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아메리칸 드림 =========================
#96-1
-여야, 수도권에 당력 집중
-여당, 지역일꾼 부각, 공천탈락자 무마 고심!
-야당, 거점지역 표 다지며 옥외 바람몰이.
또다시 선거철이 도래했다.
3월에 치른 선거가 지방의회의 기초의원 선출을 위해서였다면, 이번엔 광역의원과 시도지사를 뽑는 것이다. 3월에 지방선거를 할 때 같이하면 될 것을 나눠서 하는 게 특이했다. 아마도 선거 경험이 많이 부족한 국민이 투표용지가 많아지면 부담스러울까 봐 나눈 것일 수도 있다. 좀 더 명확히 따지자면 선거에 출마할 후보를 고르는 게 만만찮은 일이라서 부득불 나눈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3월에는 당선자만 거의 4천 명이 넘는 규모였고, 이번엔 866명을 뽑는 선거였다.
당마다 전국에 후보를 내든, 아니면 일부 지역에만 내든 엄청난 지원자들을 추려서 후보로 뽑는데, 전산화도 별로 안 된 상태였으니 그 일이 만만찮았을 거다.
“체, 행사에는 그렇게 불러 대면서 IT 정책에 관해 물어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네.”
유재원은 돌아온 선거철에 투덜거렸다.
덕진리는 물론이고, 여주까지 시끄러워졌다. 한국의 선거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게 확성기였으니, 여기저기 난립한 후보들이 볼륨 경쟁이라도 하는 듯 소리를 키웠다. 창문을 꽉 닫아 놓아도 다 뚫고 들어올 정도였다.
아버지와 큰아버지, 심지어 유재원을 찾아와 잘 부탁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뭐, 표 좀 달라고 악수를 청할 수는 있을 것인데, 집까지 찾아오는 건 상식의 범위를 벗어난 행동이었다. 게다가 당선되면 사례를 톡톡히 할 테니 잘 부탁한다고 하는 건 분명 불법이었다.
의미 있는 첫 번째 지방선거라고 처음엔 관심을 가졌던 유재원이었다.
특히 여당이 어마어마한 지지를 받는 상태라서 재미있는 상황이 많이 나왔다.
여당 깃발로 나오기만 하면 무조건 당선이라는 생각에, 공천을 받겠다고 민자당은 난리가 났다. 당내에서 뭉칫돈이 오고 간다는 기사가 연일 끊이지 않았고, 음해나 폭력이 동원되기도 했다.
잘 나갈 때 조심해야 한다는 걸 모르는 양반들이다. 이러다 역풍이 심하게 불 텐데, 괜찮으려나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텔레비전 속에서만 그치지 않고, 유재원에게 직접 이어지니 관심이 뚝 끊어졌다.
아니, 도대체 공천권 같은 거 하나도 없는 유재원의 집이나 큰집을 뭐하러 찾아온단 말인가. 게다가 그냥 인사차 들렸으면 모르겠는데, 보따리를 들고 찾아오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아마도 유재원이 대통령과 독대를 할 만큼 가까우니, 지지를 좀 받아보겠다고 그런 것 같은데 유재원의 성격을 몰라서 그랬다. 선거관리위원회 신고를 해버리니 화들짝 놀란 이들이 부리나케 도망쳤다.
다행히 그 사건 이후로 후보들 사이에 소문이 돌았는지, 유재원을 찾는 이들은 없었다. 그렇지만 유재원의 선거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고 말았다. 아직 선거권도 없는 나이였고, 혼탁한 선거판을 들여다보고 있어 봤자 본인의 속만 탈 것 같으니 그만두었다.
대신 미국으로의 출국 일정은 예정보다 빨리 잡았다.
선거철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지만, 드디어 마이크로소프트의 자산 실사를 모두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덩치가 크니 거의 3달이나 걸린 작업이었다.
그동안 궁금한 게 많았어도 일이 많아서 대충 보고서만 보고 말았다.
다행히 많은 개발 업무가 순조롭게 마무리되었고, 이젠 필드 테스트만 남겨놓은 상태였다. 게다가 유재원이 갑자기 벌인 유경 식품 전산화 컨설팅도 데이터베이스 세팅이 끝났고, 시험 가동에 들어간 상태였다.
이찬수 팀장도 유경 식품 본사에 상주하면서 버그를 비롯한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는 중이었고, 가맹점 측 시스템을 점검하는 사람으로는 이번에 새로 들어온 김택준이 선정되었다.
컨설팅 비즈니스를 위한 팀을 만들어 보라고 했더니, 대박 인재를 물고 온 이찬수였다.
예전에 장충체육관에서 만나서 명함을 주기도 했던 그 사람인데 이후 연락은 없어서 역시 독자적인 길을 가는가 싶었다. 김택준은 원래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을 만큼 거대한 온라인 게임 회사를 만들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이러다가 한국의 IT분야 유명인을 싹쓸이하는 거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고 하면 미련 없이 놔줄 생각이었기에, 크게 마음에 두진 않았다.
이번에 미국에 가면 SAT를 보는 건 물론이고, 대학교 입학까지 다 마무리하고 돌아올 작정이니 체류 기간이 길었다.
그러니 부모님도 함께 가고자 했다. 부모님도 흔쾌히 그러자고 했는데, 아버지는 비행기에 오르진 못했다. 아버지는 ID 파운데이션과 여주 중학교 업무 때문에 나중에 출발하기로 했다.
6월 14일.
유재원과 어머니, 그리고 수행원들은 태평양을 건너는 중이었다.
비행기 좌석은 수행원들은 비즈니스석을, 유재원과 어머니는 일등석에 배정했다. 수행원이라고 해봐야 김대석과 경호원들 몇이라서 다 일등석을 주고 싶었는데, 예약할 때 자리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라서 그러진 못했다.
‘소련 붕괴가 언제였지?’
기내에서 제공된 신문에 러시아공화국 대통령 1차 선거 옐친 당선이라는 헤드라인이 크게 걸려 있었던 탓이다.
1차 선거?
기사를 자세히 보니 러시아의 대통령 선거는 2번에 걸쳐 이뤄지는 모양이다. 그래서 현재 러시아와 소련의 대통령은 고르바초프였다.
참고로 소련이라는 나라는 러시아를 포함한 소비에트 연방에 가입한 여러 나라를 다 포함해서 일컫는 말이었다. 러시아 대통령이 소련의 대통령이 되는 건 당연했지만, 형식적으로라도 소비에트 연방에 가입한 나라들의 추대를 받아야 했다.
이러한 이유로 옐친이 1차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 승리했지만, 권력은 여전히 고르바초프에게 있는 것이다.
하여튼, 소련의 붕괴는 올해 겨울인 것 같긴 한데, 정확한 날짜는 가물가물했다. 이럴 땐 애써 기억을 끌어올릴 필요 없이, 기억의 궁전에 가서 보는 게 확실하다.
기본으로 제공된 안대를 착용한 유재원은 자는 척 눈을 감았다. 그리곤 기억의 궁전으로 들어가기 위해 마음을 집중했다.
그렇게 몇 분 집중했을까.
화려하고 거대한 궁전이 뇌리에 떠올랐다. 기억의 궁전은 전생에서 완성했던 모습 그대로 자리하고 있었다.
유재원이 만든 기억의 궁전 특징이란 수많은 입구였다. 유재원은 그중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1991년도라는 명패가 달리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안에 들어서자 1991년의 수많은 기록이 유재원을 반겼다. 그중에서 소련의 붕괴는 1991년 12월 26일이라는 걸 찾을 수 있었다.
독일의 통일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벤트는 아니었다. 1991년에 들어서 소련의 해체는 현재 진행형이었다.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는 독립을 확정 지었고,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수순을 밟고 있었다.
이에 소련 공산당 보수파들은 고르바초프가 독립 세력에게 무르게 대응한다면서 격렬하게 반발했다. 결국, 8월에 쿠데타를 일으키는데, 국내외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민중들의 저지로 실패했다.
그렇다고 고르바초프의 권력이 회복된 건 아니었다. 쿠데타 저지에 앞장섰던 옐친에게 급격히 권력이 집중되었다.
결국, 옐친이 주도한 벨라베자조약을 통해 쐐기를 박았다. 이에 따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12월 25일 대통령직에서 사임했고, 이튿날 옐친이 러시아 대통령에 오르며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해체를 선언했다.
미국과 냉전을 치를 만큼 거대한 나라의 해체였으니 그 여파는 엄청났다.
“꼭 개입해야 할 일이지.”
후폭풍이 상당히 큰 만큼, 유재원이 개입할 영역도 크고 넓었다. 물론 당장 할 일은 아니다. 아마도 본격적인 개입은 내년에나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사업에 집중해서, 총알을 잔뜩 모으는 게 중요했다. 소련의 인재와 기술을 가지고 오는 데 있어 달러보다 확실한 방법은 없으니 말이다.
유재원은 마스터 플랜을 펼쳤다.
거기엔 소련의 붕괴에 맞춰 어떻게 개입을 해야 할지 구체적인 사항들이 잔뜩 담겨 있었다. 한국의 경우 상당한 변화가 생겨나서 수정해야 할 것들이 좀 많이 있었지만, 국제 사회의 흐름은 별다른 이변은 없었다.
크게 손을 봐야 할 것은 없어서 다행이다.
대신 안드레 사하로프, 블라디미르 벡셀레드, 유진 카스퍼스키 등등 길고 복잡한 소련 사람 이름을 외워야 하는 게 조금 힘들었다. 게다가 외워야 할 이름도 상당히 많았다. 일단 유재원은 붉은색으로 기록된 이름부터 뇌리에 담았다.
유재원이 기억의 궁전에서 소련 사람들의 이름을 되새기는 동안, 비행기는 순조롭게 비행했다.
예정된 시간에 정확하게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다음날.
유재원은 김대석과 함께 실리콘밸리로 출근했다.
회사에서 자동차와 기사를 보내준 덕에 호텔에서 사무실까지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이렇게 다 모이니 보기 좋네요.”
“예! 저도 보스 얼굴을 보니 반갑습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많이 달라지셔서 못 알아볼 뻔했습니다.”
“그래요? 마지막에 봤을 때가 저번 겨울이잖아요. 겨우 몇 개월 전인데요?”
“키도 5, 6cm는 커져서 이제 174cm는 되어 보이는군요. 게다가 어깨도 좀 더 벌어졌고, 몸에 탄력도 넘치시는군요. 피트니스를 열심히 하신 모양입니다. 아, 얼굴에 여드름도 몇 개 피어나셨습니다. 작년 사진과 비교해보면 확 달라진 게 보일 겁니다.”
전직 탐정답게 레밍턴은 유재원의 달라진 점을 정확히 잡아냈다.
팩트만 이야기하는 건지, 칭찬하는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이 자리에 함께한 다른 사람들도 레밍턴의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뭐, 전보다 달라졌다면 달라진 것이겠지.
참고로 이번 미팅에는 ID 테크놀로지의 임직원은 물론, ID 인베스트먼트의 빈센트 그린힐과 투자 회사의 정식 출범과 함께 구성된 정예 분석팀도 자리했다.
ID 인베스트먼트 인사들은 유재원에게 미국 사업장의 경영현황보고를 하기 위해서, 맨해튼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날아왔다.
“그럼, 시작하죠. 누가 먼저 하실래요?”
유재원의 물음에 가장 먼저 반응한 이는 빈센트 그린힐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자산 실사가 예정 시일보다 오래 걸린 것에 대해 사과드리겠습니다.”
앞에 나선 빈센트 그린힐은 사과부터 했다.
일을 막 시작할 때 두 달 달이면 끝낼 수 있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거의 3달 가까이 걸렸으니 엄청나게 길어진 것이다.
“괜찮습니다. 대충 인수했다가 숨겨진 부실이라도 나오면 그게 더 큰 일이죠. 하여튼, 실사 결과는 어때요?”
유재원이 가장 궁금 한 건 12억5천만 달러에 인수한 마이크로소프트를 제값을 주고 샀는지, 아니면 비싸게 주고 샀는지였다.
물론 미래의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룩한 성과를 보면 엄청난 헐값이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 가치로 따졌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명맥은 끊어졌고, 남은 건 유산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바가지를 쓰진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살짝 비싸게 샀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건 빈센트 그린힐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자산을 너무도 보수적으로 계산한 결과였다. 전 세계에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의 가치도 실제 거래가격 대신 공시지가로 평가했고,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진 특허와 기술의 가치도 혹평했다.
가장 큰 감점은 마이크로소프트 하드웨어 사업부였다.
대중에겐 소프트웨어 회사로만 알려진 마이크로소프트였지만 키보드와 마우스, 조이스틱 등을 설계하고 판매까지 했다. 다행히 공장까지 만든 건 아니었고 OEM으로 생산 중인데, 그 품질은 알아줄 정도였다.
상당히 좋은 품질이라서 회사 이름을 마이크로하드웨어로 바꿔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빈센트 그린힐이 보기에 ID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분야라고 생각했던 모양인지 하드웨어 관련 특허나, 인력은 최하점을 주었다.
이렇게 실사를 하다가 조금은 민감한 문제도 발견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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