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136화 (136/1,007)

[136] 사막의 폭풍 ==============================

#82-1

-보스, 미션 완료했습니다.

1990년 7월 3일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빈센트 그린힐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오! 벌써요?”

빈센트 그린힐에게 주어진 미션이란 간단했다. ID 인베스트먼트의 투자금 전부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WTI 선물과 콜 옵션을 매수하라는 것이었다.

21세기엔 세계 최고의 선물 거래소가 될 NYMEX지만, 지금은 시카고, 런던에 이은 3위의 규모였다. 그래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하루에 거래되는 WTI(서부텍사스원유)의 양은 1억 5천만 배럴 이상이다.

1배럴의 현재 시세가 17달러이니, 하루 거래액만 해도 25억 달러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재미있는 건 WTI의 생산량은 하루 50만 배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거래량이 실질 생산량의 300배에 달하는 기형적인 구조이지만, 참여하는 투자자들이 사고팔기를 반복하면서 거래 대금이 폭증하는 것이니 큰 문제는 없다. 게다가 선물시장이라는 게 미래의 상품 가치를 예상해서 투자한다는 의미였고, 계약을 갱신할 수 있어서 거래량이 많아지는 건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하루 거래액이 25억 달러 규모인 시장이니 ID 인베스트먼트의 1억 달러 매수는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규모였다. 그렇지만 한 번에 1억 달러를 매수에 쏟아 부으면 시장의 흐름에 왜곡을 가할 수 있다는 빈센트의 판단이었다.

-ID 인베스트먼트가 구축한 WTI 선물 포지션은 다음과 같습니다. 평균가격인 17.04달러인 9월물 WTI 선물에 1억620만 달러가 투입되었습니다. NYMEX에서 낼 수 있는 레버리지를 풀로 이용해 계약했습니다. 보증금 비율이 6.7%이니 대략 15배의 레버리지가 나옵니다.

-죄송합니다, 보스. 좀 더 가격이 내릴 줄 알고 기다렸는데, 중동 정세 변화로 가격이 올라서 급히 매수한 탓에 예상보다 1달러 정도 비싸게 구매했습니다.

투자에서 무엇이든 싸게 사는 게 좋다. 물론 너무 가격이 내려가기만 기다렸다가 아무것도 사지 못하는 건 최악이다. 이점에 있어 빈센트 그린힐은 본인의 원칙과 유재원의 명령 사이 균형점을 잘 찾아서 수행했다.

“앉은자리에서 컴퓨터로 직접 거래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 정도는 충분히 예상한 오차범위이니 괜찮습니다.”

홈트레이딩시스템이 나오려면 한참 멀었다. 그러니 지금 NYMEX에 투자하려면 직접 영업장에 나가서 거래를 넣어야 한다.

레버리지가 15배이니, WTI의 가격이 7%만 하락해도 원금인 1억620만 달러가 다 날아간다. 대신 WTI의 가격이 7% 상승할 때마다 수익금이 1억620만 달러씩 늘어나는 어마어마한 포지션이 구축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퇴근 전이신가요? 얼른 퇴근하세요.”

뉴욕과의 시차를 따지면, 한국이 아침 9시인 지금, 뉴욕은 밤 7시였다.

-허허, 이미 집입니다.

집이라니 다행이다.

어르신이라고 불러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많은 나이의 빈센트였다. 괜히 자신 때문에 빈센트 그린힐이 밤늦게까지 일을 하게 되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기술의 발전이 너무도 놀랍습니다. 집에 앉아서 이렇게 지구 반대편에 계신 보스와 실시간으로 보고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런 기술 발전을 선도하는 회사에 제가 소속되었다고 하니, 참 뿌듯하기도 합니다.

빈센트의 칭찬에 머쓱해지는 유재원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만족하지 않았다.

남들은 다 무모하다는 이번 WTI 선물 투자가 성공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강력한 기술혁명을 시작할 것이다.

한 달이 지났다.

1억 달러라는 엄청난 거금을 NYMEX에 투자했던 유재원에겐 7월 한 달간은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

결과는 뻔히 아는 상황인데도, 거금이 걸려 있으니 하루하루 유가의 등락만 보면서 살았다. 오죽하면 열심히 관리했던 얼굴에 눈그늘이 진하게 올라왔을 정도였다. 부모님도 크게 걱정하셔서 예전엔 없던 보약까지 지어주셨을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7월 초 17달러에 포지션 구축을 마친 이후 유가가 15.8달러까지 내려왔기 때문이다.

유재원의 기억에 1990년 7월 중 유가의 최저선은 16.54달러였다. 그런데 이보다 더 0.7달러 내려와 버렸으니 거의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아마도 유재원의 ID 인베스트먼트가 WTI 투자에 대대적으로 참여하면서 시장에 뭔가 잘못된 시그널을 준 것은 아닌지, 아니면 원래의 역사 흐름과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거 아닌지 걱정이 컸다.

손실의 발생도 두말할 것 없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포지션을 자동 청산하는 마진콜이 들어올 것 같아서, 증거금을 추가로 내야 했다. 다행히 유가 선물시장과는 상관없이, ID 테크놀로지의 소프트웨어들은 꾸준한 판매량을 보여주었고, 예비로 쌓아 놓은 돈이 있었기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때, 최강욱 비서실장에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의 말을 무시하고 회사의 모든 가용자금을 원기옥처럼 모아서 투자했다면 정말 끔찍했을 거다. 증거금 추가 납부를 못 해서, 바로 마진콜을 맞고 WTI 투자는 실패로 끝났을 것이다.

다행히 유가는 15.8 달러 밑으로는 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7월 중순에 이르자 이라크는 원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정확한 날짜는 18일이었다.

쿠웨이트와 이라크의 국경이 접하고 있는 북쪽 지역에서 군사적 긴장감이 상승한 것이다. 이 지역은 예전부터 쿠웨이트가 유전을 설치해 원유를 채굴 중인 곳이었다. 그런데 이라크는 그 유전이 자기들 소유라면서 쿠웨이트가 기름 도둑질을 하고 있다는 맹비난을 펼친 것이다.

전혀 없는 소리를 한 건 아니었다.

사막지층 아래에 거대한 석유가 묻혀 있는 지층의 형태를 보면 이라크와 쿠웨이트 국경을 걸쳐 있는 형태였던 탓이다. 게다가 이 유전을 먼저 발견한 건 이라크였다. 그런데 이라크가 이란과 전쟁을 벌이던 때에, 쿠웨이트에서 채굴을 시작해버린 것이다.

이란과의 전쟁에서 이렇다 할 소득을 올리지 못한 이라크였고, 대신 전쟁에 사용된 무기나 각종 장비에 대한 서방의 청구서는 계속 날아들었으니 위험한 상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8월 1일, 현재 유가는 19.38달러입니다. 우리의 기준가격 17.04에서 13.73% 상승한 가격입니다. 이를 통해 총 196%의 평가 이익을 보고 있습니다.

“죽었다 살아났네요.”

포지션 청산 위기였다가 극적인 반전을 맛보는 유재원이다. 덕분에 빈센트 그린힐의 보고가 그렇게나 달콤할 수가 없다.

-휴! 그렇네요.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유재원의 기쁨은 빈센트 그린힐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직접 뉴욕상업거래소에서 WTI 선물 투자를 했던 빈센트 그린힐은 7월 석유 선물 가격이 15.8달러까지 하락했을 때, 불지옥을 맛보았다. 증거금을 추가 내야 할 때,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NYMEX에서 몇백만 달러 모자란다고, 1억 달러짜리 계약이 날아갈 판이었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자신은 중개 말고 투자를 하면 절대 안 되겠구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게다가 유재원을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해서, 유망한 기업 하나를 망하게 하는 데 일조했다는 자책도 심했다.

게다가 NYMEX로 다시 돌아온 빈센트 그린힐이 1억 달러를 움직였을 때, 끔뻑 죽어 나갔던 중개인들이 이젠 자신을 비웃고 다닌다는 소릴 들었을 때는 세상 살기 싫었다.

다행히 7월 중순을 지나서 유가가 상승하면서, 그런 안 좋은 기억들은 다 옛 추억이 되었다.

-NYMEX에서 언제 청산할 지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청산이라니?

이제 겨우 시작이다. 7월의 WTI 가격이 유재원의 기억보다 더 내려오긴 했지만, 중동의 정세는 그대로였다.

“청산이요? 이제 시작이에요. 제가 매도 신호를 주기 전까지는 꾸준히 유지해주세요.”

유재원은 마음 같아서 증거금으로 추가 입금했던 돈까지 모두 WTI 선물에 투자하라고 지시하고 싶었다. 하지만 7월 시세처럼 예상과 다른 흐름으로 쓴맛을 크게 봤던 유재원은 조금 소심해져서 그 말이 나오진 않았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내일 또 보고해드리겠습니다.

“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유재원은 빈센트 그린힐과의 ID톡을 마쳤다. 하지만 다음 날 빈센트 그린힐의 보고를 받는 일은 없었다.

-이라크군이 오늘 새벽 기습적으로 쿠웨이트와의 국경을 넘었습니다. 이라크군 기갑 사단 소속 탱크 350대가 쿠웨이트시티로 진격했다는 서방 외교관들의 전언입니다!

8월 1일 새벽, 이라크군은 쿠웨이트의 국경을 넘었다. 이 소식이 쿠웨이트 주재 서방 외교관을 통해 긴급 타전되었다.

전 세계 뉴스네트워크를 가진 CNN이 제일 먼저 현장의 소식을 전했고, CNN의 화면을 받아서 한국에서도 속보를 보내기 시작했다.

쿠웨이트 수도의 현장 화면을 연결하자마자 방독면을 급히 쓰는 리포터의 모습을 통해 전쟁의 분위기가 확실히 전달되었다. 하지만 짙은 어둠이 잠긴 새벽이라서 포를 쏘는 소리와 섬광이 좀 났을 뿐, 군대의 모습이 확실히 보이는 건 아니었다.

가장 먼저 반응하는 건 역시나 선물 시장이었다.

8월 1일에 19달러 수준이었던 WTI 가격은 24달러까지 폭등했다.

ID 인베스트먼트가 구축한 선물 포지션은 유가가 1.19달러 상승할 때마다 1억 달러의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였다. 이를 통해서 벌써 8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수익이 나왔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완전히 정복했습니다. 이라크군은 쿠웨이트시티를 점령했고, 의회를 해산했습니다.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에 대해 전면 공격을 개시한 지 5시간 만의 일입니다. 쿠웨이트 왕궁 전투에서 2백여 명이 사망했고, 다수의 쿠웨이트 왕족이 행방불명되었다고 합니다. 셰이크 자베르 알 아메드 알 사바 쿠웨이트 수장은 헬리콥터를 이용해 인근 사우디아라비아로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라크가 세운 쿠웨이트 자유 임시정부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알 사바 수장을 폐위시킨다고 발표했습니다. 또한, 3일부터 무기한 통행금지령은 내리고, 모든 항구와 공항을 봉쇄, 출입국을 금지한다고 발표했습니다.

8월 3일에는 드디어 자세한 소식이 전해졌다.

KBS와 MBC 두 방송국은 이라크-쿠웨이트 전쟁 소식을 앞다퉈 방송했다.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긴급 속보로 이라크-쿠웨이트 전쟁 소식을 타전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2차 석유 파동을 겪은 기억이 생생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중동에서 또 전쟁이 터지면 석유 가격이 폭등할 거로 생각하는 건 당연했다. 더구나 석유의 쓰임세는 70년대보다 훨씬 많아졌고, 사용량도 그만큼 늘어났다.

전 세계가 비상이었다.

-미국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의 침공을 강력히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병합은 인정할 수 없으며, 무조건적인 철수를 요구했습니다. 또한, 중동에 배치된 6척의 함대에 비상경계령을 내렸으며 인도양에 배치된 항공모함 인디펜던스호와 5척의 호위함을 걸프만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라크는 쿠웨이트만 속전속결로 점령하면 전쟁이 끝날 것으로 예상했을 것이다. 실제 작전 계획도 그에 맞춰서 기갑 사단을 통해 수도 쿠웨이트시티에 진격했고, 쿠웨이트 왕궁까지 점령했다.

이후 이라크는 쿠웨이트에서 철군하겠다는 발표도 했지만, 그렇게 간단히 끝날 전쟁은 아니었다.

미국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무적의 항공모함 전단이 바로 이동을 시작했고, 국제연합에서 미국 주도로 다국적군 결성을 위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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