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룰 브레이커 =========================
#89-2
며칠이 지났다.
-정부 낙동강 인근 산업단지 긴급 실태 조사실시!
-부산 그룹 박상용 회장, 페놀 유출 사고에 대한 책임으로 전격 사임.
-미래 전자 제2 반도체 공장은 친환경으로! 기존 제1 공장 역시 친환경 설계 더욱 보강!
예상했던 대로 낙동강 페놀 사건이 텔레비전과 신문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그나마 타이밍 좋게 나온 유재원의 친환경 발언 덕에 미래 전자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환경 생각하지 않고, 유독한 약품을 아낌없이 써가며 공장을 돌리던 부산 전자와 수천억을 들여 친환경 반도체 공장을 세우겠다는 미래 전자는 극심한 대비를 이뤘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명헌 회장의 영향력을 받는 매스컴에서 이 점을 더욱 부각했다.
부산 전자는 부산그룹의 자회사였기에 페놀 하면 부산이 떠올랐고, 친환경 하면 미래 전자가 연상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덕분에 부산 그룹의 회장인 박상용이 전격으로 사임했지만, 그 여파는 수그러지지 않았다. 부산 그룹에 대한 불매운동이 전국적으로 시작되었다. 특히 직격탄을 맞은 건 주류 사업이었다.
사고를 낸 건 부산 그룹의 산하의 조그만 전자 회사인데, 정작 가장 큰 피해는 부산 양조가 얻어맞기 시작한 것이다.
더구나 부산 양조는 부산 그룹의 모태가 되는 자회사였다. 지금도 부산 그룹의 강력한 돈줄이기도 했다.
페놀 사고가 터진 다음, 부산 양조가 만드는 술의 매출 하락은 엄청났다. 반품까지 이어지니 공장 앞 야적장에 갈색의 맥주병이 쌓여만 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긴급 실태 조사에 들어가자, 부산 그룹은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기에 회장이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그런데도 국민의 싸늘한 시선은 식을 줄을 몰랐다.
페놀이 유출된 지역은 구미시의 취수장과 가까웠기에, 구미 전역에 수돗물 공급이 중단되었다.
낙동강 하류 쪽은 강물과 희석이 많이 되었다. 오염 제거 작업도 열심히 해서 수돗물의 각종 오염 수치가 기준치를 넘기지 않아서 수돗물 공급이 중단되진 않았지만, 코를 자극하는 악취 때문에 음용을 하는 주민은 없었다. 처음엔 클로로페놀의 냄새였지만, 나중엔 소독약을 들이부은 탓에 나는 냄새가 지독했다.
낙동강 지역에서는 이번 일로 인해서 정수기가 불티나게 팔렸고, 불법이지만 생수를 사 먹는 가정도 많이 늘어났다.
“생수를 이제야 사 먹네?”
유재원은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알아보니 88년 올림픽 때 잠깐 생수의 판매가 허가되었지만,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페놀로 인해서 수돗물에 대한 믿음이 붕괴하면서 생수 시장이 태동하기 시작했다는 걸 기억의 궁전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은 지난 21일에 부산 전자 직원 6명을 구속한 데 이어 오늘 환경처 직원 7명, 오염 물질 무단 방류로 추가 적발된 구미 신성 기업 대표, 생산부장 등 모두 9명을 추가로 구속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과 수질 관리 책임을 물어 환경처 장관과 차관, 부장 등을 전격 경질했습니다.
개헌을 통해 지방자치의 길이 열렸고, 며칠 후면 첫 지방선거가 있다. 지방자치의 뿌리가 되는 기초의원선거가 오는 26일에 있고, 광역의원은 따로 6월 20에 선출된다.
목에 깁스한 듯 힘이 잔뜩 들어간 정치인이라도 선거철이면 허리가 굽어지기 마련이다.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어서, 여당에 큰 악재인 페놀 오염 사건을 최대한 빨리, 처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중이다.
아침 뉴스를 빠르게 살펴본 유재원은 평소의 업무를 시작했다. 첫번 째 일정은 ID 그룹의 첫 번째 파트너사인 일렉트로닉아츠와의 통신이었다.
-둠이 밀리언 셀러를 기록했습니다! 최단기록 경신입니다!
ID 톡으로 연결된 호킨스 사장의 호들갑이다.
업무에 있어 전화로 통화하는 것보다 ID 톡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걸 많은 사람이 알게 되었다. 인터넷 보급이 확대되는 것과 비례해서 ID 톡의 다운로드 숫자도 계속 올라간다.
띵!
맑은 알람소리와 함께 채팅창 화면에 그래프가 올라왔다. 둠의 일별 판매량 그래프인데 우상향 직선으로 매일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는 걸 확실히 확인할 수 있다.
예전에는 받은 그림 파일은 따로 열어 봐야 했는데, 지금은 유재원이 보는 것처럼 채팅창에 바로 올라가도록 설정할 수 있다.
ID 톡도 지속적인 버전업 중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버전은 0.7.4로 일곱 번의 메이저 업데이트 후에 작은 버그를 4번이나 추가로 잡았다는 의미였다. 메이저 업데이트가 이뤄질 때마다 ID 톡은 현대적인 메신저의 형태를 갖추는 중이다.
맨 처음 유재원이 공개했을 때와 비교하자면 천지개벽 수준이다. 그렇지만 아직 1.0이라는 상징적인 버전으로 올리지 않은 건, 안드로이드 1.0과 함께 버전을 맞추기 위함이다.
안드로이드 1.0은 거의 완성이 끝났다.
안드로이드 알파용 응용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소프트웨어 업체나 메이저 게임 개발 업체, 컴퓨터 보안 관련 업체에는 개발자 버전이라는 걸 붙여서 배포한 상태였다. 도스 호환이었던 알파와 달리 안드로이드 1.0은 완전히 다 뜯어고친 유닉스 형태였기에 새로 만들어야 할 게 너무도 많았다.
미리미리 보내서 대비할 수 있게 하지 않으면, 안드로이드 1.0 출시일에 구동할 응용프로그램이 하나도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고맙습니다. 역시 호킨스 사장님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으니까 판매량이 더 잘 나오는 거 같네요.”
유재원도 립 서비스를 할 때는 한다.
둠이 가진 폭발력이라면 일렉트로닉아츠보다 부족한 유통망을 가진 액티비전에서 유통했더라도 100만장은 쉽게 찍었을 것이다.
-과찬이십니다. 우리는 이걸로 만족해하진 않을 겁니다. 둠이라면 게임 소프트 매출액에 신기원을 이룩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ESD는 어떻습니까?
역시 호킨스 사장도 사업가다.
소프트웨어의 온라인 판매가 오프라인 유통망에 치명타가 될 거라고 잘 알고 있는 모양인지, ESD의 근황을 물어왔다.
“많이 팔릴 땐 하루에 100개 정도 나갔는데, 적게 팔릴 땐 30개도 안 팔릴 때도 있네요. 들쭉날쭉해요.”
온라인 판매가 신기했던 초반에는 수백 개씩 팔렸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판매량이 줄어들었다. 최근 일주일의 판매량 평균을 내보면 하루에 50개 정도가 팔리는 수준이다.
-허, 안타깝군요.
오프라인에서는 매일 수만 장씩 팔리는 둠이 온라인에선 겨우 50개 팔리는 것이 호킨스 사장이 보기엔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확실히 위로받아야 할 수치다. PC 통신에서 카드 결제가 되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들인 노력에 비하면 초라한 숫자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현재 데이터 통신망을 보면 50개도 상당히 많은 숫자였다. 미국의 PC 통신 유저 중에 ISDN을 사용하는 비율은 전체의 10%도 되지 않는다. 북미에 거주한 PC 통신이나 인터넷 사용자들은 대부분 모뎀을 사용했다.
전송 속도는 겨우 9,600 bps 혹은 14.4 Kbps에 불과했다.
엄청나게 느린 속도였는데, 둠의 용량은 3.5인치 디스크 8장 분량이었다. 온종일 다운을 받아 놓고 있어야 겨우 플레이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넥스트컴의 대대적인 마케팅과 함께, ISDN의 보급 속도가 참 빨랐다.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정보고속도로 사업은 착실히 진행 중이었다.
정부의 적극적인 통해 컴퓨터실이 있는 학교에 ISDN 통신망이 들어갔고, 저렴한 통신 가격으로 모뎀을 사용 중이던 PC 통신 유저도 ISDN으로 교체했다. 한국 넥스트컴의 유료 사용자 숫자도 많이 늘어나서 지금은 40만에 가까운 숫자였다.
케텔이었다면 이 많은 숫자를 감당할 수 없었을 거다.
가입자가 많아지면, 자연적으로 동시 접속자 숫자도 늘어나고 서버에 큰 부담을 준다. 게시판의 글을 보다가 다음 글로 넘어가라고 해도 먹통이 되었다. 이제 그런 통신 장애는 오래된 추억이었다.
IBM으로부터 구매한 메인프레임이 넥스트컴의 서버였다. 그것도 거의 최상급 스펙을 자랑하는 녀석이었고, 연결된 통신회선 숫자도 엄청났다.
순간적으로 동시 접속자 숫자가 2만 명을 넘었을 때도, 넥스트컴의 서버는 평소처럼 민첩한 반응 속도를 보여줬다.
케텔의 부실한 서버에 질렸던 이들은 환호했다. 그들은 넥스트컴의 적극적인 전도사가 되어 주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중이었다.
-다음엔 더욱 더 좋은 소식을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우리 일렉트로닉아츠는 파트너를 위해 최선을 다할 테니까요!
“네. 기대하겠습니다.”
호킨스 사장은 마지막까지도 일렉트로닉아츠가 열심히 둠을 팔고 있다는 걸 어필했다. 둠 다음의 차기작도 일렉트로닉아츠에서 유통하길 원하는 것이다. ESD가 별 볼 일 없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인지 자신감이 부쩍 늘어난 게 보였다.
“흠, 전명헌 회장님은 협상을 잘 하고 계시려나?”
호킨스 사장과 ID 톡을 마무리한 유재원은 전명헌 회장을 떠올렸다.
전명헌 회장은 미래 전자 사장을 대신해서 도시바와 낸드 플래시 메모리 기술 이전 협상을 맡고 있는 중이었다.
솔직히 유재원은 그 협상을 자신이 하고 싶었다.
도시바는 자신들이 개발한 낸드 플래시 메모리 기술의 가치를 모르니 말이다. 반면 자신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이런 상태에서 협상하다 보면 낸드 플래시 기술을 꼭 가져야겠다는 티가 나기 마련인데, 도시바 측에서 이런 반응을 보고 낸드 플래시 기술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가치를 품고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도 있다.
고민한 끝에 유재원은 미래 전자와 전명헌 회장에게 일임했다. 전명헌 회장도 낸드 플래시 기술에 대해선 잘 모른다. 단지 미래가 유망한 기술이라는 유재원의 언급만 들었다. 그러니 협상력 좋은 전명헌 회장이라면 도시바를 자각시키지 않고 적당한 가격에 기술을 사 올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아직 협상이 진행 중인 것 같은데, 협상을 하는 날짜가 길어지는 걸 보고 혹시라도 협상이 깨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일었다.
“전명헌 회장이 호락호락한 분은 아니니 잘하시겠지.”
유재원은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혹시 연락하면 협상에 영향을 줄 수도 있으니 전화도 삼갔다.
심란한 마음을 정리하는 데엔 코딩이 최고다. 유재원은 이전에 작업하던 소스코드를 열어서 프로그래밍을 시작했다.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회장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수행비서인 김대석이 손님이 왔다는 보고를 올렸다. 손님? 스케줄을 보면 미팅 약속은 없었다. 유재원의 경우 최소한 3일 전에는 연락을 해야 약속이 잡히는 데 특이했다.
“누구신데요?”
“박상권이라는 분입니다.”
박상권?
뭐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아!”
박상권이란 이름을 몇 번 되뇌던 유재원의 뇌리에 딱 떠오르는 게 있었다.
현미유 공장 사장님이다. 하도 현미유 사장님이라고 해서 이름은 잠시 잊고 있었는데, 그분의 성함이 박상권이었다.
“얼른 모셔오세요. 아니, 같이 내려가 봐요.”
모셔오라고 했다가 바로 말을 바꾸는 유재원이다.
ID 그룹의 초석을 만들어준 은인이었으니 버선발로 내려가 맞아도 모자란 분이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완전 감사합니다~!!!
**아래 이벤트 공지는 마감되었습니다~!**
2월이네요!
2월의 가장 큰 이벤트라면 평창 올림픽 아니겠습니까!
어렵게 유치한 행사고, 이번에 올림픽을 치르면 언제 또 올림픽을 유치할지 기약을 할 수 없는 유니크한 행사지요. 그래서 저도 이벤트 하나 해볼까 합니다.
우리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 우리나라의 금은동 갯수와 종합 순위를 예측하는 이벤트입니다!!
정확히 맞추신 분께 딱지 250장을 드리겠습니다!!
응모는 올림픽 개막 전까지 리플로 받을테니 많은 응모 바랍니다~!!
응모 형식은 "X위, 0-0-0"이라고 넣으시면 됩니다. 쉼표 뒤 숫자 3개는 금은동 순이죠.
아, 당첨자가 복수로 나오면 2분까지는 250장씩 드리고, 3분 이상이라면 500개를 1/n으로 나눠드립니다요.
그럼, 이만~!!
**지금은 마감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