 여기에 디스켓 복사기를 수천 세트 주문했다. 여러 개의 디스켓을 동시에 복사할 수 있어서 기다리는 시간도 짧아질 뿐만이 아니라, 어둠의 루트에 이 장비가 팔려나가는 것도 막아서 이지스 쉴드의 생명력을 조금이라도 더 길게 잡아 놓을 수 있는 일거양득의 방식이었다.
넥스트컴을 통한 인터넷 배포도 있다. 속도가 느린 모뎀 사용자가 많은 미국이라서 다 받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제법 길 거다. 그래도 소매점이 가까이 있지 않은 사용자라면 선택해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돈을 주고 사는 방법도 만들었다.
무료라고 했으면서, 무슨 돈을 주고 사느냐 하겠지만, 기다리기 싫고 돈은 많은 사람을 위한 방법이다. 요금은 딱 디스켓값과 택배요금만 받는 거다.
넥스트컴이나 ID 테크놀로지, 플래그쉽 스토어에서 요금을 지급하면 며칠 내로 특급 우편을 통해 전달되는 체계다. 워낙 디스켓 장수가 너무 많아서 나온 고육지책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께는 안드로이드 1.0 초판 패키지 한 개씩 드리겠습니다. 순서를 지켜서 받아가시면 됩니다.”
우와아아!
환호성이 몇 배는 커졌다. 미리 공지하지 않았던 특전이었으니 기쁨은 배가 되었다. 이번 행사를 위해서 1만 장 가까운 패키지를 가져다 놓았으니 부족할 일은 없을 것이다.
“대신 입장할 때 나눠드린 사용자 등록 카드를 꼭 작성해서 제출해주셔야 합니다.”
온갖 방법으로 배포되는 안드로이드 1.0이다.
가짓수도 참 많지만, 공통으로 적용되는 사항이 있으니 사용자 등록 카드 작성이다. 운 좋게 패키지 판을 받아가는 사람, 온라인에서 내려받는 사람, 챙겨온 디스켓에 복사해서 가는 사람 모두 사용자 등록 카드를 작성해야 한다.
본인의 이름, 나이, 직업, 거주하는 도시, 사용 목적을 기재하는 카드를 작성하면, 이를 받은 직원은 ID 테크놀로지의 서버에 접속해 입력한다. 그러면 16자리의 안드로이드 1.0 등록번호가 나온다.
이러한 등록 카드 정책은 당연히 사용자 관리를 위해서다. 동시에 애드웨어 광고에도 활용될 예정이다. 지금은 사용자를 분류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광고를 띄우고 있지만, 이러한 데이터가 쌓이면 남성, 여성 구분해서 광고도 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세대별 직종별로 타겟화된 광고도 넣을 수 있다.
나중에 온라인시대가 된다면, 사용자의 현재 관심사를 알아보고 이에 맞춘 광고를 넣을 수도 있다.
모두에게 초판 패키지를 나눠 준다는 소리에 행사장의 관객은 큰 소리로 열광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
유재원도 관객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화답했다. 객석의 제일 앞줄에는 부모님과 임원들도 있었다. 자신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부모님께도 꾸뻑 인사를 올린 유재원은 무대 뒤로 퇴장했다.
“잘했나?”
안드로이드 1.0에 대한 후회는 없다. 대신 조금 전 마친 무대는 너무도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원래 유재원이 잡았던 프레젠테이션의 콘셉트는 스티브 잡스와 같은 간결함이었다. 그런데 진행을 하다 보니 영락없이 안드로이드 1.0의 온갖 기능을 다 보여주고 일일이 설명까지 하는 평범한 발표가 되고 말았다.
아무래도 본인이 직접 코드를 짜면서 만들었던 작품이다 보니 일일이 다 설명하고 싶은 욕구가 발동된 모양이다.
어쩔 수 없다. 본인이 스티브 잡스가 아닌데, 그와 같은 모습을 연출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행사장을 찾은 이들이 좋아하고 환호해주면 된 것 아니겠는가.
-안드로이드 1.0 출시!
-혁신이란 바로 이런 것! 안정성과 성능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매스컴의 반응도 빨랐다.
미국의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국은 물론 케이블 뉴스 채널에서도 ID 그룹의 안드로이드 1.0 발표를 비중 있게 다뤘다.
다중작업, 강력한 미디어 기능 지원, 인터넷과 네트워크 지원. 여기에 완벽한 3D라는 새로운 지평을 연 버추얼 복서라는 게임도 직접 소개했다. 일부 뉴스에서는 유재원이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에서 발표했던 모습까지 클립으로 따서 3, 4분 정도 방송을 할 정도였다.
이뿐만이 아니라 LA, 뉴욕, 런던과 파리 심지어 서울과 도쿄 등등. 전 세계에 8월 15일을 시작으로 오픈된 ID 플래그쉽 센터에 사람들이 몰려와 안드로이드 1.0 초판을 받아가는 모습도 실렸다.
무료로 집어갈 수 있는 풀 패키지의 수량은 전 세계 100만 장으로 한정되었다는 게 잘 알려져서 일부 국가에선 밤새 긴 줄을 섰던 모습까지 나왔다. 의외인 점은 도쿄에서도 줄을 서는 사람들이 나왔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IBM 호환 PC 대신 독자적인 시스템을 사용한다. 일명 PC-98 계열이라고 한다. IBM 호환 PC 사용자는 소수였는데, 안드로이드 1.0 패키지를 얻기 위해 줄을 설만큼 많은 사람이 모였다는 건 제법 큰 뉴스였다.
그만큼 개인용 컴퓨터 운영체제에 안드로이드 1.0이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났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재미있는 건 그렇게 보도가 나간 방송국의 경우 프로그램이 종료할 때마다 ID 그룹의 이미지 광고와 안드로이드 1.0 광고도 나왔다는 점이다. 세상에 공짜가 없듯, 우호적인 기사들도 막대한 광고비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안드로이드 1.0이 별 볼 일 없거나 오류가 잔뜩 있었으면 이런 식의 인위적인 보도는 시청자들의 반감을 샀을 것이다. 하지만 안드로이드는 제대로 된 운영체제였다. 반감은커녕 뉴스에 동의하는 이들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특히 강렬한 반응이 나오는 곳은 PC 통신과 인터넷이었다.
ID 그룹이 직접 운용하는 넥스트컴의 PC 통신 게시판은 안드로이드 1.0 이야기로 시끌벅적했다.
-안드로이드 1.0 무조건 추천!
-안정성이 차원이 다르다. 설치 후 지금까지 리부트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바이러스도 안 먹힌다.
커널 시스템이 유닉스 기반으로 바뀌었으니 도스 시스템을 공격하던 바이러스와 악성 코드도 작동할 수 없었다. 수많은 바이러스는 안드로이드 1.0에선 실행조차 되지 못했다. 동시에 바이러스를 잡는 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 역시 작동하지 않으면서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나마 프리뷰 버전을 받은 업체의 경우 안드로이드 1.0 전용 백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막 출시된 안드로이드 1.0의 취약점을 찾기는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는 것과 같다.
유재원이 취약점과 버그를 찾는 데 회사 내 두 팀을 경쟁시킨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전 마이크로소프트의 개발인력으로 구성된 레드먼드팀은 본인들의 저력을 보여주겠다며 열심히 공격했고, 골리앗 마이크로소프트를 잡아냈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있는 실리콘밸리 팀은 최선을 다해 막아냈다.
이 과정에서 중대한 버그도 발견되었고, 치명적인 취약점도 찾아낼 수 있었다. 해결책을 만들 땐 두 팀이 협력하도록 했고, 그래도 답이 나오지 않으면 유재원이 해결했다.
오타부터 버그까지 그렇게 잡아낸 항목이 수백 건이 넘었다. 포상금으로 지출된 금액만 100만 달러가 넘었으니, 얼마나 치열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완벽해진 안드로이드 1.0의 약점을 찾아내는 건 당분간은 불가능할 거라고 자신한다.
다음날.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는 여전히 ID 그룹이 주인공이었다. 어제는 안드로이드 1.0의 발표였다면, 16일 오늘은 ID 오피스 2.0을 발표하는 행사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컨벤션 센터 안팎으로 걸려 있던 안드로이드 로봇 배너는 모두 회수되었고, 지금은 ID 오피스 2.0의 상징으로 정한 직소 퍼즐이 걸렸다.
ID 오피스 1.0을 출시할 땐 블록 장난감이었는데, 디자인 전문은 아니었던 유재원의 손으로 그려진 것이라 퀄리티가 그다지 좋진 않았다. 이번엔 회사의 로고나 상표 등을 전문으로 디자인하는 미국 최고의 회사인 L&M에 의뢰를 줘서 제대로 만들었다.
ID 오피스에 들어가는 4개의 프로그램을 4조각짜리 직소 퍼즐로 형상화했다.
퍼즐 조각 안에 들어가 있는 디자인은 워드나 스프레드시트, 프레젠테이션, 데이터베이스라는 응용 프로그램의 속성을 간단한 그림으로 잘 나타냈다.
풀 패키지는 퍼즐이 다 맞춰진 상태의 그림이 들어가게 되고, 개별 패키지 판의 경우엔 해당 프로그램에 맞춰진 직소 퍼즐 하나만 패키지에 들어가는 형태다.
이번에도 유재원이 나섰다.
하지만 어제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하는 건 아니다.
총감독을 맡았던 유재원은 ID 오피스 2.0 전체에 관해 5분 정도만 짧게 설명하고, 자세한 이야기는 오피스의 개별 프로그램별로 해당 프로그램을 책임진 팀장들이 나와서 설명을 하기로 했다.
IDW의 발표자는 로데오 팀의 리더인 이찬수의 몫이었고, 스프레드시트나 데이터베이스, 프레젠테이션의 경우 해당 프로그램의 팀장들이 하게 될 거다.
덕분에 이찬수는 어제부터 덜덜 떨었다. 오죽하면 유재원 보고 다른 사람으로 바꿔 줄 수 없겠느냐고 물어봤을 정도다. 이 상태가 심해지면 완전 공황에 빠질 것처럼 심각했다.
그나마 당일이 되니 무슨 자가조치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제보다 괜찮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아마도 어제 안드로이드 1.0을 발표할 때 본인보다 훨씬 어린 유재원이 원고도 없이 날아다닌 모습을 보고 큰 자극을 받았던 모양이다.
물론 확신은 못 한다. 어쩌면 영어 실력이 조금 부족한 이찬수를 위해 통역 아르바이트를 붙여 준 여대생을 보고 반해서 억지로 자세를 잡은 것인지도 모른다. 정 안되면 유재원이 바통을 넘겨받을 생각으로 무대 뒤편에서 발표를 지켜보기로 하고, 행사를 진행했다.
다행히도 유재원이 급하게 올라가야 할 불상사는 없었다.
이찬수도 대중 앞에 설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사람들 앞에 서서 발표도 많이 해보았고, 사회에 나와서는 아래아 한글을 팔기 위해서 PR도 많이 해봤던 경험이 있었다.
이번처럼 1천 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건 처음이지만, 시간이 좀 지나니 목소리도 또렷해졌고, 힘도 실렸다. 다른 스프레드시트 등을 맡은 다른 팀장들의 발표 역시 큰 문제 없었다.
-ID 오피스 2.0 혁신을 이어가다.
-2.0으로 넘어가야 할 10가지 이유!
매스컴에서도 안드로이드 1.0에 이어 오피스 이야기도 잔뜩 실어 주었다. 광고의 힘이기도 했지만, ID 오피스 2.0 역시나 기본기는 물론 새롭게 추가된 기능들이 사용자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발표회가 끝나자마자 시장에서도 즉각적인 반응이 왔다.
100만 장을 준비했던 초판 패키지는 진작 매진되었고, 전 세계 플래그쉽 스토어마다 안드로이드 1.0을 받아가기 위한 긴 줄이 늘어섰다.
미국의 주식 시장에서 이번 행사와 관련이 있는 기업의 주가가 출렁거렸다. IBM이나 로터스, 코렐 등등 오피스 프로그램을 만들던 회사들의 주가가 큰 폭의 하락을 기록했다. 반면 게임 관련된 회사들의 주가는 크게 상승했다. 아마도 풀 3D 게임이라는 잠재력을 투자자들이 확인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었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ID 그룹도 상장된 상태라면 어마어마한 상승을 찍었을 텐데, 비상장 회사인 탓에 주가의 앞자리 숫자, 혹은 자릿수가 바뀌는 극적인 변화는 없었다.
대신 실리콘밸리 사무실로 돌아온 유재원을 찾아오는 손님들의 면면이 확 달라졌다.
전에는 실무진 정도였다면, 이제는 고위 경영진이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후엔 어마어마한 거물이 유재원을 찾아왔다. 특수한 경력 덕에 단단한 부동심을 갖추고 있던 레밍턴 사장도 깜짝 놀랄 인물이었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완전 감사합니다~!!!
오늘 매니지먼트사로부터 좋은 소식이 왔습니다.
드디어 원스토어라는 곳에도 연재가 시작했다고 합니다. 다른 곳도 시작되면 알려드리도록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