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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154화 (154/1,007)

[154] 룰 브레이커 =========================

#91-1

3월 25일.

평소처럼 새벽에 일어난 유재원은 세면실에 들어서다 멈칫했다. 기분 좋은 졸림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그렇다고 갑지기 나타난 바퀴벌레나 쥐 때문은 아니었다.

본가는 리모델링 수준을 넘어서 리빌딩을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시멘트로 네모난 칸을 만들어두고 세숫대야만 덩그러니 있어서 물을 길어 와야 했던 예전의 세면실이 아니다.

차가운 물은 물론 뜨거운 물이 언제든 콸콸 나오고, 이탈리아에서 공수한 타일과 세면 기기로 크게 만들어진 세면실에는 월풀 욕조까지 있다.

부모님, 정확히는 어머니인 김말숙 여사가 작년부터 시작한 시골집 리빌딩 덕에 깔끔해졌다. 김말숙이 리빌딩에 참고했던 건 미국 여행에서 묵었던 호텔이었다. 밖에서 보면 붉은 벽돌집인데 들어와서 보면 호텔이 생각날 정도다. 덕분에 옛날처럼 하수구에서 바퀴벌레가 올라오는 일도 사라졌다.

“아니! 이게 뭐야!?”

유재원이 보고 놀란 건 전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 때문이었다.

“여드름이잖아.”

정확히는 이마의 중심부, 사람을 보자마자 제일 먼저 시선이 딱 꽂히는 자리에 붉은색 여드름이 툭 튀어나와 있었다.

살짝 만져보니 따끔한 느낌이다.

어른들과 만나고, 어른처럼 말하고 다닌 터라, 나이를 잊고 있었는데 이제 2차 성징을 시작할 때가 된 모양이다.

중학생 나이가 되고 나서 기름기 있는 음식은 삼갔던 유재원이다.

그렇게나 좋아하는 치킨도 한 달에 한 번만 먹었고, 라면이나 초콜릿은 아예 입에도 대지 않았다. 세안도 꼬박꼬박 했다.

잘 씻고 먹는 것 관리 잘하면 큰 트러블 없이 넘길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방과 후 컴퓨터 과외를 위해 사무실로 찾아오는 친구들을 보면 작년부터 여드름이 난 녀석도 있었고, 이제는 대부분 여드름을 달고 있었다. 하지만 유재원 본인은 깨끗했다.

역시나 열심히 관리하면 여드름도 컨트롤이 되는구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이미 난 여드름을 잘못 만졌다가 흉이 지면 평생 가는 것이기에 유재원은 얼른 손을 뗐다.

“그러면 키는 좀 컸나?”

최근 바빠서 매일 키를 재던 일도 깜빡하고 있었다. 세면실 한쪽 벽면에는 5cm 단위의 눈금이 있었기에 바로 가서 서 봤다.

“우와!”

여드름에 침울했던 유재원의 목소리가 단번에 밝아졌다.

머리 끝이 다다른 지점에 적혀 있는 숫자는 유재원이 그렇게도 바라던 숫자였다.

170cm!

드디어 키가 170cm를 돌파했다.

전생에서도 173cm까진 자랐는데, 그건 고3 때까지 천천히 자라서 달성한 숫자였다. 지금은 원래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170cm를 달성했다.

여드름이 난 건 기분이 나빴지만, 170을 달성한 것으로 상쾌한 아침을 시작할 수 있었다.

-미래전자-도시바 기술 교류 협상 타결!

아침 9시에 출근을 완료했고, 책상 위에 올려진 아침신문을 집어 들었을 때, 미래 전자 이야기가 전면에 실려 있었다.

유재원은 어제저녁에 먼저 전명헌 회장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던 이야기였다.

한 건 크게 올린 전명헌 회장은 무용담을 아낌없이 늘어놓았고, 유재원은 칭찬하기에 바빴다. 그도 그럴 것이 플래시 메모리 기술을 라이센스의 세부 내용을 보면 유재원이 나서도 이렇게 만들긴 어렵겠다는 말이 나올 만큼 미래 전자의 완벽한 승리였다.

라이센스에서 가장 중요한 로열티 부분을 보면 매출액의 10%다. 미래 전자가 낸드 플래시 메모리 기술이 하나도 없고, 모조리 도시바로부터 받는 걸 생각하면 이것도 많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 97년까지가 10%이고, 98년부터는 5%로 내려온다. 게다가 생산량이 많아질수록 로열티가 내려오는데, 낸드 플래시 메모리 칩을 연간 500만 개 정도 출하하게 되면 1%가 된다.

500만 개 이상 찍어낼 경우 1%의 로열티만 받아도 이전에 받았던 로열티 액수를 뛰어넘을 것이라는 전명헌 회장의 주장에 도시바의 대표가 동의했단다. 게다가 일단 메모리가 싸게 풀려야 소비도 늘어나 수익도 많아진다는 박리다매를 주장해서 로열티 1%를 명문화 하는 데 성공했다.

도시바 쪽의 낸드 플래시 메모리 전망이 최악이라는 걸 단번에 보여주는 조항이었다. 하긴 원래 도시바는 플래시 메모리를 처음 만들었으면서도 어디에 쓰일지 도통 몰라서 여기저기에 기술을 뿌려주고 다녔다.

IEEE(전기·전자기술자협회)에 낸드 플래시 메모리를 소개했을 때, 인텔이 가능성을 알아보고 상업용 연구를 위한 라이센스를 원했다. 도시바는 저렴한 사용료만 받고 정보를 다 주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원래 역사에서 92년쯤에 일성 전자에게도 낸드 플래시 기술을 전수했다.

도시바의 전략은 인텔과 일성이 낸드 플래시 시장에 집중해 기술개발과 마케팅에 돈을 쏟아 부어 시장의 규모가 커질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다.

남들이 시장을 잘 만들어 놓으면 원천 기술을 가진 자신들이 본격적으로 참전해서 시장을 날름 먹겠다는 의도였다.

-미래전자-도시바 크로스 라이센스 체결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크로스 라이센스였다.

이는 도시바가 플래시 메모리 관련해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내면 자동으로 미래전자도 그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미래전자가 플래시 메모리 기술을 바탕으로 더 나은 기술을 만들어내면 도시바도 조건 없이 이용할 수 있다.

도시바는 미래 전자가 응용 기술을 만들어 내면 낼름 먹겠다는 의도가 훤히 보인다. 본인들이 심화 기술을 개발할 생각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마쓰오카 후지오를 미래전자에 소개해준 것이다.

마쓰오카 후지오는 도호쿠대학 교수로 도시바와의 산학협동 연구를 통해 세계 최초의 낸드 플래시 메모리를 만들어낸 엘리트였다.

도시바의 다나카 히사시게 대표는 플래시 메모리에 관해선 마쓰오카 후지오가 전문가이니 트러블이 생기면 빠르게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소개했다. 또한, 플래시 메모리 기술 연구에도 적극 협력을 할 거라고 했다.

유재원이 봤을 때 도호쿠 대학에 막대한 연구기금을 내는 게 귀찮았던 모양인지, 미래전자에 그 일을 떠넘긴 모양새였다.

미래 전자가 큰돈 들여 플래시 메모리의 응용, 심화 기술을 만들면, 크로스 라이센스를 통해 공짜로 가져다 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이놈들아, 고맙다!”

도시바는 미래전자가 자신들에게 낚였다고 생각할 테지만, 유재원은 그저 고맙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역시 전명헌 회장님께 협상을 맡긴 게 탁월한 선택이었다.

플래시 메모리는 하드 디스크를 밀어내고 차세대 저장 장치 시장을 완전히 휩쓴 기술이었다. 21세기 초부터 2030년대 말까지. 컴퓨터의 성능을 대대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비단 컴퓨터뿐만이 아니다. 모바일 장치에서 플래시 메모리는 매우 중요한 저장 장치였다. 이런 플래시 메모리 기술을 도시바는 거의 헐값에 미래 전자에 가져다줬다. 심지어 기술의 창시자인 마쓰오카 교수까지 소개해 줬다.

“기술을 공유한다고 무조건 양산에 성공하는 건 아니지!”

반도체 생산에서 설계도 만큼 중요한 게 장비였다.

설계도가 있어도 장비가 없으면 만들 수 없다. 게다가 반도체 생산 장비는 자판기가 아니다. 세팅에 대한 노하우와 운영 방식에 따라 생산된 반도체의 품질은 극과 극이다. 기울기 같은 사소한 요소로 인해서 겨우 생산 단가를 맞추느냐, 넉넉한 이익을 얻느냐 갈릴 만큼 민감한 장비다.

“플래시 메모리는 이걸로 됐고.”

유재원은 컴퓨터 메모장에서 ‘MUST BUY’라는 파일을 열었다.

CCD센서, CMOS 센서, 플래시 메모리, APU, 그래픽 라이브러리, 터치스크린, 포토 프린트, 실시간 인화, 스티커 사진, 손실압축기술, 리튬이온 배터리, 심지어 유우니 소금 사막과 같은 지명까지.

이상한 단어가 가득했던 목록 중에 플래시 메모리 항목에 취소 선을 넣었다.

취소선이 넣어진 건 플래시 메모리 말고도 2가지가 더 있다.

포토 프린트와 손실압축기술이었다.

ID 인베스트먼트의 실리콘밸리 투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인수를 시작으로 현재 진행 중이었다.

포토 프린트 기술과 손실압축기술은 벌써 ID 인베스트먼트의 수중에 넣었다.

포토 프린트는 유재원도 아는 회사로부터 넘겨받았다. 테크토닉이라는 회사였다. 에그 PC와 ID 오피스로 참가했던 89년 컴덱스에서 유재원의 눈에 띄었던 회사였다. 4가지 잉크 사용해서 총천연색, 32비트 컬러를 표현할 수 있다고 자랑했던 회사였는데, 1년을 겨우 넘긴 다음 파산 지경에 이르렀다.

A4용지 전용 컬러 프린터 한 대가 1만3천 달러나 하는 미친 가격을 자랑했으니, 누가 이걸 사겠는가.

ID 인베스트먼트는 100만 달러라는 저렴한 가격에 테크토닉이 보유했던 포토프린트 기술 일체를 넘겨받았다.

기술이 발전되면 전자 문서가 종이 문서를 대체할 거라고 많이들 예상했고, 그렇게 믿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21세기 중반, 그러니까 유재원이 죽기 직전까지도 종이는 널리 사용되었다.

글자는 물론 그림까지도 고해상도로 출력할 포토 프린트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굶어 죽을 일은 절대 없다.

다음으로 인수한 기술은 음성과 화상을 압축하는 기술이다. 일명 비디오 코덱이라는 거다. 인데오(Indeo)라는 회사에서 만들었다고 인데오 코덱이란 이름이 붙었다.

컴퓨터로 비디오를 본다는 건 아직 상상 못 할 일이지만,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미 관련 기술이 연구되고 있었다. ID 그룹은 인데오라는 회사의 주식 51%를 250만 달러에 사서 ID 테크놀로지에 편입했다.

기존의 경영진은 그대로 유지하고 기업문화 역시 현행을 유지한다는 조건이었다. 인데오가 벤처기업인지라 경영진과 개발진이 같은 사람이고, 겨우 9명만 근무하는 회사였기에 취해진 조치였다.

유재원은 인데오에서 개발하는 코덱이 영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본인이 직접 코덱 개발에도 뛰어들 작정이었다. 동영상과 그림 파일 등은 컴퓨터 멀티미디어 환경에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WWW 문서에서 글자만 가득했던 문서와 그림도 적절히 들어간 문서의 차이는 너무도 명백했다. 그런데 압축되지 않은 그림 파일은 상당한 용량을 차지해서 웹서버에 큰 부담 된다. 사람의 감각으로는 쉽게 감지할 수 없는 정도의 손실 압축으로 용량을 과감히 줄여서 전송하는 게 큰 장점이 있다.

그렇다고 비손실 압축도 무시할 수 없는 기술이니 인데오에게 인력 보강을 지시하면서 두 가지 기술을 동시에 개발하라는 과제를 주었다.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미래 먹거리용 기술이 담긴 체크 리스트를 확인하던 유재원에게 알람이 떴다.

넥스트컴 접속기의 신기능이다. 메일뿐만이 아니라 쪽지 알람도 켜진다. 게다가 보고 있던 화면에서 메일함으로 일일이 이동할 것 없이, 새로운 텝을 열어서 바로 메일을 확인할 수 있다. 쪽지의 경우엔 아예 조그만 메시지 박스가 뜨니 원래 하고 있던 작업을 방해하지 않고도 확인할 수 있다.

모두 유재원의 작품이다.

한국의 로데오 팀은 ID 오피스 차기작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고, 미국의 실리콘밸리 팀은 안드로이드 1.0 완성에 다른 작업을 할 여력이 없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인수한 개발팀의 경우 실사 작업과 업무 재배치가 끝나지 않았다.

회사 전체로 보면 여력이 있는 개발자는 유재원뿐이었다.

불편한 게 있으면 직접 고친다는 걸 그대로 수행했고, 최근 작업한 건 넥스트컴 전용 접속 프로그램이었다.

당연히 유재원이 손을 델 때마다 호평은 이어졌다. 전생에 수천만 명의 사용자들이 검증해서 완성된 기술을 그대로 적용하니 실패할 일이 없다.

“어디 보자.”

메일은 ID 인베스트먼트의 빈센트 그린힐 부사장이 보낸 것이었다. 분량은 좀 많았다. 투자 은행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열심히 인력을 보강 중이었고, 2배수로 추린 리스트를 보내왔다.

지원자들의 수준은 ID 인베스트먼트가 리크루팅을 막 시작할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그때는 막 경영대학을 졸업한 새파란 신인들이 가득했다면, 지금은 월스트리트에서 5년 이상의 경력을 쌓은 이들이 많았다.

심지어 MBA 자격 소지자도 있었다. 그 유명한 펜실베이니아대학교 경영대학원 일명 와튼스쿨 출신부터 하버드 MBA 출신도 있다.

지원자들의 면면만큼 월스트리트에서 ID 인베스트먼트의 명성이 급히 치솟았다는 의미였으니 유재원도 기분이 좋아졌다.

고용은 신중해야 하는 것이라서, 당장 빈센트 그린힐의 보고서만 보고 결정을 내릴 생각은 없었다. 빈센트 부사장도 지원자들을 2배수로 추렸다는 보고였고, 지금 합격자를 골라달라는 건 아니었다. 지원자의 이력서는 전산화 작업이 끝나면 이메일로 전송하겠다고 했다. 또한, 최종 면접에 될 수 있는 대로 참석해 달라는 당부도 있다.

당연히 최종면접에는 유재원도 참석할 작정이다. ID 인베스트먼트의 투자 매니저 직급은 큰돈을 다루는 자리였으니 얼굴도 안 보고 임명할 수는 없다.

========== 작품 후기 ==========

다음 편으로 가기 전 추천 한 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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