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166화 (166/1,007)
  • [166] 아메리칸 드림 =========================

    #97-1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사우스 라스베이거스 대로를 달리는 자동차 무리가 있다.

    화려한 도시의 경관만큼이나, 달리는 자동차들도 다른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외제 자동차들이 많았다. 부자들의 휴양지답게 외제차가 너무 많으니 웬만해선 특별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유난히 눈에 띄는 차량이 있으니 롤스로이스 사의 고급 자동차들의 행진이었다.

    코니쉬라는 영국 여왕의 의전 차량으로 만들었다가 70년도부터 일반 판매를 시작한 대형 쿠페 뒤를 롤스로이스 최고급 세단인 팬텀 VI 2대가 따르고 있고, 지프 랭글러가 앞뒤로 호위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들 자동차가 바로 오늘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장 큰 행사를 준비한 ID 그룹 유재원의 일행이었다. 코니쉬 쿠페에는 유재원이 탔고, 팬텀에는 부모님과 그룹 임원들이 탄 상태다.

    오늘 출현한 자동차들은 마이크로소프트를 인수 후, 실사 중에 발견한 것들로 게이츠 회장이 법인 명의로 구매한 지 불과 2년도 되지 않는 신차였다. 평소엔 그다지 쓸 일이 없었는데, 오늘과 같은 행사에 요긴하게 사용하게 되었다.

    목적지는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였다

    “라스베이거스가 ID 그룹의 가족 도시 같습니다.”

    코니쉬 쿠페를 몰고 있던 김대석의 말이었다.

    “김 비서의 눈에도 그래 보인다니 다행이네요.”

    김대석의 옆자리에는 당연히 유재원이 자리하고 있다.

    유재원의 서열을 따졌을 때, 차량 행렬을 보면 가운데 있는 팬텀에 앉아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의전의 형식이나 서열을 따지는 건 유재원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딱딱한 느낌의 팬텀보다는 2인승 코니쉬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경호 때문에 자동차 지붕을 개방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달리는 맛은 훨씬 좋았다.

    특히 마음에 드는 건 거리에 걸린 ID 그룹과 안드로이드 배너였다. 가로등마다 촘촘히 걸려 있어서 김대석의 말대로 라스베이거스가 ID 그룹이 만든 도시처럼 보였다.

    저게 다 돈이었다.

    이번 행사를 위해서 라스베이거스 시 당국과 협상으로 값을 최대한 낮췄지만, 그래도 상당한 돈이 들어갔다. 커다란 배너 수천 장을 뽑아 사람 손으로 작업해야 하는데, 이게 다 돈이 드는 일이었다.

    대신 효과는 확실했다.

    라스베이거스를 찾는 이들은 오늘 ID 그룹에서 뭔가 커다란 행사를 한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배너는 라스베이거스뿐만이 아니다. ID 플래그쉽 스토어가 있는 지역은 이외 비슷한 규모로 배너를 걸어서 커다란 행사가 있다는 것을 알렸다.

    심지어 사우스 라스베이거스 대로 양쪽에 늘어선 거대한 광고판이나 일부 호텔에는 10m에 달하는 배너가 걸렸다. 거대한 광고판은 보통은 칸칸이 나눠서 여러 회사의 광고가 들어가는데, 이번엔 통째로 ID 그룹이 사버린 것이다.

    글로벌 마케팅 비용으로만 수천만 달러 이상을 책정했으니, 이 정도의 물량 공세가 나올 수 있다. 컴퓨터를 잘 모르는 일반인이라도 ID라는 로고가 뇌리에 박힐 정도였다.

    ‘가족 도시라.’

    유재원은 김대석의 말에서 가족 도시라는 단어가 참 마음에 들었다.

    ID 그룹이 지금보다 훨씬 거대해진다면, 본사에서 근무할 사람들만 해도 만 단위는 쉽게 넘어갈 것이다. 여기에 앞으로 만들 연구소들도 한데 모은다면 마을 정도가 아니라 도시 사이즈는 나올 거다.

    언젠간 ID 그룹 도시를 세우는 날도 올 거다. 그렇지만 그 날을 빨리 앞당기기 위해선 오늘 행사가 참으로 중요하다.

    안드로이드 1.0.

    한창 성장 중인 ID 그룹에 가속도를 붙이느냐, 아니면 진창에 빠질지 갈리는 중대한 이벤트였다.

    ‘성공해야지.’

    철저히 준비했지만, 시장에서의 성공과 실패는 장담할 수 없었다. 상상할 수 없었던 요인으로 뜨기도 하고, 추락하기도 하는 게 사회였으니 말이다. 다만 유재원과 ID 그룹은 발휘할 수 있는 최대의 역량으로 안드로이드 1.0을 준비했다.

    뭐 하나 빠뜨리기라도 했다면, 실패 후에 자책이나 후회를 할 수 있을 테지만 모자란 것이 없었으니 후회도 없을 것이다.

    모든 건 하늘에 맡기는 거다.

    “도착했습니다.”

    팬텀에서 내린 부모님에게서 오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거대한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전체를 ID 그룹의 홍보관으로 꾸몄다. 입구부터 거대한 ID 로고가 떡하니 박혀 있었고,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마스코트인 로봇이 십 미터가 넘는 초대형 배너로 출력되어 걸려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면 수백 대의 컴퓨터들이 세팅되어 있었고, 이를 통해 ID 테크놀로지가 발매했던 소프트웨어를 만져 볼 수 있었다.

    컴퓨터들은 당연히 이제 막 상자에서 꺼낸 신상이다. 당연히 에그 PC였다. 최고 사양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반 PC보다는 비싼 가격을 자랑한다. 삼보에서 반을 지원해줬고, ID 그룹이 반만 내는 식으로 세팅했다.

    이번 행사가 끝나면 네바다 지역의 학교들에 기부하기로 해서 매우 좋은 반응을 받는 중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ID 그룹과 긴밀하게 협력하는 하드웨어 제조사들도 일정 공간을 차지한 후에 자기들의 제품을 선전 중이었다.

    컨벤션센터 전체를 ID 그룹이 빌린 덕에, 협력사들은 따로 대관비를 낼 필요 없이 자신들의 제품을 전시할 수 있었다. 덕분에 예정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참여했다. 워낙 숫자가 많아서 전체적으로 보면 컴덱스가 예정보다 일찍 열린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그럼, 둘러보고 오세요.”

    발표회가 시작할 때까지 2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그때까지 부모님이 따로 할 일은 없었기에 구경을 하기로 했다.

    유재원은 최종 점검을 위해서 메인스테이지로 이동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회장님 차례입니다.”

    “벌써요?”

    직접 시범을 보여줄 컴퓨터도 점검하고, 프레젠테이션 문구도 다시 한 번 가다듬고, 동선도 좀 확인하니 시간이 되었다.

    “갑시다.”

    유재원은 김대석의 뒤를 따랐다.

    메인스테이지에 가까워질수록 점검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두근거림이 커졌다. 조금 전엔 느껴지지 않았던 행사장에 참석한 수천 명의 사람이 내는 웅성거림도 확실히 크게 들어왔다.

    -ID 그룹 회장이자 안드로이드의 개발자인 유재원 님을 무대로 모시겠습니다.

    매끄러운 목소리의 장내 아나운서 목소리가 무대 뒤로 들렸다. 곧이어 무대 감독이 손가락 신호로 3초를 세더니, 장막을 활짝 열어줬다.

    아나운서의 섭외나 무대 장치, 조명 컨트롤, 카메라 조작이나 메인 스크린 실시간 편집 등등. 오늘 거대한 행사는 ID 그룹의 역량과는 거리가 한참 떨어진 것이었다. 그렇기에 라스베이거스에서 커다란 이벤트를 진행했던 거대 기획사에 행사를 의뢰했다.

    덕분에 행사는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기획사에서 나온 유능한 이들이 먼저 무대 위로 올라가 행사장의 분위기를 이끌었고, 최고조로 이르렀을 때, 유재원이 단독으로 메인스테이지에 올랐다.

    유재원의 차림은 캐주얼 그 자체였다.

    청바지, 체크 무늬 셔츠를 입고 하늘색 니트를 겹쳐 입은 상태였기에, 딱딱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속성을 옷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에서는 일상복인지라, 대다수는 특별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대신 같은 부류라는 동질감을 느낀 사람들은 열성적인 박수로 유재원을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오른 유재원은 첫 인사말을 모국어인 한국어로 말했다. 그렇다고 프레젠테이션을 한국어로 진행하는 건 아니었다. 청중 대다수는 미국인이었으니 바로 영어로 바꾼 유재원은 능숙한 말솜씨로 기념비적인 첫 번째 안드로이드의 발표를 시작했다.

    “오늘은 제가 2년 동안 손꼽아서 기다려왔던 그 날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기대하는 그걸 발표하는 날이니까요.”

    유재원의 멘트가 시작되자마자 무대 뒤에 걸린 거대한 프로젝터 스크린의 화면이 바뀌었다. 검은 화면이었던 스크린에 ID라는 로고가 큼지막하게 떠올랐다. 단순한 스틸 사진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

    강렬한 빛을 받아서 반짝이는 ID 로고는 간단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살다 보면,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제품이 나와서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습니다. 누구든 이런 혁신적인 제품을 하나라도 만들어낸다면 정말 운이 좋은 거죠. 다행히 제가 운이 좋았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화면이 바뀌면서 안드로이드 알파의 모습이 나타났다. 곧이어 ID 오피스와 키보드 워리어도 튀어나왔고, 울펜슈타인, 둠도 빠지지 않았다. 에그 PC도 꼽사리를 꼈다.

    “ID 그룹은 이런 혁신적인 제품을 하나도 아닌 몇 개씩이나 세상에 내놓았지요. 모두 최선을 다해 만들었던 작품이었습니다.”

    회귀 후 처음 베이식 언어를 이용해 키보드 워리어를 만들었고, 곧바로 C 언어를 통해 그래픽을 보강한 키보드 워리어를 냈다.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상상 이상의 반응이 몰려왔고, 이러한 탄력을 고스란히 받아서 지금의 ID 그룹을 일굴 수 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조금 더 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합니다.”

    개발자들이 들으면 뒷목을 잡을 소리도 서슴없이 하는 유재원이다.

    C 언어로 만들어진 키보드 워리어에서 처음 선보인 하드웨어 스크롤이라는 기법은 지금도 개발자들 사이에서 회자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제껏 나온 게임들은 뭔가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였다면, 키보드 워리어는 비디오 게임처럼 부드러운 화면을 보여주었다.

    하드웨어 스크롤 기법은 이제 대중화된 기술이었고, 게임을 만들고 싶은 개발자라면 필수적으로 익히는 기본기가 되었다.

    그렇지만 유재원의 마음은 분명 사실이었다.

    키보드 워리어의 후속작은 나중에 기술이 더욱 발전되면 꼭 낼 작정이다.

    “특히 아쉬움을 많이 느낀 건 안드로이드 알파였습니다.”

    유재원의 이야기는 곧바로 안드로이드 알파로 이어졌다.

    스크린에 뜬 화면도 바뀌어서 그 유명한 바탕화면이 나타났다. 덕진리 내오마을 뒷산을 찍은 배경화면과 작업표시줄과 시작 버튼과 같은 리본 인터페이스. 바탕화면에 만들어진 여러 프로그램의 단축 아이콘 등등.

    “인터페이스는 획기적이었지만, 그 바탕은 도스를 기반으로 했으니 안정성은 무척이나 떨어졌지요.”

    스크린에는 게임을 하다가 프리징이 걸리고, 이상한 알 수 없는 에러가 나고, 컴퓨터가 느려져서 재부팅을 해야 하는 모습들이 안드로이드 마스코트 로봇을 통해 재미있게 표현되었다.

    “PC 사용자 여러분, 치명적 오류로 인해 재부팅을 할 때마다! 갑작스러운 프리징으로 기껏 작성한 리포트나 보고서가 날아갈 때마다, 이런 의문이 들지 않던가요? 어째서 PC는 워크스테이션이나 메인 프레임과 같은 안정성을 받지 못하고 있나?”

    유재원의 물음에 행사장을 찾은 이들이 뜨거운 반응을 토해냈다.

    그도 그럴 것이 PC로 게임이나 작업을 하다가 결과물이 날아간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 작품 후기 ==========

    다음 편으로 가기 전에 추천 한 방 부탁드립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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