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134화 (134/1,007)

[134] 사막의 폭풍 ==============================

#81-1

4월, 완연한 봄의 계절이 되었다.

불어오는 바람에서 찬 기운도 완전히 사라졌다. 얼었던 땅이 완전히 녹았고, 파릇한 새싹과 꽃이 피어나며 앙상했던 겨울의 모습은 자취를 감추었다.

나무들이 가을을 위해 열심히 새싹을 틔우는 봄에 맞춰 유재원의 ID 테크놀로지도 드디어 새로운 사업을 대대적으로 시작했다.

-인터넷 기반 차세대 PC 통신 넥스트컴, 그랜드 오픈!

겨울 동안 열심히 준비한 넥스트컴이 한국의 화려한 전야제 행사와 함께 4월 5일 0시를 기해 시작되었다.

한국의 경우 케텔을 인수한 것이었기에, 첫날부터 사용자는 10만이 넘었다.

케텔의 사용자는 3개월 동안 서비스 이용료 없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덕분에 첫날 파리만 날리는 일은 없었다. 케텔에 가입했다가 접속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일단 호기심에 한 번은 접속했기에, 동시 접속자 숫자는 꾸준히 수천 단위를 유지했다.

무료 기간이 지나면 유료로 전환하든지 아니면, 무료로 제공되는 일부 서비스만 이용할 수 있는데, 일단 반응은 좋았다.

미국의 경우엔 시큐리티 챌린지를 위해 ID 테크놀로지의 사설 BBS의 가입자에게 1개월의 무료 혜택을 주었다. 한국보다 기간이 짧은 건, 혜택을 보는 사람들 숫자가 한국보다 몇 배는 많았기 때문이다.

마케팅과 프로모션 비용으로 상당한 금액을 책정해놓긴 했지만, 그렇다고 무한정 돈을 풀 수는 없었기에, 차세대 통신이란 이런 것이라고 맛을 보여주는 정도로 지원해주는 것이다.

-1세대 정보고속도로 서비스 ISDN 정식 출시.

-가입비 무료! 설치비 무료!

-정액제 요금으로 전화비 폭탄은 없다!

아쉽게도 ISDN 서비스는 한국에서만 하는 것이다. 데이콤은 장비의 설치와 통신망의 운영을 담당했고, 넥스트컴이 통신 서비스와 결합해서 마케팅을 담당하는 방식으로 사업이 이루어진다. 한국통신은 하는 것도 없이 전화선의 사용료를 받아간다.

엮여 있는 게 많아서 ISDN 정식 서비스의 시기와 서비스 요금을 책정하는 게 좀 늦어졌다. 그래도 유재원의 강력한 주장을 통해 최대한 소비자 친화적인 요금이 만들어졌다.

ISDN 1회선 사용료는 월 1만2천 원으로, 넥스트컴 유료 서비스 요금보다 전용선이 더 비쌌다. 그런데 마냥 비싸다고 하기엔 좀 그렇다. 1만2천 원 중에 ISDN 모뎀 임대료가 6천 원이고, 나머지 6천 원이 정액제 통신요금이기 때문이다.

넥스트컴과 ISDN의 출범으로 여러 가지 조합이 나왔다.

ISDN만 신청해서 기존의 PC 통신을 고속으로 이용하는 사람도 있고, 원래 사용하던 구식 모뎀으로 넥스트컴 유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가장 질 좋은 서비스는 ISDN으로 넥스트컴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넥스트컴은 텔레비전과 신문 광고, 건물의 옥외 광고판, 심지어 전단지까지 만들어서 배포했다.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걸 좋아하는 유재원은 최신의 광고 기법인 PPL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정극 드라마는 무리였지만, 트렌디한 미니 시리즈 드라마에서 남녀 주인공들이 넥스트컴의 채팅방을 통해 만나는 장면도 넣었고, 넥스트컴에 개설된 공중파 라디오 게시판으로 신청곡을 넣어서 고백하는 장면도 넣었다.

아직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건 아니지만, PC 통신으로 주식투자를 해서 대박이 터지는 모습까지 넣었다.

드라마 속에서 넥스트컴을 사용하면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이었고, 넥스트컴을 모르면 시대에 뒤처진 사람처럼 묘사되었다.

참 아쉬운 건, 방송법 때문에 넥스트컴의 상표를 그대로 노출할 수는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도 PC 통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바로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꼼꼼하게 구성했다.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 세계 최초의 웹(Web) 서비스 WWW 발표!

넥스트컴의 정식 서비스에 맞춰 WWW도 정식으로 출범되었다.

WWW 기술을 발표한 팀 버너스리는 지속적인 기술 발전과 버전업을 위해서 W3라는 콘퍼런스도 매년 개최하기로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W3 콘퍼런스에 ID 테크놀로지의 참여는 물론 가장 큰 후원자가 되기로 약속했다.

-WWW 개발에 ID 테크놀로지 유재원 상당한 기여!

WWW 발표회장에서 팀 버너스리는 유재원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유재원이 WWW의 기반 기술인 HTML을 혼자서 개발했다는 걸 공표했고, ID 테크놀로지가 인류의 공영을 위해 기꺼이 소스코드를 무료로 공개한 것에 찬사를 넘은 칭송을 보냈다.

WWW는 단번에 세계인의 관심을 받았다.

해커들은 새로운 놀이터가 나타난 것을 좋아했고, 기존에 인터넷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던 기관과 조직에서는 주소 하나로 사이트를 넘나들 수 있고, 정보공유도 쉽게 할 수 있는 WWW의 매력에 바로 빨려들었다.

대학교와 기업들은 앞다퉈 WWW 서비스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유재원의 소스코드를 통해 자체 브라우저 개발도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가장 빠른 보급률을 보이는 곳은 당연히 한국이었다.

한국사람은 외국인의 시선에 특히 민감했다. 외국인, 그것도 저명한 인사에게 인정을 받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라는 엄청난 기관이 공인 인증까지 해주니 이보다 긍정적일 수가 없었다.

넥스트컴이나 ISDN, 인터넷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일단 사용해보자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정부, 올해 100만 가구에 ISDN 보급 목표!

-교육부, 정보통신 시대를 맞이하여 일선 학교의 컴퓨터 교육 시간 2배로 늘리는 것 고려 중!

-국민학교와 중·고등학교에 ISDN 정보고속도로 보급으로 PC 통신 사용법과 통신 예절 교육!

4월 말이 되자 넥스트컴의 정식 출범에 맞춰 정부도 그간 열심히 준비한 정보고속도로 지원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화끈하시네.”

유재원이 ID 오피스 팔아서 번 돈 대부분을 마케팅에 쏟아 붓고 있었다.

덕분에 매주 가입자가 수천 명 단위로 부쩍 늘고 있었다. 1만 대를 준비했던 ISDN 모뎀의 재고가 4월이 다 지나기 전에 바닥을 보일 정도라서, 예정보다 일찍 추가 주문을 넣으려고 했던 차에, 정부의 발표가 나온 것이다.

그냥 들어보기엔 대단한 것 같은데, 그 정도는 아니다. 컴퓨터 교육 시간을 두 배로 늘린다는 것부터 그렇다.

현재 일선 학교의 컴퓨터 시간은 한 달에 한 번, 많아야 일주일에 한 번 정도였다. 그걸 두 배로 늘려봐야 거기서 거기다. 그래도 학교 컴퓨터실에 ISDN을 보급하겠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물질적인 지원보다 더 마음에 드는 건 예절 교육이었다.

21세기 인터넷 문화가 얼마나 막장이었으면 네티켓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지금은 이제 겨우 PC 통신 문화가 태동하는 중이라서 온라인에서의 막장은 아직 없었다.

미래에 통신망을 공기처럼 사용할 아이들에게 미리 예절 교육을 해준다면, 전생의 그런 막장은 나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보는 유재원이다.

“역시 종이 신문보다 인터넷 기사가 편해.”

조금 전 정부의 발표를 속보로 전한 기사를 보고 있던 매체는 바로 본인이 운영하는 넥스트컴의 뉴스 페이지였다.

4월 5일 출범한 넥스트컴 뉴스 페이지에는 한국의 일간지와 공중파 기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미국의 저명한 뉴욕타임스가 넥스트컴과 뉴스 공급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에, 강짜를 부리던 한국의 신문사들도 태도를 바꾼 것이다. 기사를 제공하는 방식도 뉴욕타임스와 똑같다. 일정 금액으로 언론사는 기사를 제공하고, 넥스트컴은 받은 기사를 원하는 방식으로 올릴 수 있다. 기사의 제목이나 내용은 절대 임의로 편집할 수 없다는 조항도 똑같다.

유재원은 이렇게 받은 기사들을 가지고 넥스트컴의 뉴스 페이지를 꾸몄다.

신문사별 게시판을 구분해서 올린 게 아니라, 섹션 별로 페이지를 구성했다. 정치, 경제, 사회, 연예로 게시판을 나누었다. 그리고 클릭 숫자, 추천받은 숫자로 순위를 정해서 뉴스 페이지 전면에 관련 기사를 링크했다. 순위권에 들지 못한 기사는 해당 섹션 안으로 들어가야 보이는 식이다.

언론사와의 계약은 정액제였다.

순위가 높다고 더 많은 돈을 받는 건 아니다. 계약서에 들어간 기사 숫자만 지키면 약속된 돈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당장은 클릭 수를 높이겠다고 충격이니 경악이니 하는 자극적인 단어로 기사 제목을 붙이진 않았다.

“아, 오타네.”

남은 기사를 보던 유재원이 곧장 편집 기능을 켜고 잘못된 단어를 바로 잡았다.

지금 아쉬운 건 기사를 올리는 게 모두 수동이라는 것이다. 언론사 중에 온라인 기사 편집 시스템을 갖춘 곳이 얼마 없었다.

신문사에서 기자가 컴퓨터로 기사를 작성하고, 데스크에 올리면 자동으로 넥스트컴에도 전송되면 정말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없으니 조간신문이 배달온다거나, 텔레비전에서 속보가 나오면 넥스트컴의 뉴스 담당들이 열심히 수작업으로 작성해서 올리는 게 현재의 실정이다.

덕분에 넥스트컴 파트로 고용된 전문 속기사들이 지금 10명이 넘는다.

이뿐만이 아니라 메인프레임 관리, 고객의 문의전화 응대, 게시판 관리와 함께 뉴스 서비스를 위한 속기사까지 다 해서 거의 50명에 달하는 추가 고용이 있었다.

단번에 ID 테크놀로지의 규모에 비견될 만큼 직원들의 숫자가 늘어난 것이다.

지금 넥스트컴은 ID 테크놀로지의 하부 조직으로 구성된 상태이지만, 몇 년이 지나서 서비스 수준이 본궤도에 오르면 분사를 시킬 작정이다.

“음, 이제 미국 소식으로 가볼까?”

유재원은 넥스트컴 전용 접속기의 주소창에 www.next.com/us라 입력하고 엔터키를 눌렀다. PC통신의 VT모드부터 HTML까지 한 화면에 지원하는 터라 페이지 전환은 무척이나 쉬웠다.

한글로 가득했던 화면이 순식간에 영어로 바뀌었다.

“미국도 누적 방문자 숫자가 벌써 10만 명이 넘었네!”

넥스트컴에 접속할 때, 유재원이 가장 먼저 살피는 것이 방문자 카운터였다.

매일매일 숫자가 늘어나는 게 유재원의 낙이었는데, 어제 7만 정도 되었던 카운터가 지금 10만5천을 넘고 있었다.

엄청나게 가파른 상승 속도였다. 이런 기세라면 8월도 안 돼서 100만이라는 기념비적인 숫자를 찍을 수도 있을 것 같다.

100만이라는 숫자를 보니 번뜩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 100만 번째 접속자에게 큰 선물이라도 내걸는 이벤트를 할까?”

기억을 더듬어 보니 여러 가지 웹사이트가 우후죽순 생겨날 때, 방문자 카운터를 두고 이벤트를 벌였던 것이 기억났다.

100만 번째라거나, 행운의 숫자 7이 연속된 카운터를 본 사용자에게 큰 상품을 줬다. 카운터가 이벤트 숫자에 가까워지면 사람들이 대거 몰려서 사이트가 느려져 불평을 터트린 기억도 생생하다.

너무 사소한 것이라서 잊고 있었는데, 넥스트컴 보급을 위해서라면 적절한 이벤트인 것 같았다.

수첩에 메모해놓은 유재원은 이번에도 뉴스 페이지로 들어갔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화면의 상단을 향했다. 섹션별로 클릭 수가 제일 많은 기사가 위로 올라오는 것이니, 윗단만 보면 미국인들이 중요하게 보는 이슈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영국, 핵부품 반출 이라크인 체포!

역시나 중동의 이야기가 최상단에 있었다.

무슨 이야기인가 클릭을 해봤더니, 핵탄두의 원격격발장치의 핵심 부품을 영국에서 빼돌리려던 이라크인을 체포했다는 이야기다.

핵탄두의 핵심 부품이니, 이 이야기는 이라크가 핵개발을 하고 있다는 의미였기에 국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영국의 스파이 체포는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사건인데,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곧장 대응 성명을 발표했다.

-핵부품 사건, 강대국의 음모!

-이라크는 고성능 화학무기 보유국, 핵폭탄 개발할 필요 없다!

-핵부품을 핑계로 이스라엘이 이라크를 공격할 경우, 화학무기로 이스라엘의 절반을 파괴하겠다!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반응은 화끈함을 넘어 폭력적이었다.

후세인 대통령의 발목을 두고두고 잡을 화학무기를 본인이 직접 언급한 사건이기도 했다.

이처럼 중동의 정세가 조금 불안해지니 1배럴에 17달러 수준이었던 유가가 18달러 수준으로 약간 상승하긴 했다. 하지만 상승세는 계속 이어지진 못하고, 다시 내려왔다.

유재원이 보기에 중동의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데,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은 그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현 시대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진 유재원은 레밍턴에게 은근한 말로 이라크 상황이 걱정되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 작품 후기 ==========

다음 편으로 가기 전 추천 버튼 살짝만 눌러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1