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139화 (139/1,007)

[139] 뉴 프런티어 =========================

#83-2

“그래도 무슨 말이 나오면 미국에 여러 형태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고, 고용도 늘리겠다고 하면 됩니다.”

ID 인베스트먼트를 통한 투자 확대는 이미 최강욱에게 말해놓은 사안이었다. 관련 전문가를 모으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 중인데, 아직 큰 성과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WTI 선물 시장에서의 승리가 알려진다면 ID 인베스트먼트에 인재들이 몰려들 것이다.

-음, 그들이 투자로 만족할까요?

그들이란 아마도 미국을 이끌어가고 있는 보수 세력을 통칭하는 단어일 것이다.

최강욱 비서실장에겐 미국에서 헤리티지 재단의 이사장과 미팅이 있었다는 사실도 다 말해줬는데, 이 때문에 걱정이 좀 큰 모양이다.

“그럼요. 한국에 세금을 내고 남은 돈 중에 50억 달러 정도는 미국에 투입될 거니까요.”

고용과 투자!

당장 현재 미국의 최대 이슈는 이라크와의 전쟁이었다.

국제연합을 통해 다국적군을 구성 중인 미국은 이라크에 최후통첩을 보냈다. 내년 1월까지 쿠웨이트에서 철군하지 않을시, 대대적인 공격을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이라크는 승리에 취해서 대충 무시하고 있는데, 공격 준비는 착실히 수행 중이었다.

그렇지만 미국에 있어 이번 전쟁보다 더 큰 정치적 이슈는 고용과 투자였다. 80년대의 화려한 잔치를 끝낸 미국에게 청구서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경제 성장률이 떨어지고, 고용 지표도 나빠진다.

오죽하면 부시 대통령은 이번 걸프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음에도, 경제 이슈에서 실패해서 연임을 못 했을 정도다. 차기 미국 대통령이 IT를 끌어올린 것도, 정체기에 든 미국 경제를 부드럽게 연착륙시키기 위함이었다.

50억 달러의 투자는 미국도 반색을 들어 환영할 호재였다.

-예. 이 정도라면 누구도 뭐라고 하지 못할 겁니다. 대신 우리도 열심히 언론 플레이를 해서 효과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일은 레밍턴 부사장의 도움이 필요하겠네요.”

-예, 미국 언론과 친화력이 좋은 레밍턴 부사장이 적임자 같습니다.

최강욱과 통신을 마친 유재원은 ID톡에서 레밍턴 부사장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쉽게도 오프라인이었다.

이미 퇴근 시간은 지났으니 오프라인이라도 이해하는 유재원이다. 새벽에도 접속하고 있는 빈센트 그린힐이 참 특이한 성격이다. 게다가 레밍턴은 올여름부터 늦가을까지 유재원이 ID 인베스트먼트에 집중하는 동안 ID 테크놀로지의 신제품 개발을 훌륭하게 이끄는 중이었다.

유재원이 거의 관여하지 않았던 안드로이드 알파의 파이널 패치도 레밍턴이 주도했었는데, 사용자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

컴퓨터 바이러스가 창궐한 다음이라서 보안에 대한 이슈가 한창이었는데, 파이널 패치의 주요 사안이 모두 컴퓨터 보호와 프라이버시 보호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직접 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IT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다. 게다가 사용자가 무엇이 불편하고, 어떤 걸 원하고 있는지 포착하는 능력이 좋아서 시기적절하게 딱 알맞은 패치를 할 수 있었다.

ID 오피스의 차기작도 원만히 진행 중이었다. 총괄은 이찬수가 맡고 있긴 했지만, 레밍턴 부사장의 보조도 좋았다.

단적으로 유재원이 한국에 올 프로그래머를 지원받을 땐, 모험심이 넘쳐나는 특이한 두 사람이 전부였다. 한국은 올림픽도 치른 나라였지만, 미국인에게는 아직도 후진국이라는 이미지와 전쟁 중인 나라라는 고정 관념이 있었다.

레밍턴이 나서서 모집을 받자 지원자가 5명이 되었다.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2.5배가 늘어난 것이다.

“제가 내일 말 해놓겠습니다.”

유재원은 언론 플레이는 내일부터 이야기하는 것으로 하고, 본인의 일을 시작했다.

다만, 유재원이나 최강욱 모두 오늘 업무에서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다. 현재 한국의 은행은 거의 관치금융 수준으로 은행과 정권이 매우 밀접한 상태였다는 점이다. 특히 수출입은행의 경우 공기업이나 다름이 없었다.

ID 인베스트먼트의 정산금이 입금되자마자 최강욱에 확인 전화를 할 때, 수출입은행의 상급 기관인 재경부에도 보고가 들어갔다는 이야기다.

10시쯤 지나자 유재원의 사무실에 전화벨이 끊이지 않고 울리기 시작했다. 진작 언론과 협력사들에 알려진 서울 사무소의 전화기들도 불이 나기 시작했다.

-한국 최초의 투자은행 ID 인베스트먼트의 쾌거!

-석유 선물 투자 수익으로 88억 불 달성!

-ID 인베스트먼트 일반 투자자 가입 문의 폭주!

-투자 승리의 비결은 컴퓨터 분석을 통한 키워드 흐름 분석!

피할 수 없으면 즐긴다! 유명세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작은 깨달음 이 있었던 유재원은 입이 가벼운 수출입은행의 행태에 욕을 실컷 하면서도, 언론의 관심을 최대한 이용했다.

어마어마한 소득을 올릴 수 있었던 비결을 컴퓨터 분석으로 대충 때웠다.

회귀했던 초반, 이전의 모습과 확 달라진 걸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이해시켜드리고자 도깨비 컴퓨터를 끌어들였던 것처럼, 석유 선물투자에서 엄청난 이득을 거둔 이유로 컴퓨터 분석으로 설명했다.

21세기에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키워드 분석기법이다.

실제로 유재원은 넥스트컴에 매일 올라오는 기사들의 키워드를 정리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엔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점차 전쟁의 가능성을 언급하는 단어들의 빈도수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 확실히 들어 있었다.

빅데이터라고 하기엔 자료의 양이 부족하지만, 현대적인 기법을 사용한 키워드 분석이라는 건 틀림없다.

이를 통해서 이라크-쿠웨이트의 전쟁 가능성을 예측했고, 만약 전쟁이 진짜 터질 경우 석유 선물이 출렁거릴 것까지 예상해서 WTI에 투자했다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기사를 본 이들은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깜짝 놀란 사람 중엔 전명헌 미래 그룹 회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제 오전부터 유재원에게 빗발치던 전화 중에는 전명헌 회장의 것도 있었다.

이라크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전명헌 회장은 이라크-쿠웨이트 전쟁이 발발하자 수습을 위해서 정신이 없었다. 그렇지만 천만 다행스럽게도 사정은 그렇게 심각하진 않았다.

이라크 정부에 달린 미수금이 제법 큰 규모였는데, 대폭의 할인을 통해서 나중에 받기로 한 돈을 일찍 받아냈다. 그렇게 하고도 받지 못한 것은 프랑스나 영국 등 이라크에 큰 사업을 하고 있던 기업에 헐값으로 넘겼다.

미래 건설의 행태는 이라크의 신용도를 무시하는 것이라서, 애써 쌓아 올린 이라크 정부와의 인맥이 거의 무너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미수금을 너무도 싫어하고, 이보다 부실은 더더욱 싫어하는 전명헌 회장의 성격이었기에,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였다.

미래 그룹 안팎으로 말이 많았다.

갑자기 분주히 채권을 회수하는 미래 건설의 모습에서 미래 그룹 안에 뭔가 큰 위기가 온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 터졌고, 안팎의 우려는 순식간에 칭송으로 반전되었다.

당연히 전명헌 회자의 결정에는 거의 2년 전에 해주었던 유재원의 조언이 있었다. 구체적인 건 아니었지만, 중동 특히 이라크의 행보가 위험해 보인다며 미수금을 빠르게 회수하라는 조언을 주었다.

평범한 이라면 그 조언은 깔끔히 무시했을 테지만, 전명헌 회장은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덕분에 이라크에 진출한 한국의 여러 건설사로부터 곡소리가 날 때, 미래 건설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회사의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나서, 유재원과 다시 한 번 만나 심도 깊은 대화를 해보려는데 정보실에서 ID 인베스트먼트의 엄청난 대박을 터트렸다는 소식을 입수한 것이다.

믿기지 않는 수준이라서 남들은 다 진위 파악을 한다고 열심이었지만, 전명헌 회장은 달랐다.

‘거짓말 같지만 녀석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지!’라고 하면서 곧바로 유재원과의 미팅 약속을 잡았다. 그것도 비서를 시켜서가 아니라 본인이 직접 전화기를 들었다.

유재원의 전화기는 이미 불이나고 있던 상황이라서 쉽게 연결 되진 못했다.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러 번 시도한 끝에 겨우 연결할 수 있었다.

전명헌 회장은 불통에 대한 하소연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신 투자 성공에 대한 축하는 물론이고 거절하지 못할 좋은 제안도 직접 권하면서 만나자고 직구를 날렸다.

이러한 정성 덕분에 전명헌 회장은 내일 단 두 개로 잡힌 유재원 스케줄에서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할 수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남은 한 자리는 청와대였다.

다음 날.

“하여튼, 호들갑이란.”

서울행 자동차 안에서 유재원은 질렸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호들갑 정도가 아니라 전쟁이 난 것 같은데요?”

운전대를 잡고 있는 김대석 한마디 보탰다. 맞다. 보통의 호들갑이 아니라 전쟁이 난 것처럼 난리 통이었다.

공중파 뉴스에서 이라크 전쟁 소식과 다국적군 소식이 단신으로 처리될 정도로 ID 인베스트먼트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이해할 수가 없는 반응이었다.

88억 달러라고 해도, 한국 돈으로 6조3천억 원 정도에 불과하다. 연초에 풀린 신도시 보상금 정도의 수준이다.

공장 하나 짓지 않고 금융상품 투자로 큰돈을 벌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세계 금융의 중심이라는 월스트리트에서 ID 인베스트먼트라는 조그만 투자 은행이 대박을 터트린 게 좀 특별하다고 해도, 이런 식의 반응은 너무 심했다.

특히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언론의 불문율이 깨졌다는 거다.

이제까지는 유재원의 인터뷰를 한다고 덕진리까지 찾아오는 짓은 하지 않았다.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면 전화로 최대한 응해주기도 했고,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면 서울에서 성대한 인터뷰 행사를 만들기도 했으니 말이다.

어제는 교통정리를 할 경황이 없었다.

단독 속보를 따내기 위해 기자들은 물불 가리지 않았다.

서울 지사는 일찌감치 장사진을 치렀고, 곧이어 여주 사무실까지 급습했다. 급기야 덕진리까지 쳐들어왔다. 그나마 다행히 여주 사무실의 강찬호 부장이 기자가 덕진리로 가고 있다는 걸 전화로 알려줘서 유재원 본인과 가족, 그리고 큰집 식구들이 기자들에게 노출되는 걸 피할 수 있었다.

“수출입 은행! 상종하지 말아야 할 놈들이야.”

유재원은 이 모든 사태를 촉발한 수출입은행에 이를 갈았다. 해외 은행과 거래하기 편해서 주거래 은행으로 설정했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서울에 올라가는 즉시 수출입은행에 있는 달러 돈을 모조리 빼버리겠다며 이를 가는 유재원이다.

“어라? 사장님 미행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대석의 말에 유재원은 고개를 돌렸다.

진짜로 본인이 탄 그랜저를 향해 서서히 다가오는 차가 있었다. 그러더니 가까이 다가오던 자동차의 뒷자리 창문이 스윽 내려오더니 크고 우람한 뭔가가 튀어나왔다. 고성능 줌렌즈였다.

“헐! ”

파파라치 같은 건 한참 뒤에나 들어올 문화였는데, 뭐든 앞서가는 유재원 덕에 10년은 일찍 들어와 버렸다. 김대석이 자동차 속도를 올리니 렌즈를 꺼낸 자동차도 함께 속도를 올렸다.

그런 자동차가 한 대가 아니었다.

뒤쪽에서도 줌렌즈를 꺼내며 무섭게 속도를 내며 따라붙는 자동차가 또 있었다.

어째 느낌이 싸하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완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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