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137화 (137/1,007)

[137] 사막의 폭풍 ==============================

#82-2

8월 28일.

ID 인베스트먼트는 NYMEX에서 보유하고 있던 모든 포지션을 청산했다. 만기일이 얼마 남지 않았고, 전쟁의 공포도 점차 무뎌질 만큼 시간이 지난 터라, 하늘 높이 치솟은 유가가 하락하기 시작했던 시점이었다.

청산 시점에서 WTI의 가격은 40.14달러. 원래의 역사보다 2달러 더 상승한 가격이었다. 아무래도 ID 인베스트먼트의 1억 달러 투자가 NYMEX의 유동성을 더욱 끌어올렸고, 이를 통해 상승탄력이 더 높아졌던 모양이다.

“세상에.”

최강욱 비서실장은 퀭한 눈으로 A4 종이 한 장을 몇 번이고 보는 중이었다. ID 인베스트먼트의 빈센트 그린힐이 NYMEX에서의 거래를 마치고 받은 계산서를 한 장으로 요약해서 보낸 보고서였다.

“투자 기간 중, 유가 상승률 235%. 레버리지는 15배. 그래서 총투자수익금은 3,525%! 이거 진짜입니까?”

“그럼요! 계좌 보여드릴까요?”

최강욱 비서실장의 물음에 유재원은 ID 인베스트먼트의 법인 계좌를 열어 보였다. 씨티은행에 만든 계좌는 온라인을 통해서 조회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WWW를 이용한 온라인 뱅킹 서비스는 아니다. WWW를 발표한 지 한 달 조금 된 상태라서 홈페이지를 만드는 곳은 대학이나 일부 기업에 불과했다. 씨티은행의 온라인 서비스 역시 별도의 전용 접속 프로그램을 실행해서 확인하는 식이다.

$3,743,550,000.

계좌를 열자 무시무시한 금액이 떡하니 튀어나왔다.

37억4천3백5십5만 달러. 현재 환율이 714원이니 2조 6천7백억 원에 이르는 엄청난 금액이다.

“세상에.”

최강욱은 에그 PC의 모니터를 몇 번이나 보며 눈을 깜박였다. 비현실적인 액수에 ‘세상에’라는 감탄사 밖에 나오지 않는 것이다. 하긴, 최강욱과 마찬가지로 빈센트 그린힐 역시 무지막지한 숫자의 압박에 놀라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빈센트 그린힐은 유재원의 지시에 따라 온갖 실무를 담당했고, 7월에 마진콜이 들어오려고 했을 때만 해도 다 끝난 것 같은 절망감을 느꼈다. 그러다가 한 달도 안 돼서 엄청난 이익을 거두었다.

100년의 역사가 넘는 NYMEX에서도 이와 같은 대박은 다신 없을 거다. 그걸 본인이 직접 관여했으니, 느끼는 감상은 확실히 달랐다.

놀란 최강욱이 본래의 모습을 찾는 건 다음 날이었다.

“사장님은 아무렇지도 않습니까?

핼쑥한 얼굴인 최강욱에 비해, 유재원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보다시피 괜찮네요.”

“돈이 무섭지 않나요? 저는 어제 달러 돈에 깔려 죽는 꿈을 꿨습니다만.”

돈에 깔려 죽는 꿈이라니.

꿈에서 죽는 건 길조였다. 게다가 보통 돈도 아니고 달러라면 정말 좋은 꿈이었다.

“와우! 좋은 꿈 꾸셨네요. 제게 파실래요? 꿈값으로 에그 PC 한 대 드릴게요.”

최강욱은 본인이 느낀 부담감을 전하려고 말했다. 물론 꿈 이야기는 사실이긴 했다. 돈에 깔려 죽을 거 같다는 불안감이 들 만큼 막대한 돈을 벌었으니, 유재원도 부담스러울 거로 생각했는데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아? 제 꿈을요? 사장님이 사시겠다면 팔겠습니만, 에그 PC는 너무 비싸잖습니까. 점심이나 사시지요.”

“하하! 고마워요. 그래도 좋은 꿈은 제값을 주고 사야죠. 이번 투자 성공에는 최 비서실장님의 공도 크니 부담 없이 받아주세요. 게다가 집에서도 요즘 일을 많이 하신다면서요? 좋은 컴퓨터 하나 정도는 필요할 거 아녜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쩔 수 없지요, 고맙게 받겠습니다.”

아직도 없어서 못 파는 에그 PC였지만, 유재원에게는 한 대 추가로 구하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진짜 괜찮으십니까?”

최강욱 비서실장은 제법 끈질겼다. 괜찮냐는 물음이 또 들어왔다.

“부담을 느끼지 않느냐고 물으시는 거죠? 전혀요. 실제 돈이 쌓여 있는 걸 보는 게 아니라서 실감도 없고요. 그래서 부담도 없는 건지 모르겠네요.”

유재원은 덤덤하고 솔직하게 본인의 기분을 말했다. 마진콜이 들어왔을 때는 심하게 속이 타긴 했다. 하지만 그 고비를 넘기고 나서 쭉 유가가 올랐기에 감정의 동요가 사라졌다.

“게다가 아직 투자가 끝난 건 아니에요.”

“예? 아직 끝이 아니라니요? 석유 선물을 더 사신단 말씀이십니까?”

“아뇨. 지금 유가가 비정상적으로 상승했다는 말이에요. 중동이 전부 불바다가 된 것도 아니고, 이라크-쿠웨이트 전쟁도 미국이 개입하면서 단기간에 마무리될 거 같아요. 미국의 최첨단 군대를 머릿수만으로 막을 수는 없잖아요. 이라크가 쿠웨이트에서 밀려나고, 중동에 안정이 오면 비상식적으로 폭등한 주가도 제 자리를 찾게 될 거예요.”

유재원의 말에 최강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일리 있는 이야기였다. 다만 가슴에 확 와 닿진 않았다.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이 처음으로 텔레비전에 실시간 중계되는 건 이번 전쟁이 그 첫 시작이다. 그런데 아직 전투를 들어간 것은 아니라서, 물음표가 남아 있는 것이다. 비단 최강욱 비서실장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최강욱처럼 미국의 전투력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많았고, 쿠웨이트를 단 6시간 만에 점령한 이라크의 군대에 대한 과대평가도 심한 상태였다.

그러니 지금 시점에서 유가가 하락한다고 투자하면, 내년 1월쯤에 큰 수익을 다시 한 번 거둘 수 있다.

“이미 결정을 하셨군요?”

최강욱이 유재원과 함께 한 시간이 벌써 2년이다. 딱 보면 유재원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바로 읽을 수 있을 정도다.

“설마 이번에도 올인 하신다는 건 아니겠죠?”

“당연하죠.”

유재원은 바로 대답했다.

하락이 올 거라고 확신하긴 하는데, 자신의 시장 참여로 인해서 7월과 같은 변수가 발생할 가능성은 충분했다.

“이번 수익금 중에 반만 넣겠어요. 나머지 반은 증거금으로 삼고요.”

반이라고 해도 16억7천만 달러라는 엄청난 거금이었다.

“빈센트 투자매니저가 고생하겠군요.”

“투자가 끝나면 포상을 두둑이 해드려야죠. 아, 그리고 ID 인베스트먼트의 조직구성도 한층 강화할 거니까 미리 준비하고 계세요.”

“음. 금융업에 본격적인 진출입니까?”

“아뇨! 저번에도 말씀드렸던 거예요. 이번 석유 투자가 끝나면 총알이 두둑해질 테니, 좋은 기술력을 가진 회사들을 긁어 모야야죠!”

미래에 유용하게 사용될 기술이 있는데, 돈이 없어 상업화를 못 한다거나 기술 개발을 끝내지 못한 회사가 참 많다. 이들을 지원해서 제품을 완성하거나, ID 테크놀로지를 통해 시장을 개척하면서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투자를 하는 게 유재원의 목표였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ID 인베스트먼트의 조직강화에 맞춰 회사 전체의 정비도 해야 할 것입니다.”

최강욱은 유재원에게 숙제 하나를 주었다.

“조직 정비요?”

“지금 사장님이 지분 전체를 가진 회사가 테크놀로지, 인베스트먼트 이렇게 벌써 둘입니다. 게다가 곧 별도의 사업체로 독립할 조직도 있고, 지분의 반을 가진 ID 소프트웨어도 있습니다. 여기에 경영권은 아니지만 상당한 지분을 가진 유경 식품도 있고, 데이콤도 있지요. 게다가 ID 인베스트먼트로 여러 기업에 투자할 거라고 하시니, 회사의 구조도 복잡해지고. 규모도 커지겠지요.”

벌려 놓은 게 많으니 조직도 커졌고, 조금 비효율적인 상태가 된 것 같다.

“여기에, 한층 거대하진 회사를 이끌게 된 사장님의 경영 지원을 위한 조직도 필요할 것이고요.”

최강욱의 지적은 충분히 일리 있는 것이었다.

이쯤 되면 조직을 대기업처럼 그룹 체제로 업그레이드하는 게 바람직하다. 전략기획실 같은 그룹 전체의 전략을 총괄하는 자리도 만들고, 감사(監事)도 전문으로 하는 감사실이나 경영이나 투자 등의 정보를 정식으로 수집해서 보고해줄 정보실도 따로 두는 게 좋을 거 같다.

10월 1일, 새벽.

유재원은 아침 일찍 일어나, ID톡을 실행했다. 그러자 뉴욕 맨해튼의 빈센트 그린힐과의 연결이 자동으로 이뤄졌다.

7월부터 지금까지 회사 인사 중에 제일 빈번히 연락하는 사람이 바로 빈센트였기에, 미리 자동연결 옵션을 설정해둔 것이다.

“분석팀과 토의를 해봤는데, 현재 WTI는 비정상적으로 높은 가격에 형성된 되었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저도 상당히 가파르게 올랐다는 느낌이었지만, 확신이 없어서 말씀을 드리진 못했습니다. 분석팀의 결과와 같아서 다행이군요.

말이 분석팀이지 아직 그런 건 없다. 단지 유재원과 최강욱이 잠깐 대화를 했던 것뿐이다. 하지만 결과에 대한 확신은 99%다.

100%라고 하고 싶었지만, 7월처럼 본인의 개입으로 예상치를 빗나갈 경우가 있을 테니 일단 99%라고 해두는 유재원이다.

“네, 그래서 이번 기회도 놓칠 수가 없지요. 하락에 배팅하겠습니다. 기준가는 38달러 이상입니다.

-하락 배팅 기준가는 38달러. 접수했습니다. 문제는 투자금액이겠군요.

“네! NYMEX를 모니터링하다가 WTI의 가격이 38달러 이상으로 오르면 선물을 매도하거나, 풋 옵션을 매입하세요. 콜옵션을 팔아도 좋고요. 투자 규모는 이번에 정산된 수익금의 딱 절반인, 16억7천만 달러입니다.”

-16억 달러! 어마어마하군요. NYMEX에서 16억7천만 달러를 다 소화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NYMEX로 모자란다면 시카고 거래소도 좋고, 런던도 좋습니다. 최대한 많은 거래를 맺어주세요. 청산은 제 명령을 기다리지 말고 29달러 아래로 진입하면 최대한 빠르게 정리해주세요.”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빈센트 그린힐이 믿음직스럽게 답을 주었다. 7월보다 16배나 커진 규모이니 빈센트 그린힐이 애를 좀 먹을 테지만, NYMEX에서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유가의 변동이 심해지면서 NYMEX로 몰리는 자본의 규모도 커졌다.

하루 거래 대금이 40억 달러를 돌파했다는 뉴스도 나왔을 정도니, 늦어도 7일의 시간이면 NYMEX만 이용해서 포지션을 완성할 수 있다.

다행히 이번에는 전생의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쿠웨이트의 정유 시설이 대량 파괴되었다는 보도와는 달리, 실제로는 훨씬 적은 숫자만 파괴되었다는 뉴스에 유가가 빠르게 하락했다. 더욱이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는 것도 모자라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해 공격을 할 수 있다는 우려와 달리, 확전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수익 실현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WTI가 과도하게 올랐다는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런 와중에 ID 인베스트먼트가 수많은 계좌를 동원해서 16억 달러에 달하는 매도 포지션을 설정하자 유가 하락이 가속화되었다. 시장참여자 일부가 WTI의 상승을 위해 매수 주문을 올렸지만, 16억 달러 앞에서는 무력한 숫자였다.

10월 초에 최고점 42달러를 찍은 WTI의 가격은 줄곧 하락을 시작하면서, 10월 22일 26달러까지 내려왔다.

이날 ID 인베스트먼트의 풋 포지션도 완벽히 정리되었다.

레버리지까지 계산한 최종 수익률은 305%. 7월 잡았던 매수 포지션에 비하면 1/10로 줄어든 수익률이다. 계약의 규모가 너무도 커서 단위가 작은 옵션보다는 석유 선물 자체에 집중한 탓에 수익률을 극대화하진 못했던 탓이다.

그렇지만 수익금의 절대치를 보면 첫 번째 투자보다 몇 배는 커졌다.

첫 투자와 달리 단 20일에 불과한 투자였지만, 투입된 금액이 워낙 크니, 정산된 금액도 엄청나게 불어난 것이었다.

최종 정산된 수익금은 무려 67억9천만 달러.

여기에 혹시나 몰라 빼두었던 잔금까지 모두 합한 ID 인베스트먼트의 총자산은 88억 달러를 가뿐하게 돌파했다.

사막의 폭풍이 만들어준 기적이었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완전 감사합니다~!!

사막의 폭풍을 잘 탄 덕에, 1억이 88억이 되었습니다~!

암호화폐 폭등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만, 대단위 사업을 시작하기엔 적절한 금액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참! 혹시 몰라서 이번 챕터에 사용된 WTI 차트를 첨부합니다. 주인공처럼 회귀를 약속 받은 분이 계시면 유용히 사용하시길~! 돌아가면 저 잊지 마시고요~ 살짝만 챙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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